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계 물리학의 산실인 미국 샌타페이연구소 고프리 웨스트 박사는 흥미로운 질문 하나를 세상에 던진다. 도시의 인구수가 늘어날수록 그 도시의 창조적 역량도 함께 늘어날까? 인구가 늘어날수록 창의적인 사람이 등장할 확률도 높아지니 비례할 듯싶지만, 창작열이 왕성한 소도시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측정해 보지 않고 어찌 답할 수 있으랴. 그는 한 도시에서 창작되는 책의 수, 예술가들의 작품 수, 기업의 연구개발비, 특허, 혁신적인 발명품 수 등 온갖 창조적인 결과물들을 모두 합쳐 한 도시의 창조 역량을 수치화했다. 그리고 그것이 도시의 크기와 상관관계가 있는지 전 세계 12개 나라에서 살펴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도시가 2배 더 크면 창조적 역량은 2.2배 더 컸다. 심지어 뉴욕이나 런던, 도쿄처럼 10배 더 큰 도시들은 그 창조적 역량이 17배 더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한 도시의 창조역량은 인구가 늘어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얘기다.
고프리 웨스트 박사의 연구는 ‘아이를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는 우리 옛 속담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최초의 연구다. 그렇다면 왜 인구가 늘어날수록 도시의 창조적 역량은 급속도로 증가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세상과 고립된 개인의 능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소통’으로 얻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구수가 늘어날수록 소통의 경우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 대도시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나 창의적인 생각은 비슷한 분야 사람이 아닌, 전혀 다른 분야 사람들과의 지적 교류에서 만들어진다고 하버드대 경제학과 에드워드 글래저 교수는 주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실리콘 밸리다.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샌프란시스코를 잇는 이곳엔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포함해 수많은 벤처기업이 자리한다. 날마다 새로운 혁신이 만들어지는 이곳에선 옆 회사의 혁신적인 발명이 내 회사에도 탁월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혁신의 실마리는 늘 엉뚱한 곳에 있다.
특히나 실리콘 밸리는 이질적인 지적 전통이 충돌하는 곳이다. 황금광 시대에는 미국 노동의 역사가 이곳에서 시작됐고, 정치적으로는 매우 진보적이어서 아직도 히피 문화가 남아 있다. 예술가들이 넘쳐나는 예술 도시이자, 게이 문화가 만연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창업 젊은이들이 들어가니, 이질적인 문화와 충돌하고 때론 결합하면서 새로운 혁신문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가정엔 ‘차고’가 하나씩 다들 있지만 차고에서 창업을 하는 문화가 발달한 곳은 실리콘 밸리가 시초다. 예술가들이 아틀리에에서 주변에 있는 잡동사니들로 작품을 만들었던 브리콜라주(Bricolage) 방식으로 과학기술자들이 이른바 ‘차고 혁신(Garage Innovation)’이란 걸 이루게 됐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우리가 잠시 생각해 봐야 할 질문은 ‘나는 과연 혁신의 공간에 살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나는 과연 혁신의 실마리가 도처에 산재해 있는 공간에 살고 있는가? 새로운 생각들이 끊임없이 유입되고, 다른 분야 사람들과 지적인 대화를 주고받고,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사건들을 모니터링할 안테나를 가지고 있는가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와 정치적인 세계관이 다른 사람, 경제적 계급이 다른 사람, 미적 취향이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점점 불편해진다. 어렸을 땐 친구의 가정 형편이 우정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젊은 시절엔 나와 전혀 다른 역사관을 가진 친구와 논쟁하는 걸 즐겼 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경제적 형편이 다른 친구와는 점점 속내를 털어놓기 불편하고, 정치적 세계관이 다르면 쉽게 대화가 싸움으로 번진다.
세계관, 경험, 지식의 범주, 관심사가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과의 지적인 대화는 내 삶을 더 풍성하게 하고, 나의 세계를 확장시켜 준다. 그러니 나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이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오늘 내가 고민하는 질문에 대한 혁신적인 답을 얻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각별히 노력하지 않으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세상에 갇히게 된다.
나의 뇌에선 날마다 실리콘 밸리 같은 지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가? 도시에 살고 있지만 내 삶의 영역은 혹시 작은 마을 수준은 아닐까 내성해 볼 일이다. 오늘은 점심 같이 먹을 친구를 바꿔 보시길.
◆필자는 KAIST 물리학 박사로 예일대 의대 정신과 박사후연구원과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조교수, 다보스포럼 2009 차세대 글로벌 리더였다. 『과학콘서트』등의 저서가 있다.
정재승 KAIST 교수·바이오및뇌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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