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풍경 바뀌지 않는 서울… TV로 치면 정지 화면 상태 걷고 싶은 도시 만들려면 들어가 구경할 가게 늘려야
서울시는 최근 '서울로 7017'을 조성했고, 향후 광화문 12개 차로를 지하화해서 세종로 전체를 광장으로 만드는 계획안을 발표하는 등 서울을 보행자 중심 도시로 만드는 노력을 진행 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도시를 자동차 중심에서 보행자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변화의 물결은 이미 시작됐다. 하지만 단순히 자동차 도로를 없애면 걷기 좋은 도시가 되는 걸까? 보행 친화적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인도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경험으로 어떤 길은 더 걷고 싶고 어떤 길은 덜 걷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을 안다. 연애 초기에 데이트 코스를 정할 때 홍대 앞, 명동, 신사동 가로수길 같은 곳을 선호하지 테헤란로를 걷자고 하는 사람은 없다. 이유는 가로에 접한 가게 입구의 숫자와 상관이 있다. 100m를 걷는 동안 보행자가 선택 가능한 가게 입구의 숫자는 홍대 34개, 명동 36개, 가로수길은 36개, 강남대로 14개, 테헤란로는 8개이다. 대체로 가게 입구의 숫자가 30개는 넘어야 걷고 싶은 거리가 된다.
가게 입구는 보행자에게 선택권을 준다. TV 채널과 비슷하다. 가게 입구가 많은 거리를 선호하는 것은 채널이 5개였던 시절의 TV보다 채널 100개 이상의 케이블TV를 선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뿐 아니다. 시속 4㎞ 속도로 걸어갈 때 마주치는 다양한 가게 입구는 다채로운 체험을 제공한다. 채널이 100개여도 볼 것이 없지만, 채널이 많으면 그나마 '채널 돌리는' 재미라도 느끼게 해준다. 가게 입구가 많으면 실제로 내가 들어가는 가게는 몇 개 없더라도 걸으면서 변화하는 풍경이 주는 엔터테인먼트가 있다. 계산해보면 명동이나 가로수길은 2.5초당 한 번씩 채널이 바뀌는 TV와 같고, 테헤란로는 11초당 한 번씩 채널이 바뀌는 TV와 같다. 밀도가 높은 가게 입구의 배치는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드는 데 중요한 물리적 조건이 된다.

필자는 뉴욕에서 일할 때 20분 정도의 거리는 걸어서 다녔다. 하지만 서울 강남에서 그 정도 거리는 택시를 탄다. 왜 그럴까? 지인 중에 금요일 저녁마다 마포에서 압구정동까지 걸어서 퇴근하는 이가 있다. 그는 3시간 반의 퇴근길 중 가장 걷기 힘든 구간은 '마포대교 위'라고 했다. 마포대교 위를 15분쯤 걸어야 하는데 그동안 장면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TV로 치자면 정지 화면 상태다. 이 이야기로 우리는 걸으면서 풍경이 바뀌는 것은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뉴욕은 블록의 세로 길이가 평균 60m밖에 되지 않는다. 뉴욕에서 남북 방향의 애비뉴를 따라 걸으면 1분마다 동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새로운 스트리트의 풍경을 접한다. 반면 서울 강남은 한 블록의 크기가 800m다. 한 변을 걸을 때 12분쯤 걸린다. 역삼역에서 강남역을 향해 걸어가면서 바라보는 풍경이 12분 동안 큰 변화가 없다. 당연히 지루하다. 반면 강북의 북촌이나 경리단길 같은 곳은 촘촘하고 복잡한 골목길로 되어 있어서 조금만 걸어도 새로운 골목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걷고 싶은 거리는 블록의 크기와 도로에 접한 가게 입구의 수가 결정한다.
위의 연구처럼 상업 시설의 분포는 보행자 중심 도시를 만드는 데 중요하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얼마 안 되는 상업 시설들이 한곳에 집중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반포의 아파트 재개발을 살펴보면 가로(街路)형 상가들이 사라지고 수천 가구 단지의 모든 상업 시설이 코너 역세권의 5층짜리 상가에 집중돼 있다. 보행자 도시를 만들려면 상업 시설이 1·2층에 선형으로 늘어서야 하는데 반대로 고층·집중화되고 있다. 이런 상가가 만들어지고 나면 나머지 거리는 수백m 길이의 아파트 단지 담장만 늘어서게 된다. 편리한 원스톱 상가가 거리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위의 연구처럼 상업 시설의 분포는 보행자 중심 도시를 만드는 데 중요하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얼마 안 되는 상업 시설들이 한곳에 집중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반포의 아파트 재개발을 살펴보면 가로(街路)형 상가들이 사라지고 수천 가구 단지의 모든 상업 시설이 코너 역세권의 5층짜리 상가에 집중돼 있다. 보행자 도시를 만들려면 상업 시설이 1·2층에 선형으로 늘어서야 하는데 반대로 고층·집중화되고 있다. 이런 상가가 만들어지고 나면 나머지 거리는 수백m 길이의 아파트 단지 담장만 늘어서게 된다. 편리한 원스톱 상가가 거리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상업 시설이 점차 대형화되고 실내 공간에서 놀이·휴식·쇼핑 등을 모두 해결하려 한다. 그로 인해 우리의 거리와 외부 공간은 황폐화되고 있다. 고층·집중화된 상가와 대형 쇼핑몰을 계속 지어대면서 보행자를 위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우리가 이대로 거리를 자동차에 양보하고, 에어컨은 나오지만 하늘을 볼 수 없는 실내 공간에서만 살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방향을 돌릴지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21/20170621036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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