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경제학자가 전후(戰後)에 일본이 경제발전을 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자원이 없었다는 점'을 드는 것을 보았다. 이 말은 우리나라에도 적용되는 게 아닐까? 만일 우리나라에 석유가 풍부하게 나서 거액의 석유 수출 대금이 유입되었다면 많은 석유 수출국이 그러하듯 소박한 소득수준에 만족하고 그 이상으로 올라서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말하자면 사회 전체가 불로소득에 의지하는 지대수취인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만성적인 불경기 상태에서 국제 원자재 가격의 등락에 따라 국가 경제가 널뛰기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생각지 않았던 큰 유산을 받았을 때 자칫 삶이 망가지는 것처럼 천연자원 개발의 수익이 생겨날 때 오히려 국가 경제가 혼란에 빠지는 현상을 두고 '자원 저주(resource curse)'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아프리카의 많은 빈곤 국가가 이 저주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 논리가 원조에도 적용된다. 이 경우에도 역시 갑자기 생겨난 돈이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원조가 원래 의도대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정반대 효과를 내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정치가 불안정한 후진국에 거액의 원조가 들어가면 부패한 정치인과 관리가 원조 재원에서 거액을 빼돌리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예컨대 과거 차드의 재무부가 지역 보건소를 지원하기 위해 집행한 예산 가운데 실제로 최종 목표 지점에 도달한 예산은 채 1%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서 2005년에 EU가 차드의 위생 개선에 사용하라고 지원한 2000만 유로의 금액이 원래 목적에 맞게 제대로 쓰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민이 하루 평균 1달러 정도로 살아가는 나라를 극빈국으로 보는데, 전문가들은 이런 나라들이 나쁜 통치와 빈약한 경제 정책의 덫에서 벗어나는 데 걸리는 예상 기간을 60년 정도로 추산한다. 그나마 실제 극빈국 상태에서 벗어날 확률은 2%가 채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되돌아보건대 아마 우리나라가 바로 그 2%에 속하는 희귀한 사례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의 역사 경험은 이제 우리에게만 소중한 게 아니라 세계 시민이 주목하는 중요한 내용이 되었다. 후진국에 물질적 원조를 제공할 뿐 아니라 우리의 경험을 알려주는 것도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30/20130130028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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