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18. 02:55

미국의 총기 소유 옹호론자들이 내세우는 논리 중 개인적으로 가장 반박하기 힘든 것은 "총을 손에 든 순간 힘이 센 자와 약한 자가 모두 평등해진다"는 주장이다. 만일 정부가 국민들의 총기 소유권을 박탈하게 되면 노인이나 여성처럼 약한 사람들은 힘센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달 20일 청와대에서 '규제개혁 끝장토론'이 열린 이후 한달 간 이어진 정부 국회 기업 민원인들의 규제개혁 관련 발언들을 지켜보면서 규제와 연관된 논란이 총기소유 논란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의 존재가 사람들 간 체중과 근육량의 차이를 무력화하듯 규제 역시 당사자간 유ㆍ불리, 수혜자와 피해자를 뒤바꿔 놓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규제 없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질서라 보기도 어렵다. 허약하다는 이유로 늘 힘센 사람의 부당한 대우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더 자연스럽다고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결국 규제개혁이란 좋은 규제를 늘리고 나쁜 규제를 없애는 점진적ㆍ지속적 노력이어야 하지, 규제 총량을 줄이는 식의 단기적 양적 접근은 심각한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여객선 선령 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린 2008년의 규제완화가 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의 원인 중 하나가 된 것처럼.

그렇다면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명확한 잣대가 없다'는 게 정답에 가깝다. 주류 경제학 교과서들이 잘못된 규제의 대명사처럼 언급하는 '최저임금제'조차 찬반이 갈린다. 잘못된 규제라는 근거는 최저임금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면 한계 상황의 기업들은 고용을 줄이기 때문에 결국 최저임금을 받는 직원들만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폴 크루그먼 같은 경제학자는 노동시장은 빵을 파는 시장과 달리 돈 몇 푼 때문에 갑자기 직원을 해고하는 일은 잘 벌어지지 않고, 장기적으로 보면 저임 노동자의 구매력이 높아져 전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점이 경험적으로 입증됐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규제의 효과는 논리와 실제가 다르고, 단기와 장기에 따라 엇갈린다.

대부분 사람들이 규제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영역도 있다. 바로 누구든 공짜 또는극히 낮은 비용만 내고 이용하지만, 공급에는 한계가 있는 공공토지나 지하자원, 공기와 바다 등이 이런 영역에 포함된다. 이런 영역에 도입된 규제 중 가장 성공적인 예가 슈퍼마켓에서 비닐봉지를 유료로 판매하도록 한 정책이다. 몇백원의 부담이지만 소비자들의 환경보호 의식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해 우리나라를 비롯 전세계적으로 비닐봉투 사용이 획기적으로 줄었다. 그런데 만일 성공에 고무된 한 정치인이 과감히 비닐봉투 사용 전면금지를 도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얼마 후 슈퍼마켓 주변에는 시장바구니를 잊고 장보기에 나섰다 당황한 사람들을 위해 불법 비닐봉투를 한 장에 천원 또는 이천원에 판매하는 행상이 등장할 것이다.

이는 미국 비영리 단체인 환경보호기금(EDF) 수석 경제학자인 거노트 와그너가 쓴 <누가 마지막 나무를 쓰러뜨렸나>의 한 대목을 살짝 윤색한 예다. 

이처럼 규제는 꼭 필요한 영역에 정확한 처방을 적절한 강도로 투여해야 성공할 수 있는, 매우 까다로운 존재다. 규제 대상의 이기심ㆍ나태함 같은 본성을 지나치게 제약해서도 안되고, 시장질서에 맞서서도 성공하기 힘들다. 

반대로 과도한 규제들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질식될 지경이 돼서는 안되겠지만, 군사작전을 하듯 일거에 제거한다면 오히려 부작용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탄소발생량 제한, 어획량 제한, 개발제한구역 같이 철폐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인류의 생존이 위험해질 가능성이 큰 중요한 규제들도 적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는 암덩어리'발언은 정책 추진 의지를 명확히 전달하기 위한 비유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규제에 대한 의학적 비유를 찾는다면 반드시 제거해야 할 암이 아니라, 너무 많으면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되지만 적당한 수준 밑으로 떨어져도 건강이 위험해지는 '콜레스테롤'이 더 정확한 비유다. 

정영오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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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