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5. 05:07

《‘감춰 놨던 칼을 칼집에서 꺼내기 시작하는 중국,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을 강화하는 미국, ‘강한 국가’를 내세우며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 세계의 이목이 동아시아에 쏠리고 있다. 세계 중심축이 동아시아로 넘어오고 있지만 이곳엔 아직 협력의 씨앗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현재도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동아시아의 2030년을 조망하는 작업은 크나큰 통찰을 필요로 한다. 일본의 석학 이오키베 마코토(五百旗頭眞·70) 효고(兵庫)재해기념 21세기연구기구 이사장은 동아시아가 역사 갈등을 넘어 협력 관계로 나아가는 열쇠로 ‘상호 이익’이란 화두를 던졌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한일 간에는 문화 및 스포츠 협력, 중일 간에는 경제협력을 제시했다. 지난해 12월 25일 효고 현 고베(神戶) 시 21세기연구기구 사무실에서 이오키베 이사장을 만났고 새해에도 추가로 전화 인터뷰를 했다.  고베=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20년 후 동아시아의 미래를 그려 달라.

“변수가 너무 많다. 하지만 틀림없는 한 가지는 동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된다는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경제 강국이겠지만 유럽의 위치는 추락할 수 있다. 2030년엔 동아시아와 미국이 세계 경제를 리드할 것이다.”

―중국의 부상도 그때까지 이어질까.

“2030년 중국은 동아시아의 압도적인 중심 국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에 시련이 올 수 있다. 일당독재에 대한 불만이 해외뿐 아니라 중국 내부에서도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힘으로 국내 불만을 억누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중국 전통 방식에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중국식 발전’을 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어떻게 될까.

“중국을 제외하면 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국가로 자리 잡을 것이다. 소위 ‘중추적(pivotal)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양국이 협력하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지뢰가 많다. 양국이 부정적인 행동을 하지 말고 상대방에 사안마다 화내지 말고 가능한 한 협력한다는 기본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정권교체가 향후 중동 불안보다 더 큰 국제사회의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경제 효과 때문이다. 하지만 고노(河野)담화나 무라야마(村山)담화를 수정해 일본의 과거를 부정하면 ‘끝이다’라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나를 포함해 매우 많다. 아베 총리는 ‘국방군을 만든다’, ‘센카쿠에 공무원을 상주시킨다’ 등 의미 없는 제스처를 하지 말아야 한다. 시야가 좁은 강경파 주장대로 하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질 것이다.”

―고노담화 수정 움직임은 한국에 큰 파장을 미칠 텐데….

“아베 총리는 총선 실시 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국가 권력이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라는 것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겠다고 했다. 위안부 모집에 국가 권력이 개입하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크게 보면 일본 군부가 관여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본 정부의 주장을 믿고 일본을 ‘명예로운 나라’로 여길 나라는 없다. 작은 의미에 집착해 과거 일본의 악행을 세계에 다시 알려서는 안 된다. 크게 보고 총리가 사과해야 한다. 한국 중국과 마찰을 빚을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도 해선 안 된다.”

―동아시아 협력의 가장 큰 위협 요소는 무엇인가.

“중국의 군사력 강조다. 1970년대 문화혁명을 끝낸 중국은 30년 이상 고도의 경제성장을 했다.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 달리 20년 이상 군사력을 키울 정도로 군사력을 중시했다. 중국 정부 발표만 봐도 군사비 지출이 20년간 20배 이상으로 늘었다. 중국은 최근까지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라고 했지만 요즘 대국이 됐으니 힘을 떨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남중국해와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등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도 힘을 바탕으로 아시아에 피해를 주지 않았나.

“맞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는 다르다. 일본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현재 일본은 국내총생산(GDP)의 1%를 군사비에 쓴다. 다른 국가들은 대체로 3%를 사용한다. 일본은 군사비를 줄이는 대신 국제협력에 집중하고자 했다. 일본은 전후 경제 중심의 평화적 발전을 선택했다.”

―요즘 아베 정권이 군사력 강화를 외치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은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조금 먼저 근대화를 이뤘다. 근대적 군대로 주위 국가에 피해를 줬다. 이에 대해 솔직히 주변국에 ‘잘못했다’라고 깊이 사과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위한 협력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아베 총리는 그런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

―일본의 사과를 믿지 않는 한국인과 중국인이 많은데….

“한 가지 양해를 구하고 싶은 게 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간 나오토(菅直人) 등 전 총리들은 국가를 대신해 공식적으로 한국에 대해 깊이 사죄했다. 하지만 한국인은 일부 일본 정치인들이 ‘과거 일본이 잘한 것도 있지 않느냐’라고 하는 말을 듣고는 총리의 사죄를 믿지 않는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여러 의견이 있는 만큼 일부 정치인의 발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으면 한다.”

―동아시아에 신뢰를 심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나.

“상호 이익이 되는 테마를 찾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1980년대 모든 국가가 경제 발전을 중시하면서 ‘동아시아의 기적’이라는 경제 발전을 이뤘다. 경제 협력을 넘어서는 의미 있는 것을 찾아 서로 대화하고 협력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전 총리는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했다. 그 후 문화를 개방했다. 특히 한국 문화가 일본에서 크게 히트를 쳤다. 한국 드라마가 유행하고 김연아 등 한국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평가가 매우 높다. 문화 스포츠 등 민간 레벨에서 협력할 게 많다.”

―중-일 간 상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테마는 뭐가 있나.

“역시 경제다. 하지만 중국에서 2005, 2010, 2012년 세 차례 반일 폭동이 일어났다. 2005년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였고 나머지 두 번은 센카쿠 영토 갈등이었다. 일본 기업들은 ‘차이나 리스크’를 느끼고 공장을 다른 나라로 이전하려 한다. 이는 양국 모두에 마이너스다. ‘다시 협력하자’라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중국은 국제법을 지켜야 한다.”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할 일은 없을까.

“나는 현재 일러 역사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상대방 설득 목적은 아니다. 상대 주장을 듣고 상대방의 역사 인식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두 가지 관점을 한 보고서에 담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는 가운데 공통점을 넓힐 수 있다. 일본에 의한 역사적 상처로 한중일 공동연구가 쉽지 않겠지만 그런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

―2013년 현재 동아시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중일 3국의 리더가 모두 바뀌었다. 매우 보기 드문 우연의 일치다. 하지만 어느 국가에서도 ‘이번 정부에 기대할 만하다’라는 생각을 찾기 어렵다. 모두가 경제 발전과 정치 기반 구축이라는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한국에선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는데….

“박근혜 당선인은 국가와 국민 정치 경제 모두를 생각하는 종합적인 인물이다.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라고 말한다. 매우 기대된다. 과거엔 민주주의, 재분배 등 하나의 이념을 갖고 사회를 바꾸면 됐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러 노선을 잘 조합해 최적의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일본도 정권이 교체됐는데….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것은 역사적인 일이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미일동맹이 깨졌다. 재건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국 중국과 영토 문제도 있었다. 일본 외교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권 교체는 개선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강경 아베 정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없나.

“아베 씨가 총리가 된 데에는 한국과 중국 책임도 있다. 영토 분쟁이 일어나면 누구라도 내셔널리스트가 된다. 그런 가운데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등 온건파가 힘을 잃었다. 다만 아베 총리는 이젠 주변 국가와 냉정히 협력 관계를 만들 것이다.”

―그게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본다. 아베 총리는 ‘매파’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도 매파였지만 1972년 중국을 방문해 협력 관계를 만들었다. 처음부터 신중히 하자고 외치는 사람은 일본 보수 세력으로부터 ‘외교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불신을 받는다. 하지만 매파는 확고한 국내 지지를 배경으로 반대파를 제압함으로써 온건한 외교정책을 펼 여지가 많아진다. 아베 총리도 2006년 처음 총리가 됐을 때 중국과 전략적 협력 관계 만들었다.”

―동아시아 각국의 새 지도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어떤 것인가.

“일본 측에서 보자면 삼성 LG 등 한국 기업은 부러울 정도로 약진했다. 중국도 거인이 됐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잃어버린 20년’을 맞았지만 앞서 1980년대 미국과 유럽을 능가하는 세계 톱이 돼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최근 양극화 안전망 미비로 다양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지가 새 정권의 지도력을 측정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 이오키베 마코토는

일본 정치외교학계의 거물이자 대표적인 석학으로 꼽힌다. 교토대에서 일본 외교사를 전공한 뒤 고베대 법학부 교수, 방위대 교장, 동일본 대지진 복구의 틀을 짠 부흥구상회의 의장을 지냈다. 현재 구마모토현립대 이사장 겸 효고재해기념 21세기연구기구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오키베 이사장의 인물됨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사례 한 토막.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와 학연 지연이 전혀 없는 그는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런데도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06년 뜻밖에도 이오키베 이사장에게 방위대(한국으로 보면 육해공 통합사관학교 정도에 해당) 교장을 제안했다. 극구 사양했지만 고이즈미 전 총리의 요청이 더 끈질겼다. 그해 고이즈미 전 총리는 내각 홍보용 e메일 잡지에 글을 써 달라고 이오키베 당시 방위대 교장에게 요청했다. 그러자 그는 평소 신념대로 ‘한국 중국과 쌓은 신뢰가 총리의 야스쿠니참배로 크게 손상됐다’라고 썼을 정도로 강직했다. 당시 극우파는 이오키베 교장의 퇴진을 요구했지만 그는 2006년 8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약 6년 동안 방위대 교장으로 일했다. 저서로는 ‘일본정치외교사’ ‘일미전쟁과 전후 일본’ ‘아시아 리더십과 국가형성’ ‘또 하나의 일미 교류사’ 등이 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http://news.donga.com/List/Column/3/04/20130122/52485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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