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있는삶'에 해당되는 글 1071건

  1. 2013.04.05 [2030미래전략 세계 석학에게 듣는다]<7·끝>오마에 겐이치 일본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대학원 총장
  2. 2013.04.05 [2030미래전략 세계 석학에게 듣는다]<4>이오키베 마코토, 효고재해기념 21세기연구기구 이사장
  3. 2013.04.05 [전문기자 칼럼/유윤종]베르디의 길, 바그너의 길
  4. 2013.04.05 [기획시론 '창조경제' ②] "스웨덴의 지혜를 소개합니다"
  5. 2013.04.05 [만물상] 프랑스인의 수다
  6. 2013.04.05 [태평로] 중국의 대북 지렛대도 '유통기한' 있다
  7. 2013.04.05 [이규연 시시각각] 대통령 레이저눈총, 끄덕 인형
  8. 2013.04.05 [내 생각은…] 교민 집·가게를 작은 문화원으로
  9. 2013.04.05 [노재현 칼럼] ‘할머니 손맛’ 벗어나야 한식이 산다
  10. 2013.04.04 [만물상] '라틴어 특종'
  11. 2013.04.04 [태평로] 그들이 가난한 조국으로 돌아온 까닭
  12. 2013.04.04 "그렇게 먹으니까…" 명절에 상처받는 한마디
  13. 2013.04.04 [글로벌 아이] 요우커와 에코 외교 하라
  14. 2013.04.04 [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영어 없는 ‘국제’ 축제
  15. 2013.04.04 [세상읽기] 중국 지도부는 왜 프랑스혁명을 연구하나
  16. 2013.04.04 [글로벌 아이] 미 우주센터에서 나로호를 생각하다
  17. 2013.04.04 [경제 view &] 자영업자여, 잘살아보세
  18. 2013.04.04 [조선데스크] 끝나지 않은 '중경삼림'
  19. 2013.04.04 [중앙시평] 정치쇄신 방향 옳은가?
  20. 2013.04.04 [중앙시평] 혁신의 공간
2013. 4. 5. 05:08

“2030년쯤이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사회보장이나 연금을 둘러싸고 노인과 젊은층의 세대 간 투쟁이 전개될 것이다. 신세대가 이른바 ‘젊은이의 봄’ 투쟁으로 노인을 버리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세계적 경영 구루(스승)로 꼽히는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70) 일본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대학원 총장은 대부분의 선진국이 현 사회보장 시스템을 지속하면 파탄을 피할 수 없다며 머지않아 각국에서 세대 간 투쟁이 첨예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은 노인들이 선거에서의 표를 무기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수입도 낮고 집도 없으며 결혼도 못 하는 젊은층의 불만이 폭발하는 시점이 올 것이라는 얘기다. 인터뷰는 지난해 말 도쿄(東京)에 있는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총장실에 딸린 응접실에서 2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e메일 추가 인터뷰도 했다.

―세대 간 투쟁이라니 우울한 전망인데….

“현재 시스템이 지속되면 젊은층의 사회보장 혁명은 불가피하다. 역사적 실례도 있다. 러시아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 초(超)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노인 연금을 그대로 뒀다. 젊은층이 노인을 챙기지 않고 버려 둔 것이다. 그러자 물가는 폭등하는데 연금 수령액이 그대로인 노인들의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젊은층은 택시를 타고 다녔지만 노인들은 10km 정도는 그냥 걸어 다녀야 했다. 그런 시대가 다시 올 것이다. 일본은 ‘어쩔 수 없다’라는 식의 운명론적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여서 젊은층이 복지제도를 다 없애도 노인이 반발조차 하지 않을 것이지만….”

―2030년 세계질서를 어떻게 예상하나.

“완전히 다극화돼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 중국,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이 함께 주도하는 세계가 될 것이다. 중국은 한(漢)족이 주도적으로 이끄는 현재의 중국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2030년 즈음이면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도 끝날 것이다. 가난한 중국이라면 지속적인 경제 성과로 현 지배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과 같은 수준의 경제력을 갖게 되면 13억 인구가 자유 없는 상태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베이징(北京)을 맹주로 한 ‘중화 합중국’을 권하고 있다. 그러면 홍콩 대만 티베트가 모두 합류해 좀더 큰 중국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연임하게 되면 임기가 끝나는 2024년 전까지 EU에 합류할 개연성이 크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도 과거 ‘유럽 공동의 집(ECH·평화와 번영을 위한 정치안보협력을 포함한 지역공동체)’ 개념을 이야기한 바 있다. EU와 러시아가 합치면 세계 제일의 경제권이 될 것이다.

아세안은 지금보다 결속을 더 강화해 EU보다는 작지만 인구 5억∼6억 명의 경제블록을 만들 것이다. 맹주는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이 될 것이다. 일본은 인구 구조로 보면 장기 쇠퇴가 불가피하다. 한국은 북한과 ‘그레이트 코리아(Great Korea)’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관건이다. 2030년이면 이미 그 과정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인구 등을 감안하면 매우 중요한 국가가 될 것으로 본다.”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드러날 리스크는 어떤 것인가.

“미국은 러시아가 합류하는 유럽의 대두에 불안해 할 것이다. ‘그레이트 유럽’과 세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는 미국이 ‘애틀랜틱 오션(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세계 경제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일 것이다. 중국 국민은 평균 소득이 크게 오르면서 점점 더 큰 목소리로 자유를 요구할 것이다. 그러면 중국 지배구조의 불안정성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가 세계 질서가 바뀌는 과정에서 드러날 수 있는 가장 큰 불안 요인이다.”

―가까운 미래는 어떤가. 지난해 세계 주요국 지도자가 일제히 바뀌었는데….

“한동안 세상을 확 바꿀 리더가 나타나기 어렵다고 본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나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처음 정권을 잡았을 땐 나라를 크게 변화시켰다. 지금은 어떤 지도자라도 국가 체제를 크게 바꿀 여지가 거의 없다. 중국은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에 국내총생산(GDP)을 4배 이상으로 크게 늘렸지만 앞으로는 무리다. 이제부터는 현 상태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다. 중국의 공공부문 채무 등을 감안하면 과거처럼 급성장할 재원도 부족하고 각종 모순을 해결하는 데에도 힘이 모자랄 것이다.

유럽도 유럽중앙은행(ECB)의 발권력을 동원해 경제적 파탄을 피하면서 27개국이 단합해 살아남을 것이다. 미국도 현재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이미 무너진 상태로 20년간 표류한 일본은 앞으로 지지부진한 채로 살아남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나이지리아가 새로 성장 국가로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과거 중국이나 브라질, 인도에 필적하는 큰 판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업도 국가도 야망에 불타던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 한동안 큰 변화가 없는 따분한 세계가 될 것이다.”

―저서인 ‘국가의 종말’에서 밝힌 ‘지역국가(Region State)’ 개념은 무엇인가.

“인터넷 시대에는 개인과 기업, 도시의 발언이 힘을 얻게 돼 있다. 예컨대 중국의 성장엔진인 상하이(上海) 톈진(天津) 다롄(大連) 시는 인구 700만∼2000만 명으로 웬만한 국가 수준이다. 이런 도시는 베이징의 의견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4000조 엔(약 4경8400조 원)에 이르는 세계의 유휴자금 유치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제 더는 국민의 세금으로 번영하는 시대가 아니다. 싱가포르가 대표적인 사례다. 다른 나라의 돈과 회사, 부자를 불러들여 번영하고 있다. 도시 간 경쟁이 역동적인 경제 발전의 원천이다. 이런 도시 주도의 발전은 국가 모델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국민국가 개념은 이미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한다.”

―세계경제 침체가 이어지면서 국가주의가 다시 강해지고 있지 않나.

“물론 국가는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부록 비슷한 존재에 불과하다. 일본인도 영토 문제로 주변국과 갈등을 겪을 때나 국가의식을 가진다. 못난 정치가는 그걸로 불놀이하며 표를 모으려 한다. 정치가가 국민의 애국심에 불을 붙이려고 한다는 것은 현실이 정반대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잠깐 흥분했던 사람은 곧 식어 버린다. 섬 문제로 동북아시아 3개국이 싸우는 사태가 있어서는 안 된다. 섬 영유권 문제는 실효지배 원칙에 따르면 된다고 생각한다.”

―정치가뿐 아니라 일본 국민도 우경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20년간 밝은 얘깃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치무키(內向き·내향화)’, ‘우시로무키(後向き·퇴행화)나 다름없다. 못난 사람이 우경화하고 이웃나라를 탓한다. 열등감이 생겼지만 인정하기 싫으니 ‘한국은 뭐며, 중국은 뭐냐’라는 식으로 화풀이하는 것이다. 밖에서 보면 우경화이지만 안에서 보면 ‘초식화(草食化)’다. 야망이 사라져 나약해진 것이다. 과거에는 도전정신을 갖고 미국 등 어려운 시장을 개척했다. 지금은 중국이든 인도든 신흥 시장에서 조금만 나쁜 일이 터지면 짐을 싸서 돌아온다. 그러면서 ‘일본이 모두에게 이지메(집단 괴롭힘)를 당하고 있다. 더 강해져야 한다’라고 떠든다. 일본 잡지도 우경화해야 팔린다고 한다. 독자들이 ‘중국과 일본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등의 기사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일종의 게임 감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하지만 편집장들을 만나보면 우경화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국의 미래는 어떨 것으로 보나.

“일본은 변화된 한국을 잘 모른다. 한국은 외환위기를 이겨 냈다. 특히 국제감각을 갖춘 뛰어난 인재가 두각을 나타낼 것이다. 한국 대학생 50명과 일본 대학생 50명을 섞어 한 반을 만들면 상위 50등은 모두 한국 학생이 차지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양국 간 인재 격차가 커질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이 이렇게 변한 10년간 정체됐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 뛰어난 글로벌 기업이 있지만 그 수가 부족하고 우수한 경영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다. 산업 기반이라 할 부품 소재 분야의 중소기업도 매우 취약한 게 현실이다.”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한국의 산업구조를 볼 때 대만처럼 일본의 인프라를 잘 활용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일본에는 콜레스테롤이 쌓인 기업이 많다. 이런 기업을 한국이나 대만이 인수해 일본을 자극한다면 서로 ‘윈윈’하는 거다. 일본은 20년간 경제가 엉망이었지만 인프라와 기초기술이 있어 망하지는 않는다. 캐논 도요타자동차 등 여전히 강한 기업도 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한국 젊은이의 지나친 미국 지향이다. 대만과 중국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라도 일본의 인맥과 지식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인화된 한국인은 큰 경쟁력이 없다. 비슷한 능력의 미국인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미국식 지식에 더해 중국 일본을 잘 알아야 미국 경영학석사(MBA)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한일관계를 낙관하나.

“양국 지도자가 서로 충분히 얘기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등 바보 같은 행동을 피해야 한다. 그 바탕에서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 오마에 겐이치 총장은 ::

오마에 겐이치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대학원 총장은 세계적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의 아시아·태평양지역 회장을 맡아 글로벌 기업은 물론 지역 주요 국가와 도시의 자문역으로 오래 활동해 왔다. ‘국경 없는 경제학과 지역국가론’의 제창자로 미 월스트리트저널과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경제 세계화에 따른 기업의 국제화 문제, 도시 발전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지역 국가 개념과 관련한 글과 논문을 꾸준히 싣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1994년 그를 피터 드러커, 톰 피터스 등과 함께 세계 5대 경영 구루(스승)로 선정했다. ‘국가의 종말’, ‘지식의 쇠퇴’ 등 100권 이상을 저술한 그는 현재 인터넷으로 경영학석사(MBA) 교육을 하는 학교를 설립해 인재 발굴과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일본 와세다대 이공학부, 도쿄공업대 원자핵공학 석사,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원자력공학 박사 출신이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http://news.donga.com/List/Column/3/04/20130125/52568881/1



Posted by 겟업
2013. 4. 5. 05:07

《‘감춰 놨던 칼을 칼집에서 꺼내기 시작하는 중국,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을 강화하는 미국, ‘강한 국가’를 내세우며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 세계의 이목이 동아시아에 쏠리고 있다. 세계 중심축이 동아시아로 넘어오고 있지만 이곳엔 아직 협력의 씨앗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현재도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동아시아의 2030년을 조망하는 작업은 크나큰 통찰을 필요로 한다. 일본의 석학 이오키베 마코토(五百旗頭眞·70) 효고(兵庫)재해기념 21세기연구기구 이사장은 동아시아가 역사 갈등을 넘어 협력 관계로 나아가는 열쇠로 ‘상호 이익’이란 화두를 던졌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한일 간에는 문화 및 스포츠 협력, 중일 간에는 경제협력을 제시했다. 지난해 12월 25일 효고 현 고베(神戶) 시 21세기연구기구 사무실에서 이오키베 이사장을 만났고 새해에도 추가로 전화 인터뷰를 했다.  고베=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20년 후 동아시아의 미래를 그려 달라.

“변수가 너무 많다. 하지만 틀림없는 한 가지는 동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중심지가 된다는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경제 강국이겠지만 유럽의 위치는 추락할 수 있다. 2030년엔 동아시아와 미국이 세계 경제를 리드할 것이다.”

―중국의 부상도 그때까지 이어질까.

“2030년 중국은 동아시아의 압도적인 중심 국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0년 뒤에 시련이 올 수 있다. 일당독재에 대한 불만이 해외뿐 아니라 중국 내부에서도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힘으로 국내 불만을 억누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중국 전통 방식에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중국식 발전’을 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어떻게 될까.

“중국을 제외하면 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국가로 자리 잡을 것이다. 소위 ‘중추적(pivotal)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양국이 협력하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지뢰가 많다. 양국이 부정적인 행동을 하지 말고 상대방에 사안마다 화내지 말고 가능한 한 협력한다는 기본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정권교체가 향후 중동 불안보다 더 큰 국제사회의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경제 효과 때문이다. 하지만 고노(河野)담화나 무라야마(村山)담화를 수정해 일본의 과거를 부정하면 ‘끝이다’라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나를 포함해 매우 많다. 아베 총리는 ‘국방군을 만든다’, ‘센카쿠에 공무원을 상주시킨다’ 등 의미 없는 제스처를 하지 말아야 한다. 시야가 좁은 강경파 주장대로 하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질 것이다.”

―고노담화 수정 움직임은 한국에 큰 파장을 미칠 텐데….

“아베 총리는 총선 실시 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국가 권력이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라는 것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겠다고 했다. 위안부 모집에 국가 권력이 개입하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크게 보면 일본 군부가 관여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일본 정부의 주장을 믿고 일본을 ‘명예로운 나라’로 여길 나라는 없다. 작은 의미에 집착해 과거 일본의 악행을 세계에 다시 알려서는 안 된다. 크게 보고 총리가 사과해야 한다. 한국 중국과 마찰을 빚을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도 해선 안 된다.”

―동아시아 협력의 가장 큰 위협 요소는 무엇인가.

“중국의 군사력 강조다. 1970년대 문화혁명을 끝낸 중국은 30년 이상 고도의 경제성장을 했다.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 달리 20년 이상 군사력을 키울 정도로 군사력을 중시했다. 중국 정부 발표만 봐도 군사비 지출이 20년간 20배 이상으로 늘었다. 중국은 최근까지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라고 했지만 요즘 대국이 됐으니 힘을 떨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남중국해와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등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도 힘을 바탕으로 아시아에 피해를 주지 않았나.

“맞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는 다르다. 일본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현재 일본은 국내총생산(GDP)의 1%를 군사비에 쓴다. 다른 국가들은 대체로 3%를 사용한다. 일본은 군사비를 줄이는 대신 국제협력에 집중하고자 했다. 일본은 전후 경제 중심의 평화적 발전을 선택했다.”

―요즘 아베 정권이 군사력 강화를 외치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은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조금 먼저 근대화를 이뤘다. 근대적 군대로 주위 국가에 피해를 줬다. 이에 대해 솔직히 주변국에 ‘잘못했다’라고 깊이 사과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위한 협력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아베 총리는 그런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

―일본의 사과를 믿지 않는 한국인과 중국인이 많은데….

“한 가지 양해를 구하고 싶은 게 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간 나오토(菅直人) 등 전 총리들은 국가를 대신해 공식적으로 한국에 대해 깊이 사죄했다. 하지만 한국인은 일부 일본 정치인들이 ‘과거 일본이 잘한 것도 있지 않느냐’라고 하는 말을 듣고는 총리의 사죄를 믿지 않는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여러 의견이 있는 만큼 일부 정치인의 발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으면 한다.”

―동아시아에 신뢰를 심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나.

“상호 이익이 되는 테마를 찾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1980년대 모든 국가가 경제 발전을 중시하면서 ‘동아시아의 기적’이라는 경제 발전을 이뤘다. 경제 협력을 넘어서는 의미 있는 것을 찾아 서로 대화하고 협력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전 총리는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했다. 그 후 문화를 개방했다. 특히 한국 문화가 일본에서 크게 히트를 쳤다. 한국 드라마가 유행하고 김연아 등 한국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평가가 매우 높다. 문화 스포츠 등 민간 레벨에서 협력할 게 많다.”

―중-일 간 상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테마는 뭐가 있나.

“역시 경제다. 하지만 중국에서 2005, 2010, 2012년 세 차례 반일 폭동이 일어났다. 2005년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였고 나머지 두 번은 센카쿠 영토 갈등이었다. 일본 기업들은 ‘차이나 리스크’를 느끼고 공장을 다른 나라로 이전하려 한다. 이는 양국 모두에 마이너스다. ‘다시 협력하자’라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중국은 국제법을 지켜야 한다.”

―한중일 3국이 공동으로 할 일은 없을까.

“나는 현재 일러 역사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상대방 설득 목적은 아니다. 상대 주장을 듣고 상대방의 역사 인식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두 가지 관점을 한 보고서에 담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는 가운데 공통점을 넓힐 수 있다. 일본에 의한 역사적 상처로 한중일 공동연구가 쉽지 않겠지만 그런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

―2013년 현재 동아시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중일 3국의 리더가 모두 바뀌었다. 매우 보기 드문 우연의 일치다. 하지만 어느 국가에서도 ‘이번 정부에 기대할 만하다’라는 생각을 찾기 어렵다. 모두가 경제 발전과 정치 기반 구축이라는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한국에선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는데….

“박근혜 당선인은 국가와 국민 정치 경제 모두를 생각하는 종합적인 인물이다.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라고 말한다. 매우 기대된다. 과거엔 민주주의, 재분배 등 하나의 이념을 갖고 사회를 바꾸면 됐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러 노선을 잘 조합해 최적의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일본도 정권이 교체됐는데….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것은 역사적인 일이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미일동맹이 깨졌다. 재건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국 중국과 영토 문제도 있었다. 일본 외교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권 교체는 개선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강경 아베 정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없나.

“아베 씨가 총리가 된 데에는 한국과 중국 책임도 있다. 영토 분쟁이 일어나면 누구라도 내셔널리스트가 된다. 그런 가운데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등 온건파가 힘을 잃었다. 다만 아베 총리는 이젠 주변 국가와 냉정히 협력 관계를 만들 것이다.”

―그게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본다. 아베 총리는 ‘매파’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도 매파였지만 1972년 중국을 방문해 협력 관계를 만들었다. 처음부터 신중히 하자고 외치는 사람은 일본 보수 세력으로부터 ‘외교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불신을 받는다. 하지만 매파는 확고한 국내 지지를 배경으로 반대파를 제압함으로써 온건한 외교정책을 펼 여지가 많아진다. 아베 총리도 2006년 처음 총리가 됐을 때 중국과 전략적 협력 관계 만들었다.”

―동아시아 각국의 새 지도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어떤 것인가.

“일본 측에서 보자면 삼성 LG 등 한국 기업은 부러울 정도로 약진했다. 중국도 거인이 됐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잃어버린 20년’을 맞았지만 앞서 1980년대 미국과 유럽을 능가하는 세계 톱이 돼 부를 축적했다. 하지만 최근 양극화 안전망 미비로 다양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지가 새 정권의 지도력을 측정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 이오키베 마코토는

일본 정치외교학계의 거물이자 대표적인 석학으로 꼽힌다. 교토대에서 일본 외교사를 전공한 뒤 고베대 법학부 교수, 방위대 교장, 동일본 대지진 복구의 틀을 짠 부흥구상회의 의장을 지냈다. 현재 구마모토현립대 이사장 겸 효고재해기념 21세기연구기구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오키베 이사장의 인물됨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사례 한 토막.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와 학연 지연이 전혀 없는 그는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런데도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06년 뜻밖에도 이오키베 이사장에게 방위대(한국으로 보면 육해공 통합사관학교 정도에 해당) 교장을 제안했다. 극구 사양했지만 고이즈미 전 총리의 요청이 더 끈질겼다. 그해 고이즈미 전 총리는 내각 홍보용 e메일 잡지에 글을 써 달라고 이오키베 당시 방위대 교장에게 요청했다. 그러자 그는 평소 신념대로 ‘한국 중국과 쌓은 신뢰가 총리의 야스쿠니참배로 크게 손상됐다’라고 썼을 정도로 강직했다. 당시 극우파는 이오키베 교장의 퇴진을 요구했지만 그는 2006년 8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약 6년 동안 방위대 교장으로 일했다. 저서로는 ‘일본정치외교사’ ‘일미전쟁과 전후 일본’ ‘아시아 리더십과 국가형성’ ‘또 하나의 일미 교류사’ 등이 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http://news.donga.com/List/Column/3/04/20130122/52485162/1



Posted by 겟업
2013. 4. 5. 05:06

올해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거장 주세페 베르디(1813∼1901)와 독일 음악극(Musikdrama)을 정립한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탄생 200주년이다. 국내외에서 두 사람을 기리는 공연과 축제가 풍성하다. 비슷한 듯 대조를 보이는 두 사람의 삶이 새삼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은 각각 크고 작은 영방(領邦)으로 분열된 나라에서 태어나 통일 민족국가의 일원으로 삶을 마쳤다. 그러나 두 나라의 조건은 달랐다.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의 억압 아래 놓여 있었으며 독립의 열망이 강했다. 독일은 분열되어 있었지만 프로이센이라는 신흥 강국이 그 가운데 있었다. ‘남에게 속박을 받는다’는 서러움은 없었다.

베르디의 초기 성공에는 민족주의적 열정이 큰 몫을 했다. ‘나부코’ ‘십자군의 롬바르디아인’ ‘에르나니’ ‘잔다르크’ 등 숱한 작품이 독립을 향한 투쟁정신을 담아냈고 이는 이탈리아 민중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지식인들은 살롱에서 ‘나부코’ 중 ‘노예들의 합창’에 나오는 “아름답고 잊혀진 나의 조국”을 “아름답고 잊혀진 나의 이탈리아”로 바꾸어 부르며 항쟁의 정신을 불태웠다. 민중은 “비바(만세) 베르디”라고 외쳤다. 베르디(Verdi)라는 이름에 ‘Vittorio Emmanuelle Re d'Italia(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이탈리아의 왕)’이라는 상징성을 담은 구호였다. 1861년 베르디는 통일 이탈리아의 상원의원이 됐다.

바그너의 생애는 이와 달랐다. 초기부터 그의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연애담이나 스페인 전승전설 같은 다양한 소재를 담았다. 혁명에 가담해 수배를 받고 국외로 도주하기도 했으나 작품의 색깔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그의 이름이 ‘독일’과 깊이 연관지어진 것은 게르만족의 원형설화를 소재로 4부작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를 쓰게 되면서였다. 설화 속의 신과 영웅, 난쟁이와 요정이 부딪치는 이 대작은 ‘가장 독일적인 거장’으로서 바그너의 이름을 역사에 뚜렷이 각인시켰다. 그러나 바그너는 그전에도 후에도 ‘국가’로서의 독일을 작품에 부각시키지 않았다. ‘로엔그린’ ‘트리스탄과 이졸데’, 마지막 작품인 ‘파르지팔’을 비롯한 여러 작품이 스페인 벨기에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작품들에서 진한 ‘독일성’을 느끼고 무대를 독일로 착각하기까지 했다. 바그너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바그너적 ‘독일성’의 많은 부분은 그의 영향을 짙게 받은 후배 작곡가들에게서 비롯됐다. 바그너는 한 사람의 오페라 작곡가를 넘어 새로운 화음과 관현악법, 새로운 악기 개발을 통해 판을 뒤엎는 ‘신음악’을 창조했다. 그의 시도는 리스트에서 말러에 이르는 숱한 작곡가에게 넓고 큰 강처럼 영향을 미쳤다. 외국 작곡가들도 영향을 받았지만 가장 바그너적인 ‘핵심’을 승계한 독일 오스트리아의 후배들은 그로부터 받은 특성들을 통해 ‘독일성’을 표현했다.

오늘날 ‘가장 이탈리아적’ ‘가장 독일적’ 작곡가로 꼽히며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사람의 자취를 되돌아보며 오늘날 한국 문화의 영향력을 생각한다. ‘한국적인 것’을 담아내겠다고 할 때 우리는 아직 소재의 측면에서만 그 의미를 찾는 경우가 많다. 춘향전과 심청전을 비롯한 고전의 재창작이 숱하게 이뤄지고, 조선왕조실록 데이터베이스(DB)를 돌려 새로운 소재를 찾아내는 데 힘쓴다. 그러나 ‘한국적인 것’의 핵심을 이 시대에 어떻게 독창적인 형식미로 담아내면서 세계인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에 천착하는 이는 드물다. 베르디처럼 자신이 계승한 전통 자체로 세계인의 빠른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 바그너처럼 새로운 예술 문법으로 시대를 장악해 보겠다는 자신감도 찾기 힘들다.

물론 ‘한류’로 요약되는 한국산 문화는 어느 때보다 넓고 깊게 세계무대를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보다 발 빠르고 세련되게 이를 대체할 문화상품을 생산하는 국가가 나타나는 순간, 한류는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상존한다. “우리의 토양에서만 가능한, 독자적이고도 특징적인 문화양식이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자신감이 빠져 있는 탓일 것이다. 탄생 200주년을 맞은 베르디도 위대했지만 오늘날 ‘한국의 바그너’를 더욱 기다리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유윤종 문화부 선임기자



http://news.donga.com/List/Column/3/04/20130122/525126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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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5. 04:08

대한민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가 출범했다. 취임식에서 언급한 경제 부흥, 국민 행복, 문화 융성 등 세 가지가 새 정부의 중점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 부흥과 관련해 스웨덴의 사례가 도움이 될 것 같아 몇 가지 제언을 드린다. 20세기 초만 해도 유럽의 가난한 나라였던 스웨덴이 강소국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창조 경제'에 있었다.

스웨덴 창조 경제의 바탕은 '현대적 초등교육'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어린이들도 영향을 줄 수 있다(Children can influence)'라 일컫는 교수법을 쓴다. 아이들은 과제를 개인이 아니라 그룹으로 해결한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창조하고 해결책을 만들어간다. 정답을 이끌어내는 '과정'에 점수를 준다. 혁신적이고, 과학을 사랑하며, 다른 문화를 포용하는 국제 감각을 갖춘 미래 세대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초등교육부터 민주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희망적인 미래로 나아가려면 우리가 처한 현실을 파악해야 한다. '현실에서 진리를 깨달으라'는 말은 덩샤오핑의 지혜로운 격언이다. 과거 스웨덴은 경제 분야 통계 자료가 부족했다. 특히 성별(gender)을 기반으로 한 통계 자료가 취약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수년에 걸쳐 성별 통계 체계를 갖춰나갔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발명을 주도하고 특허를 출원하는데 여성이 훨씬 저조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학의 교수법을 그룹 중심으로 변화시켰다. 그 결과 여성이 취득하는 특허 숫자가 10년 전에 비해 50%나 증가했다.

셋째, 세금은 형태가 새로운 제조업을 양성하는 데 써야 한다. 한국처럼 스웨덴도 우수한 제조 기술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 스웨덴에는 '혁신 익스프레스(Innovation Express)'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중소기업이 자사의 발명품을 세계시장에 소개할 때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분야의 새 일자리를 창출했다.

넷째, 기업가 정신 함양은 모든 분야에서 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것은 대기업만의 역할이 아니다. 스웨덴의 대학은 음대·미대 학생들에게도 어떻게 회사를 창업하고, 시장에서 마케팅을 하며, 회계를 운용하는지를 가르친다.

다섯째, 좋고 나쁜 경험들을 공유하는 체계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스웨덴 인터넷에는 새 기업을 만드는 과정의 시행착오를 공유하는 '경험은행(experience banks)'이 있다. 선배 기업인이 후배 기업인에게 경험을 전수하는 '멘토링' 시스템. 창업할 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정보를 제공한다.

여섯째, 아이디어를 실제 현장에서 활용하기 위한 '인큐베이터'가 필요하다. 신규 기업에 가장 어려운 시기는 아이디어를 처음 시장에 내놓는 초기 단계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카롤린스카대학의 '사이언스 파크'가 대표적이다. 생체의학과 생명과학 분야 등 초기 창업 단계에 비용이 많이 드는 분야에 정부의 전폭적인 자금 지원이 이뤄진다.

마지막으로 빈부 격차의 감소와 사회적 안전망 확충은 창조 경제의 달성과 뗄 수 없는 과제다. 실패하더라도 구제될 수 있는 시스템은 매우 중요하다. 스웨덴의 젊은 발명가들은 실패했을 때 그들을 구제할 안전망이 없었다면 창업을 시작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라르스 다니엘손 주한 스웨덴 대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18/20130318022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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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5. 04:01

프랑스인 친구에게 물었다. "프랑스인은 왜 그리 토론을 좋아하느냐." 그 친구는 "원래 그렇다"며 우스갯소리를 들려줬다. "옛날에 로마 군대가 프랑스를 점령하려고 국경 근처까지 왔다. 프랑스 여러 부족 대표가 천막에 모여 회의를 했다. 대표들이 내놓은 전술이 제각각이라 열띤 토론이 한 달 가까이 벌어졌다. 마침내 부족 대표들이 전술에 합의하곤 투지를 불태우며 천막 바깥으로 나왔다. 로마군이 프랑스를 다 집어삼킨 뒤였다." 

▶프랑스 사람은 말할 때 손가락을 꼽는 버릇이 있다. 한마디 하고는 "둘째로…, 셋째로…" 하면서 말을 이어 가는 게 몸에 뱄다. 대개 전화 통화도 길게 한다. 공무원은 일 보러 온 사람들이 줄 서 있어도 걸려 온 전화를 붙들고 좀처럼 놓질 않는다. 파리에 살 때 동네 우체국 창구에서 할머니 바로 뒤에 줄을 선 적이 있다. 할머니는 우편물을 부친 뒤에도 창구 직원을 놓아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잡담을 나눴다. 

▶뒤에 선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먼저 줄 선 사람이 충분히 말할 권리를 존중한다는 태도였다. 프랑스인의 '수다 문화'엔 톨레랑스, 관용의 측면도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빨리빨리' 사회에 길든 이방인은 너그럽게 넘기기가 쉽지 않다. 프랑스에 있는 타이어 공장을 인수하려던 미국 기업인이 공장 근로자들의 수다에 질려 투자를 포기하면서 프랑스가 시끄럽다. 그는 "프랑스 근로자들이 점심 먹고 쉬면서 한 시간, 수다 떠는 데 세 시간을 보내고 하루에 단 세 시간만 일한다"고 했다. 

▶이 미국인이 노조에 따졌더니 노조 지도자는 심드렁하게 "프랑스에선 다 이래"라고 대꾸했다 한다. 화가 치민 미국인은 프랑스 산업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악담을 퍼부었다. '프랑스 타이어 산업은 미친 노조와 정부 때문에 곧 망할 것이다.' 성마른 산업장관도 답장을 보내 맞받았다. '당신의 미국 회사 규모는 우리 미쉐린 타이어의 5%밖에 안 된다. 당신이 프랑스에 투자하면 많이 배워 갈 수 있는데 그러느냐." 

▶프랑스 언론도 비난에 가세했지만 사실 프랑스는 큰소리칠 형편이 아니다. 경제는 성장을 멈췄고 재정 적자와 실업에 시달린다. 좌파 정부는 노조 눈치를 보며 최저임금을 올렸다. 프랑스는 그리스·스페인에 이어 유럽 경제의 시한폭탄이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그래도 말하고 토론하기 좋아하는 것은 프랑스인들이 사는 방식이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사회에 살면서 그들의 느긋한 삶을 가끔 느리게 되감아 본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2/22/20130222023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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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5. 03:44

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해 강하게 압박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북한의 강한 자존심, 중국에 대한 불신(不信), 그리고 북의 반발을 든다. 북·중 관계에는 분명 이런 측면이 있다. 특히 북한 지도부의 중국 불신은 뿌리가 깊다. 1950년대 김일성은 마오쩌둥의 군사 지원을 받으면서도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려고 정권 내 친중(親中) 인맥을 제거했다. 항일운동가 출신으로 펑더화이 중공군 총사령관의 친구인 무정(武亭) 제2군단장을 비롯해 방호산·박일우 등 연안파 수백 명을 이때 숙청했다.

김정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몇 년 전 한국 기업인을 만났을 때 "중국을 안 믿는다"고 했다. 그는 중국 방문담을 털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중국은 우리와 상의도 없이 이튿날 아침 만리장성 구경 일정을 잡았더군요. 나는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안 가고 아랫사람들만 보냈지요. 왜 안 갔는지 아십니까? 만리장성을 보라는 의도가 뭐겠습니까. '조선은 만리장성 밖의 작은 나라이니 알아서 처신하라'는 뜻 아니겠어요?" 그는 1992년 중국이 한국과 수교하자 배신당했다며 중국 고위층과 7년이나 교류를 중단했다. 그의 아들 김정은은 이번 설날 세계 30개국 정상에게 연하장을 보내면서 중국 지도자들은 쏙 빼놓았다.

중국은 북한의 한 해 식량 부족분의 절반(30만~40만t)과 원유 소비량의 절반(50만t)을 공짜로 대준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원유와 식량 수출을 차단해 북한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지만 이 카드를 잘 꺼내지 않는다. 자존심 강한 북한이 호락호락 중국에 굴복할 것 같지 않은 데다 부작용이 더 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경제 압박 카드를 썼다가 통하지 않으면 더 이상 쓸 카드가 없어진다. 그 때문에 양국 관계가 파탄 나면 미·일(美日) 군사동맹에 대응하는 '전략적 자산' 하나를 잃게 된다. 중국이 그동안 북한 비핵화보다 북한 정권의 안정을 우선하면서 대북 압박을 자제한 데는 이런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러나 북한이 명실상부한 핵 보유국으로 등장할 경우 이런 셈법은 통하기 어렵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통해 소형화된 핵탄두의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면 일본과 한국에 핵무장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미·일 MD(미사일 방어) 체제가 확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또 북한이 핵 비확산 카드를 놓고 국제사회에 대가를 요구하고 미국 등이 이를 거부할 경우 전쟁의 먹구름이 동북아를 뒤덮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왔을 때 북한이 식량과 에너지 때문에 중국 말을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이 핵 강국이 되면 중국이 지키려는 기존 질서는 의미를 잃게 된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최선은 국제사회가 한 단계 강화된 '채찍과 당근'으로 북한 스스로 핵실험을 중단하도록 압박하는 방법밖에 없다. '강화된 압박 카드'는 북에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전방위 압박으로 정권이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북이 핵을 포기하면 정권 안정과 경제 회복의 길이 열린다는 확신도 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의 역할이다. 만약 북이 이 고비를 넘기고 핵무장의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중국이 가진 대북 지렛대의 쓸모가 크게 떨어진다는 점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중국은 지렛대의 '유통기한'이 다하기 전에 한·미(韓美)와 함께 북한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채찍과 당근' 목록을 논의해야 한다.



지해범 논설위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2/11/20130211012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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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5. 02:50

칠 년 전 외국 공항에서 ‘끄덕 인형’ 한 쌍을 샀다. 작은 투명 플라스틱 상자 안에서 꼬마 닌자(忍者)가 쉼 없이 머리를 끄덕인다. 신기하게도 건전지나 전기 공급 없이 작동하는데 그 비밀은 태양전지에 있다. 집광판이 빛에너지를 동작에너지로 바꾸는 것이다. 녀석은 일본에서 탄생해 전 세계로 퍼진 ‘노호혼’ 인형이다. 일본말 노호혼, 유유자적이나 빈둥빈둥 정도로 해석된다. 우울증 해소용 인형이라는데 ‘괜찮아, 괜찮아…’ 하며 끄덕이는 것 같다.

인간을 빛으로 조종할 수 있을까. 그리스·로마 시대의 철학자들은 시각을 눈총의 산물로 봤다. 눈에서 광선이 나가 상대를 판별하고 마음도 움직일 수 있다고 여겼다. 이런 생각은 로봇영화에나 남아 있다. 눈은 빛의 발사기관이 아니라 수용기관이며, 눈총 염력 같은 건 없다는 명제는 상식에 가깝다. 그런데 상식이 새 정부에서 뒤집어졌다는 주장이 있다. 대통령이 레이저눈총으로 끄덕맨을 양산한다는 괴담이설(怪談異說)이다.

대통령의 레이저발사 설은 과거 출입기자 사이에서 종종 제기됐다. 한 종합지 기자의 증언이다. “2011년 1월, 국회 ‘근혜천사’ 바자회. 대통령(당시 전 대표)은 격려사에서 ‘복지 논의가 많은데 왜 모든 것을 돈으로만 보는지 안타깝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사회적 관심’이라고 언급했다. 복지 논쟁이 증세로 비화하는 데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행사장을 나온 대통령에게 ‘복지에 돈이 아니라 사회적 관심, 어떤 맥락인가요’라고 물었다가 레이저눈총을 맞았다. 대통령은 민첩한 속도로 돌아서서 ‘한국말 모르세요’라고 했다. ‘I don’t know Korean.’ 이렇게 대응할까 했는데, 눈총에 당황해 실기했다.”

요즘 정부 개편과 공직 인선 등을 두고 레이저눈총 설이 다시 부상했다. 대통령의 모습은 평소 단아하다. “가끔 입으로 웃지만 눈으로 쏘아보는 표정을 할 때, 정말 살벌하다”(여당 당직자)는 경험담처럼 대통령 앞에 가면 주눅이 들어 지시만 받아오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야당은 불통(不通) 이미지를 눈빛으로 형상화하려 한다. 몇몇 신문도 눈빛이 강하게 나온 대통령 사진을 골라 1면에 배치한다.

레이저는 단색 파장에 강한 직진성을 갖는다. 레이저눈총은 지시형 리더십의 비유인 것이다. 리더십 유형 중 어느 것도 좋고 나쁜 것은 없다. 구성원이나 환경에 따라 스타일을 달리한다. 계획대로 신속하게 움직여야 할 때, 리더와 부하의 능력 차이가 클 때 지시형 리더십은 힘을 발휘한다. 반면에 부하의 자발성과 조직의 창의성을 떨어뜨린다는 약점이 있다. 새 정부처럼 창조경제·미래창조사회를 국정 화두로 삼았을 때 더욱 우려되는 지도 유형이다.

창조의 정의는 백인백색이다. 변이·적응·지속에 근거한 가치지향적 변화라고 정의한다면 그 리더는 새 판을 벌일 줄 아는 상상력, 판을 잘 유지해가는 조정능력, 저항을 무릅쓰고 새 판의 변이를 택하는 결단력을 보여줘야 한다. 상상과 조정, 결단은 혼자 고뇌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지시와 위임, 이성과 감성, 용기와 배려가 씨줄·날줄로 짜여야 가능하다.

 창조형 리더십이 복합유형이라면 그 리더는 문화의 교차로에 서 있는 게 좋다. 대통령은 그 조건을 갖춘 인물이다. 남성·문과 중심 정치판의 이공계 여성, 보수당의 복지·행복 주창자였다. 숫자·돈·현실보다 인간 의지를 더 믿던 정치인이다. 당선 이후에는 지시형 리더십만 부각된다. 장점을 못 살리고 있다. 진실과 상관없이 대통령이 레이저눈총을 자주 쏜다고 믿는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대통령의 직진 광선이 가슴에 꽂힐수록 고위 공직자는 끄덕 인형, 유유자적 인형, 빈둥빈둥 인형으로 변해갈 것이다. 그것이 지시형 리더십이 오래 유지됐을 때의 운명이다. 혹시 대통령이 눈총을 가졌다면 빨리 이를 여러 파장을 받아들이는 렌즈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창의적인 공직자, 자체발광 정책이 나온다.


이규연 논설위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820554&ctg=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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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5. 02:31

프랑스의 프랑스 문화원, 독일의 괴테 인스티투트, 스페인의 세르반테스 문화원 등 선진국들이 운영하는 문화원 활동을 눈여겨보면 그들의 문화 국력을 가늠할 수가 있다. 우리나라도 해외에 문화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주요 선진국 수도에만 위치하고 있다. 운영에 많은 예산과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터키에 이어 헝가리에도 문화원이 설치된다고 하니 반갑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원의 양적 증가만이 대수는 아닐 것이다. 문화는 물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생활에 녹아들어야 한다. 학술대회나 세미나 개최, 한국영화 상영, 한식홍보 등 일회성 행사로는 충분하지 않다.

일전에 볼리비아 중부의 수크레를 방문한 적이 있다. 스페인 식민지풍의 흰색 건물이 많이 남아있어 ‘하얀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헌법상 수도다. 유럽의 배낭여행 청소년들이 많이 찾아 거리는 언제나 붐빈다.

그곳의 독일문화원은 수도 라파스에 있는 괴테 인스티투트와 달리 큰 건물이 아니라 일반 가정집과 다름없는 아담한 건물이다. 현관 옆에 베를린 카페를 운영해 주민들이 언제라도 부담 없이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여행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서너 개의 객실이 있는 숙박시설도 갖췄다. 문화원은 독일명예영사가 운영하며 독일대사관으로부터 약간의 운영비만 지원받고 있다고 한다. 지역 커뮤니티 속에서 자연스럽게 독일의 문화를 심고 있는 모습에 감명받았다.

이제 세계 도처에 한국인이 진출하지 않은 곳은 없다. 이름 없는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도 우리 국민이 있다. 그들을 우리 문화 홍보의 첨병으로 참여하게 한다면 대도시에서 활동하는 문화원의 역할을 큰 재정적 부담 없이 지방 소도시에서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정 수준의 규격과 격식을 갖춘 교민의 가정집이나 가게, 또는 교민 시설의 한쪽을 한국 문화 홍보를 위한 장소로 활용할 수 있다면 현지인들에게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을 주면서 한류를 전 세계에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교민을 우리 문화 홍보 활동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게 함으로써 자긍심 고취는 물론 관민이 함께하는 진정한 의미의 공공 외교활동의 한 전형을 이룰 수도 있다.

지난해 한국 영화·방송프로그램·음반 수출액이 7억9400만 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 배경에는 세계 도처로 뻗어가고 있는 한류의 힘이 있다. 이러한 한류의 맥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김홍락 전 주 볼리비아 대사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7463362&ctg=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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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5. 02:04

지난 설 연휴, 고향에 다녀들 오셨는지. 그렇다면 올해도 똑같은 느낌을 받은 분이 많을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야 원래 그렇다 치고, 국도변에 다닥다닥 자리잡은 음식점 간판들이 어찌 그리 다 한통속인지 말이다. 토종닭백숙·국밥·설렁탕·매운탕·장어구이…. 전국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원조’ 아니면 ‘할머니 손맛’을 내걸었다. 그 많은 할머니 명인이 돌아가시지도 않는다. TV 프로그램에 나왔다며 방송사 로고를 붙인 집이 너무 많아서 안 그런 집 찾기가 더 힘들 지경이다.

차를 세우고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식사를 하면 십중팔구 실망이다. 조미료를 듬뿍 친, 그저 그런 맛이다. 반대로 유명하다는 맛집을 애써 찾아가면 줄을 길게 선 끝에 뒷손님 눈치 보며 후딱 먹어치워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그래서 대한민국 식당은 두 종류다. 소수의 ‘얻어먹는 집’과 다수의 ‘먹어주는 집’이다.

나를 포함해 절대다수 장·노년층은 질보다 양 위주의 식습관에 길들여져 있다. “진지 드셨습니까”라는 인사말에 배고픈 역사가 숨어 있다. “먹는 게 남는 것” “먹다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외치며 미각보다 포만감, 혀보다 위장을 앞세웠다. 음식 취향은 개인사(史)를 정확히 반영하기 때문에 나중에 형편이 풀렸다 해서 입맛까지 고급으로 바뀌지 않는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 유배 시절 툭하면 부인에게 편지를 보내 그 비싼 민어·어란과 쇠고기·조기젓·수수엿·호두·곶감을 보내달라고 어린애처럼 졸랐다. 권문세가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좋은 먹거리를 두루 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고 했다.

베이비부머 이상 세대야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러나 다음 세대까지 지금의 척박한 외식문화를 물려주어서야 되겠는가. 사실 우리에겐 1980년대까지 이렇다 할 외식문화가 없었다. 대다수가 집에서 만든 밥과 반찬으로 때웠다. 외국계 프랜차이즈 식당이 국내에 진출한 게 80년대 중반이었다. JTBC ‘미각 스캔들’에 출연 중인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우리에겐 향토음식을 상품화해 본 경험이 없다”고 말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해지자 어릴 때 고향에서 먹던 음식을 찾은 게 향토음식 개발의 계기였다. 농촌 아니라 도시의 요구로 시작됐다는 얘기다. 축적된 경험이 없으니 이웃 닭백숙집이 잘되면 닭백숙, 매운탕집이 잘되면 매운탕을 너도나도 차려내기 시작했다. 얼마 안 지나 그저 그런 비슷한 먹거리가 전국을 뒤덮었다.

천편일률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황교익씨는 가장 시급한 과제로 식재료의 DB(데이터베이스)화를 꼽는다. 어느 고장에서 무슨 농수산물이 나고, 특성은 어떠하며, 어떤 경로로 구할 수 있는지 세세히 정리하는 게 먼저다. 유럽·일본에선 이미 20~30년 전에 끝낸 작업이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염대규 식품산업처장에 따르면 그나마 올해 최초로 식재료 DB 구축을 위한 실태조사 예산이 소액 배정됐다. 재작년 제정된 외식산업진흥법 덕분이다.


 전문가들은 식재료를 체계화해 놓지도 않고서 한식 세계화를 외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본다. 서울 이태원에 퓨전한식 레스토랑을 차려 주목받고 있는 젊은 셰프 권우중(33)씨는 “요리는 곧 문화인데, 한식이랍시고 만날 비빔밥·잡채·불고기만 돌려대면 앞으로 이삼십 년이 지나도 태국요리 이상의 취급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프랑스·중국·일본·이탈리아 같은 요리대국 대접은 까마득하다는 말이다. 음식을 미리 만들어 냉장고에 두었다가 꺼내 상을 차리는 시중의 한정식은 “최악의 요리”라고 권씨는 비판한다. 중국은 간단한 면 요리부터 만한전석(滿漢全席)까지, 일본은 덮밥에서 가이세키(會席)요리까지 대중성과 수월성을 골고루 구비했다. 요리의 생태계가 살아 있다. 한식은 어림도 없다. 권 셰프는 “더 심각한 문제는 프로 한식 요리사, 특히 젊은 요리사가 너무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세계화? 남들이 먹어주고 각국 요리사가 다투어 한국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야 세계화다. 민족주의 냄새가 풍기는 지금 방식으론 안 된다.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 8개를 한국·스페인·터키·아르헨티나 등 8개국이 사이 좋게 나눠 가진 태권도가 올림픽 핵심 종목으로 살아남은 것과 같은 이치다.

이제 식당도 할머니 손맛과 이별할 때가 됐다. 주먹구구식 획일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춰야 한다. 잔뜩 차려놓았는데 막상 먹을 건 없는 상차림은 과감히 엎어버리자. 음식을 즐기는 게 아니라 허겁지겁 ‘집어넣는’ 안쓰러운 모습을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유전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노 재 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678148&ctg=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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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59

로마에 들른 김에 바티칸시티에 갔다가 눈여겨본 게 있다. 현금자동지급기 모니터에 뜬 사용 안내문이 라틴어로 돼 있었다. 그림 안내가 함께 떠서 얼추 불편하지는 않았다. 영국 어떤 도시는 지하철 금연 문구가 영어와 라틴어로 쓰여 있다. '노 스모킹/ 놀리 푸마레(Noli Fumare)'. 1파운드 동전엔 라틴어로 '엘리자베스, 데이 그라티아 레지나 피데이 데펜소르'라고 쓰여 있다. '신의 가호로 믿음을 지키는 여왕'을 기린다.

▶흔히 '죽은 언어'라고 하지만 라틴어는 그네들 일상에 살아 숨 쉬듯 스며 있다. EU의 좌우명은 '인 바리에타테 콘코르디아(다양함 속에 하나가 된)'다. 핀란드에는 라틴어 방송도 있다. '로빈슨 크루소' '보물섬' '어린 왕자' '해리포터' 같은 어린이 책도 꾸준히 라틴어로 번역한다. 라틴어로 시를 짓거나 산문도 쓴다. 예수를 그린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는 모든 대사를 라틴어로 했다.

▶지난 11일 교황이 라틴어로 된 사임 발표문을 읽었다. 교황청 기자들은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며 통역을 기다렸다. 라틴어에 능숙한 이탈리아 여기자 지오반나 치리의 눈이 빛났다. "너무 피곤하다. 그만두려 한다"는 교황 말씀을 알아듣고 곧바로 140자 남짓 1보(報)를 타전했다. 초를 다투는 보도 현장에서 터진 세계적 특종이다. 그녀가 교황청 취재를 잘해보려고 라틴어를 익혀 온 덕분이었다.

▶부활절에 교황이 성베드로 성전 발코니에서 라틴어로 하는 강복(降福)을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라고 한다. '로마 도시와 전 세계에'라는 뜻이다. 그러나 2000년부터 라틴어는 바티칸 공용어가 아니다. 라틴어를 모르는 젊은 사제가 많아진 탓이다. 그러다 전통을 중시하는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에 오른 2005년부터 라틴어 사용이 늘었다. 라틴어 문서와 발표문을 만드는 '라틴어 문서실'이 따로 있다.

▶미국 명문대 교훈은 대부분 라틴어다. 서울대 배지에도 '베리타스 룩스메아(진리는 나의 빛)'라고 쓰여 있다. 서양에서는 중·고교부터 라틴어를 가르친다. 대학에 가려면 라틴어 인증 시험을 치른다. 여러 학문과 문화의 뿌리를 이루는 공통분모가 라틴어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법학·의학·신학·문학·사학·철학은 물론 자연과학도 중요 개념과 용어를 라틴어로 쓴다. 세상 언어는 7000개가 넘는다. 그 대부분은 지금 쓰지 않는 '불 꺼진 언어'가 됐다. 그러나 라틴어만은 정신문화의 꺼지지 않는 불로 빛나고 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2/14/20130214029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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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58

KIST 텅 빈 건물 채워줄 두뇌 찾자 在美 한인 과학자 1000명 귀국 행렬
박 대통령 앞장서 연구 환경 만든 것 '미래' '창조' '과학' 元祖 생각할 때


미래창조과학부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창작'은 아니다. 47년 전 미래·창조·과학의 기치를 든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박 당선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지난 10일 창립 47주년을 맞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그것이다.

우리 근대화 역사를 보면 '국운(國運)'이 분명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병철이 전자, 정주영이 조선 산업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나 박 전 대통령이 야당 반대를 무릅쓰고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한 것이 좋은 예다.

KIST가 생긴 유례는 더 드라마틱하다. 1965년 박 전 대통령은 미국에 갔다. 월남전 파병(派兵) 대가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 자리에서 존슨 대통령이 뜻밖의 '선물'을 내놓았다. "종합 과학 연구소를 지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과학기술 인력이 1000명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은 그로부터 굉음(轟音)을 울리며 역사를 바꿨다. 홍릉(洪陵)에 KIST가 들어선 것은 그 1년 뒤였다.

문제는 텅 빈 건물을 채울 '과학 두뇌(頭腦)'였다. 초대 원장 최형섭은 미국 워싱턴으로 가서 한국인 과학자들을 찾아다니며 호소했다. "가난한 조국은 당신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1966년 처음 18명이 귀국했다. 귀국 행렬은 계속 이어졌다. 1980년까지 영구 귀국한 과학자가 276명, 1990년까지 1000명이 넘는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놀란 험프리 미국 부통령이 남긴 말이 인상적이다. "KIST의 재미(在美) 한국인 과학자 유치는 세계 최초의 역(逆)두뇌 유출 프로젝트였다!" 과학자 1000명이 부(富)와 명예를 버리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조국으로 돌아온 것은 물론 애국심 때문이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귀국한 과학자들은 당시 국립대 교수보다 세 배 높은 보수를 받았지만 미국에 있을 때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서울대 교수들이 반발하고 대통령보다 더 높은 월급에 놀란 관리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박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과학자들의 급여 명세표를 훑어보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이대로 시행하시오!" 편안하게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자 과학자들은 몸을 던졌다.

서울 인사동의 한식집 선천에서는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 노(老)과학자들을 만날 수 있다. KIST 초기 멤버 40여명이 만든 '4월회'라는 모임에서는 역사가 채 기록하지 못한 충격적인 증언을 접할 수 있다.

"처음 귀국한 과학자 20여명 중 5명이 4년 만에 사망했습니다. 간암·대장암이었지요. 모두 30대였어요. 허허벌판에서 뭔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스트레스… 오늘날 번영은 그런 희생이 바탕이 된 겁니다."(안영모 박사)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22대 원장인 문길주 박사는 1991년 귀국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KIST가 '그랜드캐니언 프로젝트' 등을 수행하며 세계환경학회에서 이름을 떨친 그를 주목한 것이다. 고교 때 캐나다로 간 그는 한국말을 못하는 브라질 교민 출신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귀국했다. 연봉 2000만원으로 미국에서 받던 5만달러의 절반도 안 됐지만 그는 한국행 비행기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앞서 이 길을 택한 선배들이 있었기에 기꺼이 조국으로 돌아간다."

이들은 서독에서 청춘을 바친 광부·간호사, 월남전에서 피 흘려 달러를 번 월남전 용사들과 함께 우리 역사에 기록돼야 마땅할 것이다. 이런 사실(史實)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래창조과학부는 미래·창조·과학은 간데없이 권한과 이권으로 가득 찬 '괴물'이 될 태세다. 나는 김지하가 썼듯 신새벽, 박 당선인이 아버지의 숨결이 살아있는 KIST를 찾아 미래·창조·과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문갑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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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58

고향의 따뜻함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즐거운 명절이 곧 돌아온다. 평소에는 자주 만나지 못하던 친척들이 오랜만에 한지붕 아래에 모여 조상님께 같이 차례도 지내고 어른들께는 세배도 올리면서 밀렸던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런데 그 즐거워야 할 명절날이 안타깝게도 아이에겐 평생 남는 상처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별 생각 없이 툭툭 던진 고모나 삼촌, 할머니의 말들이 비수가 되어 시간이 지나도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따끔따끔 하면서 아픈 상처로 남는 것이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많은 경우에 아이가 본인의 말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어른들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면 알아도 ‘뭐 그럴 수도 있지, 식구들끼리 무슨 상처냐? 다 너 잘되라고, 다 너 걱정되어서 하는 말인데’ 하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아이는 너무도 아픈데도 말이다.


이를 테면 이런 말들이다. 명절 때 밥 먹고 있는 여자 조카애를 보더니 고모가 대뜸 이렇게 말한다. “에휴, 너 살 좀 빼야겠다. 네가 평소에 그렇게 먹으니까 남자가 안 생기는 거야. 너 어렸을 때만 해도 진짜 예뻤는데.” 할머니의 이런 말들도 아프다. “네가 빨리 취직이 되어야 엄마가 덜 힘들 텐데. 부모 등골 좀 그만 빼먹고 얼른 돈 벌어 시집이나 가라.” 큰어머니의 결혼에 관한 말도 아프다. “결혼은 왜 안 하니? 돈은 좀 모았니? 올해는 국수 먹여줄래? 멀쩡한데 왜 결혼을 못해. 눈 좀 낮춰라. 공부만 잘했으면 뭐하니 결혼 잘 못하면 그거 다 헛똑똑이다.” 그리고 만날 때마다 애가 학교 몇 학년이냐고 물어 보시는 고모부는 대학 입시에 실패해서 재수를 결정한 아이를 보고 이렇게 묻는다. “너, 재수를 왜 하니?”

사실 명절 하면 기억이 나는 일이 하나 있다. 나에겐 자라면서 거의 친누나처럼 가까웠던 사촌 누나가 한 명 있다. 집이 가까워서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은 같이 누나와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누나 집은 우리 집과는 달리 좀 시끄러운 일이 많았는데 그 이유가 누나 부모님께서 부부 싸움이 잦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누나가 중학교 다닐 때 두 분은 이혼을 하셨고, 나는 옆에서 누나가 부모님의 이혼으로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쭉 지켜봐야 했다. 그러다 한참 뒤 우리가 어른이 된 후 누나에게 드디어 애인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연애가 무르익어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갈 때쯤 큰 사건이 하나 터지게 된다.

명절이 되어 매형이 결혼하게 될 누나를 친지들에게 소개를 시켜주려고 집으로 누나를 초대했다. 누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곱게 차려 입고 매형 집에 가서 최선을 다해 좋은 인상을 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부엌에서 음식 하는 것을 열심히 돕다가 잠시 화장실을 가려고 마루를 걸어가는데 저쪽 방 한쪽에서 매형 고모들이 하는 말이 들려 왔단다. “쟤네 부모가 일찍 이혼을 했다네. 아버지 없이 근본 모르고 자란 애야. 우리랑은 사실 격이 맞지 않는데 결혼하겠다고 저렇게 뻔뻔하게 집에까지 찾아온 것 좀 봐.” 이 말을 우연히 엿듣게 된 누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나도 얼마나 누나가 아팠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리다. 아니 세상에, 부모님 이혼한 것이 어떻게 애들 책임이란 말인가? 결국 누나는 매형과 헤어지려 했지만 매형의 끝없는 구애에 아슬아슬하게 둘은 결혼을 했다. 단, 친척들을 봐야 하는 결혼식은 하지 않고 결혼신고만 하고 말이다.

트위터로 한번 물어 보았다. 명절 때 친척들의 말 때문에 아팠던 적이 있었느냐고. 그랬더니 실시간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연이 올라왔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 좋은 명절 때 모여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것일까. 그냥 가족이니까 꼭 남들에게 하듯이 힘들게 말 가려가면서 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가까워도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할 말들이 세상에는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애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 하더라도 아이가 아파한다면 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닐까. 사실 애는 뭐가 잘못되었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어른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 차라리 애가 어떤 점 때문에 힘들어 할지 그 마음을 살펴서 응원의 말, 격려의 말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넌 이게 문제야’가 아니고, ‘나도 사실은 너처럼 그랬었어’라고 공감해 주고, ‘넌 분명 잘할 수 있어’라고 믿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멋있는 어른이 되어서 아이들에게 이번 설날만큼은 상처의 명절이 아니고 행복한 명절을 선물했으면 좋겠다.


혜민 스님 미 햄프셔대 종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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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56

해마다 춘절(春節·설)이 가까워지면 베이징의 식당가는 종업원 구인난에 시달린다. 지난주부터 절반 이상의 종업원들이 새 얼굴로 바뀐 음식점이 허다하다.

올해는 특히 극심한 스모그 때문에 정이 더 떨어진 지방 출신들이 일찌감치 일을 접고 귀성길에 올라 구인난이 더 심하다고 한다.

눈에 차는 일손을 찾아 백방으로 헤맸다는 단골 식당 점주. 요즘은 지방에도 일자리가 늘어나 굳이 숨쉬기조차 어려운 베이징에서 일할 의욕이 안 생긴다는 종업원들.

날씨가 풀리면 다시 스모그에 시달릴 테고 곧 있을 황사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토로한다.

객지 생활 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길게는 3~4년에 한 번 하는 귀성이니 며칠이 걸려도 고향으로 갈 테지만 요즘 소득 수준이 웬만한 중국인들은 굳이 춘절에 맞춰 고향을 찾지 않는다.

그렇다고 폐에 끔찍한 영향을 미친다는 초미세 먼지가 짙어지는 대도시에 머무를 리도 없다. 최대 2주나 낼 수 있는 춘절 연휴 때 아예 중국을 떠나 유럽·미국·동남아 등 해외 휴양지로 몰린다. 한국에도 6만3000명의 요우커(遊客·관광객)들이 들이닥친다고 한다. 명절을 맞아 한산했을 서울 도심의 쇼핑가와 관광지가 요우커들로 한바탕 들썩거릴 모양이다.

얼마 전 신년회 자리에서 한국을 자주 오가는 지인들이 터트린 불만을 들은 일이 있다. 한국에선 시끄럽고 덜 씻는다는 선입견으로 요우커들을 기피하는 일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집단문화의 영향에, 머리를 자주 감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생활 관습 때문에 생기는 불가피한 문화 충돌인데 냉대를 받고 나니 얼굴이 화끈거리면서도 속이 뒤집어지더라는 것이다.

연휴 때 한국을 찾는 요우커들의 씀씀이가 워낙 커서 이들에 대한 첫인상이 돈과 결부돼 그렇지 따지고 보면 이들은 지역사회와 소속 직장에서 오피니언 리더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압축 성장으로 인민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졌다지만 춘절에 해외 여행 정도 갈 수 있는 계층은 13억 중국인들 가운데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다.

마침 인내의 한계를 시험 받는 맹독성 스모그에 시달리다 떠나는 춘절 여행인 만큼 한국의 녹색 환경과 청정 이미지를 각인시킬 기회다. 먹거리 안전 때문에 늘 심리적으로 쫓기고 오염된 공기를 깊이 마시며 정신적으로 지쳐 있을 요우커들에게 발상의 전환을 자극하는 기회의 문이 열린 것이다. 가족을 이끌고 베이징에 나와 살다 보면 환경은 경제성장의 브레이크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는 신념이 생기게 된다. 질 높은 도시생활은 중국인들에게 새로운 서비스이자 갖고 싶은 상품이 되어가고 있다. 청정 산업 경쟁력과 원천기술, 관리 노하우를 앞세워 중국과 전방위에서 에코(Eco) 산업외교를 펴야 할 때다.



정 용 환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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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55

파리에서 테제베(TGV)를 타고 3시간쯤 가면 도착하는 인구 4만의 작은 도시 앙굴렘(Angoulme). 프랑스인들에게 이 도시의 이름을 대면, 바로 ‘만화(bande dessine)’라는 답이 튀어나온다. 지난 1974년 시작돼 올해로 40회를 맞는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때문이다. 지난달 31일부터 3일까지 열린 올해 행사에는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돼 ‘한국만화특별전’을 열었다. 덕분에 좀처럼 찾기 힘든 유럽의 소도시 앙굴렘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가기 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어떤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는지 페스티벌 홈페이지를 검색해 봤지만 모든 내용이 프랑스어로만 되어 있어 당최 내용을 알기 어려웠다. 설마 현장에선 영어가 통하려니 했으나 이런, 공식 행사자료집은 물론 전시현장의 안내판도 모두 프랑스어뿐이었다. 행사 관계자들에게 이유를 물어봤지만 ‘미안한데 우리는 원래 그래’란 표정으로 바라볼 뿐, 시원한 답을 듣기 어려웠다. 행사 내내 휴대전화로 프랑스어 사전을 검색하며 투덜댔다. 이게 무슨 국제페스티벌이야?

제40회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포스터. 지난해 그랑프리 수상자인 장 클로드 드니의 그림이다.

사실 앙굴렘을 찾아오는 관객의 약 5%만이 비프랑스어권 국가에서 온 이들이라 한다. 최고의 만화에 시상하는 ‘앙굴렘 그랑프리’는 일본·한국 등 전 세계 만화를 대상으로 하지만, ‘프랑스어판이 출간된 작품’에 한정된다. 하지만 이런 실용적인 이유가 전부는 아닐 터다. (어렵게 한국말로 번역해 읽은) 자료집 내 프랑크 봉두 조직위원장의 글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앙굴렘 페스티벌은 프랑스어권의 창작품을 널리 전파하며, 프랑스를 국제교류의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한 행사다.”

실제 ‘아스테릭스’라는 세계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낸 프랑스 사람들의 자국 만화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대륙별로 봤을 때 세계에서 가장 큰 만화시장은 유럽(45억7000만 달러·2010년 기준)이며, 그중 프랑스(9억2800만 달러)는 독일(9억5500만 달러)보다 조금 작다. 하지만 독일 만화시장이 최근 20년 새 일본만화에 거의 잠식된 것과 달리, 프랑스는 자국 만화의 비율을 약 60% 정도로 꾸준히 유지해 가고 있다.

나 같은 이들의 불만 때문에 앙굴렘페스티벌 조직위 내부에서도 행사의 ‘국제화’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한다. 하지만 40년간 지켜온 원칙을 단번에 바꿀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아 보인다. 앙굴렘을 즐기려면 프랑스어를 공부해라? 한편으론 부럽고 한편으론 얄미운 만화강국의 자신감이다.


이영희 문화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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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54

지난해 연말의 일이다. 중국 공산당의 군기(軍紀)반장 역할을 맡게 된 왕치산(王岐山) 정치국 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전문가 좌담회를 소집했다. 주제는 반부패(反腐敗).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한데 왕치산이 갑자기 책 한 권씩을 돌리기 시작했다. "지금 많은 이들이 포스트 자본주의 시대 책을 보는데 그 이전 시기의 것도 봐야 한다”는 말과 함께. 책을 받은 전문가들은 다소 놀랐다.

이제까지 중국에서 잘나가는 책은 대부분 중화(中華)의 영광을 다룬 것들로 대당제국(大唐帝國)이나 대청제국(大淸帝國) 등을 소재로 한 게 많았다. 그러나 이번 책은 부상이 아닌 쇠망(衰亡)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도 중국에서 멀리 떨어진 프랑스 이야기인 데다 시기 또한 200여 년 전의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이 1856년에 펴낸 『앙시앵 레짐(舊體制)과 프랑스혁명』이다.

1789년의 프랑스혁명을 분석한 이 책은 토크빌의 역작이다. 하나 중국에선 프랑스 연구자들 사이에서나 읽혀질까, 대중적인 서적은 아니었다. 그런 책을 왕치산이 일독을 권한 이유는 무얼까.

이 책에서 강조된 ‘토크빌의 역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사 교과서는 흔히 독재자의 폭정이나 부패가 극에 달해 민중의 삶이 도탄에 빠질 때 혁명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토크빌은 ‘혁명이 발생하는 건 상황이 가장 나쁠 때가 아니라 상황이 개선될 때이며 특히 물질적 조건이 개선되는 시기’라고 분석했다. 중국 지도부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의 상황이 프랑스혁명 전야와 닮아 있다는 위기의식이다. 지금 중국 인민의 생활 수준은 1949년 건국 이래 가장 높다. 지난해 중국의 1인당 GDP는 6200달러를 기록했다. 광둥(廣東)성 선전(深?)의 경우엔 2만 달러로 한국에 가깝다.

그러나 현재 중국 사회에 대한 인민의 불만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중국에선 50인 이상 모이는 집단 시위가 매일 500건 이상 발생한다. 강제 철거 반발, 부패 관리 척결, 정치 개혁 요구 등 시위의 이유는 참으로 다양하다.

토크빌은 ‘일부 폐단이 시정될 경우 아직 시정되지 않은 문제는 더욱 참기 힘든 것으로 보이게 된다’고 했다. 실제로 중국 인민의 삶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됐지만 요구는 더욱 커지는 추세다. 배가 고플 때는 배고픔에서 벗어나려는 한 가지 고민밖에 없지만 배가 부르고 나면 더 많은 번뇌가 뒤따르는 법이다.

중국 경제학계의 거두 우징롄(吳敬璉) 박사는 중국의 “경제사회 모순이 거의 임계점에 다다랐다”고 말한다. 싱가포르국립대학의 중국정치 전문가 정융녠(鄭永年) 교수도 중국은 “개혁하지 않으면 혁명을 당할 것(不改革就是被革命)”이라고 경고한다.

중국의 지난 20세기는 혁명의 역사였다. 청조(淸朝)를 무너뜨린 신해(辛亥)혁명과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한 공산혁명, 또 건국 이후엔 대약진(大躍進)운동과 문화대혁명 등 혁명과도 같은 사회운동의 연속이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이후엔 혁명의 깃발이 공산당의 수중에서 지식인과 학생의 손으로 넘어갔다. 1989년의 천안문 사태, 노벨상 수상자 류샤오보(劉曉波)가 주도한 ’08 헌장’ 사건, 색깔혁명의 영향을 받았던 재스민(茉莉花)운동 등.

청말(淸末)의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는 중국에서 혁명은 다반사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 백성이 저항하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노동을 거부하는 것, 다른 하나는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타성(他姓)에 의한 왕조 교체를 예사롭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역성(易姓)혁명은 실패하면 도적이 되지만 성공하면 황제가 된다. 이에 따라 오직 강한 자만이 존경을 받고 그 외의 것은 중요치 않다. 결국 중국에는 반란이 그치지 않아 중국의 수천 년 역사는 진한 피로 쓰이게 됐다고 량치차오는 말했다.

바깥에서 볼 때 현재 한창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혁명적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국의 위정자들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중국의 성장(省長)급 이상 고위 관료들에겐 모두 토크빌의 책을 읽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대개 혁명의 도화선은 무거운 세금이다. 세계 4대 혁명 중 러시아혁명을 제외한 영국혁명과 미국혁명, 프랑스혁명 등이 모두 세금 문제에서 비롯됐다. 그래서인지 차기 총리가 확실한 리커창(李克强)의 정책 초점이 감세에 맞춰져 있다고 중국 전문가들은 말한다.

주요 대상은 소미(小微)기업이다. 소미기업은 중국에서 근년 들어 출현한 개념이다. 중소기업보다 작은 개념으로 소형기업, 미형기업, 가내수공업 등을 망라한다.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소미기업의 세 부담을 덜어줘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취지다.

이런 조치는 박근혜 당선인이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손톱 밑 가시’를 뽑는 일을 하겠다는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새로 출범하는 한·중의 정권 모두 중소기업을 키워 민생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럼 5년 후 결과는 어떻게 될까. 문제의식이 비슷하니 결과는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가려질 것이다. 실천은 굳센 의지가 이끈다. 이 점에선 중국이 우리보다 우위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중국의 위정자들이 개혁에 실패하면 혁명을 당할 것이란 절박감으로 무장돼 있기 때문이다. 때론 중국에서 배울 필요가 있겠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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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52

미국에서 가본 곳 중 미국의 힘을 가장 느낀 장소를 고르라면 항공우주국(NASA) 케네디 우주센터를 들고 싶다. 1960년대 아폴로 우주선을 쏘아 올려 달 탐사를 주도한 역사의 현장. 지금은 2025년을 목표로 인간의 화성 착륙을 지휘하는 꿈의 공장. 우주센터는 미국 우주개발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녹아 있는 곳이다. 이곳엔 실제 달을 다녀온 로켓이 전시돼 있고, 직접 로켓 발사대 위에 올라가 볼 수도 있다. 한 달 전 이곳을 방문했는데 나로호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있다. 우주개발은 속도전이나 벼락치기가 불가능한 영역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케네디 우주센터는 교육의 현장이기도 하다. 로켓 발사 체험을 하는 시설도 있고, 실제 우주인과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우주 도전사를 그린 영화를 볼 땐 외국인인 기자도 절로 감격스러워질 정도였다. 옆을 보니 벅차오르는 애국심에 눈을 훔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직도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육성이 귀에 아른거린다. “우린 10년 내에 달에 갈 겁니다. 그것이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 미국만이 해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매년 2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센터를 찾아 우주 비상의 꿈을 간직하고 간다. 이들은 대부분 열렬한 우주탐사 지지자가 된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아픔의 역사까지도 성공과 함께 취급된다는 점이다. 우주센터엔 실패와 시행착오의 기록도 숨기지 않고 전시돼 있다. 지난 1일 이곳에선 컬럼비아호 사고 10주년을 기억하는 행사가 성대히 열렸다.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는 2003년 지구 귀환 도중 폭발해 승무원 7명이 모두 사망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동료들은 “NASA 직원 모두 다시는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다”며 “실패를 이기려는 도전이 우주 강국 미국의 밑거름이 됐다”고 회고했다.

이런 우주센터지만 지난달 로켓 발사대 하나를 매물로 내놨다. 비행기 조립공장과 관제센터 일부도 팔겠다고 선언했다. 책상과 의자 등 집기까지 판매 리스트에 올렸다. 경제 위기에 따른 예산 감축 때문이다. 우주개발은 계속해야 하고 돈은 없으니 이렇게라도 벌충하려는 것이다. 막대한 돈이 드는 우주개발의 양면성을 잘 보여준다.

나로호 발사 성공으로 어느 때보다 국민적 자긍심이 높아졌지만 앞으로 갈 길은 더 멀고 험난하다. 안타깝게도 마음이 급하다고 질러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우주기술은 그 나라 국가경쟁력과 과학기술의 총화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우주산업이 창출하는 신기술과 경제 파급효과는 놓칠 수 없는 영역이다. 우주강국은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수많은 눈물과 실패의 역사를 딛고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것이다. 힘든 여정을 이겨내기 위해선 모두가 꿈을 공유해야 한다. 미 우주센터는 그 진리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상 복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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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51

중소자영업자 600만 명. 우리나라 농업인구 300만 명의 두 배 규모다. 요즘 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정부와 지방 자치단체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매년 국민 세금 1조원 이상이 투입되고, 그 규모는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정작 자영업자가 살 만해졌다는 소리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1조원을 600만 명이 나눠 가진다고 해도 고작 17만원꼴이다. 예산을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닌 것 같다. 가맹점 수수료를 내리고,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 규제가 입법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자영업 장사가 갑자기 잘될 거라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필자는 34년 사회 생활을 하면서 유통 분야에서만 30여 년 일했다. 또 신용카드사에 몸담고 있으면서 국내 220만 가맹점의 창업-폐업 실태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 약자 보호를 위한 시장 합리화 정책이 필요하지만 현재와 같은 정부 주도의 지원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처방약이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본질에서 답을 찾아보자. 어떻게 해야 장사로 잘살 수 있을까. 가장 밑바닥의 경쟁력은 바로 상인의 도(道)라고 본다. 전통적인 산업 구분이 사농공상(士農工商)이다. 정통 경제관료로 칭할 수 있는 사는 경제 개발 초기는 물론 이후의 발전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농은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을 통해 부족하나마 어느 정도 기반을 갖췄다. 공은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대기업이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성공의 바탕엔 모두 의식 개혁이 자리 잡고 있다. 사의 충성심, 농의 애향심, 공의 경쟁심이다.

이제 상이 남았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 개발을 이룬 데엔 불같은 열정과 강철 같은 집념, 눈물겨운 희생이 큰 역할을 했다. 상도 이제 철저히 본연의 도를 찾아야 한다. 고객에 대한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자식에게 물려주고, 자식에게도 상인의 길을 걷도록 ‘강추’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 상이 가맹점 수수료나 골목상권 살리기에 의존해서 생존 전략을 짜면 안 된다. 뼛속까지 상인이 돼야, ‘장사꾼’이 돼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도 자금 지원이나 대기업 진출 규제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상인의 의식 개혁을 전담하는 상인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가나안 농군학교 같은 상인학교 말이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살기 바쁜데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상인이다’라는 자부심이 없이는 어떤 지원도 낭비가 될 소지가 크다. 자영업자 스스로 사농공상이 아니라 상공농사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

인식이 바뀌어 절실해지면 제대로 장사하는 방법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과학적이고 전문적이어야 성공할 수 있다. 손님이 왕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에 충실해야 한다. 고객이 누군지를 먼저 파악하고, 그 고객이 원하는 것이 뭔지 알아서 맞춰야 한다. 손님이 나를 좋아하고 믿어야 내 물건과 서비스를 살 것이다. 성공한 자영업자에겐 공통점이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차별화된 맛과 서비스, 입소문 마케팅, 스토리텔링, 고객 분석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장사에도 열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주변엔 아직도 천편일률적인 메뉴, 점심 시간이니 가급적 주문을 통일해 달라고 강요하는 종업원, 고객과 눈을 마주치지도 않는 계산원이 눈에 자주 띈다. 절절해야 열정이 나오고, 열정에서 창의가 나온다. 장사해서 밥은 먹고산다는 식이라면 옆에 새로운 가게가 들어오면 금방 거덜 난다.

그 다음은 정부의 제대로 된 지원이다. 최근의 자영업 정책은 남의 것을 뺏어주는 측면이 강하다. 중대형 유통사의 골목상권 진입 금지, 프랜차이즈 본사의 가맹점 제도 개선, 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 인하,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우대 등이다. 이런 방식으론 이해 당사자 간 대립이 불가피하고, 자발적인 상생 체계가 가동되기 힘들다. 밀어붙이기보다는 시장 원리가 작동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성공하는 자영업자가 되기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일에 대한 진지한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 일에 대한 보다 과학적 인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여기에 정부의 시의적절한 지원이 더해진다면 자영업 의 성공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여러 어려움에 빠져 있는 자영업자 모두 상인의 도에 기반을 둔 ‘제2의 상업 새마을 운동’을 해보면 어떨까.


이 강 태 BC카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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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49

"30년 전엔 인구 5만명의 가난한 시골이었지만 지금은 1500만명 넘게 모여 사는 대도시가 됐습니다. 이제 도심에 아파트를 사려면 한국 돈으로 10억원은 줘야 합니다." 최근 중국 광둥성 선전(深圳)을 방문했다가 현지 여행 가이드로부터 선전 자랑을 들었다. 그는 "10년 뒤엔 선전뿐 아니라 온 중국이 한국처럼 잘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선전은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아버지인 시중쉰이 개혁·개방을 통해 인민을 잘살게 하자며 덩샤오핑에게 특구(特區) 지정을 건의했던 지역이다. 시진핑은 중국 최고 지도자가 된 뒤 지난해 12월 선전을 방문해 개혁과 경제 발전 지속 의지를 과시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중국 소설가 모옌도 장편 '개구리'에서 선전을 가난한 중국인이 부자의 꿈을 이루는 도시로 그렸다. 소설에서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석탄을 씹어먹던 산둥성 출신의 천비(陳鼻)는 선전에서 전자시계를 도매로 사다가 팔아서 부자가 된다.

선전의 여행 가이드가 그리는 부강한 중국의 꿈은 머지않아 실현될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매년 8~9%를 기록 중인 중국의 성장 속도로 볼 때 2030년이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제1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수천년간 세계의 중심 국가였다가 아편전쟁 이후 잠시 움츠러들었던 중화제국(中華帝國)이 적어도 경제 분야에선 부활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는 부강해진 중국이 주변국들에 어떤 이웃이 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원하든 원치 않든 대국의 길에 들어설 것이고 지금까지 미국이 그랬듯 향후 중국이 추구하는 가치를 국제 질서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제시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질서에 대해 세계인의 동의를 얻기가 '잘사는 중국'이란 목표 달성보다 훨씬 어려워 보인다. 이른바 '베이징 컨센서스'라는 이름으로 지금껏 보여온 중국식 가치들에 세계의 동의를 얻기 힘든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연초 홍콩에서 렁춘잉 신임 행정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겉으로는 렁 장관의 비리를 질타하는 모습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그를 지원한 중국에 대한 홍콩인들의 반감이 깔려 있었다. 지난해에는 중국식 공민교육을 홍콩 초등학생들에게 실시하려다 반발을 사기도 했다.

선전과 홍콩을 오가며 왕자웨이 감독의 1994년 영화 '중경삼림'을 떠올렸다. 영화 속 첫번째 스토리의 주인공은 애인에게 버림받자 유효기간이 얼마 안 남은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모으며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고 한탄한다. 영국과 이별하고 중국이라는 새 애인을 맞게 된 홍콩인들의 당혹감과 불안이 이 영화의 배경이다. 렁춘잉 퇴임 요구 시위와 공민교육 반발 사태는 중국이 세계는커녕 1997년 영국에서 반환된 홍콩인의 마음조차 아직 얻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중국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고 평화와 교린을 추구하는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중국이 동아시아 질서를 주도적으로 확립하길 원한다면 대국에 요구되는 면모부터 먼저 갖춰야 한다.



김태훈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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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49

정치쇄신을 원한다면 정치인들이 좋은 정치를 위해 경쟁하고, 또 좋은 인재들이 정치로 몰려들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한 인센티브를 높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에서 얘기하고 있는 정치쇄신안들은 정치를 하려는 인센티브를 오히려 줄이면서 좋은 정치를 위한 개혁을 하려고 한다. 모순이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워낙 정치인들이 지탄을 받아와 뭔가 정치인들에게 징벌을 가해야 국민들이 만족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국민과 정당, 언론에 오늘날 정치의 책임이 있다. 우리 사회의 각계에서 성공한 인재들이 정계로 들어선 후에는 그곳에서 꽃피지 못하고 좌절해 나오는 것을 우리는 여러 번 보았다. 따라서 지금 우리 사회나 정당 내에서 제공되고 있는 정치인에 대한 전반적 인센티브체계가 그들이 나쁜 정치를 하도록 왜곡되어 있지 않은지, 또한 훌륭하고 깨끗한 인재들을 더 많이 정치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지금의 인센티브체계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모색해 봐야 한다. 열심히 발품 팔고 유권자들에게 귀 기울여 좋은 정책을 발의하면 언론과 국민은 별 주목을 하지 않는 반면 강경투쟁 벌이고, 근거 희박한 사실들을 폭로하며 장관과 공무원에게 호통치면 대문짝만 하게 보도되고 당내 입지와 차기 선거에 유리하게 된다면 누군들 후자의 행동을 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는 경제발전 초기 막대한 금융,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해 산업화와 수출입국에 성공했다. 또한 올림픽 출전선수들에게도 일관되게 강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우리의 국력을 훨씬 뛰어넘는 올림픽 성적을 거둬왔다. 우리가 정치발전을 원한다면 정치에도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물론 이는 물질적 보상뿐만 아니라 명예, 징벌 등이 포함되는 광의의 인센티브체계를 말한다. 그러나 최근 여야 정당에서 거론되고 있는 쇄신안들은 인센티브를 줄이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세비를 30% 깎고, 특혜를 줄이면 더 많은 좋은 인재들이 정치권으로 몰려들고 좋은 정치가 이뤄지는가? 그렇게 하면 얼마나 많은 국가예산이 절감되는가? 아마도 저축은행 하나 구제하는 것의 10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좋은 정치를 만드는 것은 그 어떤 과제보다 국가의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일이다.

국민들을 일시적으로 시원하게 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쇄신방안은 아니다. 좋은 인재들이 정치인의 삶을 지향하고 정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비를 깎고, 특권을 줄이기보다 오히려 지금과 같은 비현실적 정치자금법을 보다 현실적으로 만들어 주고 제대로 의정활동을 하도록 지원해 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돈 많은 사람만이 정치를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쁜 정치에 대한 징벌도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국민과 정당이 담당해야 할 몫이 크다. 선거와 공천이 최대의 징벌 수단이다. 특정 정당의 공천을 받으면 그 지역에서는 묻지마 당선이 되는 한 정치발전은 이루기 어렵다. 공천방식, 당내 고위직을 위한 경쟁과정, 당 운영방식 등 정당혁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과거 우리 사회는 투명한 사회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실질적 보상·유인체계도 투명하지 않았다. 공무원들의, 국회의원들의 보수가 월급봉투만은 아니었다. 대통령이 내려주는 금일봉, 상관들이나 계파 보스들이 내려주는 봉투, 친지나 아는 기업들이 나서는 스폰서그룹이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의 보상·유인체계를 구성했다. 그리고 그것이 인재를 쏠리게 하고 우리 사회를 움직여왔다. 그러나 이런 행위의 본질은 부패와 유착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선진화·투명화되려면 이러한 관행이 근절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런 방향으로 움직여 가고 있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투명한 보상·유인체계를 재조정해 주어 실질적으로 투명하면서도 우리 사회가 여전히 효율적이며 역동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나타났듯이 공무원의 보수체계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소득을 보조할 필요가 있으면 봉급을 올려주는 것이 옳다. 특정업무경비라는 모호한 항목을 만들어 공무원들에게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게 하며 그 돈을 사적 용도로 쓰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쁜 정치와 정치인에 대해서는 제재와 징벌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 해서는 안 된다. 좋은 정치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단순히 정치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지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보상·유인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개혁이고 혁신이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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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45

복잡계 물리학의 산실인 미국 샌타페이연구소 고프리 웨스트 박사는 흥미로운 질문 하나를 세상에 던진다. 도시의 인구수가 늘어날수록 그 도시의 창조적 역량도 함께 늘어날까? 인구가 늘어날수록 창의적인 사람이 등장할 확률도 높아지니 비례할 듯싶지만, 창작열이 왕성한 소도시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측정해 보지 않고 어찌 답할 수 있으랴. 그는 한 도시에서 창작되는 책의 수, 예술가들의 작품 수, 기업의 연구개발비, 특허, 혁신적인 발명품 수 등 온갖 창조적인 결과물들을 모두 합쳐 한 도시의 창조 역량을 수치화했다. 그리고 그것이 도시의 크기와 상관관계가 있는지 전 세계 12개 나라에서 살펴봤다.

결과는 놀라웠다. 도시가 2배 더 크면 창조적 역량은 2.2배 더 컸다. 심지어 뉴욕이나 런던, 도쿄처럼 10배 더 큰 도시들은 그 창조적 역량이 17배 더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한 도시의 창조역량은 인구가 늘어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는 얘기다.

고프리 웨스트 박사의 연구는 ‘아이를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는 우리 옛 속담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최초의 연구다. 그렇다면 왜 인구가 늘어날수록 도시의 창조적 역량은 급속도로 증가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세상과 고립된 개인의 능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소통’으로 얻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구수가 늘어날수록 소통의 경우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 대도시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나 창의적인 생각은 비슷한 분야 사람이 아닌, 전혀 다른 분야 사람들과의 지적 교류에서 만들어진다고 하버드대 경제학과 에드워드 글래저 교수는 주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실리콘 밸리다.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샌프란시스코를 잇는 이곳엔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포함해 수많은 벤처기업이 자리한다. 날마다 새로운 혁신이 만들어지는 이곳에선 옆 회사의 혁신적인 발명이 내 회사에도 탁월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혁신의 실마리는 늘 엉뚱한 곳에 있다.

특히나 실리콘 밸리는 이질적인 지적 전통이 충돌하는 곳이다. 황금광 시대에는 미국 노동의 역사가 이곳에서 시작됐고, 정치적으로는 매우 진보적이어서 아직도 히피 문화가 남아 있다. 예술가들이 넘쳐나는 예술 도시이자, 게이 문화가 만연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창업 젊은이들이 들어가니, 이질적인 문화와 충돌하고 때론 결합하면서 새로운 혁신문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가정엔 ‘차고’가 하나씩 다들 있지만 차고에서 창업을 하는 문화가 발달한 곳은 실리콘 밸리가 시초다. 예술가들이 아틀리에에서 주변에 있는 잡동사니들로 작품을 만들었던 브리콜라주(Bricolage) 방식으로 과학기술자들이 이른바 ‘차고 혁신(Garage Innovation)’이란 걸 이루게 됐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우리가 잠시 생각해 봐야 할 질문은 ‘나는 과연 혁신의 공간에 살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나는 과연 혁신의 실마리가 도처에 산재해 있는 공간에 살고 있는가? 새로운 생각들이 끊임없이 유입되고, 다른 분야 사람들과 지적인 대화를 주고받고,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사건들을 모니터링할 안테나를 가지고 있는가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와 정치적인 세계관이 다른 사람, 경제적 계급이 다른 사람, 미적 취향이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점점 불편해진다. 어렸을 땐 친구의 가정 형편이 우정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젊은 시절엔 나와 전혀 다른 역사관을 가진 친구와 논쟁하는 걸 즐겼 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경제적 형편이 다른 친구와는 점점 속내를 털어놓기 불편하고, 정치적 세계관이 다르면 쉽게 대화가 싸움으로 번진다.

세계관, 경험, 지식의 범주, 관심사가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과의 지적인 대화는 내 삶을 더 풍성하게 하고, 나의 세계를 확장시켜 준다. 그러니 나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이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오늘 내가 고민하는 질문에 대한 혁신적인 답을 얻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각별히 노력하지 않으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세상에 갇히게 된다.

 나의 뇌에선 날마다 실리콘 밸리 같은 지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가? 도시에 살고 있지만 내 삶의 영역은 혹시 작은 마을 수준은 아닐까 내성해 볼 일이다. 오늘은 점심 같이 먹을 친구를 바꿔 보시길.


 ◆필자는 KAIST 물리학 박사로 예일대 의대 정신과 박사후연구원과 컬럼비아 의대 정신과 조교수, 다보스포럼 2009 차세대 글로벌 리더였다. 『과학콘서트』등의 저서가 있다.


정재승 KAIST 교수·바이오및뇌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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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