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모든 것이 거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첫 줄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장의 시대’라는 지난 30여년이 유난했다면 사고파는 논리가 물질적 재화에만 적용되지 않고 삶 전체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사례지만, 아이를 대신 낳아주는 것도, 민간인이 기업에 고용돼 군인처럼 전투를 하는 것도 시장거래라는 이름으로 행해진다. 샌델은 묻는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돈의 논리가 작용하지 말아야 하는 영역은 무엇일까?”
같은 질문을 우리에게 해보자. 지난해만 해도 10조원 선이던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이 3분기에는 4조원대로 내려앉으리란 예상이 나오듯 중국 제조업의 추격이 매섭다. “우리는 이제 무얼 먹고 사느냐”는 시름이 깊다. 잘살게 된 중국인을 겨냥해 관광, 의료, 교육 같은 서비스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진작부터 나왔다. 하지만 외국인용 카지노, 영리병원,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같은 주요 정책들이 찬반 논란 속에 표류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2일 관훈토론회에서 “외국인 환자를 유치해서 돈을 벌자는 것인데 ‘의료 민영화’니 ‘의료 영리화’니 한다”며 “왜 이런 것들이 이념적인 논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하지만 외국인 영리병원을 그렇게 간단히 봐도 좋을까? 돈이 많건 적건 병원 복도에서 지켜지던 ‘선착순’의 줄서기 윤리가 ‘돈을 낸 만큼 얻는다’는 시장논리로 대체되는 큰 변화의 서곡이 아닐까? 미국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의사가 연간 최고 2만5000달러나 하는 연회비를 내는 환자들에게만 진료 예약이 가능한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기도 한다. 또 자기 국민들에게는 사행성 산업을 권장하지 않으면서 중국인이라면 얼마든지 판을 깔아줘도 괜찮은 것인가? 최 부총리는 케이블카가 오히려 수만명이 줄서서 산에 오르는 것보다 환경파괴가 적다고 하지만 산은 산다워야 하는 것 아닐까? 질문은 꼬리를 문다.
법을 위반해 형을 살고 있는 기업인을 가석방·사면해주자는 얘기도 거래 관계를 법적 정의의 영역으로 확장한 것이다. 풀어주자는 쪽의 명분은 경제가 어려우니 이들이 나가서 유보했던 투자를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최근 황교안 법무장관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앞장서 바람을 잡자 해당 기업들은 기다렸다는 듯 이런저런 투자계획을 밝히고 있다. 가석방 요건이 되는데 재벌 총수라고 역차별을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경제민주화에 일말의 기대를 건 많은 국민들은 이번에도 “그러면 그렇지” 하는 허탈한 심정일 것이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믿음을 이렇게 투자와 감형의 거래 관계로 치환해도 되는 것일까?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세월호와 같은 시대적 비극조차 이런 거래적 사고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이다. “이제 세월호 이야기는 그만하자”는 사람들은 “경제도 어려운데…”라는 이유를 댄다. 정부도 내수 부진의 원인을 세월호 때문으로 돌린다. 대부분 고등학생인 300여명을 뻔히 보면서 놓친 어이없는 참화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다시 태어나려면 아프고 또 아파하고 슬퍼해야 하건만 경제를 끌어다 서둘러 덮어버린다.
도덕군자가 되자는 게 아니다. 우리가 무얼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는지 이야기하고 합의점을 찾아가자는 것이다. 시장은 교환가치 이외의 가치판단을 배제하지만, 우리는 ‘시장의 도덕적 한계’에 대한 토론을 너무 자주 생략한다. 이래서는 한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봉현 경제·국제 에디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583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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