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5. 14:20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입니다.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하나 우선 서면으로 대신함을 해량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진흥원은 출판 산업의 발전과 독서 문화의 함양을 목적으로 작년 7월 출범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법정기관입니다. 해설사 선생님들께 간곡히 청할 일이 있어 감히 몇 자 적어 올립니다.

저는 지난해 11월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 회원 50여 명과 함께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을 다녀왔습니다. 선생님들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필암서원은 조선의 거유(巨儒)로 호남인 중 유일하게 문묘에 종사된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1510∼1560) 선생을 기리는 곳입니다. 유서 깊은 서원을 둘러보며 잠시나마 선현의 학문과 도(道)에 취했습니다만 정작 저를 놀라게 한 것은 이곳 해설사 임지현 씨(42)의 해설이었습니다. 

방과후 교사로 일하고 있다는 그는 하서의 생애와 학문은 물론이고 조선 유학사까지도 넘나드는 해박함으로 탐방단을 감동시켰기 때문입니다. 한자 세대인 원로 언론인들조차도 그를 붙들고 이것저것 묻기에 바빴습니다. 언제 그렇게 공부를 했느냐고 물었더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책을 봐야 돼요. 하서와 관련된 책은 다 읽었어요”라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독서 덕분이라는 얘기였습니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임 씨는 “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전국에 실력 있는 해설사가 얼마나 많은데요”라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웬만한 명승고적지에선 임 씨 같은 해설사를 쉽게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선발 과정도 엄격해지고 교육도 충실해졌지만 정년퇴직한 교장선생님,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고위공무원들까지도 고향 발전과 평생 공부의 일환으로 해설사를 자원하기 때문이랍니다. 얼마 전엔 현대그룹 계열사(현대택배) 사장을 하다가 창덕궁 해설사로 나선 최하경 씨(69)가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이분들은 말이 해설사이지 거의 향토사학자 수준이라고 하는군요.

전국의 문화관광해설사 여러분! 이런 역량을 저희 출판진흥원의 독서운동에 조금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여러분의 안목과 지식이 스토리가 되어 관광객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조상의 얼과 역사의 숨결이 서린 곳에서 자신만의 콘텐츠로 매일 베스트셀러를 쓰고 있는 셈입니다.

디지털 홍수 속에서 독서 인구는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3명은 1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습니다. 독서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입니다. 독서 인구가 늘어야 출판이 살고 출판이 살아야 콘텐츠 산업도 삽니다. 출판(책)은 콘텐츠의 모태로 영화 드라마 뮤지컬 애니메이션 게임 등이 모두 여기에서 나옵니다. 한류 K팝의 원천도 책입니다.

출판문화협회와 출판인회의를 필두로 20만 출판인이 책 살리기 운동에 온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일단의 지식인들도 ‘책 읽는 나라 만들기 국민연대회의’(대표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를 만들고 범국민 독서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전국의 2000여 해설사 여러분, 독서와 출판 생태계 복원운동에 적극 동참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읽고 소개하고 추천하는 한 권의 책이 그 귀중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새봄, 전국의 명승지에서 책 읽는 기쁨이 들꽃처럼 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이재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http://news.donga.com/3/all/20130307/53515833/1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