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4. 16:29

가장 미국적인 사상가로 꼽히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설립한 펜실베이니아대는 실용주의와 순수 학문의 만남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이 대학 부설 연구소인 '싱크탱크와 시민사회프로그램'은 지난 2006년부터 세계 각국 싱크탱크들의 글로벌 순위를 매년 발표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2013년 순위는 한국을 대표하는 싱크탱크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각각 55위와 58위를 기록하였다.

'싱크탱크(think-tank)'는 그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한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구성원의 생각을 모아서 공동체적인 부가가치를 덧붙여 정책과 지식을 생산하는 연구 기관이다. 인간에게는 여러 유형의 지식이 필요하다. 이들 지식은 오랜 관찰과 연구를 필요로 하는 '기초 지식'과 국가 정책 등에 직접 투입이 가능한 '활용 지식'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싱크탱크는 이 중 활용 지식을 생산하는 대표적 주체인데, 특히 그 가운데서도 '정책 지식(policy knowledge)'를 생산하는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싱크탱크는 이념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 아래 놓일 수 있고, 때로는 정책 지식의 소비자인 국가·정당·국제기구 등의 필요에 따라 맞춤형 지식을 공급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유념해야 할 점은 정보와 지식의 흐름에 국경이 사라진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싱크탱크가 세계적 수준의 지식을 생산하는 유력 행위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의 주요 싱크탱크는 글로벌 지식 표준(標準)을 선도한다. 특히 환경·인권·국제금융·테러 등과 같이 특정 국가만의 대처가 어려운 경우 싱크탱크의 글로벌 영향력은 더욱 증대되고 있다. 세계적인 영향력을 확보한 싱크탱크는 바로 21세기 버전의 국력(國力)인 셈이다.

이번 발표에서 일본국제문제연구소는 세계 16위, 중국 사회과학원은 세계 17위의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로 기록됐다. 일본은 장기간의 경기 침체와 정치적 보수화로 대외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그들만의 방식으로 국력을 키워가고 있다. 중국은 사회과학원을 비롯하여 상해국제문제연구소, 중국과학기술협회 등을 통해 중국식 싱크탱크 외교가 서서히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평한다. 이에 비해 한국의 싱크탱크가 세계 50위권 밖이라는 수치는 경제력·민주주의·군사력·인권 등 한국이 다양한 영역에서 갖고 있는 경쟁력을 생각할 때 매우 낮은 것이다.

복잡하고 난해해 보이는 싱크탱크의 역할은 사실 단순하다. 세계 테러리즘 현황이 궁금할 때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미국 브루킹스나 헤리티지 같은 유력 싱크탱크의 사이트를 방문한다. 동북아 지역의 경제 의존과 군비 경쟁에 대해 알고 싶다면 세계 시민은 일본국제문제연구소의 사이트를 방문한다.

우리나라 싱크탱크의 저발전을 분석하면서 재원을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거나 정치권에서 정책 개발의 중요성을 무시한다는 설명은 모두 부차적인 것이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정책 지식을 공급하려고 다양하고 전문화된 정책들이 서로 경쟁하는 정책 간 경쟁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 개발의 주체인 행정부·정당·이익집단·NGO 등이 우리 사회의 대표적 갈등구조인 지역·이념·세대·양극화 등의 문제들을 경쟁적 정책 개발 차원에서 접근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정책 개발은 일종의 거대한 환류(還流) 시스템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정책 지식의 투입과 정책의 산출이라는 정책 지식 생태계의 선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고 세계 시민에게 비전을 가져다줄 정책을 개발하는 지식 공급원으로서 우리의 싱크탱크들이 역할을 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1/29/2013012902689.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