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6. 17:51

지난겨울은 '도깨비'가 있어서 행복했다. '가슴에 검(劍)을 꽂고 900년을 살아온 도깨비의 고통을 거두어 줄 사람은 그의 신부뿐'이라는 지극히 낭만적인 '저주'는 서사 전개에 필요한 장치라기보다는 메타포에 가까웠다. 드라마 '도깨비'는 시적인 대사와 미시 콘텐츠의 활성화를 통해 즐길 거리를 제공했다. 그 매력은 당신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품에 참여한 데 있다. 주인공의 대사를 따라 하거나, 롱코트를 입어보거나, 빨간 목도리를 둘러 본 사람들. 시크한 말투를 흉내 낸 시청자. 모두가 작품과 함께했다.

우리는 거부할 수 없는 '향유의 시대'를 살고 있다. 향유란 문화를 주체적으로 즐기는 활동이다. 주체적으로 즐긴다는 말은 스스로 참여하여 가능한 모든 방법을 찾아가는 체험의 과정을 의미한다. 문화는 향유를 통해 생산자 중심의 교조적 일방성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창조적 활력을 지니게 된다. 국민 누구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콘텐츠를 향유하고 소비하며, 체험의 과정을 통해 창작자로 성장한다. 콘텐츠를 중심으로 역동적인 창업과 창작이 연결되는 것이다.

이렇듯 콘텐츠 관점에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향유다. 이제 우리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가치 있는 체험을 하고 공유하며 확산시킬 힘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다. 게임, 영화, 음악, 애니메이션, 웹툰, 캐릭터 등으로 대표되는 콘텐츠 모두가 보편적 향유 대상이다. 우리는 이 향유 대상들로부터 감성과 감동의 울림을 얻는다. 기술 진보에 따라 향유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지만 결국 사람을 이해하고 감성을 자극하고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문화적 감수성이 중요하다.


지금 온 사회가 4차 산업혁명과 새 정부의 새로운 정책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문제는 경제'라고 하지만 사회의 어젠다가 경제에만 묶여 있으면 불행한 일이다. 경제가 삶의 중요한 토대라면 콘텐츠 향유 역시 그러하다. 콘텐츠 향유가 중요한 것은 그 부가가치만큼이나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 자신을 주인공으로 세우기 때문이다. 스스로 참여해 가치를 발굴하고 즐거움을 창출하는 향유의 시대인 것이다. 문화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콘텐츠는 공허하고, 참여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향유는 불가능하다. 새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그 중요한 답의 하나는 '콘텐츠 향유'에 있다.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16/2017051603450.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