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경제력 없이 홀로 설 수는 없다. 먹을거리를 제공해 주는 경제야말로 우리 삶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를 간파한 빌 클린턴은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이제는 경제라네, 바보들아!(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구호를 내세워 당시 부시 대통령을 이겼다.
경제면에서 한국은 모범생이다. 한국은 1인당 소득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에서 2만 달러를 넘는 소득과 5000만 명이 넘는 국민을 가진 이른바 ‘20-50클럽’을 구성하는 7대 선진국 중 하나로 올라섰다. 경제적 목표 달성 이후 사람들은 ‘행복’이라는 삶의 목적을 추구하게 된다. 행복은 정신적인 삶의 가치이며, 이를 구현하는 것이 문화다.
21세기는 우리에게 세계 문화를 이끌고 갈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 혹자는 작년 여름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 콘서트를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우리가 세계문화의 중심에 서게 될까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른다. 그런 분들에게 몇 가지 퀴즈를 내본다.
지난해 7월 제14회 차이콥스키콩쿠르에서 남녀 성악 동반 1위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는? 오페라단이 제일 많은(100여 개) 나라는? 뮤지컬을 가장 많이(300여 편) 제작하는 나라는? 문학잡지가 제일 많이(300여 종) 출판되는 나라는? 위 질문의 정답은 모두 ‘한국’이다. 이런 기반 위에 ‘한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산업이든 경쟁력을 갖추려면 9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이 중 4개는 물적 요소이고, 4개는 인적 요소이며, 나머지 하나는 전쟁, 재앙 같은 예외적 현상이다. 물적 요소로는 투입요소, 산업 환경, 관련 산업과 지원 산업, 시장 조건이 있고 인적 요소로는 근로자, 비전을 가진 정치지도자와 행정관료, 창업자, 전문가집단이 있다. 이 중 한국의 문화산업에 가장 필요한 요소는 투입요소, 정치지도자와 행정관료, 창업자다.
투입요소로 가장 중요한 자본은 정부예산이다. 올해 정부예산 중 문화체육관광부에 배정된 예산은 1.1%다. 제조업의 고용유발효과가 투자 10억 원당 7.98명인데 비해 문화 콘텐츠 산업은 12.11명, 관광산업은 15.50명이라는 통계는 문화에 대한 정부예산 비중이 높을수록 일자리 창출을 통해 한국의 복지 수준, 나아가 국가경쟁력이 제고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불어 정치지도자와 행정관료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투철한 철학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문화산업의 창업자는 미래에 대한 예측과 수요 분석을 통해 정밀한 투자를 하는 투자자가 맡아야 한다. 문화산업에 대한 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문화벤처기업만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을 코스닥에 설치하자.
2003년 영국의 더타임스는 우리 국민의 평균 IQ가 106으로 세계 185개 국가 중 홍콩에 이어 2등, 국가 기준으로는 1등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을 천재들의 나라라고 부를 만하다. 그래서 문화가 미래를 이끄는 동력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았나 보다. 세계인의 정신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100점짜리 국가, 그래서 ‘20-50-100클럽’에 처음 가입하는 문화선진국이 돼 보면 어떨까. 세계를 향해서 높이 외쳐보자. “이제는 문화라네, 바보들아!”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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