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사람들이 들어 닥쳐 당신의 집 앞에 공장을 만들기로 했으니 집을 공짜로 내놓으라고 한다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그런 일이 벌어질 리도 없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집주인은 격렬히 저항할 것이다. 집에 대한 소유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쉽게 벌일 수 있는 대상이 있다. 바로 자연 생태계다. 생태계의 구성요소들은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으니 파헤치고 개발하기 좋은 대상이다.
지난 주, 충남 서천에 새로 개장한 ‘국립생태원’을 다녀왔다. 아직 시험 가동 중이지만, 생태계를 대상으로 한 국내 최초의 연구시설이자 전시 공간이라 그 의미가 크다. 앞으로의 운영 방향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열대, 사막, 극지 등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생물군계(Biome)를 재현해 놓은 시설에 후한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생태계 연구기관으로서의 중요성뿐 아니라, 대중들을 위한 생태계 교육은 물론 지역 관광 활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된다.
생태원 관람을 마친 후 가까운 거리에 있는 새만금 방조제도 방문했다. 한 홍보관에서 열성을 다해 설명해주던 직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그 넓은 연안을 매립해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길이 없다. 농경지를 개간하겠다던 처음의 주장은, 어느 샌가 아시아 경제의 허브를 만들겠다는 꿈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수상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도 흘러나오고 있다. 또 원래 습지였던 곳을 매립해서 파괴하더니, 이제는 그곳의 습지를 복원해서 자연친화적인 관광지를 만들겠다고 한다. 처음부터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를 고려해서 개발했다면 오히려 좋은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개발 사업에 반대해서 생태계를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 소위 개발론자들이 들고 나오는 질문은 ‘사람이 중요하냐 자연이 중요하냐’다. 맞다. 사람이 중요하다. 그러나 생태계를 보존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물론, 당장의 경제적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 제주도의 예를 보자. 올레길의 성공을 통해 제주도는 관광 활성화는 물론, 어떤 개발 산업도 이루지 못한 자신만의 매력을 만들어 냈다. 지난 20여 년 간의 논란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카지노 특구를 만드는 것만이 제주도의 살길이라는 주장을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다. 제주를 방문하는 수많은 관광객들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 속에서 휴식하기를 원하지 도박과 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 국립생태원이 벤치마킹한 모델 중 하나는 영국 콘월 지방에 위치한 ‘에덴 프로젝트’라는 시설이다. 대규모 폐탄광지대에 여러 가지 생태계와 식생을 복원하여 자연도 살리고 지역 경제도 살린 대표적인 예다. 만일 우리나라 강원도 폐광지역에 카지노 대신, 아름다운 하천과 산을 이용해서 환경친화적인 관광시설을 개발했다면 지금은 제주만큼이나 매력적인 관광지가 되지 않았을까?
지나간 일을 탓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실수에서 얻어지는 교훈이다. 새만금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정권은 4대강 사업이라는 또 다른 실수를 저질렀다. 지금 용산 개발의 어려움에서 볼 수 있듯, 일단 벌려놓고 나면 중앙 정부가 나서 세금으로 뒷정리 해주는 시대는 지났다. 특히 한번 파괴된 생태계는 복원에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이 든다. 우리나라에는 아무 자원이 없으니 인적 자원을 활용한 ‘창조경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다. 우리 땅에 화석연료는 없지만, 대신 엄청난 생태자원이 있다. 이것의 보존과 경제활동과의 조화는 창조경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고민해야 할 문제 중 하나일 것이다.
이번 여행에 동행한 미국 친구들을 가장 흥분시킨 것은 세계 최장의 방조제가 아니라 시골 길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후투티’라는 철새였다. 동남아 여행 중에도 못 봤던 새를 봤다며 매우 기뻐했다. 지역 관광을 활성화 시키려면, 번쩍이는 건물을 세울 것이 아니라 그곳만의 고유한 생태계를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3/h2013032502311712178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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