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갈 데가 있어야 한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서 죽기 직전까지 갔던 사람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지리산에 들어가 생명을 보존하곤 하였다. 지리산은 인삼 빼고는 온갖 약초가 다 있는 산이다. 현재는 지리산 남쪽의 악양과 화개에 쪽에 귀촌(歸村)과 귀농(歸農) 인구가 모여든다. 하동군의 악양은 도시에서 살다가 들어오는 사람들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리산에서 산나물을 뜯고 섬진강에서는 은어도 잡을 수 있고, 동네 앞에는 넓은 들판이 자리 잡고 있는 천혜의 동천복지(洞天福地)가 악양이다. 악양에는 외지에서 유입된 가구만 해도 대략 300~400가구나 된다.
방외지사(方外之士)들의 해방구가 지리산인 줄만 알았더니, 최근에 보니까 바다 건너 제주도가 신세대 방외지사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지리산은 정년퇴직한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탈출구라고 한다면, 제주도는 청년 세대와 예술가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제주도는 도시에서 느끼지 못하는 해방감과 휴식을 주기 때문이다.
조천면 '선흘'이라는 오래된 마을에는 서울에서 활동하던 피아니스트가 내려와 동네 가운데에 '세바'라는 카페를 차리면서 젊은이들의 명소가 되었다. 제주 시골의 토속과 클래식이 조화를 이룬다. 대안교육을 모색하는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빵집인 '선흘반못'도 기운이 좋다. 이 동네에는 동백나무 숲인 곶자왈도 있어서 산책하기도 좋다. 유달리 바다 색깔이 푸르게 보이는 김녕의 월정리는 서울 홍대 앞에서 활동하던 인디밴드 멤버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모래사장과 인접한 지점에 스산하게 자리 잡은 카페가 '아일랜드 조르바'와 '고래가 될'이다. 낯선 이국의 어느 해변가에 떠돌이로 와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표선면 가시리에는 외국 작가들도 많이 와 있다. 조각, 페인팅, 사진작가 등 다양하다. 가시리에서 숙박을 할 수 있는 '타시텔레'는 티베트·네팔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이다. 현경면 저지리에는 화가, 연극, 디자인을 하는 예술인들이 많다.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되기도 한 곳이다. 산방산 근처의 모슬포와 사계리도 글 쓰는 작가들이 머무르는 곳이다. 도시에서 비전을 찾지 못한 젊은 세대와 예술가, 문화인, 명상가들이 제주로 '문화 이민 러시'를 이루고 있는 중이다.
조용헌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2/24/20130224011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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