1987년에는 영국에서 연구년을 보냈다. 초등학생이던 두 아이도 함께 갔는데 영국 정부에서 수표가 든 편지를 보내왔다. 수표는 두 아이의 매월 간식비라고 했다. 나는 영국 정부가 우리를 이민자로 착각해 보낸 줄 알고 전화를 걸어 돌려주겠다고 했더니, 담당자는 현재 영국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 주는 돈이라고 했다. 그 아이들이 다 행복해야 영국 아이들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의 혜택을 받은 내 첫 번째 경험이다. 복지와 관련해 또 하나 에피소드가 있다. 미국 학회에서 만난 동포 한 분이 부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있고, 65살만 넘으면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하고, 구민회관에서 공짜로 춤도 추고 그림도 그린다는 한국은 정말 좋은 복지국가라며 ‘공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미국에 이민온 건 잘못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를 위해 공무원과 시민들도 변해야 한다. 그간의 선별적 복지 체제에 길들여졌던 평가와 감시의 태도는 위험하다. 공무원들은 시민과 함께 공공재를 만들어가는 동반자로서의 태도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육아수당을 받는 수혜자들도 지원금을 단순한 보조비가 아니라 ‘돌봄의 공유지’를 만들어낼 종잣돈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사실상 현재 다수의 보육시설들은 후기 근대를 살아갈 아이를 키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부모들이 선택할 만한 어린이집도 턱없이 부족하다. 공공재를 풍성하게 하는 의미에서 이 제도를 선택했다면 뜻있는 부모와 주변 어른들이 모여 공동육아를 시도하거나 숲 어린이집을 하는 등 다양하고 참신한 시도가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하며 기존의 시설도 질적 성장을 해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아동수당 지급을 계기로 극도로 개인화된 우리 사회에 상부상조와 호혜의 관계가 되살아나고, 창의적 공공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장이 열릴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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