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네덜란드는 '선진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고용 실패를 한 곳'이자 동시에 '노동 없는 복지'의 전형적인 사례로 지목되었다. 소위 '네덜란드 병'의 발생지였던 이 나라는 그로부터 10년 뒤 이번에는 '네덜란드의 기적'이라 불릴 정도로 성공적인 경제 회복을 이룩했다. 1984년 14%에 달했던 실업률이 1997년엔 6%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이는 11%에 달하는 EU 평균 실업률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이었다. 경제가 거의 붕괴될 뻔한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결국 노사 간 합의였다. 1982년의 바세나르 협약이 그것이다.
이 조약의 가장 큰 특징은 기업의 투자와 고용 활성화를 위해 노조가 임금 인상 억제를 수용했다는 점이다. 노동시장 회복을 위해서는 산업의 수익성 제고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기업들은 노동시간 단축에 합의하는 것으로 화답했고, 정부는 노사간에 도출된 타협안을 존중하여 정치적 추인 절차를 밟는 한편, 공무원 임금과 사회보장 수당을 삭감하는 등의 재정 절감 정책을 추진했다. 이후 네덜란드 경제는 활력을 되찾았고, 무엇보다도 일자리 창출에 크게 성공했다.
사실 이 나라의 일자리 창출 실상을 보면 결코 완벽한 것이 아니다. 시간제 근로와 탄력 근로가 고용 증가의 4분의 3을 차지하며, 또한 시간제 근로의 4분의 3을 여성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사·정 3자 간의 대타협은 결국 정규직 남성 노동자의 임금 억제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여성 파트타임 노동자가 증가한 노동력 재배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작 네덜란드인들 자신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비정규직 취업자 중 '풀타임 일자리를 얻을 수 없어서'라는 답이 4.3%에 불과한 반면 '풀타임 일자리를 원하지 않아서'라는 답이 72%라는 조사가 이를 말해 준다. 이는 가족 중 한 사람의 풀타임과 한 사람의 파트타임(소위 '1+0.5')을 통해 일과 가정을 함께 지키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이는 가족의 가치를 대단히 높이 여기는 이 나라의 문화에서 나온 결과이다.
네덜란드 방식은 분명 참고할 만한 사례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도입할 수 있는 모델은 아니다. 결국은 우리 사회·문화에 맞는 자체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주경철 서울대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23/20130123025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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