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피할 것’이 아니라 ‘활용해야 할’ 대상이다. 각 분야 리더의 입장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심지어 위기 상황에서도 무조건 피할 일이 아니다. 기자를 피한다고 기사를 안 쓰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나갈 기사라면, 자신들의 입장을 포함시키는 것이 더 나을 때가 많다. 진보 세력의 입장에서도 보수 신문은 물론 외신도 활용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확산시킬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언론을 ‘활용’할 수 있는 대표적 기회는 인터뷰다.
하지만 기자에 대한 리더들의 인식은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그 배경에는 과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호되게 ‘당한’ 적이 있어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경우가 꽤 된다. 그러나 리더 자신이 트라우마를 자초한 경우도 많다. 기자들은 선배들로부터 인터뷰 대상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훈련을 받고, 인터뷰에서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사전 준비를 하는 반면에, 인터뷰에 임하는 리더들은, 예상 질의응답 보고서 몇 장 읽어보고 인터뷰 준비를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우리나라의 리더들이 언론을 좀더 잘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많은 시민들은 언론을 통해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고자 하고,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예상 질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론에 대한 이해이다.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로서 리더들의 인터뷰를 흥미를 갖고 읽는 편이다. 앞으로 언론 인터뷰를 해야 할 리더들에게 중요한 세 가지를 적어본다.
1. 묻는 말에만 답하지 말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취임 후 고강도 미디어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이데일리 하정민 특파원의 기사에 따르면, 예를 들어 한국의 월드컵 4강 진출에 대한 생각을 물을 경우, 단순히 “자랑스럽다”는 식의 답변이 아니라, 히딩크 영입을 통해 한국 축구팀이 선전을 한 것처럼, 자신도 유엔 조직의 개혁을 위해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겠다는 식으로 답변을 하도록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월드컵에 대한 질문을 자신의 업무 관련 계획을 전달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2. 묻는 말에 반드시 답할 필요는 없다?: 2008년 2월 유엔의 자원봉사자로 이라크를 방문한 앤절리나 졸리에게 <시엔엔>(CNN) 기자가 인터뷰 말미에 인터뷰 주제와 관련없는 그녀의 임신 여부에 대해 묻는다. 졸리는 정색을 하며 “그만해요. 시엔엔에서 나오셨잖아요. 시엔엔의 전통에 맞추어, 그런 질문은 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응수한다. 그래도 기자가 한 번 더 묻자 졸리는 “제가 꼭 대답해야 하는 것은 아니죠?”라고 답했고, 기자는 “물론이다. 더 이상 묻지 않겠다”고 그녀의 ‘말하지 않을 권리’를 인정했다. ‘인터뷰의 왕’ 래리 킹 역시 “어느 누구도 인터뷰에서 당신에게 질문에 답변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물론 내 질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물론, 언론의 카메라 렌즈를 손으로 막거나 기자에게 화를 내지 말고, 답하기 곤란한 사항은 당당하고도 ‘친절하게 거부’할 수 있다.
3. 묻는 기자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터뷰란 ‘기자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기자에게 때로 반말이나 폭언을 하는 경우가 있다. 기자는 독자를 대신하여 질문을 하는 것이고, 기자에게 전달하는 말은 물론 표정, 제스처는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기 마련이다. 인터뷰란 ‘기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의사 결정’만큼이나 ‘의사 전달’은 리더의 중요한 역할이다. 리더는 ‘대표 대변인’이다. 이들이 더욱 세련되고 활발하게 언론을 ‘활용하길’ 기대한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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