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6. 03:28

지지난 주엔 아내 혼자 극장에 나가 ‘레미제라블’을 보고 왔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셋을 키우는 입장에서 부부 동반으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언감생심, 뽀로로가 아이들 앞에서 갑자기 커밍아웃하거나 혹은 진짜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일인지라, 아내에게 선심 쓰듯 먼저 양보한 것이었다. 웬일이래? 아내는 생뚱맞다는 표정으로 예매한 표를 받아들었지만, 정작 상영시간 세 시간 전부터 아이들 저녁밥을 차려준다, 일찍 목욕을 시킨다, 부산을 떨었다. 그래서 우리는 오후 네 시 삼십 분에 저녁을 먹어야 했다. 정말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아내는 현관문을 나서기 전 그렇게 다시 한 번 물었지만, 일은 무슨? 나는 마치 일상적인 일인 양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리고 아내가 현관문을 닫고 밖으로 나간 순간부터, 다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네 시간 가까이, 나는 ‘토마스와 친구들’에 나오는 바로 그 토마스가 되었다가, 다시 ‘파워레인저’에 나오는 블루도 되었다가, 인간 자동차도 되었다가, 시소 인간도 되었다가, 그러다가 그만 거실 한가운데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널브러진 내 등 위에서 아이들 셋은 손으로 열심히 노를 젓는 시늉을 하며 또 어딘가를 향해 나아갔고.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내 그럴 줄 알았다, 라는 표정을 하곤 삽시간에 주변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우르르 몰고 들어가 양치질을 시키기도 했고, 아이들 손에 통 하나씩 들려주고 각자 장난감을 정리하게 만들기도 했다. 세상에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프라이팬  검은콩처럼 요란하던 아이들은 순식간에 접시 위에 놓인 새침하고 얌전한 두부 한 모로 변해버렸다. 이건 뭘까? 나는 좀 억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이들을 사이에 놓고 안방에 누운 채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영화 좋았어? 아내는 막내의 등을 토닥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애들 생각나서…어디 집중할 수가 있어야지. 그러면 중간에 그냥 나오지 그랬니, 라고 나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한데 참 이상하지? 아내는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봤는데, 왜 변하는 게 없지? 아내는 그러면서 영화가 끝났을 때 자기 앞좌석에 앉아 있던 남자 두 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까지 치더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다들 공감하고 다들 이해하면서도 왜 이백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을 받는 걸까?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멀뚱멀뚱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나는 작년에 보았던 ‘두 개의 문’이라는 다큐 영화를 떠올렸다. 용산 참사를 다룬 그 영화는 다큐멘터리치곤 이례적으로 많은 관객을 모았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는 뜻이리라. 한데도 용산 참사는 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공감은 많되 상황은 바뀌지 않는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러다가 말이야… 아내는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바쁜 마음에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까, 그게 딱 나인 거 같다는 기분이 드는 거야. 영화를 보면서도 계속 애들 생각을 하는 나, 남편 생각을 하는 나. 아내의 말인즉슨 우리들이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공감이란, 실은 자기 자신에 대한 공감은 아닐까, 그 뜻이었다. 자신은 안전하다는 공감, 가족들은 거기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공감. 그게 우리들의 공감이 되었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공감일까? 나는 잠자코 아내의 말을 듣기만 했다. 그러면서 두려움에 대한 공감, 이라는 말을 속으로 작게 덧붙였다. 그나저나 그 영화 왜 다 뮤지컬로 만들어졌는지 알아?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누가 그러더라고. “가난한 것들, 이런 식으로라도 뮤지컬 봐라.” 아, 그 말엔 또 얼마나 공감이 가던지. 나는 아내 먼저 영화를 보게 한 후,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그 영화를 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당분간 그럴 순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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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