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된다"라는 말은 한국 사회의 정신적 태도를 가장 선명하게 규정하는 말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 대담한 정신은 근대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아 왔고,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하루 종일 서성이고 있다. 우리의 학교와 직장은 여전히 "하면 된다"의 구호로 가득하다. 그 네 글자는 오로지 한국인의 것이다. 어떤 다른 외국어로도 깔끔하게 번역될 수 없고 어떤 다른 외국인들도 그것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뜻을 잘 알고 있다. 그 말은 강한 의지를 가지고 마음을 가다듬어 성실하게 어떤 일에 임하면 세상에 해내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인간 의지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웅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세상의 어느 낙관주의자도 이처럼 확고한 태도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했다. 낙관과 긍정은 우리에게 힘을 불어 넣어준다. 고마운 일이다. 용기를 잃고 낙담할 때 실의에 빠져서 기운을 차리기 어려울 때 옆에서 어떤 이가 진심으로 그 말을 속삭여 준다면 다시 힘을 얻고 일어서려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없지 않다. 이 조건문은, 만일에 의도한대로 세상일이 잘 굴러가지 않았다면 그것은 당신이 진정으로 그것을 욕구하고 그것의 성취를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다는 질책을, 논리적으로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면 된다"라는 한국적 정신의 불편한 점이다. 세상에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일은 너무도 많다. "하면 된다"가 아니고 "해도 잘 안 된다"는 체험이 훨씬 세상의 진실에 가깝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고백하지 않는 삶의 뼈아픈 비밀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는 마음만 먹으면 잘 할 수 있을 텐데, 왜 노력하지 않는 거니?"라고 묻는다. 물론 아이들의 잠재적 가능성을 누구보다도 믿고 신뢰하는 부모에게 당연한 의문이지만, 이때 우리는 충분히 솔직하지 않다. 능력은 많은 경우 의지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니 참으로 기이한 것은, 우리 사회가 능력에 대해서 보상하고 무능에 대해서 보상하지 않는다는 신념 체계를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점이다. 우리는 한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때는 원칙적으로 그에게 선택의 자유가 허용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외모나 출신 지역으로 타인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도덕적 신념의 근저에는, 당사자의 의지로 그것들을 바꿀 수 없다는 직관이 놓여 있다. 인생에서의 성취는 많은 경우 본인의 의지와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당신이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다. 누구나 어떤 일에 있어서는 남들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의 상식적인 능력은 보유하고 있지만 또 다른 어떤 일에 있어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원망할 정도의 깊은 좌절감을 느끼곤 하는 것이다. 어떤 위대한 사람도 모든 방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
물론 능력에 따른 보상 그 자체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심지어 도덕적이기까지 하다. 프로 축구팀이 유능한 선수에게 큰 돈을 주고 싶다고 하는데, 거기에 무슨 대단한 잘못이 있겠는가. 문제는 축구 말고도 온갖 종류의 운동경기가 있는데 전국 각지에서 일년 내내 오직 축구 경기만 열린다는 데에 있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발로 공을 차서 그물 상자 안에 넣는 그 우스운 동작을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래서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이유로 3류 시민의 자리로까지 천천히 떨어지고 있는 중이다. 야구와 배구와 농구와 테니스 경기가 본격적으로 열린다면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이 나서 운동장으로 뛰어나가겠는가.
완고한 능력주의가 제대로 옹호될 수 있으려면 우리 사회가 개인의 다양한 능력을 온전히 평가하고 그에 보상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물론 우리가 투표를 통해 오로지 축구만 잘 하는 사람들을 이 사회의 리더들로 뽑아 놓았으니 이런 억울한 고생을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기는 하다.
능력이 없으면 적게 받는 게 당연하다고? 내가 보기에는 미안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당신도 썩 능력 있어 보이지 않는다. 무능은 무죄다.
김수영 로도스출판사 대표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06/h2012062521023412176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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