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7. 22:58

대한민국에서 식중독만큼은 확실하게 잡고 싶다는 그를 알게 된 것은 지난달 말 한 빅데이터 관련 콘퍼런스에서였다. 재작년 말 부산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식중독 업무를 새로 맡게 된 6급 주무관 조지훈(36)씨는 상사로부터 "부산 지역 학교에서 식중독이 발생하면 다 네 책임"이라는 격려성 '엄포'를 받았다. 일상적인 점검 외에 뭔가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

이리저리 궁리하던 그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 것은 인터넷에서 찾은 두 장의 지도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시 경찰이 8년간 발생했던 200여 종(種)의 범죄 발생 자료를 기초로 해 만든 '범죄 지도(crime map)'와 구글의 '독감 트렌드(Flu Trends)'였다. 범죄 유형과 발생 지역을 세밀히 따져 보니 한 도시 안에서도 유형별로 발생 구역이 확연히 달랐고 예측 정확도는 70%가 넘었다. 이를 토대로 제한된 경찰력을 좀 더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었다. 구글도 전 세계 이용자의 독감 관련 검색 실태를 분석해 보니 해당 국가·지역의 실제 독감 창궐 시기와 일치했다고 소개했다.

조씨에겐 12년간 부산·울산·경남에서 발생한 식중독의 발생 이력·원인균(菌)·지역·발생 음식·날씨 등의 온갖 자료가 있었다. 이걸 잘 활용하면 더 과학적으로 식중독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는 교육부로부터 식중독 발생 학교 위치, 영양사·조리사의 경력과 정규직 여부, 지하수 사용 등의 자료도 받았다. 방대한 자료를 손에 쥐었지만 어떻게 분석해 시각화할지 막막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 본 적 있어?" "좋은 얘기이긴 한데…." 미심쩍어하는 상사들을 설득했고 정부 산하 IT 관련 연구원의 소개로 데이터 분석 전문가들을 만나 석 달간 함께 작업했다.

작년 봄에 1차 결과물이 나왔다. 예를 들어 '지하수를 쓰는 기숙사가 있는 부산 지역 고교에선 금요일에 노로 바이러스 식중독 발생 위험이 가장 크다'는 식이었다. 또 부산에선 7·8월 한여름보다 9월에 주로 병원성(性) 대장균에 의한 식중독이 많았고, 요일 중에선 월·수·금에 많이 발생했다. 부산식약청은 올해부터는 기숙사 유무(有無), 지하수 사용 여부, 쓰레기 소각장과 식당 간 거리까지 따져서 미리 학교들을 선정하고 예방 컨설팅에 나섰다. 그 결과 부산 지역의 식중독 환자 수는 올해 상반기에 작년 대비 69.2%가 줄었다고 한다.

본부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4월 조씨의 식중독 예측 지도 발표에 주목했고, 전국 차원에서 분석해 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그는 중앙무대인 본부로 영전(榮轉)하는 기회를 얻었다. 앞으로 국내 포털의 검색어 통계까지 활용할 수 있다면 뭔가 확실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며칠 전 식약처가 있는 충북 오송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런데 그는 수입식품정책과에서 수입업체들의 통관 여부 질의와 정식으로 수입 허가를 받은 품목인지를 묻는 소비자들의 민원 처리를 맡고 있었다. "아니, 식중독을 확 줄이겠다는 것이 꿈 아니었어요?" "에이, 제 뜻대로만 됩니까? 본부에서 일할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거죠. 지금 하는 일도 국민 건강에 엄청 중요한 것이고요." 말을 아끼는 그의 답변엔 어색함이 묻어났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19/20141019027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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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7. 22:39

요즘 유난히 사형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구미 택시기사 살해범, 서울시 의원, 윤일병 사건 가해 병사, 세월호 선장에게 이미 사형이 구형된 바 있었고, GOP에서 총기를 난사한 병사에게도 사형이 구형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형제를 지지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그들은 사형이 국가의 책무인 것처럼 말한다. 중범죄에 대해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보복감정을 충족시키고 사회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줘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사형의 효과를 냉정하게 따져보면 사형이 집행된다고 해도 실제로 달라지는 것을 찾기 어렵다. 기존의 여러 사회과학적 연구들은 사형의 범죄억제력이 입증된 바 없다고 입을 모아왔다. 예비범죄자들에게 ‘범죄자는 반드시 검거되고 처벌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은 중요하지만, 사형과 같은 극형을 도입한다고 해서 범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형집행이 피해자 가족들의 사회복귀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효과가 의심되는 사형제에 집착하는 것은 국가다. 만약 당장 다음 주에 사형이 집행된다고 가정해보자. 매스컴에서는 연일 톱뉴스로 다룰 것이다. 사형당하는 사람들의 신상이 공개되고, 그들의 잔인한 범죄행각들이 자세히 묘사될 것이다. 가해자의 친지ㆍ지인들을 찾아 다니며 인터뷰를 따고, 경황이 없는 피해자 가족들에게도 마이크를 들이댈 것이다. 사형집행 전 날에는 사형이 어떻게 집행되는지를 3D 그래픽 화면과 인포그래픽스로 볼 수 있을 것이며, 당일 날에는 집행현장에 장사진을 친 중계차를 통해 현장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사형이 집행되고 나면, 국가는 ‘이제 할 만큼 했다’며 책임에서 벗어나게 되고, 시민들도 ‘이만하면 됐다’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앞서 말한 대로 사형이 집행돼도 흉악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피해자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결국 사형제로 이득을 보는 것은 국가뿐이다. 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사형제야말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않은 나라들이 사형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양한 범죄대책이나 피해자보호대책을 강구할 수 없는 무능하고 정당성 없는 국가에게 사형은 참으로 편리한 통치수단이 아닐 수 없다. 얼마 남지 않은 사형제 존치국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한 얘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사형폐지론자들이나 사형폐지국들은 범죄와 범죄피해자 문제에 결코 무관심하지 않다. 오히려 더 많은 관심과 더 많은 책임을 지려고 한다. 사형을 통한 복수와 응징이라는 단순하고 효과 없는 방법에 반대할 뿐이지, 범죄가 발생하는 구조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정책이나 시민적 연대성을 강화하기 위한 근본적 사회개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선도적인 사형폐지국들에는 대개 범죄피해자 가족들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물질적ㆍ심리적 지원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다. 사형폐지론자들이 범죄피해자 문제에도 동시에 관심을 보이는 것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형폐지론은 단순히 사형제도를 없애자는 소극적인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범죄를 막지 못하고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은 현실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돼야 한다. 사형의 사이비효과로 시민들을 현혹시키려는 국가에 맞서, 복수와 응징의 악순환을 끊고 안전한 사회를 위한 근본적인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며, 범죄로 고통받는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형폐지를 둘러싼 논란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논의돼야 한다. 얼마 전 민청학련 사건의 사형수였던 유인태 의원이 사형폐지법안을 발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의원들의 서명을 받기 시작했으며, 이달 17일에는 인권사회단체와 종교단체들이 국회에 모여 사형폐지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또 한 번 국가적 차원의 중대한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부교수


http://www.hankookilbo.com/v/3f2f9592a26849cba6649f6b737da5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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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7. 22:27

“곰팡이가 핀 책이 아니라 명상에서 진리를 찾아라. 달을 보기 위해선 연못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라.” 


경전의 한 구절이냐고요? 페르시아의 오래된 속담입니다. 기나긴 세월 속에서도 이 속담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통하는 이치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너도 나도 ‘통찰력’을 찾습니다. 옛날에는 가진 정보가 많고, 가진 지식이 많으면 통찰력이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곤 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이제 웬만한 정보와 지식은 스마트폰 몇 번만 두드려도 얻을 수 있습니다. 정보의 양과 지식의 축적이 더이상 통찰력으로 직결되진 않습니다. 

그래서 다들 묻습니다. “대체 어디에서 통찰력을 키울 수 있을까?” “어떡해야 통찰의 눈을 가질 수 있을까?” 이 물음에 사람들이 주로 내놓는 답은 ‘책’입니다.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세상에 책만큼 생각을 키워주고, 안목을 넓혀주는 게 어디 있나?” 

저는 목숨을 건 듯이 책 읽는 사람도 여럿 만났습니다. 일주일에 한 권씩 읽는 사람도 있고, 1년에 100권을 읽는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떤 가톨릭 신부님은 “지금껏 성경책만 1000번을 읽었다”고 하더군요. 참 어마어마한 독서량입니다. 

그런데 뜻밖입니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는 이들도 통찰력은 제각각입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통찰력이 더 강한 것도, 책을 적게 읽는다고 통찰력이 더 약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한 달에 열 권 읽는 사람보다 한 달에 한 권 읽는 사람의 통찰력이 더 번득일 때도 있더군요. 그래서 더 유심히 살폈습니다. 강한 통찰력의 소유자들. 그들은 대체 무엇이 다를까. 공통점이 있더군요. “어유, 내가 통찰력은 무슨…”하면서도 꼭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책을 많이 읽기보다, 책을 깊이 읽으려고 노력한다.”

아하! 싶더군요. 창고에 오래 묵혀둔 책에서만 곰팡이가 피는 게 아니었습니다. 지금 손에 들고 내가 읽는 책에서 곰팡이가 필 수도 있더군요. ‘명상’이 생략된다면 말입니다. 좌선한 채 고요히 앉아 있는 게 명상이 아닙니다. 깊이 묻고, 깊이 생각하고, 깊이 궁리(窮理)하는 게 명상입니다. 독서를 할 때는 책과 내 마음이 마주 앉습니다. 책에는 문고리가 있습니다. 온갖 정보와 지식, 저자의 경험이 담긴 창고를 여는 문입니다. 독자는 그걸 열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게 다는 아닙니다. 독서에는 또 하나의 문고리가 있습니다. 그건 책과 마주한 내 마음의 문고리입니다. 그 문고리는 책만 읽는다고 잡히진 않습니다. 책의 내용에 대해 깊이 묻고 궁리할 때 비로소 잡히는 문고리입니다. 책에도 길이 있고, 내 마음에도 길이 있습니다. 책에 난 길을 걸을 때 ‘지식’이 쌓입니다. 내 마음에 난 길을 걸을 때 ‘지혜’가 생겨납니다. 책 속에 난 길도 걷고, 내 마음속 오솔길을 향해서도 깊숙이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내 안에 ‘길 눈’이 생깁니다. 길을 보고, 길을 알고, 길을 내는 눈. 그게 통찰력입니다. 어찌 보면 “성경책을 1000번 읽었다”는 건 안타까운 고백입니다. ‘1000번을 읽어도 모르겠더라’는 절규가 깔려 있으니까요. 차라리 성경을 한 구절만 읽고, 거기에 대해서 1000번 묵상(명상)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럼 내 안에 성경을 보는 ‘길 눈’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페르시아 속담을 다시 읽어봅니다. ‘달을 찾으려면 연못이 아니라 하늘을 보라.’ 통찰력도 똑같습니다. 책에 나 있는 길만 따라가면 ‘지적인 사람’이 됩니다. 책에 난 길을 보며 내 마음에도 길을 낼 때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게 통찰력입니다. 우리의 삶을 헤쳐가는 ‘길 눈’입니다.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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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7. 22:25

#1. 미국 대학의 한국 교수가 물었다. 미국 학계가 끊임없이 새로운 학문적 성취를 하는 이유를 아느냐고. 국력과 영어의 힘이라고 답했다. 한국 교수가 미국 교수보다 무능해서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답했다. “꼭 그것만은 아닙니다. 자부심입니다. 나의 연구가 인류의 지혜를 한 단계 더 높인다는 자부심이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가 부연했다. “미국에 살아서 생긴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미국과 다른 나라 학자를 가르는 큰 차이가 바로 이겁니다. 미국 학자는 내가 미지의 영역에 대한 인류 최초의 개척자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잘 났다는 게 아니라, 애초부터 눈높이와 시야가 다르다는 거죠. 미국 프로야구 결승을 ‘미국 시리즈’가 아닌 ‘월드 시리즈’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도 한국에서 공부할 때 좋은 연구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개척자로서 인류에 대한 기여 같은 생각은 못 했습니다.”

#2. 인기 인문학 강사인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 후 온 나라가 안전 문제에 촉각이 곤두섰을 때 발생한 지하철 사고를 언급했다. “저는 이런 사고가 또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사고가 나면 매번 강조하는 게 뭡니까. 준비, 훈련 부족 아닙니까. 그런데 왜 매번 안 될까요.” 매뉴얼 부재 등의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최 교수의 답은 달랐다.

“준비와 훈련 모두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대비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족하다는 창의·전략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있는 것에 맞춰 일하는 데는 능숙합니다.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것은 우리의 인식 밖에 있습니다. 선진국을 운영해 본 경험이 없어서입니다. 가지고 있는 물품을 보세요. 우리가 만든 것은 있어도, 우리가 처음 만든 것이 있는지요.”

#3. 법이 시행된 지 보름도 안 돼 사달이 났다.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말이다. 목소리 큰 소비자는 혜택이 줄었다고 분통이다. 한쪽에선 중저가폰을 쓰는 소비자의 혜택이 늘었다고 항변한다. 단말기 제조회사와 이동통신 3사의 이해도 갈린다. 시장에 맡기자는 주장과 과도기이니 보완하자는 의견이 맞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단통법은 한국이 세계 최초로 만든 법이다. 정보기술의 맨 앞줄에 있다 보니 베낄 참고서도, 준용할 기준도 없는 상태로 만든 법이다. 이렇게 처음 해 본 일에서 우리 실력이 드러나고 말았다. 좋은 법, 나쁜 법을 따지기 전에 아쉬운 게 이 대목이다. 앞으로가 걱정이다. 열심히 쫓아가는 것으론 부족하다는 걸 이제 다 안다. 중국이 으르렁대는 통에 모를 수가 없는 상황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할 수밖에 없다. 도전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생존의 문제다. 자문한다. 우리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갈 혜안과 역량을 가졌을까. 단통법 혼란은 그저 단통법만의 문제이길 바란다.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6140295&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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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7. 22:23

중화민족의 대부흥을 뜻하는 ‘중국몽(中國夢)’. 이 차이나 드림과 관련된 두 가지 의미심장한 일이 최근 한꺼번에 일어났다. 하나는 ‘우산혁명’으로 통하는 홍콩의 민주화 시위요, 또 하나는 중국 기업의 뉴욕 최고급 호텔 월도프 아스토리아 구입이다.

우산혁명의 불똥이 비슷한 처지의 마카오를 거쳐 본토로 옮겨붙으면 어떻게 될까. 시간은 걸리겠지만 중국 전체가 쪼개질 거라는 게 서방 언론들은 희망(?) 섞인 분석이다. 실제로 우파 언론 월스트리트저널은 “홍콩 사태가 중국 다른 지역에서 연쇄 파급효과를 미치지 않을까 중국 지도부는 두려워한다”고 전했다. 그렇지 않아도 끓고 있는 티베트·위구르 민족주의에 불을 댕겨 중국 대륙이 분열되길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1990년대 소련이 쪼개지면서 급속히 약화됐던 즐거운 추억이 아직도 아련한 모양이다. 


반면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매입은 경제 패권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해석하건대 전자를 정치적 위기의 징조라면, 후자는 중국 경제의 굴기인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중국은 위기를 목전에 둔 것인가, 아니면 ‘팍스 시니카(Pax Sinica·중국에 의한 평화로운 시대)’를 향해 순항 중인가.


비관론이 맞다면 홍콩의 우산혁명은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수출 5597억 달러 중 중국 시장 비중은 26.1%. 그 뒤를 잇는 미국(11.1%)·일본(6.1%)·홍콩(4.8%)·싱가포르(3.9%) 등 네 나라를 합쳐도 모자란다. 중국이 무너지면 한국 경제가 어떻게 될지는 불문가지다.


그렇다면 이 상반된 양 신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이 시그널을 적확히 꿰뚫으려면 서방과는 현격히 다른 중국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다. 단적인 사례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 간의 상관관계다. 미국 남부의 명문 듀크대 경영대학원에는 설립 정신을 함축한 ‘다원성 선언문’이 걸려 있다. “기술 혁신의 원천인 우리 사회 내의 다원성을 활용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게 그 요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일찍이 설파했듯 경제 성장의 원동력은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이다. 그럼 혁신은 어디서 나오나. 구미 학자들은 이질적 사고 방식을 포용하는 ‘다원주의’에서 비롯된다고 확신한다. 이를 증명하는 실증적 조사도 숱하다.

그렇다면 거주 이전의 자유마저 희미한 중국은 어떨까. 서방 논리대로라면 질식할 것 같은 사회 통제로 창의적 혁신이 일어날 리 만무하다. 그래서 중국의 쇠퇴를 예견하는 강력한 논리 중 하나가 다양성의 결핍이었다. 하나 현실은 정반대로 진행돼 왔다. 2011년 이래 세계에서 3년째 가장 많은 특허를 낸 나라는 중국이다. 지난해 중국에선 40만 건의 특허 등록이 이뤄져 일본(25만 건), 미국(18만 건)을 훌쩍 제쳤다. 미국 잡지 패스트컴퍼니 선정 ‘2014년 가장 창조적 기업’ 랭킹 3위는 저가 핸드폰 돌풍을 일으킨 중국의 기업 샤오미(小米)였다. 인터넷 검색 엔진 바이두(百度), 온라인 쇼핑몰 알리바바 등도 세계적인 혁신기업으로 꼽힌다.

왜 이런 착오가 일어나게 된 걸까. 이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경제·산업 분야에서만큼은 거의 완벽한 수준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중국식 시스템이 잘 돌아간 덕분이다. 소련 공산주의에 익숙한 서양에선 정치는 막혀 있으되 경제는 한껏 풀려 있는 체제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거다.

 이 같은 문화적 몰이해에 따른 착시 현상으로 30년 전부터 ‘중국 붕괴론’은 유령처럼 떠돌아다녔다. 특히 92년 미 역사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소련의 붕괴 이후 『역사의 종언』을 출간한 무렵엔 극에 달했다. 그는 민주주의 진영의 완전한 승리를 선언하며 중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가 이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 예언했다. 그러나 중국은 그 후에도 무너지기는커녕 연평균 8~10% 수준의 고도 성장을 유지하며 일당지배 체제를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내부 모순에 따른 중국 붕괴가 이뤄지지 않자 그 후로 고개를 든 게 ‘중국 분열론’이었다. 티베트·위구르족을 위시한 중국 내 소수민족들이 들고 일어나 중국이 쪼개질 거라는 얘기다.그러나 내재적 접근을 중시하는 학자들은 이 역시 실정 모르는 이야기라고 비판한다. 민주화 운동이 가열돼 공산당이 전복되더라도 중국이 분열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민주화 운동의 주체세력 역시 한족이어서 나라가 쪼개지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또 중국 영토의 60%를 소수민족이 차지하긴 하나 인구 수에선 8% 안팎이다. 공산 정권 몰락 후 분열된 옛 소련의 경우 러시아인이 70%에 불과했다. 양쪽이 비교가 안 된다.

결국 홍콩의 우산혁명이 본토로 확산되더라도 중국의 분열이 촉발될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한다. 서방에서 중국을 분석할 때 문화적 배경을 도외시한 채 자신들의 분석 틀을 고집할 때가 잦다. 오피니언 리더 중 서양에서 유학한 이들이 유독 많은 한국이다. 화석처럼 굳어진 서양식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결정적 오판을 범할 수 있음을 늘 유념해야 한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6140299&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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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7. 22:18

한국 내에서는 한국에 대한 연구를 위한 재원과 관심이 크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한국인은 한국에 대해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대한 해외의 연구 현황은 어떤가. 두 가지 측면을 살펴봐야 한다. 첫 번째 측면은 북미와 유럽 같은 지역에서 교육, 장학사업, 연구를 지원하는 재단의 발전과 관련됐다. 두 번째는 선진국의 여론주도층, 매체, 정책결정자 사이에 한국에 대한 수준 높은 공공정책 대화의 발전이라는 측면이다.

 첫 번째 측면을 보면 한국학 연구의 위기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20여 년간 여러 재단은 한국학 연구의 기초를 마련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은 미국의 주요 대학에 한국학 석좌교수직을 설치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종신재직권(tenure)을 지닌 교수직을 설치하기 위한 기금이 모금됐다. 역사학·인류학·사회학 등 여러 분야의 교수들이 한국에 대해 가르치고 연구할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이들 교수는 한국에 대해서만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또 한국에 대해 반드시 긍정적으로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 공개 경쟁 채용을 통해 최고의 교수들이 임용됐는데, 그들의 관점이나 연구 방향의 독립성이 보장된 것이다. 또 한국에 대한 ‘실질적인(substantive)’ 관심만 있으면 교수로 채용되는 데 유리했다.

 최고의 한국학 교수진이 확보되자 미국 대학에서 한국 관련 강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또 한국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에 부응하는 프로그램도 늘어났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서울의 어떤 당국자가 뭔가 명령하는 일도 없었다. 구상은 이랬다. 한국에 대해 관심 있는 학자들이 채용되면, 한국 관련 활동 전반이 학생들이나 일반 대중의 관심에 자연스럽게 부응하며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두 번째 측면을 살펴보자.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성장하고 성공한 결과로 매체·비즈니스·정부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대중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지난 20년간 발전한 학술적 전문성 사이에 약간의 ‘미스매치’가 있다. 한국학 교수들은 대부분 정치학자·국제정치학자·경제학자가 아니다. 이들 학문분야는 특정국가보다는 이론적인 분석이나 계량적인 방법론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정치학과·경제학과에서 선호하는 교수는 ‘한국 전문가’하고는 거리가 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한국학 전문가로 성장한 교수들은 다른 분야의 학자들이다.

 공공정책 차원에서 보면 우려할 만한 일이다. 한국에 대한 전문성은 한국의 민주화·핵확산·경제성장·외교정책 등의 이슈에서 필요한데, 미국 대학의 한국학은 이들 이슈와 거리가 있다. 한국 관련 문제가 터지면, 언론은 이런 이슈들에 대해 잘 모르는 인근 대학의 교수들에게 의견을 구할 수밖에 없다. “평소 신문을 읽고 한국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면 정책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내는 게 어려운 게 아니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공공정책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온다. 시사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국내정치, 권력구도, 역사, 심리학, 국제기구 등에 대한 정책 분석이 필요하다. 여러 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지식과 정책결정 실무 경험도 필요하다. 

 한국과 관련된 정책 전문가들의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대중의 이해는 한국학 교수 자리가 생겨나기 시작한 20년 전과 다를 바 없다. 예를 들면 미국의 경우 한국에 대한 여론조사를 해보면 응답 내용이 예전과 비슷하다. 즉 한국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긍정적이지만 한국에 대한 지식 수준은 아주 낮다. 한국에 대한 호의적이지만 표피적인 이해는 정책결정자의 관점에서 보면 위험하다. 광우병 시위처럼 한·미 관계에 뜻밖의 상황이 전개되면 미국의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한 가지 방법은 공공정책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하는 다음 세대 한국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나는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의 데이비드 강, 맨스필드재단의 프랭크 자누지와 고든 플레이크,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와 더불어 이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우리는 미국 내 최고의 중진 학자 12명을 워싱턴 DC로 초청해 정책결정자, 언론인, 싱크탱크 소속 전문가들을 만나게 했다. 각 대학으로 돌아가 정책 문제에 대해 보다 잘 답변할 수 있게 돕기 위해서였다.

 세계가 한국을 보다 잘 이해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지 K팝이나 한국 TV 드라마의 성공에 안주해 세계가 한국에 대해 호의적으로 생각한다고 낙관하면 안 된다. 또 한국 국회의원들은 국제 공공외교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끼려고 하면 안 된다.

 세계가 한국에 대해 보다 균형 있고 세련된 이해를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본은 오래전에 그럴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그럴 필요성이 덜한 것일까. 아니다. 한국은 패권국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세계에 더욱더 열심히 알려야 한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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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7. 22:12

칼 세이건은 인간과 문명의 미래를 많이 걱정했던 우주과학자다. 물론 세이건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 중에 인간의 내일을 우려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세이건이 좀 다른 점은 그가 좋고 나쁜 것에 대한 윤리적 가치분별과 판단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비판한 것 중에는 인류의 ‘진화적 습성’에 관한 것이 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진화과정에서 몸에 붙여온 버릇들 중에는 ‘못된’ 것이 많다. 

그런데 진화가 붙여준 습성이라 해서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정당화할 것이 아니라 버릴 것은 버리고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세이건이다. 이런 주장을 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는 과학자로서는 드물게, 마치 용감한 인문주의자처럼, 인간의 ‘개선’ 문제를 많이 생각했던 사람 같아 보인다.

 진화가 인간에게 붙여준 ‘나쁜 습성’이란 어떤 것인가. 세이건이 만든 습성목록에는 대표적으로 다섯 개쯤이 올라 있다. 싸우고 죽이기 좋아하는 호전성, 그릇된 사회적·문화적 관습, 지도자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 이방인에 대한 이유 없는 적개심, 증오와 불신의 버릇 등이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습성들은 적대적 환경에서 인류를 살아남을 수 있게 한 집단적·부족적 특성들이기도 하다. 지도자에게 맹종하고 싸우기 좋아하고 이방인을 의심하고 적개심을 품는 것 등에 ‘진화적 이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이건 같은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 이득들은 이제는 인류가 버리고 넘어서야 할 낡은 ‘파충류적’ 열정들이며, ‘인류의 생존을 크게 위협하는’ 파괴적 요소들이다.

 버려야 할 것은 이런 버릇만이 아니다. 우주에서 보면 지구 행성은 손에 쥐면 부서질 것 같은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행성은 생명을 품고 과학 문명을 일으키고 우주를 연구하기 시작한 소중한 고장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범위 안에서는 이런 성취를 이룩한 곳이 지구 말고는 없다. 

인간은 과학을 아는 유일한 생물종이다. 우주는 그 인간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한다. 이처럼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지구행성에서 생명은 보존되고 문명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인간이 자기 존재의 품위를 위해 청산해야 할 것들이 또 있다. “극단적 형태의 민족 우월주의, 우스꽝스러운 종교적 광신, 맹목적이고 유치한 국가주의”가 그런 것이다. 지구는 “이런 것들이 발붙일 곳이 결코 아니다.”

 세이건을 읽다 보면 수천 년 전 출현한 유대경전 ‘레위기’의 한 대목이 불쑥 머리에 떠오른다. “너희는 거룩하라.”(19장 2절) 유대민족의 신 야훼가 족장 모세를 시켜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게 했다는 당부의 언어이자 명령이다. 경전 성립의 유대적 배경을 구태여 파고들지 않더라도, 한 민족집단을 이끌어야 했던 모세에게 최대의 관심은 집단의 강한 결속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속의 방법은 무엇인가? “너희는 거룩하라”가 그 방법론 같다. 결속 명령은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보편적 가치와 도덕성의 안내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결속의 열정만으로 뭉쳐진 명령은 ‘부족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 욕심쟁이 인간이 무슨 수로 ‘거룩’해질 수 있을까? ‘레위기’에 나오는 “거룩하라”의 방법론은 이런 것이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포도원의 떨어진 열매도 다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두라.” 

더 깊은 대목도 나온다. “이방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 중에 낳은 자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한때 이방인이었느니라.” 

부자 사랑에 빠져 약자와 가난한 자를 한없이 경멸하고 심지어 혐오하기까지 하는 한국의 다수 기독교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대목이다. ‘레위기’의 이런 구절들은 인간 존재가 어떻게 이 우주에서 의미와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가, 그 방법론을 일러주기도 한다.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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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7. 21:51

호주 여행 중의 일이다. 바닷가에 도착하니 거친 파도 위에서 서핑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바닷가 쪽으로 몇 걸음 더 들어가니 흥미로운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내판에는 상어 그림을 배경으로 ‘Surf at your own risk’라고 쓰여 있었다. 간혹 상어가 나타나기도 하니 서핑을 즐길 사람은 그런 위험성까지 잘 고려해서 결정하라는 것이다. 아마도 과거에 상어로 인한 사고가 발생했던 것 같다. 그 안내판이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상어의 출몰에도 불구하고 바닷가에서의 서핑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을 시민 개인에게 맡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어땠을까. 상어로 인한 사고가 생겨났는데 그 해안을 그대로 방치했다면 언론에서는 해당 관청의 무관심과 태만을 질책했을 것이고 결국 관청은 철망을 치든가 해서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을 것이다. 관청 입장에서는 가장 손쉽게 사고 재발을 막을 수 있고 책임도 면할 수 있게 되겠지만, 사람들은 그 바닷가에서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시민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이처럼 국가가 개입하게 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암 덩어리’ ‘원수’라고 불렀던 관의 규제가 생겨나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을 송두리째 드러내 보였다. 국가의 무능이나 ‘관피아’와 같은 구조적 부패의 문제점도 심각한 것이지만, 수백 명의 승객을 가라앉는 배 안에 두고 제 목숨 살리겠다고 도망 나온 선장을 비롯한 일부 선원들의 책임 의식의 결여가 더욱 부끄럽다. 국가의 개입 이전에 세월호 내부에서의 노력만으로도 희생자를 크게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세월호 사건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얼마 전에 있었던 신안 홍도 유람선 구조사건이다. 유람선이 좌초되자 인근 지역 주민들이 유람선과 어선을 타고 제일 먼저 다가와 승객들을 모두 구출했다. 과거에 유사한 유람선 사고가 있었는데 사고가 터지면 관광객이 줄어 지역 경제가 타격을 입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끼리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구조훈련을 해 온 결과였다. 국가의 개입 이전에 시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낸 것이다.

 홍도 유람선 구조사건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게 되었고, 과도할 정도로 국가에 의존해 왔다. 민주화 이후에는 시민들의 권리 의식이 강해지면서 국가의 역할과 책임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형태로 변화해 갔다.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이 주인이기도 하고 더욱이 세금도 냈기 때문에 국가가 당연히 모든 것을 처리해줘야 한다는 식이다. 불이 나면 소방서가 해결할 일이고, 도둑이 생기면 경찰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것이다. 국민은 그저 팔짱 끼고 정부가 하는 일을 지켜보면 될 뿐이고, 일을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비난하고 책임을 추궁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되었고 이해관계도 복잡해진 오늘날 국가에만 일을 떠맡기는 방식으론 문제가 효과적으로 해결될 수 없고, 더욱이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결국 또 다른 규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국가가 국민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라”고 말한 바 있다.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는 이 유명한 연설 문구는 국가라는 공동체가 시민의 참여와 헌신 없이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그러나 요즘 우리 사회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참여하고 헌신하려는 시민의식이 매우 취약해졌다. 극단적인 경쟁이 자기밖에 모르는 모래알과 같은 사회로 만들어버렸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에서부터 ‘우리’가 아니라 ‘나’를 가르치고 있고, 경쟁에서 남을 누르고 혼자 잘사는 방식을 강조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이 보여준 대로 이제는 국가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국가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의존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은 개인의 안전이나 발전 역시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운명을 같이한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이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공동체의 안전과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국가가 사사건건 시민 생활에 간섭해온 불필요한 규제의 혁파는 매우 시급한 과제이지만, 이와 함께 시민사회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공동체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시민교육의 강화가 절실해 보인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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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7. 21:42

증시는 경제의 체온계다. 필자는 10여 년 전 증권거래소 출입기자를 했다. 지난주 우연히 시가총액 상위 종목을 다시 챙겨보니 입이 딱 벌어졌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2004년 시가총액은 ①삼성전자 ②SK텔레콤 ③포스코 ④한국전력 ⑤국민은행(KB) ⑥KT ⑦현대차 ⑧LG전자 ⑨삼성SDI ⑩신한은행 순이었다. 전자와 통신, 그리고 금융이 주력이었다. 모두들 ‘수출 한국-IT(정보기술)강국’에 따라 이 서열이 영원히 굳어지리라 오해했다.

지난 10년간 증시의 미인주는 단연 네이버다. 주가가 20배나 올라 80만원이 됐다. 일본 증시에 ‘라인’까지 상장하면 시가총액은 50조원을 넘본다. 현대·기아차와 시가총액 2위 자리를 다투게 된다. 인터넷·모바일 시대의 무시무시한 단면도다. 


하지만 진짜 눈길을 끄는 종목은 따로 있다. 화장품의 아모레, 먹거리의 오리온과 삼립식품, 의류의 영원무역과 한세실업이 그것이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10년 전 한결같이 외면받던 내수업종이란 점이다. 한물간 사양산업으로 여겨졌다. 하루 거래량이 1만 주도 안 됐다.지금은 어떨까. 예전 ‘태평양’이던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100배나 올라 250만원 선이다. 중국에서 ‘설화수’가 대박을 터뜨렸다. 해방 이후 만성 적자였던 화장품 수출입을 단번에 흑자로 돌려놓았다. 지주회사인 아모레G와 합치면 시가총액이 23조원으로 6위다. 증시 관계자는 “주가수익비율(PER)이 60을 넘어 부담스럽다. 하지만 아모레의 중국 시장 점유율이 현재 1.7%에서 5%로 오른다고 상상해 보라”고 말했다. PER이 6인 삼성전자를 압도하는 최첨단 성장주로 변신한 것이다. 이런 기대감에 외국인 보유 비중도 30%나 된다.

옷을 파는 영원무역도 4년 만에 주가가 10배나 올라 시가총액이 3조원을 넘었다. 한세실업 역시 5년간 주가가 10배 넘게 올랐다. 주식전문가 구재상 KCLAVIS 대표는 이렇게 접근한다.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 등에서 7만 명 넘는 해외 근로자를 데리고 고급 옷을 전 세계에 수출하는 노하우가 탁월하다. 한세실업도 3만6000명의 해외 근로자를 관리하며 미국인 3명 중 한 명꼴로 자신의 옷을 입힌다. 세계 어디에도 월 10만원의 저임 근로자들을 이 만큼 무리 없이 이끄는 경쟁력은 흔치 않다.” 1980~90년대 국내의 혹독한 파업 속에서 갈고 닦은 노무관리 실력이 재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삼립식품은 고급 빵을 찾기 시작한 중국·동남아 중산층의 입맛에 맞춰 현지에 파리바게뜨 100호점까지 진출시켰다. ‘초코파이’의 오리온도 10년간 주가가 15배나 올라 시가총액이 5조원을 넘나든다. 그 작은 초코파이 하나로 거대한 대우해양조선을 제쳤고, 삼성중공업의 시가총액을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전통적 강자들의 주가는 초라한 추풍낙엽 신세다. 5년 전과 비교하면 조선의 강자인 현대중공업은 42%, 정유의 대명사인 SK이노베이션은 35%, 차세대 태양광의 황태자로 꼽히던 OCI는 61%나 주가가 곤두박질했다. 중국의 추격이 거센 데다 미국의 셰일가스 혁명으로 해양 시추와 태양광발전 수요가 뚝 끊겼기 때문이다.

경제는 움직이는 생물이다. 이미 수출제조업과 내수산업이란 구분조차 낡은 개념이다. 아모레가 97년 설화수를 선보였을 때 국내에 50만 개가 팔렸다면 이제 중국·동남아에서 1000만 개가 소화되는 세상이다. 또한 꼭 벤처만 창의적인 것도 아니다. 굴뚝업체인 영원무역·한세실업의 노무관리가 창조적 기술로 대접받는 시대다. 창조적인지 도태될 기업인지는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 결정한다. 더 이상 첨단 기술만 기술이 아니다. 이웃 일본의 최첨단 반도체를 만들던 도시바·후지쓰·파나소닉 생산라인에 요즘 야채가 자라고 있다. 경쟁력 상실로 반도체 클린룸을 무균 유리온실로 바꾼 것이다. 거꾸로, 전기 밥솥의 쿠쿠전자는 시가 총액이 2조원을 넘어 대한항공까지 추월했다. 이런 패러다임 대전환기에 뭐 중뿔난 ‘창조경제’가 따로 있겠는가. 더 많은 고용과 더 많은 수익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차라리 ‘아모레의 설화수가 창조경제!’라는 게 훨씬 피부에 와 닿을 듯 싶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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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5. 3. 7. 21:39

두 주일 전, 벨리즈(Belize)를 다녀왔다. 기획재정부가 한국개발연구원(KDI) 주관으로 시행하는 경제발전 경험 공유 사업(Knowledge Sharing Program·KSP)의 수석고문으로 프로젝트 착수회의를 위해서였다. 주제는 벨리즈의 ‘국가 과학기술 혁신 전략 및 액션플랜 수립’ 등이다.

 지난해 TV 방송사의 10부작 기획취재 등이 인기를 끌며 벨리즈는 카리브해의 보석으로 국내에 소개됐다. 멕시코·과테말라와 국경을 접한 인구 30여만 명의 나라, 1800년대는 영국령 온두라스였다가 1981년에 독립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구매력 평가 기준)은 8000달러 남짓, 원유·설탕·과일·마호가니 등이 자원이다. 중남미 국가 중 유일하게 영어를 공용어로 쓴다.

 우리나라와의 인연은 짧다. 2012년 녹색기후기금(Green Climate Fund·GCF) 사무국의 송도 유치를 위해 막강 선두 주자인 독일 등과 치열하게 겨룰 때, 벨리즈는 카리브공동체(CARICOM) 대표국으로 우리 손을 들어줬다. 당시 민간 유치위원으로서 한 표의 절실함을 실감했던 기억이 새롭다. 내년 8월이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의장 선거를 놓고 또 개도국의 지지를 청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GCF로 맺어진 호혜관계는 지난해 한·벨리즈 KSP로 이어졌다. 첫 과제는 ‘국가 교통 마스터플랜 수립’이었다. 마야 정글의 생물다양성 등 천혜의 자연자본을 지닌 벨리즈가 기댈 수 있는 건 관광산업이다. 심해 7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신비의 블루홀(Great Blue Hole)과 세계 2위의 산호초 보호구역인 배리어 리프(Barrier Reef)는 유네스코 자연유산이다.

 그런데 한반도의 10분의 1 정도인 벨리즈는 가로·세로를 잇는 도로망이 단절돼 있다. 게다가 해안선 둘레길은 최근 허리케인 빈발로 몇 년마다 쓸려나간다고 한다. 그러니 올해 초 한국을 찾은 벨리즈 대표단이 교통망 관제시설을 둘러보며 감탄을 연발한 것은 당연했다.

 지난 4월 말 벨리즈에서 열린 제1차 KSP 최종보고회에서 우리 대표단은 미처 예상치 못한 의식을 치렀다. 장내를 꽉 메운 행사장에서 에너지·과학기술부 조이 그랜트(A Joy Grant) 장관이 예를 갖춰 세월호 참사자를 기리는 추도식을 진행한 것이다. 우리 교통체계를 한껏 뽐내놓은 처지에 차라리 그대로 넘어가 주면 싶었는데, 내색도 못한 채 괴롭고 부끄러웠다.

 이번 제2차 KSP 착수회의 때도 공무원 100여 명이 참석했다. 벨리즈 국가의 전통악기 연주에 이어 우리 대표단이 녹음에 맞춰 애국가를 제창했다. 1절부터 4절까지, 이역만리에서 부르는지라 더 눈시울이 뜨듯해졌다. 옆에 선 KDI 실장이 4절까지 다 외우고 있느냐고 했다. 그 자리에서 스쳐간 생각이다. 국내 행사에서도 국기에 대한 경례로 국민의례를 때우다시피 할 게 아니라 4절까지 애국가를 부르며 잠시라도 나라 사랑을 상기하면 어떨까. 국회부터 나서주면 좋겠다.

 제1차 KSP 보고서를 작성하며 하나 받았으니 하나 주고 마는 식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썼다. 왕복에만 이틀이 걸리고 자원외교 가치도 별로 없는 터, 실리가 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우리를 모델로 여기는 개도국들의 리더가 되는 건 매우 소중한 일 같다. 이제 아쉬울 때만 손을 내미는 게 아니라 인류애 차원에서 타산 없이 베푸는 외교를 할 때도 됐다. 벨리즈는 이번에 국무회의에서 한국을 비자 면제국으로 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벨리즈의 수도 벨모판(Belmopan) 방문길에 곳곳을 살피게 됐다. 우리 새마을운동을 들여보내면 딱 맞춤형 솔루션이 될 것 같았다. 공동체 스스로 농가공·주거·물·에너지·폐기물 처리 등 최적의 가용기술과 기법(Best Available Techniques) 전파운동에 나서는 것이다. 이 얘기에 주무장관은 크게 반겼다. 그들에게 절실한 것은 개인주의 극복의 공동체 정신이라며.

 그들은 제1차 KSP 사업의 최종보고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국내 사정을 보니 연구윤리 규정이 까다로워져 검증에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개도국으로의 지식전파사업에 대해 학술논문과 똑같은 연구윤리 잣대로 비용을 늘리고 시간을 지체시키는 게 합당한 일인지 모르겠다.

 해외 지원사업의 성공요건은 무엇일까. 대표단이 열정과 성실로 마음으로 통하는 자세가 기본이다. 상대국의 필요와 요구, 강점과 약점을 정확히 파악해 수요국 중심의 실질적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의 성공신화를 전수하되 상대국의 상황에 맞는 재창조가 필요하다. 그리고 부처별로 추진하고 있는 각종 사업의 내용을 파악·연계·상생하도록 총괄 조정하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돼야 한다. 이런 조건이 충족된다면 한정된 예산이라 하더라도 지구촌 곳곳의 고난을 치유하는 데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몫은 훨씬 더 커질 것이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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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5. 3. 7. 21:32

머리에 노란 꽃을 단 대통령의 그림이 광화문 하늘에 여우비처럼 흩날렸다. 면세점 건물 옥상이었다. 작가는 3만5,000장을 뿌리려 했지만 곧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를 취재하던 기자도 함께 잡혀 들어갔다. 경찰이 내건 죄목은 ‘건조물 침입’이었으나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면세점 건물에 무단 잠입했다고 입건된 것이 아니라, 최고 존엄에 대한 풍자가 문제라는 것을 누구도 모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또 이렇게 이죽거렸다. 여우비로 뿌리지 말고 풍선에 매달아 날렸어야지. 며칠 전 대북 전단 살포를 그만 두라며 북한이 우리 땅에 포탄을 떨어뜨렸을 때, 여당은 이렇게 대꾸했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정부는 민간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이 나라는 예술가의 풍자에 개입하는 것일까.


얼마 전 프랑스에서도 ‘정치인의 희화화’가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한국 입양인 출신의 첫 상원의원 장-뱅상 플라세가 그 주인공이었다. 니콜라 깡들루라는 유명 코미디언이 플라세의 억양을 우스꽝스레 흉내 내었다. 악랄하게 과장된 딱딱하고 촌스런 발음이 웃음 포인트였지만, 정작 7살 때 입양된 플라세의 말투는 전형적인 프랑스인과 다르지 않다. 이 코미디언은 예전에도 아프리카 출신 정치인의 억양을 비웃었던 전력이 있었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이 프랑스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민감한 시기, 플라세를 향한 풍자를 두고 대중의 반응은 양분되었다. 누군가는 깔깔거렸지만 누군가는 ‘인종주의’적 위험한 풍자라 경계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당사자 플라세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프랑스 녹색당의 유력 정치인이면서도 영락없이 한국인의 얼굴을 갖고 있는 그는 코미디언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깡들루씨, 당신을 한국식 식사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나로선 당신의 유머가 전혀 재미있지 않더군요. 제 목소리를 제대로 흉내 내려면 저와 함께 김치를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대답을 기다리지요.” 대중들은 익살스러우면서도 허를 찌르는 플라세의 트윗에 뜨거운 호의를 보냈다.


한편 예술가의 풍자가 용납되지 않은 세상에선 끔찍한 비극이 일어나기도 한다. 옛 소련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란 오페라로 음악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공연 첫해만 해도 모스크바에서 94회, 레닌그라드에선 83번씩이나 무대에 오를 정도로 비평가와 청중 모두로부터 휘황한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었다. 그 뿐인가. 유럽의 주요 도시에 초청되어 ‘사회주의 오페라의 높은 성과’란 호평도 이끌어 내었다. 국제적 명성을 거머쥐자 공산당은 작곡가를 ‘소비에트 인민의 영웅’이라 추켜세웠다. 스탈린 역시 엄청난 흥행을 직접 목도하고 싶어 볼쇼이 극장을 찾았다. 그러나 오페라가 채 끝나기도 전 객석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극중 독살 장면이 그의 심기를 거슬렀던 까닭이었다. 피의 숙청을 단행하고 있던 독재자로선 주인공에게 살해 당한 인물이 꿈속에 나타나 저주하는 장면이 편할 리 없었다. 다음 날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20세기 음악사의 가장 큰 비극을 선언한다. 쇼스타코비치는 ‘인민의 적’이라 낙인 찍혔고, 사회주의 오페라의 높은 성과라 칭송 받던 므첸스크의 맥베스 역시 ‘조잡하고 천박한 쓰레기’라 일거에 추락한 것이다. 작곡가는 언제 어느 때 숙청될지 모르는 공포 속에 웅크렸고, 오페라는 그 뒤로도 27년 동안이나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머리에 노란 꽃을 단 대통령의 그림이 며칠 전 대한민국의 하늘에 여우비처럼 흩날렸다. 그림을 흩뿌리러 옥상에 오르기 전, 작가는 자신의 복잡한 심정을 페이스북에 남겨 놓았었다. 그는 ‘전립선이 떨리도록 두렵다’ 토로하면서도, ‘엿 같은 세상을 엿 같다 말해야’하는 것이 예술가의 사명이라 얘기했다. 그리곤 준비했던 3만5,000장을 다 뿌리기 전에 경찰에 체포되었다. 허나 그 파급은 사람들의 설왕설래로 3만5,000장 보다 훨씬 더 멀리 퍼져 나갔다. 마침 이 시절은 ‘모독이 도를 넘었다는’ 대통령의 발언 이후 사이버 망명이 난무하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실소하는 동시에 불안해했다. 예술가의 풍자적 표현조차 비장한 각오로 내놓아야 할 이상한 시절을 살고 있다.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http://www.hankookilbo.com/v/bf1092e6bc6746dc81efc318df4bd33a


Posted by 겟업
2015. 3. 7. 21:23

속도위반. 적어도 결혼에선 더 이상 책잡힐 일이 아닌 듯하다. 한때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낙인의 단어였지만, 이제는 수줍게 고백하면 당당한 축하로 되돌아올 정도로 호감 단어가 되어가고 있다. 어느덧 속도위반에 대한 경계심은 이제 도로 위에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해야 할 속도위반은 도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에도 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생각의 내용에 관해서는 각별한 관심을 가져왔다. 그래서 폭력적 영화나 게임이 폭력성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점,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담은 영화가 청소년들에게 왜곡된 성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 흡연이나 음주 장면이 시청자들에게 흡연과 음주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 자살에 대한 지나치게 자세한 보도가 자살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주목하고, 각종 규제와 대응 방안을 마련해왔다. 생각의 내용이 중요하다는 점에 우리 사회가 동의한 결과이다.

그러나 생각은 내용뿐만 아니라 속도 역시 매우 중요하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평상시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제시되는 문장을 읽은 사람이 평상시 속도보다 천천히 제시되는 문장을 읽은 사람에 비해 훨씬 더 위험한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빠른 속도로 읽게 되면 생각하는 속도가 빨라진다. 빨라진 생각은 성급한 의사 결정을 유도하게 되고, 성급한 의사 결정은 잠재적 위험 요인들을 차분히 따져보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일을 가로막게 된다. 도로 위 속도위반이 자동차 사고 원인이 되듯이 생각의 속도위반이 인생의 사고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어른들이 다리 떠는 행동을 그렇게 말렸던 이유도, 사실은 너무 빠른 생각의 속도를 경계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천천히 여유 있게 다리를 떠는 경우를 본 적 있는가).

지금 우리 사회는 생각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뉴스 페이지는 가만두어도 빠르게 페이지가 넘어간다.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활자는 쏜살같다. 운전 중 읽어내려 가는 이메일 속도는 가히 혁명적이다. 수시로 제시되는 실시간 검색어 순위는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읽기만이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어떤 장면이 빠르게 제시되는 영상을 본 사람이 느리게 제시되는 영상을 본 사람보다 일상의 많은 장면에서 더 위험한 선택을 한다고 한다. 모든 것이 빨라졌다. 특히 '속도'라는 단어가 붙는 영역이 그렇다. 자동차 속도, 인터넷 속도, 배달 속도, 충전 속도….

그러나 생각은 속도의 영역이 아니다. 생각은 깊이와 방향성의 영역이다. 그래서 생각에는 뚝심이 중요하다. 비록 느려 보이지만 어떤 문제에 대하여 뚝심 있게 천천히 오랫동안 생각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몇 달째, 몇 년째 천착하는 생각의 주제가 있는가?

우리의 생각이 심각한 속도위반을 범하고 있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는 고은 선생 시처럼,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혜민 스님 책 제목처럼 이제 생각의 폭주를 멈춰야 한다. 인생은 한 곳에서 빨리 사진을 찍고 다른 곳으로 서둘러 이동해서 또 기념사진을 찍어야 하는 단체 여행이 아니다. 여행은 어디를 가든 천천히 가면 볼만한 것이 많지만 서둘러 가면 별 볼일 없기 마련이다.

고무적인 것은 생각의 속도를 늦추려는 자발적 노력이 우리 사회에서 이미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걷기이고, 다른 하나가 인문학 열풍이다. 가을, 이 두 가지를 하기에 최적의 시간이다. 디지털 기기를 끄고, 문밖으로 나가야 한다. 멈추고 들여다보는 인문 정신을 실천해 볼 시간이다. 느리게 생각하기, 천천히 걷기, 하루의 아침을 천천히 그리고 여유 있게 맞이하기, 바쁠수록 놓치지 말아야 할 행복의 조건들이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행복연구센터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12/2014101202205.html



Posted by 겟업
2015. 1. 22. 23:49

허성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녹취록

 

사단법인 한국엔지니어클럽

일 시: 2010 6 17 (오전 7 30

장 소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521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 2층 국화룸

 

 

○ 저는 지난 6 10일 오후 5 1분에 컴퓨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나로호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여기에 계신 어르신들도 크셨겠지만 저도 엄청나게 컸습니다그런데 대략 6시쯤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7시에 거의 그것이 확정되었습니다저는 성공을 너무너무 간절히 바랐습니다그날 연구실을 나오면서 이러한 생각으로 정리를 했습니다제가 그날 서운하고 속상했던 것은 나로호의 실패에도 있었지만 행여라도 나로호를 만들었던 과학자기술자들이 실망하지 않았을까 그분들이 의기소침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더 가슴 아팠습니다그분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더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어떻게 이것을 학생들에게 말해 주고 그분들에게 전해 줄까 하다가 그로부터 얼마 전에 이런 글을 하나 봤습니다.

 

1600년대에 프랑스에 라 포슈푸코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그 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그러나 큰 불은 바람이 불면 활활 타오른다.’라는 말을 했습니다저는 우리의 우주에 대한 의지가 강열하다면 또 우리 연구자과학자들의 의지가 강열하다면 나로호의 실패가 더 큰 불이 되어서 그 바람이 더 큰 불을 만나서 활활 타오르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 그런데 이 나로호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러한 것도 바로 우리의 역사와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이 실패가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고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을 국민이 부끄러움으로 여기지만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습니다.

 

-1957 년입니다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라고 하는 인공위성을 발사했습니다그 충격은 대단했다고 하는데초등학교 학생인 저도 충격을 엄청나게 많이 받았습니다그러고 나서 미국이 깜짝 놀랐습니다그리고 뱅가드호를 발사했는데 뱅가드호는 지상 2m에서 폭발했습니다이것을 실패하고 미국이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습니다왜 소련은 성공하고 우리는 실패했는가그 연구보고서의 맨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게 끝이 나 있습니다.

 ‘우리나라(미국)가 중학교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꿔야 한다.’ 아마 연세 드신 분들은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것도 독일 과학자들의 힘이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미국이 뱅가드호를 실패하고 그 다음에 머큐리재미니여러분들이 아시는 아폴로계획에 의해서 우주사업이 성공했습니다그런데 그것도 미국의 힘이 아니라 폰 브라운이라고 하는 독일 미사일기술자를 데려다가 개발했다는 것도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 중국은 어떻게 되냐면 여기는 과학자들이니까 전학삼(錢學森)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실 텐데요전학삼은 상해 교통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을 가서 캘리포니아에 공과대학에서 29살에 박사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수를, 2차대전 때 미국 국방과학위원회의 미사일팀장을그리고 독일의 미사일기지 조사위원회 위원장을 했습니다미국에서는 핵심기술자입니다.

 

그런데 이 전학삼이라는 인물이1950년에 미사일에 관한 기밀문서를 가지고 중국으로 귀국하려다가 이민국에 적발되었습니다그래서 간첩혐의로 구금이 되었고 그때 미국에서는 ‘미국에 귀화해라미국에 귀화하면 너는 여기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고 전학삼은 그것을 거절하고 있었습니다중국에서는 모택동이 미국 정부에 전학삼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때 중국 정부는 미국인 스파이를 하나 구속하고 있었고이 둘을 1  1로 교환하자고 그랬어요그런데 미국이 그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전학삼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우리는 너와 우리의 스파이를 교환하지만 네가 미국에 귀화한다면 너는 여기 있을 수 있다.’ 그랬더니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어요그러니까 미국에서 전학삼에게 ‘너는 중국에 가더라도 책 한 권노트 한 권메모지 한 장도 가져갈 수 없다맨몸으로만 가라.’ 그래도 전학삼은 가겠다고 했습니다.

 

나이 마흔여섯에 중국에 가서 모택동을 만났습니다여기서부터는 일화입니다모택동이 ‘우리도 인공위성을 쏘고 싶다할 수 있느냐.’ 그랬더니 전학삼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내가 그것을 해낼 수 있다그런데 5년은 기초과학만 가르칠 것이다. 그 다음 5년은 응용과학만 가르친다그리고 그 다음 5년은 실제 기계제작에 들어가면 15년 후에 발사할 수 있다그러니까 나에게 그동안의 성과가 어떠하냐 등의 말을 절대 15년 이내에는 하지 마라그리고 인재들과 돈만 다오15년 동안 나에게 어떠한 성과에 관한 질문도 하지 않는다면 15년 후에는 발사할 수 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모택동이 그것을 들어 주었습니다그래서 인재와 돈을 대주고 15년 동안은 전학삼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 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 나이 61, 1970 4월에 중국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습니다그리고 중국 정부가 이 모든 발사제작의 책임자가 전학삼이라는 것을 공식 확인해 주었습니다이렇게 보면 오늘날 중국의 우주과학 이러한 것도 전부 전학삼에서 나왔는데 그것도 결국은 미국의 기술입니다미국은 독일의 기술이고 소련도 독일의 기술입니다.저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러시아의 신세를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선진국도 다 그랬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 한국역사의 특수성

 

○ 미국이 우주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중·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꾸었다면 우리는 우리를 알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결론은 그것 입니다.

 

-역사를 보는 방법도 대단히 다양한데요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 아마 이 가운데서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하신 분들은 이걸 기억하실 것입니다500년 만에 조선이 망한 이유 4가지를 달달 외우게 만들었습니다기억나십니까“사색당쟁대원군의 쇄국정책성리학의 공리공론반상제도 등 4가지 때문에 망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우리는 500년 만에 망한 민족이구나그것도 기분 나쁘게 일본에게 망했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나로호의 실패를 중국미국소련 등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듯이 우리 역사도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아야 됩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고 한일합방이 1910년입니다금년이 2010년이니까 한일합방 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그러면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세계 역사를 놓고 볼 때 다른 나라 왕조는 600, 700, 1,000년 가고 조선만 500년 만에 망했으면 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는가 그 망한 이유를 찾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는 500년을 간 왕조가 그 당시에 하나도 없고 조선만 500년 갔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선은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갔을까 이것을 따지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1300 년대의 역사 구도를 여러분이 놓고 보시면 전 세계에서 500년 간 왕조는 실제로 하나도 없습니다서구에서는 어떻게 됐느냐면신성로마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이지 왕조가 아닙니다오스만투르크가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그런데 그것도 제국이지 왕조는 아닙니다유일하게 500년 간 왕조가 하나 있습니다에스파냐왕국입니다그 나라가 500년째 가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에스파냐왕국은 한 집권체가 500년을 지배한 것이 아닙니다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어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어이거 안 되겠다형님에스파냐 가서 왕 좀 하세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트가 에스파냐에 가서 왕을 했습니다이렇게 왔다 갔다 한 집권체이지 단일한 집권체가 500년 가지 못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째 가고 있는 것은 조선 딱 한 나라 이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잠깐 위로 올라가 볼까요

고려가 500년 갔습니다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고구려가 700년 갔습니다백제가 700년 갔습니다.  신라가 BC 57년에 건국됐으니까 BC 57년 이후에 세계 왕조를 보면 500년 간 왕조가 딱 두 개 있습니다러시아의 이름도 없는 왕조가 하나 있고 동남 아시아에 하나가 있습니다그 외에는 500년 간 왕조가 하나도 없습니다그러니까 통일신라처럼 1,0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고구려백제만큼 7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과학입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입니다한 왕조가 세워지면 500, 700, 1,000년을 갔습니다왜 그럴까요그럴려면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성립해야 합니다.하나는 우리 선조가 몽땅 바보다그래서 권력자들,힘 있는 자들이 시키면 무조건 굴종했다그러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500, 700, 1,000년 갔을 것입니다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바보가 아니었다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시 말씀드리면 인권에 관한 의식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면또 잘 대드는 성격이 있다면최소한도의 정치적인 합리성최소한도의 경제적인 합리성조세적인 합리성법적인 합리성문화의 합리성 이러한 것들이 있지 않으면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장기간의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기록의 정신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25년에 한 번씩 민란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동학란이나 이런 것은 전국적인 규모이고이 민란은 요새 말로 하면 대규모의 데모에 해당합니다우리는 상소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백성들이기생도 노비도 글만 쓸 수 있으면 ‘왕과 나는 직접 소통해야겠다관찰사와 이야기하니까 되지를 않는다.’ 왕한테 편지를 보냅니다그런데 이런 상소제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편지를 하려면 한문 꽤나 써야 되잖아요‘그럼 글 쓰는 사람만 다냐글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언문상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그래도 글줄 깨나 해야 왕하고 소통하느냐나도 하고 싶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신문고를 설치했습니다‘그럼 와서 북을 쳐라’ 그러면 형조의 당직관리가 와서 구두로 말을 듣고 구두로 왕에게 보고했습니다이래도 또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여러분신문고를 왕궁 옆에 매달아 놨거든요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면 ‘왜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만 그걸하게 만들었느냐우리는 뭐냐’ 이렇게 된 겁니다그래서 격쟁(?)이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격은 칠격(?)자이고 쟁은 꽹과리 쟁()자입니다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라혹은 대형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흔들어라그럼 왕이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습니다이것을 격쟁이라고 합니다.

 

 

○ 우리는 이러한 제도가 흔히 형식적인 제도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입니다24년 동안 상소신문고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 입니다이것을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입니다영조 같은 왕은 백성들이 너무나 왕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니까 아예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여기에 모이시오.’ 해서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 보셨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이 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통치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제도가 생겼다고 봐야 합니다그러면 이 나라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아까 말씀 드린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후자에 해당합니다이 나라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다. 그러면 최소한도의 합리성이 있었을 것이다그 합리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조금 김새시겠지만 기록의 문화입니다.여러분이 이집트에 가 보시면저는 못 가봤지만 스핑크스가 있습니다그걸 딱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할까요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이 있습니다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다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이집트 사람중국 사람들은 재수도 좋다좋은 선조 만나서 가만히 있어도 세계의 관광달러가 모이는 구나’

 

여기에 석굴암을 딱 가져다 놓으면 좁쌀보다 작습니다우리는 뭐냐이런 생각을 하셨지요저도 많이 했습니다그런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그러한 유적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베르사유의 궁전같이 호화찬란한 궁전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여러분만약 조선시대에 어떤 왕이 등극을 해서 피라미드 짓는 데 30만 명 동원해서 20년 걸렸다고 가정을 해보죠그 왕이 ‘국민 여러분조선백성 여러분내가 죽으면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그러니 여러분의 자제 청·장년 30만 명을 동원해서 한 20년 노역을 시켜야겠으니 조선백성 여러분양해하시오.’ 

 

그랬으면 무슨 일이 났을 것 같습니까‘마마마마가 나가시옵소서.’ 이렇게 되지 조선백성들이 20년 동안 그걸 하고 앉아있습니까안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문화적 유적이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왕이 베르사유궁전 같은 것을 지으려고 했으면 무슨 일이 났겠습니까‘당신이 나가시오우리는 그런 것을 지을 생각이 없소.’ 이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유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대신에 무엇을 남겨 주었느냐면 기록을 남겨주었습니다. 여기에 왕이 있다면바로 곁에 사관이 있습니다

여러분이렇게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여러분께서 아침에 출근을 딱 하시면어떠한 젊은이가 하나 달라붙습니다그래서 여러분이 하시는 말을 다 적고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을 다 적고둘이 대화한 것을 다 적고왕이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언제 화장실 갔으면 화장실 갔다는 것도 다 적고그것을 오늘 적고내일도 적고다음 달에도 적고 돌아가신 날 아침까지 적습니다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습니다우리가 사극에서 살살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살살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심지어 인조 같은 왕은 너무 사관이 사사건건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싫으니까 어떤 날 대신들에게  ‘내일은 저 방으로 와저 방에서 회의할 거야.’ 그러고 도망갔습니다거기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사관이 마마를 놓쳤습니다어디 계시냐 하다가 지필묵을 싸들고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인조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데서 회의를 하는데도 사관이 와야 되는가?’ 그러니까 사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마마조선의 국법에는 마마가 계신 곳에는 사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었습니다너무 그 사관이 괘씸해서 다른 죄목을 걸어서 귀향을 보냈습니다그러니까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습니다이렇게 500년을 적었습니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입니다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에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습니다그러한 사람이 왕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며 다 적습니다이걸 500년을 적는데어떻게 했냐면 한문으로 써야 하니까 막 흘려 썼을 것 아닙니까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정서를 했습니다이걸 사초라고 합니다그러다가 왕이 돌아가시면 한 달 이내이것이 중요합니다한 달 이내에 요새 말로 하면 왕조실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합니다사관도 잘못 쓸 수 있잖아요그러니까 ‘영의정이러한 말 한 사실이 있소이러한 행동한 적이 있소?’ 확인합니다그렇게 해서 즉시 출판합니다. 4부를 출판했습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나중에는 금속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4부를 찍기 위해서 활자본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입니까사람이 쓰는 것이 경제적입니까쓰는 게 경제적이지요그런데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면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 빼먹을 수 있습니다글자 하나 잘못 쓸 수 있습니다하나 더 쓸 수 있습니다이렇게 해서 후손들에게 4부를 남겨주는데 사람이 쓰면 4부가 다를 수 있습니다그러면 후손들이 어느 것이 정본인지 알 수 없습니다그러니까 목판활자금속활자본을 만든 이유는 틀리더라도 똑같이 틀려라그래서 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했습니다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 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이것이 6,400만자입니다. 6,400만자 하면 좀 적어 보이지요그런데 6,400만자는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보면 11.2년 걸리는 분량입니다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학자는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러한 생각 안 드세요‘사관도 사람인데 공정하게 역사를 기술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가끔 드시겠지요

사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를 쓰도록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씀드리죠.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뭐냐 하면 태종실록입니다‘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습니다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습니다‘보지 마시옵소서.’ ‘왜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이 참았습니다몇 년이 지났습니다또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습니다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 희 정승이 나섰습니다‘마마보지 마시옵소서.’ ‘왜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이걸 세종이 들었겠습니까안 들었겠습니까들었습니다‘네 말이 맞다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교지를 내렸습니다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중종은 슬쩍 봤습니다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그러나 그 누구도 안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여러분왕이 못 보는데 정승판서가 봅니까정승판서가 못 보는데 관찰사가 봅니까관찰사가 못 보는데 변사또가 봅니까이런 사람이 못 보는데 국민이 봅니까여러분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조선시대 그 어려운 시대에 왕의 하루하루의 그 행적을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힘들게 적어서 아무도 못 보는 역사서를 500년을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썼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이 땅은 영원할 것이다그리고 우리의 핏줄 받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그러니까 우리의 후손들이여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가 살았던 문화제도양식을 잘 참고해서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어려운 시기에 왕도 못 보고 백성도 못 보고 아무도 못 보는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남겨주었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인의 보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물이기에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 놨습니다.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있습니다승정원은 오늘날 말하자면 청와대비서실입니다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지요이 최고 권력기구가 무엇을 하냐면 ‘왕에게 올릴 보고서어제 받은 하명서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회의를 했습니다이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습니다아까 실록은 그날 밤에 정서했다고 했지요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전월 분을 다음 달에 정리했습니다이 승정원일기를 언제까지 썼느냐면 조선이 망한 해인 1910년까지 썼습니다누구 보라고 써놓았겠습니까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유네스코가 조사해보니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288년 분량이 남아있습니다이게 몇 자냐 하면 2억 5,000만자입니다요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납니다이러한 방대한 양을 남겨주었습니다이것이 우리의 선조입니다.

 

○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날 日자반성할 省자입니다왕들의 일기입니다정조가 세자 때 일기를 썼습니다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도 썼습니다선대왕이 쓰니까 그 다음 왕도 썼습니다선대왕이 썼으니까 손자왕도 썼습니다언제까지 썼느냐면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썼습니다

아까 조선왕조실록은 왕들이 못 보게 했다고 말씀 드렸지요선대왕들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정조가 고민해서 기왕에 쓰는 일기를 체계적조직적으로 썼습니다국방에 관한 사항경제에 관한 사항과거에 관한 사항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습니다

 

여러분, 150년 분량의 제왕의 일기를 가진 나라를 전 세계에 가서 찾아보십시오

저는 우리가 서양에 가면 흔히들 주눅이 드는데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언젠가는 이루어졌으면 하는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전부 한글로 번역합니다. 이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은 개략적이나마 번역이 되어 있고 나머지는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이것을 번역하고 나면 그 다음에 영어로 하고 핀란드어로 하고 노르웨이어로 하고 덴마크어로 하고 스와힐리어로 하고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합니다그래서 컴퓨터에 탑재한 다음날 전 세계 유수한 신문에 전면광고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인 여러분아시아의 코리아에 150년간의 제왕의 일기가 있습니다. 288년간의 최고 권력기구인 비서실의 일기가 있습니다실록이 있습니다혹시 보시고 싶으십니까아래 주소를 클릭하십시오당신의 언어로 볼 수 있습니다.’ 해서 이것을 본 세계인이 1,000만이 되고, 10억이 되고 20억이 되면 이 사람들은 코리안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야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어떻게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가우리나라는 뭔가.’이러한 의식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그게 뭐냐면 국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한국이라고 하는 브랜드가 그만큼 세계에서 올라가는 것입니다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것을 남겨주었는데 우리가 지금 못 하고 있을 뿐입니다.

 

○ 이러한 기록 중에 지진에 대해 제가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지진이 87회 기록되어 있습니다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3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249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조선왕조실록에는 2,029회 나옵니다다 합치면 2,368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방폐장핵발전소 만들 때 이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것을 통계를 내면 어느 지역에서는 155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어느 지역은 200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이러한 지역을 다 피해서 2000년 동안 지진이 한 번도 안 난 지역에 방폐장핵발전소 만드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이렇게 해서 방폐장핵발전소 만들면 세계인들이 틀림없이 산업시찰을 올 것입니다그러면 수력발전소도 그런 데 만들어야지요정문에 구리동판을 세워놓고 영어로 이렇게 썼으면 좋겠습니다‘우리 민족이 가진 2,000년 동안의 자료에 의하면 이 지역은 2,000년 동안 단 한번도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따라서 이곳에 방폐장핵발전소수력발전소를 만든다대한민국 국민 일동.’ 이렇게 하면 전 세계인들이 이것을 보고 ‘정말 너희들은 2,000년 동안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느냐?’고 물어볼 것이고제가 말씀드린 책을 카피해서 기록관에 하나 갖다 놓으면 됩니다.

 

이 지진의 기록도 굉장히 구체적입니다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느냐 하면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 이것이 제일 약진입니다‘흙담에 금이 갔다흙담이 무너졌다돌담에 금이 갔다돌담이 무너졌다기왓장이 떨어졌다기와집이 무너졌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현재 지진공학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 내고 있습니다대략 강진만 뽑아보니까 통일신라 이전까지 11회 강진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11회 강진이조선시대에는 26회의 강진이 있었습니다합치면 우리는 2,000년 동안 48회의 강진이 이 땅에 있었습니다이러한 것을 계산할 수 있는 자료를 신기하게도 선조들은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 정치경제적 문제

 

○ 그 다음에 조세에 관한 사항을 보시겠습니다.

 세종이 집권을 하니 농민들이 토지세 제도에 불만이 많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옵니다세종이 말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는가?’ 신하들이 ‘사실은 고려 말에 이 토지세 제도가 문란했는데 아직까지 개정이 안 되었습니다.

 

세종의 리더십은 ‘즉시 명령하여 옳은 일이라면 현장에서 해결 한다’는 입장입니다그래서 개정안이 완성되었습니다세종12 3월에 세종이 조정회의에 걸었지만 조정회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왜 부결 되었냐면 ‘마마수정안이 원래의 현행안보다 농민들에게 유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그러나 농민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렇게 됐어요‘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하다가 기발한 의견이 나왔어요

 

‘직접 물어봅시다.’ 그래서 물어보는 방법을 찾는 데 5개월이 걸렸습니다세종12 8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그 결과 찬성 9 8,657반대 7 4,149표 이렇게 나옵니다찬성이 훨씬 많지요세종이 조정회의에 다시 걸었지만 또 부결되었습니다왜냐하면 대신들의 견해는 ‘마마찬성이 9 8,000, 반대가 7 4,000이니까 찬성이 물론 많습니다그러나 7 4,149표라고 하는 반대도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이 사람들이 상소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은 전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됐어요.

 

세종이 ‘그러면 농민에게 더 유리하도록 안을 만들어라.’해서 안이 완성되었습니다그래서 실시하자 그랬는데 또 부결이 됐어요그 이유는 ‘백성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릅니다.’였어요‘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하니 ‘조그마한 지역에 시범실시를 합시다.’ 이렇게 됐어요시범실시를 3년 했습니다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습니다‘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조정회의에서 또 부결이 됐어요‘마마농지세라고 하는 것은 토질이 좋으면 생산량이 많으니까 불만이 없지만 토질이 박하면 생산량이 적으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그래서 이 지역과 토질이 전혀 다른 지역에도 시범실시를 해 봐야 됩니다.’ 세종이 그러라고 했어요다시 시범실시를 했어요성공적이라고 올라왔어요.

 

세종이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또 부결이 됐습니다이유는 ‘마마작은 지역에서 이 안을 실시할 때 모든 문제점을 우리는 토론했습니다그러나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할 때 무슨 문제가 나는지를 우리는 토론한 적이 없습니다.’ 세종이 토론하라 해서 세종25 11월에 이 안이 드디어 공포됩니다

 

조선시대에 정치를 이렇게 했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

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고 이렇게 해서 13년만에 공포·시행했습니다.

 

대한민국정부가 1945년 건립되고 나서 어떤 안을 13년 동안 이렇게 연구해서 공포·실시했습니까

저는 이러한 정신이 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법률 문제

 

○ 법에 관한 문제를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3심제를 하지 않습니까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조선시대에 3심제는 없었습니다그런데 사형수에 한해서는 3심제를 실시했습니다.

원래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말 고려 문종 때부터 실시했는데이를 삼복제(三覆制)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맨 처음에는 변 사또 같은 시골 감형에서 하고두 번째 재판은 고등법원관찰사로 갑니다옛날에 지방관 관찰사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마지막 재판은 서울 형조에 와서 받았습니다재판장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습니다왕이 신문을 했을 때 그냥 신문한 것이 아니라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썼어요조선의 기록정신이 그렇습니다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입니다정조가 1700년대에 이 '심리록'을 출판했습니다

오늘날 번역이 되어 큰 도서관에 가시면 심리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왕이 사형수를 직접 신문한 내용이 거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왕들은 뭐를 신문했냐 하면 이 사람이 사형수라고 하는 증거가 과학적인가 아닌가 입니다또 한 가지는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서 왕들이 무수히 노력합니다이 증거가 맞느냐 과학적이냐 합리적이냐 이것을 계속 따집니다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습니다이런 것이 조선의 법입니다이렇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과학적 사실

 

○ 다음에는 과학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입니다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는 이미 다 아시겠지만 물리학적 증명이 없었습니다물리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시도했습니다종교법정이 그를 풀어주면서도 갈릴레오의 책을 보면 누구나 지동설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책은 출판금지를 시켰습니다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입니다. 1767년에 인류사에 나왔습니다.

 

-동양에서는 어떠냐 하면 지구는 사각형으로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하늘은 둥글고 지구는 사각형이다이를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이라고 얘기합니다그런데 실은 동양에서도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얘기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대표적인 사람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성리학자 주자입니다주희주자의 책을 보면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황진이의 애인고려시대 학자 서화담의 책을 봐도 ‘지구는 둥글 것이다지구는 둥글어야 한다바닷가에 가서 해양을 봐라 지구는 둥글 것이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떠한 형식이든 증명한 것이 1400년대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입니다이순지는 지구는 둥글다고 선배 학자들에게 주장했습니다그는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이것이 1400년대입니다그러니까 선배 과학자들이 ‘그렇다면 우리가 일식의 날짜를 예측할 수 있듯이 월식도 네가 예측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이순지는 모년 모월 모시 월식이 생길 것이라고 했고 그날 월식이 생겼습니다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일식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책입니다그 책은 오늘날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적인 업적을 쌓아가니까 세종이 과학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이때 이순지의 나이 약관 29살입니다그리고 첫 번째 준 임무가 조선의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들라고 했습니다여러분동지상사라고 많이 들어보셨지요동짓달이 되면 바리바리 좋은 물품을 짊어지고 중국 연변에 가서 황제를 배알하고 뭘 얻어 옵니다다음 해의 달력을 얻으러 간 것입니다달력을 매년 중국에서 얻어 와서는 자주독립국이 못될뿐더러또 하나는 중국의 달력을 갖다 써도 해와 달이 뜨는 시간이 다르므로 사리/조금의 때가 정확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선 땅에 맞는 달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됐습니다.

 

수학자와 천문학자가 총 집결을 했습니다이순지가 이것을 만드는데 세종한테 그랬어요‘못 만듭니다.’ ‘왜?’ ‘달력을 서운관(書雲觀)이라는 오늘날의 국립기상천문대에서 만드는데 여기에 인재들이 오지 않습니다.’ ‘왜 안 오는가?’ ‘여기는 진급이 느립니다.’ 그랬어요오늘날 이사관쯤 되어 가지고 국립천문대에 발령받으면 물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까행정안전부나 청와대비서실 이런 데 가야 빛 봤다고 하지요옛날에도 똑같았어요그러니까 세종이 즉시 명령합니다‘서운관의 진급속도를 제일 빠르게 하라.’ ‘그래도 안 옵니다.’ ‘왜?’ ‘서운관은 봉록이 적습니다.’ ‘봉록을 올려라.’ 그랬어요‘그래도 인재들이 안 옵니다. ‘왜?’ ‘서운관 관장이 너무나 약합니다.’ ‘그러면 서운관 관장을 어떻게 할까? ‘강한 사람을 보내주시옵소서왕의 측근을 보내주시옵소서.’ 세종이 물었어요‘누구를 보내줄까? 누구를 보내달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정인지를 보내주시옵소서.’ 그랬어요. 정인지가 누구입니까고려사를 쓰고 한글을 만들고 세종의 측근 중의 측근이고 영의정입니다.


세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 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습니다그래서 1,444년에 드디어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냈습니다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著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이 하루 10, 20, 1시간 틀려도 모릅니다 100, 200년 가야 알 수 있습니다이 달력이 정확한지 안 정확한지를 어떻게 아냐면 이 달력으로 일식을 예측해서 정확히 맞으면 이 달력이 정확한 것입니다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공개를 했습니다1,447년 세종 29년 음력 8 1일 오후 4 50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날 오후 6 55 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습니다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세종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고 붙여줬습니다. 이것이 그 후에 200년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하나는 아라비아하나는 중국하나는 조선입니다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든 핵심기술이 어디 있냐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 46초입니다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 여러분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홍대용이라는 사람은 수학을 해서 담헌서(湛軒書)’라는 책을 썼습니다. ‘담헌서는 한글로 번역되어 큰 도서관에는 다 있습니다이 담헌서’ 가운데 제5권이 수학책입니다홍대용이 조선시대에 발간한 수학책의 문제가 어떤지 설명 드리겠습니다‘구체의 체적이 6 2,208척이다이 구체의 지름을 구하라. cos, sin, tan가 들어가야 할 문제들이 쫙 깔렸습니다

 

조선시대의 수학책인 ‘주해수용(籌解需用)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sinA를 한자로 正弦, cosA를 餘弦, tanA를 正切, cotA를 餘切, secA를 正割, cosecA를 如割, 1-cosA를 正矢, 1-sinA를 餘矢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그러면 이런 것이 있으려면 삼각함수표가 있어야 되잖아요이 주해수용의 맨 뒤에 보면 삼각함수표가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제가 한 번 옮겨봤습니다. 예를 들면 正弦 25 42 51다시 말씀 드리면 sin25.4251도의 값은 0.4338883739118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제가 이것을 왜 다 썼느냐 하면 소수점 아래 몇 자리까지 있나 보려고 제가 타자로 다 쳐봤습니다소수점 아래 열세 자리까지 있습니다이만하면 조선시대 수학책 괜찮지 않습니까?

 

다른 문제 또 하나 보실까요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眞線에 있다조선시대 수학책 문제입니다이때는 子午線이라고 안 하고 子午眞線이라고 했습니다이런 것을 보면 이미 이 시대가 되면 지구는 둥글다고 하는 것이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線上에 있다甲地는 北極出地北極出地는 緯度라는 뜻입니다甲地는 緯度 37도에 있고 乙地는 緯度 36 30분에 있다甲地에서 乙地로 직선으로 가는데 고뢰(?) 12번 울리고 종료(鍾鬧) 125번 울렸다. 이때 지구 1도의 里數와 지구의 지름지구의 둘레를 구하라이러한 문제입니다.

 

이 고뢰(? ) , 종료(鍾鬧)는 뭐냐 하면 여러분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를 초등학교 때 사회책에서 보면 오늘날의 지도와 상당히 유사하지 않습니까옛날 조선시대의 지도가 이렇게 오늘날 지도와 비슷했을까이유는 축척이 정확해서 그렇습니다대동여지도는 십리 축척입니다십리가 한 눈금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왜 정확하냐면 기리고거(記里鼓車)라고 하는 수레를 끌고 다녔습니다 

 

기리고거가 뭐냐 하면 기록할 記자리는 백리 2백리 하는 里자里數를 기록하는고는 북 鼓자북을 매단 수레 車수레라는 뜻입니다어떻게 만들었냐 하면 수레가 하나 있는데 중국의 동진시대에 나온 수레입니다바퀴를 정확하게 원둘레가 17척이 되도록 했습니다17척이 요새의 계산으로 하면 대략 5미터입니다이것이 100바퀴를 굴러가면 그 위에 북을 매달아놨는데 북을 ‘뚱’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북을 열 번 치면 그 위에 종을 매달아놨는데 종을 ‘땡’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여기 고뢰종료라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그러니까 이것이 5km가 되어서 딱 10리가 되면 종이 ‘땡’하고 칩니다김정호가 이것을 끌고 다녔습니다.

 

우리 세종이 대단한 왕입니다몸에 피부병이 많아서 온양온천을 자주 다녔어요그런데 온천에 다닐 때도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이 기리고거를 끌고 갔어요그래서 한양과 온양 간이라도 길이를 정확히 계산해 보자 이런 것을 했었어요이것을 가지면 지구의 지름지구의 둘레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그러니까 원주를 파이로 나누면 지름이다 하는 것이 이미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 수학적 사실

 

○ 그러면 우리 수학의 씨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것인데요,

 여러분 불국사 가보시면 건물 멋있잖아요석굴암도 멋있잖아요불국사를 지으려면 건축학은 없어도 건축술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최소한 건축술이 있으려면 물리학은 없어도 물리술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물리술이 있으려면 수학은 없어도 산수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이게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졌던 의문입니다이것을 어떻게 지었을까.

 

그런데 저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 선생님을 너무 너무 존경합니다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에스파냐스페인에 있습니다. 1490년대에 국립대학이 세워졌습니다여러분이 아시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는 1600년대에 세워진 대학입니다우리는 언제 국립대학이 세워졌느냐삼국사기를 보면 682신문왕 때 국학이라는 것을 세웁니다그것을 세워놓고 하나는 철학과를 만듭니다관리를 길러야 되니까 논어맹자를 가르쳐야지요그런데 학과가 또 하나 있습니다김부식 선생님은 어떻게 써놓았냐면 ‘산학박사와 조교를 두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명산과입니다밝을 明자계산할 算자계산을 밝히는 과요새 말로 하면 수학과입니다수학과를 세웠습니다15세에서 30세 사이의 청년 공무원 가운데 수학에 재능이 있는 자를 뽑아서 9년 동안 수학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여기를 졸업하게 되면 산관(算官)이 됩니다수학을 잘 하면 우리나라는 공무원이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서 찾아보십시오수학만 잘 하면 공무원이 되는 나라 찾아보십시오이것을 산관이라고 합니다삼국시대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산관은 계속 되었습니다이 산관이 수학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됩니다산관들은 무엇을 했느냐세금 매길 때성 쌓을 때농지 다시 개량할 때 전부 산관들이 가서 했습니다세금을 매긴 것이 산관들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수학 상황을 알려면 무슨 교과서로 가르쳤느냐가 제일 중요하겠지요정말 제가 존경하는 김부식 선생님은 여기다가 그 당시 책 이름을 쫙 써놨어요삼개(三開), 철경(綴經), 구장산술(九章算術), 육장산술(六章算術)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그 가운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구장산술이라는 수학책이 유일합니다구장산술은 언제인가는 모르지만 중국에서 나왔습니다최소한도 진나라 때 나왔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어떤 사람은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좋은 책이면 무조건 다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 8장의 이름이 방정입니다방정이 영어로는 equation입니다방정이라는 말을 보고 제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저는 사실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부터 방정식을 푸는데방정이라는 말이 뭘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어떤 선생님도 그것을 소개해 주지 않았습니다그런데 이 책에 보니까 우리 선조들이 삼국시대에 이미 방정이라는 말을 쓴 것을 저는 외국수학인 줄 알고 배운 것입니다.

 

 9 장을 보면 9장의 이름은 구고(勾股)입니다갈고리 勾자허벅다리 股자입니다맨 마지막 chapter입니다방정식에서 2차 방정식이 나옵니다그리고 미지수는 다섯 개까지 나옵니다그러니까 5원 방정식이 나와 있습니다중국 학생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말을 모릅니다여기에 구고(勾股)정리라고 그래도 나옵니다자기네 선조들이 구고(勾股)정리라고 했으니까.

 

 여러분 이러한 삼각함수 문제가 여기에 24문제가 나옵니다24문제는 제가 고등학교 때 상당히 힘들게 풀었던 문제들이 여기에 그대로 나옵니다이러한 것을 우리가 삼국시대에 이미 교육을 했습니다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전부 서양수학인 줄 알고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밀률(密率)이라는 말도 나옵니다비밀할 때 密비율 할 때 率밀률의 값은 3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고려시대의 수학교과서를 보면 밀률의 값은 3.14로 한다이렇게 되어 있습니다아까 이순지의 칠정산외편달력을 계산해 낸 그 책에 보면 ‘밀률의 값은 3.14159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우리 다 그거 삼국시대에 했습니다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는 오늘날 플러스마이너스정사각형 넓이원의 넓이방정식삼각함수 등을 외국수학으로 이렇게 가르치고 있느냐는 겁니다.

 

저는 이런 소망을 강력히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초등학교나 중·고등 학교 책에 플러스마이너스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우리 선조들은 늦어도 682년 삼국시대에는 플러스를 바를 正자 정이라 했고 마이너스를 부채부담하는 부()라고 불렀다그러나 편의상 正負라고 하는 한자 대신 세계수학의 공통부호인 +-를 써서 표기하자또 π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682년 그 당시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우리는 π를 밀률이라고 불렀다밀률은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뜻이다오늘 컴퓨터를 π를 계산해 보면 소수점 아래 1조자리까지 계산해도 무한소수입니다그러니까 무한소수라고 하는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이 말은 철저하게 맞는 말이다그러나 밀률이라는 한자 대신 π라고 하는 세계수학의 공통 부호를 써서 풀기로 하자 하면 수학시간에도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없는 것을 가지고 대한민국이 세계 제일이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선조들이 명백하게 다큐멘트문건으로 남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조들이 그것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서양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거짓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이러한 것이 전부 정리되면 세계사에 한국의 역사가 많이 올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이것은 우리가 잘났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인 세계사를 풍성하게 한다는세계사에 대한 기여입니다.

 

 

 

◈ 맺는 말

 

○ 결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모든 자료는 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그런데 선조들이 남겨준 그러한 책이 조선왕조실록’ 6,400만자짜리 1권으로 치고 2 5,000만자짜리 승정원일기’ 한 권으로 칠 때 선조들이 남겨준 문질이 우리나라에 문건이 몇 권 있냐면 33만권 있습니다그런데 여러분 주위에 한문 전공한 사람 보셨습니까?

 

정말 엔지니어가 중요하고 나로호가 올라가야 됩니다그러나 우리 국학을 연구하려면 평생 한문만 공부하는 일단의 학자들이 필요합니다이들이 이러한 자료를 번역해 내면 국사학자들은 국사를 연구할 것이고복제사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복제사를 연구할 것이고경제를 연구한 사람들은 한국경제사를 연구할 것이고수학교수들은 한국수학사를 연구할 것입니다그런데 이러한 시스템이 우리나라에는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한문을 공부하면 굶어죽기 딱 좋기 때문에 아무도 한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결국 우리의 문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동경대학으로 가고 북경대학으로 가는 상황이 나타날 것입니다그러나 어떤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되냐 하면 공대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합니다그래야 한국물리학사건축학사가 나옵니다수학과 나온 사람이 한문을 해야 됩니다그래야 허벅다리갈고리를 아딱 보니까 이거는 삼각함수구나 이렇게 압니다밤낮 논어·맹자만 한 사람들이 한문을 해서는 ‘한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책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사회에 나가시면 ‘이 시대에도 평생 한문만 하는 학자를 우리나라가 양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여론을 만들어주십시오

이 마지막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이런 데서 강연 요청이 오면 저는 신나게 와서 떠들어 댑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겟업
2015. 1. 7. 22:11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뒤, 조문 방북과 분향소 설치 문제가 남남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이미 정부는 정부 차원에서 조문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내렸지만, 진보진영에서는 “정부와 민간 차원의 조문단 파견”을 요구하고 있다. 26일에는 서울의 한 대학과 덕수궁 앞 광장에 분향소가 설치됐다가 즉각 철거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조문·분향소 설치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을 싣는다.


죽은 자들에 대한 예우


국가는 하고 국민은 할 수 없는 표현의 영역은 있을 수 없어…
죽은 자에게 조의를 표하는 것과 그 행위를 찬양하는 것은 달라


우리 정부와 미국이 ‘북한 주민에게’ 애도를 표했다고 하는데 한낱 말장난이다. 당연히 우리가 초상집에 가면 유족들에게 애도를 표하지 않는가. 애도는 애도인 것이다. 인권침해의 괴수였던 카다피의 사체 처리에 대해서도 국제인권단체들이 문제제기를 한 것처럼, 아무리 독재자라 할지라도 그 죽음은 우리에게 거부할 수 없는 엄숙함과 예우를 요구한다.


문제는 김정일만 죽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일부는 김일성과 북한 정부에 대해 유대인이 히틀러나 나치독일에 대해 느끼는 공포심과 증오감을 느낀다. 전쟁 도중에 자신의 가족을 인민군의 총구 앞에 잃은 사람들이 그 ‘학살자’에 대해 갖는 증오감은 스스로에게는 어떤 종교적 신념보다도 자랑스럽고 떳떳한 것이다. 그들의 신념을 존중해주지 않는 언사는 그들에게는 자신을 모욕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을 부인하는 것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전쟁보다 더욱 심한 고통을 당한 유대인들에게 ‘대학살은 없었어, 모두 거짓말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이들이 겪은 인간성의 상실을 확장하는 ‘행위’라고 보고, 독일은 대학살 부인죄를 제정하였다. 그 외에도 많은 국가들이 소수를 차별과 핍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혐오죄를 두고 있다. 광주학살의 전주곡이었던 ‘12·12’ 주도자를 ‘혁명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은 법 위반에 관계없이 거기서 죽은 자들과 그 유족들에 대한 예우가 아닌 것이다.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죄)의 폐지가 힘든 이유는 이 조항이 전쟁유족들에게 ‘혐오죄’와 비슷한 심정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언어에는 ‘학살자에 대한 공포와 증오감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다수들에 둘러싸인 소수’라는 일종의 ‘포위의식’이 가득하다.


결국 김정일 분향소 설치 문제는 법의 문제가 아니라 죽은 자(들)에 대한 예우의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이 법(국가보안법)을 들고나와 분향소를 철거한 것은 잘못이다. 국가가 조문을 이희호·현정은씨에게 허가했다는 사실 자체가 분향소가 불법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국가만 할 수 있고 국민은 할 수 없는 여러 행위들이 법률에 정해져 있지만, 표현의 영역에서는 국가는 하고 국민은 할 수 없는 의사표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헌법 21조 검열금지 조항의 명령이다. 국가기밀 등을 제외하고, ‘원래는 할 수 없지만 국가의 허가를 받으면 할 수 있는 말’은 헌법상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우리가 쉽게 수용하는 ‘적장에 대한 예우’라는 문구에서 볼 수 있듯이 죽은 자에게 조의를 표하는 것과 죽은 자의 행위를 찬양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또 국가보안법 7조는 두말할 것 없이 위헌이다. 국가보안법의 다른 조항들은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물리적 행위’를 범죄시하지만 7조는 언사(찬양·고무·선전·동조) 자체를 범죄시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의 국가보안법은 물리적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지 그러한 생각을 처벌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1789년 반란법도 “미국인들을 욕보이는… 미국 정부에 반하는 거짓되고 논란적이고 악의적인 문서의 작성”을 처벌한다고 하여, 당시 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사법부의 위헌심사권을 세계 처음으로 확립한 ‘마버리 대 매디슨’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이 법을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분향소 설치를 법의 문제가 아니라 예우의 문제로 다루면 해결책이 보인다. 이번에 죽은 자와 60년 전에 죽은 자들 모두에게 예우를 갖추는 방법은 무엇일까? 김정일의 죽음을 속으로, 사적 모임으로 애도하는 사람은 많다. 그의 죽음으로 당사국들이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올스톱된 북-미 회담, 같이 올스톱된 인도적 지원 및 에너지 경협, 이 때문에 늘어나는 아사자들과 지연되는 군축·평화…. 서울대에 분향소를 설치한 학생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런 사적 애도들을 모두 적발해서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전쟁유족들도 원치 않는 것이다. 언론이 자꾸 뉴스 거리로 만들고 경찰이 자꾸 법적 논란을 일으키니 전쟁유족들은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고 모욕감을 느끼게 되는 것 아닌가.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준법’ 명제에 좌우는 없다


현행법상 북한은 반국가단체이고 지속적으로 안보 위협하는 상황…

북한과의 교류에 일정한 제한 둔 실정법에 따라 이성적 대처 필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 지도 어언 열흘이 지났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조문 방북의 문제로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조문과 관련하여 정부는 특별한 관계를 가졌던 소수의 사람에 대해서만 방북을 허용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렇지만 일부 단체에서는 개별적 조문 방북을 허용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이 조문 문제와 함께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 분향소 설치 문제이다. 이 문제는 며칠 전 서울대에서 분향소 설치 제안에 관한 대자보가 붙으면서 시작되었고, 분향소는 다수의 반대 속에서 설치되었다가 곧바로 철거되었다. 또한 한 민간단체에서도 서울 도심에 분향소를 설치하려고 시도하다가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었다.


사람이 숨지면 애도와 조문을 하는 것이 인간 사회의 기본적인 예인 것은 분명하다. 더구나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헌신한 분이 사망하면 그를 기리기 위하여 분향소를 설치할 수도 있다. 그런데 북한 지도자의 사망으로 인한 조문이나 분향소 설치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사망으로 인한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복잡하면서도 비극적인,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추구하면서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남북문제가 얽혀 있다. 한반도의 현실은 전쟁과 군사적 대치, 긴장과 교류라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만들어져 왔다. 세계가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끝냈음에도 한반도는 여전히 갈등과 대치 속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더구나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은 우리에게 북한은 경계의 대상이라는 것을 각인시켜 주고 있다.


우리나라 현행법은 국제법과 달리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북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남북한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하고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교류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우리나라는 남북교류협력법을 제정하고 북한과 인적·물적 교류를 통하여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물론 이에는 북한 역시 경제현실을 고려한 태도의 변화가 있었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은 우리 헌법에 의하여 한반도에서 유일한 국가인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민의 생존에 위협을 주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반국가단체로서의 법적 지위에는 변함이 없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남북관계가 과거와 달리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두 대통령의 방북, 개성공단의 설치로 인한 진전된 경제교류뿐만 아니라, 금강산 관광을 통하여 한동안 많은 사람들이 한정된 지역이지만 북한을 방문하였다. 이렇게 남북의 교류가 빈번해졌음에도 북한은 지속적인 도발로 우리의 안보를 시험하면서 여전히 양면적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조문을 위한 분향소의 설치나 방북을 허용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법치국가이다. 우리의 실정법은 북한과의 교류에 있어서 일정한 제한을 두고 있다. 조문을 위하여 분향소를 설치하거나 방북하겠다고 요구하는 사람들도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이들에게는 대한민국의 법을 준수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또한 국가는 이들 국민을 보호하고 자유와 생명을 지켜야 할 책무가 있다. 실정법에 따라 북한이 반국가단체라는 점에서 이 단체의 수장을 위한 분향소 설치는 허용될 수 없다.


법은 우리의 약속이며 우리 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한 근간이다. 국민이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가와 사회의 안전과 평화는 유지될 수 없다. 남북관계가 법으로만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하여도,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대한민국의 실정법을 준수해야 한다. 법을 지켜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 앞에서 진보와 보수는 없다. 조문 방북이나 분향소 설치 문제는 우리나라 실정법에 따라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이다. 더구나 북한은 여전히 반국가단체이고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대상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하여 남북이 경협을 통하여 교류한다고 하여도, 이러한 한반도의 현실을 무시하고 개인이나 단체가 조문 방북을 요구하거나 분향소를 설치하겠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argument/512089.html



Posted by 겟업
2015. 1. 5. 21:46

지난 15일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요즘 연예인은 사실상 공인인 만큼 엄격한 잣대가 적용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소신을 밝혔다. ‘국민 엠시(MC)’ 강호동씨가 잠정 은퇴를 선언하는 등 연예계를 뒤흔들고 있는 연예인 탈세 의혹에 대한 발언이었다. 강호동씨가 탈세에 이어 강원도 평창에 땅 투기를 했다는 의혹까지 보도되자 연예인의 도덕성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연예인들에게 들이대는 도덕성 잣대는 정당한지에 대해 두 가지 의견을 들어봤다.


‘공인 타령’으로 이득을 얻는 자들


어떠한 권한도 위임받지 않은 연예인은 당연히 공인이 아니다
‘아파트 신공’ 여성부 장관처럼 진짜 공인은 강호동 뒤에 숨는다


난리도 아니다. 3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강호동에 대한 세간의 여론은 수시로 급변했다. 탈세 의혹이 보도되자 그를 방송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득세했고, 막상 그가 ‘잠정’ 은퇴를 선언하니 옹호론자들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고의 탈세가 아니라 세무사의 단순 실수인 것 같다는 국세청의 입장이 보도되고 여론이 잠잠해질 무렵, 평창 땅 투기 의혹이 다시 가십의 시장으로 기어 나온다. 여론이 종잇장처럼 펄럭이며 앞뒤로 뒤집히는 동안 강호동은 몇 번이고 ‘죽일 놈’과 ‘희생양’ 사이를 오갔다. 어느 의협심이 넘치는 시민은 탈세 의혹 기사만 보고 발 빠르게 강호동을 고발했단다. 가히 초현실적이다.


개인적으로 이 상황의 비루함에 더없이 짜증이 난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동정표를 주자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강호동이 실제로 불법적인 방법으로 세금을 탈루했고, 투기 목적으로 부동산을 구매했다는 증거가 나와 혐의를 확정할 수 있으면 철저하게 비판하고 합당한 처벌을 하면 된다. 그러나 단순히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아직 입증되지 않은 혐의 의혹이 대중들에게 공표되고, 민감한 개인정보인 납세 내역과 재산 증식 과정이 만천하에 까발려져 공공연한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나나 이 글을 읽을 당신이 그런 것처럼, 강호동 역시 어떤 혐의로 수사를 받든 유죄 확정 전까지는 무죄 추정을 받을 권리, 소중한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권리, 그리고 여론재판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그것이 법이 보장하는 시민의 권리다.


물론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시청자들의 사랑을 먹고사는 연예인들은 ‘공인’이므로 단순 혐의만으로도 도덕적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여기서 잠시 ‘공인’이란 개념에 대해, 우리가 왜 ‘공인’들에게 고도의 도덕성을 요구하는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공직자나 정치인들을 ‘공인’이라 부르는 것은, 공동체가 그들에게 법률 제정과 자원 분배, 정책 입안 등의 권한을 위임했기 때문이다. 고도로 집중된 권한을 위임받은 이들의 언행은 공동체의 실질적 이익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그 권한의 공정한 행사를 위해 필연적으로 고도의 도덕성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재산과 납세 내역 공개를 요구하며,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는지 검증하는 과정을 거친다.


연예인들은 어떤가? 우리는 그들에게 어떠한 권한도 위임한 적이 없다. 그들의 활동이 국가적 의제를 세우거나 정책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연예인은 대중을 상대로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판매하는 ‘고소득 유명인’일 뿐, 공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범죄 사실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단순 혐의만으로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되고, 설령 범죄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법이 정한 이상의 과도한 처벌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어떤 이들은 연예인들이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문화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인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 논리대로라면 우리 사회는 유명 연예인 한두 명의 언행에 전체의 도덕관념이 출렁일 정도로 정신적 기반이 취약해졌다는 소리다. 그쯤 되면 이미 연예인의 문제 이전에 우리 사회가 교육과 자체 정화 기능을 잃었다는 뜻이다. 연예인 핑계 댈 일이 아니다.


공인과 연예인의 경계가 흐려지면 득 볼 이들은 따로 있다. “요즘 연예인은 ‘사실상’ 공인인 만큼 엄격한 잣대가 적용돼야 하지 않겠는가.”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인사청문회에서 했던 말이다. 강호동이 “어찌 뻔뻔하게 티브이에 얼굴을 내밀고 웃을 수 있겠느냐”며 잠정 은퇴를 선언하는 동안, 김금래는 실거래가 3억2000만원짜리 아파트를 9500만원에 사는 신공을 펼치고도 여성가족부 장관에 임명됐다. 진짜 검증 받아야 할 공인들은 강호동의 넓은 등을 방패 삼아 몸을 숨겼다. 그리고 이젠 3년 전에 추징금 내고 끝났다는 인순이의 탈세 의혹이 기어 나온다. 3년 묵은 이 떡밥은 또 무엇을 감추기 위해 던져진 것인가? 우리는 언제까지 입증도 안 된 동료 시민들의 혐의 의혹을 미리 비난하느라 진짜 공인들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할 텐가?


이승한 티브이 비평가


대중의 인기 얻는 순간 공인이다


왜 그리 가혹하고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는지 서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 인기는 공짜로 얻어지지 않는다


강호동이 은퇴를 선언했다. 비록 잠정 은퇴라는 표현으로 추후의 복귀 가능성을 열어두었지만, 세금 탈루에 대한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선택이었다. 일부 누리꾼들은 고의로 탈세한 것이 아니고 검찰 기소가 이루어진 것도 아닌데 은퇴는 너무하지 않으냐는 동정의 의견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유명 연예인은 공인이기 때문에 더욱 엄격한 잣대의 도덕성과 처신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연예인은 과연 공인인가 아닌가? 필자의 생각에 연예인은 공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느 정도 인기가 있고 잘 알려진 유명 연예인의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예인이 관련된 도박 또는 마약 사건, 교통사고, 병역 문제 등은 일반인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끔 큰 비중으로 언론에 보도된다.


연예인이 공인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단순히 관심을 많이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중의 사랑을 받을뿐더러 대중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비록 공무원처럼 국가에 관련된 공적인 일을 하지는 않지만, ‘공적’(公的)이라는 의미 자체가 사회 전체의 구성원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의미하므로 연예인은 공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


따라서 유명 연예인은 평소 자신의 언행에 대해서 늘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물론 갑작스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흥적으로 또는 순발력 있게 대응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결국 평소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 자신을 늘 돌아보는 마음, 자아존중감과 겸손의 미덕을 동시에 갖추려는 마음, 상식과 사회적 규칙을 존중하고 따르는 마음, 신중하게 생각하여 충동적인 행동을 자제하는 마음 등이 연예인들에게 요구된다.


평상시에 늘 명심하면서 몸에 배게끔 하라. 만일 그럼에도 잘못된 행동이나 범법 행위를 저지르게 된다면,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며, 사람들의 용서를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연예인도 우리 대중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또는 그녀)가 진심으로 후회와 반성을 한 다음에 용서를 구하면, 대중은 너그러워질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끝까지 부인하고, 책임의 경감을 얻기 위해서 몸부림치며, 애초에 진심 어린 반성이나 사과가 없다면, 대중은 그(또는 그녀)를 매몰차게 벼랑 끝으로 내몰 것이다.


연예인에게 왜 그리 가혹하고 엄중한 잣대와 요구를 들이대는지 서운한 감정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고마워하라. 대한민국의 연예인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부와 명예, 그리고 인기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나의 재능과 노력 못지않게 더 중요한 원천이 있음에랴. 그것은 바로 대중의 존재, 그리고 그들의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다.


대중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대중과의 애착관계는 사랑과 관심에서 미움과 무관심으로 바뀔 수 있다. 자녀와 부모의 애착관계는 좀처럼 끊어지지 않지만, 연예인과 대중의 애착관계는 순식간에 끊어지곤 한다. 국민들은 유명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자세하게 관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스타여서 부담스러워하기 이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국민들은 결국 선택할 것이다. 공인으로서의 처신을 잘하고 책임을 다하는 연예인은 계속 사랑해 주고 언젠가는 용서하여 기회를 다시 주지만, 그렇지 못한 연예인에게는 가혹한 판단과 행동을 보일 것이다. 국민들의 마음은 변화할 수 있다. 연예인들이여, 자신이 대중의 인기를 얻는 순간 공인으로 공인(公認)되는 것임을 꼭 기억하라.


연예인도 사람인지라 인기를 얻은 다음에 과대망상적인 사고가 슬슬 자라나기 시작할 수 있다. 내가 이렇게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하니 일반인처럼 평범하게 지낼 수 있으랴. 고급 음식과 술, 그리고 아름다운 이성들을 찾을 수 있다. 묘한 특권의식도 생겨날 수 있다. 돈을 더 벌고자 하는 욕심이 일어날 수도 있다. ‘누가 알겠어, 그리고 내 사생활인데 뭐 어때?’라는 생각이 들면 망할 징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럴 때는 초심을 다잡고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라. 그래야 파국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손석한 정신과 전문의

Posted by 겟업
2014. 12. 26. 17:15

결혼식을 한 부부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경향이 늘어난다고 한다. 남성보다 여성이 더 원해서란다. ‘혹시 금방 헤어질 것에 대비해서 그런가?’ 그런데 아니다. 취업을 원하지만 결혼 전까지 취업을 못한 여성들의 결정이란다. 취업 지원 때 서류상 기혼이면 불리해서 일단 미혼으로 지원한다고 한다. 하필 왜 여성들이 무슨 불리 때문에 그러는가? 기혼여성을 채용하면 금방 임신ㆍ출산 때문에 업무에 지장이 있으리라는 회사의 우려(?)로 인해 탈락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취업할 때까지 혼인신고를 미루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 해외토픽감이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이 땅의 여성들이 출산계획을 세우려고 할까? 많은 전문가들이 저출산 현상의 주원인으로서 교육ㆍ돌봄비용 부담을 언급한다. 물론 아주 틀린 진단은 아니다. 그래서 어린이집 수는 급격히 확대되고, 임신ㆍ출산 전후 비용 지원 목록도 다양해졌다. 게다가 무상보육제도까지 도입됐다. 그러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는 대책은 효과를 볼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렇다면 저출산의 근본적 원인은? 가족도 부부도 아닌, ‘여성’의 돌봄부담이다. 더 나아가 돌봄부담을 기꺼이 하려는 여성을 시장이 채용 기피와 경력단절 강요로써 벌주는 현상이다.


‘남성=취업노동 담당자, 여성=무보수 가사ㆍ돌봄노동 담당자’ 구도를 ‘성별노동분리’라고 표현한다. 성별노동분리를 우리사회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남성은 취업노동에만 전념해도 되고 여성은 취업노동에 가사ㆍ돌봄노동을 이중으로 부담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래도 이중부담을 어떻게 해서든지 견뎌보려고 하는 여성에게 기업은 채용기피와 취업노동 중단 강요를 한다. 이중부담을 견뎌야 하고 원하는 취업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차라리 아이를 낳지 않는 방향으로 개별 여성이 무의식적으로 집단 반응을 하는 결과가 저출산의 지속이다. (가임기) 여성 전체는 조직화한 집단이 아니다. 그러나 성차별적 임신ㆍ출산 과정에서 갖게 되는 개인적 경험에 충실한 여성의 반응이 ‘출산파업’이라는 집단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린이집을 아무리 만들어도, 퇴근시간 되자마자 엄마가 뛰어야 하는 현실에서 이른바 직장맘은 한 명은 낳아도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는다. 받지 않던 비용지원을 받으면 도움은 된다. 그러나 바우처 카드에 넣어주는 돈 몇 십만원에 아이 더 낳겠다고 결심하는 여성이 얼마나 될까? 교육비 부담 높다고 국가가 어느 수준까지 비용 분담을 해줄 수 있을까? 아예 없던 국가와 사회의 지원이 생겨서 좋다는 반응이 당장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 반응은 오래가지 않는다.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야근하고 회식 가서 남성 동료와 함께 제때 승진하고자 한다고 생각해보자. 임신ㆍ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의 대가로 국가 지원을 받는 것보다, 중단 없는 취업노동으로 양육비를 스스로 벌고 넉넉한 노후도 스스로 만들고 싶다는 여성의 소망을 인정하자.


성별노동분리 구도 철폐를 전제로 하지 않는 국가의 돌봄비용 지원은 영리민간 어린이집 시장 규모만 키우고 있음을 이미 보고 있다. 사교육비 부담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면 앞으로 국가에서 사설학원 비용도 대줄 것인가? 재정정책상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고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사교육 시장 규모만 키울 뿐 저출산은 지속될 것이다.


물론, 성별노동분리 극복을 국가정책으로만 할 수는 없다. 기업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인력에 대한 시장 수요 변화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가 ‘성별노동분리 극복’을 명백한 정책 목표로 내세우지 않는 이상 저출산 극복의 길은 시작할 수 없다. 이른바 돌봄의 사회화를 위해 수많은 재정을 투입했지만 가족 내 성별노동분리 극복을 목표로 하지 않았던 독일은 현재 대표적 저출산 국가 중 하나이다. 그런 독일이 지난 2007년 이후 스칸디나비아 국가식 성별노동분리를 극복하는 돌봄의 사회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책 효과는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 앞으로 10여 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고 독일의 관련 전문가들이 이야기한다.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http://www.hankookilbo.com/v/abb76e0c502a4d1fa48c346ea2407cbd



Posted by 겟업
2014. 12. 26. 17:12

평일 오전 9시가 가까워져 오면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 역 1번 출구 근처에는 수백명의 청춘이 줄을 선다. 배화여대와 연세대의 1교시 수업에 늦지 않으려는 학생들이 학교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다. 각각 정연했던 두 줄이 요즘 위태롭다. 서촌(西村) 등을 찾는 중국인 관광버스가 하나둘 밀려 내려와 정류장을 침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발 늦은 학교 셔틀버스가 클랙슨을 누르지만 결국 중앙선 쪽으로 차선을 옮겨 멈추고, 한국 대학생들은 위태롭게 차선을 가로지른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 마트가 서울역사에 있다. 주말에 중국 관광객으로 인한 쇼핑 체증을 경험한 뒤 평일, 그것도 자정 가까운 심야에 들렀다. 그런데도 중국 마트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계산대에서는 중국인 쇼핑객이 쪽지를 내밀며 중국말로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나중에 캐셔에게 물어보니 유효 기간 지난 할인 쿠폰이었다. 포장대는 한술 더 떴다. 한참을 기다려 종이 박스를 집으려는 순간에 중국인이 뒤에서 밀치고 들어왔다. 항의는 통하지 않았다.

관광공사 추산으로 올해 한국을 찾을 요우커(중국인 관광객)는 589만명이다. 작년보다 157만명 늘었다. 중국 국경절 연휴인 지난 일주일(1~7일) 동안만 16만명이 찾았다.

나라 살림과 내수(內需) 진작에 보탬이 된다는 이유 때문에 몇몇 사소한 불편은 참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최근 주변에서 경험하고 목격한 풍경은 이 문제를 좀 더 입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이는 단지 시끄럽고 뱃살을 드러낸 채 공공장소를 활보하며 새치기에 익숙한 중국 관광객을 인내해야 한다는 평면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산업적 차원과 문화적 차원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도전인 것이다.

서울 홍대 주변의 한 원룸텔은 최근 부티크 호텔로 변신했다. 몰려드는 중국 관광객 덕분에 그쪽이 훨씬 더 이문이 많이 남기 때문이다. 건물주는 행복하겠지만 그 원룸텔에서 미래를 꿈꾸던 한국의 가난한 젊은이들은 당연히 방을 비워줘야 했다. 이화여대 주변의 한 의류상가 점장(店長)은 중국 관광객이 반갑지만은 않다고 했다. 월세를 대폭 올리겠다는 건물주의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빈부 격차와 삶의 질 변수에 이제는 중국 관광객까지 가세한 것이다.

'아파트 게임'의 저자인 박해천 동양대 교수는 좀 더 과감한 가설을 내놓은 적이 있다. 서울의 주요 상권(商圈)들이 호주머니가 얇아진 기존 소비자를 밀어내고 중국 관광객들로 그 빈자리를 채우려 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을 한 번 더 확장하면 서울의 문화적 지형과 특성을 변화시키는 주체 역시 중국 관광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 관광객들의 입맛에 맞춘 맛집과 카페, 쇼핑몰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풍성해진다면 다행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목격하는 모습은 획일화와 평준화에 가깝다. 요우커를 위한 관광 인프라 확대 못지않게 그 이면도 적극적으로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어수웅 문화부 차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07/20141007046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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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6. 16:58
두 아이의 엄마 샬롯 키틀리(영국)씨가 지난 16일 세상을 떠났다(depart this life). 36세.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be diagnosed with stage four bowel cancer). 간과 폐로 전이됐다(spread to her liver and lungs). 대장과 간의 종양을 제거하기(remove tumors from her bowel and liver) 위해 두 번 수술을 받았다. 25차례의 방사선 치료, 39번의 끔찍한 화학요법 치료(25 rounds of radiotherapy and 39 bouts of gruelling chemotherapy)도 견뎌냈지만, 끝내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블로그 내용.

"살고 싶은 나날이 저리 많은데, 저한테는 허락하지 않네요. 내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게 못된 마누라도 되면서(become grumpy with my husband) 늙어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안 주네요. 살아보니 그렇더라고요.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서두르라고, 이 닦으라고 소리 소리 지르는(shout at my children to wake up, hurry up and clean their teeth) 나날이 행복이었더군요.

살고 싶어서, 해보라는 온갖 치료 다 받아봤어요. 기본적 의학 요법은 물론(not to mention the standard medical therapies), 기름에 절인 치즈도 먹어보고 쓰디쓴 즙도 마셔봤습니다. 침도 맞았지요(get acupuncture).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귀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feel like a waste of precious time). 장례식 문제를 미리 처리해놓고 나니(sort out my funeral in advance) 매일 아침 일어나 내 새끼들 껴안아주고 뽀뽀해줄 수 있다는(have a cuddle and kiss my babies) 게 새삼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얼마 후 나는 그이의 곁에서 잠을 깨는(awake next to him) 기쁨을 잃게 될 것이고, 그이는 무심코 커피잔 두 개를 꺼냈다가 커피는 한 잔만 타도 된다는 사실에 슬퍼하겠지요. 딸 아이 머리 땋아줘야(plait her hair) 하는데…, 아들 녀석 잃어 버린 레고의 어느 조각이 어디에 굴러 들어가 있는지는 저만 아는데 그건 누가 찾아줄까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be given six months to live) 22개월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 보너스로 얻은 덕에 아들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학교에 데려다 주는(walk my son for his first day at school) 기쁨을 품고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녀석의 첫 번째 흔들거리던 이빨(his first wobbly tooth)이 빠져 그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주러 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어요.

보너스 1년 덕분에 30대 중반이 아니라 30대 후반까지 살고 가네요. 중년의 복부 비만(middle-age spread)이요? 늘어나는 허리둘레(expanding waistline), 그거 한번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희어지는 머리카락(greying hair)이요? 그거 한번 뽑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살아남는다는 얘기잖아요. 저는 한번 늙어보고 싶어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세요. 두 손으로 삶을 꽉 붙드세요(keep a tight grip on your life with both hands).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Live to the point of tears.'(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 '눈물이 나도록 살아라.'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24/2014092405488.html



Posted by 겟업
2014. 12. 26. 16:52

미국 CIA가 발간하는 자료(WORLD FACTBOOK)를 보면 구매력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13년 7월 현재 3만3200달러다. 구매력 기준 국민소득은 명목환율 기준 국민소득이 놓치기 쉬운 그 나라의 실제 경제, 생활수준을 보여 준다. 우리보다 높은 나라는 거의 북미·유럽 국가들과 카타르·쿠웨이트 같은 자원부국 혹은 조세피난처들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싱가포르·대만이 우리보다 높다. 일본 3만7100달러, 영국 3만7300달러, 프랑스 3만5700달러이며 유럽연합(EU)의 평균은 3만4500달러로 우리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3만100달러, 2만9600달러로 우리보다 낮다.

 이 통계가 보여 주는 대로 한국 경제는 소득이나 생활수준에서 이미 선진국 수준에 진입했거나 근접해 있다. 우리나라 국민소득 통계에서 도소매업·음숙박업의 소득이 크게 과소평가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의 1인당 실질소득은 더 높을 것이다. 실제로 유럽이나 미국 또는 일본에서 생활해본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매우 잘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첫째, 이제 우리가 선진국 기술과 제도의 모방으로 이들을 따라잡는 성장은 거의 한계에 달했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도입한 기술에 대규모 투자와 값싼 노동을 동원해 고성장을 이뤘던 과거 성장방식에 이제 더 기댈 수 없다. 인구 고령화, 투자율 감소는 이런 한계를 더욱 뚜렷이 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스스로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창출하고 새로운 제도를 창의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만큼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이 빠르게 일어날 수 없다면 성장 속도도 자연히 느려질 수밖에 없다. 생산성 향상이 향후 성장의 주 동인이 돼야 하나 우리의 생산성 향상은 여전히 더디다. 해외에 진출해 있는 기업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임금이 우리의 몇 분의 일도 안 되는 중국 공장의 생산성이 한국 공장보다 높고, 미국 공장의 생산성은 국내 공장의 두 배에 달하나 임금수준은 오히려 낮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한국 근로자의 생산성을 가지고는 현재의 소득수준을 지켜내기도 어렵다는 얘기다. 정부와 기업에서 일하는 방식, 인사 평가, 고용 및 승진제도, 임금체계를 비롯한 우리 사회 전반적 시스템 혁신이 일어나지 않으면 더 이상 추격이 어렵게 된 것이다. 교육의 질을 높이고, 노동 부문을 개혁하며, 기업 구조조정을 가속화해야 한다. 숯불이 거의 다 탔는데 단기 부양책으로 풀무질만 해댄다고 불이 다시 타오르지는 않는다.

 둘째, 고성장 없이도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성장지상주의로 달려왔고 지금도 성장률에 매달려 있다. 성장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에 매달려 있는 동안 우리 사회는 너무 많은 것을 놓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4개 회원국을 비교한 지표에는 한국이 노동시간 2위, 산재사망률 1위, 자살률 1위, 국민행복지수 33위, 출산율은 꼴찌라고 한다. 또 미국 여론조사기관의 ‘삶의 질 지수’는 조사 대상 135개국 중 한국이 75위를 기록했으며 이는 필리핀(40위)·인도(71위)·이라크(73위)보다 낮음을 보여 준다(9월 18일자 중앙일보 사설). 왜 우리 국민은 높은 소득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하는가? 지금 우리나라에 절실한 것은 현재의 소득수준에서도 보다 행복하고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문화·제도·관행을 바꿔 나가는 것이다. 질서와 예절, 정직과 투명, 상호 신뢰, 법 적용의 공정성과 엄중함, 공정경쟁, 이런 가치들을 우리 사회가 보다 존중하는 토양을 만들어 가야 한다. 각자가 타고난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교육과 취업 기회를 가지며, 불운이 닥쳐도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복지가 제공되며, 억지보다 합리성이 더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국민은 지금 행복에 배고프다. 우리가 과거 헝그리 정신으로 경제 도약을 이뤘듯이 이제 ‘행복 헝그리’ 정신으로 행복 도약을 이뤄야 한다. 우리는 쉽게 정부를 탓하나 이는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민이 여러 캠페인을 통해 새로운 사회 풍습과 문화의 정착을 가져오도록 열정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정부도 이를 끌어내기 위해 각종 제도와 보상체계를 바꿔 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국가혁신이다. 단기 부양책에 정권에 주어진 시간과 정치적 에너지를 너무 소모하지 말고 우리 사회의 생산성과 행복 증진을 위한, 보다 공정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위한 ‘시스템 혁신’에 시간과 에너지를 더 쏟았으면 좋겠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5938883&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4. 12. 26. 16:45

오세훈 시장의 노들섬 계획, 전면 재검토 이후 시간만 끌어온 ‘상상력 빈곤’ 
파리는 문화 인프라 확충해 세계 제1의 도시로 등극 
이념과 ‘책임 미루기’로는 서울 위상 못 올릴 것



박원순 서울시장은 요즘 차기 대권주자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에 올라 있다. 박 시장 본인은 “지지율은 공중에 나는 새털 같은 것”이라며 “시장 직무에 충실하겠다”고 말하지만 그의 행보를 보면 ‘서울시장 이후’를 겨냥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야권도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로서 그의 자질과 역량에 대해서는 회의가 생길 때가 많다. 서울 한강대교 중간에 사실상 버려진 땅인 노들섬 문제만 해도 그렇다.

노들섬 개발은 오세훈 전임 서울시장의 정책이었다. 그는 노들섬에 복합 문화시설을 세우기로 하고 오페라하우스 등의 건축 설계까지 마쳤다. 하지만 2011년 10월 박 시장 취임 이후 계획은 중단됐다. 오 전 시장은 얼마 전 “밤잠 안 자며 추진해온 자식 같은 정책들이 줄줄이 제동이 걸리는 것을 보고 생병을 앓았다”고 토로했다. 노들섬 계획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잘못된 정책은 늦었더라도 바로잡고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전임자의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부정한다면 지도자로서 자격 미달이다. ‘승계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가리는 안목과 처리 방식에서 지도자의 능력과 포용력, 리더십이 오롯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노들섬은 서울시 지도에서 한복판에 위치한다. 노들은 ‘백로가 노닐던 징검돌’이라는 정겨운 의미를 갖고 있다. 옛 선비들은 한강에서 노을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이곳을 꼽았다. 세계 10대 도시로 선정된 바 있는 서울시가 도약을 꿈꾼다면 활용 여하에 따라 서울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의미 있는 곳이다. 노들섬은 ‘노들나루’, 한문 이름으로는 노량진이 있던 곳으로 서울 남쪽으로 통하는 길목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은 노량진에 대해 많은 기록을 남겼다. 정조실록에는 ‘강의 흐름이 평온하고 강폭도 뚝섬과 서빙고의 3분의 1이어서 나룻길 중 으뜸’이라고 적었다. 영조실록에는 ‘임금이 노량진에서 군사들을 사열했다’고 기록했다. 노들섬은 서울을 대표하는 교통과 군사 요충지였다. 수많은 사연이 깃들어 있는 이곳을 방치하지 말고 문화적 용도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는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현재 노들섬은 박 시장의 지시에 따라 ‘텃밭’으로 쓰이고 있다. 한동안 전문가 포럼을 만들어 활용 방안을 논의한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요즘은 시민 아이디어를 공모 중이라고 한다. ‘회의 중’이라는 간판을 3년 가까이 걸어놓았으나 진전된 것은 없다. 최종 결정권자인 시장이 판단을 미루고 ‘전문가 포럼’이나 ‘시민’을 내세워 마냥 시간을 끄는 것이 ‘박원순 식 행정’으로 굳어진다면 심각한 일이다.

최근 서울시 내부에서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 대신 작은 공연장을 만드는 방안이 제시됐다. 특정 계층을 위한 시설은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대로 해석하면 전임 시장이 추진한 문화시설은 부유계층을 위한 것이어서 백지화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대안으로 고작 생각해낸 것이 ‘텃밭’이고 ‘작은 공연장’이라면 박 시장에겐 나라는 물론이고 서울시를 이끌 리더십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프랑스의 첫 좌파 대통령인 프랑수아 미테랑은 1981년 취임 직후 파리 시내에 ‘그랑 프로제(큰 계획)’라는 문화시설 확충 계획을 세웠다. 오늘날 관광 명소가 된 오르세 미술관,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 등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미테랑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반발했다. 사치스러운 극장이나 박물관 대신에 서민주택이나 빨리 지으라고 요구했다. 미테랑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헬리콥터를 동원해 유유히 파리 상공에 올라가 어느 곳에 문화시설을 세워야 할지 골몰했다.


지난해 파리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550만 명이다. 작년 한국 전체의 외국인 관광객 1217만 명보다도 훨씬 많다. 관광객들은 문화와 역사를 보기 위해 파리로 향한다. 파리가 세계 1위의 인기 도시가 된 것은 미테랑의 혜안과 결단력도 큰 힘이 됐다.


최근 중국의 ‘빅뱅’과 더불어 서울이 문화와 관광의 중심지로 위상을 확고히 하는 일이 향후 우리의 활로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박 시장이 보여준 상상력과 추진력으로는 서울의 획기적 변신을 기대하기 힘들다. 지도자가 지닌 ‘그릇의 크기’로 미테랑과 박 시장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 모른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41002/668863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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