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15. 18:53

외환위기 극복해야 했던 DJ처럼 차기 대통령, 심각한 문제 당면
세계 경제에 산사태 몰려올 것… 성장동력 불씨 살려 반등 대비
경제민주화 수용 범위 결정을… 대기업 현금은 투자로 돌려야


분배와 형평을 중시하는 '대중 참여 경제론'의 이상을 품고 1998년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이 처음 마주한 진실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금고에 외화가 불과 39억달러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자연히 그에겐 외환위기 극복이 최우선 과제가 됐다. 침몰해가는 '한국호(號)'를 난파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그는 평생에 걸쳐 정립한 '대중 참여 경제론'을 일정 부분 포기한 채 IMF가 내세운 요구 조건에 순응하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 정책을 폈다. 그가 했던 선택 중에는 정말 피하고 싶었을 신자유주의적 선택도 포함돼 있었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의 새로운 요구를 안고 가야 한다는 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 그가 대통령이 돼 처음 마주할 진실 역시 그때 못지않게 심각할 것이다. 그 진실이란 세계 경제에 산사태가 몰려온다는 점이다. 그래서 위기 극복이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는 점도 김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 때로는 정말 피하고 싶을 선택을 해야 한다는 점도 비슷할 것이다.

IMF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는 뒤이어 닥친 위기들에 상대적으로 둔감해졌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위기가 아니고, 5년에 걸쳐 위기가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위기 불감증에 일조한다. 우리는 외환위기를 2년 만에 졸업할 수 있었지만 이번 위기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외환위기가 주변부의 위기였다면,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와 이번 유럽 재정위기는 자본주의 심장부의 위기다. 심장부의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세계 경제질서는 근본적으로 재편될 것이고, 5~10년 동안 세계 경제에 대혼란기가 닥칠 수 있다.

유럽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리스 스페인의 위기를 간신히 땜질로 봉합했을 뿐이다. 유럽의 문제는 보다 근본적이며, 유로존에서 문제국가들이 떨어져 나가는 일대 정치경제적 대혼란을 겪은 뒤에야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할지 모른다. 유럽 사태가 간신히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그다음에는 미국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될 것이다. 미국 역시 리먼 쇼크의 대폭발을 국가 재정과 중앙은행의 발권력으로 간신히 억눌러놓은 데 불과하다. 언젠가 수영장에 물이 빠지면 벌거벗고 헤엄치는 미국의 적나라한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앞으로 닥칠 이런 5~10년의 '마(魔)의 계곡'을 건너 최후의 승자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참고 견디며 일단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성장동력의 불씨를 살려 다음번 반등(反騰)에 대비하는 것이다. 인구 구조의 급격한 노령화로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청년층과 노년층의 실업률이 함께 치솟는 상황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새 대통령이 부딪칠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경제민주화의 요구가 봇물처럼 끓어오르는 지금, 그는 공동체와 개인의 갈등을 조율해야 할 과제를 동시에 안게 될 것이다. 그동안 양극화와 경기부진으로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계층이 너무 많아졌고, 이들 개인의 '배당 청구권'을 사회가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 그 요구를 어느 선에서 수용할지가 한국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지금은 단기적으로 성장률이 떨어진다고 호들갑 떨 상황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산사태에 대비하는 일이다. 낙오자 대책을 만들고 기업과 공동체의 대타협을 추진하는 한편으로 기업을 다독여 성장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살려야 한다. 우리 경제가 버틸 수 있는 힘의 원천 중 하나는 대기업들이 갖고 있는 막대한 현금이며, 그 돈을 투자로 돌리게 해야 한다. 장기전에는 맷집이 최대의 덕목이다. 그렇게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이미 '20-50' 클럽에 가입한 한국은 세계 경제질서의 재편기에 큰 기회를 잡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지훈 경제부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6/26/2012062603005.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