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사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사회 청년들의 삶은 어떠할까. 그들은 어떤 희망과 고뇌를 안고 살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늘 마주하는 희망과 고뇌는 심리적 태도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이다. 21세기 청년세대들이 그리는 삶의 모습, 나란 주체의 모습은 근대화 초기와 달리 다양하고 다층적이다. 고도경제성장 이후 정체된 사회를 살고 있는 세대의 희망과 고뇌는 그들 부모 세대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불행하게도 지금 청년세대들이 처한 물질적 삶의 조건은, 현재도 힘들지만, 미래에는 더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일본 사회만 두고 볼 때 이들의 부모 세대인 50, 60대들은 잃을 것보다는 얻을 게 많은 삶을 살았다(less to lose, much to win). 반면 청년들은 자신의 부모들보다 ‘더’ 풍족한 삶을 살 가능성이 희박하다(much to lose, less to win). 물론 그런 한국, 일본과 달리 현재 중국의 청년들은 상대적으로 부모세대보다 더 유복한 생활을 누릴 것이다, 고도경제성장이 지속되는 한이라는 전제가 따르지만.(참고로 미국의 경우 남북전쟁 이후 1980년 레이건 집권 때까지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더 잘살았다.)고도성장이 끝나고 거품경제를 통과한 작금의 일본에서 청년세대는 활력을 잃었다. 도전하고 꿈꾸는 젊은이의 모습을 보기 어렵다는 일본 어른 세대의 우려는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게 없다. 그런 일본과 달리 한국의 청년들은 중진국 문턱에서 ‘헉헉’ 숨을 쉬며 상승이동하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고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청년들은 어떠한가. 이들은 아직 희망을 버리지는 않은 듯하다. 많은 젊은이가 오늘도 부자 되기에 전력투구하고 있다.활력이 부재한 일본, 살아남기 위해 분투해야 하는 한국, 부자 되는 것만이 살길이라 믿는 중국. 이런 현실 조건 위에서 세 나라의 청년들은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일까.이 질문에 대해 일본, 한국, 중국, 세 나라 청년세대가 공통적으로 내릴 만한 답은 “쿨한 사람” 정도가 아닐까 싶다. 중국은 ‘쿠’(酷)라고 음차해서 쓴다. “그 사람 참 쿨하다”라고 하면 칭찬이다. 인간관계에서 우선 끈끈함과는 거리를 두고, 떠날 때는 질척거리거나 미련을 두지 않는다. 행동거지로 보면 세련되고 나름의 멋을 중요시하고 가식적이거나 위선적이지 않다. 오히려 위악적일 때가 있다. “나를 해칠 권리는 나밖에 없다”라고 툭 내던지는 위악. 그건 특히 일본 젊은이들에게서 자주 보인다.쿨하게 살려고 하는 젊은 세대는 성실, 열정, 도전 등 근대화 시기를 대표했던 상징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욕심 많고 탐욕스러운 육식남은 사절이다. 경쾌하지만 경박하지 않고자 하며, 허식과 위선을 미워하고 스스로에게 진실하고자 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현실을 뛰어넘는 사랑과 같은 신파는 체질에 맞지 않는다. 코믹 러브처럼 경쾌한 사랑이 좋다. 싫으면 떠나면 되니까. 부모세대가 가족주의 문화 안에서 살았다면, 이들은 무엇보다 ‘나’를 중심으로 살고자 한다. 그래서 이들은 “내 인생을 가족에게 바쳤다”라며 울먹이는 엄마에게 “엄마도 이젠 자기 삶을 살아~”라고 담담하게 위로한다.이들을 힘들게 하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쿨하게 살고자 하는 젊은이들은 혼자라서 외로워 보인다. 자신의 내면을 늘 들여다보면서 허위와 위선을 미워하고, 인간관계에서 깔끔하지만, 이들에게는 고독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 같다. 일본 영화에서 서늘할 정도로 외로운 주인공을 떠올리게 된다. 더불어 살면서 쿨하기는 어려운 걸까 싶다.많은 것이 불확실하고 얻을 것보다 잃을 게 많은 사회적 조건에서, 동아시아 청년세대의 선택으로서 ‘쿨한 사람’은 타당하고 나름 아름다운 선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큰 희망은 아니지만 절망하지 않기 위한 경쾌한 선택으로서. 가끔씩 부모에게 기대고, 활력이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내면에 비추어 진정성을 갖춘 삶의 태도로서.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75269.html
'교양있는삶 > 사설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소문 포럼] 일본제 사주기가 독도를 지킨다 (0) | 2013.04.05 |
---|---|
[조용헌 살롱] [875] 方外之士의 섬―제주도 (0) | 2013.04.05 |
[@뉴스룸/김희균]10만원의 나비효과 (0) | 2013.04.05 |
[고정애의 시시각각] 박근혜의 노란 봉투 (0) | 2013.04.05 |
[야! 한국사회] 가난을 착각하다 (0) | 2013.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