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테제베(TGV)를 타고 3시간쯤 가면 도착하는 인구 4만의 작은 도시 앙굴렘(Angoulme). 프랑스인들에게 이 도시의 이름을 대면, 바로 ‘만화(bande dessine)’라는 답이 튀어나온다. 지난 1974년 시작돼 올해로 40회를 맞는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때문이다. 지난달 31일부터 3일까지 열린 올해 행사에는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돼 ‘한국만화특별전’을 열었다. 덕분에 좀처럼 찾기 힘든 유럽의 소도시 앙굴렘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가기 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어떤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는지 페스티벌 홈페이지를 검색해 봤지만 모든 내용이 프랑스어로만 되어 있어 당최 내용을 알기 어려웠다. 설마 현장에선 영어가 통하려니 했으나 이런, 공식 행사자료집은 물론 전시현장의 안내판도 모두 프랑스어뿐이었다. 행사 관계자들에게 이유를 물어봤지만 ‘미안한데 우리는 원래 그래’란 표정으로 바라볼 뿐, 시원한 답을 듣기 어려웠다. 행사 내내 휴대전화로 프랑스어 사전을 검색하며 투덜댔다. 이게 무슨 국제페스티벌이야?
사실 앙굴렘을 찾아오는 관객의 약 5%만이 비프랑스어권 국가에서 온 이들이라 한다. 최고의 만화에 시상하는 ‘앙굴렘 그랑프리’는 일본·한국 등 전 세계 만화를 대상으로 하지만, ‘프랑스어판이 출간된 작품’에 한정된다. 하지만 이런 실용적인 이유가 전부는 아닐 터다. (어렵게 한국말로 번역해 읽은) 자료집 내 프랑크 봉두 조직위원장의 글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앙굴렘 페스티벌은 프랑스어권의 창작품을 널리 전파하며, 프랑스를 국제교류의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한 행사다.”
실제 ‘아스테릭스’라는 세계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낸 프랑스 사람들의 자국 만화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대륙별로 봤을 때 세계에서 가장 큰 만화시장은 유럽(45억7000만 달러·2010년 기준)이며, 그중 프랑스(9억2800만 달러)는 독일(9억5500만 달러)보다 조금 작다. 하지만 독일 만화시장이 최근 20년 새 일본만화에 거의 잠식된 것과 달리, 프랑스는 자국 만화의 비율을 약 60% 정도로 꾸준히 유지해 가고 있다.
나 같은 이들의 불만 때문에 앙굴렘페스티벌 조직위 내부에서도 행사의 ‘국제화’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한다. 하지만 40년간 지켜온 원칙을 단번에 바꿀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아 보인다. 앙굴렘을 즐기려면 프랑스어를 공부해라? 한편으론 부럽고 한편으론 얄미운 만화강국의 자신감이다.
이영희 문화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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