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있는삶/사설 노트'에 해당되는 글 715건

  1. 2014.08.18 [아침을 열며] 초위험사회의 대한민국
  2. 2014.08.18 [편집국에서/4월 21일] 규제는 암이 아니라 콜레스테롤이다
  3. 2014.08.18 [메아리] 발달장애인법, 국격(國格)의 문제다
  4. 2014.08.18 지갑을 열게 하는 '프리미엄(Freemium)' 전략
  5. 2014.08.18 [글로벌 아이] 너무도 다른 한·영의 통신장애 대처법
  6. 2014.08.18 [노재현 칼럼] 가죽벨트에 매달리는 사람들
  7. 2014.08.18 [분수대] 나에게 주어진 1분 세상에 무엇을 말할까
  8. 2014.08.18 [이철호의 시시각각] 박원순 시장의 정의란 무엇인가
  9. 2014.08.18 [이정재의 시시각각] '천송이'에게 배우는 창조경제
  10. 2014.08.18 [이철호의 시시각각] "현대차의 최대 적수는 삼성전자"
  11. 2014.08.18 [칼럼 36.5°] 미국 도서관이 책을 비싸게 사는 이유
  12. 2014.07.12 선장 한 명 탓인가, 그래서 세상은 좋아질까
  13. 2014.04.08 [사설] 이제 한반도 전체를 보고 움직여야 한다
  14. 2014.04.08 [이슈 기고] '매 맞는 구급대원' 없애려면
  15. 2014.03.06 한국이 아직도 배고프다고?
  16. 2014.01.22 해외 학계를 주름잡는 한국인
  17. 2013.09.20 [특별 기고] 대통령님께 드리는 변정고언
  18. 2013.09.20 [광화문에서/김현미]‘이렇게 중요한 과목’에 대하여
  19. 2013.09.20 [아침을 열며/7월 19일] 학교교육, 그 나약함에 대하여
  20. 2013.09.19 [이철호의 시시각각] 북한, 청와대 진돗개 꼬리를 보라
2014. 8. 18. 03:03

지난 16일 세월호의 침몰사고는 정말 충격적인 날벼락이었다. 봄날 바닷길로 제주여행을 떠나온 많은 승객을 태운 대형 여객선이 진도 앞바다에서 삽시간에 기울어져 바닷물에 잠겼다는 소식이었으니 "어째 이런 일이…."를 되뇌며 충격의 놀라움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곧이어, 침몰한 세월호 승객의 상당수가 구조되지 못하였고 그중 대부분이 수학여행 중인 고등학생들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서는 안타까움과 희망 찾는 간절함에 절로 손 모아 빌었다. 특히, 손이 귀한 요즘 자식의 끊긴 소식에 부모들의 애타는 심정을 떠올리며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함께 느껴보기도 하였다. 사고 발생 이후 1주일 넘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이 실종자 무사 생환의 기적을 기원하며 펼치는 노란 리본과 촛불기도에 동참하여 작은 간절한 소망을 보태었다. 하지만 고대하던 구조의 희소식 대신 희생자명단만 늘어나는 궂은 소식들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비통함과 애도의 마음으로 미어졌다. 사고경위가 밝혀지고 사고 발생 이후의 상황이 속속들이 드러나면서 분노에 치를 떨었고, 죄책감에 고개 숙여야 하였다. 무엇보다, 가라앉는 배의 탑승객을 버려둔 채 제 살길을 찾아 도망친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들의 후안무치한 작태에 크게 분노하였다. 돈벌이에만 열중하여 초과 화물적재와 선박 보수 및 선원인력관리 소홀 등으로 세월호의 침몰위험을 가중시켜온 해운사의 미필적 고의성에 또 한 번 분노하였다. 사고대책과 구조활동에 우왕좌왕하는 무능한 정부 당국이나 사태의 엄중함을 제대로 파악지 못하고 한심한 행동을 서슴지 않은 공직자ㆍ정치인들에 대해 격한 분노의 감정을 쏟아내기도 하였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허술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번 세월호 사고로 희생당한 많은 학생을 떠올리면 피지 못한 꽃망울 같은 그네들에게 어른 된 입장에서 참으로 송구스럽고 죄스럽기만 하였다. 아마,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는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에게 마음속으로 교차하였던 만감이 이렇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근대화된 국가라면 필연적으로 위험사회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쉽게 설명해보자면, 근대화의 원동력이자 핵심성과인 과학기술과 산업시설 등이 날로 발전함에 따라 오히려 인간들의 삶에 치명적이지만 제어하기 어려운 위협요소들, 예를 들어 환경오염, 건축물 또는 교통운행 관련 대형사고, 산업재해, 핵 관련 재난사고 등을 새롭게 유발함으로써 위험사회에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벡 교수는 위험을 성공한 근대가 낳은 딜레마라는 흥미로운 역설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서구국가들이 200여년에 걸쳐 이룬 근대적 산업화를 1960년대 이후 50여년 동안 경제개발과 수출입국에 매진하여 눈부신 속도로 근대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벡의 위험사회론에 따르자면 압축적인 근대화 덕분에 우리 사회는 다른 나라들의 몇 배 되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을 것으로 손쉽게 추론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올해에만 지난 2월의 경주리조트 붕괴사고에 이어 이번의 세월호 참사가 빚어진 것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대형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할 뿐 아니라, 그 사고들의 인명피해가 크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위험수위가 서구 선진국을 현저히 상회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 다른 위험지표인 산업재해를 살펴봐도,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에서 단연 최고 수준을 차지하고 있어 사회적 위험수위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같이 따지다 보면 우리나라가 그냥 위험사회가 아니라 아주 심각한 위험사회, 즉 초 위험사회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벡 교수는 위험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난 근대화과정의 반성을 통해 그 위험요소들을 감소시켜 나가는 성찰적 근대화를 제안하고 있다. 그렇다면, 초 위험사회에 빠져든 우리나라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제대로 지켜주기 위해서는 압축적 근대화를 통해 우리 경제와 산업 그리고 제도와 의식에 깊숙이 배어든 인명 천시의 위험요소들을 철저하게 발본색원하려는 몇 배의 뼈저린 성찰이 요구된다는 것은 아닐까?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8&aid=0002494327



Posted by 겟업
2014. 8. 18. 02:55

미국의 총기 소유 옹호론자들이 내세우는 논리 중 개인적으로 가장 반박하기 힘든 것은 "총을 손에 든 순간 힘이 센 자와 약한 자가 모두 평등해진다"는 주장이다. 만일 정부가 국민들의 총기 소유권을 박탈하게 되면 노인이나 여성처럼 약한 사람들은 힘센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달 20일 청와대에서 '규제개혁 끝장토론'이 열린 이후 한달 간 이어진 정부 국회 기업 민원인들의 규제개혁 관련 발언들을 지켜보면서 규제와 연관된 논란이 총기소유 논란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의 존재가 사람들 간 체중과 근육량의 차이를 무력화하듯 규제 역시 당사자간 유ㆍ불리, 수혜자와 피해자를 뒤바꿔 놓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규제 없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질서라 보기도 어렵다. 허약하다는 이유로 늘 힘센 사람의 부당한 대우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더 자연스럽다고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결국 규제개혁이란 좋은 규제를 늘리고 나쁜 규제를 없애는 점진적ㆍ지속적 노력이어야 하지, 규제 총량을 줄이는 식의 단기적 양적 접근은 심각한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여객선 선령 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린 2008년의 규제완화가 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의 원인 중 하나가 된 것처럼.

그렇다면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명확한 잣대가 없다'는 게 정답에 가깝다. 주류 경제학 교과서들이 잘못된 규제의 대명사처럼 언급하는 '최저임금제'조차 찬반이 갈린다. 잘못된 규제라는 근거는 최저임금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면 한계 상황의 기업들은 고용을 줄이기 때문에 결국 최저임금을 받는 직원들만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폴 크루그먼 같은 경제학자는 노동시장은 빵을 파는 시장과 달리 돈 몇 푼 때문에 갑자기 직원을 해고하는 일은 잘 벌어지지 않고, 장기적으로 보면 저임 노동자의 구매력이 높아져 전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점이 경험적으로 입증됐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규제의 효과는 논리와 실제가 다르고, 단기와 장기에 따라 엇갈린다.

대부분 사람들이 규제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영역도 있다. 바로 누구든 공짜 또는극히 낮은 비용만 내고 이용하지만, 공급에는 한계가 있는 공공토지나 지하자원, 공기와 바다 등이 이런 영역에 포함된다. 이런 영역에 도입된 규제 중 가장 성공적인 예가 슈퍼마켓에서 비닐봉지를 유료로 판매하도록 한 정책이다. 몇백원의 부담이지만 소비자들의 환경보호 의식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해 우리나라를 비롯 전세계적으로 비닐봉투 사용이 획기적으로 줄었다. 그런데 만일 성공에 고무된 한 정치인이 과감히 비닐봉투 사용 전면금지를 도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얼마 후 슈퍼마켓 주변에는 시장바구니를 잊고 장보기에 나섰다 당황한 사람들을 위해 불법 비닐봉투를 한 장에 천원 또는 이천원에 판매하는 행상이 등장할 것이다.

이는 미국 비영리 단체인 환경보호기금(EDF) 수석 경제학자인 거노트 와그너가 쓴 <누가 마지막 나무를 쓰러뜨렸나>의 한 대목을 살짝 윤색한 예다. 

이처럼 규제는 꼭 필요한 영역에 정확한 처방을 적절한 강도로 투여해야 성공할 수 있는, 매우 까다로운 존재다. 규제 대상의 이기심ㆍ나태함 같은 본성을 지나치게 제약해서도 안되고, 시장질서에 맞서서도 성공하기 힘들다. 

반대로 과도한 규제들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질식될 지경이 돼서는 안되겠지만, 군사작전을 하듯 일거에 제거한다면 오히려 부작용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탄소발생량 제한, 어획량 제한, 개발제한구역 같이 철폐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인류의 생존이 위험해질 가능성이 큰 중요한 규제들도 적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는 암덩어리'발언은 정책 추진 의지를 명확히 전달하기 위한 비유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규제에 대한 의학적 비유를 찾는다면 반드시 제거해야 할 암이 아니라, 너무 많으면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되지만 적당한 수준 밑으로 떨어져도 건강이 위험해지는 '콜레스테롤'이 더 정확한 비유다. 

정영오 경제부장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8&aid=0002492700



Posted by 겟업
2014. 8. 18. 02:54

유럽이나 미국인들의 모럴이 우리보다 낫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저쪽에 젠틀맨십(gentlemanshipㆍ신사도)이 있다면 우리에겐 예의염치(禮義廉恥)가 있다. 인권이나 자유와 관련된 행동양식이나 사회시스템은 적잖이 다르지만, 대개 의식이 행동으로 발현되는 양상이 다른 것이지 양심의 우열은 아니라고 여겼다. '의식이 족해야 예의를 차린다'는 말처럼, 생활형편이 나아지면 우리도 더 좋아질 것이라고 애써 자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식의 안간힘조차 무색할 때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서구인들의 사회적 약자, 특히 장애인에 대한 '뭔가 다른' 선의와 배려를 느낄 때다. 국민소득만으로 잴 수 없는 국격(國格) 같은 걸 생각하게 되는 것도 바로 그런 때다.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은 매우 활달한 외교관이었다. 북미국장으로서 외교적으로 우리에겐 영원한 '갑'인 미국을 상대하면서도 치고 받고, 어르고 달래면서 1990년대 중반의 '4자회담' 국면을 무난히 이끌어 냈다. 늘 여유가 넘쳤던 그가 사석에서 뜻밖에 심각한 표정이 됐다. 빌 클린턴 행정부의 적극적 대북 개입정책(engagement policy)에 따라 미국은 북한 식량지원을 대폭 늘리려 하고, 우리는 남북관계의 주도권 등을 감안해 지원 시기와 물량의 '적절한 조절'을 꾀하던 국면이었다.

"주한 미대사관의 ○○○ 참사관 대하기가 가장 힘들어. 국무장관은 오히려 쉬운데 말이오. 그 친구한테 북한 식량지원 좀 조절하잔 얘길 하면, 그저 물끄러미 날 바라보는 거야. 마치 사람이 굶어 죽어 나가는 마당에 그런 소리를 하느냐는 듯이…. 그 친구 부부가 우리 뇌성마비 어린이 입양해서 업어주고 씻어주고 하면서 그렇게 정성스럽게 보살피고 있거든. 우린 그렇게 못하잖소. 그 선량한 눈을 보면 왠지 내가 인간적으로 한 수 접히는 느낌, 우리의 정책 윤리가 미국보다 떨어지는 것 같은 생각까지 들 정도요."

유 전 장관은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 친구 부부의 선의도 선의지만, 정작 미국이 대단한 건 그런 선의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갖춰졌다는 거요. 장애가족 지원비, 재활 및 간호 프로그램 지원 같은 게 탄탄해. 우리도 이제 그런 제도를 하루빨리 정비해야 할 거요."

그 얘기를 들은 지 20년이 지났다. 그 사이 우리는 세계 최대의 스마트폰 생산국이 됐고 유수의 자동차 강국이 됐다. 하지만 장애인 지원제도는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후진국이다. 서울 여의도에서는 오늘도 발달장애인 부모와 환자들의 천막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 만개한 벚꽃 잎이 눈처럼 흩날리던 그 곳에선 발달장애인과 가족 8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장애인 어머니 등 78명이 눈물을 흩뿌리며 삭발을 감행했다. 발의는 됐지만 2년째 국회 처리가 미뤄지고 있는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촉구하는 처절한 절규다.

발달장애인은 자폐증, 뇌성마비(간질), 다운증후군 등으로 정상적 사회생활이 어려운 환자들이다. 특정 신체장애와 달리, 밥 먹고 용변 보는 것까지 보호자들이 24시간 챙겨줘야 하기 때문에 환자 본인뿐 아니라, 온 가족이 극심한 부담과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지난해 말 40대 가장이 자폐성 장애 1급이던 열일곱 아들과 함께 동반 자살한 걸 비롯해, 알려진 것만 작년 4건, 올 들어 2건의 가족 동반 자살사건이 발생했을 정도다.

발달장애인법은 장애인 중에서도 가장 극심한 장애 상황에 빠진 20만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최소한의 희망을 주자는 법이다. 발달장애의 특수성을 감안한 지원센터 설치, 발달장애인의 일자리 확충과 최소한의 소득보장, 부모 사후 홀로 된 성년 장애인에 대한 후견 시스템 마련 등이 골자다.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선 적잖은 예산과 다른 장애인 처우와의 형평성 등을 들며 4월 국회 처리에 미온적이라지만 온당치 않다. 더 이상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고군분투하는 발달장애인과 가족을 외면한다는 건 몰염치다. 소득보장책을 포함해 최선의 법안을 마련해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하기 바란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사회적 부조이자, 국격의 문제다. 


장인철 논설위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8&aid=0002491854



Posted by 겟업
2014. 8. 18. 02:46
지난달 3일 세계 명문 대학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는 코세라(coursera.org)에 등록해 미시간대 찰스 세버런스 교수의 '인터넷 역사, 기술, 보안'이라는 과목을 듣고 있다. 4월 7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 월드와이드웹 콘퍼런스를 준비하면서 인터넷 역사를 제대로 공부할 방법을 탐문하다가 미국 명문대 교수의 공짜 강의에 끌린 것이다. 하지만 2주 정도 강의를 들으면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수시로 솟았다. 매주 온라인 비디오 강의를 평균 5개 이상 듣고, 퀴즈를 반드시 풀어야 하는 등 수업 진행이 만만치 않았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4주 차에 접어들면서 온라인 강의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강의 교재가 최고급이었으며, 열정적으로 강의하는 세버런스 교수에게 인간적 호감을 느꼈다.

강의에 한창 재미를 붙일 무렵 코세라에 접속할 때마다 광고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39달러를 내고 시험을 통과하면 수료증을 준다는 광고였다. 처음엔 내겐 필요 없는 광고라고 여기고 강의 코너로 곧장 달려갔다. 그러다가 세버런스 교수가 세계 각지를 다니면서 이 수업을 수료한 학생을 커피숍에서 만나 대화하는 동영상을 보면서 광고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동영상 속 학생은 모두 수료증을 흔들면서 온라인 과정을 끝까지 통과한 것에 자부심을 표현했다.

결국 4주 차 강의를 듣고 나서 39달러를 결제했다. 그 순간 최고의 콘텐츠를 공짜로 제공하는 코세라가 무엇을 통해 먹고사는지, 앞으로 어떻게 비즈니스를 전개할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2014년 코세라 강의에 2만599명이 등록해 최종 2964명이 수강 중이다. 아마도 3주 이상 수업을 들은 학생은 대부분 39달러짜리 수료증 트랙을 신청했을 것이다. 공짜 콘텐츠라는 점에 끌려 강의를 신청했지만 자신이 투자한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서 수료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IT 저널리스트 크리스 앤더슨은 2009년 펴낸 '프리(Free)'라는 저서에서 코세라와 같은 전략을 '프리미엄(Freemium)'이라고 정의했다. 95%를 공짜(free)로 풀고, 5%의 프리미엄(premium)에 대해 돈을 내게 하는 것이다. 스탠퍼드대 앤드루 응 교수가 2012년에 창업한 코세라는 스탠퍼드·예일·미시간 등 100여 명문대 강의를 공짜로 제공하면서 세계 각지로부터 회원 600만명을 모았다. 이어 수료증 발급이라는 인센티브를 활용하여 수백만 명의 지갑을 여는 데 성공했고, 수료증을 학점으로 인정하는 대학과 기업이 늘어나면서 코세라의 수익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코세라의 전략은 콘텐츠 산업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선 프리미엄 전략은 대체가 어려운 명품콘텐츠가 필요하다. 그런 콘텐츠는 길어 봐야 1주일 정도 가치를 지니는 생선형(型)이 아니라, 최소한 10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가전제품형이어야 한다. 또 여러 개를 묶어 낱개의 개별 가치와 다른 가치를 구현한 번들형이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소비자는 그런 콘텐츠에만 지갑을 열고 있다.
우병현 | 조선경제i 총괄이사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06/2014030604702.html



Posted by 겟업
2014. 8. 18. 02:26

사람 사는 곳인데 이리 다를까 싶을 때가 있다.

20일도 그런 날이었다. 한국에서 오후 6시부터 20여 분간 SK텔레콤에 통신장애가 발생했고 완전 복구까지 5시간여 소요됐다니 SK텔레콤에 쏟아졌을 항의의 양과 정도는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SK텔레콤이 부랴부랴 “서비스 장애로 불편을 겪은 고객에 대한 보상 방안을 마련 중”이란 입장을 내놓은 이유일 게다.

영국에서도 같은 날 유사한 사고가 있었다. 오후 7시부터 영국의 최대·최고 네트워크라는 EE도 통신장애를 일으켰다. EE는 곧 트위터에 “시스템에 그렘린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1984년의 영화 ‘그렘린’ 속 한 장면을 곁들인 채였다. 기계 고장을 일으키는 뭔가 있긴 한데 잘 모르겠다는 걸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거였다. 대충 14시간 뒤쯤인 다음날 낮 최종적으로 해결했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어제 오후 8시30분 문제를 파악, 해결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사람마다 좀 차이가 있긴 한데 휴대전화에서 ‘서비스 안 됨’ 표시가 사라진 건 EE의 주장과 달리 다음날이었다. 기자의 전화도 그중 하나였다. 사고 발생 후 19시간 만에 EE에서 날아온 문자가 이랬다. “지난밤 네트워크에 문제가 있었는데 네 전화가 그중 하나였다면 정말 미안하다. 문제를 해결하긴 했는데 일부 전화기의 경우엔 아예 휴대전화의 전원을 아예 껐다 켜야만 정상 작동할 수 있다.”

그런데도 EE의 트윗에 달린 댓글은 대개 “내 것도 안 된다” “문제가 있다고 알려줘서 고맙다”는 유였다. 그나마 항의 수위가 높다는 게 “그렘린 그림으론 도움이 안 된다. 용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나 (공식으로) 항의할 거다”란 정도였다. 이러니 영국의 주요 언론에선 관련 기사를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영국인이 불만을 덜 느끼는 것 같진 않았다. “항상 그렇지 뭐”(『영국인 발견』)란 체념이 강할 뿐이라고 했다. 잘못될 일이 잘못됐다는 데 대한 확인, 인생은 원래 이런 사소한 안달과 어려움으로 가득하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마지못한 인내와 냉소적 억제 말이다. 한마디로 덜 내색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통신서비스가 별로 아니냐고? 망의 속도나 깔린 정도는 한국을 따라오지 못한다. 그러나 서비스 자체는 영국 쪽이 합리적이라고 여길 때가 있다.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통신요금은 오히려 저렴한 편일 수도 있다.

통신만 그런 게 아니다. 은행계좌를 개설하러 갔다가 며칠 걸리는 처리에 한국을 그리워하다가 막상 개설 후엔 은행이 수시로 “네가 거래한 게 맞느냐”며 확인하는 걸 보곤 영국의 시스템에 감탄했다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고 보면 인간사엔 매사 트레이드오프(하나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면 다른 목표의 달성이 늦어지거나 희생되는 양자 관계)가 있는 거다. 자원이 한정된 만큼 뭔가 낫다면 뭔가 빠지는, 뭔가 빠져보인다면 그 덕분에 뭔가 나은 게 있고 말이다. 다만 우리와 영국은 우선순위를 달리 선택해 달리 된 것뿐이고 말이다. 결국 사람 사는 곳이어서 다른 거란 얘기겠다.


고정애 런던특파원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4227428&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4. 8. 18. 02:24

한국 현대사를 흔히 산업화와 민주화, 둘 다에 성공한 역사라고 평가한다. 나도 동의한다. 세대로 나누자면 산업화 세대가 민주화 세대보다 연배가 조금 위일 것이다. 사람에 따라 ‘산업’과 ‘민주’를 한 몸에 겪어내는 경우도 있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서 영세제조업을 하고 있는 김양희(52) 사장이 그런 경우다.

 그저께 김 사장을 오랜만에 만나 점심을 함께했다. 사업이 날이 갈수록 힘들다고 했다. 내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으니 책의 보던 페이지를 표시해 주는 조그만 액세서리 같은 게 필요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많이 구입하면 단가가 싸다 했지만 나 역시 업자(!)인 만큼 대답을 얼버무렸다. 대신 나라 경제가 안 좋고 출판시장이, 그리고 신변소품 시장이 정말 어렵다는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았다. 헤어질 때 김 사장은 자기네 공장에서 만든 거라며 가죽 허리띠 한 개를 선물했다. 가죽벨트는 지금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김양희 사장은 고향 후배다. 1990년에 휴대전화 액세서리, 지갑·벨트·팔찌를 만들어 파는 ‘가람상사’라는 업체를 세워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전에는 산업현장에 뛰어든 ‘학출(學出·대학생 출신)’ 노동운동가였다. 81년 이화여대에 입학해 3학년 때 구로공단 가발공장에 처음 위장취업을 했다. 이후 전자회사·봉제회사·가방공장을 전전했다. “남들(다른 위장취업 여대생)은 힘들어 죽겠다는데, 나는 체질인지 팔자인지 공장 일이 재미있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탄광 광부이던 부친은 이대생 딸이 공장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기함을 했다. 부친은 85년 광산기계를 수리하다 손가락 두 개를 잃었다. 김양희씨는 88년 H통산이라는 회사에서 노조 창립을 주도하다 해고당했다. 재봉실 제조사, 벨트회사로 옮겨 일하다 아예 사업을 벌이기로 결심했다. 일이 만만하게 보였고 자신 있었다. 노동운동 전력으론 번듯한 직장을 잡기 힘든 시절이기도 했다. 그렇게 ‘민주’에서 ‘산업’으로 무게중심 이동이 이루어졌다.

 산업도 쉽지는 않았다. 처음엔 내수에 주력했다. 벨트·멜빵 따위를 국내 기업에 납품했다. 96년께부터 의류업체가 줄줄이 부도를 맞기 시작했다. 97년 말 외환위기가 덮쳐왔다. 매출이 10분의 1로 결딴났다. 두어 해 힘들게 보내다 2000년 일본 시장을 뚫었다. 이후 10년은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휴대전화 액세서리, 팔찌 등이 도쿄 디즈니랜드 매장에도 깔렸다. 최대의 위기는 구멍 하나에서 시작됐다. 구형 휴대전화는 어떤 기종이든 귀퉁이에 구멍이 있어서 각종 장신구를 매달 수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다르다. 구멍이 없다. 고리형(形) 액세서리는 직격탄을 맞았다. 2011년 3월 일본열도가 도호쿠 지방 쓰나미로 경악하던 날, 일본 거래처에서 전화가 왔다. “앞으로 휴대전화 액세서리 납품을 못 받게 됐다”는 통보였다.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거래처였다. 스마트폰 거치대, 이어폰 줄 정리장치 등을 고안해 샘플을 보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99㎡(약 30평) 공장 규모는 그대로인데 사업은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지금은 가죽벨트, 가방용 액세서리 등으로 작은 일본업체를 뚫어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지인들을 통해 국내 판촉물·사은품 시장에 발을 디뎌보려 노력하지만 만만하지 않다. 중국산 저가품, 엔화 가치 하락도 역풍이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김 사장은 생각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어렵기에 “워킹푸어(working poor)라는 말은 딱 내 얘기”라고 했다. 그러나 소규모 제조업, 영세 자영업계에서 자기가 밑바닥은 아니라고 말한다. “허리띠 하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걸려 있는 줄 아는가. 버클도 주물·도금 따로이고, 가죽은 털투성이 가죽이 매끈한 원단으로 변하기까지 수많은 소규모 업체가 간여한다. 서울 변두리마다 미싱 두어 대 놓고 온 가족이 달라붙어 지갑·허리띠 만들어내는 지하 공장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합성피혁 벨트 자재를 구하려면 10군데 업체·가게를 다녀야 한단다. 모두 작게는 가족, 크게는 수십 명을 먹여 살리는 대한민국 경제의 실핏줄이다. 하나가 잘 풀리면 다 잘 풀린다.

 김양희 사장의 가장 큰 고충은 소규모 제조업체에 은행 문턱이 너무 높고 절차가 까다롭다는 점이다. 그 많은 공무원·정치인이 규제개혁과 중소기업 육성을 합창하듯 외치는데도? “아마 그 사람들은 이런 절절한 사정을 모를 거다. 사는 물 자체가 다르기 때문 아닐까”라고 그는 말했다. 사실 나는 아까부터 책상 위 가죽벨트를 똑바로 쳐다보기가 미안하다.


노재현 중앙북스 대표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4193517&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4. 8. 18. 02:23

3월의 교정은 신입생들의 재잘거림으로 수선스럽다. 갓 태어난 새들의 합창소리 같다. 불협화음이지만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활기를 잃어버린 늙은 새(재학생)들은 흘낏 보면서 지나친다. “좋을 때다.” 졸업예정자의 ‘거친 생각’ 속에는 회한이 담겨 있다. 임재범의 노래 ‘너를 위해’가 배경음악으로 적당하다.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방송사에도 낯선 얼굴들이 밀어닥쳤다. 신기한 듯 기웃거리는 저들. 신입사원들이다. 복도에서 연예인들과 마주치며 ‘살아남은’ 자의 기쁨을 만끽한다. “아 여기가 꿈의 공장이구나.” 청춘의 태반을 ‘시청률의 노예’로 살아온 은퇴예정자들은 창가에서 허탈하게 웃는다. “살아봐라.” 

실무면접에서 MBC 서창만 PD는 “아카데미 시상식 같은 프로를 연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시상식의 취약점들을 열거하며 안목과 정보량을 과시했다. 구체성, 준비성에 매료된 선배들은 사뿐히 문을 열어주었다. 십 몇 년이 흐른 후 ‘대한민국영화대상’ 자막에서 그 이름을 발견하고 20세기 말의 기억이 부활했다. 미소와 한숨이 교차하는 밤이었다.

짜임새는 좋았으나 아쉬움은 여전했다. 수상자들의 소감이 별로였다. 연출로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감격에 겨운 건 알겠으나 과연 저 말밖에는 할 게 없을까. 하느님과 가족, 제작진에게 고마워하는 것으로 주어진 1분을 다 써버리다니. 한국영화사에서 장미희가 했던 수상소감 “아름다운 밤입니다”는 불멸의 어록으로 남았다. 이후 인상적인 소감은 2005년 청룡영화제 때 배우 황정민에 의해 탄생했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은 것뿐인 걸요.” 겸손의 비유가 남달랐다. 감사의 리스트를 나열하다가 생방 시간을 잡아먹는 수상자들과는 급이 달랐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하는데 외국의 시상식을 볼 때마다 ‘졌다’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노예 12년’으로 흑인 최초의 작품상 트로피를 거머쥔 스티브 매퀸 감독은 주인공 솔로몬 노섭의 대사로 소감을 대신했다. “모든 사람은 그저 살아남는 것이 아닌, 사람다운 삶을 살 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세상의 모든 노예들과, 그런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 얼마나 깔끔한가. 

 ‘노예 12년’을 제작한 브래드 피트는 프로듀서 자격으로 인터뷰 룸에 들어와 “역사를 바로 알아야 현재의 우리가 바로 설 수 있고, 나아가야 할 방향도 알게 되는 것”이라며 의미를 다졌다. 노예들은 1840년대 루이지애나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 염전에도 수많은 ‘노섭씨’가 있다. 그들을 구한 후에는 우리 자신도 구해야 한다. 새장에 갇힌 줄도 모르고 오늘도 모이를 주는 손에 입 맞추며 노래로 화답하는 늙은 새들이 그들의 수상소감에 짧게나마 화답할 시간이다.


주철환 PD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4106615&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4. 8. 18. 02:22


말을 하지 않아도 말해주는 한 장의 사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청소부와 주먹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다(사진 참조). 지난해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때 트위터에 무한 리트윗됐다. 대학 이사장 집에 출장 청소를 하고, 은행·도토리까지 주워와야 하는 우리의 근로환경과 대비된다. 그 구원의 하이라이트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립대 청소노동자를 포함해 6200여 명을 정규직화시켜 준 순간이다.


 인터넷에선 ‘서울이 부러운 이유’라는 글이 넘쳐났다. 취임 첫날에 학교 무상급식을 하고, 시립대 등록금은 반값으로 깎아주고, 4000여 명의 환경미화원은 정규직화시키고…. 그러고도 박 시장은 “직접 고용으로 중간 착취를 없애 예산이 오히려 53억원 절감됐다”고 자랑했다. 

 어제 시립대에 들렀다. 정문을 들어서면 맨 앞에 천막농성장이 19일째 떡하니 버티고 있다. 정면의 전농관 벽면은 ‘ 청소노동자 고용 보장하라’ ‘비정규직 대책=집단해고’라고 적힌 대형 플래카드가 독차지한다. 정규직은 고맙지만, 정년을 아예 70세로 올려달라는 투쟁이다. 워낙 나이들이 많아 곧 63명 중 23명의 청소노동자가 65세 정년에 걸려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난처한 입장이다. 그 파장이 겁나기 때문이다. 이들의 정년을 연장하면 환경미화원들도 덩달아 기준을 맞춰져야 한다. 요즘은 더 이상 환경미화원이 약자가 아니다. 구로구에선 대학원 출신까지 지원했고, 전주시엔 해외유학파도 2명이나 몰렸다. 여기에다 1000명이 정년을 코앞에 둔 서울메트로도 가만있을 리 없다. “요즘은 정보기술(IT) 덕분에 나이를 먹어도 운전이나 정비가 끄떡없다”며 파업을 벌일 게 분명하다. 고임금직의 정년이 연장되면 그 추가 부담은 요금인상이나 시민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숨겨진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고 싶다. 서울시장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시립대 대수술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빚에 허덕이던 서울시는 매년 300억~400억원씩 시립대에 지원했다. 그는 사립대 수준으로 등록금을 올려 자립시키든지, 아예 시립대를 없애는 카드까지 검토했다. 그의 논법은 선명했다. “시립대에 지방 출신 학생이 절반이 넘어요.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를 보세요. 그 주 출신에겐 1만 달러, 다른 지역 출신은 3만5000달러씩 칼같이 받아요. 서울시는 시민을 먼저 생각하는 지자체지, 자선기관이 아니에요….” 

 서울시립대는 박원순 시장에게 정치적 성지나 다름없다. 자주 시립대를 찾고, 갈 때마다 환호를 받는다. 그가 꿈꾸던 반값 등록금과 ‘비정규직 없는 서울’이 실현된 이상향이다. 그런 시립대의 청소노동자들이 다시 뿔이 났다. 반값 등록금을 대느라 서울시의 시립대 지원 예산도 303억원에서 486억원으로 60%나 뜀박질했다. 박 시장이 인심을 쓰면서 돌아온 부메랑이다.

 이명박의 길이냐 박원순의 길이냐, 어느 쪽이 옳은지는 결국 서울시민이 판단할 문제다. CEO 출신의 이명박은 효율을 중시한 반면 시민운동가 출신의 박원순은 말 그대로 ‘사람이 우선이다’. 혈세와 원칙은 그다음이다. 이에 따른 숨겨진 부작용의 하나가 세대갈등이다. 공공부문 근로자들이 정규직화되면서 대개 정년을 채운다. 환경미화원도 정년퇴직으로 결원이 생겨야 4~5년 만에 한 번씩 뽑을 만큼 경직됐다. 진입이 더 어려워진 젊은 층이 피해자다.

 참고로, 2009년 찍은 오바마 사진도 미국과 한국에서 온도차가 있다. 그는 거만하게 구두닦이 앞에 앉은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와 차별화된 이미지로 재선 때 큰 재미를 봤다. 하지만 요즘 미 언론이 이 사진을 활용하는 용도는 전혀 다르다. 워싱턴포스트는 백악관 청소부이자 오바마의 농구팀 동료인 로런스 립스콤이 저임금 공공근로자의 상징이라며 이렇게 꼬집었다. “월마트·맥도날드가 최악이라고? 아니다. 리먼 사태 이후 생겨난 저임금(연봉 2만4000달러 이하) 비정규직의 5분의 3은 공공부문이 고용하고 있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4106624&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4. 8. 18. 02:01

드라마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몇 년에 한 번씩 푹 빠질 때가 있다. 이번엔 『별에서 온 그대』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수·목요일 저녁이면 약속이 길어질 때마다 시계를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니 요즘 떠들썩한 ‘천송이(전지현 분) 신드롬’이 너무 잘 와닿을밖에. “눈 오는 날엔 치맥인데…” 대사 한마디로 중국에 ‘치맥’을 유행시키고, 남산 N타워를 연인들의 명소로 만들었으며 걸치고 입고 타고 쓰고 먹고 마시는 것 모두 유행으로 만들어낸 힘. 신드롬의 실체다. 흔히 스타마케팅이라 불리는 힘이다. 전지현은 브랜드 가치만 3000억원이요, 경제 효과로는 몇 조원이라더니 급기야 ‘천송이노믹스’란 용어까지 등장시켰다.

 천송이노믹스는 내게 창조경제를 떠올리게 했다. 직업은 못 속인다더니 경제기자로 밥 먹은 세월이 꽤 돼서였을 것이다. 사실 성공비결을 분석하고 어딘가에 꿰맞추는 건 쉽다. 결과가 나온 뒤 훈수, 품평이야 누군들 못하랴. 그러니 영화·소설·게임·드라마, 뭐가 됐든 빅 히트작에는 성공 비결 배우기 열풍이 불게 마련인 거다. 군색하지만 천송이에 창조경제를 빗대는 이유다.

 첫째 비결은 ‘15년 발연기’다. “15년 발연기가 어디가냐”며 극중 절친이 ‘천송이’에게 비아냥댈 때, 바로 알았다. 그래, 저 능청맞고 천연덕스러운 표정 뒤에 15년 발연기가 있었구나. 전지현은 1999년 광고모델 데뷔 후 15년을 ‘발연기’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그 꼬리표를 떼려고 그는 영화 ‘도둑들’에서 대역 없이 5층에서 뛰어내리고, 와이어에 매달린 채 건물을 탔다. 그러곤 마침내 주사와 욕설, 무식과 내숭까지 신드롬으로 바꿔냈다.

 15년 발연기는 ‘1만 시간의 법칙’과 통한다. 말콤 글래드웰이 끄집어내 유명해진 성공비결, 뭔가 잘하고 성공하려면 1만 시간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법칙 말이다. 타고난 연기 천재는 없다. 어느 연기자인들 한 번에 되랴. 절정은 1만 시간 뒤, 15년 뒤에 온다. 거의 대사 없는 연기로 사실상 데뷔작에서 히트했던 ‘모래시계’의 이정재 빼고는 예외 없는 법칙이다. 창조경제의 성공도 그렇다. 대통령 임기 중에 가시적 성과를 내려고 조급해 해선 안 된다. 길게 봐야 한다. 1만 시간, 15년 뒤 대한민국 경제 대박의 틀을 닦는 마음으로.

 둘째, 이젠 중국이다. 배용준의 한류는 일본판이었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이번엔 중국에서 먼저 분 치맥 바람이 한반도를 달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배용준 한류의 경제효과를 약 3조원으로 추산했는데, 전지현 효과는 그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중국과의 인연설도 나쁘지 않다. 본인은 줄곧 부인하지만 본명이 왕지현인 전지현은 끊임없이 화교설에 시달렸다. 중국 차이나닷컴은 아예 ‘전지현은 중국 혈통’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창조경제의 돌파구도 중국에 있다.

 셋째, 자기 것으로 승부한다. 망가지는 여배우역, 전지현은 딱 맞는 배역을 맡았다. 연예기획사 IHQ 관계자는 “지금까지 전지현은 남의 옷을 입었다. 이제야 제 옷을 입고 제 실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는 이제껏 남의 것 따라하기로 커왔다. 이른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2등 전략이다. 이젠 내 것이 아니면 안 된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 먼저 움직이는 자가 돼야 한다. 내 옷, 내 것이야말로 세계에 통하는 힘이다.

 넷째, 혼성모방이 창조다. 혼성모방은 잘된 것을 추려 섞어 새 작품을 만드는 행위다. 무턱대고 베끼는 표절과는 다르다. ‘별그대’는 요즘 잘나가는 드라마코드를 다 담았다. 초능력·환상·판타지·꽃미남·병맛 연기…. 심지어 인디언 주술에 걸려 400년을 산 사나이를 그린 폭스TV 드라마의 표절 시비까지. 이탈리아의 명품 디자인이 어디서 나오겠나. 선조가 남긴 로마와 그리스의 걸작들을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힘 아니겠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창조경제도 마찬가지다. 이명박의 녹색성장도 담고 DJ의 벤처 활성화도 담는 거다. 창조가 별건가. 성공하면 창조요, 못 하면 망조인 거다.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4076844&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4. 8. 18. 01:31

지난 1월 미국의 가전쇼(CES)에 다녀온 김도훈 산업연구원(KIET)장은 “엄청난 변화를 감지했다”며 흥분했다. 눈길을 사로잡은 건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휘는 디스플레이나 우리 뒤를 맹렬히 추격해 오는 중국이 아니었다. 그는 “삼성의 갤럭시 기어로 BMW i3를 제어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라 했다. 좋게 보면 자동차와 정보통신(IT)의 융합이고, 냉정하게 말하면 초(超) 거대산업인 자동차와 IT의 정면승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요즘 세계 증시에서 가장 핫(hot)한 업체는 미국의 전기차인 테슬라다. 지난해 주가가 다섯 배가 뛰었고, 연초 두 달간 70%나 수직상승했다. 넉 달 전의 배터리 화재도 무서운 질주를 막지 못했다. 설립 후 10년간 단 한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는 업체. 판매량도 고작 2만3000여 대인 회사. 그런 테슬라의 시가총액이 310억 달러로, 연산 1000만 대인 GM의 절반에 육박한다.

 그 비밀은 ‘혁신의 아이콘’이다. 기존 자동차 업체들은 전기차를 구색용 ‘미끼 상품’으로 여겼다. 자신들이 지배하는 휘발유·디젤 엔진 시장을 흔들지 않도록 전기차의 성능을 볼품없게 제한했다. 테슬라는 이런 상식을 뒤집었다. 외관만 자동차의 흉내를 냈을 뿐이다. 그 안에 리튬이온 전지를 아낌없이 듬뿍 깔아 고급 스포츠카에 버금가는 성능을 갖췄다. 센타페시아의 17인치 대형 터치스크린으로 차량의 모든 기능을 통제한다. 자동차를 ‘달리는 IT기계’로 완벽히 변신시킨 것이다.

 현재 자동차 제조원가에서 전장(電裝)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40%. 10년 만에 두 배가 됐다. 일부에선 “지나친 IT화로 자동차의 기술적 결함이 빈발할 것”이라 경고한다. 하지만 앞날이 궁금하다면 고급차를 보면 된다. 1억원 이상의 플래그십 자동차들의 전장화 비중은 이미 50%를 넘었다. 하이브리드 차량은 60%, 전기차는 70%나 된다. 아우디의 루퍼트 슈타들러 회장은 CES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이제 자동차는 이동수단이 아니다. 요즘 자동차의 혁신은 대부분 IT기술에 기반하고 있다.”

 미국의 전기 안전인증업체인 UL코리아 황순하 대표. 그가 보고 온 CES 독후감은 독특하다. “현대차의 진짜 적수는 도요타나 폭스바겐이 아니라 삼성전자와 LG화학이다.” 과거 휴대전화 업체들이 노키아가 아니라 의외의 복병인 애플의 아이폰에 쑥대밭 된 것처럼 말이다. 그는 “지난 100년간 자동차가 연비·속도를 개선하는 기계공학에 치중했다면, 앞으로 100년은 IT와 케미컬(화학) 경쟁”이라 했다. 삼성과 LG의 센서와 제어기술, 2차 전지가 강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동차는 주로 도시간(between cities) 이동 수단이었다. 하지만 세계이동통신협회에 따르면 머지않아 도시내부(within city)의 편의 장치로 변모한다고 한다. 그날이 오면 자동차는 더 이상 개인이 소유해 차고에 넣어두는 상품이 아니다.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네트워크를 통해 가장 가까운 소비자를 최적의 경로로 운반해 주는 IT 장치로 바뀌게 된다. 여기에 필요한 운영체계(OS) 등의 무인운행 시스템은 상용화를 코앞에 둔 수준이다.

 문제는 누가 이 생태계를 지배하느냐다. 구글은 무인자동차와 8곳의 택배 로봇 회사까지 인수했다. 아마존이 드론 택배에 뛰어든 것도 마찬가지다. 모두 새 네트워크를 장악하려는 포석이다. 언제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여기에 IT와 자동차를 납품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할지 모른다. 대기업만 죽을 쑨다고? 아니다. 수백만 명의 택시·버스·트럭 기사와 택배원들은 아예 생계를 잃을지 모른다. 

 CES의 여운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국내 언론들은 휘는 디스플레이에 감탄했지만, 전문가들은 미래의 불길한 징조에 고민하는 눈치다. 이미 IT산업은 감히 넘볼 수 없는 미친 속도감과 극한의 경쟁에 단련돼 있다. 그런 IT계의 최강자인 구글과 아마존이 새로운 생태계를 앞세워 자동차 시장을 넘보고 있다. 한 외국 잡지는 “애플을 잊어라. 페이스북도 잊어라. 진짜 무서운 놈은 구글과 아마존”이라고 했다.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경고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4043639&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4. 8. 18. 01:23

얼마전 미국 대학의 문제점을 파헤친 책을 써서 이름을 알린 작가를 만났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이 작가는 최근 도서관들로부터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전화 내용의 요지는 책을 기증해달라는 것. 이유인즉 출판사들이 책을 주지 않아 작가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작가가 황당하게 여긴 대목은 "책을 달라"는 도서관의 요구, 그 자체였다. 그는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어이없어 했다. 그는 "미국 도서관들은 오히려 책을 비싸게 산다"고 주장했다.

실제 일부 대학의 문헌정보학과 교수들을 통해 확인해 봤더니 그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미국에서는 책을 출간할 때 종이 한 장으로 간단하게 표지를 장정한 페이퍼백과 딱딱한 표지의 양장본을 함께 출간하며, 양장본이 당연히 페이퍼백보다 비싸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해리 포터 시리즈의 경우 페이퍼백 가격은 약 10달러, 양장본은 17달러다.

그런데도 미국 도서관들은 주로 비싼 양장본을 구입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도서관의 경우 여러 사람이 읽기 때문에 책에 손상이 갈 수 있어 보관을 위해 일부러 튼튼한 표지의 양장본을 구입한다. 또다른 이유는 바로 저작권 개념이다. 즉 여러 사람이 함께 읽는 책이니 이에 합당한 대가를 저자에게 지불해야 한다는 통념이 미국의 공공 도서관과 대학 도서관들 사이에 형성돼 있다. 도서대여점이란 사업이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미국 도서관들이 비싼 값에 책을 사는 진짜 이유가 바로 저작권에 있다.

그러나 우리 도서관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우리는 양장본과 페이퍼백을 따로 인쇄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 시스템의 문제가 더 크다.

우리 대학이나 대형 공공 도서관들은 주로 입찰제로 책을 구입한다. 이런 제도적 문제 때문에 도서관 사서들이 책을 구입할 때 최대 변수는 가격이 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부분이 국내 출판사들을 어렵게 하고 저자들의 출판 의욕을 꺾는다는 점이다.

비단 도서관 뿐만 아니다. 지난달 서울 종로구청은 동네 서점을 살리기 위해 구청 관할 도서관이나 마을문고에 공급할 책을 동네 서점에서 구입하면서 과도하게 할인을 요구해 논란이 됐다. 출판사들이 온라인서점에 20~30% 할인해 납품하니, 정가보다 20% 싸게 납품하라는 요구였다. 동네 서점을 살리겠다고 책을 구입하면서 오히려 가격 후려치기를 한 셈이다.

공무원들 조차 '책은 싸게 사야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도서관만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우리 출판시장을 죽이고 동네에서 서점을 내쫓는 문화적 파괴 현상으로 나타나는 점을 한번쯤 돌아봐야 한다.

과거 동네에 최소한 한 두 곳 있던 서점들이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최근 공개한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2003년 전국에 3,589개였던 서점이 지난해 말 2,331개로 3분의 1이 줄었다. 경기 의왕, 경북 문경 등 36군데는 서점이 단 1개 뿐이고, 인천 옹진군과 경북 영양ㆍ울릉ㆍ청송군 등 4개 지역은 아예 한 곳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다양하고 많은 저작물이 쏟아져 나와 사람들의 지적 활동에 보탬이 되기를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출판해봐야 팔 곳이 없고, 팔아봐야 남는 게 없으니 누가 열심히 지식 노동을 하려 들겠는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환경을 탓하기 전에 사회적으로 저작물을 제대로 대우하고 있는 지 우선 돌아볼 일이다. 꼭 출판물 뿐만 아니라 영화 음악 만화 등 인터넷에 공짜로 차고 넘치는 콘텐츠들을 보면 과연 좋은 세상이라고 환호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각종 저작물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시장에서 좋은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공급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최연진 산업부 차장대우

Posted by 겟업
2014. 7. 12. 23:44

또 대참사가 일어나 버렸다.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보내던 1995년 6월, 도쿄의 어머니가 갑자기 "괜찮냐? 위험하지 않느냐"고 전화를 걸어오셨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본에서도 크게 보도되었던 것이다. 그 사건 기억이 난다. 20년 지나서 이젠 한국도 그런 대규모 사고는 없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흘러넘치는 한국 언론 보도를 도쿄에서 정리하고 있다. 수사기관은 선장이나 선원이 승객보다 먼저 탈출했다고 언론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 같다. 일본 언론도 선장이 얼마나 무책임한 사람인가를 강조하고 있다. 그 행동에는 분노와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굳이 묻고 싶다. 한국 사회는 또 이번에도 선장 혼자에게 욕설을 퍼부어서 빨리 잊고 싶을까.


기억이 난 사고가 하나 더 있다. 내가 일본 오사카에서 신문기자로 일하던 2005년 4월 25일 오전 9시 18분, 만원의 통근 전철이 오사카로 가는 길에 커브를 틀지 못하고 아파트에 충돌해, 107명이 숨지고 56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후쿠치야마선 탈선사고'다. 대학 입학식을 마친 지 얼마 안 된 여대생들, 아이 4명의 아버지... 그날도 여느 때처럼 학교나 회사로 떠났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부서진 차량 안에서 피해자를 구출하는데 며칠이 걸렸다. 세월호 사고처럼 초조해하면서 구출 소식을 기다리는 가족을 찾아다닌 날들이 떠오른다.


전철은 23세의 남성 운전기사가 운전했고, 직접 원인은 과속이었다. 운전기사는 과거에도 실수를 잇따라 저질러 재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날도 아침부터 실수를 연발해 도착 시간 지연을 만회하려고 서둘렀던 것 같았다. 더 이상 실수가 드러나면 운전기사에서 강등될까 봐 두려워했던 것 아닌가 싶다. 운전기사도 사고로 사망하는 바람에 진실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당시 정부 사고조사위원회는 그러한 배경을 캤다.


그러나 "미숙한 운전사 한 명 탓이다" 식의 비난은 언론도 일본 사회도 퍼붓지 않았다. 그렇게 힐책하는 유족들이나 생존자, 철도회사 사원은 있기는 있었다. 하지만 큰 소리가 아니었다. 초점은 "왜 운전기사는 그런 상황에 몰렸을까?"로 압축됐다.


그것은 아마, 적지 않은 유가족과 부상자들이 "다시는 우리와 같은 아픔을 누군가가 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 사고의 교훈을 재발 방지에 살리길 바란다. 아니면 희생이 쓸모 없게 돼 버린다"고 원했고 사회도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운전기사에게 책임을 돌려 결국 국철에서 분할 민영화된 철도회사나 행정 당국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했던 것이다.


유족들은 단합해서 사고를 일으킨 철도회사와 재발 방지책, 피해자 보상 등을 끈질기게 교섭했다. 철도회사는 승무원의 안전 교육에 힘을 쓰게 됐고 재교육 제도가 징벌적 성격이 너무 강해서 운전기사에게 압박을 준다고 비판 받자 더욱 실천적인 커리큘럼으로 바꿨다. 도착 시간을 중시하는 철도 운행 시간표가 운전기사에게 압박이 된다고 지적 받자 도착 시간도 늦췄다. 정부는 사고 현장을 비롯해 전국의 급커브에 속도를 자동으로 낮추는 안전 장치를 설치했고, 원래 국토교통성 기관이었던 사고조사위원회도 보다 독립성이 높은 '운수안전위원회'로 강화됐다.


이번 사고의 선원들은 어떨까. 승객 목숨보다 자기 목숨이 더 중요하다고 도망쳤다면 선원들은 직업에 자부심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해상 안전을 맡겨야 하는 상황은 구조적으로 건전한가? 그런 사람들에게 승객 안전 훈련이나 책임감 교육을 하는 것을 작은 해운 회사만 책임져야 할까? 선장은 1년 단위의 비정규 직원이었다는데 자부심을 갖고 승객 안전에 책임질 만한 대접인가. 도대체 선장은 자랑스러운 직업으로서 사회에서 인정 받고 있을까?


엉터리 건물을 지어 붕괴시킨 백화점 회장, 지하철에 불을 지른 미친 남자... 사회가 악인을 만들기는 쉽다. 특히 수사기관은 유족의 한을 풀기 위해 악인을 찾아내고, 때로는 억지로 만들어내고 나름대로의 '정의'로 철저히 문책한다. 물론 책임 있는 자는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악인을 규탄하는 재판에서 업계의 구조적 착취 구조나, 승무원의 안전 교육을 게을리하는 업계 구조, 행정기관의 책임 등 배경 요인 규명을 기대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책임 추궁과는 일단 상관없기 때문이다. 사법 절차와는 별도로 원인을 조사할 수 있는 독립성 높은 사고 조사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쁜 놈을 교도소로 보내고 사건은 잊힌다. 사회는 사고의 교훈을 일시적으로 공유할 뿐 또 사고가 되풀이된다. 1993년 서해 훼리호 사고를 대부분 사람들이 잊어버렸듯이.


선장, 선원, 해운사만이 아니라 법규와 정부기관의 책임을 검증하려는 보도가 점점 나오기 시작한다. 늙은 현장 책임자 한 명을 악마로 만든 사이, 정말 나쁜 악마는 숨어서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선장의 행위를 "살인 같은 행태"라 비판했다는데 선장을 화풀이 틀로만 소비하지 말고 정말 악마와 오래 시간을 걸쳐 싸워야 할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 가족의 생환을 바라는 사람들, 기적적으로 생환한 사람들, 혹은 텔레비전 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모든 한국인도 지금은 그런 정신적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잃어버린 수많은 젊은 목숨을 위해 재발 방지에 힘써주길 바란다.


후쿠치야마선 사고가 발생한 지 4월 25일로 9년이 된다. 올해도 위령식이 열리고 현장을 찾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도 매년처럼 사고 현장을 찾아갈 계획이다.


로 허핑턴포스트 일본판 뉴스에디터

http://www.huffingtonpost.kr/taichiro-yoshino-kr-/story_b_5189479.html


Posted by 겟업
2014. 4. 8. 05:21

2014년 새해에도 우리 앞엔 많은 과제가 던져질 것이다.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는 올해도 정치는 계속 요동칠 게 분명하다. 경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저성장 늪에서 탈출하기 위한 발버둥을 쳐야 한다. 공기업 개혁처럼 갈등과 저항을 넘어가야 할 일도 한둘이 아니다. 나라 밖으로는 '미국·일본 대(對)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치 구도가 더욱 첨예화하면서 우리가 설 자리를 좁혀 올 일이 걱정이다.


北의 안과 밖이 요동치는 중

그러나 이 아침에 우리는 그 모든 도전에 앞서서 북한 땅을 먼저 바라보게 된다. 지난해 말 우리는 북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代) 왕조의 폭력적·야만적 실체를 목격했다. 21세기의 세상에서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 우리 지척에서 벌어졌다. 40년 2인자라는 북한의 실세가 그 파벌과 함께 공개 처형됐다. 기관총으로 신체를 산산조각 내는 방식으로 형을 집행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 사법 체계란 것은 조직폭력배들의 린치와 다를 것이 없었다. 서른 살 독재자 앞에서 '건성건성 박수 친 죄'가 사형 죄목에 포함되는 것도 보았다. 이 공포정치로 북의 모든 사람이 겉으로는, 또 당분간은 김정은 권력 앞에 떨며 머리를 조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누구든 언제든 기관총구 앞에 한낱 제물로 설 수 있다는 불안감은 북의 권력층 내부에도 무거운 연기처럼 깔려나갈 수밖에 없다.

북에 불어닥친 숙청 피바람은 결국 돈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수산물 이권을 놓고 장성택파와 군부가 총격전을 벌인 것이 사태의 발단이었다고 한다. 지금 북한의 사정은 얼마 되지도 않는 달러를 놓고 파벌끼리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일 정도로 악화돼있다. 우리가 이번 북의 사태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지금 북한 땅에서 중요한 것은 이념도 아니고 명분도 아니며 오로지 달러라는 사실이다. 돈을 놓고 권력층 내부가 친족끼리도 갈라져 총격전을 벌인다는 것은 그 체제의 건강성이 땅바닥까지 떨어졌다는 증거다. 체제의 지속 가능성이 소진됐다는 뜻이며 앞으로 북의 체제가 어떤 기복을 보이고 얼마를 더 존속하든, 큰 관점에서 지금부터는 종말 단계로 보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북의 체제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지금, 북한을 둘러싼 외부 환경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북한을 동북아에서 미국의 세력 확장을 막을 수 있는 지정학적 자산(資産)으로 여겨왔다. 그런 중국의 눈에도 이제 북한은 갈수록 정치·외교·경제적 부채(負債)에 불과한 것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지난해 초 중국의 거듭된 만류에도 북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이후 중국의 이런 시각 변화는 우리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해지고 있다. 중국은 북한 내 대표적 친중파(親中派)였던 장성택의 처형에 대해 공개적으로는 '북한 내부의 일'이라고 논평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대경실색했을 것이다.


이제 통일은 언제 닥칠지 모를 현실

최근 중국 국책 연구 기관들이 잇따라 그동안 금기(禁忌)에 가까웠던 북한 급변 사태 문제를 공개 거론하고 있다. 중국이 당장 북한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접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의 4차 핵실험이나 공개 처형과 같은 도발, 반(反)문명적 행태가 계속되면 중국의 실망과 분노는 점차 구체적 정책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 변화들은 어느 순간 중·북 관계의 근본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장성택 처형 이후 미국 조야(朝野)에선 이제 북한 핵 문제는 '김씨 왕조 교체' 외에는 달리 해법이 없다는 의견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대표적 대북 협상파였던 리처드 아미티지 전 미 국무부 부(副)장관은 '북 정권 교체(regime change)'가 아니라 '북 정권의 변화(changed regime)'가 필요하다고 했던 사람이지만 장성택 사태 이후엔 "내 생각이 틀렸다"고 고백했다. 현실적으로 북한 정권 교체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북한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 점차 근본적 해법을 찾는 쪽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북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이런 미국의 시각이 더 강화될 것이다. 2014년은 미국과 중국이 북한 문제의 근본적 해법을 놓고 본격적 전략 대화를 시작하는 첫해가 될 가능성이 있다.

25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시작된 독일 통일은 유럽의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갑작스레 새로운 바람이 불고 정말 우연히 역사의 문이 열렸다. 그때 서독은 여야(與野) 가리지 않고 모두가 힘을 합쳐 그야말로 동분서주했다. 미국의 강력한 후원 아래 소련(蘇聯)이 결국 통일에 동의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지금 동북아와 북한의 정세를 당시 유럽과 동독의 상황과 곧바로 비교할 수는 없다고 해도 유사한 점이 분명히 있다. 어느 작은 기미가 언제 해일(海溢)로 바뀌어 밀어닥칠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독일 통일이 준 커다란 교훈 중 하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은 이런 교훈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 1990년대 초 소련이 무너지고 냉전(冷戰) 체제가 막을 내리면서 세계는 탈(脫)이념으로 나아갔지만 한국 사회는 반대로 북한관·통일관의 이념 대결 양상이 더 심화됐다. 이제는 정치적으로 편이 나누어지는 선(線)과 북한관·통일관이 갈라지는 선이 일치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야당 지지자면 여당 쪽이 말하는 '북한'과 '통일'은 무조건 반대하는 식이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위험하고 불행한 일이다.


왜 통일인가

언제부터인지 우리 내부엔 통일 논의를 금기시하는 흐름도 생겨났다. 역대 정권은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공개적 통일 논의를 꺼렸다. 생업에 바쁜 국민에게는 통일은 멀고도 비현실적인 문제일 뿐이었다. 그러나 북과 북의 주변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변화들은 '통일은 도둑처럼 찾아올 것'이란 말을 더 이상 흘려들을 수만은 없게 하고 있다. 정치적 선호를 떠나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이 상황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선일보 신년 여론조사를 보면 '통일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답변은 20년 새 절반으로 줄고 '분단 상태가 낫다'는 응답이 두 배로 늘었다. 통일 시대의 주역이어야 할 20~30대 젊은 층은 거의 절대다수가 통일에 부정적이다. 국민이 몹시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통일 비용이다. 통일 비용은 적게는 수십조 원, 많게는 수천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통일 비용은 기준과 기간에 따라 천양지차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통일로 얻는 큰 이익은 통일에 드는 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호전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북한을 상대하면서 치러야 하는 유무형의 분단 비용은 산정(算定)할 수도 없을 만큼 막대하다. 그 고통과 질곡에서 벗어나는 것 하나를 위해서라도 어떤 비용이든 치를 가치가 있다. 통일 비용은 일시적이지만 통일로 인한 이익은 영원하다. 얼마가 되든 통일 비용은 결국 우리 민족과 우리 땅을 위해 쓸 돈일 뿐이다. 그 비용을 치르고 우리가 얻는 것은 폭정으로부터 '해방'되는 2300만 동포와 온전한 '국토', 수천 년 민족사에서 처음으로 얻는 세계 주요국으로서의 '번영'과 '기회', 그리고 우리 후손에게 영원히 물려줄 '평화'와 '희망'이다.


해방 100년을 분단된 채 맞을 수 없다

독일 통일 직전 유럽 경제계의 화두 중 하나는 '경제 기적 후 활력을 잃은 독일'이었다. 그러나 20여년 후인 지난해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또 하나의 패권국으로 등장한 막강한 독일'에 관한 특집 기사를 실었다. 독일은 통일 후 20년 가까이 통일 비용을 치렀다. 한때 '통일을 후회한다'는 얘기가 들린 적도 있다. 그러나 결국 유럽과 세계를 이끄는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섰다. 지금 독일인에게 '통일을 되돌릴 수 있으면 되돌리겠느냐'고 물어본다고 할 때 '그렇다'고 답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것이 통일과 통일 비용에 관한 진실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100여년 전 열강(列强)의 사냥감 신세였던 그 처참한 나라가 아니다. 우리에겐 충분하지는 않다 해도 만만치 않은 역량이 있다. 우리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하지만, 우리 능력을 과소평가해 다가온 기회를 향해 손을 내밀지도 못하는 천추의 한(恨)을 남겨서도 안 된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 동북아의 복잡한 정세는 얼마든지 통일의 순풍으로 바뀔 수 있다. 미국의 통일 후원과 중국의 동의는 절대로 꿈속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손이 북한 주민에게 내미는 구원의 손길로 바뀌면 북한 전체 주민이 남(南)에 있는 희망의 빛을 보게 되는 날도 반드시 온다. 결국 모든 것은 우리의 결단과 지혜, 준비에 달렸다.

통일은 바란다고만 이루어질 수도 없고, 바라지 않는다고 막을 수도 없다. 우리가 이 길을 걸어가다 역사의 어느 모퉁이를 돌았을 때 예기치 않게 통일과 마주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먹구름 사이로 해가 비치듯 잠시 왔다가 사라져버릴 그 기회를 잡아야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세대 모두의 역사적 의무다. 바로 지금 신발 끈을 고쳐 매야 한다.

앞으로 31년 뒤면 일제(日帝)로부터 해방된 지 100년이 된다. 독일에 열렸던 역사의 문이 우리에게 언제 열릴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해방 100년을 분단된 채로 맞을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비원(悲願)이다. 우리는 지금이 역사적 전환기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우리의 사고(思考)부터 한반도의 반쪽을 벗어나 한반도 전체를 시야(視野)에 두는 것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올해 우리 모두가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서서 더 멀리 더 크게 보고 움직이겠다는 각오를 다졌으면 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31/2013123103675.html



Posted by 겟업
2014. 4. 8. 03:41

잊을 만하면 매스컴에 등장하는 게 매 맞는 구급대원 이야기다. 응급 환자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고 구급대원이 출동했는데 환자 본인이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한테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매 맞는 의사나 희롱당하는 간호사나 욕 듣는 콜센터 상담원 이야기도 있다. 상식적으로는 왜 자기를 도와주려는 사람을 때리고 욕하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현실적으로는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이며 피해자도 있다.

우리 모두는 예비 민원인이다. 언제든지 누구라도 구급차를 요청할 가능성이 있으며 콜센터에 전화해 문의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서는 우리 모두가 당사자다. 생각해 보면 매를 맞거나 욕을 듣는 사례의 공통점은 모두 사람이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면 갈등이 생기기 쉽다. 아무런 갈등이 생기지 않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갈등이 생기고 가장 친한 친구끼리도 갈등이 생기는데 하물며 생면부지 구급대원과는 '일러 무엇하리오'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서비스 경제 사회로 진입하면서 이런 갈등 구조를 해결하지 못하면 서비스 경제의 선진화는 요원해진다. 어쩌다 일어나는 작은 문제라고 방치하면 서비스 경제 전체에 연쇄적으로 나쁜 효과를 줄 수도 있다. 서비스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과학이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서비스는 주관적이며 감성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과 감성을 모두 만족하면서 수준 높은 서비스를 하려면 그 방법은 서비스의 가시화에서 찾아야 한다. 데이터의 과정과 결과에 관한 객관적 데이터를 가시화하고 이를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감성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서비스 과정을 가시화하려면 활동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거나 대화를 녹음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에는 구급차 내외의 상황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거나 콜센터 상담원과 나눈 대화를 녹음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폭력 행위가 발생한 경우에도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게 동영상이나 녹음 파일이 있는지 여부다. 이를 보면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한다.

그러나 서비스 과정의 가시화만으로는 소극적 대처에 머문다. 동영상을 보면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는 행위가 서비스 품질을 올리는 것과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서비스 과정을 가시화하는 것이 구급대원에게 방어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민원인이 원하는 서비스 품질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서비스 과정만 가시화한다고 해서 구급대원과 민원인 사이의 갈등이나 폭력이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는 기대하기 어렵다.

서비스의 갈등 구조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고 품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서비스 결과의 가시화가 함께 진행돼야 한다. 구급대원이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면 환자는 그 후에 어떤 과정을 겪고 어떻게 됐는지 결과를 가시화한다. 서비스 과정에서 일어났던 장애 요인도 함께 공개한다. 만약 태워 가는 과정에서 도로가 막히고 일반 차가 길을 양보하지 않아 시간이 많이 걸렸다거나 환자를 데려갈 적절한 병원이 없어 온 도시를 빙글빙글 돌았다면 이 역시 데이터를 가시화한다. 서비스 과정과 결과를 함께 가시화한 것을 보면서 갈등 구조의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객관적이며 가시화한 데이터를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감성적으로 느끼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 민원인도 참여하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은 자연스럽게 신뢰를 얻게 된다. 신뢰받는 기관에서 품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민원인은 안심하고 서비스를 요청한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가 그리는 서비스 경제 사회의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서비스는 자연스러워야 한다.



윤태성 KAIST 기술경영학과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22/2013122202433.html



Posted by 겟업
2014. 3. 6. 14:09

"아직도 배고프다는 나라는 흔하지 않죠."

최근 만난 세계적 신용 평가 회사인 무디스 관계자는 "외국인들이 보는 한국 경제의 강점은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사모펀드 운영자 등 글로벌 전주(錢主)들을 만나며 그들의 속내를 듣는 사람이다. 최근 우리 경제에 대한 해외의 칭찬이 잇따르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한층 강화된 위기관리 시스템' 같은 모범 답안은 2%쯤 부족한 듯했다.

그런데 그 답이 '아직도 배고픈 나라'였다. 우리가 아직 배고프다고? 이제 신흥국을 벗어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려는 나라인데? 이런 궁금증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랬다.

"국민소득 2만달러 넘는 나라 중에서 한국처럼 온 국민이 배고프다고 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물론 이런 점 때문에 부작용도 있겠지만, 이런 정신 때문에 한국은 발전할 여지가 크다고 외국인들은 본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남에게 신세 지는 것보다 스스로 뭔가 해보려는 정신이 살아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브릭스(BRICs) 나라 중에서 '배고프다'는 나라는 별로 없다. 동남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늘 배고파하라(stay hungry)'고 한 축사에 미국인들이 열광했다. 한국인들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은 늘 배고프고, 그게 당연하니까. 그런데 미국에서는 억만장자 입에서 나온 이 말이 엄청난 각성제였다."

그렇다. 가만히 보면 우리 사회엔 '아직도 배고프다'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기업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입에 달고 사는 것도 그렇고, 자식 교육에 목을 매는 일도 그렇다. 60세 넘어서도 일하고 싶다는 신(新)중년들이 그렇고, 제발 일자리만 만들어 달라는 청년들이 그렇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정치 지도자와 정책 당국자들은 아주 행복한 사람들이다. 일부 남미 국가나 남유럽 국가처럼 '배고프다'를 잊고 사는 나라에서는 어떤 정책도 '백약이 무효'이다.

얼마 전 사석에서 '한국적 평등 의식'이 우리 발전의 원동력이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늘 일본을 우습게 보며 추격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왜 못할쏘냐' 하는 한국적 평등 의식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의식을 경제성장이란 목표에 접목했을 때 우리는 행복했고, 나라도 행복했다. 반면 이웃을 헐뜯고, 사회를 '빈부'로 갈라 세우는 데 접목하면 '평등 의식 망국론'이 나온다. '아직도 배고픈 우리'도 마찬가지다. 경쟁자를 잘 골라야 한다. 글로벌 경쟁자와 싸울지, 좁은 울타리 안에서 우리끼리 싸울지는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 배고픈 원인을 따지고, 모든 문제를 배고픈 탓으로 돌리는 데 시간을 소비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우리의 성공 방정식은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하지만 그래도 유효한 것은 많다. 동시에 우리 사회는 배고프다는 사람을 '자산'으로 대접해야 할 것이다.



이인열 경제부 차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9/22/2013092267005.html



Posted by 겟업
2014. 1. 22. 12:40

첫 한국인 아이비리그 총장 탄생, UC 총장·예일大 학장도 배출. 실력과 성과 위주, 다른 분야보다 소수민족 차별 덜한 곳이 바로 학계



지난 3월 2일, 美(미) 학계를 뒤흔든 일대 ‘사건’이 있었다. 아이비리그(미 동부지역 8개 명문대학교로, 브라운·컬럼비아·코넬·프린스턴·하버드·예일·다트머스·펜실베이니아를 뜻함) 중 하나인 다트머스大(대) 신임 총장으로 한국인 金墉(김용·미국명 Jim Yong Kim) 하버드대 의대 국제보건·사회의학과장이 임명된 것. 한국인으로서는 물론 아시아인 최초로 아이비리그 총장이 된 것이다. 

워낙 이례적인 일이라 ‘사고’도 뒤따랐다. 학내 동아리의 일부 학생이 김 총장 선출 다음날 재학생과 졸업생 1000여 명에게 ‘김 내정자가 학교를 아시아化(화)할 것이며, 다트머스는 미국이지 중국 식당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것. 다트머스대 화학과를 졸업한 한국인 양윤희(35)씨는 “다트머스는 아이비리그 중에서도 특별하다고 할 정도로 학생과 교직원 대부분이 백인 상류층인 곳”이라고 귀띔했다. 

이 사건은 이메일을 보낸 학생들의 공식 사과로 마무리됐지만, 어쨌든 노벨상(평화상 제외) 수상자 한 번 내지 못할 정도로 학계에서는 ‘邊邦(변방)’에 가까운 한국이 전 세계의 상아탑과도 같은 아이비리그의 총장을 배출했다는 것은 일대 사건임에 틀림없었다. 

국내외의 일부 학자들은 “김 신임 총장의 업적과 성과가 탁월했던 이유도 있지만, 미국 학계에서 한국인의 위상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는 방증”이라고 입을 모았다.  
미국 4년제 대학에 한국인 총장이 임명된 일이 있었을까. 지난 2007년 3월 姜城模(강성모·64) UC(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산타크루즈 공대 학장이 같은 UC 계열인 UC머시드 총장이 된 것이 최초다. 한국인이 미 명문대 학장에 임명된 사례도 있다. 高洪株(고홍주·55) 예일대 법대 교수는 2004년부터 지금까지 임기 5년의 법대 학장職(직)을 맡고 있으며, 故(고) 林吉鎭(임길진) 前(전)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미시간주립대 국제학장(1991~1995)을 역임했다.

이밖에도 한국인으로서 노벨상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받는 물리학자 金必立(김필립·42) 컬럼비아대 교수, 30대에 하버드대 종신교수(테뉴어)가 된 朴弘根(박홍근·42) 교수, 세계 각국의 기업이 주목하는 ‘블루 오션’ 이론을 주창한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김위찬(58) 교수 등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한국인 학자들이 적지 않다. 
月刊朝鮮은 세계 유수의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고 연구성과를 내는 등 두각을 나타내고 있거나, 아이비리그와 아이비플러스·퍼블릭아이비·빅10(박스기사 참조)과 주립대 등 미국의 이른바 ‘명문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한국인을 조사,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취재했다.

 

▲ 미국 아이비리그(동부 명문대학) 최초의 아시아인 총장에 뽑힌 김용(미국명 Jim Yong Kim) 다트머스대 신임 총장. 그는“세상을 바꾸는 젊은이들을 키워내는 데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블룸버그뉴스 제공

醫學 분야에서 두각

세계적인 한국인 학자는 의학과 기초과학·공학·사회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찾을 수 있었다. 특히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비롯해 의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인 학자가 많다. 노벨의학상 한국인 수상자가 몇 년 내에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그 선두주자가 하버드대 鄭在雄(정재웅·45) 교수다. 

정 교수는 하버드 의대 미생물·분자유전학과 교수이며 하버드 의대 산하 뉴잉글랜드 영장류센터 암바이러스과 학과장이다. 서울대 농대 졸업 후 유학길에 올라 UC데이비스에서 대장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하버드 의대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다. 

1994년 하버드 조교수로 임용됐고 2004년 테뉴어(Tenure: 종신교수)를 획득했다. 
하버드 의대는 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인정받지 못하면 종신교수직을 부여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 교수의 연구 분야는 피부암의 원인 바이러스인 ‘카포시육종’ 연구. 카포시육종이 피부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1998년 세계 최초로 입증해냈다. 이 분야 논문 100여 편을 발표한 바 있는 정 교수는 박사급 포함 연구원 20여 명을 두고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의대 내에서 가장 큰 연구실을 맡고 있는 것. 

정 교수는 “미국의 교수는 스스로 연구비와 실험실 운영을 책임져야 하는 만큼 부담이 크지만 그만큼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80세가 넘어도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하버드 의대 부학장으로 자리잡은 高京珠(고경주·57) 보건대학원 부학장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인 학자다. 고홍주 예일대 법대 학장의 형인 고 교수는 예일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다섯개의 전문의 자격(종양학·혈액학·피부학·내과·보건학)을 가지고 있어 미국에서도 몇 안되는 복수전문의로 유명하다. 현재 임상은 맡지 않고 공중보건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으며, 탁월한 연구업적으로 1999년에는 미국 암학회가 1년에 3명씩에 수여하는 ‘훌륭한 의사상’을 수상했다.

그는 1997~2003년 매사추세츠州(주)정부에서 보건부 장관을 지냈고, 빌 클린턴 정부에서는 대통령 직속 암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미국 내에서 금연정책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2003년부터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부학장 겸 교수로 재직중이다. 고 교수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한 사람보다 잘 세운 보건정책 하나가 수백만 명의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 있다”며 “질병예방 분야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버드 의대에는 이들 외에도 김광수·김영범·윤석현·유승식 교수 등을 비롯해 한국인 교수가 3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金城完(김성완·69) 유타대 생체공학과 석좌교수도 인공심장과 유전자 치료 등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학자다. 미 국립보건원 자문위원으로 일했으며 미 학술원 정회원 및 미 공학학술원 종신회원으로 활약중인 학자다. 지난 1982년 유타대에서 세계 최초로 실시된 인공심장 개발 및 수술에 참여, 결정적인 공헌을 한 바 있으며, 최근 유전자치료 연구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미국 최고특허상(1980년), 유타대 최우수연구상(1987년), 미국 약학협회 데일우스터상(1998년) 등을 수상했다. 

김 교수의 명성에 주목한 한양대는 지난 2004년 그를 석좌교수로 전격 스카우트해 연구를 전폭 지원하고 유타대와 공동으로 약물전달 시스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신동문 에모리대 의대 종신교수


癌연구에서 한국인 두각

申東文(신동문·58) 에모리대 의대 종신교수는 癌(암)연구의 권위자다. 에모리 의대 암센터의 종양내과·이비인후과 종신교수인 신 교수는 2003년과 2005년, 2007년 ‘미국 최고의 의사(The best doctors of America)’로 선정됐다. 2007년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의 우수연구 특별프로그램 총괄책임자로 선정된 데 이어 2008년 에모리 의대 암센터의 특임 석좌교수로 임명됐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渡美(도미)한 그는 텍사스의대 MD앤더슨 암센터에서 특별연구원 및 교수로 15년간 재직했다. 2001년에는 피츠버그대의 두부경부암센터 소장으로 스카우트됐고, 2003년 에모리대에 부임했다. 신 교수는 “레지던트 시절에는 밤을 새워서 일하는 날이 흔했고, 암센터 연구원 시절에도 매일 18시간 이상 연구하며 수 년을 보냈다”며 “암은 자기절제와 통제로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인 만큼 치료도 중요하지만 예방 분야에 대한 연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암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의 병원으로 평가되는 MD앤더슨센터(텍사스주 휴스턴 소재)에는 50여 명의 한국인 의사가 있는데, 이 중 1980년부터 활약중인 한국인 학자가 있다. 29년째 환자치료와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金義信(김의신·67) 방사선·내과 교수다. 

김 교수는 1994년 미 핵의학회장을 지낸 핵의학 전문가다. 양전자방출 단층촬영(PET)의 大家(대가)인 그는 1991년과 1994년 미국 최고의 의사로 선정됐다. 김 교수는 “한국에 유능한 의사들이 많은데도 한국인 환자들이 미국을 계속 찾는 이유는 한국에서 고급 치료와 서비스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미국에서 활동중인 한국인 의사가 1만5000여 명에 달하는 만큼 이들을 조직화해 네트워크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학계에 있지는 않지만 의학 분야에서 ‘대가’로 인정받아 민간기업으로 스카우트된 한국인이 金聖培(김성배·47, 피터 김) MSD(머크 연구소) R&D 총괄사장과 데니스 최(55) MSD 고문이다. 김성배 사장은 MIT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1997년 에이즈 바이러스의 인체 침투 메커니즘을 최초로 규명, 에이즈 백신 연구에 크게 공헌한 과학자다.


세계적 기업에서 앞다퉈 스카우트

다국적 제약회사인 머크는 세계 초일류 과학자들을 영입해 연구개발을 맡기는 것으로 유명한데, 2000년 그를 연구개발 총책임자로 영입했고, 2002년 연구소장에 임명했다. 코넬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 사장은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미국 화학회상, 미국 과학아카데미 분자생물학상 등을 수상했다. 

데니스 최 고문 역시 젊은 시절부터 촉망받는 과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하버드대에서 의학과 약리학 두 개 분야의 박사 학위를 동시에 취득했고, 이후 스탠퍼드대 교수 등을 지내며 칼슘 이온으로 인한 세포 사멸의 원리를 규명, 뇌졸중 등 뇌손상 치료제 개발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예일대 의대의 李春根(이춘근·46) 교수는 지금까지 60여 편의 연구 논문을 저명한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 이 교수는 한양대 의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미국 연수를 계기로 미국에 자리잡은 케이스다. 호흡기질환에 대한 동물 질병 모델을 만들어 病因(병인)을 연구하고 있다. 

“12년 전 渡美(도미) 당시에는 미국의 연구 여건이 한국에 비해 월등했고, 도전적이고 자유스러운 토론 및 연구분위기가 매력이었다”고 회고한 이 교수는 “최근 한국이 의학과 과학 분야에서 눈에 띄는 발전을 하고 있으며, 더 앞서 나갈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한국의 청년들이 세계 무대에 더 많은 도전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슐린 저항성(성인병의 원인) 예방 및 치료의 권위자인 崔哲洙(최철수·47) 前(전) 예일대 교수는 한림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3년 예일대 의대에서 마우스대사질환연구센터 참여를 권유받고 2008년까지 근무, 100여 종의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 가천의과학대에 재직중이다. 최 교수는 미국과 한국에서 각각 근무해본 결과 한국의 의학연구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임상의학자들이 진료에만 얽매이지 않고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환경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의 경우와 같이 임상과 기초연구를 병행한 의학자를 많이 받아들여서 연구를 촉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확장돼야 합니다. 그래야 이 같은 의료계의 무한경쟁 시기에 병원과 의대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기초과학 분야의 석학들

화학과 물리학 등 기초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인도 적지 않다. 원로급으로는 金聖浩(김성호·72) 前(전) UC버클리 화학과 교수가 손꼽힌다. 1970년 전달RNA(리보핵산)의 3차원 구조를 밝혔고, 1988년 세포성장의 비밀을 풀어준 RAS(종양유전자) 단백질 구조를 세계 최초로 밝혀내는 등 단백질 구조 결정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손꼽히는 학자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피츠버그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MIT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다 1972년 듀크대 교수로 임용됐으며, 6년 후 UC버클리로 옮겨 UC버클리의 화학연구소인 멜빈캘빈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미 국립학술원은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해 1994년 한국인 최초로 회원에 선출했다. 김 교수는 로렌스 버클리국립연구소 소장을 지냈고 2004년부터는 연세대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다.  

강성모 UC머시드 총장도 과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 물망에 올랐을 정도로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석학이다. 강 총장은 일리노이대의 전자·컴퓨터 공학과 교수와 학과장을 지냈고, 카이스트, 스위스 연방기술연구소, 독일 뮌헨대와 칼스루헤대, 미국 럿거스대 등에서 강의했다. 2001년부터 UC산타크루즈대 공과대학장을 지냈다. 강 총장은 전자·컴퓨터분야에서 현재 등록된 특허만 14건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같은 원로·총장급 외에 최근 ‘한국인 석학’으로 가장 주목받는 학자가 김필립 컬럼비아대 물리학과 교수와 박홍근 하버드대 화학·물리학과 교수다. 아직 40대 초반인 이들은 한국인으로서 노벨상을 탈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학자들로 손꼽히고 있다.
   
김 교수는 1999년 하버드대에서 응용물리학 박사가 됐으며, 현재 차세대 탄소나노 소자 분야의 세계적 선도자가 됐다. 지난 2005년 ‘그래핀’(graphen·탄소가 평면구조로 펼쳐진 물질로, 두께가 원자 한 개에 불과할 정도로 얇은 물질)을 반도체로 이용할 수 있다는 ‘양자홀 효과’를 입증하면서 단숨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래핀은 반도체에 사용되는 단결정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빠르게 전자를 이동시킬 뿐 아니라, 구리보다 100배 많은 전류를 흐르게 할 수 있어 기존 반도체 패러다임을 바꿀 차세대 신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박홍근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 수석 입학과 서울대 전체수석 졸업(4.3 만점에 4.22) 후 스탠퍼드대에서 4년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1999년 32세의 나이에 하버드대 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4년 만인 2003년에 부교수로, 다시 1년 만에 종신교수가 되면서 하버드대학 내에서도 초고속 승진으로 유명세를 탔다. 

단원자 트랜지스터 연구로 명성을 얻은 후 분자전자과학이란 새로운 과학 분야를 개척한 공로로 이미 노벨상에 근접한 과학자로 꼽히고 있다. 박 교수는 “한국 내 연구진은 미국에서 이미 추진했던 큰 프로젝트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며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성공 가능성을 미리 따져 연구에 나서기보다는 일단 한번 해 본다는 마음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대학이라면 수 년 내에 상품화할 수 있는 연구보다는 10년 이상 내다보는 연구를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벨상에 근접한 
40대 초반의 한국인들

김필립 교수와 서울대 물리학과 86학번 동기인 河澤潗(하택집·42) 일리노이대 물리학과 교수도 세계 생물물리학(생체 내 단일 분자들의 기능과 활동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의 권위자다. 하 교수는 단일 분자 분광학 및 조작 연구로 사이언스, 네이처, 셀 등 세계 3대 과학저널에만 5편의 논문을 실은 것을 비롯, 총 7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2005년에는 10년간 5000만 달러를 지원하는 하워드 휴즈 프로그램 수상자로 뽑히기도 했다. 하 교수는 “최근 생물과 물리를 결합해 생명체의 신비를 규명하고 난치병 치료에 도전하는 학문인 생물물리가 미국 학계에서 관심받는 분야 중 하나”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생물물리 같은 융합과학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과학자들간 협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도 이 분야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있습니다. 한국의 연구자들도 개방적으로 힘을 모을 필요가 있어요.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도 필요하고요.”  

承現峻(승현준·43) MIT 물리학과 교수는 24세에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루슨트테크놀로지 연구원을 거쳐 MIT로 옮겼다. 승 교수의 연구분야는 이른바 ‘계산신경과학’. 뇌를 컴퓨터로 가정하고 연구하는 것으로, 뇌의 기능을 컴퓨터에서 재연하는 연구를 한다. 인공지능과 비슷할 수도 있지만, 인공지능 연구자는 컴퓨터로 뇌를 모방하려 하는 반면 계산신경과학자는 뇌를 먼저 연구하고 이해하려 한다는 게 다르다. 승 교수는 “뇌신경 연구를 통해 얻는 방대한 정보는 미래 뇌과학 연구의 기반이 될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연구를 통해 기억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고, 일반적인 사람들 개인 간의 차이와 그 이유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정신질환의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법을 연구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咸敦熙(함돈희·36) 하버드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28세의 나이에 하버드 교수에 임용된, 주목받는 젊은 과학자다. 1992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한 뒤 자연대를 수석 졸업했고,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포스트닥(박사후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하버드대 교수로 곧바로 임용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박사 논문 ‘통합통신시스템의 잡음 프로세스’는 캘리포니아 공대 전자공학 분야 최우수 논문으로 뽑혔다. 한국인으로서는 역시 처음 있는 일이다.

金正彬(김정빈·62) UCLA 기계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NASA(미국 항공우주국) 연구원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다 대학으로 스카우트된 케이스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渡美(도미), 브라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석사 취득 후 공학 분야에서 더 앞서 나가던 스탠퍼드대로 옮겨갔다. 스탠퍼드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NASA 연구원 연구팀장을 거쳐 1993년 UCLA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NASA에서 연구팀장으로 업적이 쌓이니까 여러 대학에서 초청을 하더라고요. NASA의 연구 분위기가 좋아서 계속 거절을 했는데, UCLA에서 석좌교수를 제안한 겁니다. 비교적 젊은 나이(46세)에 석좌교수로 임명돼서 나름 부담스럽긴 했지만, 마음껏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입니다.”   

존스홉킨스대 재료공학과 劉承柱(유승주) 교수는 미국 정부가 수여하는 ‘젊은 과학자상(Presidential Early Career Award for Scientists and Engineers)’을 수상했다. 이 상은 미국 과학의 미래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격려하는 차원에서 주어지는 상이다. 유 교수는 생물성 재료로 알려져 있는 콜라겐을 변형시키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해 현재 인체 내 질병과 관련된 콜라겐을 추적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콜라겐을 이용해 인공 모세혈관을 만드는 연구도 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원을 거쳐 존스홉킨스대로 왔다. 

鄭相旭(정상욱·52) 럿거스대 물리학과 석좌교수는 연구실적으로 주목받는 학자다. 20여 년간 500편이 넘는 저명 학술지 논문을 발표해 SCI(Science Citation Index: 과학기술논문색인지수) 학술지의 피인용 지수가 1만8000회 이상으로 한국인 물리학자 중 가장 높으며, 2005년에는 이전 10년간 전 세계에서 13번째로 가장 많이 논문에 인용된 물리학자로 선정됐다. 

10만여 명의 연구원이 근무하는 AT&T벨 연구소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던 정 교수는 최근 포스텍의 석학교수로 초빙됐다. 포스텍은 한국 출신들의 세계 석학들을 석학교수로 초빙해 연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 신기욱 스탠퍼드대 교수

인문 사회분야에서도 활약


한국인 학자는 의학과 이공계 외에도 법학·정치학·경제학·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중인 사회학자이자 한미관계 전문가는 申起旭(신기욱·47) 스탠퍼드대 교수가 먼저 손꼽힌다. 영어로 출간된 자신의 저서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를 최근 우리말로 번역함으로써 한국의 ‘종족 민족주의’에 비판적 화두를 던진 그는 1983년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평범한’ 사회학자였다. 

그런 그가 ‘특별한’ 사회학자로 거듭난 계기는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부터였다. 역사사회학적인 방법으로 한국 사회를 연구해 미국 사회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 

이후, 신 교수는 일제시대를 바라보는 방법으로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 외에 ‘식민지 근대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세계적 학자로 자리매김했다. 2001년 한국학 전공자로는 처음으로 종신교수 자리를 얻은 신 교수는 현재 이 대학의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신 교수는 미국의 대표적인 북한문제 전문가이자 서울과 워싱턴의 정치인들과 두터운 인맥을 갖고 있다. 

韓鐘宇(한종우·47) 시러큐스대 정치학과 교수는 미국 사회와 한국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오고 있는 인물이다. 연세대에서 학부를 마친 후 시러큐스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 교수는 2002년 시러큐스대와 북한 김책공대와의 역사적인 학술교류를 시작한 주역으로 정보통신 기술이 정치, 선거, 정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주로 해왔다. 뉴욕 유일의 한인 라디오방송인 라디오코리아에서 매주 미국 정계를 해부하는 고정 칼럼도 맡고 있다.

박지원의 저서를 탐독하는 ‘실용주의 사상가’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김위찬 석좌교수는 전 세계의 CEO와 비즈니스맨들에겐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블루오션’(경쟁자가 없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시장) 이론을 만들어냈다. 

김 교수의 저서 <블루오션 전략>은 32개 언어로 182개국에서 번역돼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출판 사상 최다 판매기록을 갖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은 영토는 좁고 인구는 많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경쟁의식이 자리잡고 있다”며 “한국의 미래 번영을 위해서는 국가와 기업, 개인 모두가 경쟁의식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의식을 가져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블루오션 전략은 내수시장에서 한계를 가진 한국에 꼭 필요한 전략입니다. 한국은 시장의 창조적 개발을 위해 블루오션 전략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죠.”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이후 동 대학 비즈니스스쿨 교수로 재직하다 1994년 프랑스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세계경제포럼 국제경영전략분야의 전문위원, 유럽연합(EU) 경제정책위원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를 향해 “외국인은 사회에 새로운 힘을 주는 동조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던 宋成實(송성실·63) 워싱턴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이 발언은 미국 내 유색인종, 이민자, 여성 등 사회 소외계층의 인권과 관련한 그녀의 활발한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비주류 소수민족에서 학계의 주류로

국내 한 은행에서 근무하다 도미, 펜실베이니아 州(주)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미국 사회에서 행동하는 학자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국내에 사회복지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1970년대에 이 학문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1970년대 미국에서는 정부의 사회복지 확장정책 덕에 사회복지가 주목받는 학문이었다”고 말했다. 

1989년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으나 이 분야의 교수를 찾는 국내 대학은 없었다. 이때 워싱턴대의 교수직 제의를 받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에서 교수로 생활해 보니 저는 소수민족, 여성, 진보적 학풍 등 비주류의 조건을 두루 갖췄더라고요. 버텨내기 위해선 첩첩산중이었죠. 하지만 여기서 주저앉을 순 없다고 생각했어요. 다문화사회 연구기관을 적극적으로 구성하고 참여했습니다. 새로운 사회참여 이론과 평화운동에도 참여했고요.” 

송 교수는 수많은 노력과 경험을 통해 무력감과 소외감을 극복해낼 수 있었고, 다문화이론과 실천 연구 방면에서 미국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張洙淸(장수청·48) 퍼듀대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12년간 금융계에 종사하다 도미, 조지워싱턴대에서 호텔경영학 석사학위와 퍼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캔자스 주립대를 거쳐 퍼듀대에서 강의를 시작한 이래 80여 편의 논문을 국제 저널에 발표했다. 최근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식의 세계화와 관련해 많은 강연에 초청을 받고 있으며 미국 내 경험을 토대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장 교수는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해 우려도 많았다”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학업에 몰두한 결과 학생들의 강의평가도 좋았고 박사과정 중 발표한 논문 두 편이 국제학회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해 박사취득 후 바로 교수직을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鄭宇燮(정우섭·41) 위스콘신 밀워키 대학 정보학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정보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현재 인간과 컴퓨터 사이 디지털 시청각미디어 인터페이스의 정보인식에 관해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해외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한국인 교수로는 黃慶汶(황경문)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교수가 손꼽힌다. 그는 1992년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지역연구로 석사학위, 1997년 아시아 언어와 문명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2004년부터 이 학교의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USC 한국학 연구소의 소장이기도 한 그는 한국에서의 근대국가 기원과 개념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에피소드 중심의 이야기로 한국사를 세계에 쉽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우수논문상·신진학자상 등 섭렵

李在庚(이재경·42) 뉴욕주립대버펄로(SUNY Buffalo) 교육학과 교수는 2007년 미국 교육학회 신진학자장을 수상하고 지난해 스탠퍼드대 행동과학연구센터 연구원으로 선정된 교육학 전문가다. 공교육체제와 정책 설계 및 평가를 연구하고 있는 그는 연세대 교육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도미, 시카고대에서 교육학 박사를 취득한 후 바로 교수가 됐다. 

미국의 공교육을 체험하지도 않은 유학생이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주립대의 교수가 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미국의 공교육을 체험하지 못했다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자료조사와 연구, 현장방문에 매달렸다”며 “언어실력과 경험 등이 부족해 힘든 점도 많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교육학 전문가로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묻자 “미국의 고등교육은 전반적으로 우수하지만 대학의 질과 전공은 천차만별”이라며 “유학을 선택하기 전 확고한 목표와 계획을 세워야 하며, 성공하기 전에는 귀국은 물론 고국 방문도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나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현재 해외 학계에서 활동하고 있지는 않지만, 세계적인 석학의 범주에 드는 학자로 徐南杓(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전 MIT 교수), 愼昊範(신호범) 워싱턴주 상원의원(前 메릴랜드대 교수)이 있다. 서 총장은 MIT 대학원을 졸업하고 카네기멜런대에서 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70년부터 2001년까지 MIT 기계공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MIT 석좌교수직도 맡고 있다. 고분자·금속 제조공정기술과 마모이론의 권위자다. 

신 의원은 워싱턴주립대에서 동양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하와이대와 메릴랜드대에서 후학을 양성했으며, 워싱턴주 하원의원과 워싱턴주지사 고문을 거쳐 상원의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인 학자 더 많이 나와야” 

학자들은 대부분 도미 초기 언어소통과 치열한 경쟁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김정빈 UCLA 교수는 “국내에서 공부를 할 여건이 안돼 유학을 떠났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던 1970년에는 국내 최고의 대학에도 공대 대학원 과정이 정립돼 있지 않았어요.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유학을 떠나는 분위기였죠. 세계 최고의 두뇌들과 겨뤄 보겠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 유수의 대학은 성적보다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젊은이들에게 조언했다. “오바마는 컬럼비아와 하버드에서 리더십을 길렀습니다. 한국 역시 글로벌 인재를 길러내려면 일류대학들이 성적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한국 실정에 맞는 리더십을 길러줘야 할 것입니다.” 

장수청 퍼듀대 교수는 “미국에 있는 학교들의 한국 유학생 수는 중국 유학생의 수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반면 대학교수의 숫자는 중국인에 비해 훨씬 적다”며 “한국 유학생들도 더 정신무장을 하고 악착같이 노력한다면 중국·인도계보다 더 많은 학자를 배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인 학자들이 외국에서 활동하면서 소수민족으로서 겪는 어려움은 없었을까. 인터뷰에 응한 학자들은 대부분 “비교적 다른 분야에 비해 능력이 중요하고 차별이 덜한 곳이 학계”라며 “누구나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낸다면 모두들 인정하고 따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상욱 럿거스대 교수는 “권위있는 민간연구소에서 대학으로 스카우트돼서 오다 보니 차별보다는 오히려 대우를 받은 편”이라며 “학계의 경우 자국인이 아니라고 해서 차별한다면 학문적 성과를 놓치는 일임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차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연구소 재직 당시 중국인과 일본인 연구원들은 고위직에 있는 고국 출신의 고위직에 ‘줄’을 서고 그들로부터 고급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었지만 한국인으로서는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되새기며 “최근 주목받는 한국인 학자들이 많은데, 이들이 더 열심히 노력해 고위직에 많이 올라가면 한국인의 위상도 한결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철수 前(전) 예일대 의대 교수는 “물론 외국인 세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은 조금씩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할 실적이나 실력을 보여준다면 차별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오히려 공동연구를 하자고 줄을 서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국내 우수한 박사들이 외국 또는 명문대로 가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해 급한 마음으로 지원하고 외국에서 별 성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남들이 하지 못하는 실험기법이나 다른 연구자들보다 훨씬 뛰어난 기법을 익혀서 해외로 간다면 빨리 인정을 받고 좋은 연구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在美(재미) 학자들이 대부분 고국을 그리워하고 한국이 발전하길 바라면서도 국내로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큰 물에서’ 활동하기 위한 것일까. 

취재 과정에서 만난, 미국 유수의 대학들에서 교수직 초빙을 받았던 아이비리그 출신의 한 국내 명문대 교수가 “사실 소수민족에 대한 이런저런 차별을 겪어본 유학파들은 고국에서 ‘대접 받으며’ 연구나 교수생활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귀띔했기 때문. 이에 대한 답을 정상욱 교수가 제시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훌륭한 학자가 한국에 초빙되면 행정직(총장이나 연구소장, 학장 등)을 맡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구자들은 연구에 집중하고 싶어하죠. 이 점을 재미 학자들은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부담만 아니라면 한국으로 돌아가 고국에 기여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아요.” 
김성호 전 UC버클리대 교수도 비슷한 요지의 말을 남겼다. 

“수준높은 연구가 이뤄지려면 보상이 뒤따라야 하는데, 한국 학계의 보상은 행정적인 기여도에 따라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연구성과 중심으로 보상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합니다.”


미국의 명문대

미국의 명문대라면 흔히 ‘아이비리그’를 떠올린다. 하버드와 예일 등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매년 대학순위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지만, 미국에는 아이비리그 외에도 서부의 스탠퍼드나 UC버클리, 동부의 존스홉킨스 등 명문대가 즐비하다. 이런 아이비리그 외의 미국 명문대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아이비 플러스’와 ‘퍼블릭 아이비’, ‘빅10’ 등이 존재한다.

‘아이비 플러스’는 아이비리그 8개대학에 스탠퍼드와 MIT를 추가한 10개 대학을 의미하는데, 경우에 따라서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과 듀크대(노스 캐롤라이나 더햄), 존스홉킨스대(메릴랜드주 볼티모어), 라이스대(텍사스주 휴스턴), 워싱턴대(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노스웨스턴대(일리노이주 에번스턴), 시카고대(일리노이주 시카고), 노트르담대(인디애나주 노트르담), 밴더빌트대(테네시주 내슈빌)를 포함시키기도 한다. 

‘퍼블릭 아이비’는 UC(캘리포니아 주립대)산타크루즈의 입학사정관이었던 리처드 몰이 저서 ‘퍼블릭 아이비’에서 사용한 말로, ‘주립대 수준의 비용으로 아이비 리그에 필적하는 수준의 경험을 하는 학교들’을 의미한다. 퍼블릭 아이비는 윌리엄앤메리대(버지니아주 윌리엄스버그), 마이애미대(오하이오주 옥스퍼드), 캘리포니아주립대(캘리포니아주 10개 도시), 미시간주립대(미시간주 이스트랜싱),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 텍사스오스틴대(텍사스주 오스틴), 버몬트주립대(버몬트주 벌링턴), 버지니아주립대(버지니아주 피터스버그), 빙엄턴대(뉴욕주 빙엄턴), 인디애나대(인디애나주 블루밍턴), 오하이오주립대(오하이오주 콜럼버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펜실베이니아주 유니버시티파크), 럿거스대(뉴저지주 3개도시), 애리조나대(애리조나주 투손), 콜로라도대(콜로라도주 볼더), 코네티컷대(코네티컷주 스토어즈), 델라웨어대(델라웨어주 뉴어크), 플로리다대(플로리다주 게인즈빌), 조지아대(조지아주 아텐스), 일리노이대(일리노이주 어바나캠페인), 아이오와대(아이오와주 아이오와시티), 메릴랜드대(메릴랜드주 칼리지파크), 미네소타대(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 워싱턴대, 위스콘신대(위스콘신주 메디슨) 등이다. 

각 주의 주립대는 대부분 명문대로 인정받는데, 특히 캘리포니아 주립대 UC(Univ. of California)의 10개 캠퍼스는 한국인에게 인기 높은 명문대. UC는 버클리·데이비스·어바인·로스앤젤레스·머시드·리버사이드·샌디에이고·샌프란시스코·산타크루즈·샌타바버라 10개 도시에 캠퍼스가 있다. 

‘빅10’은 미국 중부의 명문대학. 동부에 아이비리그와 명문 사학이 있고 서부에 스탠퍼드와 UC가 있다면 중부에서는 ‘빅10’이 명문교로 통한다. ‘퍼블릭 아이비’에 포함된 대학이 대부분이다. 인디애나대, 노스웨스턴대, 미시간주립대, 오하이오주립대, 펜실베이니아주립대, 퍼듀대(인디애나주 웨스트라파예트), 일리노이대, 아이오와대, 미시간대(미시간주 앤아버), 미네소타대, 위스콘신대가 포함된다.

한편 영국의 더타임스와 미국의 US뉴스 앤드 월드리포트 등 유력지는 매년 미국 대학 순위를 발표하고 있는데, 가장 최근 발표된 자료인 지난해 8월 US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의 ‘2009년 미국 대학교 순위’ 베스트 25는 표와 같다.



‘2009년 미국 대학교 순위’ 베스트25

 순위 대학명
 1 하버드 
 2 프린스턴 
 3 예일 
 4 MIT/스탠퍼드 
 6 펜실베이니아/캘리포니아 공대 
 8 컬럼비아/듀크/시카고 
 11 다트머스 
 12 노스웨스턴/워싱턴 
 14 코넬 
 15 존스홉킨스 
 16 브라운 
 17 라이스 
 18 에모리/노트르담/밴더빌트 
 21 UC버클리 
 22 카네기멜런
 23 조지타운/버지니아 
 25 UCLA


Posted by 겟업
2013. 9. 20. 01:18

잘 하셨습니다. 북한의 핵 위협과 생떼를 물리치고 ‘신뢰프로세스’의 내공을 만방에 보였으니 보국(輔國)의 칭송을 받을 만합니다. 정권 출범 6개월, 미국과 전통적 우정을 쌓고, 중국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으니 이보다 더 든든한 외치(外治)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명박(MB) 정권 역시 외교와 국제 세일즈는 일품이었습니다. 내치(內治)가 없어서 문제였죠. MB정권은 3년차에 ‘공정사회론’을 내세워 내치에 돌입했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초기 성과가 궁핍했습니다. 그때부터 집권세력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그 예정된 행로가 우려되어 변정고언(辨政苦言), 정국을 분별해 쓴소리를 올리려 합니다.

8·15 경축사에서 경제동력과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셨지요. 백번 맞습니다. 그런데 왜 울림이 없을까요? 서민들에게 가장 확실한 경제활력의 지표는 바닥경기입니다. 건설노동자, 택시기사와 대리기사, 전국을 뛰는 운송기사가 약 400만 명에 이릅니다. 서민시장이 활기를 띠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이 그렇게 쪼들리지 않을 때가 호황입니다. 국민행복은 이들의 웃음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만기친람(萬機親覽)하시면 국정어젠다가 흐릿해집니다. 정치는 살림살이를 넘어서는 것, 소소한 쟁점들은 각료들에게 위임하고 큰 정치에 집중해야 합니다. 성장, 분배, 남북문제가 그것이죠. 정책사령탑은 작동하나요, 각료들은 토론합니까? 국무회의가 좀 시끄럽기를 바랍니다. 노트북을 치우라고 하세요. 받아 적기만 하는 각료들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한국이 관료, 율사, 장군 공화국인가요? 이들은 변칙과 파격을 싫어합니다. 청와대 외곽에 경로당 차리셨나요? 노련함으론 경장(更張)이 어렵습니다. 장외투쟁 중인 민주당을 끌어들여야죠. 우아하고 단호한 카리스마에 유연성이 결합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지막 일년을 제하면, 이제 3년 반이 남았습니다. 네 가지만 제언하려 합니다.

성장정책이 없다. 삼성·현대·LG가 주도한 혁신이 한국을 살린 성장동력이었다. 성장패턴은 바뀌지 않고 중소기업이 부진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큰 기획과 구상이다. 언제나 그랬듯, 현 정부도 작고 소소한 프로그램들에 매달려 6개월을 소모했다. 경제팀은 뜻밖에 빈약하다. 6개월간 정부는 규제정책, 즉 ‘경제민주화’에 올인했는데 약간의 성과도 있겠지만 법안이 발효되면 경기는 일단 탄력을 잃을 것이다. 이 단계에서 경제민주화는 총수비리 척결, 불공정거래 시정, 중소기업 보호 정도로 충분하다. 내수진작과 성장정책은 아예 실종됐다.

‘창조경제’는 목하 논쟁 중이다. DJ키드가 요즘 인터넷산업의 총아이듯 근혜키드는 어디에서 나올까? 대안은 바이오·정보통신·미디어산업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70년대 초 그랬듯이 바이오밸리, ICT밸리, 미디어밸리를 미래 경제기지로 건설해야 한다. 그곳에 각 분야 전문가·과학자·자본가·CEO들이 매일 아침 모이는 아이디어 시장(市場)을 서게 해야 한다. 생태계 조성과 시장활성화는 정부 몫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풀 죽은 과학자·전문가·영재청년·괴짜들의 눈을 반짝이게 해야 한다. 디자인·영상·애니메이션·게임에 인생을 바치려는 준재들이 서로 경쟁하는 창조밸리를 건설하는 것이 답이다. 창조경제의 꽃이 여기서 피어난다. 문화융성? 영화에 미친 자는 미디어밸리에 모여 꿈을 펼치면 된다. ICT밸리는 스마토피아를 꿈꾸는 과학영재들의 집단서식처다. 그렇게 기획, 설계하고 만들면 된다. 인재들이 의사와 법관으로 몰리는 나라는 곧 불행해진다. 지금이 바로 그 꼴이다.

누구나 일자리를 외치지만 한국에서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막는 최대 장애가 노조임을 지적하지 않는다. 괜히 벌집 쑤셨다가 정치생명이 끝날 위험이 있다. 노조는 이익집단이 됐다. 경제민주화 입법안에도 노조는 열외다. 환노위·정무위를 투 톱으로 하는 총공세에 노조는 흐뭇할 뿐이다. 박 대통령의 공약에 민주당의 주문이 얹혔다. 꼭 필요한 법안도 있지만, 핵심 쟁점은 빠졌다. 일자리 창출 잠재력은? 노조는 어떡할래?다. 청년백수·조기정년이 만연된 시대에 밤샘작업 노동자는 전체 15%(약 200만 명), 주 52시간 장시간 노동자는 30%(약 400만 명)에 달한다. 뭔가 모순적이나 노조의 비호하에 건재하다. 규제법안들과 막강노조가 결합된 주력산업에서 일자리 창출은 불가능하다.

정부는 노동시간을 각각 200시간 줄여 신규 일자리 238만 개를 창출한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오랜만에 괜찮은 정책이지만, 전제요건이 빠졌다. 노조다. 노조 승인이 없는 한 노동시간 단축은 어렵고, 승인해도 ‘임금삭감 불가’ 조건을 달 것이다. 게다가 고용연장이라니! 정치권은 정치적으로만 풀리는 이 과제를 관료들에게 전가해 왔고, 관료는 행정과 통계풀이로 본질을 비켜갔다. 고용 70% 로드맵 1번은 ‘노조 담판정치’여야 한다.

‘일자리 창출’은 기업, ‘일자리 나누기’는 노조, ‘일자리 지키기’는 정부의 몫이다. 기업엔 임금비용을 낮춰주고, 노동자에겐 공공복지를 늘려줘야 한다. 그래야 정규직이 ‘일자리 나누기’를 솔선할 인센티브와 명분이 생긴다. 이런 상생구조가 일자리 정치의 요체이거늘, 이런 제도 혁신 없이 2만 달러 경제까지 올라선 것은 기적이고 요행이다. ‘요행의 천운’이 이제 소진했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어쩔 것인가, 이대로 내리막길을 갈까, 아니면 지혜를 모을까? 정치권은 이 난제를 버렸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430542&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9. 20. 00:21

어느 고등학교 국어 수업 시간.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읽고 단답식 10문제를 푼 뒤 짧은 감상을 쓰는 수행평가가 진행됐다. 첫 번째 문제는 ‘이 이야기의 시대 배경은 언제인가?’였다. 그런데 ‘일제 시대’라고 답한 아이들이 여럿 나왔다. 선생님이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사람이니까 일제 시대 아니에요?” 또 다른 아이는 이순신이 실제 인물이냐고 물었다. “광화문에 가면 장군 동상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순신 장군 동상이지요. 실제 인물입니다.” 선생님이 진지하게 설명하자 새로운 질문이 이어졌다. “그럼 심청이는요? 춘향이는요?”

웃자고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의 한 전문계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지낸 조혜숙 선생님의 교단일기 ‘울퉁불퉁한 날들’에 나오는 12월 어떤 날의 기록이다. 그렇다고 조 선생님이 대학 입시와 거리가 먼 전문계고의 낮은 학업 수준을 개탄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그의 교단일기는 답답한 현실과 아이들의 고민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 때론 울컥하게 만든다. 일기 말미에 ‘아무것도 안 읽는 것보다는 만화책이라도 읽는 게 낫다’며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유익한 만화책이나 많이 발간되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적기도 했다.

‘우등생 만드는 습관의 힘’을 쓴 조일민 씨는 오랫동안 입시학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관찰한 결과, ‘공부 잘하는 아이’와 ‘공부 못하는 아이’를 구분 짓는 몇 가지 특징을 찾아냈다. 그중 하나가 어휘력. 중간고사를 앞두고 중학교 3학년 국사 과목을 정리하던 중 세종대왕이 변방에 자주 침입하던 여진족을 군사력으로 제압하거나 회유하는 강온 양면정책을 썼다는 대목이 나왔다. “선생님, 변방이 뭐예요?” “강온 양면정책 그건 뭐예요?” “회유하다에서 회유가 뭐예요?” 사건의 시대적 배경이나 인과관계를 알아보기는커녕 어휘 설명만 하다가 시간이 다 흘렀다. 조세, 징수, 감찰, 호구, 풍기 등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주요 단어 어느 것 하나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이러니 고등학생의 70%가 6·25전쟁이 북침인지 남침인지 헷갈리는 이유가 사실 어휘력 부족 때문(상당수가 북한이 남한을 침범한 것이 ‘북침’인 줄 알고 있었다)이라는 게 이해가 된다.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이렇게 중요한 과목은 평가기준에 넣어야 한다”고 말한 이후 한국사를 대입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최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초중고교, 대학의 교원 1630명을 대상으로 학생들의 한국사 인식 수준이 심각하게 저하된 이유를 물었더니 응답자의 62.9%가 ‘수능에서 선택과목이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려 하자 다른 사회과 교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2014학년도 수능 사회탐구 영역은 한국사·동아시아사·세계사(역사계열), 생활과 윤리·윤리와 사상(윤리계열), 한국지리·세계지리(지리계열), 사회문화·법과 정치·경제(일반사회계열)까지 총 10개의 선택과목이 있다. 수능에서는 이 중 2과목을 골라 치르는데 만약 한국사가 필수가 되면 나머지 한 자리를 놓고 9개 과목이 경쟁하는 꼴이 된다. ‘시험이라도 쳐야 공부한다’는 논리에서 볼 때 선택되지 못한 과목들은 학교에서도 찬밥 신세일 게 뻔하다. 사회과 교사들의 집단 반발을 밥그릇 싸움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여기서 ‘이렇게 중요한 과목’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국어를 잘 못해 어휘력이 달리는 아이들이 역사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 듯, 세계사의 흐름을 모르고서 한국사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사람이니까 임진왜란이 일제 시대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중요한 과목’은 한국사일까, 세계사일까, 아니면 국어일까.

김현미 여성동아 팀장



http://news.donga.com/3/all/20130718/56514133/1



Posted by 겟업
2013. 9. 20. 00:15

미국의 100달러짜리 지폐에 얼굴 사진이 실린 '벤자민 프랭클린'의 기록물에 나오는 이야기다. 1744년 버지니아 주정부와 6개 인디언 부족 사이에 체결된 랭카스터 조약에서 버지니아 대표 위원들이 인디언 부족장들에게 호의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만약 6개 부족의 추장들이 그들의 아들을 백인 대학에 보내길 원한다면 정부는 그들이 백인의 학문을 전부 배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인디언 대표가 대답했다. "당신네들의 호의적인 제안은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과거 경험에 비추어볼 때 백인들이 가르치는 대학 교육을 받은 우리 젊은 인디언들은 말타는 법도 미숙하고 숲에서 생활하는 방법도 다 잊어버리고 추위와 배고픔을 참아내는 인내심마저 사라진 나약하기 그지없는 낙오자가 되어 돌아 왔습니다. 통나무로 집짓는 방법도, 사슴을 잡는 방법도, 그리고 적의 습격에 대응하는 용기도 모두 잃어버린 한낮 무기력한 젊은이가 된 것입니다. 만약 당신네 백인들의 자녀를 우리 인디언 마을로 보내준다면 우리는 그들의 교육을 책임질 것이며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가르쳐 어른으로 키워주겠습니다."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을 대할 때면 요즘 학생들은 이전의 학생들에 비해 도전정신과 생활 속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많이 떨어져 있음을 보게 된다. 대학 입시에 종속된 학교 교육이 자기주도적 학습은 강조해도 정작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생활 지도엔 한계를 드러낸다. 학교 급식에서 생선 조림이 나오는 날이면 상당수의 학생들이 생선 가시를 발라내는 성가심 때문에 먹던 밥을 남기고 식탁을 떠난다. 가정에서 생선 가시를 발라주는 어머니의 보살핌이 만들어 놓은 결과다. 가난 속에서 단련 받은 이전의 학생들과는 달리 요즘 학생들은 교실의 더위와 추위를 좀처럼 참아내질 못한다. 쾌적한 아파트 주거생활이 가져다 준 나약함이 아니겠는가. 

고등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에 신입생 수련회가 있는 날이면 학과 사무실 조교들은 할아버지들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게 된다. 대학생 손자 손녀의 행선지와 일정을 챙기는 문의 전화인 것이다. 매학기 수강신청 기간이 되면 수많은 대학생 엄마들이 인터넷을 통한 자녀 수강 신청을 대신해 주는 현상은 이제 일상사가 돼버렸다. 엄마가 대신해준 수강 신청 과목을 자녀들에게 알려주는 것을 까먹어 출석부에 이름이 올라있는 학생이 2, 3주가 지나도록 강의실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할아버지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버지의 무관심. 이들 3대 조건을 통해 대학문을 통과한 세대들의 모습이다. 

그렇게 학교 생활을 해 가던 젊은이들을 모아 병영 생활과 군사 훈련을 시켜야 하는 군 관계자들은 병사들의 과다 체지방과 약한 근육을 우려하고, 상관의 명령보다는 엄마의 명령에 길들여진 '마마보이'들을 데리고 유사시 적과의 대치를 해야 할 판이다. 

한 때 영국의 과학자 알프레드 윌리스가 참나무산 누애나방이가 고치를 뚫고 나오는 과정을 관찰하게 되었다. 나방이는 누애고치 안에서 작은 구멍 하나를 뚫고 그 틈을 빠져 나오기 위한 고통을 한나절이나 참아내야 했다. 작은 구멍을 빠져 나오는 나방이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과학자 일프레드는 예리한 가위로 누애고치의 구멍을 넓혀 주기도 했다. 그런데 스스로의 힘으로 고치를 빠져나온 나방의 경우는 예쁜 색깔로 변해 훨훨 날아가는 것과는 달리, 도움을 받아 편하게 구멍을 빠져나온 그 나방은 몇 번의 날개를 퍼덕이다 날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요즘 점차 나약해져가는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산란의 꿈을 안고 세찬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들의 힘찬 도전, 위험을 무릎쓴 독수리의 새끼훈련 방식을 떠 올리게 된다. 

지금 우리네 가정에서의 자녀 교육 방식이나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 내용이 도전하는 연어 보다는 어항속 금붕어를 기르고, 용맹한 독수리 대신 병아리를 키워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오성삼 인천 송도고 교장 ㆍ전 건국대 교육대학원장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7/h2013071821003024370.htm



Posted by 겟업
2013. 9. 19. 23:46

미국 대선후보들이 빠지지 않고 찍는 두 개의 사진이 있다. 하나는 엽총을 들고 사냥하는 사진이다. 미국에 널려 있는 총기가 2억7000만 정이다. 전미총기협회(NRA) 회원은 500만 명을 넘었다. 비극적인 총기 참사에도 불구하고 총기 소유 열풍은 한층 거세졌다. 외면하기 힘든 표밭이다. 또 하나는 개와 뛰노는 사진이다. 미국 가구의 40%가 개를 키운다. 개를 끌어안아야 “아, 저 후보는 온화하고, 믿을 수 있구나”는 이미지를 심는다. 개 알레르기가 있는 후보조차 항히스타민제를 맞아가면서 강아지와 뒹굴며 사진을 찍는다.

최근 청와대 기사들 중 박근혜 대통령의 진돗개, 새롬이와 희망이를 다룬게 유난히 눈에 띈다. ‘실세(實勢) 인증견’이란 것이다. 관저에 자주 드나드는 인사에겐 꼬리를 흔들고, 낯선 손님에겐 사납게 군다고 한다. 일부는 사석에서 “그놈들, 참 많이 컸더라”며 은근히 폼을 잡는 모양이다. 이후 청와대와 관가에는 이색 바람이 분다고 한다. 집에서 남 몰래 진돗개를 키운다. 관저에 갈 때 진돗개가 달려드는 민망한 장면을 피하려는 자구책이다. 진돗개는 진돗개 냄새가 풍겨나는 사람에겐 꼬리를 흔든다는, 민간 속설에 따른 삶의 지혜다.

청와대 소식통에 따르면 이런 눈물겨운(?) 노력에도 결과는 신통치 않다고 한다. 암컷을 기르면 암컷인 새롬이가 여전히 왕왕거리고, 수컷을 키우면 희망이가 계속 사납게 짖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비좁은 아파트에 진돗개 두 마리를 키우기는 난감한 형편이다. 이 소식통은 “새롬이와 희망이가 모두 함께 싹싹하게 맞는 인물들은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관저를 자주 찾는 허태열 비서실장, 이정현 홍보수석,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김장수 안보실장이라고 귀띔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에 대해 물어보니, “글쎄, 잘 모르겠다”며 말을 아낀다. 박 대통령의 대북 노선이 왜 원칙적으로 가는지 가늠할 수 있다.

지난 12일 원부자재를 반출하려 개성공단에 간 기업인들은 참 안쓰러웠다고 했다. 반출을 도와주러 나온 근로자들의 초라한 행색부터 짠했다. 석 달간 얼굴은 새까맣게 탔다. 통근버스에 기름 공급이 중단되면서 땡볕에 한 시간 넘게 걸어서 오간 탓이다. 옷차림도 남루해졌다. 개성공단에는 남쪽에서 가져간 세탁기가 많다. 북한 근로자들은 작업복은 물론 집안 빨랫감까지 가져와 세탁하곤 했다. 그런 세탁기가 멈춰선 것이다. A기업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말은 없어도 그들 표정에서 얼마나 간절히 재가동을 원하는지 묻어났다. 이틀간의 반출 일당이라도 줬어야 하는데….”

사실 개성공단의 경제적 의미는 거의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경제규모는 33조5000억원으로 남한의 38분의 1이다. 이는 삼성전자의 지난 석 달간 휴대폰 매출에도 못 미친다. 여기에다 원자재를 반출하면서 개성공단 기업들은 급한 불은 껐다. 상당수는 공단이 재가동돼도 더 이상의 기대는 접는 분위기다. 청와대가 “개성공단 중대 결심”의 카드까지 자신 있게 꺼내 드는 배경이다.

특사로 파견된 최용해 북한 총정치국장은 시진핑 주석에게 이렇게 다짐했다고 한다. “조선은 정말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생을 개선하고 싶다.” 그런 마음의 1%라도 남한을 향한다면 남북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청와대는 개성공단의 ‘국제화’ ‘발전적 정상화’를 고수 중이다. 이는 한 번이라도 북한이 고개를 숙여 달라는 표현이나 다름없다.

연평도 포격 이후 우리 사회의 대북 정서는 아주 나빠졌다. 야당의 ‘안보장사’라는 비난은 먹히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원칙적 대북 정책으로 고공행진 중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북한이 보다 과감하게 변했으면 싶다. 요즘 통일부 직원들은 류 장관이 청와대로 향하면 “묵언수행(默言修行) 가신다”며 안타까워한다. 외톨이 신세다. 남북관계가 어쩌면 청와대 진돗개의 꼬리에 달렸는지 모른다. 새롬이와 희망이가 류 장관에게도 꼬리를 흔들어야 북한의 숨통이 트인다.


이철호 논설위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193648&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