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9. 21:16

어제는 세계 난민(難民)의 날이었다. 난민은 인종이나 종교,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박해를 피해 삶의 터전을 버리고 외국으로 탈출한 사람들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4520만 명의 난민이 세계 곳곳을 떠돌고 있다. 4.1초마다 한 명씩 난민이 발생한다고 할 정도로 증가세도 가파르다. 중견국 반열에 들어선 한국도 외면해서는 안 될 국제 현안이다.

한국은 21년 전인 1992년 ‘난민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했다. 지난해 2월 제정된 난민법이 다음 달 1일 발효된다.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뿐 아니라 난민 지위를 신청한 사람들도 신청 6개월 후에는 국내에서 취업할 수 있다. 이런 법은 아시아에서 최초다. 법체계는 갖춰진 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르다. 지금까지 모두 5485명이 난민 신청을 했으나 인정을 받은 사람은 329명(5.9%)에 불과하다. 세계 평균인 37.8%의 6분의 1 수준이다. 생계와 의료 문제에 대한 대책 없이 국내에서 난민 승인이 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만 1442명이다. 법무부 기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엄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난민을 후진국에서 온 성가신 불법 체류자 정도로 여기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난민법이 발효된다 해도 현재의 예산 구조로는 난민에 대한 처우 개선은 그림의 떡이다. 올해 법무부 난민 관련 예산이 20억6900여만 원이지만 이 가운데 19억8000만 원은 인천 영종도에 문을 여는 ‘난민지원센터’의 운영비, 시설비 등으로 쓰인다. 난민들의 주거와 생계를 위해 쓸 돈은 거의 없는 셈이다.

난민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내전(內戰)을 포함한 전쟁이다. 한국 역시 6·25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난민이 발생했다. 우리의 처지를 딱하게 여기고 도왔던 외국의 손길이 없었다면 오늘날 경제 기적과 민주화는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과 동남아 일대를 떠도는 탈북자들이 난민 지위를 얻지 못해 정치적 처벌이 기다리고 있는 북한으로 강제 북송되고 있다. 한국에 들어온 수천 명 난민의 눈물도 닦아주지 못하면서 국제사회에 탈북자 문제 해결에 협조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다.



http://news.donga.com/3/all/20130620/560119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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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1:10

1786년 영국 북부 직물공업 도시 리즈에서는 방직 노동자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양털을 얼레빗질하는 기계가 이들을 몰아낸 것이 원인이었다. 시위대는 외쳤다. “이제 가족을 어떻게 부양하란 말인가? 자녀에겐 어떤 기술을 물려주라는 것인가?”

기계화는 몇 세대에 걸쳐 영국의 생활수준을 높였지만 산업혁명 초기에 전통적인 노동자들이 어떤 혜택을 받았는지 분명치 않다. 명백한 것은 그 당시엔 가치 있었던 기술을 평생 익힌 많은 노동자들이 그 기술이 갑자기 무용지물이 됐을 때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기술의 효과가 노동자에게 위협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은 최근의 일이다. 분명한 사실은 생산성 향상의 결과는 소수에게만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 기술의 발전이 점점 고학력자에 대한 수요를 높여왔기 때문이다. 결국 해답은 더 많은 교육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는 문제가 있다. 이는 대졸자와 저학력자 간의 임금 격차는 설명할 수 있지만, 왜 상위 ‘1%’가 일반 고학력자보다 더 많은 수입을 가져가는지 설명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기술이 노동에 미치는 영향은 예전보다 훨씬 치명적이다. 고학력자들도 쉽게 평가절하되고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있다. 더 많은 교육이 신기술 발전에 대한 해결책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문제점을 양산하고 있다.

필자는 2000년 즈음 미국 사회를 둘러싼 불평등의 성격이 변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 전에는 불평등에 대한 담론은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와 불평등에 대한 것뿐이었다. 노동과 자본 간의 소득 분배는 비교적 안정적인 틀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노동자의 몫은 급격히 감소했다.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독특한 현상은 아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최신 보고서는 이런 현상이 다수의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세계의 기술 발전 추이는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기술이 노동시장에 가져오는 변화는 더 갑작스러울 수 있다. 매킨지 글로벌연구소는 전통 노동시장과 사회구조에 ‘파괴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10여 개의 중요 신기술에 대한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보고서를 보면 많은 시간과 돈을 배우는 데 투자해 신기술로 무장한 근로자들도 새로운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식산업의 자동화’를 통해 지금까지 대졸자만 할 수 있었던 많은 일을 소프트웨어가 대신할 수 있다. 선진화된 로봇 기술의 도입은 제조업계 취업률을 낮추고 전문 의료진마저 대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이 신기술을 배우는 것만으로 이에 대응할 수 있을까. 18세기 리즈의 노동자들은 이미 이런 질문을 던졌다. “새 기술을 배울 동안 누가 가족을 먹여 살리나?” 그들은 이런 질문도 했다. “만약 새로 배운 기술마저 더욱 새로운 신기술로 대체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오늘날의 노동자들도 당시 방직공들의 처지와 별반 차이가 없다. “빚을 지면서까지 배운 새 기술을 사회가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교육의 확대가 불평등에 대한 해결책으로 작용했는지에 대해서도 의심을 떨칠 수 없지만, 그것이 정답일 수 없다는 점이 더 분명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신기술 발달에 대처하는 대안은 있을까.

필자가 지금까지 말한 내용이 조금이라도 옳다면, 일반 시민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규칙을 지킨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중산계급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의료보험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소득을 담보할 강력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또 새로 창출되는 부(富)가 점점 자본가에게 편중됨에 따라 사회안전망의 많은 부분은 수익과 투자소득에 대한 세금 부과로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장을 하고 나면 보수주의자들이 ‘소득 재분배’의 폐해에 대해 어떤 식으로 입을 모아 반박할지 뻔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에게 과연 대안은 있단 말인가.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http://news.donga.com/3/all/20130616/55905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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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1:00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50년 1% 이하로 떨어진다는 전망이 나왔다. 잠재성장률이란 한 나라 경제가 물가나 자원 공급 등에서 큰 문제없이 늘릴 수 있는 최대한의 생산증가율을 뜻한다. 정부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망이라서 더 그럴듯하다.

성장률 0%대를 사는 우리 세대나 자녀 세대를 상상해본 일이 있는가? 2050년이라면 그리 멀지도 않다. 지금 20세가 57세가 되고, 50세는 87세가 되는 해다. 지난해 한국은 2.2% 성장했다. 성장률 2∼3%대에서도 “힘들다”는 탄식이 나오는 상황이다. 한국은 성장률이 1% 줄면 일자리가 5만∼7만 개가 줄어든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은 늙은 대륙 서유럽의 국가들처럼 활기 없는 사회가 되고, 취업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

더 어두운 전망도 있다. 미래학자인 예르겐 란데르스 노르웨이 경영대학원 교수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은 2050년대까지 조금씩 늘다가 결국 멈추게 된다”고 예측했다. 그는 지구 환경과 인류의 미래를 연구하는 국제 비영리기구 ‘로마클럽’의 멤버다. 세계는 앞으로 40년간 낮은 성장률을 보이다 그 후엔 침체가 고착화한다고 봤다. 기존의 생산량과 노동량을 적절히 분배하면서 현상 유지만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성장을 당연하게 여겨온 사람들 눈엔 겁나는 주장이다. 그러나 인류 경제사(史)를 보면 낯선 일이 아니다. 경제사가(史家)들의 계산에 따르면 예수가 탄생한 이후 1000년간 1인당 GDP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 후 800년간의 변화도 미미했다. 한 사람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양이 1800년간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변화의 기폭제는 1770년대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이었다. 그 후 200여 년 동안 1인당 소득과 인구수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이 기간의 GDP 증가율이 평균 2%였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과 세계는 얼마나 성장했을까. 1980년대 한국의 성장률은 평균 8.6%, 1990년대는 6.4%였다. 세계적으로는 1970년에서 2010년까지 평균 3.5%의 경제 성장을 했다.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 정체한 아프리카 국가들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어쩌면 한국과 선진국들의 지난 50년이 인류 역사에서 이례적인 시기였다고 할 수도 있다. 

앞으로가 문제다. 밤새워 일하고 경쟁하고 성장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이 저성장 사회를 견딜 수 있을까. 미래학자들이 예상하는 미래에는 공통점이 있다. 기대 수명이 100세를 훌쩍 넘는 고령화 사회, 게이 커플과 입양아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 클라우드 컴퓨팅과 모바일 네트워크로 촘촘히 연결된 세계, 자원 고갈과 신재생 에너지의 발달 같은 것들이다.

이를 바탕으로 20∼30년 뒤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상상해본다. 많은 사람이 하루 3∼4시간씩 75세까지 일한다. 발달된 네트워크로 24시간 세계 누구하고나 대화할 수 있다. 전기료와 교통비가 비싸 출퇴근하기보다는 재택근무를 한다. 쓰레기 처리 비용이 점점 비싸져 패스트패션보단 좋은 제품을 사서 오래 쓰고 고쳐 쓴다. 어떤가. 그리 나빠 보이는가. 경제 사회적 조건을 행복으로 만드느냐, 불행으로 만드느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저성장 시대에는 사는 방식과 사회 운용 체계도 변해야 한다. 일과 여가를 적절히 안배하고, 소비로 자신을 표현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돕는 생산적 경험에서 만족을 찾으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사회적으로는 일자리와 자원을 나누고 지구를 살리는 분야에 더 많이 투자하라는 것이다. 

한국은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여지가 많고 높여야 한다. 그럼에도 개인이든 사회든 저성장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준비는 필요하다. 성장이 멈춘다고 세상도 멈추는 건 아니다.


신연수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30615/55873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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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8:04

탈북 청소년들의 북송을 막지 못해 비난을 받고 있는 주라오스 한국대사관에는 이건태 대사를 포함해 5명의 외교관이 근무하고 있다. 이 대사는 2010년 1월 부임해 3년 임기를 넘겼다. 대사 밑에 개발 원조와 자원 업무를 담당하는 정무참사관이 있고, 총무와 영사 업무를 맡은 3등서기관(7급)이 있다. 탈북자를 담당하는 1등서기관(4급)은 문화와 홍보 업무를 겸한다. 

주라오스 대사관은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처럼 외교관들에게 힘든 근무처는 아니다. 선진국에서 일했던 외교관들이 순환 근무를 할 때 비교적 선호하는 곳이다. 외교관들이 좋은 근무처와 나쁜 근무처를 구분할 때 사용하는 ‘온탕’과 ‘냉탕’ 가운데 ‘냉탕’에 가깝지만 분쟁 지역이나 아프리카보다는 나은 곳에 속했다. 하지만 중국을 거쳐 이곳으로 탈북자들이 밀려오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라오스를 거쳐 한국에 온 북한 주민은 수백 명에 이른다. 그런데도 라오스 대사관에서 탈북자를 담당하는 우리 외교관은 1명에서 더 늘어나지 않고 있다. 통일부 직원은 1명도 없다.

이번 사태에 대해 일차적으로는 현지 공관이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대사관에 인원과 지원은 부족한데 일이 몰리게 되면 실수도 발생할 수 있다. ‘폭탄 돌리기’ 게임을 하다가 걸린 사람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 라오스가 중요하다면 대사관에 근무하는 인원과 관련 예산을 대폭 늘려 주어야 한다. 외교관 인력만으로는 힘들다면 소명의식과 전문성이 있는 민간 전문가들에게 탈북자 관리직을 개방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외교부와 국회는 라오스 사건을 면밀히 검토해서 현지 공관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비단 라오스뿐만이 아니다. 중국 러시아 몽골 미얀마 베트남 등 탈북자들이 들어올 수 있는 모든 통로의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 사건이 일어나면 그때만 요란할 뿐 나중에 같은 잘못이 반복되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라오스에서 탈북자가 불법 입국자로 적발되면 300달러(약 33만 원)의 몸값을 내야 한다. 30여만 원이 없어 다시 북송된 사례도 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한국은 그 돈을 대신 내주지 못하고 다시 북한에 보낸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북한인권법을 조속히 제정해 적절한 지원 체제를 갖출 필요가 있다. 탈북자를 보호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만들어 주고 그래도 잘못하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http://news.donga.com/3/all/20130604/55641276/1



Posted by 겟업
2013. 9. 19. 18:03

‘너무 울어서/텅 비어 버렸는가/이 매미 허물.’ 

일본 하이쿠(俳句) 시인 바쇼(芭蕉·1644∼1694)의 작품이다. 하이쿠는 5-7-5 음절의 운율을 지닌 세계에서 가장 짧은 정형시다.

19세기 말 서구에 소개된 하이쿠는 서구 문학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인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1885∼1972)는 하이쿠에서 이미지즘(imagism·이미지로 표현의 명확성을 시도한 문학 사조)의 원형을 발견했다고 한다. 

하이쿠는 세월을 넘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하이쿠가 “일본 전통문화 중 가장 국제성을 띤 문화”라고 평가한다. 바쇼나 잇사(一茶·1763∼1827)와 같은 하이쿠 명인의 작품은 미국 초·중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잇사의 ‘사람도 하나/파리도 한 마리네/넓은 응접실’은 ‘One man/and one fly/waiting in huge room’으로 영역돼 있다. 미국 초·중등학생들은 연습문제로 하이쿠를 직접 지어 보면서 시(詩) 세계에 입문한다.

하지만 일본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는 우리 국민 대다수는 하이쿠를 잘 모른다. 일본에 대한 문화 쇄국(鎖國)주의 때문이다.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하이쿠를 전혀 다루지 않았으니 일본 문화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하이쿠를 모를 수밖에.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 말살정책을 생각하면 일본 문화에 대한 쇄국주의는 당연한 조치였다. 그러나 그 기간이 너무 길었다. 쇄국주의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B급 및 저질 대중문화는 우리 곁을 슬금슬금 파고들었다. 반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하이쿠와 같은 고급문화는 들어오지 못했다.

우리가 B급 및 저질 대중문화만으로 일본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와 일본 모두에 불행한 일이다. 최근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물론 그 직접적인 원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역사 관련 망언과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일본유신회 공동대표의 위안부 관련 망언에 있다.

하지만 양국 관계가 급속히 나빠진 데는 일본 문화에 대한 우리의 무지도 일조를 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확정 편향(confirmation bias)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존재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일본을 B급 및 저질 대중문화의 나라라고 일단 확정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들의 좋은 면은 외면하려 들게 된다. 베스트셀러 ‘스마트한 생각들’의 저자 롤프 도벨리는 끼리끼리 어울리는 인터넷 공간이 이런 부정적 확정 편향을 확대 재생산한다고 설명한다.

작년 초만 해도 드라마 ‘한류(韓流)’와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 열풍 덕분에 일본의 한국에 대한 감정은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나 작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日王) 사과 요구’ 발언 이후 분위기가 냉랭해지기 시작했다. 아베 총리와 하시모토 대표의 선동은 이런 분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 보름 전 영국 BBC방송이 발표한 국제사회 평판 조사를 보면 한국에 긍정적이라 답한 일본인의 비율이 작년의 34%에서 올해 19%로 하락했다.

우리나라는 개방형 경제를 택해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문화 역시 개방형을 지향할 때 큰 발전을 이룬다. 케이팝의 성공이 좋은 예다. 개방형은 상호이익을 추구하는 시스템이다. 개방형 문화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케이팝이 세계적 성공을 이뤘다 하나 여전히 수익의 절반 이상은 일본시장에서 나온다. 우리의 일본에 대한 문화적 이해가 깊어지지 않으면 일본에서의 케이팝 성공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케이팝과 같은 한류를 통한 그간의 한일 간 선린(善隣) 도모는 경제적 정치적 교류를 위한 든든한 기반이 됐다. 지금 그 기반이 양국 정치인들의 선동 때문에 위태로워졌다. 게다가 이를 말려야 할 오피니언 리더마저 선동에 가세했다.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5월 20일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가 ‘신의 징벌’이었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지한파(知韓派)인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전 아사히신문 주필은 5월 30일자 동아일보 기명 칼럼에서 김 위원 칼럼에 대한 원폭 피폭자와 많은 일본인의 분노를 염려스럽게 전했다. 

한일 관계 악화를 걱정하는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피폭자와 지한파 일본인에게 이 자리를 빌려 대신 사과한다. 한일 간 선린 회복을 위한 방법의 하나로 양국 국어 교과서에 각각 하이쿠와 시조를 소개할 것을 제안한다. 일본이 자랑하는 하이쿠 시인 시키(子規·1867∼1902)의 ‘여름 소나기/잉어 머리 때리는/빗방울이여’를 우리 교과서에서 봤으면 좋겠다.

이에 화답해 일본 교과서가 자규(子規·두견새)를 노래한 이조년(李兆年·1269∼1343)의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를 싣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http://news.donga.com/3/all/20130613/55822376/1



Posted by 겟업
2013. 9. 19. 17:53

“CJ가 저렇게 당하는 건 보호막이 되어줄 우군이 없어서다.”

CJ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뒤, 세상 돌아가는 속사정을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그들의 해설을 요약하면 대충 이렇다. “CJ는 메이저 언론과 불편한 관계다. 케이블 TV 업계의 공룡인 CJ는 종합편성 채널을 갖고 있는 메이저 신문은 물론이고 지상파 방송사들과도 이해관계가 대립한다. 검찰로선 새 정부 첫 대규모 사정(司正)의 사냥감으로 CJ만큼 적당한 상대가 없었을 것이다.”

동아일보 사회부원들로서는 수긍키 어려운 해석이다. 필자를 포함해 부원 누구도 CJ와 그 어떤 이해관계나 호오의 감정이 있을 게 없다. 동아일보 종편채널인 채널A와 CJ 간에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지 필자에게 귀띔조차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동아일보 법조팀이 CJ 비리 의혹을 취재해 온 것은 종편 출범 훨씬 이전부터였다.

검찰이 이런저런 여건을 감안해 CJ를 타깃으로 정했다는 해석도 사실과 다르다. CJ 수사는 새 정부 들어 기획으로 준비했다기보다는, 칼집의 봉인이 이제야 풀렸다고 보는 게 맞다.

CJ 수사는 2007년 5월 CJ 전 재무팀장의 청부폭력 사건으로 거슬러 간다.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USB를 확보했고, 검찰이 2008년 복원한 USB 파일 속에는 이재현 회장의 차명 재산과 재산 도피 의혹을 뒷받침하는 편지 등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본격 수사가 시작되기까지는 근 5년이 걸렸다. 지난해에도 대검 중수부가 수사를 준비했지만 흐지부지됐다. 법대 출신인 이 회장의 동문 검찰 고위 간부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소문까지 돌았었다. 현재 검찰이 풀어내는 보따리 속 내용물의 상당수가 이미 과거 내사 때 확보된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검찰은 준비돼 있는 상태였다.

이번 CJ 사건은 한국 재벌비리사의 낡은 페이지를 마감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총수가 사적 이익을 위해 회사에 피해를 입히거나, 파렴치한 경제범죄를 저질러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을 경우 대주주로서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등의 제도적 입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잠시 감옥에 갔다 나오면 다시 ‘나라님’(임금·CJ 전 재무팀장이 이 회장을 호칭한 표현)처럼 거대 그룹을 호령하는 관행은 끝내야 한다.

과거에 기업에 대해 사정의 칼날이 몰아치면 재계와 정치권 등에서 기업 활동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곤 했지만 이번엔 그런 역풍이 거의 불지 않는다. CJ가 힘센 집단에 우군이 없어서일까? 채널A 기자의 가슴 찡한 특종기에서 해답을 찾아볼 수 있을 듯싶다.

사회부 최석호 기자는 검찰 압수수색 직후 장충동 이 회장의 집을 찾아갔다. 이 회장 집 옆 빌라의 70대 초반 경비원 A 씨에게 아침 상황 CCTV를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A 씨는 거절했지만 세 번이나 찾아와서 공손하게 부탁하는 최 기자에게 결국 CCTV 화면을 보여줬다. 화면 속에는 압수수색 수시간 전에 CJ경영연구소 직원들이 증거 인멸을 위해 자료를 빼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최 기자는 이 장면을 휴대전화에 담았고 채널A 뉴스에 특종 보도됐다.

며칠 후 A 씨가 사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최 기자는 가슴이 찢기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A 씨를 찾아갔다.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 최 기자에게 A 씨는 “동네 빵집까지 다 뺏어간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화면을 보여줬다. 내가 도의상 사직한 거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최 기자를 껴안아주며 “나는 괜찮다. 너는 돈 먹지 말고 기자생활해라”며 등을 두드려줬다.

필자는 그 경비원이 우리 사회의 평범한 시민인 동시에 ‘작은 거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은 아무리 장사에 능한 기업이라도 세상의 인심을 잃으면 장기적인 번성과 발전은 기약하기 힘듦을 경종처럼 알려준다. CJ가 저렇게 난타당하는 건 언론이나 검찰에 우군이 없어서가 아니라, 골목민심이라는 천심을 잃어서가 아닐까.


이기홍 사회부장



http://news.donga.com/3/all/20130606/55668680/1



Posted by 겟업
2013. 9. 19. 17:46

서울의 한 유명 음식점.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여자가 휴대전화를 꺼내 접시에 바짝 들이대고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구도를 바꿔가며 여러 번을 찍고 지운다. 맞은편 남자는 젓가락을 든 채 여자 친구의 ‘신성한 작업’이 어서 끝나기를 기다린다.

다른 테이블도 사정이 비슷하다. 이처럼 ‘선찍후식’(먼저 찍은 후에 맛보기)은 여성들 고유의 문화가 된 지 오래다.

한 인터넷 조사회사가 여성들에게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67%가 ‘음식’이라고 응답했다. 특히 미혼의 경우 그 비중이 유독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음식을 자주 만들지는 않지만 먹는 것은 매우 좋아한다”고 답했다. 밖에서 사먹는 음식이 맛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남자들에게 음식이란 ‘허기를 채우기 위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혹은 ‘어디서 먹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장시간 고민하는 남자는 드물다.

여자들은 다르다. 메뉴 결정이 쉽지 않으며 한참을 기다리더라도 ‘인정받은 맛있는 집’에서 대표 메뉴를 앞에 놓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음식이 나와도 곧바로 먹지 않는다. 인증 사진부터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다.

이제 맛집은 우리 시대 최고의 즐거움이자 이야깃거리가 됐다. 20∼40대 여성들에게 맛집은 블로그 혹은 SNS와 ‘연관어’로 여겨질 만큼 한 몸체로 붙어 있다. 여성들이 블로그나 SNS를 통해 강조하려는 메시지는 이렇다. ‘나, 이거 먹고 있다!’ 자신의 행복한 경험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음식은 개인을 넘어 관계로 확장된다. 여성에게 ‘맛’이란 ‘분위기’를 포함한 단어다. 그들의 호불호 판단에는 ‘어떤 분위기에서 누구와 함께 식사를 했느냐’가 종합적으로 작용한다. 맛있는 음식을, 통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다면 여성들에게는 그 순간이 행복의 절정이다. 그들은 경험의 공유에서 최고의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생동감 있는 사진과 아기자기한 이야기로 블로그를 꾸며 사람들의 호기심과 공감을 끌어낸다. 남자들에게는 ‘잘 먹으면 끝’인 식사가 여자들에게는 공유할 수 있는 스토리로 재탄생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경험을 나누려는 여성들의 성향을 미래 기업 활동의 주요 모티브로 꼽는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톰 피터스는 “스타벅스나 할리데이비슨 같은 회사야말로 경험을 팔아 성공한 새로운 전형을 보여준다”며 “앞으로는 기업의 부가가치가 경험의 질(Quality of Experience)에서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상복 작가



http://news.donga.com/3/all/20130601/55558862/1



Posted by 겟업
2013. 9. 19. 17:45

지금 서강대 로욜라 도서관 전시실에서는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전시회 하나가 열리고 있다. 21일까지 계속될 이 전시회의 이름은 ‘자랑스러운 한국의 딸 조창수’.

생소했던 이름의 이 여성에 관한 전시회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홀로 전시회의 이름을 ‘문화전사 조창수’라고 바꿔 되뇌어 봤다. 말하자면 그녀는 천신만고 끝에 프랑스로부터 외규장각 의궤 297권을 반환받은 박병선 선생이나, 약탈당한 조선왕조실록의 반환을 위해 분투해온 도쿄 고려박물관의 이소령 여사와 같은 계열의 인물인 셈이다. 전 생애를 바치다시피 하여 우리 문화재 반환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삶의 족적이 몇 장의 흑백사진과 일기, 그리고 소박한 유품들 속에 묻어 있었다.

1925년 평양에서 태어난 그녀는 말하자면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원 없이 공부한 신여성이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이 보장될 수 있었지만 그 삶의 족적은 결코 녹록지 않았는데, 어찌 보면 이것은 순전히 그녀가 자의적으로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 

일본 여자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고 그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민속학으로 석사를 마치면서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는데 이 기간에 그녀는 미국으로 불법 반입된 고종과 순종의 옥새 등 100점에 가까운 국보급 문화재를 찾아내 모국의 국립박물관에 반환시키는 등 우리 문화재 발굴과 반환에 생애를 불태우다시피 했다. 박물관에 재직하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 민속 등을 알리는 스무 권 넘는 책을 썼고, 2007년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한국관 개관을 위해서는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병선 선생 역시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분관 폐지창고에 버려지다시피 했던 의궤를 비롯해 귀중한 우리 문화재를 반환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마침내 이 문서들이 145년여 세월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한 후 눈을 감았다.

조창수 여사 또한 대한제국 때 제작된 고종과 순종의 황제 어보(御寶)와 명성황후 옥보 및 그 외의 왕실 보인과 국보급 문화재들의 발굴과 반환을 위해 진력하다가 평생의 소원이었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한국관 개관을 위해 전 재산을 기부한 후 서울에 돌아와 외아들인 에릭 스완슨(서울 힐튼호텔 총지배인)의 품에서 84세로 영면하게 된다. 아들은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그녀의 소중한 문헌자료 357권을 전시회와 함께 서강대에 기증했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을 때 황제어보를 제작해 국가의 독립과 자존을 알리고 싶었던 고종과 순종의 마음, 그리고 비명에 간 명성황후의 구천에 떠돌았을 원혼을 위로하여 고국으로 돌아오게 했던 그녀 또한 가진 모든 것을 바치고 고국으로 돌아와 한 줌 재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시회의 벽면 한쪽에는 그녀의 남동생인 조창호 중위에 대한 일대기가 역시 희미한 흑백사진 속에 기록으로 남겨져 있어 이채로웠다. 조창호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6·25전쟁 때 북한에 끌려갔다가 40여 년 만인 1994년에 탈출한 국군포로로 기억된다. 그는 같은 해 11월 육군사관학교에서 중위로 전역식을 갖고 43년 3개월이라는 최장기 군 생활을 마감했다. 꽃다운 나이에 헤어져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국과 북한에 헤어져 살던 오누이는 서울에서의 짧은 해후 끝에 각각 유명을 달리하게 되는 기구한 운명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벽면 또 다른 한쪽에 붙어 있는 시 ‘우리도 당당하게 살기 위하여’도 유난히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 시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한국관 개관을 위해 미국 교민들이 힘을 모을 때 그곳의 한 시인이 썼다고 한다.

‘(…)눈바람 씻기운 광개토왕비/반짝이는 신라의 정교한 금관/은은한 고려청자/소박한 이조 백자에서/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찾습니다/이 세상의 누군가 우리들만큼 한국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몇 년을 여기 더 살아도 우리들은 모두 한국인입니다/우리들 아들딸들이 태어나 여기 살아도 그들은 모두 한국인입니다/“당신은 어디서 왔나요?”라고 물으면/코리아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그들은 모두 한국인입니다/만국민 모여 사는 이 북미 대륙에 우리도 당당하게 살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반만년 한국예술을 지켜야 합니다/우리는 한국예술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누구나 ‘(밖에) 나가 살다보면’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이역만리에서 문화재를 만났을 때 그것은 바로 나와 내 조상을 만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들을 고이 지켜 고국에 돌려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야말로 전선에 나가 총 들고 싸우는 전사의 마음과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6월이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시기여서만은 아닐 것이다.

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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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6:59

외출하고 들어온 전두환 대통령. 황급히 경제수석을 찾는다. “임자, 중앙은행이 독립한다고 하는데 뭔 소리야?” 대통령의 다급한 질문에 가슴을 쓸어내린 박영철(현 고려대 석좌교수) 수석. 이내 안정을 찾으며 차분히 설명한다. “중앙은행은 원래 독립성이 보장돼야 하고….” 묵묵히 듣던 전 대통령,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청와대 차관회의에서 재무부 차관이 지목됐다. “네, 재무차관 ○○○입니다.” 이어지는 전 대통령의 질문. “금리, 내리는 게 좋은가, 올리는 게 좋은가?” 느닷없는 물음에 머뭇거리자 누군가 도와준답시고 손을 아래로 향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예, 내리는 게 좋습니다.” 그러자 전 대통령이 씩 웃으며 의기양양하게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시장에 맡기는 게 좋아.” 

전 대통령 시절은 경기가 좋았던 때였다.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로 유례없는 호황을 톡톡히 누렸다. 경제에 관한 한 역대 정부에서 그만큼 운이 좋았던 대통령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꼭 운만이었을까. 그는 경제 무식자를 자처하면서 유능한 관료들을 대거 발탁했고, 그들의 조언을 잘 듣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흐른 지난달. 미국 순방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이 뉴욕에 들렀다. 성대한 교민 행사도 치렀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이 했던 일이 빠졌다. 그것은 뉴욕증권거래소 타종 행사와 월가 거물들과의 회동이었다.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참, 안타깝다. 이 행사는 꼭 했어야 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아마 이 사안의 중요성을 조언해줄 사람이 없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현 정부에서 그나마 국제금융통이랄 수 있는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대통령 수행단 멤버가 아니었다. 
지난 4월엔 호칭(何晶)이란 이름의 싱가포르 여성이 극비리에 한국을 찾았다. 그는 세계적인 투자기관 싱가포르 테마섹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 이 정도라면 ‘아, 그런 사람이 온 거구나’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여성,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의 며느리이자 리셴룽(李顯龍) 현 총리의 부인이다.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리콴유가 누구인가. 독립 싱가포르 총리로 26년간 재직했고, 작은 도시국가를 세계 수준의 나라로 탈바꿈시킨 최고 실력자 아닌가.

그런 호칭 회장은 박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했다. 하지만 불발됐다. 당시엔 북핵 위기가 고조될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그를 접견하지 못한 것을 두고 아쉬워하는 금융인이 적지 않다. 특히 호칭 회장은 테마섹 고위 간부들을 몽땅 데리고 방한했다. 원래는 전 세계 글로벌 센터장 500여 명을 모두 한국으로 불러들일 생각이었다. 그만큼 한국 투자에 엄청난 관심을 가졌다. 실제 그는 국내 주요 투자기관 사람들과 접촉했다. “아무리 중대 위기 상황이긴 했어도 대통령은 호칭 회장을 꼭 만나야 했습니다.” 경제 고위 관료를 지낸 한 인사의 얘기다.

경제가 몸이라면 금융은 심장이다. 심장은 우리 몸의 피를 잘 돌게 한다. 경제에서 피는 곧 돈이다. 돈이 잘 돌아야 우리 경제가 잘 굴러간다. 심장은 커도 안 되고 작아도 안 되지만, 작동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다. 혈액순환이 어려우면 몸이 마비되듯, 돈 흐름이 막히면 경제가 멈춘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여러 번 경험했다.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다. 금융사고는 터지면 대형이었다. 이처럼 국가 운명까지 좌지우지하는 게 금융이라 대통령이 금융에 무관심하면 나라가 흔들릴 수 있다. 오죽하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금융을 톱 프라이어리티(최고 우선순위) 정책으로 삼을까. 

그렇다고 대통령이 금융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유능한 사람을 두루 만나 귀담아들으면 된다. 그전 정부 인사라고 배제할 까닭이 없다. 5공 정부 재무부 장관을 지낸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도 활약했고, 이명박정부에서는 서울 G20 정상회의 유치의 일등공신이었다. 금융에서는 오히려 젊은 피보다 노련미 넘치는 사람이 좋다. 환자들이 대형병원을 찾는 이유는 수술 경험이 많은 의사들이 포진해서다. 패기가 경륜을 이길 수는 없다.

정선구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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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6:58

“스님, 지원했던 대학에서 다 떨어졌어요. 지금 저 자신이 너무 초라하네요. 다시 공부를 해야 되는데 마음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임용고시 준비를 3년 했어요. 그런데 같이 준비하던 친구들은 다들 붙었는데 저만 또 떨어졌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시험을 다시 준비해야 할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할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회사를 그만두고 가게를 시작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손님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식구들 볼 면목도 없고 경제적으로 힘들어져서 의기소침해 있습니다. 스님께서 기운을 좀 북돋아 주세요.”

내 인생에 찾아온 첫 번째 실패는 너무도 아픕니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지요. 실패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때 ‘설마’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경쟁률이 높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설마 합격하겠지, 요즘 경기가 안 좋다지만 열심히 하면 내 가게만큼은 설마 성공하겠지 하고 막연한 상상을 합니다. 시험에 떨어지고 난 후, 가게가 망하고 난 후 어떻게 할지를 구체적으로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열심히 산 사람, 목표만 바라보고 열심히 달려온 사람의 경우에는 그 꿈이 좌절됐을 때 다른 대안은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앞이 더 캄캄합니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사람일수록, 큰 어려움 없이 순탄하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자신의 인생 앞에 찾아온 첫 번째 실패 앞에서 더 크게 좌절합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지금 같은 실패가 내 인생에서 수십 번은 더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요. 앞으로도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이 무수히 많을 거라는 사실을요. 그리고 이런 좌절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겪어내야 한다는 사실을요. 즉 지금 실패는 아주 정상적인 경험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패를 경험했다고 해서 내가, 내 인생 전체가 ‘실패자’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내게 결함이 있어서도, 내가 남들보다 못나서도 아닙니다. 단지 실패는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나의 접근 방식이 잘못 되었구나’를 가르쳐주는 귀중한 계기일 뿐입니다. 그래서 냉정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지금의 실패가 나에게 준 가르침이 무엇이지?’라고 말입니다. 실패의 원인에 대한 답이 정확하게 나와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이 빠지면 똑같은 실패를 또 한 번 반복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승려가 취직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면 좀 우습지만, 저도 미국에 있는 대학 교수 임용 과정에서 쓰라린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가장 마음에 두었던 대학에서 불합격 소식을 듣고 난 후 저는 큰 좌절감에 빠졌습니다. 아직 다른 학교 인터뷰가 여러 군데 남아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 능력에 대한 총체적인 의문도 들고 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새벽에 깨서 내가 왜 그 학교에 떨어졌을까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모습을 그냥 잘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이 틀렸던 것입니다. 학교가 원했던 것은 노력하는 내 최선의 모습이 아니고, 그 학교가 지금 필요로 하는 능력을 이미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즉 저는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데 너무 안일했던 것입니다. 무슨 일을 도모할 때 그 일이 잘되려면, 그 일의 시작이 내가 되면 안 되고 상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 실패를 통해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지금 대학 입시에 실패해서 힘드신가요? 그렇다면 그냥 좀 더 열심히 공부하면 되겠지 막연히 생각하지 말고, 어떤 잘못된 습관 때문에 성적이 오르지 않는지 구체적으로 답을 찾아보세요. 지금 고시에 떨어져서 방황하시나요? 이번 딱 한 번만 더 시험에 도전해보고 안 되면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가족들 앞에서 맹세하세요. 마지막이라고 다짐을 하면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하게 될 것이고, 설사 훗날 다른 길을 가게 되더라도 ‘그때 조금만 더 해볼걸’ 하는 후회를 남기지 않습니다. 가게가 망해서 좌절하셨나요? 그렇다면 왜 망했는지 누구 탓할 생각하지 말고 냉철하게 스스로에게 그 원인을 물으세요. 혹시라도 재도전하게 된다면 준비 기간을 처음보다 세 배 이상의 시간을 가지고 철저하게 분석하고 준비하세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실패, 그 실패를 경험할 때마다 나만의 인생 노하우가 쌓이게 된다는 점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재기를 응원합니다.


혜민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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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6:51

요즘 현대차는 외부 손님이 오면 주로 남양기술연구소로 데려간다. 그곳엔 공대를 졸업한 연구원들이 밤낮없이 신차종 개발에 땀을 흘린다. 현대차가 과거에 자랑하던 생산라인은 공개를 꺼린다. 제조비밀 때문이 아니다. “도요타 등 다른 공장들을 둘러본 자동차 전문가는 한눈에 현장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챈다. 작업 분위기가 느긋하고 느슨하다고 한다. 이대로 가면 미래가 어둡지 않으냐는 반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오히려 남양연구소를 둘러보면 손님들의 표정이 좋아진다”고 했다.

현대차의 국내 생산 비중이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생산효율성 지표인 HPV(자동차 1대 만드는 데 투입된 근로시간)는 해외 공장들이 울산 공장의 절반 수준이다. 현대차 노조의 투쟁 대상이 사용자라는 건 착각이다.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는 해외 공장의 값싸고 질 좋은 근로자다. 그런 사실을 간파한 현대차 노조는 단체협상 때마다 꼼수를 부린다. 해외 공장을 세울 때 노조 동의를 받으라고 우긴다. 나아가 글로벌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달라고 고집한다. 스스로 경쟁력이 떨어지니 해외 공장과 해외 판매법인이 올린 이익에 숟가락을 얹겠다는 것이다.

현대차 노조는 10년 넘게 좋은 시절을 누렸다. 강력한 투쟁의 산물처럼 보이지만, 진짜 비밀은 따로 있다. 1999년 정몽구 회장 취임 이후 현대·기아차의 생산량은 연산 202만 대에서 올해 750만 대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더라도 우선 시장 수요를 맞추는 게 중요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현대·기아차의 판매량이 해마다 40만~50만 대씩 늘어나는 신화를 언제까지 이어갈지 의문이다. 판매량이 주춤거리는 순간 어느 공장부터 감산할지 눈감고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이미 일본이 밟아온 길이다. 도요타의 국내 생산비중은 40%, 혼다는 27%, 닛산은 20% 아래로 떨어졌다.

더 이상 삼성전자를 국내에 붙들어 두기도 무리다. 현재 구미 공장의 스마트폰 생산은 연간 3700만 대. 그 10배인 3억7000만 대를 베트남과 중국 공장에서 만든다. 까다로운 신제품인 갤럭시S4는 처음으로 구미·베트남·중국에서 동시에 생산한다. 품질은 똑같고 생산수율도 엇비슷한 수준이다. 이에 비해 고졸 초임의 월 급여(기본급·상여금·법정보험 포함)는 구미가 3284달러, 베트남이 250달러다. 잔업과 휴일근무까지 포함해도 베트남의 평균 인건비는 구미의 10% 수준이다. 게임이 안 된다.

첨단 공장은 국내에 남으리란 기대는 순진한 환상이다. 삼성은 최첨단인 20나노급 반도체와 8세대 LCD공장을 중국에 지었다. 회사 측은 “컴퓨터와 휴대폰의 세계 최대 생산거점이 중국이다. 반도체·LCD 수요가 가장 많은 곳에 부품 공장을 짓는 건 당연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삼성이 당초보다 한 세대 앞선 첨단 공장을 내보낸 데는 중국의 집요한 작전이 숨어 있다. 중국은 LCD 같은 핵심부품의 관세를 3%에서 5%로 끌어올려 현지 진출을 압박했다. 기술 유출은 삼성도 겁내는 대목이다. 하지만 미국·대만 경쟁기업들의 중국 공장이 승승장구하는 건 더 끔찍한 장면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중 때 시안의 삼성 반도체 공장을 둘러볼 모양이다. 시진핑의 정치적 고향을 방문하는 포석도 깔려 있다. 그러나 청와대가 베이징현대차 공장 방문에는 난색을 표한다고 한다. “굳이 재벌 공장을 둘씩이나 둘러보면 국내 정서가 악화될 수 있다”며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지나친 정치적 판단이다. 박 대통령이 내친김에 두 공장을 함께 둘러봤으면 한다. 만약 그곳에서 “뻗어나는 우리 국력을 느꼈다”고 하면 반쪽만 본 것이다. 시안의 반도체 공장은 무려 8조원을 쏟아부은, 단일 투자로는 역대 최대다. 앞으로도 첨단 공장마저 계속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란 신호를 읽을 수 있다. 아마 베이징현대차 공장에는 울산에서 가져간 헌 장비들이 곳곳에서 눈에 띌 것이다. 그럼에도 HPV는 19.5시간으로, 울산 공장의 30.7시간보다 생산성이 훨씬 높다.

이 두 공장은 우리 경제의 냉엄한 현주소를 짚어볼 수 있는 불편한 진실이다. 박 대통령이 이런 쓰라린 역설의 현장을 두루 둘러보았으면 한다. 어쩌면 박 대통령이 중국에서 마주칠, 북한 핵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일지 모른다. 옛날부터 신(神)은 선물을 항상 고통의 보자기에 싸서 보낸다는 말이 있다. 귀족노조와 정면 승부 없이 한국 경제가 되살아날 우회로가 있을까. 서비스업 기득계층과 맞서 과감한 규제완화 없이 일자리를 늘릴 수 있을까. 우리는 너무 오래 문제의 본질을 애써 외면해 왔다. 더 이상 기업들의 막연한 애국심만 믿을 때가 아니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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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3. 9. 19. 16:35

요즘 갱스터 영화에서나 들었음직한 외래어 하나가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원자력 마피아'. 한국 원전의 가장 커다란 문제가 학맥으로 촘촘히 얽혀 있는 매우 좁은 '전문가 집단'에 의해 폐쇄적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원전 정책과 산업의 핵심을 이루는 '미래창조과학부',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 그리고 원전의 안전점검을 담당하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전문가들이 모두 서울대, 카이스트 등의 특정 학맥으로 얽혀 있다고 한다. 원자력과 같은 거대 위험기술이 폐쇄적 집단에 의해 계획 개발되고, 운영된다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전문가 집단을 그 악명 높은 이탈리아 갱 조직인 마피아에 비유할 수 있단 말인가.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 중의 하나로 꼽히는 것도 공무원이고, 가장 우수한 인재가 몰리는 집단도 관료조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요즘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관료 '마피아'라는 낱말은 단순한 과장처럼 들린다. 우리 국민 모두가 선망하는 최고의 엘리트들이 마피아라니 가당하기나 한 일인가? 우리가 탐욕스러운 관료집단을 마피아라고 비난하면서도 이런 의문이 깊어지는 까닭은 우리사회가 여전히 가방끈을 너무나 중시하는 학벌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피아는 전문가 집단의 폐쇄성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단순한 외래어가 아니다. 마피아는 온갖 사회적 불의의 온상이 되고 있는 우리 학벌사회의 현주소이다. 이 점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이제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어떻게 최고의 학벌을 가진 지식인 전문가집단이 국민의 생명을 놓고 장난치는 범죄자 집단으로 변한 것인가? 원자력을 기획 개발하거나 점검하는 전문가들은, 한 사람 한 사람 놓고 보면, 모두 훌륭한 분들이다. 그들의 상식과 양심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식과 능력에 있어서는 그럴 것이다. 모두 좋은 대학에서 많이 배운 사람들이다. 소위 말하는 식자(識者)층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엘리트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기에 최소한의 양심도 져버리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것일까? 그들은 사회에 나가 써먹을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배웠지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지성과 양심은 배우지 않은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도 쉽게 내릴 수 없다면, 가능한 답은 한 가지다. 전문가들 개개인은 능력도 탁월하고 도덕성도 괜찮을 수 있지만 하나의 폐쇄적 집단을 이루면 이상한 사람들로 변하는 것은 집단논리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봐주는 폐쇄적 집단이 바로 '마피아'이다. 마치 하나의 가족처럼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갖고 있는 이탈리아의 마피아가 지연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현대 한국사회의 관료마피아는 학연을 통해 형성된다. 그들은 특정 분야의 지식을 토대로 정책 개발에서 집행, 평가와 통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독점하여 '끼리끼리 뒤 봐주기' 문화를 형성한다. 폭력이 아니라 지식을 수단으로 삼고, 지연과 혈연이 아닌 학연을 끈으로 삼기 때문에 이들의 폐쇄성은 더욱 교묘하고, 범죄성은 더욱 교활하다. 이처럼 지식을 토대로 사회에 중요한 모든 것을 독점하여 사적 이익을 취하는 21세기 한국사회는 '식자독식'(識者獨食) 사회이다. 

식자독식 사회는 그야말로 배운 사람들이 다 해먹는 사회다. 이 사회가 무서운 까닭은 배운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마치 국민 전체의 이익인 것처럼 위장하는 천부적인 재주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전문가 집단이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외래어 마피아의 어원을 생각해 본다. 마피아(mafia)라는 낱말은 본래 은신처를 제공하는 동굴이라는 뜻의 시칠리아 방언 마피에(mafie)에서 왔다고 한다. 

동굴 속에 갇힌 인간은 대개 자신들이 본 그림자만을 진리라고 여기면서 오류를 저지른다. 식자독식 사회를 구성하는 전문가 집단은 이런 동굴의 우상을 숭배하는 학벌 집단이다. 이들을 동굴로부터 끌고나와 특정분야의 '지식'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지성'이 아니라는 점을 따끔하게 가르쳐줄 수는 없을까?



이진우 포스텍 석좌교수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6/h2013061321010112176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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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6:32

싱가포르는 작지만 국가경쟁력이 세계 1, 2위인 나라이다. 교육경쟁력도 상당하다. 이런 경쟁력의 뒤에 싱가포르국립대(NUS)가 있다. 싱가포르국립대는 1905년 개교한 학교로, 100여 개 국가에서 온 교수와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타임지 선정 2012년 세계 대학 순위에서 세계 23위, 아시아 2위를 기록했고, 2012년 QS 세계 대학평가에선 세계 25위, 아시아 2위에 올라 있다. 이 대학의 비전은 세계를 리드하는 아시아 중심 대학이다. 당연히 세계를 향해 캠퍼스가 열려 있다. 캠퍼스만 열려 있다고 세계 유수 대학과 연구소, 학생이 모이지는 않는다. 글로벌화를 지향하는 꾸준한 노력들이 합쳐져야 가능한 결과다. 따라서 필자는 이런 싱가포르국립대의 글로벌화 노력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대학의 글로벌화 노력은 놀라운 수준이다. 우선 하버드대, 듀크대, MIT, 조지아텍 등 국제적으로 최상위권 대학들과 70여 개의 복수 학위를, 35개의 조인트 학위과정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40여 개국의 300개 대학과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또 미국, 유럽, 중국, 인도, 이스라엘 등에 7개의 해외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해외 캠퍼스는 일부 유수 대학과 파트너 캠퍼스 운영협약을 맺고 NUS 캠퍼스를 운영하는 것이다. 미국 실리콘 밸리의 스탠퍼드대, 필라델피아 바이오 밸리의 펜실베이니아대, 중국 상하이의 푸단대, 베이징의 칭화대 등이 이에 해당된다. 싱가포르국립대는 또 국제연구대학연맹(IARU), 환태평양대학협회(APRU) 등 국제적인 대학연합체에 가입해 대학을 홍보하고, 자신의 수준을 알리고 있다.

특이한 것은 대학 비전인 세계를 리드하는 아시아 중심 대학을 만들기 위해 관련 연구소를 여럿 설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아시아연구소, 남아시아연구소, 글로벌아시아연구소, 중동연구소 등이 그것이다. 이런 아시아 연구와 함께 자본주의 문제, 재정과 위기관리 등 세계의 당면과제에 대한 심층연구를 통해 글로벌 연구기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 이 대학은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미래의 블루오션을 인문학으로 보고 인문학을 중점적으로 발전시켜 아시아의 인문학 허브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올해 미국 예일대와 합작으로 인문교양대학을 건립하고 학부생 150명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인문교양대학에서는 아시아와 서양의 문화를 동시에 학습하도록 하고, 10명 단위수업으로 토론중심의 수업을 실시한다. 이런 싱가포르국립대의 글로벌화 노력은 한국 대학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첫째, 대학의 글로벌에 대한 목표와 방향이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싱가포르국립대의 최종목표는 아시아에 있는 글로벌대학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세계 수준의 교육역량 확보와 함께, 아시아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의 인문학 허브가 되겠다는 포부는 신선한 도전이라 할 만하다.

둘째, 국외 최고의 대학들과 연계를 맺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 유수 연구소와의 공동연구, 협력연수, 최고 대학과의 공동 학위과정 운영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대학은 더 나아가 외국과 파트너 대학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은 분교형식보다 효율성 면에서 유리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셋째, 글로벌 파트너십을 중시한다. 세계 대학연합체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대학의 글로벌화 방향 설정 및 대학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사회가 당면한 문제연구를 통해 대학이 글로벌 연구기관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싱가포르판 브루킹스연구소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현재 국내 대학도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 서 있다. 이제 한국의 대학들도 싱가포르처럼 한국형 글로벌대학을 탄생시킬 때가 되었다.



구자억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6/h201306052101381120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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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6:29

탈북 청소년 9명이 라오스에서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사건으로 논란이 많다. 갖은 고난을 딛고 한국행을 꿈꾼 10대들이 우리 공관 잘못으로 다시 사지(死地)로 끌려갔다고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허술한 탈북자 보호를 탓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도 부산히 움직이는 모습이다. 

올바른 해법을 찾으려면 탈북자 문제의 근본적 딜레마부터 살피는 것이 순서다. 그렇지 않으면 요란하게 떠들다가 이내 관심을 잃는 습관을 되풀이할 공산이 크다.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비분강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먼저 이번 탈북자들이 10대 '꽃제비'로 알려진 점을 주목할 만하다. 그 때문에 더욱 논란이지만, 라오스 정부로서는 '난민'으로 다루기 한층 어려웠을 수 있다. 유엔난민협약에 따른 난민은 인종 종교 또는 정치적 박해를 피해 탈출한 경우에 해당한다. '꽃제비'처럼 주로 경제적 이유로 탈북한 경우에 적용하기 어렵다. 

물론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은 자연재해와 기아 등으로 생명과자유를 위협받는 이는 모두 난민으로 간주, 인도적 보호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본국에 송환되면 처벌받을 것이 명백하면 난민으로 인정할 것을 권고한다. 그러나 난민 인정은 국제법적 강제력은 없어 주권국가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라오스는 중국을 거쳐 입국한 탈북자 1,000여명의 한국행을 조용히 도왔다. 이번에는 이런 외교적 '신사협정'을 어겼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 배경은 알 수 없다. 때마침 라오스 고위층이 평양을 방문 중이었던 사실에 주목할 뿐이다. 어쨌든 '꽃제비' 9명이 집단으로 한국행에 성공, 여느 때보다 떠들썩하게 북한 인권과 탈북 참상이 국제 조명을 받을 것을 라오스도 꺼렸을 수 있다. 라오스와 중국을 무작정 비난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과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탈북자 문제, 탈북자 정책의 핵심은 중국의 북한이탈주민 정책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에 있다. 이에 관해 양길현 제주대 교수 등이 최근 발표한 연구결과(<국가전략> 2013년 19권1호:세종연구소)는 조용한 '중국 설득'과 탈정치적 국제 공조 및 배후지원 정책을 권고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중국은 탈북자 문제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이다. 현재 5만 명으로 추정되는 동북 3성의 탈북자를 방치하면 접경지역의 안정을 해친다. 또 탈북자가 늘어나 북한 체제가 흔들리면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협한다. 이 때문에 탈북자와 지원단체를 단속하고 북한의 탈북자 추적을 돕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을 인도적 차원을 넘어 국제법적으로 비난할 근거는 부족하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비판을 의식, 탈북자 지원단체의 조직적 기획으로 우리 공관이나 국제기구 사무소로 들어간 탈북자를 제3국 추방 형식으로 한국과 미국으로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기획 망명' 또는 '기획 입국'은 탈북자 문제의 국제 여론화 효과 못지않게 탈북자 단속을 재촉, 다수 탈북자를 희생시키는 부작용이 크다. 

이처럼 탈북자 문제는 중국과 우리가 함께 안고 있는 딜레마다. 옛 서독처럼 탈북자를 우리 국민으로 간주해 적극 보호하라는 주장이 있지만, 서독과 우리의 국적 규정과 국제정치 역학 및 영향력은 다르다. 중국 국익을 무시한 채 탈북자 인권을 부각시키는 '인권 정치'는 바람직하지 않다. 탈북자들이 대개 강제송환 위협이 없으면 북한과 끈을 잇기 쉬운 중국 체류를 원하는 사실도 유념할 만하다. 

여러 조건을 고려할 때, 북중 접경지역 등에 정착촌 개념의 수용시설을 설치해 강제송환 없이 탈북자를 보호하도록 중국을 조용히 설득하는 국제공조 노력이 필요하다. UNHCR이 수용소를 관리하고, 우리는비용을 일부 지원하는 방식이다. 그것이 탈북자 정책의 근원적 딜레마를 정직하게 헤아린 현실적 해법이라는 학자들의 권고를 새겨들을 만하다.


강병태 주필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6/h201306032103012440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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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6:18

불안하다. 미래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르기는커녕 숨이 턱턱 막힌다.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앞선 세대는 괜히 밉지만, 저항해야 할 마땅한 명분도 없고 싸울 힘도 없다. 요즘 청년들 마음이 그렇다. 스무살 먹은 대학생이나, 40대를 넘나드는 늙은 청년이나 비슷한 처지다.


먹고살기 어려워서 그렇다고?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렵던 과거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1980년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금의 5분의 1에도 못 미쳤다. 그런데 그때 이 나라 대학생들은 시대를 호령했다. 언론이 통제되던 시절, 그 젊은이들이 쓴 대자보와 유인물은 조간신문과 텔레비전 뉴스보다 훨씬 크게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숨죽여 시대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던 직장인들마저 결정적인 순간 넥타이부대로 변신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민주화를 외쳤다.


그들이 386세대다.


조금 더 시계를 되돌려 보자. 1970년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금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국제사회에서 이 나라는 전쟁으로 피폐해진데다 군인이 지배하는 후진국으로 여겨졌다. 그때 이 나라의 젊은 공무원과 기업가들은 미래 경제를 기획했다. 중화학공업을 키우고 수출강국을 만들겠다고 외쳤다. 무리해 보이는 투자를 감행해 고속도로와 철도를 깔고 제철소와 자동차공장을 세웠다. 기업가와 노동자들은 피땀 흘려 세계를 뛰어다니고 뜨거운 공장에서 청춘을 바쳤다. 산업화의 역군을 자처했다.


그들이 베이비붐 세대다.


1980년대에 민주화란 비현실적 판타지였다. 산업화 역시 1970년대 당시에는 몽상이었다. 그야말로 사회적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그 상상력은 결국 현실의 벽을 깨뜨리고 세상을 바꿨다. 이런 경험은 그 두 세대의 자부심으로 진화했다.


그런데 그 이후, 이 나라에는 사회적 상상력이 사라졌다. 현실 자체도 답답하지만, 이걸 넘어선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큰 그림이 없다는 사실에 더 숨이 막힌다.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은 상상이 사라진 자리에 무성해진다. 새로운 세대의 불안과 답답함의 이유가 여기 있다.


애써 상상력을 가져보려 해도 사회 시스템이 이를 가로막기 일쑤다. 한국 사회는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단단하게 굳어버렸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헌신을 자산으로 쌓은 성이 됐다. 새로운 세대는 희생 없이 풍요와 민주주의를 즐기는 ‘무임승차자’라는 무형의 부채에 시달린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마추어적이라고 놀림받는다. 세상은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벽같이 느껴진다. 당연히 자신감도 자부심도 갖기 어렵다.


그래서 일부는 ‘함께 꾸는 꿈’보다는 ‘혼자 꾸는 꿈’에 골몰한다. ‘스펙 쌓기’ 현상이 그래서 일어난다. 일부는 세상을 조롱하며 비뚤어진다. ‘일베’ 현상이 이를 상징한다.


네덜란드 사회학자 프레트 폴락이 기념비적 저서 <미래의 이미지>에서 설파했던 것처럼, 사회 변화는 미래와 과거가 밀고 당기는 가운데 일어난다. 이상적인 미래의 이미지가 앞에서 끌어당기고, 현실화된 과거가 뒤에서 밀어야 사회는 진보한다. 사회적 상상력이 사라지면 진보의 시계는 멈춘다. 거대한 벽 앞에서 좌절해 쓰러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벽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다.


지금은 새로운 세대가 앞장서서,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새로운 미래 이미지를 상상하기 시작할 때다. 그 상상력이 불안을 해소하는 첫걸음이다. 베이비붐 세대와 386세대는 길을 열어주고 도와야 한다. 민주화의 판타지, 산업화의 몽상에 젖어 있던 시절, 그들은 모두 청년이었다. 함께 묻고 상상하고 대답해야 한다. 당신이 꿈꾸는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이원재 경제평론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893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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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5:41

거리를 행진하는 군인들은 보이지 않는다. 통행금지나 검열 또는 계엄령도 없다. 카페엔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겉으로 보기엔 헝가리의 모든 것이 정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헝가리는 정상이 아니다. 뭔가 단단히 잘못돼 있다. 더 심각한 것은 헝가리의 자유사회를 침식하고 있는 암이 유럽 대륙의 다른 곳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1990년 내가 헝가리에 있을 때 청년민주동맹(FIDESZ)은 급진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대안의 정치를 내세운 혈기왕성한 정당이었다. 가입 자격은 35살 이하로 제한됐다. 당시 이 정당의 여름캠프에서 생기발랄했던 젊은 정당 구성원들과 축구경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정당이 대변했던 모든 것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그 스타일은 높이 평가했다. 그해 선거에서 이 정당은 9%를 얻었다.


오늘날 청년민주동맹은 더는 자유주의적이지도 않고 대안도 아니다. 젊은이들의 정당도 아니다. 빅토르 오르반 현 총리의 주도 아래 우파로 변신한 뒤 전통적인 정당이 되었다. 권력에 취한 이 정당은 권위주의에 빠져들었다.


2010년 선거에서 이 정당은 50% 이상의 득표를 했다. 급진 민족주의 정당인 요비크(Jobbik) 같은 동맹세력들과 함께, 오르반 정부는 의회의 3분의 2를 차지해 헌법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실제 오르반 정부는 헌법재판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 헌법을 도입했다.


그러나 청년민주동맹은 여전히 인기가 있다. 비판가들은 언론 통제가 긍정적 이미지를 유지하는 걸 돕는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공영 라디오와 텔레비전, 통신사의 경영진을 예스맨들로 교체했다. 또 민족주의를 이용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영토의 3분의 2를 축소시킨 트리아농조약을 기념하기 위해 ‘민족 단결의 날’을 만들었고, 호르티 장군의 독재정권을 복권시키기 시작했다.


이런 민족주의의 이면에는 인종주의와 외국인 혐오가 있다. 청년민주동맹의 공동 설립자인 졸트 바예르(Zsolt Bayer)는 “상당수의 집시는 함께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이들은 동물이며 동물처럼 행동한다”라고 썼다. 교육부 장관은 학교 교육과정에 반유대주의 저자들을 추천했다. 청년민주동맹은 국가를 정당 구성원들과 친구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기구로 이용하고 있다.


이런 자유 억압적인 요소들은 유럽의 다른 곳에도 존재한다.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총리 시절 언론에 대한 국가 개입은 다반사가 되었다. 외국인 혐오와 인종주의는 그리스에서부터 스웨덴까지 모든 곳에서 더 강력해진 극우정당들의 본질적 요소들이며, 주류 보수주의 정당들조차도 반이민 정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부패 스캔들은 루마니아·스페인·슬로바키아·프랑스 정부에도 번졌다.


권위주의는 헝가리에만 독특한 것이 아니다. 카친스키 형제는 폴란드를 권위주의로 몰아넣었는데,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전 총리는 여전히 권좌에 복귀해 청년민주동맹과 같은 프로그램을 실행하길 원한다. 불가리아의 보이코 보리소프 전 총리도 비슷한 접근법을 취했다. 슬로바키아의 로베르트 피초 총리와 체코공화국의 바츨라프 클라우스 전 대통령, 그리고 옛 유고슬라비아의 여러 지도자들은 절대주의 경향을 보였다.


헝가리가 다른 점은 이런 모든 요소들이 합해져 반자유주의의 ‘퍼펙트 스톰’이 된 현상이다. 헝가리의 우파로의 선회는 단순히 몇몇 카리스마가 있는 개인들이 만든 결과가 아니다. 헝가리에서, 좀더 일반적으로는 유럽에서 자유주의는 스스로 무덤을 팠다. 자유주의적 경제모델은 소수를 위한 부, 대다수에겐 불확실성, 증가하는 소수인종에겐 극단적 빈곤을 가져왔다. 자유주의적 정치모델은 개인주의를 부추겼고, 이는 가족·이웃·공동체 단위의 연대를 침식했다.


‘자유주의적’이란 말이 더러운 말이 되었고, 청년민주동맹 같은 운동이 한때 이 지역에 많은 것을 약속했던 이데올로기의 정치·경제적 실패로 초래된 진공 속으로 휩쓸려 들어왔다. 유럽 지도자들은 부다페스트에서 나온 이 암의 번식에 대해 정말로 걱정해야 한다. 그들은 오래된 자유주의적 제도들이 충분히 강력한 면역시스템으로 기능할 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계속되는 경제위기와 민주주의에 대한 쇠퇴하는 믿음은 그런 악성 종양의 성장에 적합한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90083.html



Posted by 겟업
2013. 9. 19. 15:33

대학 새내기 시절, 한 선배가 했던 말을 잊지 못한다. 당시 교정엔 민족해방 계열 운동권의 “양키 고 홈”이란 구호가 넘쳐났는데 그와 내가 속해 있던 동아리는 그쪽이 아니었다. 그 선배는 민족주의란 여기에도 붙고 저기에도 붙는 맹목적 믿음이라는 식으로 비판을 펴는 와중에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민족주의는 창녀와 같다.”


그 말이 일으킨 불쾌감에 나는 순간 말을 잃었던 것 같다. 돌아보면, 그는 남자였고 나는 그 특정 직종에 종사하는 분들과 같은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그 뒤 이따금 이런 생각을 했다. 어떤 주의·주장에 대한 견해를 떠나, 생계를 위해 성매매 직종에 종사하는 분들을 그 어떤 나쁜 것의 상징으로 비유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그와 유사한 비유법을 20여년 만에 듣게 되었는데, 박근혜 정부의 입으로 기용됐던 윤창중씨에게서다. 그는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정운찬·윤여준씨 등을 “정치적 창녀”로 비유했다. 그 말이 문제인 것은 그 인사들에 대한 원색적 표현이어서가 아니다. 성매매 여성들의 인격과 인권을 모욕하고 짓밟기 때문이다.


그 여성들이 그런 식으로 비유되는 것은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사회적 약자인 탓이다. 지금도 어떤 나쁜 행위를 약자한테 떠넘기는 비유가 재생산되고 있다. 희대의 연쇄살인범을 두고 “짐승”이라는 둥 말 못하는 동물에 빗대는가 하면, 종종 정신병자니 사이코패스로 규정한다. 이런 비유는 정신병 환자에겐 이중 고통이다. 강자가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이다. 수전 손택의 말을 따르면, 누군가 ‘편집증적 사회’라고 말할 때 편집증은 그 사회가 극복해야 할 그 무엇을 은유한다. 편집증을 앓는 소수자를 배제해야 할 대상으로 밀어낸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정신병리나 이념(인종주의) 탓이 아니라 윤리의 결핍 때문이라고 보았다. 윤리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능력, 곧 양심이다. 성추행을 저지른 윤창중씨에겐 그것이 없었다.


허미경 책지성팀장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892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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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5:23

어느 날 우연히 서울의 큰 빌딩 앞에서 본 생경한 아침 풍경 하나가 잊히지 않는다. 회사의 수위 아저씨는 아주 밝은 얼굴 가득히 상쾌한 소리로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어서 오십시오, 아주 좋은 날입니다.” 옆에서 보는 내가 저절로 기운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는 아침 인사였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나는 그 자리가 무언가 낯설고 어색했다. 그 까닭은 다름 아닌 일방적 인사였다. 그 회사의 직원들 대부분이 수위의 인사에 그저 고개만 숙여 대응할 뿐, 눈을 마주하지도 않고 간단한 인사말도 건네지 않았다. 표정 없는 마주침이다. 분명 수위와 직원들은 한 발쯤의 거리인데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자리를 벗어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시스템과 매뉴얼만 있고 인간의 온기가 사라진 관계가 일상적으로 발견된다. 백화점, 호텔, 항공기, 열차, 고급 음식점 등에서 보게 되는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곳에는 종사하는 직원들의 미소와 깍듯한 인사가 있다. 그런데 그곳의 손님들은 대부분 인사와 미소에 응답하지 않는다. 일방적 관계가 당연한 관행인 듯하다. 성의 있는 눈길의 마주함과 마음 있는 표정의 부딪침에서 기쁨과 사랑이 발생하는 법인데 사이가 이러하니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계는 소통을 하고 있는데 인간은 불통을 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긴장과 억압의 일방적 관계 또한 곳곳에서 발생한다. 최근 큰 기업과 대리점의 관계가 그렇다. 그래서 갑과 을의 관계에서 감정노동자는 서글프고 경제적 약자는 억울하다. 그래도 ‘갑’에게 ‘을’은 자신의 표정을 숨겨야 한다. 당장에 ‘밥줄’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존엄한 인간이 밥 때문에 속내를 드러내는 맨얼굴을 숨기고 무표정하거나 비굴한 표정으로 화장까지 해야 한다. 이 모두가 돈을 주인으로 모시는 자본의 횡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돈의 시선이 아닌 인간의 시선으로 깊이 생각해 보자. 존엄해야 할 우리들의 ‘밥’과 ‘마음’이 돈에 휘둘리고 있는 현실을, 그리하여 돈으로 친절과 복종을 사고 그 사이에서 잠시 우쭐해하는 자신의 모습을. 이웃 사람의 감정을 억압하고 존엄을 짓밟아 얻는 행복은 얼마나 초라하고 서글픈 것인가.


이제 우리는 다시 한번 돌이켜야 할 지점에 있다. 우리, 서로, 모두가, 존엄해지기 위해서, 이웃에 대한 나의 표정부터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표정을 살리기 위해서 먼저 이웃에 대한 시선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먼저 나에 대한 시선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너에 대해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 서로가 갑과 을이라는 허망한 망상에서 벗어나는 것, 그리하면 나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너에 대한 시선이 열릴 것이다. 그 열린 눈에 비친 너와 나는 거래의 관계가 아닌 도움과 은혜로 얽힌 고마운 관계로 오지 않겠는가.


언젠가 식당에서 본 흐뭇한 일이 생각난다. 일이 바빠 급하게 움직이다가 종업원이 손님의 옷에 음식을 쏟았다. 종업원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 손님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집에 가서 세탁기에 돌리면 됩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나는 그때 그 남자의 얼굴에서 미안해하는 이웃의 마음까지 헤아리고 따뜻하게 보듬는 마음을 보았다. 우는 사람과 함께 울고 웃는 사람과 함께 웃는 얼굴은 번역과 통역 없이도 이해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이다. 그날 그곳에서 돈이 들지 않는 표정을 기부한 그 남자, 그 자리에 갑과 을은 존재하지 않았다.


법인 해남 일지암 암주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88936.html


Posted by 겟업
2013. 9. 19. 15:22

내 글을 즐겨 읽는다는 한 독자로부터 ‘송전탑 이야기 말고 교육 이야기 좀 들었으면 좋겠다’는 애정 어린 권유를 받고 나서 얼마 뒤 밀양 송전탑 공사가 재개되고 말았다.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이라는 직함을 가진 필자가 쓰는 글마다 ‘밀양 송전탑’ 이야기가 빠지지 않으니 의아하기도 했을 것이다.


나는 밀양 사람이다. 여기서 나고 자랐고, 대학과 군대, 교사 초년 시절을 뺀 나머지 세월을 모두 밀양에서 살아왔다. 학교를 그만두고 오랫동안 꿈꾸어온 일들을 막 시작할 무렵 터진 ‘밀양 송전탑’ 분신자결사건 이후 지금까지 17개월째 이 일에 매달려왔다. 이 싸움이 쉽게 정리되지 않을 것이라 예측했지만, 어찌할 수 없는 절박한 대의를 따르기로 했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에, 이 사안이 얼마나 불의하고 모순에 가득 찬 일인지를 모르지 않으면서, 여전히 목숨을 걸어야 하는 어르신들의 고통과 분노를 외면한 채 내가 벌일 일들, 농업과 교육, 세상을 향한 글쓰기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자격지심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모난 돌이 정을 맞고, 앞장서는 놈은 반드시 피를 보게 되어 있으니, 그저 욕먹지 않을 만큼만 하고 적당한 시점에서 빠져주는 보편적인 행동 윤리를 나도 모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여리고 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를 수시로 자문해야 했다. 그사이 심리적인 위기 상황도 없지 않았다. 그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워 주었던 것은 바로 이 ‘고운 얼굴들’이다.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한동안 실의에 젖어 있던 적이 있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선거 이후 첫 촛불집회에 갔을 때,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저 반가워서, 앞으로 자신들 앞에 어떤 일이 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듯이, ‘내일의 걱정은 내일에 맡겨 두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체현한 수도자인 양, 쭈글쭈글한 얼굴 주름 골이 한껏 파인 미소로 나를 반겨주던 할머니들의 고운 얼굴, 이런 기억들이 나를 이끌어왔다. 한전 쪽이 거액의 손배소와 고소·고발을 남발할 무렵, 고초를 겪고 있던 분들을 위해 탄원서를 부탁한 적이 있다. 70대, 80대 할머니들이 삐뚤빼뚤 눌러쓴 글에는 놀랍게도 같은 말씀들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 살고 싶다는 것.”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할머니들에게서 어떻게 이런 글들이 동시에 나오게 되었을까. 고향과 선산을 지키지 못하고 저승에서 만날 어른들께 죄가 될 것 같아 너무 괴롭다는 그 말씀을, 수족에 병이 들어 거동조차 못하는 자신을 고쳐준 ‘숲으로, 녹색으로 꽉 찬’ 이 산을 지키기 위해서, ‘나중에 자식들이 돌아와서 살 데가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싸운다’는 이 말씀들을 그저 ‘해보는 소리’로 치부하고 있는 세상. 결국 ‘돈 때문일 거라는 것, 그래서 돈을 더 얹어주면 해결될 거라는 것’, 이렇게 악한 믿음이 지배하는 세태 속에서 어르신들은 싸우고 있다.


할머니들은 목에 밧줄을 묶고, 웃통을 벗어젖히며, 포클레인 밑으로 기어들어가 드러눕고, 병원으로 실려가는 이웃들을 보며 울부짖다가 기진해서 또 줄줄이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보기가 너무 괴롭다. 이들을 향해서도 세상은 여전히 ‘님비’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핵발전으로부터 비롯된 이 장거리 송전시스템이 폐기되어야 하는 것이다. ‘니들은 전기 안 쓰냐’고? 그렇다면 왜 전기를 가장 적게 쓰는 이분들이 작금의 전력시스템이 야기하는 모든 고통을 뒤집어써야 하는가.


내가 사랑하는 이 ‘고운 얼굴들’은 지금 하루하루가 너무 고통스럽다. 언제까지 이렇게 싸워야 하나. “도와주세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계삼 <오늘의 교육>편집위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88756.html



Posted by 겟업
2013. 9. 19. 15:16

개인용 컴퓨터(PC)가 처음 나왔을 때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물리학과에서 논쟁이 있었다. 물리학 개론 과목에서 전자입자를 깨는 실험 과정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가르칠 것인가 여부. 2년여 동안 토론 끝에 전통적인 수작업으로 하는 실험만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손으로 직접 실험도구들을 만들고 설치하고 실제로 전자가 깨지는 흔적까지 눈으로 확인을 하는 게 타당하다는 게 결정의 근거였다. 교수들은 전자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해 손으로 만들고 눈으로 보는 과정을 직접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훨씬 깔끔하게 결과를 보여주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었지만, 학생들은 직접 실험도구를 접착제로 붙이고 끼워서 만들어야만 했다.


자연과학을 하는 선배의 경험담 하나. 좋은 학자로 성장하는 학생들의 특징을 오랫동안 관찰해보니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고 한다. 실험실 설거지를 늘 잘하더라는 것이다. 실험도구, 재료와 시약이 손에 익어서 눈을 감고도 실험 과정 전체(예를 들면 세밀한 화학반응 과정까지)를 머릿속 그림으로 그려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선배 교수는 실험실에 들어오는 대학원생들에게 설거지하는 법부터 가르친다.


뛰어난 축구선수는 훈련일지를 작성한다고 한다. 좋은 훈련일지는 오늘 패스 연습을 몇 번 했다는 식이 아니라 “아 그때 안으로 파고들지 말고 옆으로 빠졌어야 했던 것 아닌가”와 같이 구체적 기록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훌륭한 선수들은 경기에 나가기 직전에 오늘 이뤄질 시합 전체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자신이 그 그림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기획한다고 한다. 움직임에 대한 기획. 이때 훈련일지는 선수 자신의 몸의 움직임과 그 결과에 대한 판단·평가·성찰을 담는 그릇이 된다.


1919년 설립된 바우하우스는 실습과 예술이론을 통합함으로써 20세기 건축과 디자인에 커다란 전환을 이룬 미술공예운동이었다. 미학과 기예의 통합. 이 학교 신입생은 실습에 들어가기 전 단계에서 6개월간 목공·도예·스테인드글라스·벽화직조·그래픽·인쇄·무대연출 등을 직접 배우고 전문 직공 자격증을 따야 했다. 파울 클레가 스테인드글라스와 회화를 담당했고, 바실리 칸딘스키가 벽화를, 라이오넬 파이닝어가 그래픽을 가르쳤다. 손과 머리를 통합했던 대표적 사례이다.


‘공부’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을 다르게 가르쳐야 할까, 혹은 배우는 방식이 달라야만 할까. 초·중등 12년과 대학, 때로는 대학원까지의 교육과정에서 점수로 사람을 끊임없이 가른다. 공부를 잘하면 의대·법대 가고, 경영대와 공대에 간다. 국영수 성적이 나쁘면, 기술 배우라면서, 요리, 자동차 정비, 미용 등등 직업교육을 시킨다. 정말 잘못된 교육과 학습이 아닐 수 없다. 과학이 손으로 실험기기를 조립하고 도출된 결과를 정리하고 확인하는 과정, 축구선수가 전체 경기의 흐름을 머릿속에 그리고 상대 팀의 배치와 움직임을 통합적으로 이해해서 자신의 플레이를 운용하는 과정은 사실상 다르지 않다. 그런데 과학 잘하는 아이는 올림피아드만 준비시키고, 축구 잘하는 아이는 운동장에서 놀게 하는 오류를 우리 교육 전체가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다 성적이 좋은 선수가 있으면, 공부도 잘한다고 칭찬한다.


성적이 좋지 않으니까 요리 배우고, 운동선수로 뛰고, 패션디자인 배우는 게 아니어야 함에도 우리는 그렇게 나누고 차별한다. 국영수 잘하면 손과 발은 묶어 놓고, 책상에 앉아 문제풀이만 시키는 학습을 시킨다.


대학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이론과 개념 중심은 여전하고 실험과 실습은 이론을 배우기 위한 보조에 불과하다. 사회봉사나 현장실습은 대충대충 쉬어가는 과목이다. 몸을 던져서 하는 봉사, 손과 발의 느낌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공작(工作)은 찾아보기 어렵다. 체육과 음악·미술은 고상한 취미나 교양을 갖추기 위한 우아한 활동으로 치부된다. 칸딘스키의 날카로운 사각형의 선이 드러내는 무한과 유한의 인식은 격렬하기 이를 데 없는 것 아닌가. 손과 발은 몸과 머리, 감성과 인식을 연결하는 다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중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교육의 현장에서 손과 발이 하는 일에 대한 무지가 여전하다.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880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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