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와 자미두수에 통달한 젊은 친구가 있다. 이 친구가 말하기를 운명이란 결정돼 있는 게 아니라 본인의 성향과 태도가 만들어가는 것이란다.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은 인생도 그 방향으로 풀리고, 매사 근심하고 비관적인 사람은 또 인생이 그 방향으로 풀린단다. 운명이란 이렇게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 대한민국은 인구 5000만 명 시대를 열었다. 6년 전 추계에선 이 숫자에 우리나라는 도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극적인 반전에 이골이 난 우리 국민은 드디어 인구 문제에서도 ‘반전 드라마’를 써냈다. 얼마나 경사스러운 일인가. 그런데 기쁨의 말은 짧고, 근심과 우려의 소리는 길다. 일부 매체는 인구 재앙을 경고하기도 한다. 개인의 운명도 그럴진대 나라의 좋은 일 앞에서 걱정하는 한숨 소리가 기니 불길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바로 우리가 당면한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 때문이니 딱히 책할 수도 없다. 게다가 우리와 똑같은 길을 앞서 걸었던 옆 나라 일본의 우울한 현실이 눈앞에 보이니 가위눌리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처방은 하나다. 고령인구 증가는 예방할 수 없으니 저출산을 해소하는 것뿐. 이에 정부가 ‘낳기만 하면 키워주겠다’며 꼬인다. 하지만 출산율의 극적인 반전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기르기 어렵고, 교육시키기 어렵고, 경쟁이 치열해 살아가기 어렵다는 이유를 든다. 그러면 언제는 우리나라가 극성맞지 않았으며, 이 문제가 쉬웠던 적이 있었던가.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을 느닷없이 원인이라 들이대는 건 좀 그렇다. 이유는 아이 때문이 아니라 여성들이 변했기 때문이다.
요즘 여성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현모양처’에서 찾으려 하지 않는다. 사회에서 자기 이름으로 독립해 살아가는 ‘알파우먼’을 지향하고, 그렇게 교육받고 자란다. 사회 시스템도 양성평등을 향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회생활의 ‘스텝’을 꼬이게 하는 게 바로 아이 문제다. 아직도 여성은 아이가 있으면 일이냐 아이냐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이 온다.
내 경우엔 아이가 서너 살 때, 우리 할머니가 아이 봐줄 다른 사람을 구하라고 한 적이 있다. 그 순간 내 결정은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거였다. ‘언론 창달’이니 ‘사회 정의 실현’이니 하는 꿈은 아이에게 닥칠지 모를 불안한 현실보다 크지 않았다. 결국 그때 할머니가 물러서셨지만, 이렇게 여자는 엄마가 되면 아이를 선택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사회에 나오려면 경력 단절 때문에 힘들고, 육아휴직 쓰고 나면 동료들보다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 아이 맡기고 일하러 나가는 엄마들을 여전히 ‘나쁜 엄마’로 보는 시선 때문에 주눅이 든다.
그러니 알파우먼을 지향하는 여성에게 엄마가 될 것인가, 일을 할 것인가를 선택하라면 아예 사전에 고민을 차단하고 일을 선택하는 것이 영리한 행동이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늘리고, 일부 보육부담을 덜어주는 모성보호 정책 정도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에 최근엔 나라마다 ‘일·가정 양립 정책’을 추진한다. 그 핵심은 바로 ‘아빠의 육아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부터 전국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아버지교육을 실시하고, 100인의 아빠단을 만들고, 아빠육아정보를 배포하는 등의 사업을 시작했다. 또 이 계획에 기업도 참여시키려고 나섰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턱도 없다는 건 이미 선진국에서 입증했다. 스웨덴도 1974년부터 급여의 90%를 주며 아빠 육아휴직을 권했으나 별 진전이 없어 95년부터 강제휴직을 실시했다. 그 후 남녀의 사회적 육아부담이 같아지면서 출산율이 점차 늘어 지금 1.95명까지 회복됐다는 것이다. 아이로 인한 육아휴직·경력단절 등이 남녀 공히 같아 여성만 특별히 사회적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기고, 사회가 이 비용을 분담할 때까지 ‘과격하게’ 추진해야만 저출산은 극복될 거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노력하고 낙관적으로 생각한다면 또 한번의 반전 드라마를 쓰며 우리 미래도 그런 방향으로 풀리지 않을까.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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