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10. 16:17

“박 기자, 3월 21일에 약속 있습니까?”

2011년 3월 20일. 허구연 MBC SPORTS+ 해설위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네, 인터뷰가 하나 잡혀 있습니다.” 기자가 답했다.
“그래요? 중요한 인터뷰예요?”

수첩을 펼쳤다. 그리 중요한 인터뷰는 아니었다. 인터뷰이도 다음날로 연기를 바라던 차였다.

“아닙니다. 그런데 내일 무슨 일이라도…?” 이번엔 기자가 물었다.
“혹시 내일 시간 되면 나와 경남 양산에 다녀옵시다.” 허 위원은 그렇게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경남 양산이라….’ 기자는 한참 동안 ‘양산’이란 단어를 옹알거렸다. 그도 그럴 게 양산은 야구와는 별 인연이 없는 지역이었다. 프로팀은 고사하고, 아마추어 야구팀도 없는 곳이었다. 특히나 바쁘기로 치자면 야구해설과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을 병행하는 허 위원이 기자보다 몇 배는 바쁜 터였다. 가뜩이나 허 위원은 그즈음 바쁜 스케줄을 쪼개 전국을 돌며 야구 인프라 확충을 위해 지자체장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다음날 KTX에서 허 위원을 만났을 때 그는 기자에게 두툼한 유인물을 건넸다. 유인물의 제목은 ‘경남 양산 원동중학교 야구부 창단’이었다. “이게 뭡니까?”하는 기자의 물음에 허 위원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경남 양산에 원동중학교라는 시골 학교가 있어요. 전교생이 30명 남짓한 작은 학교인데, 학생 수가 감소해 2012년이면 전교생이 16명으로 줄거라고 합니다. 전교생이 20명 이하면 경남도 교육청의 방침에 따라 학교가 사라진다(폐교)고 해요. 학교가 없어지면 그나마 남은 아이들도 도시로 떠나고, 지역도 죽고, 지역민들의 추억도 사라질 게 분명해요.”

아쉬운 일이었다.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하지만, 도시 집중화와 출산율 저하로 원동중뿐만 아니라 많은 시골학교가 인근 학교와 통폐합하며 사라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것이 야구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허 위원은 목소리 톤을 높여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폐교를 막을 방법이 있어요. 바로 야구부를 창단하는 겁니다. 그리고 학교를 ‘야구 특성화 학교’로 만드는 겁니다. 시골 학교에 야구부가 생기면 ‘누가 그곳까지 찾아올까’ 싶겠지만, 그렇지 않을 거예요. 야구를 하고 싶은 아이들이 부산을 비롯해 전국에서 몰려들 거예요. 가뜩이나 공부와 야구를 병행하는 ‘야구 특성화 학교’로 지정받는다면 전국의 학부모들도 관심을 두고, 교육청의 지원 역시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타지의 학생들이 입학하면 원동중의 학생 수가 늘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폐교 직전의 학교를 구할 수 있을 거예요.”

당도가 떨어진 딸기처럼 삶의 활력이 사라졌던 원동면

경남 양산시 원동면 원동중을 찾았을 때 학교는 잔치 분위기였다. 주민들은 생업을 제치고 학교를 찾았고, 일부 주민은 풍물패를 조직해 야구부 창단식의 흥을 돋웠다. 지역 유지들과 시의원, 시 관계자, 교육청 인사들도 바쁜 일정을 뒤로하고 원동중을 찾았다. 푸른 토곡산과 배내골을 낀 원동중엔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현실은 엄혹했다. 먼저 원동중을 둘러싼 외부 환경이었다. 주변 상황만 보면 원동중의 생존은 막막했다.

한때 매실을 비롯해 갖가지 토산물로 유명했던 원동면은 양산시가 커지면서 생기를 잃었다. 주민들 사이에선 '시내로 나가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어느 시점부터인가 원동면뿐만 아니라 양산시 전체가 농업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급격한 도시화는 농업인구와 경작지 축소로 이어졌다. 여기다 4대강 사업은 결정타였다.

취재 중 학교에서 만난 한 주민은 “4대강 사업으로 고향의 특산물인 ‘원동 딸기’와 ‘원동 수박’이 사라질 판”이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원동면은 낙동강변 사질토에 깨끗한 지하수가 흐르고, 일조량이 풍부해 딸기와 수박농사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춘 곳으로 유명했다. 딸기 당도가 15.7브릭스로 높아 부산, 울산을 비롯해 수도권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전국 딸기 최대 재배지인 인근 밀양 삼랑진 딸기보다도 1kg당 1천 원 이상을 더 받았던 것도 맛과 품질이 뛰어난 까닭이었다. 덕분에 원동면 용당리 일대의 90여 농가에서만 연간 70, 80억 원의 소득을 올렸다.

그러나 정부가 4대강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강폭을 넓히면서 원동면 용당리 낙동강변 일대의 딸기밭과 수박밭이 사라졌다. 주민들은 정부로부터 보상금을 받았지만, 더는 그들이 경작할 땅은 없었다. 생계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도시로 떠났고, 원동면은 더 고립된 섬이 됐다.

두 번째 엄혹한 현실은 ‘과연 전국의 학생선수들이 원동중을 찾아오겠느냐’는 불안감이었다. 부족한 학교 예산으로 숙소를 짓거나 구하는 건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월세 50만 원짜리 버스회사 숙소를 어렵게 구해 이를 야구부 숙소로 썼지만, 학교 안에 있는 다른 야구부 숙소와 비교하면 아쉬움이 많았다. 아이를 시골 학교에 맡겨야 하는 학부모들 입장에선 찜찜한 대목이었다.

무엇보다 창단 중학교라, 실력이 떨어질 게 분명했다. 만약 몇 년이 지나도록 실력이 형편없다면 고교 야구부 진학률이 떨어지고, 이는 야구부 존립에 악영향으로 작용할 게 분명했다. 기사엔 원동중 야구부의 밝은 미래를 쓰긴 했으나, 기자는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부질없는 꿈을 노래한 게 아닌가’싶어 마음이 무거웠다. 기자의 지인도 “야구는 ‘그깟 공놀이’일때가 가장 의미 있는 것”이라며 “야구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거나 야구가 세상을 바꾸는 단초가 되리라 상상하는 건 무리한 기대”라고 꼬집었다.


아들 대신 시골 학교 감독을 맡은 아버지

우려는 현실이 되는 듯했다. 지난해까지 원동중은 최약체였다. 전국대회는 고사하고, 지역 공식경기에서도 창단 첫 승을 거두지 못했다. 신종세 원동중 감독은 “다른 팀과 붙었다 하면 콜드게임으로 지기 바빴다”며 “10점 차 이하로 지면 그나마 양반이었다”고 회상했다.

선수들의 실력향상도 답보 상태였다. 신 감독은 “부산, 울산지역 중학교에서 뛰던 학생선수들이 전학왔다. 지역 리틀야구부에서 뛰던 아이들도 원동중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좋은 선수들은 이미 다른 중학교에서 뛰는 통에 원동중으로 입학하거나 전학 온 학생선수들은 죄다 실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었다”며 “캐치볼을 할 줄 모르는 학생선수들도 태반이었다”고 털어놨다.

신 감독이 원동중 사령탑에 오른 덴 사연이 있었다. 지난해까지 원동중 감독은 신민기 씨였다.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신 씨는 아마추어 야구활성화를 위해 원동중 감독을 자원했다. 그러나 ‘초보감독’ 신 씨가 학부모들과의 이견으로 잠시 감독직에서 물러나며 갑자기 감독 자리가 비게 됐다. 이때 신 씨와 학부모들 사이를 오가며 이견을 조율한 이가 바로 신 씨의 아버지인 신 감독이었다.

신 감독은 아마추어 야구계에 잔뼈가 굵은 지도자였다. 부산 대동중에서 20년 동안 감독을 맡아 이대호(오릭스)를 발굴했고, ‘야구 불모지’ 제주도로 건너가 리틀야구팀을 창단·지도했다. 그리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부산공고 감독으로 근무했다.

초임 지도자인 아들과 학부모 사이를 중재하던 신 감독을 보며 학부모들은 그에게 “감독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학부모들은 신 감독의 풍부한 아마추어 지도자 경력을 익히 알고 있었다. 물론 보이지 않는 이유도 숨어 있었다. 시골 학교에서 감독을 하겠다고 지원한 이가 한 명도 없던 까닭이었다.

학부모 왕정인 씨는 “학교에서 신임 감독 공고를 냈지만, 아무도 지원하지 않아 야구부 운영이 위기에 몰렸다”며 “그때 ‘큰 감독’님께서 흔쾌히 학부모들의 요청을 받아주셔서 어렵사리 신임 감독님으로 모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원동중 학생선수들과 학부모들은 신 감독을 ‘큰 감독’으로 부른다.

‘연전연패’와 감독 문제로 벼랑 끝에 몰린 원동중 야구부는 신 감독이 팀을 맡으며 몰라보게 달라졌다. 오합지졸이었던 야구소년들은 어느덧 야구선수들로 거듭나고 있었다.

오합지졸은 어떻게 단련됐는가

원동중 야구부의 원칙은 학업과 야구를 병행하는 것이다. 학생선수라도 학업이 우선이고, 운동은 그 다음이다. 따라서 정규 수업이 끝나고서 훈련을 해야 한다. 이를 잘 아는 신 감독은 화려한 개인기보단 기본기에 충실하도록 독려했다. 부족한 훈련량은 방학기간에 보충했고, 강도 높은 동계훈련으로 선수들의 체력을 강화시켰다. 학생선수들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별이 뜰 때까지 운동장에 남아 훈련을 진행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2013년의 새해가 밝았다. 공식경기 첫 승에 목말랐던 원동중은 1월 경북 경주에서 열린 경주시장배 중학야구대회에 참가한다. 첫 경기 상대는 대구중. 원동중은 경기 초반까진 대구중을 앞섰으나, 뒷심부족으로 4대 7로 역전패했다. 눈앞의 첫 승을 놓친 학생선수들은 눈물을 삼켰고, 학부모들은 연방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 감독은 실망한 학생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실력이 모자라서 지는 건 괜찮다. 그런데 노력이 부족하고, 의지가 모자라서 지면 그건 1패 아니라 2패다. 경기에서도 지는 거고, 인생에서도 지는 기다.”

그날 12명의 학생선수들은 머리를 밀었다. 그것이 그 또래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다음날.

원동중은 서울 영동중과 맞붙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원동중 학생선수들은 질 때 지더라도 인생에서까지 지고 않았다. 그들은 정신없이 그라운드를 뛰었고, 어떻게 경기가 진행되는지도 모른 채 서로를 응시하며 “파이팅!”을 외쳤다. 구심이 경기 종료를 선언했을 때 전광판엔 ‘12’와 ‘3’이 적혀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3’이 원동중의 스코어였을 게 분명했다.

“전해 12월에 눈이 억수로 많이 내렸다. 눈이 학교 운동장을 죄다 덮어서 애들이 훈련을 못할 정도였다. 영동중 경기가 끝나고, 겨울에 아이들이랑 눈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 그래서일까. 경기가 끝나고 그렇게 우리 아이들이 대견스러울 수가 없었다. 서울에서 잘 교육받은 친구들을 상대로 12대 3 콜드게임으로 이겼으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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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린 학교 운동장을 밟으며 아이들은 꿈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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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아이들이 눈을 밟으며 꿈을 키우면, 아버지들은 아이들의 꿈이 냉기에 사라질까 두려워 밤이면 운동장을 찾아 눈을 치우고, 흙을 골랐다

신 감독은 창단 첫 승의 공로를 아이들 덕분으로 돌렸다. 그랬다. 이날 원동중은 공식경기 첫 승을 콜드게임승으로 장식했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6연승을 달리며 6승 1패로 경주시장배대회에서 감격의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만 해도 원동중의 기적은 ‘우연’의 다른 이름이었다. 중학야구계에선 “지역대회와 전국대회는 하늘과 땅 차이”라며 “원동중의 기적이 전국대회에서까지 이어지긴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7월 27일. 원동중은 부산 구덕구장에서 열린 제43회 대통령기 전국중학야구대회에 참가한다. 대통령기대회는 시·도별 예선전을 거쳐 상위 1, 2위를 차지한 33개 팀이 참가하는 명실공히 전국 최고의 대회였다. 8개 팀이 참가해 자웅을 겨룬 경주시장배대회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나 대회를 임하는 원동중 학생선수들의 자세엔 변함이 없었다. 그들은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리고 평범한 노력은 노력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마음에 새기고 1회전 상대 포항제철중과 맞섰다.

야구 명문답게 포항제철중은 강했다. 원동중의 파생공세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되레 몇번이고 원동중이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원동중의 견고한 수비에 눌려 포항제철중은 좀체 점수를 내지 못했고, 결국 경기는 3대 2 원동중 승리로 끝났다. 16강전 상대였던 인천 재능중과의 경기에선 7대 0으로 원동중이 쉽게 승리했다. 8강전 부산 대천중과의 경기에서도 원동중은 4대 1로 승리를 거두며 4강에 진출했다.

창단 3년째의 시골학교가 전국대회 4강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원동중 학생선수들은 “내친 김에 결승에까지 오르자”고 다짐했고, 서울 양천중과의 4강전에서 2대 0 승리를 거두며 다짐을 현실화시켰다. 이제 결승이었다.

신 감독은 학생선수들을 불러놓고 ‘딱’ 한마디만 했다.

“여러분이 흘린 땀이 우리를 결승전으로 인도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땀의 대가를 바라고 뛰었다면 이젠 즐기면서 뛰자. 우승 부담을 덜고, 결승전만은 정말 야구를 즐기면서 뛰어보자.”


지역 회생의 롤모델이 된 원동중 야구부

원동중 야구부가 기적에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경남의 ‘오지’로 불리는 원동면도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다.

양산시는 지난해부터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원동면에 ‘국토종주 자전거길 활용 체험프로그램’과 ‘단오제’, ‘매화축제’를 마련했다. 덕분에 양산은 알아도 원동은 잘 모르던 전국의 여행객들이 축제를 통해 원동의 아름다움을 알아가고 있다. 특히나 양산시는 내년 완공을 목표로 원동면 화제리에 임경대 유적지를 복원 작업하고 있는데, ‘양산 8경’의 하나인 낙동강변 ‘임경대’ 유적지가 관광 명소화한다면 지역 알리기와 지역경제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원동면은 16억 원을 들여 딸기, 미나리 재배하우스 건립 등 친환경 농촌시설 현대화사업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매진하고 있다. 그 덕분일까.

‘물 좋고, 인심은 좋으나 인구가 자꾸 줄던’ 원동면에 어느 때보다 사람꽃 향기가 진하게 퍼지고 있다.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었으나, 지난해부터 주춤하기 시작했다”며 “되레 지역경제가 활성화하면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느는 추세”라고 밝혔다.

한 주민은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 원동중 야구부 창단 때문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 동네 토박이들은 죄다 원동중 출신이다. 원동중에 대한 애잔한 추억이 억수로 많다. 2011년 원동중이 통폐합으로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들렸을 때 ‘이제 원동도 끝입갑네’하고 절망감을 느낀 사람이 많았다. 가뜩이나 지역경제도 갈수록 바닥을 쳐선지 고향을 떠나겠다는 이가 한 두명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원동중에 야구부가 생기고, 타지 아이들이 하나 둘 전학 오면서 학교가 살아나고, 교정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우리 같은 어른들도 원동중이 살아나는 걸 보면서 많은 걸 느꼈다. ‘안 된다’고 포기하기 전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면 돌파구가 생긴다는 걸 아이들을 통해 배웠다고나 할까. 농업에만 의존했던 원동면이 요즘 들어 관광 명승지로 탈바꿈하려 노력하는 것도 야구로 되살아난 원동중이 롤모델이 돼준 덕분이다.”

원동면뿐만 아니라 양산시 발전상황도 인상적이다. 나동연 양산시장 취임 이후 양산시는 활발한 기업유치를 통해 해마다 인구를 늘리고 있다. 현 추세라면 내년 말엔 ‘경제 자족도시’의 기준 인구인 3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한다. 원동중 야구부의 기적만큼이나 지역도 기적을 향해 순항을 펼치고 있는 셈이었다.

원동중 기적은 우연이 아니라 ‘준비된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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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에서 원동중을 응원하는 학부모들과 주민들

8월 4일. 부산 구덕구장. 원동중은 부산 개성중과의 결승전에서 3회까지 3대 1로 앞서 나갔다. 신 감독은 내심 ‘사고를 쳐도 크게 치겠구나’하는 벅찬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4회 초 개성중에 2점을 내주고, 6회 다시 1점을 내주며 전세는 3대 4로 역전됐다. 6회 말 득점에 실패한 원동중은 7회 말, 단 한 번의 공격만을 남겨뒀다.

그즈음 허구연 MBC SPORTS+ 해설위원은 잠실구장에서 삼성-LG전의 해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원동중 야구부 창단을 물밑 지원하고, ‘야구 특성화 학교’ 아이디어를 직접 냈던 허 위원은 이미 원동중의 결승진출을 전해 들은 차였다. 결승전 소식이 궁금했던 허 위원은 해설준비를 하면서도 시선은 휴대전화에 뒀다. 하지만, 소식이 없었다. 허 위원은 ‘우승까지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7회 말. 선두타자 장대한이 삼진아웃으로 물러나며 신 감독은 입맛을 다셨다. 1점 차를 극복하려면 어떻게든 출루를 해야 했다. 이때 3번 김세빈이 볼넷으로 출루한다. 김세빈은 1아웃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도루를 기록하며 동점 찬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박웅의 안타가 터지며 원동중은 4대 4 동점을 만든다.

신 감독은 5번 왕재웅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한다. 상황을 2사 2루로 만들어 승부를 걸어볼 참이었다. 그러나 왕재웅의 희생번트가 실패하며 2루로 뛰던 1루 주자가 아쉽게도 죽고 만다. 이제 상황은 2사 1루. 동점까지 만든 것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지만, 만약 연장전까지 간다면 원동중이 불리했다. 선발 김세빈은 7회까지 31타자를 상대로 115개의 투구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투구수도 많지만, 구위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김세빈의 대안이 마땅치 않았다.

신 감독은 6번 이지상이 타석에 들어서자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다. 이윽고 2볼 2스트라이크가 되자 신 감독은 승부수를 던졌다. 바로 ‘히트 앤드 런’ 사인이었다.

오후 6시 30분부터 진행된 삼성-LG전을 중계하던 허 위원은 클리닝타임에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내용은 이랬다.

‘허 위원님. 기적이 연출됐습니다. 원동중학교가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허 위원은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 2011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시골학교 원동중을 찾아 물밑 지원을 아끼지 않던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에 감사해 했다. 허 위원은 환하게 웃으며 “9구단, 10구단 창단이 결정됐을 때보다 원동중 우승 소식에 더 감격했다”며 “중계 내내 아이들 얼굴이 떠올라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신 감독의 ‘히트 앤드 런’ 작전은 대성공을 거뒀다. 이지상의 타구가 우익선상으로 빠르게 흐르며 1루 주자가 홈까지 파고든 것이었다. 원동중 학생선수들은 한꺼번에 몰려나와 홈을 밟은 박웅과 결승타 주인공 이지상과 얼싸안았고, 학부모들 역시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학부모들은 “‘시골학교에서 무슨 야구냐’는 핀잔과 ‘시골학교 야구부에서 뛴다고 실력이 늘 것 같으냐’는 그간의 비아냥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며 “우리 아이들이 더없이 자랑스럽고 대견했다”고 말했다.

원동중 우승은 야구가 표현할 수 없는 최고의 기적이었다. 야구는 폐교 직전의 학교를 살렸고, 생기가 사라진 지역의 희망이 됐다. 무엇보다 야구와 헤어지기 일보 직전이던 야구소년들의 꿈을 되살려냈고, 지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구심점으로 작용했다.

허 위원은 “원동중의 기적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준비된 기적이었다”고 강조했다.

“원동중의 기적은 ‘민(民)·관(官)·학(學)’의 튼튼한 연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먼저 ‘민’을 대표하는 지역주민과 동창회의 노력이 대단했다. 주민들은 야구부 창단 때부터 마치 자기 집 잔치를 벌이듯 발 벗고 나섰고, 야구부에 부족한 게 뭐가 있나 세심히 살폈다. 동창회에선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아 야구부에 전달했고, 끊임없는 관심으로 야구부을 지원했다.

‘관’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양산시장은 부족한 시예산을 쪼개 원동중 야구부 지원에 나섰고, 경남도 교육청에서도 원동중 야구부에 많은 신경을 썼다. 교육부 역시 농어촌교육 활성화 자금으로 경남도 교육청에 3억 원을 지원해 이 돈 가운데 상당액이 원동중을 비롯한 지역 학원야구부에 쓰이도록 배려했다. 만약 양산시와 도교육청, 교육부의 애정과 관심이 없었다면 원동중 야구부가 이렇게 빠른 시일 안에 우승하긴 힘들었을 거다.

마지막으론 ‘학’이다. 야구부 창단을 이끈 김주만 전 교장에 이어 현 이규용 교장까지 원동중 선생님들은 학업과 야구를 병행한다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학생선수들이 마음껏 학교 운동장에서 뛸 수 있도록 여러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운동부가 있으면 일반 아이들의 면학분위기가 깨진다’고 우려하지만, 원동중에선 그런 소리가 일절 나오지 않은 것만 봐도 선생님들의 노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덧붙여 허 위원은 “원동중의 준비된 기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크다”고 말했다. 바로 “시골학교 원동중이 기적을 일궜으면 다른 학교에서도 기적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허 위원은 자신의 공로는 “쓸 필요가 없다”며 사양했다. 하지만, 그의 공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원동중 학생선수들이었다. 아이들은 우승이 확정되고서 허 위원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허 위원은 쏟아지는 문자메시지에 “정신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연방 ‘허구연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아이들의 문자를 보고 또 보며 미소를 웃음꽃을 터트렸다.

원동중의 기적이 ‘한여름밤의 꿈’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신 감독은 “중 3 졸업반 6명이 부산지역 고교 야구부로 진학하기로 결정됐다”며 “전국 각지에서 ‘아이를 원동중으로 보내고 싶다’는 문의전화가 계속 걸려오고 있다”고 밝혔다.

원동중의 기적이 진정한 결실을 거두려면 양산지역 내 고교 야구부가 창단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계속 고향에 남아 야구의 꿈을 키울 수 있다. 양산시야구협회는 “올 11월 창단을 목표로 양산 내 한 고교와 야구부 창단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그깟 공놀이’에 불과한 야구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 원동중 야구부 창단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허구연 해설위원은 “프로야구가 대도시에서만 경기가 펼쳐진다고 아마추어 야구까지 대도시에만 활성화돼선 안 된다”며 “울릉도에서도 아마추어 팀이 생겨야 야구가 진정한 국민스포츠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시즌 중에도 야구 인프라 확충과 아마추어 야구팀 창단을 전국을 뛰어다닐 예정이다.

원동중 야구부 창단을 직접적으로 지원한 박말태 양산시의원(새누리, 물금·원동)은 ‘친환경 농산물’을 통한 지역주민 소득 증대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박 의원과 함께 원동중 야구부 창단을 위해 고군분투한 최영호(새누리, 상·하북) 시의원도 지역 초교 학습환경 개선과 농수로 개선사업 등 ‘민생’에 올인하고 있다.

원동중 야구부 창단을 이끈 김주만 전 교장은 양산교육지원청 과장으로 승진했고, 이갑수 원동면 면장은 현재 양산시 농정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양산시 야구발전에 누구보다 헌신적이던 박치병 양산시야구협회장은 협회장에서 물러나 백의종군하고 있다. 

한때 아버지에게 지휘봉을 맡겼던 신민기 씨는 다시 원동중 감독으로 돌아왔다. 이번 대회에선 코치로 활약했다. 선수들은 신종세 감독을 '큰 감독'으로, 신민기 감독을 '작은 감독'으로 부른다.

2011년 3월 전교생이 25명으로 폐교 직전까지 몰렸던 원동중은 현재 51명으로 학생수가 늘었다.

2010년 3월 원동중 체육교사로 부임해 체육시간마다 아이들에게 야구규칙을 가르치고, 야구를 직접 경험하도록 배려했던 최윤현 교사는 여전히 원동중에서 교사로 근무 중이다.

지금도 원동중 아이들은 매화보다 하얀 야구공을 던지며 꿈을 키우고 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295&article_id=0000001038

Posted by 겟업
2013. 8. 9. 13:58

요즘 G20이 대한민국의 키워드가 아닌가 싶은데요. 쉽게 이야기해서 G20은 글로벌20을 뜻합니다. 지구상에는 240여개의 국가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상위 20개국이 모인다고 이해를 하시면 되겠습니다. 대한민국이 상위 20개 국가의 의장국으로서 회의를 주최하게 된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G20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선진국에 들어설 것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 기사의 의미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나라가 아직 선진국이 아니라는 점, 하나는 G20을 한다고 해서 바로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일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화두입니다. 먼저 외국에서는 우리나라를 어떻게 볼까요? 대체적으로 선진국이라 보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OECD 가입국이고요. 영국 FSB에서는 우리나라를 선진국 시장으로 편입 시켰습니다. IMF에서는 우리나라를 구체적으로 선진국에 분류 했습니다.

 

선진국은 ‘SELF’입니다. 즉 선진국은 스스로 정의 하는 것입니다. 추석 때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한국은 선진국입니까’였는데요. 30%만이 그렇다고 답을 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그렇지 않다는 70%에 대해서 ’한국은 OECD 가입국이고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었는데 그래도 선진국이 아닙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단 7%만이 그렇다고 답변을 했습니다. 한국 국민 대다수가 우리는 선진국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정치가 부패했다, 사회보장제도가 불안정하다, 고용체계가 불안하다, 승자독식사회이다, 교육체계가 어지럽다... 등등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정도로 다양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자기비하를 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학생에게는 0교시가 있고, 환자에게는 빚더미가 있고, 노동자중에는 비정규직이 많습니다. 농촌이 못사는 선진국은 없습니다. 공교육이 무너져서 학교에서 졸고, 학원에서 공부하는 선진국은 없습니다. ‘기러기아빠’라는 용어를 가진 선진국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어떻게 선진국을 지향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아직 멀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OECD 국가들의 행복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102위입니다. 삶의 만족도 역시 중간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복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선진국이 되면 더 좋은 것이죠. 그러나 선진국이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행복한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선진국을 꿈꾸는 것일까요? 한국 사람들은 미국을 좋아하죠. 미국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국과 괴리감이 있습니다. 인구가 3억인데 노숙자가 1% 입니다. 상위 1%가 미국 재산의 33%를 가지고 있고, 상위 10%가 전체 재산의 10%를 가지고 있습니다. 빈부 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입니다. 이라크 전쟁의 경우를 볼까요. 미국에서 이라크 전쟁 선포했을 때 유엔에서는 결의안을 내서 이라크 전쟁을 말렸습니다. 그러나 부시는 전쟁을 감행했습니다. 왜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했을까요? 기름이죠. 이라크에 기름이 없었다면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구온난화는 탄소를 많이 배출해서 일어납니다. 탄소 배출은 경제 성장에서 나오는 것이고 역사상 가장 많은 산소를 배출한 나라가 미국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교토의정서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교토의정서는 탄소배출을 줄이자고 약속하는 국제법입니다. 미국이 가입하지 않은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바로 미국 기업들의 이윤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선진국은 이런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스웨덴을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모델로 제시 합니다. 물론 유럽북부의 나라들은 좋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선진국으로 갈 길은 아직도 멀었습니다. 비정규직, 부정부패, 교육, 통일 등 문제가 너무나 많습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세’를 거두자고 해서 논란이 있었는데요. 통일의 문제는 재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과 북이 오랜 세월 떨어져 있는 동안 따로 이루어진 국가운영시스템, 이것을 어떻게 화합할 것인가가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자본주의를 없앨 순 없습니다. 자본주의를 이해한 후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은 자본주의를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체제”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말은 처음에 사회주의자가 쓰기 시작하여 점차 보급된 용어인데 자본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사족이 있습니다.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자본은 무엇이냐를 이해해야겠지요. 보통 자본은 어떤 사업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돈이나 자산을 생각하죠. 실제로 자본은 우회생산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이 손으로 물고기를 잡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물로 물고기를 잡을 것을 권유 합니다. 그물로 물고기를 잡으니까 훨씬 많은 양이 잡히게 되죠. 여기서 그물은 자본입니다. 생산재를 만들기 위해서 생산 하는 것이 자본입니다. 그 이유는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자본주의, 굉장히 좋은 것이죠. 그런데 왜 자본주의를 비난할까요. 문제는 분배에 있습니다. 그물을 이용해서 생산을 했는데 이렇게 증가한 생산성이 노동자에게 다시 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노동의 가치는 점점 줄어들고 자본의 가치는 점점 증가합니다. 자본의 힘이 더 커지면서 자본이 주인이 되는 상황으로 갑니다. 시장주의, 공리주의, 사회주의, 이런 개념들과 자본주의가 묶여서 이상한 시스템이 만들어 졌습니다.

 

‘시장주의’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효율적인 자본비율을 말합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생산을 획득하는 거죠. 끝없이 생산비용을 낮추는 경쟁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도태가 되면 생존이 위협당하죠.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죠. 껌 값도 못한 밥 값. 밥 한 공기에 천 원 인데 밥 먹고 마시는 커피가 삼천 원입니다. 그런데 천 원짜리 밥이 농민한테 가는 돈은 백 원이 안 됩니다. 커피 농가에게 가는 돈은 삼십 원입니다. 시장이 결정하는 값이 공정한가..., 이런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고등학교 다니실 때 ‘공리주의’ 라는 것을 배우셨을 겁니다. 보통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표현되죠. 편익과 손실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요. 가장 편리한 방법은 돈이죠. 편익을 돈으로 환산하고 손실을 돈으로 환산해서 손실보다 편익이 크면 공리주의가 이루어 졌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정리해고는 회사 경기가 나빠졌을 때 가장 손쉽게 하는 구조조정의 일환입니다. 왜냐하면 노동자에게는 힘이 없기 때문이죠. 공리주의 입장에서 보면 합당하죠. 그런데 정리해고 당하는 사람의 10%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합니다. 이것을 돈으로 따질 수 있을까요. 한미 FTA도 같은 맥락 입니다. FTA는 농업과 자동차를 바꾸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업이 당하는 희생보다 자동차 수익이 더 크기 때문에 FTA가 정당하다고 말합니다. 농업의 피해는 국가가 복지정책으로 보상을 해주겠다는 겁니다. 이것이 합당한가요?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팔아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시가총액이 미국에서 1위라고 합니다. 물론 스티브 잡스가 경영을 잘해서 번 돈입니다. 그러나 그 이익이 스티브 잡스만의 몫일까요. 아이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한테 정당하게 보상을 했을까요? 이러한 것을 잘 따져 봐야 합니다.

 

법치주의는 참 답답한 이야기입니다. 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건데요.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면 굉장히 좋은 것입니다.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있습니다. 자본을 위한 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클라렌스라는 미국의 대법관이 있습니다. 이분은 다국적 기업의 자본변호사였습니다. 딕 체니는 부시 밑에 있던 부통령인데, 역사상 가장 힘이 센 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라크전쟁의 주역입니다. 핼리 버튼이라는 군수회사의 회장을 역임했던 사람이죠. 마지막으로 헨리 폴슨은 미국의 재무장관입니다. 골드만삭스의 CEO를 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어떤 정책을 어떤 제도를 어떤 법을 만들고 추진을 했을까 하는 것은 따져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지요.

 

정글은 자본이 주인인 사회입니다. 정글은 승자독식사회, 부익부빈익빈, 고용 없는 성장을 필연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세계화라는 것이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나는 미국에서 일을 하고 싶은데 미국이 이민법으로 입국을 막습니다. 자본은 가장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서 돌아다닐 수 있지만, 노동력은 가장 좋은 자본을 찾아서 다닐 수 없습니다. 인터넷의 발전 역시 자본에게는 큰 수혜입니다. 여러분이 트위터에 ‘나 회사 그만 뒀어.’라고 올리면 당장 은행에서 대출이 막힙니다. 사채업자들로부터 수없이 문자가 옵니다.

 

자본주의의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인구가 60억 명인데 그 중 10억 명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잘사는 10억 명은 비만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는 소비의 20%에 해당하는 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길까요, 구매력이 없기 때문이죠. 빈곤성이라는 것은 1달러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애그플레이션 당시 우리는 자장면 값이 50% 올라 고통을 받았지만 10억 명은 생명을 위협받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고통 받습니다.

 

GMO를 볼까요. GMO는 멀쩡한 식물을 유전조작 해서 대량으로 키웁니다. GMO의 80%를 몬산토라는 회사가 맡고 있습니다. 고엽제를 만드는 회사 입니다. 이 고엽제를 더 잘 팔기 위해서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만들어 냈습니다. 광우병도 마찬가지죠. 소를 우리가 먹는 소고기로 만들면 내장 같은 여러 부산물들이 나오게 됩니다. 이것을 버리는데 굉장히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산물을 갈아 사료로 만든 뒤 다시 소한테 줬습니다. 광우병은 풀만 먹던 소가 동물 단백질을 먹으면서 생긴 병입니다. 왜 그랬을 까요. 경쟁 때문이죠.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가급적이면 버릴 것이 없어야 하고 밀집생산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자본주의의 그늘은 훨씬 더 깊습니다. 그 이유는 짧은 기간에 산업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1950년대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였습니다. 그런데 현재 국민소득은 19,262달러입니다. 물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성장을 하게 되면 성장통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화율을 볼까요. 우리는 일본, 미국 보다 도시화율이 높습니다. 그러다 보니 온갖 문제가 생기죠. 교통, 환경, 상하수도, 범죄, 쓰레기 등 너무나 많은 문제가 발생 했습니다. 성장에 가린 그늘은 굉장히 많습니다. 빈부격차, 교육문제, 비정규직 문제, 자살 등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가계소득은 2003년에서 2007년까지 참여정부 시대에 급격하게 벌어졌습니다. 진보정당과 반대되는 현 정부에서는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과거에는 대학졸업장만 있으면 취업을 했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취업이 쉽지 않습니다. 몇 곳의 인턴을 거쳐야 합니다. 그 인턴도 월급이 80만 원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소위 말하는 88만 원 세대죠.

 

도시, 농촌간의 소득격차를 볼까요. 농촌의 소득은 정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농산물의 판매가격과 구매가격의 차이를 교역지수 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교역지수는 1995년 이후 급격하게 떨어졌습니다. 1995년은 WTO가 출범한 해입니다. WTO는 농산물개방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죠. 미국과 유럽이 농산물 전쟁을 벌이다가 우리끼리 전쟁을 하지 말고 시장을 더 넓히자. 이렇게 시작한 것이 WTO의 시초인데요. 농업에 직격탄을 줬습니다.

 

교육을 볼까요. 사교육 참여율이 높을수록 소득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현 정부는 2010년에 사교육비가 줄었다고 자화자찬을 했습니다. 그것은 월 소득 100만 원 이하 가정의 교육비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월 소득 600만 원 이상 가구는 지속적으로 교육비가 상승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자살대국입니다. 특히 초, 중, 고 학생들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가정의 빈곤으로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자본주의는 국가의 핵심적인 경제체제입니다. 동물의 법칙이 작동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법칙이 작동하는 자본주의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저는 무엇보다 ‘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정의라고 하는 것을 무엇일까요.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읽어서 화제가 된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10주 연속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이 책은 정의에 대해 정의를 내리지 않고,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만 계속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의란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내리고 싶습니다.

 

논어에서는 정의를 ‘수오지심(羞惡之心)’이라고 봤습니다. 수오지심은 부끄러워하고 분노할 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집단적인 부정부패, 집단적인 인사문제, 이런 것에 분노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정의를 어떻게 실현해야 할까요. 최근 의미 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노벨 경제상을 받은 엘리너 오스트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이분의 업적은 <공유의 비극을 넘어> 라는 책입니다. 공기, 환경, 저수지 등 주인이 없는 재산, 공유지를 시장에 맡겨두면 약탈되고 사용되어서 재산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에도 맡겨보고 정부에도 맡겨봤지만 잘 안됐습니다. 오스트롬은 공유지를 공동체적 대안으로 지켜야 한다는 해법을 냈습니다.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다섯 명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국부론’을 만든 아담 스미스입니다. 경제학의 아버지죠. 자본주의가 태동했던 시기에 <국부론>이란 책을 써서 시장경제학을 정리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이 문제의 해결을 제시한 사람이 칼 막스입니다. 자본주의는 스스로 모순에 의해 멸망한다고 했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구원투수가 케인즈였습니다. 그는 정부가 개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다 석유파동이 일어나면서 밀턴 프리드먼이 자유주의로 돌아가자, 시장에 맡기자고 주장을 했습니다. 이후 2008년에 서브프라임을 막고 나서 새로운 경제 대안을 모색하게 되는데, 이때 나타난 사람이 엘리너 오스트롬입니다.

 

기업이라고 하는 것은 주인이 주주죠. 생산을 어떻게 할 것이냐, 수익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주주가 결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이윤을 극대화 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공동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면서 이윤을 통한 편익을 극대화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협동조합이 있습니다. 농협, 한살림 등이 있지요. 썬키스트 오렌지도 협동조합에서 만드는 것이고, FC 바로셀로나도 협동조합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농협은 작년에 1조 넘는 돈을 여러 형태로 환원했습니다. 주로 하는 일은 지역경제 활성화, 농업인의 실익 지원 등을 하고 있습니다. 한살림은 배추 한 포기가 12,000원 할 때 1,770원에 팔았습니다. 한살림으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죠.

 

사회적 기업이 필요합니다. 사회적 기업이란 빵을 팔기 위해 고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을 하기 위해 빵을 파는 기업을 말합니다. 자본주의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 자본주의 내에서 어떻게 하면, 함께 경쟁해서 영리를 추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주주의 이익만이 아니라 모두의 이익을 챙길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사회적 기업으로는 아름다운가게, 히말라야의 산, 탄소기금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현재 353개의 사회적 기업이 있습니다. 미국에는 사회적 기업이 150만 개가 있답니다. 영국에는 130만 개가 있습니다. 우리는 경우 2007년에 사회적 기업 육성법이 만들어져서 지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스템적 개편도 좋지만 시스템을 만드는 정치가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을 극복한 사람이죠. 대통령은 대공황을 겪으면서 미국 헌법을 복지국가로 수정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헌법을 개정하지 못하고 사망했습니다. 만약 루즈벨트의 수정헌법이 완성됐으면 미국은 훨씬 좋은 나라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과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에 룰라대통령은 2002년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현재 룰라 대통령은 두 번 연임을 끝내는 시점에 있죠. 여전히 국민들의 80%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룰라 대통령은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두 대통령은 진보대통령입니다. 성장과 분배를 같이 추진했는데 한 분은 실패하고 한 분은 성공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으로 남게 될까요. 처음에는 친기업 정부를 만든다고 했다가 최근에는 중도실용, 친서민 정권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변절했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정치적인 제스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과 상관없이 이명박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한 신문사에서 ‘10년 후에 당신의 신분이 상승할 것 같습니까?’ 라는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75%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희망의 상실을 이야기 합니다. 희망을 잃은 사람은 노력하지 않을 것이고 그 결말은 뻔합니다. 이 악순환의 메시지를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요. 결국은 국민이 중요합니다. 국민이 정치를, 정부를 만드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세무공무원을 마피아의 모습으로 풍자한 사진이 있습니다. 러시아가 개혁개방을 하면서 국민한테 세금을 거두었는데요. 그동안 한 번도 세금을 내지 않았던 국민들은 정부보다 마피아한테 기부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에 있어 혜택이 크다고 생각했답니다. 이것은 뭘 뜻할까요. 정부와 마피아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국민을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하는 정부는 마피아와 다를 게 없습니다. 정부는 국민의 권한을 잘 읽어야 합니다. 정부는 국가가 아닙니다. 정부는 국민의 일을 해주기 위해서, 봉사를 목적으로 권한을 부여한 곳일 뿐입니다. 요즘 NGO 비정부 기구가 성행하고 있는데, 정부가 일을 못한다는 것이죠.

부시가 이라크전쟁을 하자고 국회에 승인요청을 했을 때 국회는 찬성을 했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카터 대통령이 반대를 했습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대통령은 고민을 합니다.

국가의 이익이 걸려있기 때문이죠. 결국 국민이 정부의 역할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한 단체가 우리 국민의 핵심 사업으로 군수사업을 육성하겠다고 합니다. 정말 충격적입니다. 무기를 팔아서 경제를 키우겠다는 발상.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저는 세상은 상상과 긍정의 힘으로 움직인다고 생각 합니다. 좋은 선진국, 행복한 선진국을 상상하고 노력한다면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농촌이 잘 사는 나라를 희망합니다. 

Posted by 겟업
2013. 7. 20. 15:32

대장금이 세계 60개 국에 팔리고 약 3조 원의 경제효과를 냈다는 보도가 있었다. 아프리카의 짐바브웨 같은 나라는 방송에서 대장금 관련 퀴즈를 냈다가 국민의 3분의 1인 480만 명이 응모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 인기가 대단하다. 대장금은 이웃 일본에 아직도 인터넷 VOD서비스로 팔릴 정도로 인기가 여전하다.

드라마와 같은 문화상품의 인기는 단순히 드라마콘텐츠의 판매에 그치지 않고, 한국에 대한 인식과, 한국 문화, 한국 상품 등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해서, 궁극적으로 국가에 엄청난 경제외적 공헌을 한다. 문화가 곧 국방이고, 문화가 외교인 셈이다. 이웃 일본의 네티즌들은 한국에서는 욘사마 같은 훌륭한 배우를 일본에 보내는데, 일본에서는 AV 여배우의 벗은 몸을 한국에 보내는 수준이라고 탄식할 정도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자부심을 가질 만한 훌륭한 문화상품이 해외 방송물 판매 그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지나치게 엄격한 방송물의 간접광고 제한과 방송 후방 산업의 취약한 구조 때문이다.

유명한 영국스파이 영화 007은 영화가 한번 뜰 때마다 BMW 등 외국 고급차들의 인기를 함께 끌고 다닌다. 주인공이 멋진 고급차를 타고 나오며, 그 차에는 자동차회사 로고가 선명히 박혀 있다. 그러나, 대장금을 비롯, 겨울연가, 사랑이 뭐길래 등 수많은 한류 인기 작품들은 우리나라 상품과 우리나라 관광자원을 제대로 소개할 수가 없다. 이미 만들 때부터 간접광고 규제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와 같은 간접광고 규제 때문에 결국 제작사들도 세계시장을 목표로 하는 마케팅보다는 제작비에 맞춘 제작자체에만 신경을 쓰게 되고, 인터넷과 케이블TV 등은 콘텐츠의 다양한 메타정보의 활성화를 통한 2차 부가가치창출 보다는 단순 유통에 머무르게 되었다.

만일, 겨울연가의 욘사마가 드라마에서 늘 즐겨타던 멋진 자동차가 있었고, 이를 인터넷에서 장면별로 다양하게 해설해 놓은 정보가 있었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졌을까? 뒤늦게 현대자동차가 배용준을 모델로 일본 시장 진출을 시도했지만, 드라마와 직접 연관이 없는 광고는 그만큼 힘든 마케팅 노력을 요구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모호한 규제는 TV가 남녀노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공적 성격의 보편적 매체라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지상파 방송은 케이블을 통해 전달되어 이미 지상파가 아닌 상황이 된 지 오래다. 아니면 방송 자체는 규제의 틀을 유지하더라도, 방송이후의 유통과 재생 등 후방시장에서라도 상품화를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드라마가 끝나자 마자 주인공의 패션과 액세서리 등을 묻는 문답이 게시판에 쏟아진다. 해외에서도 그런 궁금증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런 상품에 대한 소개와 구매를 제대로 알려주는 통로는 없다. 촬영장소, 배경음악, 각종 소품과 가구 등에 대한 DB도 쌓이지 못하고 있다. 

과감한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임문영 iMBC 미디어센터장

Posted by 겟업
2013. 7. 20. 14:41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 구글은 10의 백승을 뜻하는 구골(Googol)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이크로는 100만분의 1을 의미한다. 둘 다 인간의 지각으로 쉽게 인지하기 어려운 극한 개념들이다. 무한히 크거나 무한히 작은 개념을 회사명으로 정한 두 기업이 세계 인터넷을 이끌어 가는 주역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IT 기술은 우리 인간에게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 매우 크거나, 매우 작은 것들이 과학발전과 함께 우리 눈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나노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 광년의 우주를 내다 본다. 만물의 척도는 인간이라고 했지만, 그 인간의 인지능력은 극대로 향상되어, 이제 스스로의 척도를 계속 바꿔나가고 있다. 인간이 확대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급기야 앉아서 전 지구를 돌려 보기도 하고, 순식간에 전세계의 포인트와 커뮤니케이션 한다. 과거의 이소룡이 TV에 나와 광고를 하며 현재의 배우들과 경쟁하고 있다.

이미 IT 기술은 첨단 기술집약 분야인, 군사부문, 의료부문을 포함, 정치, 경제, 문화 영역 어느 하나 빠질 것 없이 침투해 들어가고 있다. 우리 손으로 가장 빠른 기차를 만들고, 우리 손으로 우주선을 쏘아 보낼 수 있는 역량이 갖춰지고 있다. 우리가 IT의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볼 줄 알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군사력을 가진 나라가 될 수도 있다. 세계 최고의 의료기술을 통해 엄청난 부와 수익을 만들 수도 있다.

IT는 기존의 어떤 산업과도 다른 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지능이기 때문이다. 지능이 결합되면 똑똑한 무기, 똑똑한 의료기술, 똑똑한 농업이 된다. 한마디로 모든 보이는 구경제가 보이지 않는 신경제 지식의 힘으로 똑똑해지는 것이다. 지식은 스스로를 업그레이드 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집약될 수록 더욱 더 빠른 속도로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는 가속도도 높아진다. 지식과 정보가 미래의 핵심인 이유가 바로 그것에 있다. 결국 IT산업은 단순히 포털 같은 회사나 UCC같은 눈에 보이는 콘텐츠, 하드웨어 산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지식산업이며 동시에 정보산업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식과 정보는 꾸준히 업그레이드 되고 집약되면서 스스로의 자기 진화를 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인류가 박테리아로부터 진화해오듯이 스스로 자기복제를 해나가면서, 수많은 잡종과 변종의 실험을 통해서 선택되어지고, 살아남는 것과 유사하다. 산소와 물이 생명을 키웠듯이 지식의 세계에서 그것은 자유롭고 공개된 토론과 창의적인 도전과 실험이 자양분이다. 명령으로 창의성이 만들어지거나, 기계로 지식을 업그레이드 할 수는 없다.

옛날 쎙 떽쥐뻬리는 ‘어린왕자’에서 한가지 현명한 답을 말해주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자유로운 토론을 보장하고, 일탈에 가까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만들어낼 줄 아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사회가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임문영 iMBC 미디어센터장

Posted by 겟업
2013. 7. 19. 13:25



세계문화전쟁

저자
강준만 지음
출판사
인물과사상사 | 2010-09-03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질문과 답으로 살펴보는 세계 문화전쟁의 10년!세계적으로 벌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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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문화전쟁’이 없는 세상은 가능한가? 

[1장] 왜 미국 대중문화는 세계를 휩쓰나?: 미국 대중문화 패권의 6대 요인 
마크 트웨인과 미국의 패권 | 폴 케네디의 ‘미국 쇠망론’ | 나이·토플러·브레진스키의 반론 | 할리우드 제국주의의 기원 | 세계를 강타한 ‘아바타 신드롬’ | 세계 제1의 ‘규모의 경제’ | ‘규모의 경제’에 대한 반론 | 강력한 국가적 지원 | 각 부문 간 시너지 효과 | 프런티어·이민문화의 장점 | 철두철미한 상업화 | “영어가 미국의 몰락을 막는다” 

[2장] 왜 ‘MTV’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상징인가?: 전 세계적인 ‘MTV 세대’의 등장 
‘포스트모던 TV’ | ‘연예오락과 광고의 경계 소멸’ | MTV의 판촉전략 | MTV가 맹활약한 1992년 미국 대선 |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재닛 잭슨 | 세계의 ‘MTV 세대’ | “좌파는 MTV를 배우라!” 

[3장] 왜 ‘미드 열풍’이 부는가?: ‘뉴욕 라이프스타일 배우기’ 강좌가 개설되는 나라 
‘미드에 푹 빠진 사회’ | 미드가 패션·식사에 미친 영향 | ‘칙릿 열풍’ | 된장녀 신드롬 | ‘소비주의 시대 여성 노동자를 위한 판타지’ | ‘뉴욕 라이프스타일 배우기’와 ‘와인 열풍’ | 국내 드라마의 표준이 된 ‘미드’ | <섹스 앤드 더 시티> 신드롬 | ‘미드 열풍’의 이면 

[4장] 왜 스티브 잡스는 ‘교주’가 됐나?: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종교적 성격 
‘잡스 교도’와 ‘아이폰빠’ | ‘감정 자본주의’와 ‘치료 내러티브’ | 잡스의 농후한 종교성 | 잡스는 ‘얼음 교주’ | ‘스티브! 스티브! 스티브!’ | 잡스의 포교방식 | 성공과 치료 | 안테나게이트 

[5장] ‘구글리제이션’은 축복인가?: 구글이 선도하는 인터넷 정보제국 
“나는 검색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인기 검색어’가 여론?” | 프라이버시의 실종 | “검색했다고 용의자냐” | 전 세계 검색 시장의 약 60~70퍼센트 점유 | ‘애드센스’를 어떻게 볼 것인가? | 구글은 “거대한 광고대리점” | 지메일, 무엇이 문제인가? | 지메일의 한국 상륙 | “구글, 인터넷 정보제국 ‘전 지구 확장’” | “‘사악한 손’과 손잡은 구글” | “구글은 신문의 피 빨아먹는 흡혈귀” 

[6장] 위키피디아의 명암은 무엇인가?: 위키피디아의 ‘미국중심주의’와 ‘대중지성’ 논쟁 
브리태니커의 비극 | 위키노믹스의 등장 | ‘크라우드소싱의 한계’인가? | 위키피디아의 ‘미국중심주의’ | 대중지성 논쟁 | ‘대중의 지혜’ 논쟁 | 대중의 지혜가 지도자보다 안전하다 | 포지티브 캠페인도 필요하다 

[7장] 왜 SNS 경쟁이 치열한가?: 인맥사회의 사회자본 축적 열풍 
‘SNS를 이용한 비즈니스 혁신의 가능성’ | “5000명을 목표로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 | 왜 싸이월드는 퇴조했는가? | ‘디지털 시크’와 ‘디지털 부머’ | “공중 매체의 전파력은 한계에 달했다” | 한국의 입소문 파워는 세계 최고 | “세계 어디에도 이런 집중성은 없다” | 구글을 제친 페이스북 | 스마트폰과 트위터 | ‘소셜 미디어’의 출현 | 기존 언론의 딜레마 | SNS의 부작용·역기능 | ‘TGiF 시대’를 어찌 거부하랴! 

[8장] 왜 CNN이 세계뉴스전쟁을 일으키나?: 글로벌 ‘이미지전쟁’의 정치학 
“당신이 바로 제3의 물결” | 중남미의 ‘텔레수르’ | 프랑스판 CNN ‘프랑스 24’ | 이란·아프리카·중국의 뉴스전쟁 | ‘알자지라’ 대 ‘알아라비아’의 뉴스전쟁 | 중국의 ‘안티 CNN’ 운동 | 미국 ‘알후라’의 실패 | 중국·프랑스·일본의 ‘뉴스전쟁’ | 알자지라와 텔레수르의 활약 | 한국의 해외 방송 | “글로벌미디어전쟁, 총알 없이 전쟁에 나서며” | ‘아랍세계에서 한국 방송 보기’ | ‘아리랑TV 통폐합이냐, 존속이냐’ | 아리랑TV ‘188개국 5750만 가구가 시청’ 

[9장] 인터넷은 신민족주의의 주범인가?: 인터넷 ‘집단극화’의 정치학 
‘집단극화’ 이론 | ‘지구촌 혹은 사이버 발칸?’ | 한·중·일 신민족주의 갈등 | ‘민족주의 코드’는 정치적 자산 | 베네딕트 앤더슨의 ‘돌연변이 민족주의’론 | “한국놈은 일본놈보다 더 나쁘다”? | 동아시아의 ‘넷셔널리즘’ | ‘인터넷이 세계를 분열시킨다’ | 한·중·일 인터넷 세대의 생각 | ‘사이버전쟁 위협, 1950년대 핵 공포 수준’ 

[10장] 왜 ‘국가 브랜드’ 경쟁이 치열한가?: 국가 홍보 전략으로서의 문화전쟁 
‘국가 경쟁력’ 개념에 실체가 있는가? | “10억 원에 10년 감옥도 가겠다”는 중고생들 | 코리아를 괴롭힌 ‘코리아 디스카운트’ | ‘코리아 디스카운트’ 논쟁 | “주가 올라도 국민은 행복해지지 않았다” | ‘다이내믹 코리아’ | ‘문제는 문화야, 이 바보야’ | ‘코리아 브랜드’ 가치 세계 32위 | “한국 하면 생각나는 것은? 분단국, 김치, 삼성 순” | 국가브랜드위원회의 출범 | “안에서 새는 쪽박은 밖에서도 샌다” 

[11장] 문화다양성은 가능한가?: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의 정치학 
유네스코 다양성 갈등의 역사 | 2000년대의 문화다양성 보호 시도 | 한국은 ‘문화다양성협약’이 싫다? | 비준을 거부한 한국 정부 | 세계화의 ‘다양성 죽이기’ | “생각은 세계적으로, 행동은 국지적으로” 

[12장] 한류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류 14년의 전개 과정 일지 
중국에서부터 시작된 한류 | ‘한류 뒤집어 보기’ | 조한혜정의 선구적 연구 | 일본의 ‘욘사마 신드롬’ | ‘현실 감각’과 ‘판타지’의 조화 | 백원담의 세계체제론적 분석 | ‘일본은 한국에 미쳤다’ | “한국적 정, 일본인에 크게 어필” | ‘한·일 아줌마의 취향’ 차이 | ‘욘사마 경영학’ | 김지하의 한류 예찬론 | ‘근대화 중간 단계’의 힘인가? | “한류, 이대로 가면 5년 안에 끝난다” | “한국 사람들이 좀 다르잖아요” | 한미자유무역협정과 한류의 실속 | ‘이영애가 이란에 못 가는 이유’ | ‘외국문화 원형에 빨대 꽂고 버틸 수 있나’ | 한류(韓流)가 한류(寒流)로? | ‘한류에서 신(新)한류로’ | “한류는 미국문화의 대항담론 될 수 있다” | <대장금>이 ‘최악의 드라마’ 1위? | 왜 중국 여자는 장동건, 일본 여자는 배용준에 죽나? | ‘원 소스 멀티 유스’ 전략 | ‘스타의, 스타에 의한, 스타를 위한’ 한류 | 기획사·여행사의 ‘악덕 상혼’? | ‘일류’에 사로잡힌 한국의 젊은이 | ‘21세기 동아시아의 대중문화 형성’ | ‘핵심 문화 콘텐츠 집중육성’ 논쟁 | “한류는 2.0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 한류의 다변화와 성숙인가? | 한국은 ‘오락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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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17. 17:35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저자
한국문화인류학회 지음
출판사
일조각 | 2006-08-25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는 문화인류학 여행 다양한 문화의 현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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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저자
한국문화인류학회 지음
출판사
일조각 | 2007-02-28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2010년대를 바라보는 문화인류학 입문서로서 '정격 교과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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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3. 7. 15. 15:17


초임 연봉 차가 우정마저 갈랐다 

대-중기 신입 연봉격차 1205만원으로 더 벌어져

대기업 평균 3459만원·중소기업은 2254만원 
공기업도 800만원↓…2009년이후 줄곧 확대
“정부서 중소기업 복지 등 특단 조처 취해야”


#1. 경기도 안산의 기계부품업체 김아무개(40) 사장은 신입사원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사장이 생각하기에는 연봉이 낮은 편도 아니다. 4년제 대졸 신입사원에게 연봉 2500만원을 주고 있다. 그는 “다른 업체에 비해 연봉이 높은 편인데도 지원자가 없다”며 “어려운 형편에도 연봉을 올릴까 고민중이지만, 대기업과 연봉 차가 커 지원자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2. 서울 봉천동에 있는 중소기업의 입사 3년차인 서아무개(28)씨는 최근 대학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다. 그는 서울 소재 사립대학을 나왔다. 2010년 대학 졸업 뒤에도 만나던 사이지만, 만날수록 자신이 초라해져 요즘은 만나지 않는다. 서씨는 “처음에는 1000만원 정도 나던 연봉 차이가 최근에는 더 커졌다”며 “첫출발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들과 만나기가 꺼려진다”고 말했다.

올해 4년제 대학을 나온 대기업 신입사원의 평균연봉은 3459만원으로 조사됐다. 반면, 중소기업은 2254만원으로 1205만원의 격차를 보였다. 취업포탈 잡코리아는 대기업 180개와 중소기업 406개를 대상으로 4년제 대졸 신입사원의 평균 연봉을 조사해보니 이런 결과를 보였다고 9일 밝혔다.

대·중소기업간 연봉 차이가 계속 커지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2009년 1120만원이던 차이가 2012년에는 1205만원으로 커졌다. 이에 대해 잡코리아 관계자는 “치열한 취업 경쟁 속에서 대기업은 뛰어난 인재를 영입하려고 연봉·인센티브 등을 매년 향상시키는 반면, 중소기업은 아직 인재 확보에 대한 투자가 부족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사실 대·중소기업의 격차는 2008년이 최고조였다. 당시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중소기업은 임금 삭감을, 대기업은 임금 동결 또는 소폭 인상을 하면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중소기업 평균연봉은 전년(1973만원)보다 10% 이상 줄어든 1733만원인 반면, 대기업은 전년(2985만원)에서 조금 오른 3093만원으로 1360만원의 격차를 보였다. 이후 중소기업이 연봉 수준을 환원하거나 높여 2010년 평균연봉 2000만원대에 진입했지만, 여전히 2000만원대 초반 수준이다. 반면, 대기업 신입 평균연봉은 2008년 3000만원을 넘어선 뒤 올해는 3000만원 중반대에 이르는 등 높은 오름세를 보였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연구원 관계자는 “정부에서 중소기업의 채용 장려금으로 첫해에 500만~600만원을 지원하지만, 임금 상승이나 복지를 늘리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며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단가나 물량을 제대로 확보해주지 않는 상황에서는 대·중소기업간 임금 격차가 해마다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중소기업을 위해 교육훈련 등 자기계발 기회나 복지를 제공하는 등 특단의 조처가 있지 않고서는 격차를 줄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아울러 대기업과 공기업, 외국계 기업과의 격차도 해마다 커지는 양상이다. 사실 공기업은 이명박 정부 이전까지 큰 차이가 없었다. 2006년의 경우, 공기업 신입 평균연봉이 2812만원으로 대기업(2815만원)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2008년 정부가 ‘일자리 나누기’의 일환으로 공공기관·공기업 신입사원 초봉을 삭감하면서 격차가 벌어졌다. 이에 따라 격차가 2009년 542만원으로 커진 데 이어 올해는 800만원까지 벌어졌다. 외국계 기업 역시 매년 격차가 커져, 올해는 평균연봉이 2940만원으로 대기업보다 평균 519만원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대기업 중에서도 업종과 기업에 따라 연봉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신입사원 초임이 약 5000만원에 이르는 반면, 2000만원 후반대의 연봉을 주는 대기업도 있다. 주로 에스케이건설, 현대삼호중공업, 엘아이지손해보험, 현대해상화재보험 등 건설·금융업종의 연봉이 높았고, 롯데알미늄, 한진, 아워홈 등 유통·물류 쪽 업종의 연봉이 낮았다.

이정훈 기자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32128.html



Posted by 겟업
2013. 4. 10. 11:24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41%로 떨어졌다. 가뜩이나 하향 추세선(趨勢線)을 돌려 세울 호재가 없는데 17초 대독사과 파문이 덮쳤다. 어제 도하 각 언론은 일제히 청와대의 어설픈 사과를 질타했다. 인사실패하고 그에 대한 대국민 사과까지 실패했다. 이렇게 되면 40% 저지선도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이 겪어보지 못한 국정동력 상실의 위기에 처해 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이맘때 국정 지지도가 90%까지 치솟았다. 30여 년에 걸친 군사정권 종식 후 첫 문민대통령에 대한 기대도 컸지만 YS 특유의 결단력에 의한 과감한 개혁조치들에 국민들이 열광한 결과였다. 청와대 근처 안가(安家) 철거도 YS 취임 초 박수를 받은 개혁조치 가운데 하나였다. 최고권력자의 음습한 밀실정치나 향락에 이용되는 것으로 알려진 안가를 허물어 공원으로 만들었으니 국민들이 박수를 치는 것은 당연했다.

임기 초반 그렇게 잘 나가던 YS가 나라를 6ㆍ25 이후 최대 국난이라는 IMF외환위기 사태에 빠뜨린 최악의 대통령으로 전락한 것은 본인이나 국민 모두에게 비극이었다. YS의 대추락을 초래한 요인은 여럿이지만 안가 철거도 주요 요인의 하나로 꼽힌다. 국민들의 큰 박수를 받았던 안가 철거가 YS 실패의 주 요인이라니 처음엔 무슨 소린가 싶었다. 하지만 설명을 듣고 보니 전혀 틀린 얘기가 아니다.

과거 청와대가 운영했던 안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후의 만찬이 된 ‘궁정동 사건’ 탓에 일반국민에겐 안 좋은 이미지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통령이 저녁시간에 편하게 측근이나 지인들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민심을 듣는 장소이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들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인사들은 청와대 집무실이나 관저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는 직언을 하기가 좀처럼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 속성이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청와대 저녁행사는 대부분 오후 9시 전후에 끝난다. 청와대 관저의 밤은 얼마 전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표현대로 ‘귀곡산장(鬼谷山莊)’급의 적막강산이다. YS는 청와대 저녁행사 이후나 저녁행사가 없는 날은 차남 김현철씨 가족을 관저로 불러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주요 국정현안에 대해 현철씨 의견을 듣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그에게 국정운영을 의존하게 됐고, 급기야 현철씨의 국정농단을 불러 몰락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YS가 안가를 철거하지 않고 과거 정치동지나 지인들과 만나 술도 한 잔 하면서 격의 없이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민심을 듣는 장소로 활용했다면? 차남에게 국정운영을 의존하는 일이 줄었을 테고 문민정부의 말로가 그토록 참담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취임 초 바닥 없는 국정지지도 추락 사태에 직면한 박 대통령에게 안가가 필요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하는 안가는 그에게 또 하나의 트라우마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박 대통령에겐 안가의 순기능이었던 격의 없는 소통의 자리가 꼭 필요하다. 

박 대통령은 취임식 날만 빼고 지금까지 거의 모든 저녁식사를 혼자 해왔다고 한다. 적막강산의 청와대 관저의 외로움, 비명에 가신 아버지 어머니를 더욱 생각나게 하는 관저의 저녁은 박 대통령에게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길을 굴하지 않고 가게 하는 자세를 한층 다잡는 시간이기 쉽다. 그런 저녁시간이 계속되면 인사실패 등 박근혜 정부 출범 전후 모든 사달의 근원인 소통부재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다.

박 대통령에겐 지금 자신의 뜻과 다른 목소리를 원천 차단하는 ‘레이저 시선’을 끄고 편하게 소통하는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 불통의 상징이 되어버린 과거의‘수첩’을 내려놓고 시중의 생생한 목소리와 민심을 듣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함께 가는 넓은 길을 놔두고 혼자 외롭게 가는 길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4/h20130401210723113110.htm



Posted by 겟업
2013. 4. 10. 11:22

2월 말 키프로스에 다녀왔다. 요즘 전 세계를 긴장케 하는 은행 연쇄파산과 국가부도 위기가 표면으로 드러나기 직전이다. 중국인의 키프로스 부동산 투자를 취재하기 위한 출장이었다(중앙SUNDAY 3월 3일자).

그때 본 키프로스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지상낙원이었다. 거리에는 야자수와 레몬 나무가 즐비했고, 해안도로변의 코발트 빛 지중해는 그림 같았다.

지난해 기준의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보다 5000달러가량 많은 2만8000달러(약 3100만원). 농사와 관광 말고는 이렇다 할 산업이 없는 곳인데 생활 수준은 꽤 높았다. 제주도 면적 다섯 배 크기의 섬에 제주도 인구 두 배 정도가 살고 있으니 북적거림도 없었다. 주민들은 친절하고 여유가 있었다. 왜 유럽의 은퇴자들이 몰려드는지 단박에 이해가 됐다.

풍요의 비결은 외국 돈이었다. 해안의 고급 빌라들은 대개 외국인 소유였다. 러시아·영국 부자의 별장이 많았다. “한국의 변호사 미스터 킴이 몇 년 전에 산 빌라”라며 부동산 업자가 외관을 구경시켜 준 곳도 있었다. 최근의 사태로 널리 알려졌듯 키프로스 은행 예금의 절반 이상은 외국계 자본이다. 대부분 러시아 사업가들이 거래 편의나 재산 보호를 위해 예치한 돈이거나 유럽 은퇴자들이 들고 온 노후자금이다. 유럽연합(EU) 소속에 유로화를 쓰는 나라면서 세율은 낮다는, 외국 돈이 몰려들기에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프랑스 이민자는 “프랑스에서는 연금의 40%가 세금으로 날아가지만 여기서는 5% 정도만 세금으로 내면 된다”고 말했다.

부러웠다. “한국에도 외국 돈이 쏟아져 들어오면 금세 국민소득 3만~4만 달러의 나라가 될 텐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마침 한국에 중국계 자본이 대거 유입되고 있다는 소식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발상의 위험성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주 뒤 키프로스 경제는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외국 돈으로 비대해진 금융·부동산 산업이 그리스발 위기에 전염되면서 구제금융에 의존해야 하는 상태가 됐다.

노무현 정부 말기 한국을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구상이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 인수위에 해외 자본 유치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영국 금융인을 위원장에 앉히기도 했다. 곧바로 불어닥친 미국발 금융위기로 금융 허브의 꿈이 좌절된 것을 한국의 행운으로 보는 경제인들도 있다. 2년만 늦게 금융위기가 발발했다면 ‘제2의 IMF 사태’를 겪었을지 모른다는 얘기다.

외국 돈이 몰려든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외부의 위기에 취약해진다. 키프로스에 앞서 아이슬란드·아일랜드·스페인이 약한 산업적 기반 위에 비대한 금융업을 올려놓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생생히 보여줬다. 역시 일해서 번 돈이 제일 값지고 든든하다.


이상언 런던 특파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1105990&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4. 10. 11:03

2006년 가을 미국 NBC 방송 프로그램 '약탈자 붙잡기' 팀과 성범죄 감시 단체가 공동으로 작전을 짰다. 인터넷에서 미성년자를 꾀는 어른들을 잡아내려면 기습 작전이 필요했다. 방송팀은 텍사스주 머피에 있는 부자 동네에 집을 빌린 뒤 몰래 카메라를 숨겼다. 얼굴이 앳된 여배우 몇 명은 미성년자로 가장했다. 유혹에 걸려든 사내가 집 안까지 따라오자 배우는 욕실에 간다며 사라졌다. 그 자리에 방송 사회자가 나타나 사내를 다그쳤다. 

▶집 밖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은 이 리얼리티 쇼를 통해 24명을 체포했다. 은퇴한 의사, 출장 온 기업인, 학교 교사, 제대 군인 같은 멀쩡한 남자들이 걸려들었다. 20년 넘게 일해온 지방 검사도 끼어 있었다. 검사는 집까지 따라오진 않았지만 채팅방에서 열세 살 소년이라고 믿었던 상대와 음란 대화를 나누다 들켰다. 경찰과 카메라맨이 검사 집으로 들이닥쳤다. 현관에 서 있던 검사는 "나는 누구도 해칠 생각이 없다"면서 머리에 총을 쏴 목숨을 끊었다. 

▶'유도(誘導) 수사'는 범죄를 저지를 뜻을 가진 사람에게 '행동의 방아쇠'를 당기게 해 현장에서 붙잡는 수사 기법이다. 범의(犯意)가 없는 사람까지 끌어들여 죄를 묻는 함정 수사와는 다르다. 최근 유도 수사는 쓰임새가 넓어졌다. 차 도둑을 잡을 때는 잠금장치를 헐렁하게 만든 뒤 차에 위치 추적기를 달아놓는다. 이 차는 '꿀 바른 덫'이다. '꿀 묻힌 컴퓨터'로 불법 해커도 잡고, '꿀 바른 사제 폭탄'으로 테러 용의자를 뒤쫓는다. 


▶여성가족부가 아동·청소년 성매매를 단속하는 유도 수사를 법으로 허용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대통령 업무 보고 자리에서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을 고치겠다고 했다. 경찰이 자신을 청소년으로 꾸미고 인터넷 채팅을 하다가 섹스를 사겠다고 꾀는 어른을 붙잡겠다는 것이다. 위장 경찰이 먼저 성 거래를 제안하면 법에 어긋난 함정 수사다. 유도 수사는 법원 판례로 일부 인정됐지만 지금껏 법 규정이 없었다. 

▶아이를 성매매 대상으로 삼는 못된 어른을 잡으려면 유도 수사보다 더한 조치가 필요할지 모른다. 영국은 유도 수사를 허용하지만 스웨덴·네덜란드에서는 불법이다. '약탈자 붙잡기' 프로도 '행동의 방아쇠를 당길 기회가 없었다면 죄를 짓지 않았을 사람'까지 옭아맸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아담과 이브가 먹지 말라던 과일을 따 먹을 때부터 인간은 유혹에 약한 존재다. 범죄인 몇 명 더 잡으려고 무고한 시민들까지 덫에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31/20130331014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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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10. 10:54

세계 초강대국 미국은 범죄에서도 대국이다. 미국의 엄청난 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데는 범죄 요인이 상당히 크다. 역설적인 것은 범죄의 상당 부분이 미국을 상징하는 다양성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백인의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고착화한 지 오래여서 이제는 더 나빠지지 않게 하면 다행일 정도가 됐다. 전세계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광범위하게 자행되는 나라가 미국일 것이다. 

미국의 치안이 어느 정도인지는 쉽게 체감할 수 있다. 미국 사람은 밤 9시 이후에는 웬만하면 밖에 나가지 않는다. 도심 밤거리를 혼자 걸어 다니는 사람은 잠재적 범죄자이거나 이런 사실을 모르는 이방인일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 한국동포에 대한 약탈로 기억되는 1992년 로드니 킹 흑인폭동은 미국 경찰에게는 범죄 수사를 수십 년 퇴보시킨 치욕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 정지 명령을 무시하고 도망치던 흑인 킹을 붙잡아 경찰봉 등으로 무차별 폭행한 백인 경찰들은 과잉진압 혐의로 기소됐지만 사건 발생 1년여 만에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무죄 결정을 내린 12명의 배심원 중에 백인은 10명, 히스패닉과 아시아계가 각 1명이었고, 흑인은 한 명도 없었다. 

불공정한 재판의 대가는 혹독했다. 흑인들의 유혈폭동으로 로스앤젤레스는 불길에 휩싸인 무법천지로 변했다. 54명이 사망하고 수 천명이 다쳤다. 재산피해는 10억 달러에 달했다. 오죽했으면 LA 경찰에 사람을 해치지 않으면 단순 약탈자는 건드리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졌을까. 어찌 보면 미국 경찰의 업보일 수도 있다. 필요 이상의 과잉 대응으로 흑인 용의자를 사살하고, 검거율을 높이기 위해 죄 없는 흑인을 범죄자로 모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으니 말이다. 괴물을 잡으려다 스스로 괴물이 된다는 말은 미국 경찰들 사이에서 푸념조로 유행하는 말이다. 

흑인폭동 사건 이후로 과거 같았으면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로 인정됐을 것들이 법원에서 기각되는 사례가 많아졌다. 인종적 편견이 수사과정에 개입됐을지 모를 가능성 때문이다. 소수 인종들의 험악한 사회적 분위기도 작용했을 것이다. 민권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수사와 재판이 킹 사건 이후 확연히 달라졌다고 해서 'BK(Before King)'라는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지만 그에 맞춰 미국의 거리가 범죄에 더 취약하게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로드니 킹 사건이 극적으로 미국의 범죄수사에 영향을 미친 것은 2년 뒤 발생한 O J 심슨 사건이었다.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린 미국 흑인 미식축구의 영웅 심슨은 94년 백인 부인과 부인의 백인 남자친구를 무참히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결국 무죄로 풀려났다. 심슨의 집에서 부인의 피가 묻은 장갑이 나오고, 심슨과 부인의 혈흔이 발견되는 등 결정적 증거가 제시됐지만 심슨은 웃으며 법정을 나왔다. 이유는 하나, 심슨은 흑인이고 그를 체포한 경찰은 백인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변호인단은 LA 백인 경찰 마크 퍼먼이 심슨을 체포하면서 'nigger(검둥이)'라고 한 것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백인 경찰의 신뢰를 깎아 내리려는 이 전략은 대성공을 거둬 여러 증거물들은 경찰이 심슨을 옭아매려고 사전에 심어둔 것으로 치부됐다. 배심원단은 로드니 킹 사건 때와 정반대로 흑인이 무려 9명, 백인은 3명 뿐이었다. 로드니 킹 사건이 없었다면 심슨은 풀려났을까. 또 지금처럼 범죄자가 피부색을 앞세워 법을 비웃으며 거리를 활보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미국 얘기를 장황하게 한 것은 한국도 범죄의 양태가 '고도화'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얼마 전 한국의 살인범죄 발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 중 9번째로 높았고, 성폭력 등은 OECD 평균보다 최대 200% 높았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가 나왔다. 지난해 말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한국인 대다수가 사회ㆍ경제적 지위에 따라 법집행이 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범죄를 줄이는 길은 공권력의 신뢰에서 나온다는 것을 미국의 사례에서 배웠으면 한다.



황유석 국제부 부장대우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3/h20130328212808244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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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10. 10:36

'피자가 중국에서 통할까?'최근 7년 만에 상하이를 다시 찾았다. '기름 뺀' 한국식 피자 브랜드 '미스터 피자'의 상하이 1호점 개설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산해진미가 넘치고, 기름기 음식에 익숙한 중국 소비자들에게 담백한 한국식 피자가 어필할 지 궁금했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최대 번화가인 푸저우(福州路)로에 오픈한 미스터 피자 상하이 1호점은 첫날부터 젊은 고객들로 붐볐다. 미스터 피자 정우현 회장은 "소비시장이 커지고 고급화하면서 담백한 한국식 피자가 먹히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상하이 광저우 등 대도시와 주변 도시, 신도시에 점포를 계속 개설해 5년 안에 1,000개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상하이에서 조우한 김기재 전 행정자치부 장관도 같은 말을 했다.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2000년대 초반부터베이징대에서 중국을 연구해 온 그는 한중발전촉진협회(양국 전직 고위 관료 모임) 회장직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중국 정부가 향후 10년 경제성장의 새 엔진으로 추진 중인 '도시화'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6년 이후 7년만에 다시 방문한 상하이에서 중국이 지난 30년간 10% 내외의 고속성장을 이끈 제조업 및 수출 드라이브 패러다임을 바꿔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 시진핑ㆍ리커창 투톱 체제가 이끄는 새 정부는 도시화를 내수 확대와 지속적인 성장의 견인차로 삼고 있다. 2020년까지 연 평균 7.5%의 성장을 지속하면서 수출 중심에서 내수 위주로 경제체제를 바꾼다는 계획이다. 그 한가운데 도시화 정책이 있다. 사회 불안 요인인 도시ㆍ농촌간 소득 격차 해소를 위해 현재 52%대인 도시화율을 매년 1%씩 높여 60%대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사실 지난 30년간 중국 경제발전의 공신은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농민공이었다. 1960~70년대 우리의 저임금 산업역군에 해당한다고 할까. 하지만 농민공은 계획경제 시절 마련된 호구제도로 인해 도시에 살면서도호적은 농촌으로 돼 있어 도시민 대우를 받지 못해 각종 복지 혜택에서 소외돼 있다. 또 높은 부동산 가격에 치여 변변한 주거조차 없이 지내고 있다. 이들이 무려 2억 6,000만 명에 달한다. 

도시화의 주요 포인트는 호구제도를 개선해 이들을 정상적인 도시민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들이 도시민이 되면 교육 의료 주거 등 공공서비스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 만큼 소득이 높아지면 소비 증가로 이어져 내수 확대에 기여하게 된다. 농업보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종사자의 비율이 높아지면 생산성도 올라간다.

중국 정부는 농민공들에게 도시 호적을 주고, 추가로 1억4,000만 명의 농촌 인구를 도시로 유입시켜 2020년까지 4억명의 농촌 인구를 도시로 이주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중서부 낙후지역을 중심으로 수 천개의 신도시 건설이 추진되는 데 구체적인 계획이 상반기 중 나올 예정이다. 이 것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 2020년 중국 도시 인구는 8억5,000만 명에 달해 미국ㆍ 유럽의 도시 인구를 더한 것보다 많아질 전망이다. 

도시화 정책은 중국이 지속적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묘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더 중요한 건 우리에게도 획기적인 신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에 자본재와 반제품 등을 수출해 큰 혜택을 누려온 우리는 이제 중국의 새로운 도시화 발전 패러다임에 맞춰 중국의 거대 소비시장 공략에 나서야 한다. 한국식 피자만이 아니다. 내수 시장 포화로 골목 상권과 충돌하는 각종 서비스업은 물론 건설, IT, 환경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대중국 진출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 창조경제 구현 못지 않게 정부와 민간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현안일지 모르겠다.



박진용 산업부 차장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3/h20130325203305244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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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10. 10:30

수년 전부터 제주도의 공무원이나 기자를 만날 때마다 질문한 게 있다.

"강정마을 주민 1500여명의 절반 정도가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한다는데, 이제 그 숫자가 줄어들지 않았느냐"고. 대답은 거의 언제나 "변동 없다"였다.

이해되지 않았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법적·행정적·정치적 절차가 장애물을 하나씩 넘어가며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더디게나마 흘러가고 있었고, 국민이나 제주도민 여론도 기지 건설에 찬성하는 쪽이 많았기 때문이다. 보상에 불만 가진 사람도 거의 없다고 했다. 기지가 건설되면 강정마을이 누리는 경제 효과도 상당히 큰 것으로 추산됐다. 제주도에 흔한 종류의 바위와 붉은발말똥게 같은 자연을 지켜야 한다거나, 해군기지가 미군 기지화해 중국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외부 세력의 설득력 약한 주장에 주민이 동의하고 있다고도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기지 반대 주민이 지금까지 줄지 않는 이유는 뭘까.

수년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이 의문은 얼마 전 한 제주 토박이의 설명을 듣고 좀 풀렸다. 문제는 찬성·반대 주민 사이에 생긴 깊은 '감정의 골'이라 했다. 외부 세력이 개입해 허위 사실로 선동한 뒤부터 폭언과 폭력이 주민 사이에 횡행했고, 누가 찬성파이고 반대파인지 보이지 않는 꼬리표가 달려 두 패로 좍 갈렸다는 것이다. 뜻이 다른 이웃·친척·가족이 말을 섞지 않았고, 낫을 휘두르는 경우도 생겨났다. 어느 것이 옳고 유리한지에 대한 판단은 의미가 없어졌고, 생각을 바꾸는 것은 배신으로 몰리게 됐다. 그 어떤 상황 변화가 와도 입장을 바꾸지 못하는 덫에 모두 빠진 것이다. 이런 상황이면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마을이 멋지게 발전한다 한들 절반은 '어디 잘되나 보자'며 돌아앉아 있을 것이고, 그것을 의식하는 나머지 절반의 삶도 피곤할 수밖에 없다.

매년 시위와 소송, 국회의 예산 삭감 등 탓에 롤러코스터 신세였던 제주 해군기지 건설 사업은 올해부터 순항하기 시작했다. 외부 세력의 시위는 미약해졌고, 국회의 요구 사항을 모두 반영하는 방향으로 정부 부처와 제주도가 얼마 전 합의함으로써 예산도 순조롭게 지원되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새로이 힘을 쏟아야 할 일은 강정마을의 극단적 갈등을 치유하고 교훈을 찾는 일이다.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가 나서야 한다. 심리 상담가들은 주민의 거칠어진 마음을 다독여주고, 심리학·사회학·인류학자들도 마을에 들어가 해결 방안을 연구해봐야 할 것이다.

제주도민 사회도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는 있지만, 국민 통합을 기치로 내건 새 정부가 주요 과제로 삼고 나서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강정마을은 갈등이 거칠게 충돌하는 우리 사회의 극단적 단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전국에서 크고 작은 지역 단위로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강정마을 사태의 전 과정을 백서로 만들고, 이를 통해 주체적 비폭력적 민주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방법을 함께 연구하고 익혀보자. 미래를 위해 이를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박중현 사회부 차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25/20130325021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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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10. 10:07

'정통 양념 치킨 맛보겠다'며 한국에 오는 뉴요커 친구… 
베트남 대표 음식 쌀국수는 프랑스, 일본 덴푸라는 포르투갈서 유래 
퓨전 요리 거부감 사라진다면 '韓食 세계화' 첨병 될 수 있어


한국 음식이 외국에서 인기긴 인기인 모양이다. 뉴욕에 사는 미국인 친구 캐리가 얼마 전 "본고장에서 정통 한식을 제대로 맛보고 싶다"며 서울에 오겠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반가운 마음에 캐리의 이메일에 답하면서 "뭘 먹어보고 싶으냐"고 물어봤다. 캐리가 꼽은 음식 중 양념 치킨이 있었다. 한국에서 꼭 맛보고 싶은 한식이 '고작' 양념 치킨이라니. 전혀 예상 못 한 음식이었다. 뉴욕에 있는 캐리에게 인터넷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양념 치킨? 그게 먹고 싶어?"

"당연하지! 양념 치킨이 뉴욕에서 얼마나 난리인데! 한국 음식 중에서도 제일 인기일 걸?"

내가 놀란 건 양념 치킨을 한국 음식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 대부분 양념 치킨을 한식으로 여기지는 않을 듯하다. 그런데 캐리를 포함한 외국 사람들에게 양념 치킨은 한식, 그것도 가장 맛보고 싶은 한국을 대표하는 맛으로 인식하는 모양이다.

치킨이란 영어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양념 치킨은 그 기원을 미국에 두고 있는 음식이다. 기름에 튀긴 닭은 1950년대 이후 미군을 통해 알려진 것으로 짐작된다. 본래 한식에는 튀김이란 전통이 없다. 당시만 해도 기름에 튀긴 닭 요리는 엄청나게 낯설고 이국적인, 그래서 닭이 아니라 치킨이라고 불러야 어색하지 않았으리라.

1960년대 전기구이 통닭과 쇼트닝에 튀긴 이른바 '시장 통닭'이 등장한다. 1970년대 프랜차이즈 업체가 등장하면서 프라이드 치킨은 '프라이드'를 떼고 그냥 '치킨'으로 통할 정도로 대중화된다. 양념 치킨은 1980년대 초 등장했다. 매콤달콤한 맛을 좋아하고 익숙한 한국인 입에 꼭 맞는 양념 치킨은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치킨이 '국민 야식'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한다.

1980년대 등장해 1990년대부터 대중화됐으니, 양념 치킨의 역사는 길어야 30년 정도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세계적으로 한 국가를 대표하는 음식 중 외국에서 들어왔거나 역사가 짧은 것이 의외로 많다.

쌀국수는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높아서 웬만한 나라에서는 쉽게 맛볼 수 있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2007년 쌀국수를 뜻하는 베트남어 퍼(pho)를 영어 단어로 포함했다. 그런데 옥스퍼드사전은 퍼의 어원을 "아마도 프랑스 포토푀(pot-au-feu)에서 왔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음식 포토푀에서 '푀'만 떨어져 나와 '퍼'로 변했다는 것이다.

대중적인 음식이 대개 그렇듯, 쌀국수는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가 아리송하다. 20세기 초 베트남 북부 하노이 주변에서 처음 먹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 전부다. 지난 2007년 하노이에서 쌀국수의 탄생을 밝혀보기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 여기 참가한 음식 전문가들은 쌀국수가 포토푀에서 왔거나 최소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는 데 동의했다.

포토푀는 소·닭 등의 뼈와 고기를 여러 채소와 함께 푹 끓인 프랑스의 서민적인 음식이다. 부드럽게 삶은 고기를 일품요리로 먹기도 하고, 국물만 떠서 수프로 먹거나 육수로 사용한다. 포토푀에 들어가는 양파 등 채소를 불에 그슬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잡내를 없애고 풍미를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다. 쌀국수 국물도 포토푀와 만드는 방식이 같다. 소의 뼈와 고기를 각종 채소와 함께 끓인다. 양파, 파 등은 그슬려 사용하는데, 역시 포토푀와 같다. 향신료가 더 많이 들어간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덴푸라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일본 음식이다. 하지만 덴푸라는 17세기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에 전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외국인 거주가 유일하게 허용된 나가사키에 살던 포르투갈 사람이 튀김 요리를 하자, 이를 본 일본인이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단다. 포르투갈 사람은 "템페랄(temperal)"이라고 답했다. 포르투갈어로 '조리하다' 또는 '(약을) 조제하다'란 뜻이다. 일본 사람은 이 말을 요리 이름으로 잘못 알아들었고, 그때까지 일본에 없었던 이 튀김 요리를 덴푸라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일본 라멘 역시 우리는 일식이라고 여기지만 중국에서 들어온 면 요리다. 한국의 짜장면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들어와 일본의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식 세계화를 선도해온 조태권 광주요그룹 회장은 "한국 사람들은 퓨전 음식이라고 하면 대단히 노이로제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외국 식재료와 요리법을 얼마나 우리 것으로 만드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배척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외국 사람들이 접근하기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한식을 해외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양념 치킨을 한식으로 떳떳하게 소개해도 괜찮을지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캐리가 서울에 오면 어느 치킨집을 데려가 양념 치킨을 맛보일지가 고민이다.



김성윤 대중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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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6. 05:18

한국의 특파원들이 외국에 나가서 직접 취재하기보다는 외국 신문을 옮겨 쓰는 게 업무의 대부분이던 80년대 특파원 기사를 보면 모든 문장이 이렇게 시작하는 기사가 꽤 많았다. '뉴욕타임즈는…/ NYT는… /미국의 권위지는…' 알고 보면 뉴욕타임즈도 NYT도 미국의 권위지도 다 같은 신문이다. 뉴욕타임즈 내용을 그대로 옮기되 같은 단어를 반복하면 나쁜 문장이라는 기사쓰기의 규범 때문에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주어를 창조해서 불렀다.

같은 단어를 반복하기 싫어 달리 부르는 단어를 열심히 찾던 신문도 당시에 어쩔 수 없이 반복하던 주어가 있었는데 바로 'O대통령'이라는 주어였다. 대통령이 장관들과 나눈 국무회의나 각 부서 업무보고가 끝나면 나오는 기사가 온통 대통령 훈시로 채워지던 시절 일이다. '전두환대통령은…/전 대통령은…'정도로 변화를 주는 게 고작이었다. 이것은 '노태우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은…'으로 이어졌다.


이런 습관은 김대중 대통령 시대에 이르러 바뀌기 시작하다가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이르면 확연히 달라진다. 국무회의가 대통령의 훈시를 듣는 자리가 아니라 국무위원들이 업무를 토론하는 자리로 운용된 덕분인지 결과로 나오는 기사는 '정부는…' 혹은 'OO부는' 식으로 주어가 대통령에서 정부 전체 내지 특정 부서로 바뀌어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과 비교하면 이명박 대통령은 '내가 해보니까' 주의로 국무회의나 각 부서 업무 보고에서 지시사항이 적지 않았지만 각 부서 업무보고 기사가 '이명박 대통령은'으로만 나가지는 않았다. 그만큼 각 부처가 창안하여 대통령에게 올리는 내용이 보도의 주 내용이지 대통령이 업무 보고를 받으면서 먼저 떠드는 훈시 내용이 보도의 주 내용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러 다시 '박대통령은' 시대가 돌아왔다. 박 대통령은 최근 계속되는 각 부처 업무 보고에서 업무를 보고 받는 것이 아니라 지시에 주력하고 그 내용이 기사의 주류가 됐다. 전두환 노태우 시절의 자랑스런 전통을 따라 '박근혜 대통령은…/박 대통령은' 으로 주어가 시작된다. 27일 통일부 외교부 업무 보고에서는 박 대통령이 북한과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 주요 뉴스가 됐고 28일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업무 보고에서는 공공기관부터 지방대 취업 할당제를 실시하라고 한 것이 주요 뉴스가 됐다. 28일 경제정책 점검회의도 대통령의 마무리 발언만 장황하게 소개가 됐다. 기자들이 대통령이 참석하는 주요 회의에 들어가볼 수 없기 때문에 청와대가 보도자료를 대통령 발언 중심으로 주면 기사는 그렇게 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도자료만 그런 게 아니라 촬영화면조차 대통령 혼자 떠들고 장관들이 열심히 받아 적는 장면이 국무회의 때마다 등장한다. 참 한심한 무리들이다. 한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다 한들 여러 사람의 두뇌를 당할 수가 없다. 각 부처 장관을 따로 두는 것은 각 부마다 달리 담당하는 영역의 이해관계를 잘 대변하고 이를 서로 조율하는 의미가 있다. 대통령 혼자서 다 알아서 지시하고 그 내용이 잘 전달만 되는 것으로 국정이 운영된다면 뭐하러 장관을 따로 두겠는가. 장관 한 명 연봉만 해도 1억2,000만원이나 되는데 그 돈 아껴서 격무에 시달리는 사회복지 공무원이나 더 많이 채용하는 게 낫지 말이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유능했으면 당선되고 두 달, 부임한 지 한 달이 넘도록 내각조차 다 구성을 못했을까. 장관으로 임명한 이들도 탈법 불법이 없는 이가 없고 이보다 더 심한 잘못을 한 11명이 날라갔다. 날라간 이들조차 워낙 몰염치해서 한가지 부정으로는 즉각 자진사퇴도 않으니 사퇴를 요구하느라 온 나라 정치력이 한달 넘게 내각 구성을 맴돌고 있다. 이런 국가적 낭비가 없다. 그만큼 장관들이 신통찮아서 대통령이 일일이 지시를 하는 것인지 몰라도 과외는 대통령도 남이 안보는 데서 받듯 장관들도 안보는 데에서 공부를 시키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라면 적어도 국민들 앞에는 민주적으로 움직이는 시늉만이라도 하기 바란다. 그게 안되면 해산을 하라.



서화숙 선임기자



http://news.hankooki.com/ArticleView/ArticleView.php?url=opinion/201303/h2013032821272667800.htm&ver=v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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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6. 05:04

12일(현지시각) 저녁 뉴욕의 주유엔 한국대표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표정은 매우 침통해 보였다. 이날 아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 결과를 설명하고자 연 자리였다. 그는 “마음이 매우 무겁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를 마무리하는 이때, “북한과의 관계를 결국 이런 상황으로 마감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도 했다.


북한 핵실험만 없었다면 이날은 우리나라 외교에서 매우 의미 있는 날로 언론에 대서특필될 수도 있었다. 비록 15개 이사국이 월별로 돌아가며 맡는 것이긴 하나, 국제평화와 안전을 책임지는 안보리의 의장국으로서 국제사회에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제를 공개토론에 부쳐 논의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의제는 ‘무력분쟁에서 민간인 보호’였다. 참가한 나라도 70개국이 넘었다. 106년 전인 1907년 6월 44개국이 참가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늑약이 일본의 강압에 의한 것임을 폭로하려던 고종의 밀사들이 문전박대를 당했던 때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한 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당시 일본의 계략으로 회의 참가 자격조차 얻지 못한 이준 열사는 헤이그의 호텔방에서 쓸쓸히 객사했다.


그러나 안보리 공개토론은 북한의 핵실험 탓에 빛이 바랬다. 애초 오전 10시에 열기로 했던 이날 행사는 북한 핵실험 대응책을 논의하는 안보리 긴급회의가 갑자기 오전 9시로 잡히는 바람에 1시간30분이나 늦게 열렸다. 이 토론을 주재하고자 뉴욕까지 날아온 김성환 장관은 그나마 토론의 절반밖에 주재하지 못하고 나와야 했다. 갑자기 대북 제재 논의가 그의 방문 목적이 돼 버린 셈이다. 우리 외교사에서 축제일이 되어야 할 날, 간담회장에서 나온 발언들은 대결과 응징의 언어가 지배했다.


13일 오후 한국대표부와 불과 100m도 떨어지지 않은 주유엔 북한대표부 건물. 13층에 입주한 북한대표부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잠깐 밖에 나온 한 직원은 인터뷰 요청에 “대표가 출타 중”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핵실험 이후 외무성을 통한 ‘성명’만 접할 수 있었을 뿐, ‘말’을 직접 들을 수는 없었다. 같은 뉴욕 하늘 아래 있지만, 북한대표부 앞엔 마치 38선이 둘러쳐진 듯한 느낌이었다.


마침, 이날 유엔본부 앞에선 티베트인 50~60명이 ‘티베트에 자유를 달라’라고 쓰인 손팻말과 티베트 국기를 들고 행진을 벌이고 있었다. 1950년 강제병합된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치고 있는 것이었다. 이들 무리엔 노인과 여성, 아이들도 포함돼 있었다. 행색은 비록 초라했으나 이들의 얼굴은 근엄해 보였고 눈빛은 강렬했다.


갑자기 100여년 전 우리 조상들이 이들 티베트인과 비슷한 처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미어졌다. 우리 조상들도 강대국들과 국제회의 등을 돌아다니며 나라가 일본에 강제병합되는 것을 막아 달라고 간절하게 호소했을 것이다. 조상들은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고 뭐라고 할까. 나라가 두 개로 쪼개진 뒤, 한 나라는 안보리 의장국으로서 회의를 주재하고, 다른 한 나라는 그 회의에서 제재의 대상이 돼 있는 현실을.


행진을 하는 티베트인들에게, 자유는 쟁취했으나 평화는 저당잡힌 우리의 과오를 들려주고 싶었다.


박현 워싱턴 특파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739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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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6. 04:49

베를린에 있는 독일민주공화국(동독) 박물관은 사실 두 개의 박물관을 하나로 합쳐 놓은 것이다. 이 둘 모두 동독인들의 일상과 밀접히 관련돼 있던 것이면서 서로 미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아마도 박물관을 만든 이가 처음부터 이것을 의도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긴장이 많은 독일인들이 동독이라는 옛 공산주의 국가에 대해 느끼는 모호함과 양면성을 포착하고 있다.


박물관의 중앙 전시실은 쌍방향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는 헤드폰을 끼고 동독 시절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볼 수 있고, 취조실과 감옥 체험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고위 간부의 책상에 앉아보거나 러시아어 테스트를 받아볼 수도 있고, (공산주의식) 부정 선거에도 참여해 볼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전시물에 달린 안내글을 읽지 않았다면 동독에 대한 객관적인 자화상만을 본 채 건물을 나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물관의 전체적인 느낌은 전시물에 달린 안내글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다음은 동독 관광객들에 대한 설명글이다. “동독 관광객들은 동구권 국가에서 별로 인기가 없었습니다. 프라하 웨이터들은 그들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지요. 서구 관광객들이 마르크나 달러 같은 종이 화폐를 쓸 때 그들은 계산을 하기 위해 알루미늄 근수를 쟀지요.”


이런 전시품들 속에서 동독이란 비효율적이고, 지루하고, 익살스러우며, 다양한 방법으로 조롱을 당해야 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옛 동독인들이 이러한 전시물들을 보며 좀 기분이 상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서독의 과거는 경탄할 만한 것으로 취급되는 데 견줘 동독의 과거는 막다른 길처럼 묘사돼 있다.


그리고 박물관의 또다른 절반이 있다. 그것은 식당이다.


박물관엔 동베를린에 있었던 고급 레스토랑의 복제품이 마련돼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동독식 최고 정찬과 예전 동독에서 생산되던 코카콜라의 대용품인 비타콜라 등을 맛볼 수 있다. 메뉴엔 예전에 호네커가 좋아했다는 훈제 돼지고기, 감자, 사워크라우트(소금에 절인 양배추)를 곁들인 요리나 내가 먹어본 고기 등으로 속을 채운 양배추 요리 등도 있다. 그리고 이 음식들은 정말 맛이 있다. 재미있게 말하거나 비꼬려는 게 아니다. 메뉴에서 살짝 우스꽝스런 표현을 볼 수 있지만, 음식 자체가 우스꽝스럽진 않다.


물론 이 음식의 레시피는 동독의 최고 레스토랑에서 개발된 것이다. 그러나 비타콜라는 누구나 마실 수 있는 보편적인 소비재였다. 다른 말로 바꾸자면, 이 레스토랑은 다른 전시물들과 매우 다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것은 동독인들의 삶에도 좋은 것이 있었으며 그것은 경탄하고, 보존하고, 요즘 사람들에게도 공급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최근 많은 동독인들을 접할 기회를 가졌다. 그들 대부분은 결코 예전 동독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비밀경찰에게 고통을 받았고, 일부는 감옥에 끌려가거나 직업을 잃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으며, 휴가를 가고, 친구들과 어울렸다.

한국인들에 대한 교훈도 분명하다. 북한한테 나쁜 농담을 하거나, 장애를 가진 어린 동생처럼 다루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도 23년 전 동독이 사라진 뒤 동독인들이 느꼈던 것처럼 2류 시민으로 취급받길 원치 않을 것이다. 한반도에 통일이 이뤄질 때 한국인들은 북에 있는 그들의 형제자매들이 감내하고 극복해야 했던 많은 공포와 그들이 즐겁게 그리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살아냈던 삶에 대한 얘기를 존중하고 경청해야 한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7356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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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6. 04:47

그의 별명은 ‘보안관 아저씨’다. 밤이나 낮이나 동네 이곳저곳을 순찰하면서 10대들을 선도한다. 보일러 시공이 본업이지만,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간다. 광주광역시 남구 월산4동에 사는 이시중(62)씨가 그 주인공이다. 빵집 가게 앞 전봇대에 온갖 쓰레기가 쌓이는 것을 보다 못해 흙을 퍼나르고 기와로 장식해 작은 정원을 만든 박청호(54)씨도 이 마을 신참 주민이다. 보안관 아저씨는 이 정원에 예쁜 석류나무와 동백을 내줬고, 교사로 정년퇴임한 할머니는 30년산 철쭉을 선뜻 희사했다.


마을의 소소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를 퍼뜨린 것은 동네 잡지였다. <월산4동에 살다>(175쪽)라는 동네 잡지를 만든 이들은 다름 아니라 동네 주민들이다. 산등성이가 마치 달이 뜨는 것 같다고 해서 생긴 월산동 달뫼마을에서 떨어져 나온 월산4동은 사실 동네 유래가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주민 몇몇이 지난해 10월 구청 마을 살리기 사업으로 700만원을 지원받아 동네 잡지를 만들어보자고 했을 땐 첫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그 돈으로 어려운 이웃이나 도울 일이지…. 우리가 어떻게 잡지를 만들어?”

하지만 김종민(59) 주민자치위원장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뭉쳤다. 자동차공업사를 운영하는 그는 “호적이 있는 동네를 만들어보자”며 마을지 편집위원회를 꾸렸지만,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우였다. 주민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는 ○○카센터, 1970년대 △△교회 앞에 있었던 ‘뽕뽕다리’, ○○교회 부근에 있었던 젖소농장 등 마을의 기억…. 주민들이 주민들의 이야기를 발굴했다. 주민들이 모여 마을 지도를 직접 그려 잡지에 실었다. 원고의 95%는 그대로 살렸다. 앞으로 동네 잡지를 1년에 한차례는 꼭 내볼 참이다. 동네 잡지 한권이 삭막한 대도시의 7000가구, 1만2430명이 사는 동네를 훈훈하게 바꾸는 출발점이 된 셈이다.

동네 미디어는 또 있다. 서구 화정동 주민들이 참여하는 광주문화유랑단은 <화정동에 꽃이 피다>라는 신문을 낸다. 마을 주민들은 동네 신문에 음식물을 먹어치울 지렁이를 분양하는 일정, 동네 장터 개장일 같은 소식을 담아 5호까지 냈다. 동사무소 2층 165㎡(50평) 공간을 마을극장으로 바꾸려고 아이디어도 모으고 있다. 마을극장 개장 소식은 아마도 동네 신문이 특종 보도할 것 같다.

광주시 남구 주민들이 모여 꾸린 송화인문공동체도 2011년 5월부터 <함꾸네 신문>을 내고 있다. 타블로이드판 8면짜리 신문엔 마을 도서관·지역아동센터·강연회 소식이나 마을 미담 등이 실린다. 민판기(61) 편집위원장은 “주요 신문에 동네 이야기는 없더라. 이웃간의 관계를 트고 소통하는 데 동네 신문이 제격”이라고 했다. 알림판과 광고 수입 등으로 자체 제작해 6000부를 배포한다. 남구 양림동에서도 <양림소식>이라는 4쪽짜리 신문을 낸다.

동네 미디어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소통의 매개체다. 마을과 연관된 이야기가 실린 잡지는 어쩌면 도시에서 더 필요하다. 무심코 지나쳤던 내 주변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가 활자화되면 오히려 더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다. 평범한 이웃의 이야기는 공감을 낳고, 이 공감이 관심과 참여를 이끈다. 어쩌면 수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짓는 공공기관보다, 동네 미디어가 도시 공동체 문화를 복원하는 데 더 큰 효과를 몰고 올지 모른다. 앞으로 주민들이 제작 경비까지 마련해 동네 미디어가 활성화되면 지역 살리기 해법의 단초를 발견하지 않을까? 동네 미디어가 마을 공동체를 대변하고 소통하는 큰 울림통이 되길 기대한다. 동네와 동네 미디어가 희망이다.

정대하 사회2부 호남제주팀장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735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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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6. 04:44

초등학교 짝 오지혜를 삼십여년 만에 만났다. 어릴 적 친구이기도 하지만, 지혜는 내가 아는 가장 훌륭한 배우이다. 스크린이나 무대에서 지혜는 ‘나 연기 잘해’라고 외치듯 ‘오버’하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어릴 때부터 어법이나 표현이 정확했고, 조지 클루니나 앤절리나 졸리와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처럼 사회문제에도 진지한 관심을 보인다.(우리나라에서는 배우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마치 ‘별종’처럼 보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수많은 시민들이 부여해준 관심에 따른 당연한 책임이라 본다.)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로서 연극과 비즈니스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져온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혜로부터 연극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던 중 흥미로운 의견을 들었다. 연극이야말로 초등학교 기초과목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연극이란 학예회 정도로 생각했던 내게 다소 의외였다. 왜 그럴까?


첫째, 연극 한 편을 올리려면 반드시 협동이 필요하다. 인터넷으로 인해 지금의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똑똑하다’. 개인의 경쟁력은 우수하지만 사람 사이(人間)의 협력이라는 점에서 보면 절망적이다. 왕따 현상은 한 사례일 뿐이다. 2010년, 50년 넘는 전통을 가진 미국 시카고의 세컨드시티 코미디 극단에서 즉흥극 교육을 받으며 이들이 혼자 진행하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다루지 않는 것에 주목했다. 최소 두 명 이상이 모여 극을 만들어가는 것이 기본이며, 이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해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지, 왜 대화를 독점하면 안 되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둘째, 우리는 스티브 잡스의 영향으로 단순히 기술에만 밝아서는 의미 있는 혁신을 할 수 없으며 인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연극 공연 한 편을 준비하기 위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대본을 여러 차례 읽게 되며, 이 과정에서 인문학적 상상력과 인간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연극을 교육에 접목하고 있는 사다리연극놀이아카데미에서 만난 한 중학교 국어 선생님은 연극놀이를 수업에 도입하면서 아이들의 풍부한 감수성과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셋째, 연극은 아이들의 다양한 취향을 자극하고, 자신이 무엇에 관심이 있고 잘하는지를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배우 외에도 미술이나 디자인에 관심이 있으면 무대 디자인을, 패션 쪽에 관심이 있으면 의상을, 기획에 관심이 있으면 연출이나 마케팅을, 음악에 관심이 있으면 음향을,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면 대본을 맡으면 된다. 오랜 기간 알아온 한 글로벌 컨설팅 기업의 임원은 아이가 심한 사춘기를 겪고 있을 때 연극 수업으로 그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연극이 아이의 자기성찰 및 자세, 자기표현 등 사람에 대한 다양한 것을 가르쳐주었고, 이를 통해 사춘기의 고비를 넘기고 올해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우리는 많은 시간과 관심, 엄청난 돈을 영어교육에 쏟아붓는다. 영어는 중요한 도구다. 하지만 한국말 잘한다고 소통 능력이 반드시 높지 않듯 영어를 잘한다고 글로벌 시대에 소통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의 인재는 영어로 발표를 잘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글로벌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공감하며, 협조하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능력 개발은 영어 교육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연극은 훌륭한 교육 수단이 될 수 있다. 다행인 것은 영어교육에 쏟아붓는 관심과 자원의 10분의 1 미만을 투자해도 비용 대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연극은 ‘영어만큼’ 중요하고 ‘영어보다’ 효과적이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734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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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6. 04:24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 중국 농촌에서는 ‘자본주의 꼬리를 베는 운동’이 일어났다. 농민들은 자류지도, 가축도 ‘사회주의 범위 안’에서만 가꿀 수 있었다. 범위 밖에서 자라는 곡식은 아예 낫으로 허리를 잘라버렸다. “사회주의 풀을 기르더라도, 자본주의 곡식은 기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닭이나 오리는 얼마만큼 기르면 사회주의이고 얼마만큼 기르면 자본주의라는 논리도 펼쳐졌다. “빈곤한 사회주의로 살더라도 부유한 자본주의로 살지 않는다”고 하였다. 어찌 보면 공자가 말한 “군자는 도를 걱정하지 빈곤을 걱정하지 않는다”(君子憂道, 不憂貧)고나 할까. 있는 것이 수치이고, 부를 창조하겠다는 것이 수치였다. 결과적으로 경제가 붕괴의 변두리에 이르렀다.


문화대혁명 때만이 아니었다. 개혁개방에 들어서면서 중국인들이 가장 곤혹스러워했던 명제는 바로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라는 것이었다. 10여년 동안 걸음마다 논쟁을 벌였다. 이 논란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 바로 덩샤오핑의 남순강화였다. 그래서 나온 것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다. 이념이 정립되고 사상 해방이 이루어진 것이다.


중국이 겪은 ‘사’(社·사회주의)와 ‘자’(資·자본주의)의 투쟁은 사회주의 나라들이 다 겪었던 과정이다. ‘자본주의’와의 투쟁은 사회주의 나라들의 숙명적 과제였던 것이다.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은 오늘까지도 ‘시장경제’를 자본주의로 인식하며 배격하고 있다. 중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슨 일이나 다 ‘사’냐 ‘자’냐를 따져가며 시시비비를 가린다. 효율이 제고되더라도 ‘자본주의’로 판단되면 멈춰야 한다. 농민들의 적극성을 최대한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역시 ‘자본주의’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시장에 의한 효과적인 자원배분이 이루어지면 금방 많은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겠지만 역시 ‘자본주의’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결국 북한에 자본주의는 손오공의 머리를 조이는 고리인 ‘긴고아’와 같은 것이다. 긴고아는 사실상 스스로 발목을 묶는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계획경제는 사회주의의 독점물이고 시장경제는 자본주의 독점물일까? 한국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만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가 큰 몫을 했다. 역으로 중국은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경제가 급성장하였다. 두 나라는 사유제와 공유제로 체제가 다르지만, 모두 시장경제와 계획경제를 상호 조절, 상호 보완하면서 발전을 이룩했다. 계획과 시장은 경제수단이지 체제·이념의 분계선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결국 시장경제는 자본주의만의 독점물이 아닌 것이다. 사회주의의 본질은 생산력을 해방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먼저 사상을 해방해야 할 것이다. 목표는 공동부유이지 공동빈곤이 아닌 것이다.


지난해 세계는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행보에서 “중국의 방법이든, 러시아든 일본이든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도입하라고 지시했다”는 데 주목하였다. 일언흥방(一言興邦)이라는 말이 있다, 사고만 바꾸면 나라가 흥할 수 있다. 덩샤오핑은 “시장경제는 자본주의”라는 등식을 깨고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사고로 중국을 바꾸었다. 북한도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선을 보였던 ‘신사고’로 시장경제의 일부분을 사회주의에 ‘편입’시킨다면, 천지개벽이 따로 없을 것이다.


진징이 중국 베이징대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718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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