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잦은 총기사건이 들릴 때마다 예전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 당시의 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한인상점을 비롯한 LA 도심 곳곳이 불에 타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리고, 도처에서 간단없이 총성이 들렸다. 한국해병전우회 등 군 경험이 있는 교민들이 폭도들과의 총격전에 대비, 한인가(街) 식당지붕 등지에 올라가 거리를 향해 샷건(shot gun)을 겨누었다. 서울에서 급파돼 취재하면서 마치 종군기자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벌써 20년 전 일이다.
■이후에도 치안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차 탈 때마다 안에서 문을 잠그라는 조언을 들었고, 건물 앞에서 잠깐 담배를 피울 때도 "지나가면서 괜히 총 쏘는 놈들이 있다"고 안으로 끌어당겨졌다. 초등학교에 금속탐지기가 설치된 것도 이때였다. 학부모가 TV에서 "도대체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총 맞을 걸 걱정해야 하느냐"며 울분을 터뜨렸고, 주(州)방위군을 치안에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유력신문에 실렸다. 모두가 총 때문이었다.
■2007년 33명이 숨진 버지니아공대, 지난 연말 어린이 20명이 희생된 샌디훅 초등학교 참사를 비롯해 미국의 크고 작은 총기사건은 거의 하루도 빠짐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총기규제에 미온적인 현상은 실로 불가사의다. 오바마의 호소로 일부 전향적 법안들이 나오고 있지만, 구매자 신원확인 강화나 반자동 소총 등 대량살상용 무기 제한 등이 고작일 뿐 총기소지 자체를 문제삼진 않는다. 흔히 말하듯 전미총기협회(NRA)의 로비 탓만도 아니다.
■총기규제 반대론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민병대 조직과 무기소지 권리를 명시한 미 수정헌법 2조다. 많은 이들이 이 권리를 천부적 자연권으로 받아들인다. 급박한 위해에 맞서는 마땅한 자위권의 행사이자, 부당한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저항권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거의 결론 나지 않는 철학적 사안이다. 가장 발전한 국가라는 미국이 국민안전을 개인 총기에 의존하는 2세기 전 건국기(期)의 무법적 상황인식에 여전히 갇혀있는 건 이만저만한 아이러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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