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전 일본 어부 나카이 요사부로(中井養三郞)의 강치(바다사자의 일종)잡이 실력이 신통치 않았던 건 한·일 관계에선 큰 불행이었다.
나카이는 1904년 독도의 일본 편입을 요청, 분쟁의 씨를 뿌린 장본인이다. 그는 조선엔 전기도 없던 1885년 배 위 공기통과 연결한 헬멧을 쓰고 바닷속 해산물을 잡던 첨단 벤처사업가였다. 다만 강치 잡는 솜씨는 별로였던 모양이다. 독도에 널린 강치 사냥에 나섰다 다른 어부들에 밀려 수확이 변변치 않았다. 결국 그는 강치 천국 독도를 독점하기로 결심한다. 나카이는 당초 이 섬을 한국 땅으로 믿은 듯 조선에 독점허가를 신청하려 했다. 하나 소속이 불확실하단 걸 알곤 생각을 바꾼다. 섬을 일본 영토에 편입시킨 뒤 독점하려 한 것이다. 그는 독도에 대한 영토편입 요청서를 일본 당국에 냈다. 일본 내각은 이를 승인한 뒤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관보에 싣는다. 다케시마의 날이 2월 22일이 된 사연이다. 나카이가 강치만 잘 잡았다면 독도 분쟁은 없었을지 모른다.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대통령 취임식은 늘 다케시마의 날 사흘 뒤에 열려야 한다. 한국 대통령의 임기 시작은 2월 25일. 일본이 계속 다케시마의 날을 부각시키면 취임 직전부터 양국 간 정면충돌을 피할 길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출범한 아베 정권은 여러모로 한국의 신경을 건드려 왔다. 지난 22일엔 시마네현에서 열린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차관급을 파견, 양국 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켰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과거 한국은 일본을 운명적인 적국으로 여겨 왔다. 사기(史記)에 나오는 ‘원교근공(遠交近攻)’, 즉 “먼 나라와는 친교를 맺되 인접국은 친다”는 전략은 외교 철칙으로 존중됐다. 신라가 당과 손잡고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린 역사부터 여기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 원칙대로면 일본은 결코 우방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 인식도 변하는 법. 일본의 이미지도 배울 건 배우면서 따라잡아야 할 경쟁자로 변했다. 비슷한 경제 여건으로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으레 일본 기업이었다. 이 탓에 일본의 불운이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한 적도 많았다. 지진으로 일본의 반도체·자동차 공장이 타격을 입으면 그 덕을 국내 기업이 본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작금의 일본 침체는 과연 박수칠 일인가. 고소할진 몰라도 이문을 따지면 결코 환영할 일은 못 된다. 일본 경제의 부진이 한국의 수출에 나쁘다는 건 설명이 필요 없다. 이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일본이 건전한 ‘좋은 이웃(good neighbor)’으로 유지돼야 한국도 좋다는 거다. 중국산 생선에 치명적인 납덩이가 든 경우는 허다했다. 반면 일본산 식품에서 그런 문제가 있었단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철저한 위생을 중시하는 일본의 덕을 인접국인 한국도 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일본이 경기침체로 병들면 그 해악은 한국에 미치게 된다. 제주평화연구원이 1990년부터 15년을 분석했다. 그랬더니 일본 국내총생산이 커지면 한·일 간 마찰은 줄고, 실업률이 늘면 양국 간 갈등은 격해지는 걸로 나왔다. 내부 불만이 쌓이면 외국과의 갈등을 일으켜 지지도를 올리는 ‘관심전환이론(diversionary theory)’의 교과서적 케이스다. 그러니 일본 경제가 허덕일수록 극우파들이 기승을 부려 독도가 자기들 땅이라 핏대를 올릴 게 자명하다. 거세진 일본 내 우경화 바람도 이 나라가 궁핍해졌단 방증이다.
이뿐 아니다. 국가브랜드위원회 조사 결과 한국의 이미지가 중국·일본과 함께 움직이는 걸로 나왔다 한다. 베네룩스 3국, 스칸디나비아 3국 식으로 해외에선 한·중·일 세 나라를 한 통속으로 본단 뜻이다. 이런 탓에 ‘메이드 인 재팬’이 시시해지면 덩달아 한국산에 대한 인식도 나빠질 수밖에 없다.
요즘 일본의 침체와 한국의 도약이 맞물려 양국 관계가 중대한 변곡점에 와 있는 느낌이다. 이런 판에 일본이 독도·위안부 문제로 도발한다고 단세포적으로 맞불을 놓고 흥분할 일이 아니다. 길게 보면 불매운동 아닌 일본제 사주기가 독도 수호에 도움이 된다는 대승적 안목을 가질 때도 됐다.
남 정 호 글로벌협력 담당·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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