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누가 나의 삶에 가장 큰 도움을 주었는가를 고민하다 보니 우선 ‘도움’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를 도와준 사람은 참 많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돈을 주었고, 어떤 사람은 편의를 봐 주었고, 어떤 사람은 위로를 주었다. 그 많은 도움 중 어떤 도움을 준 이가 나에게 가장 크게 와 닿았는가를 생각하고 내가 찾은 답은 그 누구보다 바로 내가 ‘올바른 생각’을 하게 도와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다른 모든 도움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두 일시적인 약효를 지닌 것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그 약효가 소진되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나로 하여금 올바른 생각을 하도록 해 준 도움은 달랐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나의 삶을 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고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었고 나 자신을 더 편안하게 해 주었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가장 많은 행복을 안겨준 도움이었다.
누가 나로 하여금 올바른 생각을 하게 해 준 사람일까. 물론 부모님과 선생님들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나에게 특별한 기억을 남겨준 분이 있다. 그분은 내가 대학에 다닐 때 만난 모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셨다(나는 차라리 그분을 익명으로 남겨드리고 싶다). 나의 대학 생활은 참 많은 고통과 방황의 시기였다. 고등학교 때의 넘치던 자신감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든 것에 대해 회의를 품기 시작했고, 특히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가 컸다. 열등감도 생겼고 죄의식도 많았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자신이 없었고 여성관계도 참담한 실패의 연속이었다. 경제적 고통도 심했고 마음이 불편하니 육체적 건강도 함께 쇠락했다. 어디에 나의 삶, 행동의 기준을 잡아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었다.
이때 만난 분이 바로 그 교수님이었다. 어느 날 한 선배와의 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뵙게 된 그분은 막 외국 유학에서 돌아온, 젊음과 패기가 넘치는 동시에 성숙하고 진지한 분이었다. 심리학을 전공하셨다는 그분에게 내가 모임의 파장 무렵에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때 그분이 준 답은 나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고 나의 삶의 궤적을 바로잡아 주었다. 내가 던진 질문은 “사람은 어떻게 하면 방황 없이 살 수 있습니까”였고, 그분의 답은 “사람은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었다. 매일 가정 예배를 보는 가정에서 자라나 온갖 도덕과 규율로 자신을 꽁꽁 묶고 있었다. 그러던 나에게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 이 말은 문자 그대로 굉음을 울리며 내 마음 속에 던져졌다.
그 울림의 여운을 잊지 못한 나는 몇 번 더 그분을 찾아뵈었고 많은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분의 모든 이야기는 한가지로 귀결됐다. ‘사람은 자기답게 살아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 그 마음의 소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자기답게 사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었다.
그때 이후로 방황할 때마다, 어떡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일 때마다 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점차 그것은 나의 습관이 되어갔다. 그러면서 나는 ‘나’라는 존재가 점점 더 명확하게 구축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방황이 줄어들었고 대신 자존감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내 나이 육십이 넘어 황혼에 접어든 지금, 내 삶 전체를 되돌아 볼 때, 나는 그분의 얘기가 옳았다고 믿게 되었다.
사람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때 비로소 자존감을 갖게 되고 또 자기답게 살 때 바로 온전한 인격체가 된다고 나는 믿는다. 사람이 논리와 계율의 노예가 될 때 그 사람은 자기다움을 잃어버린다. 사람의 방황이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때다.
나는 요즘 감히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순간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내 마음 속에 느껴져 오는 소리, 그 느낌뿐이다”라고. 나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 준 그 교수님은 그런 면에서 나의 은인이다.
전성철 IGM 세계경영연구원 회장
'교양있는삶 > 사설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고/조동성]“이제는 문화라네, 바보들아!” (0) | 2012.08.15 |
---|---|
[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 ‘동안열풍’ (0) | 2012.08.14 |
[경제 view] ‘20-50 클럽’의 품격 (0) | 2012.08.14 |
[횡설수설/민동용]말(言)의 인플레이션 (0) | 2012.08.14 |
[@뉴스룸/홍석민]‘공짜 전화 논쟁’을 보는 복잡한 시각 (0) | 2012.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