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포괄수가제가 무엇일까? 일반 국민들은 이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우리 사회의 정서상 국민들은 이 제도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의사들이 반대하고 정부가 강행한다면 '국민들에게 좋은 제도'라고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국민정서에는 의사집단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부터 대한의사협회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전문가로서의 의무를 다하며 의사의 이익보다는 국민전체의 이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포괄수가제는 필연적으로 그 피해가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제도라는 것이 의협의 입장이다. 만일 한 산모가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입원한 후 퇴원했을 경우를 가정해 보자. 포괄수가제가 강제 시행될 7월 1일 이후부터는 의사는 이미 정해진 치료비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수술 후 통증을 없애기 위한 무통주사를 맞고 싶어도 맞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주사를 맞고 따로 돈을 내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수술 후 통증을 겪어본 분들은 그 아픔을 잘 알 것이다.) 이때 의사는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첫째, 산모와 그 보호자에게 "포괄수가제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 때문에 무통주사를 놓을 수 없다"고 설명하고 산모의 호소를 무시하는 방법, 둘째 정말 산모의 통증이 너무 심해서 의사의 양심상 어쩔 수 없이 무통주사를 공짜로 놓아주는 방법, 세 번째, 편법으로 일단 퇴원을 시킨 후 바로 재입원시켜 무통주사를 놓는 방법이다. (제왕절개 후 며칠은 걷는 것조차 힘든데, 퇴원수속하고 나갔다가 다른 병명으로 다시 수속하고 입원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 포괄수가제는 같은 병명으로 의사에게 치료를 받는 경우 무조건 같은 돈을 내는 제도이다. 물론 개인의원에서 치료받는 경우와 그 규모가 조금 큰 병원에서 치료받는 경우는 수가의 차이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일단 가격을 정하고 그것에 따르는 치료의 내용을 맞춘다는 것이다. 국민은 능력과 상황에 따라 자신이 치료의 질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조금 비싸더라도 더 좋은 치료를 원하는 국민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포괄수가제는 의료의 질을 획일적으로 하향 평준화시키는 제도이다. 이동통신을 이용할 때, 본인의 경제적인 능력과 그 용도에 따라 3G를 사용할지, LTE를 사용할지는 각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다. 이를 국가가 하나로 강제 지정한다면 상당한 반발과 저항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산모라면 혹은 보호자라면 어떤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과연 의사들은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할까. 또한 이렇게 미리 비용을 정해놓은 산부인과의원에서 정말 영양가 있는 미역국을 먹을 수 있을까. 하지만 100번 양보해서 이쯤은 참을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의료재료의 경우 그 심각성은 더하다. 수술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 몸 속에 직접 들어가는 봉합사를 포함한 의료재료의 경우 싼 것을 쓸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 경우 수술 후 상처가 곪는다든지 하는 합병증의 가능성을 분명히 증가시킬 수 있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국민들의 평균 수명이 증가하고 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의료의 비용 역시 상승하고 있고 정부는 그 의료비용을 통제하기 위해 포괄수가제를 시행하려는 것이다. 의협 역시 이러한 비용절감이 불필요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의료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비용통제는 필요하다. 다만 준비가 부족한, 강제 시행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미 세계 각국에서도 이러한 포괄수가제가 시행되고 있고, 제도의 긍정적인 면도 충분히 있다. 그러나 이미 이 제도를 시행한 여러 나라들은 의료의 근간이 국가 주도적이고, 의료행위에 대한 적정한 수가체계가 있다. 또한 이러한 나라들은 그 준비기간이 충분했으며 수 십 년에 걸쳐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해 온 나라들이다. 선 시행 후 보완은 대책이 될 수 없다. 제도의 미비로 인한 생명의 희생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원가의 70%밖에 되지 않는 의료수가에 대한 현실화, 정확한 질병분류체계 확립, 사후 적정성 평가에 대한 제도적 장치 등이 마련되지 않은 포괄수가제는 절대 성급히 강제 시행되어서는 안 된다.
송형곤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1206/h201206122102489156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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