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르치는 서울시립대학에서 1년을 지내고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간 네덜란드 건축가가 그곳에서 책을 냈다. 네덜란드는 현재 세계 건축의 흐름을 주도하는 나라다. 책 제목은 서울(Seoul)과 해법(Solution)을 합성한 ‘서울해법(Seoulutions)’이다. 한 손에 잡히는 포켓북이지만 네덜란드 학자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스위스 건축대학에 초청을 받아 특강까지 했다고 한다.
그는 서울에서 토박이처럼 살았다. 북촌 언덕배기 연립주택에 자리를 잡고, 어린 아들을 동네 유치원에 보냈다. 착실한 준비와 부지런한 발품 덕분에 서울을 누구보다 빨리 읽어냈다. 한국에 오기 전 서울에 대한 책을 숙독하고 도착하자마자 중고 스쿠터를 사서 몰고 다녔다. 청량리 밖 우리 대학은 물론이고, 서울 사람들도 가보지 않는 외곽의 공장지역을 누비고 다녔다. 늘 메고 다니는 큼직한 가방에는 지도와 노트가 들어 있었다.
그런 그를 강하게 끌어당긴 곳은 저층 주택과 상업공간이 얽힌 홍대 앞이었다.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는 이름난 건축가들의 작품, 궁궐과 한옥이 어우러진 북촌, 초고층 건물과 아파트가 즐비한 테헤란로가 아니었다. 앞마당에 치과의원을 덧댄 단독주택, 다가구·다세대 주택 1층 주차장을 채운 카페, 주택을 개조한 상점 위에 사무실과 텃밭을 올린 복합건물, 기찻길 옆 시장 위에 들어선 예술가 스튜디오 등등이 그의 관심사였다. 어찌 보면 재미있고 어찌 보면 혼란스러운 풍경이다. 이러한 서울의 독특한 건축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유형화했다.
왜 이 건축가는 이론과 비평의 언저리에 있는 일상적 풍경에 주목하는 것일까. 그의 눈에 비친 서울은 서양의 근대도시처럼 질서 정연하게 바꿀 수 있는 도시가 아니다. 오히려 유럽 도시에서 찾기 어려운 새로운 건축의 가능성을 이곳에서 느꼈다. 건폐율, 용적률, 건축선, 사선 제한과 같은 법 규정을 적용하면 서울에서 최대로 지을 수 있는 건축물의 범위가 나온다. 들쑥날쑥하게 생긴 이 외곽선을 ‘실루엣’이라 부르고, 이 범위 안에서 벌어지는 변화에 그는 주목했다. 최고 수익을 얻기 위해 합법과 편법 사이를 줄타기하는 이런 ‘기지(機智)의 건축’은 그들의 교과서에 없다. 우리는 이런 역동성을 정비(整備)의 대상으로 믿어왔다. 그래서 우리들은 도시 관리의 선진 사례를 배우러 유럽을 부지런히 다녀왔다.
유럽의 도시·건축법은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에서는 꽃집을 카페로 바꾸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와 달리 지역지구제(zoning)를 지역이 아니라 필지 하나하나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붕 모양, 색상, 재료, 창문 크기까지 지정한다. 이런 제도에서는 도시의 역사성을 보존할 수 있지만 새로운 것을 실험하기는 어렵다. 최종 결정권을 쥔 정치인은 민원이 두려워 규정을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해법’을 내놓으며 이 건축가는 네덜란드 도시·건축제도의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선진 도시라고 믿었던 암스테르담의 건축가가 서울을 배우자고 하니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서울해법’에서 다룬 홍대 앞은 근대화·도시화 과정에서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조성된 단독주택지다. 이 사업은 비뚤비뚤한 민간 필지를 곧게 펴는 대신 땅을 조금씩 떼어 길과 공원을 만드는 도시계획 방식이다. 1930년대 말부터 이 사업으로 조성한 지역은 서울 도시화 면적의 40%에 육박한다. 이제 이곳의 저층 주택들은 노후화되고 있어 20여 년 이내에 대부분 정비의 대상이 된다. 저성장 시대를 맞아 새로운 ‘서울해법’이 필요한 때다.
독일의 철학자 막스 베버(1864~1920)는 저서 『도시(The City)』에서 아시아에는 진정한 의미의 도시는 없었다라고 단언했다. 우월감에 눈먼 단견이다. 현재 세계 30대 거대 광역도시 중 16개가 아시아에 있다. 요즈음 유럽의 건축가와 도시 계획가들이 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는 이유다. 베버가 살아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그중에서도 서울은 잠재력이 큰 도시다.
안에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은 때론 밖으로 물러나면 잘 보인다. ‘서울해법’이 그렇다.
김 성 홍 서울시립대 교수·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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