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랭이꽃그림책버스가 벌써 10년이 됐다고 했다. 2004년 5월에 폐차 직전이었던 버스 1대를 구해 시작했으니, 10년이 지난 지금 진짜 폐차할 때가 됐을 법하다. 이 그림책버스를 만든 이상희씨를 마침 설 직전에 만나 '그래 어떡할 거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제 '그림책 도시'를 꿈꾸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림책 전문 꼬마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 패랭이꽃그림책버스는 빼어난 여성 시인이자 출판편집자이자 100권이 넘는 외국 그림책을 우리말로 옮긴 번역자이기도 한 이씨가 스스로 그림책에 빠져 온 세상 사람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고 싶다는 백일몽 같은 꿈을 꾸면서 만들어졌다. 그 꿈을 입 밖으로 소리내어 이야기하자 놀랍게도 버스를 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고, 그 버스에 예쁘게 색칠을 해 주고 그림책을 기증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씨의 그림책 교실 강의를 들은 수강생들은 버스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는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 패랭이꽃그림책버스가 지방 도시 원주에서 문을 연 이후 10년 동안 그림책 읽기는 우리 독서문화의 한 줄기가 됐다.
정말 동화같은, 백일몽같은 이야기인데 이씨는 그림책도서관을 만드는 것부터 실현하고 있는 듯했다. 사회적기업 아이디어가 그 원동력의 하나가 됐다. 지역사회 발전 및 공익 증진이라는 사회적기업의 설립 목적은 이씨의 꿈과 그대로 들어맞았고, 원주시도 이씨의 꿈을 적극 지원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허다하게 생겨났다 거품처럼 사라지는 지방의 각종 '축제'들, 관광객 유치나 경제적 수익만을 추구하는 그런 이벤트성 축제보다 지역사회에도 인문정신을 북돋우고 뿌리내리게 할 수 있는 정신의 축제가 필요하다는 이씨의 구상에 원주시의 공무원들도 '넘어간' 모양이다. 근래 각종 지원을 노리고 얄팍한 계산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기업들도 많지만, 좀체 현실적 기반을 마련하기 어려운 좋은 아이디어에 대한 지원은 사회적기업 제도의 큰 장점이다. 이씨는 지역형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그림책 도시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꿈을 꺼내놓으면 웃음을 터뜨리거나 쌍수를 들고 말릴 줄 알았다. 주위의 꿈쟁이들이며 시인 작가들이야 박수를 치고 신나할 줄 알았지만, 틈틈이 그림책을 선물하고 읽어 줬던 기업가 의사 검사 교수 정치가 언론인들도 동참하겠다며 흥분했다. 문화인력 고용 창출, 지역사회와 국가 발전, 지적 자산과 문화력 생산, 사회적 불균형과 세대간 불화 치유에 도움이 되겠다면서." 그러니까 평소 몽상하기 좋아하는 '꿈쟁이들' 말고도, 일과 돈에 쫓기고 경쟁에 치여 살아가는 우리도 사실 그런 꿈을 꿀 생각을 못했을 뿐 그 꿈의 내용은 함께 소망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림책 도시 이야기를 이씨로부터 들으면서 이번에도 어김없이 2,900만명이 고향을 찾아 민족 대이동을 한다는 설날, 우리 모두 귀성길에 나름대로 고향을 위한 꿈을 한번 꿔보면 어떨까 하는 좀 엉뚱한 생각을 했다. 뭐 꼭 태어난 고향이 아니라도 좋다. 부산이 고향이지만 서울서 살다 원주로 가서 꿈을 현실에 구현하고 있는 이씨처럼, 꿈꾸는 자의 세계는 그대로 그의 새로운 고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종오 부국장 겸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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