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2010년에 태어난 아이 셋이 있다. 한국 나이로는 4세, 정부의 무상보육 기준에 따르면 만 2세다.
3월부터 전면 무상보육이 시작되니 이 아이들의 부모는 경제력과 상관없이 보육료나 양육수당을 매달 받는다. 어린이집에 보낸다면 기관으로 28만6000원을 지원하고, 집에서 키우면 부모 통장으로 현금 10만 원을 주는 식이다. 연령별로 다르지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면 12만∼19만 원 정도 이득이라 대다수 부모는 자녀를 기관에 보내려 한다.
부자 아빠를 둔 덕에 월 110만 원짜리 영어유치원에 갈 예정인 A는 지난주 괌 여행을 다녀왔다. A의 엄마와 일명 조리원 동기(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2∼3주 머무는 동안 인연을 맺은 엄마끼리 이렇게 부른다)들이 “몇 푼 안 되지만 공돈이 생길 테니 아이한테 바람이나 쐬어주자”고 의기투합한 결과다.
부모가 맞벌이라 어린이집이 절실한 B. 무상보육으로 어린이집 대기자가 넘치는 바람에 보육료 지원을 못 받는 사설 기관에 계속 다니게 됐다. B의 엄마는 “남들 다 받는 보육료 못 받고 생돈을 내려니 아깝다. 그나마 양육수당 10만 원이라도 받으니 도움이 된다”고 했다.
끼니 걱정을 할 처지가 아닌 이들에게 양육수당 10만 원이 미치는 영향은 그저 이 정도다. 그런데 당장 한 푼이 아쉬운 저소득층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할머니, 엄마와 서울 변두리 월세방에 사는 C. 일주일 내내 같은 옷을 입을 정도로 집에서 돌보지 못한다. 할머니와 엄마 모두 돈을 버느라 생후 6개월 때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 얼마 전 엄마가 알코올 중독 상태가 되면서 일을 접는 바람에 월세 내기 빠듯할 지경이 됐다. 10만 원이 아쉬운 C의 할머니는 3월부터 손자를 집에 두기로 했다. 늘 술에 취해 있는 딸과 함께.
C가 다니는 어린이집 교사의 말에 따르면 4세 반 17명 중 7명이 3월에 등록을 안 하기로 했다. 부모들이 대는 이유는 한결같이 “현금이 필요해서”라고 한다.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월 10만 원이 미치는 격차가 너무 커지는 순간이다.
정부는 3∼5세에게 표준화된 교육을 하기 위해 누리과정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영유아 단계부터 격차 없는 교육을 받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북유럽 국가들이 의무교육 연령을 낮추는 것도 영유아기의 작은 차이가 자랄수록 크게 벌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아직 우리나라는 무상보육 초창기라 지원 대상과 방식을 정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전문가들도 가정에 현금을 주는 방식은 안 된다거나 보육료와 양육수당을 똑같이 줘야 한다는 등 전혀 다른 해법을 내놓는 상황이다.
전문가가 아닌 필자로서는 솔직히 어떤 방식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10만 원 때문에 영유아 단계부터 교육 양극화가 심해질까 두렵고 안타깝다. 10만 원 때문에 집에서도, 기관에서도 이중으로 방치될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보호가 절실하다.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교양있는삶 > 사설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용헌 살롱] [875] 方外之士의 섬―제주도 (0) | 2013.04.05 |
---|---|
[강명구 칼럼] “그 사람 참 쿨하잖아” (0) | 2013.04.05 |
[고정애의 시시각각] 박근혜의 노란 봉투 (0) | 2013.04.05 |
[야! 한국사회] 가난을 착각하다 (0) | 2013.04.05 |
[야! 한국사회] 남자의 자존감과 연애 (0) | 2013.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