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있는삶/사설 노트'에 해당되는 글 715건

  1. 2012.09.23 [왜냐면] 대학의 ‘밥값차등’ 정책에서 공공성 위기를 읽다
  2. 2012.09.23 [발언대] 풍속 단위, 초속 아닌 時速으로 해야
  3. 2012.09.23 [서화숙 칼럼/8월 31일] 오르는 채소 가격, 내리는 집값
  4. 2012.09.23 [특별 인터뷰] “초지적재산권의 경쟁이 시작됐다”
  5. 2012.09.23 [양선희의 시시각각] 애플 편들기, 그게 ‘미국 스타일’
  6. 2012.09.23 [조선데스크] 한류의 敵, 드라마 간접광고
  7. 2012.09.23 [아침 편지] 떠난 자리도 깨끗한 어느 공군 조종사의 일기장
  8. 2012.09.23 [아침논단] 복지, 말뚝보다 뗏목이 필요하다
  9. 2012.09.23 [기고] 디자인이 아니라 이미지와 정체성이 문제다
  10. 2012.09.23 [글로벌 Hot 피플]타계한 美코스모폴리탄 편집장 헬렌 브라운
  11. 2012.09.23 [발언대] '원자력 전도사'로 나선 빌 게이츠
  12. 2012.09.23 축구 이길까봐 걱정하는 마음의 근원
  13. 2012.09.23 [동아광장/임혁백]대선후보들은 대외국가전략을 밝혀라
  14. 2012.09.23 [경제 view &] 워런 버핏이 날씨시장으로 간 까닭은
  15. 2012.09.23 [서화숙의 만남] 핀란드 디자인 전문가 안애경
  16. 2012.09.23 [기고] 스마트 시대 핵심은 인문학 중심 소프트웨어 융합 기술
  17. 2012.09.23 [2030 칼럼/김태영]돌아온 취업 시즌… ‘꿈과 현실 사이’
  18. 2012.09.23 [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한국전자통신연구원 김흥남 원장
  19. 2012.09.22 [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아이들의 블록버스터 ‘로보카 폴리’
  20. 2012.09.22 [김명곤 칼럼/8월 22일] 순천만의 기적
2012. 9. 23. 01:27

기업화·시장화된 대학에서 대학생들은 타자의 삶에 점점 더 무감각해진다

요즘 학교 가기에 앞서 학생증을 잘 챙겼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왜냐하면 올해부터 서울대학교 식당은 외부인에게 밥값을 1000원 더 받기 때문이다. 서울대 식당은 싼값에 양질의 식사를 제공하다 보니 많이 먹을수록 적자가 커지는 구조다. 이에 생활협동조합(생협)은 적자를 줄이기 위해 일차적으로 외부인의 밥값만 올리는 밥값차등정책을 시행했다. 나아가 이 조처는 외부인들 때문에 발생하는 재학생의 식사시간 낭비를 줄이기 위한 학생복지 구현임을 표방했다.


대학본부와 생협 입장에서는 학내 구성원의 반발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적자 재정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먼저 도입할 수 있는 정책이 외부인 식대 인상이었을 수 있다. 서울대 재학생들은 밥값차등정책이 도입되기 전부터 외부인의 학내 식당 이용에 매우 큰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지난해에 관악산 등산객과 택시기사들의 집단적 식당 이용으로 자신들의 식사권이 침해받는다는 토로가 학내 누리집에 올라와 재학생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런데 나는 기사들의 학내 식당 이용까지 불편해하는 재학생들의 감정에 외려 불편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택시기사들이 학내 식당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을 그들의 팍팍한 삶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타자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일차적으로 타자의 삶에 친숙해야 한다. 경제성장기인 1970~80년대 많은 서울대생의 부모님은 중산층 이하이기 십상이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이후 서울대 신입생은 급속히 부유층의 차지가 되었다. 즉 택시기사처럼 힘겨운 노동자가 자신의 부모님이거나 친척일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 따라서 생계를 위해 밥값의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택시기사들의 애환은 서울대생의 시야에 들어오기 힘들 수 있다. 어쩌면 부유해진 서울대생 개인의 문제만도 아닐 수 있다. 대학의 기업화·시장화라는 저 거대한 시대적 변화가 대학생들의 ‘공감력’을 뺏어버렸을 수 있다. 서울대라는 학벌이 더 이상 좋은 직장을 백퍼센트 보장하지 못하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이제 서울대생들은 과거 선배들처럼 핍박받는 노동자를 위해 공장에 잠입하거나 한국사회의 변화를 위해 시위에 나갈 ‘여유’가 없다.


대학의 공공성은 어느새 불필요한 사치품이 돼버렸다. 대학은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공간이 아니라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한 직업양성소가 된 지 오래다. 기업 로고가 박힌 건물들이 대학을 점령했으며 그곳의 학생들은 기업이라는 주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매일매일 자신의 스펙 단장에 여념 없다. 어느새 대학 풍경은 대기업이 선사한 건물과 경영·경제학 서적을 움켜쥔 대학생들로 가득 채워졌다. 대학 안과 밖은 밥값을 경계로 더욱 명확히 분리됐으며 대학은 자본을 끌어들이기에 혈안이다. 대학생들은 타자의 삶에 점점 무감각해진다.


인간에게 ‘밥’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 아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대학에서 밥 먹는 사람들은 누구나 동일한 식당에서 동일한 밥값을 냈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금 기억해야 한다. 대학생들은 반값 대학등록금을 주장하기에 앞서 대학 안팎의 경계를 나누는 밥값 ‘차별’ 정책을 스스로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왜냐하면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 지원과 대학 외부 사람들의 지지가 매우 절실하기 때문이다.



김도민 서울대 대학원생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5360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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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3. 01:18

태풍 '볼라벤'은 소멸했지만 기상청에는 불명예의 상흔을 남겼다. 기상청이 볼라벤의 진로를 초기 예보와 가깝게 맞추기 위해 조작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는 데서 그렇다. 기상청은 2년 전 정확한 일기예보를 위해 외국 전문가를 '기상선진화추진단장'으로 영입해 기상예보 선진화에 진력해 왔다. 정말 볼라벤의 진로가 조작되었는지는 조만간 가려지겠지만, 두어 가지 분명한 게 있다. 기상청의 예보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태풍 등 폭풍의 속도 단위는 초속(秒速)으로 하지 말고 시속(時速)으로 해야 한다. 기상청 예보는 강풍의 풍속을 '초속'으로 발표한다. 하지만 일반 시청자들은 초속 30m, 40m 강풍이 얼마나 강한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저 "지붕이 날아갈 정도"라고 부연 설명해야 알 듯 말 듯하다.

미국이나 유럽은 강풍의 속도를 시속으로 표시한다. 유럽에서는 시속, ㎞ 단위를 쓰고 미국은 마일(mile)을 쓴다. 강풍 속도를 '시속 180㎞'라고 하면 내 자동차의 속도와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90㎞로 달리는 내 자동차의 속도보다 2배나 빠르다며 머리에 그 속도를 그릴 수 있다. 미국 CNN이나 영국 BBC 일기예보를 보면 ㎞나 마일로 표기된다는 데서 그날 강풍의 위력을 자동차 속도와 비교해 단박에 실감케 된다.

또한 TV 일기예보는 단순히 날씨를 평면적으로 읽어주는 데 그치지 말고 기상 상태를 기상학적으로 해설해 주어야 한다. 예컨대 내일이나 일주일 날씨를 예보할 때 춥거나 더워지는 원인에 관해 '아나운서'가 아닌 일기 '해설자'로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줘야 하는 것이다. 미국 CNN 방송의 여성 기상 캐스터 마리 라모스는 '넉넉한' 풍채에 의상마저 칙칙해도 기상 전문지식으로 쉽게 해설해 시청자의 궁금증을 풀어 준다. 풍속 단위를 바꾸는 데는 돈도 들지 않는다. 일기예보도 기상전문 지식 캐스터로 형식보다 내용으로 경쟁해야 한다.



 정용석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02/2012090201315.html

Posted by 겟업
2012. 9. 23. 01:17

태풍이 지나가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뉴스가 있다. 채소 값이 올라 식탁물가가 비상이라는 기사다. 2,600원 하던 배추가 3,700원 하고 2,200원어치 상추가 4,880원을 줘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깻잎과 호박은 두 배로 올랐다고 숫자로 퍼센트까지 나열한다.

그런데 진짜 이런 가격 때문에 서민 식생활에 비상이 걸릴까? 아니다. 작년 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김치 소비량은 1인당 연 28kg으로 4인 가족이면 한 달에 9.3kg꼴이니 배추 네 통쯤 된다. 1주일이면 배추 한 통을 먹는다. 젓갈과 파, 생강 고춧가루 등 부재료가 있지만 일주일에 4,000원도 안 되는 배추 값 인상이 문제될 리 없다. 호박이나 깻잎, 상추도 소비량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큰 문제가 아니다.

9월 말까지 지켜봐야겠지만 올해는 쌀이 여물어야 할 시기에 햇볕이 쨍쨍 나지 않고 비 내리는 날이 많아 쌀 작황도 예년보다 나쁠 수 있다. 그러면 또 쌀값이 오른다고 식탁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한다. 우리나라 사람의 1인당 쌀 소비량은 작년 기준 하루 195g으로 밥 두 공기가 채 안 된다.(2012년 2월 통계청 발표) 쌀 한 가마니면 4인 가족이 100일 넘게 먹는다. 쌀값이 올라 봐야 가계에 미치는 부담은 생각보다 작다. 그런데도 가물면 가문대로, 홍수가 나면 홍수가 나는대로 기상재해만 생겼다 하면 식료품 물가가 비상이란다.

관료들이 책상에 앉아 수치로만 보고 퍼센트로만 따지기 시작하면 식료품 가격 인상이 큰 것처럼 보여서 정책당국이 중국에서 값싼 배추니 마늘이니 수입한다 하여 그나마 소출이 덜 나온 걸 가격으로 만회해 보려는 농민들을 낭패에 빠지게 한다.

실상 서민가계를 위협하는 것은 이런 식품류가 아니다. 이보다는 차라리 가스 버스 전기요금 같은 공공요금의 인상이자 무엇보다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집값이 문제다.

우리나라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작년 기준 384만원인데 평균 주택가격은 1억1,800만원이다.(한국은행 통계청 발표) 월평균 소득을 가진 이가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3년은 되어야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 반면에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2배 이상 많은 미국의 평균 주택가격은 우리보다 훨씬 싼 7만5,000달러(8,500만원 정도, 2010년 기준 미국연방준비제도 통계)이다. 그러니 우리의 집값은 아직도 비싸고 한참 더 떨어져야 한다.

그런데도 몇 천원하는 식품 물가에는 농업재해대책상황실을 24시간 연다는 정부가 집값은 여전히 부채질하는 기현상을 보인다. 7월에 총부채 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하여 집을 사기 위해서라면 은행에서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게 길을 터 놓더니 그래도 집값이 오르지 않자 이번에는 '하우스푸어'를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고 한다.

그중의 하나로 등장한 것이 '하우스푸어'들의 주택을 사들여 임대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새누리당이 제안해서 당정협의를 거치겠다는 것인데 공적 펀드를 조성해 '하우스푸어' 집을 사들인 뒤 본인에게 월세 또는 전세로 임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원래의 소유자가 여력을 갖추게 되면 집을 우선적으로 살 권리도 부여한다고 한다.

안 자체는 참신하다. 그러나 이것은 채권회수에 묘책을 발휘해야 할 민간은행이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는 있어도 정부가 나설 일은 아니다.

'하우스푸어'란 엄밀히 말하면 빈곤계층 그 자체는 아니다. 여력 이상의 주택을 사려고 은행에서 대출 받았으나 집이 팔리지 않아 대출금 반환에 고통을 겪는 이들이므로 사정은 딱하지만 그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할 경제 주체이다. 집값이 떨어져 가는 상황에서 공적 자금으로 '하우스푸어'대책을 세우는 것은 '하우스푸어'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을 국민 전체가 떠맡아 준다는 뜻이다. '하우스'조차 갖지 못한 진짜 '푸어'들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정책이다.

집값은 더 떨어져야 한다. 이 명제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주택정책은 있는 자를 위한 선심정책일 뿐이다.



서화숙 선임기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08/h2012083020185467800.htm

Posted by 겟업
2012. 9. 23. 01:14

시대의 흐름을 읽는 더듬이가 남다른 이어령 중앙일보 상임고문은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판결을 단순한 법정 분쟁이나 기술 다툼으로 보지 않는다. 문명·문화사적으로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예고하는 신호로 해석한다. 이 상임고문은 “우리는 무서운 변화의 한 모서리를 목격하고 있다”며 비(非)기능적·감성적 가치까지도 재산권의 배타적 권리로 인정하는 새로운 지식게임의 시대가 열렸다고 진단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이 충격을 어떻게 소화 흡수하여 문명·문화의 대전환점을 모색할 것인가. 이 고문은 “지적재산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부터 크게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삼성전자·애플의 특허 소송을 ‘세기적 재판’으로 부른다.

 ▶이어령=기업경영이나 특허법 전문가가 아닌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나서게 된 것을 보아도 이 재판이 갖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기업이, 우리 사회가, 그리고 각각의 개인이 걸어온 길에 폭탄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판결의 정당성 논란이나 천문학적인 벌금 액수에만 눈길을 빼앗겨선 안 될 일이다. 우리 의식과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창조적 긴장과 도전 없이 앞날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우리가 이 세기적 재판의 파장을 우회할 길은 없다. 정면으로 마주 바라보며 전독위약(轉毒爲藥)의 역전극을 마련해야 한다.

 -왜 우리의 기존 인식이 문제라는 것인가.

 ▶우리는 오랫동안 ‘청기와 장수’의 문화 속에 살아왔다. 저 혼자 청기와를 만들고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아 그 비법이 후세에 재현되지 않았다. 서양도 중세까지는 특별한 기술을 비방(秘方)으로 숨겨 ‘미스터리’라 불렀다. 이런 관행에서 벗어나 기술의 독점적 가치를 인정하되 그 비법을 공개하자는 사회적 타협이 바로 특허다. 지적재산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는 창의성과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독점적 지식과 기술을 어떻게 사회 시스템으로 공개·승화시키느냐에 따라 동·서양의 운명이 갈라졌다.

 -인류 문명사에 특허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특허법의 기원은 르네상스의 발생지인 이탈리아다. 1474년 베네치아에서 공포된 특별조례로 지적 재산에 10년간 독점권을 보호해주자 주변의 창의적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몰려들었다. 르네상스의 불꽃은 그렇게 타올랐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도 그때 양수기 기술로 특허권을 따낸 과학자의 한 사람이었다. 두 번째로 이 특허법을 도입한 나라가 바로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이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과 아크라이트의 방적기 등이 모두 그 특허법의 산물이다. 그 다음이 독립과 함께 아예 헌법 제1조에 특허 보호 조항을 명시하고, 10년 뒤 영국의 전매조례를 본떠 특허법을 만든 미국이다. 이것이 팍스 브리타니카를 뒤이어 팍스 아메리카나의 세기를 연 힘이다. 이렇게 근대 문명을 창조한 르네상스·산업혁명·팍스 아메리카나의 삼각대 노릇을 한 것이 바로 특허제도요 그 정책이다.

 -특허는 언제나 긍정적으로 기능했는가.

 ▶특허법은 수문(水門)과 같다. 수문을 닫으면 기술과 창조력이 고이지만, 너무 차고 넘치면 해를 끼친다. 열어서 방류해야 한다. 제임스 와트는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산업혁명의 불을 붙였지만 동시에 그 발전을 저해했다는 연구도 있다. 그는 독점권을 연장하면서까지 증기기관을 개발하려는 다른 기업과 기술자들을 억압하거나 저지했다. 독점 동안 증기기관 출력은 연 750마력의 증가에 그쳤지만, 특허가 끝난 1800년부터 4000마력으로 늘어나고 에너지 효율은 다섯 배나 높아졌다. 증기기관차 등 혁신적인 파생상품들까지 쏟아지면서 산업혁명에 박차를 가했다. 이같이 특허법은 너무 엄격해도 너무 약해도 안 되는 양날의 칼이다. 지적 독점과 지적 공유의 모순을 조정하는 사회문화적 인식이 법보다 앞서야 한다.

 -이번 판결이 보호무역주의가 아닌가.

 ▶미국은 시대에 따라 특허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다. 링컨 시대에서 대공황까지는 친특허 정책이 주류를 이루었다. 미국 특허청 건물 정면에는 “특허제도는 천재라는 불꽃에 이익이라는 기름을 붓는다”는 링컨 대통령의 어록이 새겨져 있다. 링컨은 그 자신이 배가 좌초됐을 때 빠져나오는 특허를 출원했던 인물이며, 미국의 초석을 닦은 조지 워싱턴과 벤저민 프랭클린도 모두 발명가를 겸했었다. 이런 친특허 분위기를 바탕 삼아 생전에 1300종 이상의 특허를 획득한 에디슨이 출현하고, 전화·비행기 같은 세기의 발명품들이 미국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독과점 폐해가 나타나고 대공황이 찾아오자 반(反)특허 흐름이 고개를 들었다. 지적 개방과 공유의 분위기가 강해진 것이다. 그러나 레이건 정부 이후 다시 친특허 쪽으로 돌아섰다. 일본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특허로 울타리를 치는 전략이 아니냐는 해석도 적지 않다. 리먼 쇼크 이후 미국은 여야 없이 친특허 정책을 지지하는 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특허기술을 내세워 스티브 잡스의 애플로 상징되는 정보산업에서 다시 그 활로를 찾으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오바마는 링컨·카터·레이건에 버금가는 친특허 대통령에 속한다.

 - 판결이 과도하다는 비난도 적지 않다.

 ▶미국의 특허법 자체가 특이하다. 미키마우스보호법이니 물밑에 숨어있다 나타나는 잠수함법이니 하는 별명이 붙을 만큼 국제 상식과 위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이번 삼성이 고배를 마신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의 특허는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다 낯설어하는 개념이다. 직역하자면 상품의 옷으로 상품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이 포장하고 있는 외형 일체를 보호하겠다는 의미다. 이를테면 네모 굴리기, 메탈릭한 프레임 등 해당 상품이 갖고 있는 이미지의 요소를 인지하는 감각·감성 등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힘든 비(非)기능적인 요소까지도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기술 특허와 달리 전문인보다 오히려 일반인의 감(感)에 맡기는 주관적 심사의 길을 터놓게 된 것이다.

 지적재산권(IP)이라는 표현까지 고쳐야 할 만큼 특허가 이제 지적 기술의 차원을 넘어 감성과 정서의 심미적 산물로 변하고 있다. 상품 개념이 기능에서 소통으로, 사용에서 감동으로 바뀌면서 특허 심사도 예술품처럼 감상하고 감정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우리는 드디어 초(超)지적재산권이라는 새로운 아레나(로마 원형극장의 모래 경기장)에서 경쟁하고 살아남아야만 하는 시대를 맞게 됐다.

 -애플이 이번 판결의 진정한 승자라고 보는가.

 ▶얼핏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와트처럼 특허분쟁을 일으켜 창조력이 아니라 법으로 경쟁자를 제압하고, 특허료만 챙기는 행위를 경제에선 렌트 시킹(rent seeking)이라 하며, 부정적으로 본다. 일종의 준지대(地代)다. 창의성과 지식이 고갈될수록 특허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특허에 안주하는 기업에겐 미래가 없다. 이번 재판으로 애플은 두 가지 마이너스 이미지를 갖게 될지 모른다. 하나는 ‘기술개발자’였던 가장 창조적인 기업이 ‘기술 보호 감시자’로 바뀔 수도 있다. 한때 애플도 마이크로소프트에 특허소송을 당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애플이 특허를 무기로 경쟁기업을 억압하는 쪽으로 이미지가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또 하나는 삼성의 안드로이드 OS는 지적 독점을 반대하는 오픈 소스인 데 반해 애플은 NIH의 폐쇄적 기술 독점을 대표한다. 현재 미국에는 스톨맨이나 레시그 등 반(反)지적 독점을 주장하며 정보시대를 리드하는 지식인이 많다. 애플은 삼성을 넘어 그 뒤에 버티고 선, 구글을 위시한 정보 프리를 주장하는 세력과 충돌하기보다는 상생하는 게 지혜로울 것이다. 창의력이 고갈되면 사과도 다른 과실과 마찬가지로 떨어지게 된다. 애플은 와트의 전철을 밟지 않고 그야말로 스티브 잡스가 주장한 인문학적·미학적 창조의 매력으로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할 것이다.

 -지적재산권 보호가 어디까지 확산될 것인가.

 ▶물론 특허를 자유롭게 개방하자는 압력도 존재한다. 페니실린은 인류의 생명을 위해 특허 등록조차 안 했고, 인터넷의 월드와이드웹(www)을 개발한 유럽 입자물리연구소의 팀 버너스 리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처음부터 완전 개방했다. 아마존은 원 클릭을 개발해 특허소송에서 이겼으나 소비자들의 여론으로 사실상 굴복한 적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미키마우스법으로 저작권 보호기간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했다. 지적 독점에서 공유로 가는 큰 흐름에 역류하는 미국의 경향을 주목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미국은 175년만에 선 발명을 선 출원제로 수정하는 등 복잡한 특허법을 크게 개정했다. 보통 3년 걸리던 수속을 1년이면 가능하게 되었다. 구글과 스탠퍼드대에서 보듯 미국 대학들은 IP(지식재산) 전담부서를 만들어 학생들이 특허를 얻도록 북돋우고, 그 특허료를 나눠가져 학교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 사회는 낮은 차원의 ‘반값 등록금’ 목소리만 요란하다. 미국은 대선 때마다 줄기세포 등 새로운 특허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지만, 우리 대선 후보들 가운데 특허의 중요성을 거론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기업 혼자의 힘으로는 안 된다. 트레이드 드레스가 일반화하는 미래 상품시장에서는 한눈에 어디서 본 듯한 것이 아니라 “저거 삼성 거잖아”라고 한눈으로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인 감각과 창조적 상상력으로 차별화한 제품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그 접촉면에서 일어나는 인터페이스 혁명을 통해 새로운 지적재산의 강국이 돼야 한다. 이미 수년 전 중앙일보는 디지로그의 제안으로 그 길을 제시한 바 있지 않은가.


대담·정리=이철호 논설위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197084&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2. 9. 23. 01:13

‘미국이 그러면 그렇지’. 삼성전자와 애플 간 디자인특허 소송에서 미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북부지방법원 배심원단이 일방적으로 애플 편을 든 건 별로 놀랍지 않았다. 그게 변함 없는 ‘미국 스타일’이라서다. 경제전쟁에 임하는 미국인의 태도는 언제나 그랬다. 미국이 경쟁우위가 아닌 것은 무엇이든 악이라는 것.

 애플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디자인특허 침해 소송을 냈을 때, 약 30년 전 미국과 일본 간에 벌어졌던 반도체 전쟁이 떠올랐었다. 이는 국가 간 산업전쟁의 효시였고, 이후 미·일 간 무역분쟁은 마구 확전됐다. 이 전쟁은 반도체 불황이 닥쳤던 1985년 미 반도체업체들 모임인 SIA가 미 무역대표부(USTR)에 “일본 반도체 메이커의 불공정 행위로 미 업체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제소하면서 시작됐다. 잇따라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일본의 반도체 메이커들을 상대로 ‘약탈적’ 방법으로 가격덤핑을 했다며 고소했고, 인텔·AMD·내셔널세미컨덕터 등이 일본산 메모리 EP롬에 대해 반덤핑 제소를 하는 등 파상공세를 펼쳤다.

 이듬해 미국 상무부는 일본 반도체에 불문곡직하고 21.7~188%의 덤핑마진을 부과했고, 일본은 미·일 반도체협정에 서명한다. 일본 시장에서 미국 반도체 점유율 20%를 보장한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20%가 안 되자 미 상원이 일본에 대해 보복조치를 취하라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잇따라 무서운 관세보복이 이루어져 엉뚱한 일본산 TV에 보복관세 100%가 부과되기도 했다. 이 공방은 90년대 중반까지 계속됐다.

 반도체 전쟁을 전후로 미국엔 반일 서적들이 넘쳤고,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 공동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70%가 ‘미국 정부가 당장 손쓰지 않으면 일본이 미국을 사버릴 것’이라고 답해 현지 언론들도 맹목적 애국주의인 ‘신 외국인 기피증’을 우려했다. 이때 개발된 ‘반덤핑·보복 관세’ 모델은 다른 무역전에도 그대로 적용돼 우리 기업들도 누차 당했다. 이번엔 대상이 한국 기업으로 바뀌고, 구형무기(반덤핑) 대신 한층 강화된 ‘특허’라는 신무기가 투입됐을 뿐, 양상은 똑같다.

 그런데 치열했던 미·일 반도체 전쟁의 최종 승자는 미국도 일본도 아닌 한국이었다. 미국에선 인텔이 메모리를 포기하는 등 업체들이 속속 메모리에서 철수했고, 지친 일본 반도체 업계는 지리멸렬해졌다. 그 사이 한국 업체들은 혁신을 거듭해 이 시장의 패자(覇者)가 된다.


옛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진진(陳陣)이 한(韓)과 위(魏)의 전쟁이 1년 이상 계속되자 혜왕에게 “큰 호랑이와 작은 호랑이가 싸우면 작은 호랑이는 물려 죽고 큰 호랑이는 상처를 입을 테니 그때 기진한 큰 호랑이만 잡으면 양국을 멸할 수 있다”고 간했던 일은 그저 옛말이 아니다.


 최근 모바일 시장을 ‘삼국지’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번 애플 평결 결과를 ‘죽은 제갈공명(스티브 잡스)이 산 사마중달을 이겼다’는 고사에 비유하기도 한다. 한데 그 후 촉(蜀)은 어떻게 되었던가. 공명을 계승한 강유는 위(魏)를 상대로 아홉 번이나 ‘삽질’만 했고, 촉 조정은 음평절벽에서 몸을 굴려 성도(成都)로 질러 간 말더듬이 위장(魏將) 등애(鄧艾)의 북소리에 미친 듯이 무기를 내리고 투항하지 않았던가.

 나라를 세우는 일과 지키는 일은 다르다. 미국은 근대 이후 혁신적인 제품은 거의 다 내놨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창의적인 ‘나라’들을 세웠다. 그런데 수성(守城)기술이 축성(築城)기술을 못 따라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혁신을 거듭하고 시장에 민감한 제품으로 시장을 장악했다면, 어떻게 후발주자들이 그 시장을 넘봤겠는가. 그런데 반도체도 자동차도 어느 순간 혁신을 멈추고, 제품은 지리멸렬해져 소비자가 외면했다. 그래, 경쟁자를 탓하고 저주해서 시장이 회복되었던가?

 ‘혁신을 멈춘 애플이 미국인의 애국심에 호소한 특허 공세로 다시 동력을 얻을 수 있을까?’ 한 외지가 지적한 대목이다. 미국 스타일의 응전 방식, 시장 전략에 대한 반성이나 혁신은 외면한 채 경쟁자를 공격하고 상처 내며 지칠 때까지 기운을 빼 피아(彼我)가 공멸하는 역사를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가.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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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3. 01:12

국내 숱한 TV 오디션 프로그램의 전범(典範)으로 통하는 미국 폭스TV의 '아메리칸 아이돌'은 올해도 3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미국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에서 특히 흥미로운 건 10여명의 경쟁자가 남은 뒤부터 매회 첫 장면에 등장한 3분짜리 '뮤직 비디오'다. 출연자들이 함께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거나 세차를 하며 노래하는 모습을 담은 이 뮤직비디오 속 주인공은 실은 포드 자동차이다. '아메리칸 아이돌' 프로그램에 거액을 협찬하고 있는 대기업 포드가 자사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기획한 일종의 변종(變種) 광고다.

이처럼 TV 프로 속 간접광고가 일상화된 미국 방송가이지만 '시에스아이(C.S.I)' '그레이 아나토미(Grey's Anatomy)' '클로저(Closer)' 등 각종 드라마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간접광고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상품 광고에 대한 고려 때문에 드라마의 스토리가 왜곡돼서는 안 된다"는 제작진의 고집 때문이다. 대형 제작사 워너 브라더스의 한 마케팅 간부는 "간접광고로 사소한 수익을 올리는 것보다 콘텐츠의 완성도가 훨씬 중요하다"고 했다.

2010년 방송법 개정으로 TV 프로 속 간접광고가 일부 허용된 뒤 갖가지 상업적 실험에 골몰하고 있는 국내 드라마 제작진이 유념해야 할 것은 이런 분별력이다. 갈수록 노골적으로 변모하는 국내 드라마 속 간접광고를 보면 이제 스토리는 상품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최근 종영된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은 간접광고의 조악한 습격으로 점철된 작품이었다. 그중에서도 장동건이 김하늘에게 '지미 추' 명품 구두를 선물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능력 좋네. 명품 구두 선물이라. 130만원짜리 한정판이야"라는 친구의 말로 구두 가격까지 친절하게 알려준 작가는 장동건의 입을 통해 "사치스럽게 말고 가치스럽게 신어봐요"라는 광고 카피성 대사까지 제공했다.

이 밖에도 '유령' '더 킹 투 하츠' '골든타임' 등 억지스러운 간접광고로 구설(口舌)에 오른 드라마는 한두 편이 아니다. 최근에는 걸그룹 티아라의 함은정이 드라마 '다섯손가락'에서 갑자기 하차한 것을 두고도 간접광고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오며 방송가를 달구고 있다. "팀 내 왕따 문제로 이미지가 실추된 은정으로 인해 간접광고 수주에 문제가 있어 제작사가 캐스팅을 무리하게 변경했다"는 주장이다. 요즘 간접광고에 대한 제작진의 강박을 감안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국내 방송법에는 전체 방송시간의 5%, 전체 화면의 25% 이내로 간접광고가 허용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법의 한계를 넘지 않더라도 드라마의 스토리에 무리한 부담을 주면서까지 간접광고를 집어넣는다면 시청자의 짜증과 조소(嘲笑)만 유발할 뿐이다. 게다가 이로 인해 제작 과정의 잡음까지 불거지고 있지 않은가? 우리 드라마는 한류(韓流) 바람을 타고 이미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콘텐츠로 성장한 지 오래다. 20여년간 쌓아올린 한국 드라마의 국제적 위상이 눈앞의 작은 수익에 대한 제작진의 욕심 때문에 무너져서야 되겠는가.



최승현 대중문화부 방송·음악팀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30/20120830025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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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3. 01:10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관 뚜껑을 덮을 때 나는 청탁(淸濁)의 소리는 제각기 다르다. 최근 개봉한 전투기 조종사들의 애환을 담은 영화 '알투비(R2B)'를 보고 한 공군 애호 단체 모임에서 들었던 어느 순직 조종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주인공은 2010년 3월 2일 신참 조종사의 비행훈련을 돕기 위해 F-5/F 전투기에 동승했다가 추락 사고로 순직한 고(故) 오충현 공군 대령이다. 그는 공사(38기)를 수석 졸업한 인재였고 유도도 잘했다. 또 축의금 봉투에는 항상 '대한민국 공군 중령 오충현'이라고 쓸 만큼 공군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고, 비행시간도 2792시간이나 되는 베테랑 조종사였다. 그는 공군 역사에 비행훈련 중 순직한 첫 번째 비행대대장으로 기록되었을 만큼 솔선수범과 책임정신이 투철했던 지휘관이었다.

무엇보다 나를 숙연하게 만든 것은 그의 일기장<아래 사진>이다. 인간은 의식이 언어를 주관하고, 언어가 행동을 지배한다. 내가 오 대령의 일기에 주목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1992년 12월 한 동료의 장례식장을 다녀오면서 마치 18년 후에 있을 자신의 유언처럼 일기를 썼다.
'내가 죽으면 가족은 내 죽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담담하고 절제된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 장례는 부대장으로 치르되, 요구 사항과 절차는 간소하게 했으면 한다. 또 장례 후 부대장과 소속 대대에 감사 인사를 드리고, 돈 문제와 조종사의 죽음을 결부시킴으로써 대의를 그르치는 일은 일절 없어야 한다. 조국이 부대장을 치러주는 것은 조종사인 나를 조국의 아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족의 슬픔만 생각하지 말고, 나 때문에 조국의 재산이 낭비되고 공군의 사기가 실추되었음을 깊이 사과해야 한다. 군인은 오로지 '충성'만을 생각해야 한다. 비록 세상이 변하고 타락한다 해도 군인은 조국을 위해 언제 어디서든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전투기 조종사의 운명이다.'

그의 일기를 읽으면서 '난중일기'를 쓰며 해전 승리에 골몰했던 이순신 장군을 떠올려 보았다. 고(故) 오충현 공군 대령! 그는 '독수리는 떠난 자리도 깨끗하다'는 전설을 남겼다. 이기주의와 보신주의가 판치고 권도(權道)가 상경(常經)을 밀어내는 혼탁한 세상에 참 군인정신을 우리 가슴에 각인시키고 홀연히 먼 길을 떠난 그의 순수한 조국애와 숭고한 희생에 깊은 애도와 존경을 표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쪽 발은 이 세상에, 나머지 한쪽 발은 관(棺) 속에 넣고 애기(愛機)에 올라 우리나라 영공 수호에 전념하는 전투기 조종사들의 안전한 '리턴 투 베이스(R2B)'를 기도한다.

김덕수 공주대 교수·일반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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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3. 01:08

어느 세대나 나름의 목표와 기대가 있다. 소위 개발 세대에는 '한번 잘살아 보는 것'이 그것이었다. 5·16이 나던 해 추경예산의 52%가 미국의 원조로 채워졌다. 본예산도 원조로 반을 채우곤 하던 시절, 매년 예산안을 작성하면 미국 경제협조처(USOM)에 가서 설명해야 했다. 1963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국가의 기본 살림인 예산의 절반 이상을 미국에 의존하니, 겉으로는 독립국가이지만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발언권이 52%인 셈이라고 개탄했다. 나라와 개인 모두 가난에 찌들었고 가난 때문에 비굴해야 했으니 가난을 벗어나는 것 말고는 달리 열망할 것이 없었다.

열심히 일하는 것과 자식을 가르치는 것이 그들 인생의 전부였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며 분신한 청년도, 밤새 미싱을 돌리는 청계천의 소녀들도, 피폐해가는 농촌도 모두 마음에 묻은 채 달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는 눈부셨다. 인구 3000만명이 안 되는 작은 나라를 제외하면 우리는 지난 50년간 연 5% 수준의 경제 성장을 지속한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전트 교수는 몇 달 전 한 인터뷰에서 한국을 '기적의 나라'라고 불렀다. 개발 세대는 너무나 훌륭히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면 우리 세대의 과제는 무엇일까. 우리는 경제 발전의 첫 수혜자이다. 자신들이 가져보지 못한 기회를 자식이 가질 수 있도록 무지하게 애쓴 부모와 성장의 그늘에 가린 수많은 희생을 기억하는 유일한 세대다. 그렇기 때문에 고속 성장이 낳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우리 세대의 몫일 수밖에 없다.

초고속 성장은 탄탄한 선(善)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고효율의 집중 투자로 단시간에 빈곤을 탈피했지만, 경제의 일부분에서 발생한 부(富)가 다른 부분으로 확산되면서 구매력의 저변을 넓히고, 국민의 취향과 소비 패턴이 고급화되면서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키는 구조가 없어 충격에 취약하다. 1990년대 초반 중국 등 저임금 국가와의 경쟁에서 밀린 경공업이 붕괴하면서 제조업에서 떨려난 노동력은 서비스업으로 대거 유입됐다. 그러나 초고속 성장 속에 낙후 상태에 머물러온 서비스 부문에 밀려든 인력은 막다른 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해야 했고, 여기서 희망을 보지 못한 많은 사람은 아예 경제활동을 접었다.

지난 15년간 상위 10%는 별 변동이 없는 데 비해 하위 10%의 시장소득 점유율은 반도 넘게 잘려나갔다. 저소득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 최대 수준의 낙폭으로 감소했고, 빈곤은 만성화되고 있다. 경제 개발이 시작된 이후 들어보지 못했던 '빈곤 계급의 형성'이다. 경제적 계층은 뛰어넘으면 그만이었던 사회에서 한 번 격차가 벌어지면 장기간,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사회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이를 극복하도록 돕는 시스템은 아직 갖추지 못했다. 이 또한 초고속 성장의 유산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에서는 부지런하면 잘 살 수 있었고 대부분이 승자여서 패자를 따로 돌볼 필요가 크지 않았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요즘 정치가들이 외치듯 '이제는 복지'라는 단순한 접근으로 이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앞 세대의 성취를 말아먹지 않으면서 닥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닥치고 복지'가 아니라 '어떤 복지'인지가 중요하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누군가를 도와 일으키려면 그가 변화에 잘 대처하고 적응하도록 도와야 한다. 물살이 거셀수록 튼튼한 뗏목을 마련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개인이 성공적으로 물살을 탈 때 경제도 성장한다. 그러니 복지의 요체는 시장에서 뒤처진 패자를 신속히 부활시켜 시장에 재진입시키는 것이며 복지와 경제는 더 이상 별개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복지정책은 굳이 배우거나 일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도록 돕는 데 방향이 맞춰져 있다.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지만 계속 빈곤 속에서 살도록 눌러 앉히는 방식이다. 새로운 기술과 더 나은 일자리로 이들을 연결시키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턱없이 빈약한 데다 비효율적이다. 당장 붙잡을 말뚝을 국가가 나눠주는 것만 중요하다는 인식이 관료와 전문가들 사이에 팽배할 뿐 아니라 부처 간, 전문 영역 간 기득권 다툼과도 얽혀 있어 바꾸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뗏목 탈 줄 아는 이와 말뚝에만 의지하는 이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니 복지정책이 오히려 계층 간 격차를 키우고 고착시키는 셈이다.

당신 세대는 제 몫을 다하고 있느냐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지금으로서는 당당하기 어렵다. 앞 세대보다 결코 만만하지 않은 과제 앞에서 굳어버린 관념과 관행, 온정주의로 포장된 집단이기주의를 떨쳐내는 것이 우선 급하다.


윤희숙 KDI 연구위원·보건복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29/20120829029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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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3. 01:05

삼성 애플 소송의 결과가 나왔다. 삼성이 애플의 아이폰 디자인을 베꼈다는 것이 미국 법원 배심원들의 평결이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이 전문가가 아닌 배심원들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런 평결이 애국심의 산물일 것이라는 평을 내놓았다. 문제가 된 것은 디자인이니, 향후 삼성은 디자인 전문가를 보강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이번 소송에서 핵심 이슈는 분명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디자인이 아니라 소비자가 느끼고 체험하는 제품의 이미지나 정체성과 관련된 디자인이다. 우리는 '각이 둥근 네모 모양의 휴대전화가 어떻게 특허가 되느냐'고 따지지만, 이것은 논란이 되는 디자인 특허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지적이다. 분명 미국 법원은 A와 B가 각각은 달라도 전체적으로 흉내를 냈다면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법적 용어로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라고 한다. 제품 전체의 포장·용기·형태·색깔 등을 종합해서 그 제품만의 독특한 디자인 특성을 그 제품의 정체성이자 핵심 디자인 특허로 보는 것이다. 만일 다른 제품이 이런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유사하게 느껴지게 했다면 특허 보호 대상을 훔쳤다고 간주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디자인 전문가의 생각이 아니라 소비자, 즉 일반인이 그 제품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이다. 기술적으로 완전히 다르다고 하더라도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나 느껴지는 감성에서 비슷하다면 그것은 베낀 것이다. 이는 소비자 심리의 문제이다. 물리적인 디자인이 소비자 개인의 심리와 감성적 체험으로 연결되는 부분이다.

제품의 정체성과 이것을 디자인적 이미지로 전환하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국내 기업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디지털 제품의 핵심은 숨어 있는 기술이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느끼고 보는가의 문제이다. 이제 기업이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은 제품의 기술적 구성도 중요하지만 소비자가 제품을 통해 느끼는 이미지와 정체성이다. 특정 제품의 디자인이 소비자에게 어떤 이미지로 다가오는지,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선진국 기업들은 제품 디자인에서 창의력을 강조한다. 남들과 다른 제품은 단순히 특이한 디자인이나 앞선 기술을 적용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뚜렷한 정체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제품이다. 이에 비해 국내 기업들이 쏟아내는 수없이 많은 제품이 비슷비슷하게 느껴지고 그것이 그것처럼 보인다면, 이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아무런 정체성도 없는 제품을 베껴낸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애플의 디자인이나 기술은 특별히 뛰어나지 않다. 단지 남들과 분명히 차별되는 제품의 정체성을 디자인과 일반적 기능으로 구현한 것이다. 그를 통해 소비자들이 제품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느끼게 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기업들이 전자·자동차 등의 제품에서 쉽게 구현하지 못하는 특성이다. 정체성이 뚜렷이 부각되지 못하는 제품이라면 아무리 앞선 기술이 적용되고 멋진 디자인으로 꾸며진들 어디선가 본 듯한, 어떤 것을 따라 한 듯한 '카피캣(복제품)' 수준의 제품이 되고 만다. 중국의 '산자이(복제 짝퉁)'와 그리 다르지 않은 제품을 우리의 일류 기업이 여전히 만들고 있는 것일 뿐이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29/20120829010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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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3. 01:04

“성공하려면 섹시해져라”… 섹시 페미니즘 창시자

13일 타계한 헬렌 걸리 브라운은 32년 동안 여성잡지 코스모폴리탄의 편집장을 맡으며 여성의 사회적 성공과 성적 자유를 주장했다. 허핑턴포스트 웹사이트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에나 간다(Good girls go to heaven, bad girls go everywhere).’ 13일 90세로 세상을 떠난 미국 여성잡지 코스모폴리탄(이하 코스모)의 헬렌 걸리 브라운 편집장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착한 여자는 안락한 삶을 살지만 나쁜 여자는 훨씬 많은 선택의 기회를 누리며 산다는 것이다. 브라운은 평생 여성들에게 “나쁜 여자가 돼라”고 설파했다. ‘나쁜 여자는 어디에나 간다’는 자신의 ‘명언’을 2009년 자서전 제목으로 사용했을 정도다.》

브라운이 말하는 ‘나쁜 여자’는 관습에 매이지 않고 돈 명예 사회적 지위 등 남성들이 누리는 특권을 쟁취하는 여성이다. 여성의 성적 매력도 숨길 것이 아니라 적극 이용해야 할 무기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가 편집장을 맡은 32년 동안 ‘코스모’는 여성의 외모와 성적 매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알려 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들로 가득 채워졌다.

73세에 가슴 확대 수술을 받았을 정도로 성형수술 신봉자였던 브라운은 고령에도 뽀얗게 화장한 얼굴로 대담한 의상을 입고 TV 오락 토크쇼에 자주 출연해 ‘섹시한 여성이 되는 법’을 알려 줬다. 여성의 성적 매력을 내세운 브라운 식 ‘섹시 페미니즘’은 그의 이름 ‘헬렌’을 따 ‘헬레니즘(Helenism)’으로 불려 관능적 아름다움을 표현했던 그리스 헬레니즘(Hellenism)을 연상시켰다. 

일명 ‘스틸레토(하이힐) 페미니즘’으로 불리는 브라운 식 페미니즘은 정통 여권 운동가들로부터 ‘사이비’라고 배척받았다. 미국 여권 운동을 개척한 베티 프리단은 브라운을 “안티 페미니스트”라 불렀고 코스모 잡지를 가리켜 “유치한 10대 여성의 성적 판타지로 가득하다”고 비꼬았다. 생전에 여성의 지위 향상을 외쳤지만 그의 사후 여권 운동가들에게서 애도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브라운이 “여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진보적인 동시에 퇴행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야누스적 인물”이라며 “그가 끼친 영향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논란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많은 여성에게 브라운의 주장은 폭넓은 공감을 얻었다. 특히 일터에서 매일 남성과 부닥치며 살아가는 직장 여성에게는 여권 운동 같은 고상한 이념보다 남성을 적대시하지 않는 현실적 여성관이 설득력이 있었다. 

영화 ‘섹스 앤 더 시티’를 포함해 미국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현대적 여성상은 브라운이 내세운 ‘나쁜 여자’를 모델로 삼은 경우가 많다. 

브라운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다. 성공에 대한 열망과 집착은 여기서 비롯됐다. 1922년 아칸소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열 살 때 아버지가 엘리베이터 사고로 사망한 후 로스앤젤레스(LA)로 이사 가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살았다. LA의 경영단과대학 졸업 후 광고회사 비서로 들어가 톡톡 튀는 광고 문구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인정받아 제작 부서로 옮겼다. 여러 광고회사를 거치며 성공 가도를 걷다가 40대 초반이던 1960년대 초 광고계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여성이 됐다. 

브라운이 1962년 내놓은 책 ‘섹스와 독신 여성’은 당시 보수적이던 미국 사회에 일대 충격을 안겨 줬다. 책에서 여성에게 성적 자유를 누리며 살라고 주장한 그는 “성공을 위해 섹스를 이용했다”는 자신의 경험담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리고 3년 후인 1965년 여성잡지 코스모를 살리라는 특명을 부여받고 미디어그룹 허스트에 영입됐다.

당시 미국의 여성잡지 시장은 전업주부들을 겨냥해 살림과 내조 비결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브라운은 커리어 여성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여성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성공한 독립 여성을 모델로 내세운 기사들에 집중했다. 돈 명예 권위 사랑 등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여성을 가리키는 ‘코스모 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남성이 만든 게임의 규칙을 뒤집기보다 그 안에서 여성이 성공하는 비결을 알려 준 브라운과 코스모 잡지는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시대의 보수적 분위기와 맞아떨어져 전성기를 누렸다. 

브라운은 1983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25인에 선정됐으며 미국의 대표적 오락 토크 프로그램 ‘투나잇 쇼’의 10대 단골손님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그가 처음 편집장을 맡았을 때 발행 부수가 76만 부에 불과했던 코스모는 80년대 초 300만 부로 급증했으며 현재 64개국 판으로 번역 출판되고 있다. 

브라운은 겉으로는 성적 자유를 외쳤지만 사생활은 ‘모범생’이었다. 1959년 결혼한 남편 데이비드 브라운(영화 제작자)이 2000년 사망할 때까지 41년간 동고동락하며 살았다. ‘스팅’ ‘조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등 수십 편의 할리우드 영화를 제작한 브라운의 남편은 아내의 사회활동을 지지하며 후원했다. 이들 부부는 “아이들을 낳아 기르기에 우리는 너무 이기적”이라며 평생 자녀를 두지 않았다. 

여성의 재정적 독립을 중시했던 브라운은 코스모 편집장으로 재직하던 32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점심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을 정도로 검소했다. 브라운은 남편이 사망한 뒤 남편의 모교인 스탠퍼드대와 컬럼비아대에 남편과 자신의 이름을 딴 미디어연구소 건립에 평생 모은 재산 3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워싱턴 정미경 특파원


http://news.donga.com/3/all/20120829/489452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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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3. 01:02

2008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직에서 은퇴한 빌 게이는 요즘 '돈을 쓰는' 제2 인생을 살고 있다. 정확히 말해 전 지구적 이슈에 관심을 갖고 미래를 위한 투자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중심에 원자력이 있다. 최근 게이츠는 특히 차세대 원자로 개발에 적극적이다. 그가 '원자력 전도사'로 나서게 된 이유는 뭘까? IT산업의 제왕이었던 그는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임을 인식했고, 전기를 공급받지 못한다면 곧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게이츠가 인류 복지를 위해 펼치고 있는 화장실사업도 일맥상통한다. 화장실 보급이 '위생뿐 아니라 인간 존엄성의 문제'이듯이 전기나 에너지 부족으로 기본적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는 수십억명의 인구에 필요한 핵심 에너지 기술로 원자력을 택한 것이다.

그가 꿈꾸는 미래를 위해 게이츠는 한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선택했고, 필자를 비롯한 국내 전문가들이 지난 8월 16~17일 그가 설립한 테라파워사를 방문했다. 이번 방문에서 테라파워사가 연구 중인 '진행파원자로'와 '소듐냉각고속로' 개발을 위한 협력 방안도 논의했다. 게이츠는 한국이 뛰어난 품질의 전기를 세계에서 가장 싸게 공급하는 국가일 뿐 아니라 UAE 수출을 이뤄낸 원전 선진국임을 인정하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특히 자원도 빈약한 후발국인 한국이 어떻게 세계적인 원전 선진국이 되었는지 신기해하며 놀라움을 표했다.

빌 게이츠와의 만남을 통해 진심 어린 애정으로 지구적 이슈를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그의 강한 의지를 확인했다. 또 여느 원자력 전문가에 뒤지지 않는 지식과 아이디어가 넘치는 진정한 통섭형 인물이 바로 게이츠였음을 알고 감탄했다. 늘 혁신을 꿈꾸는 그의 도전적인 자세와 열정, 그리고 인류애적 마인드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덕목임이 분명하다.

세계 원자력의 역사는 반복되는 도전을 지혜롭게 극복해온 과정이었다. 게이츠가 혁신적 마인드로 위기에 도전해 왔듯이, 지금이 바로 일본 원전사고 이후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차세대 원자로 개발에 있어서 한국이 세계적 주도권 확보를 위해 적극 나서야 할 때다. 빌 게이츠와의 뜻깊은 만남을 계기로 우리의 선진 원자력 기술이 인류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고, 세계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장순흥 KAIST 교수·한국원자력학회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28/20120828028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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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3. 01:01

[시민편집인의 눈]


스포츠 저널리즘의 진보영역은 재미 추구 + 비평 기능
국가주의·경제효과 등 ‘메가이벤트 신화’에서 벗어나야 

스포츠에 관심이 적은 한국인은 올여름 올림픽 이야기의 융단폭격에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영국이나 독일에서는 선술집인 펍에서 맥주 한 잔 시켜놓고 스포츠 중계방송을 즐기지만 오히려 월드컵이나 올림픽 기간에 중계를 보여주지 않는 술집들도 생긴다. ‘축구 없는 구역’이란 뜻인 ‘풋볼 프리존’이나 ‘올림픽 프리존’ 같은 안내판을 내건다.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소수자 배려 문화’가 없나 싶어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올림픽 프리존’이 있기는 했다. 알고 보니 ‘방마다 대형 티브이를 설치해 올림픽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나.


오랜 기간 세계 주요국 언론들을 모니터링해오면서 내린 결론은 우리만큼 거국적으로 스포츠 메가이벤트에 몰입하는 나라가 없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월드컵과 올림픽의 개최국인 독일과 영국에서도 보도를 절제하면서 스포츠에 관심이 적은 사람들을 위한 갖가지 배려를 했다. 인터넷에서는 <비비시>(BBC)뿐 아니라 <가디언>과 <더 타임스>도 ‘올림픽 감추기’(Hide Olympic) 배너를 클릭하면 올림픽 기사가 사라진 별도 홈페이지로 이동했다. 주최국인데도 올림픽이 머리기사를 차지하는 날은 많지 않았다.


<비비시>가 8월4일 상당히 비중 있게 보도한 ‘의족 스프린터 피스토리우스’ 기사도 세 번째로 취급됐는데, 머리기사는 시리아 사태를 다룬 것이었고, 두 번째는 북한 홍수 기사였다. 우리 언론에서는 시리아 사태는 물론 북한 홍수 기사도 올림픽에 밀렸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축구 같은 큰 이벤트가 있을 때 권력층 비리 등 한국 사회 주요 현안들이 언론에서 사라지는 일은 늘 반복된다.


<한겨레>가 올림픽 기사를 세 번만 1면 머리기사로 올리고, ‘용역폭력’ ‘녹조현상’ ‘공천헌금’ 등 현안들을 계속 추적한 것은 의지가 엿보이는 보도태도였다. ‘런던 클로즈업’처럼 특파된 기자가 경기장 안팎에서 주워담아 전해준 읽을거리들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진보신문이 스포츠 저널리즘 영역에서 보여줄 수 있는 차별성인 비평 기능은 너무 약해 보였다. 그런 맥락에서 문화·스포츠 에디터의 칼럼 ‘또 하나의 감동’(16일)은 일부 내용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한국의 언론들도 ‘애국주의나 금지상주의의 틀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고 했는데, 과연 그렇게 평가해줄 만큼 변화한 것일까?


대한체육회는 ‘금메달 10개, 종합순위 10위’를 목표로 잡았는데, <한겨레>에서도 금메달 순위가 곧 종합순위로 통했다. 메달집계표도 금메달순이었다. 미국·캐나다·일본 등이 총메달수로 순위를 매기는데, 한국에서는 <한겨레>만이라도 총메달수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어땠을까? 금메달만 중시하는 건 2등을 ‘실패’로 보는 일등지상주의 소산이다. 금메달 순위로 보면, 학교체육과 사회체육의 기반이 튼튼해 진짜 스포츠 선진국으로 불리는 덴마크가 29위, 스웨덴이 37위, 핀란드가 60위였다.


올림픽에 끼어든 자본의 문제, 특히 엘리트체육과 일등주의를 부추기는 재벌의 올림픽 스타 마케팅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고 합숙을 금하는 등 학교체육을 정상화하려는 학교체육법안에 박용성 체육회장은 신문에 칼럼까지 기고하며 반대했다. 운동만 하던 선수들은 끝내 메달을 따지 못하면 정상적 사회활동을 하기 힘들어 빈민층으로 전락하는 사례가 많다. ‘금메달 따면 부자 되나요?’(11일) 기사에서 ‘올림픽에 열광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과 공평한 대가’가 ‘올림픽에서는 그나마 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온전한 설명은 아니었다.


전경련이 한국의 메달 28개 중 22개가 10대 그룹이 협회장 등을 맡아 후원한 종목이라고 홍보했지만, 그것은 정부가 학교체육과 생활체육을 방치하고 있는 사이 재벌이 메달을 딸 수 있는 엘리트 중심으로 스포츠를 좌우해왔음을 반증한다. 메달을 딴 선수가 기자회견 도중 도착한 재벌회장에게 인사하고 기념사진까지 찍는 장면은 상업주의와 자본에 예속된 한국 스포츠의 본모습이다.


<한겨레>가 짚어줬으면 했던 또 하나의 관점은 올림픽을 국가대항전으로 몰고 간 국가주의 분위기였다. 올림픽 헌장도 올림픽은 개인간 경기이지 국가간 경기가 아니라고 천명했는데 우리 언론은 메달 획득을 ‘국위선양’으로 찬양하기 바빴다. 국가주의가 극명하게 표출된 것은 축구였다. 축구에는 그렇지 않아도 경기 전에 유독 양국 국가를 부를 만큼 국가주의가 스며들어 있다.


세계 최강과 맞붙은 브라질전 때 든 기분은, 한국이 이기면 또 얼마나 요란하게 한국 사회를 뒤흔들까 하는 걱정이었다. <한겨레>도 이미 ‘4강 신화’로 1면 머리기사(6일)를 장식한 터에 ‘신화’ 다음은 무엇일까? ‘신화’를 낳은 엘리트체육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대다수 국민들은 계속 운동부족 상태에 놓이지 않을까? 한국 사회 모든 현안도 ‘신화’ 속에 묻히지 않을까? 말을 못해 그렇지 ‘거국적 몰입’에 불편해하는 사람도 꽤 있다고 본다. 그런 사람들을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야말로 런던올림픽 개막식이 보여준 ‘다원화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터이다. 한국 승리에 대한 걱정은 흔쾌하게 우리 팀을 응원할 마음을 되찾게 해달라는 소망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이봉수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한일전을 앞둔 절묘한 시기에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를 전격 방문함으로써 축구를 진짜 국가대항전으로 만들어버렸다. 정권이 곤경에서 빠져나오는 데 전쟁 다음으로 유용한 것이 스포츠란 말이 있다. 스포츠에서 정치와 자본을 분리해내는 일은 <한겨레>가 추구해야 할 스포츠 저널리즘의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올림픽이 메가이벤트가 되면서 ‘올림픽의 저주’란 말이 나올 만큼 올림픽 개최국 또는 도시는 대부분 재정위기에 몰렸다. 국제대회를 유치한 영암, 대구, 부산, 인천에서 드러나듯 평창도 ‘경제효과 65조원’은 ‘허풍선’이 될 게 확실하다. 직접경제효과는 세금 투입 효과이니 더 큰 효과를 낼 투자처가 얼마든지 있고, 간접경제효과는 신기루에 가깝다. 국민 세금이 재벌 건설사 등 ‘토건족’ 주머니로 들어가고 주민이 시설 유지 비용을 계속 뜯기는 ‘야바위’나 다름없다. 스포츠 메가이벤트의 신화에서 우리는 언제 깨어날 수 있을까?



이봉수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491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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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3. 00:59

프러시아 정치사학자인 오토 힌체는 내정의 연장이 외정이고, 외정은 다시 내정을 규정한다는 내정과 외정의 상호결정론(codetermination)을 설파하였다. 상호결정론이 한국보다 더 절절히 들어맞는 나라는 없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국제적 냉전의 산물이고, 국내정치적 갈등보다 국제정치적 요인이 6·25전쟁을 발발케 했으며, 전후 남북 간의 체제경쟁이 한국의 압축적 산업화를 견인하였다.

그런데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 성공적 외정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활적인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의 주요 대선 후보들은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지역균형발전 등 내정에 관한 정견과 공약을 발표하면서도 2012년 이후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대국가전략(Grand National Strategy)에 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유로존 금융위기의 먹구름이 대한민국에 도달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 것이고 한중일의 지도자들이 국내 정치적 곤궁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정을 이용하면서 동북아에 영토 갈등이 거세지고 있으며 차기 대통령이 선출될 즈음에는 동북아 안보 체스판의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 러시아는 대선을 끝냈고, 한국 미국은 앞두고 있고, 중국과 북한에서 권력세습이 완료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총선 가능성이 점증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은 동북아 지역을 움직이는 행위자와 구조가 동시에 바뀌는 시점에서 권력을 이어받는다. 따라서 주요 후보들은 이러한 중대한 구조적 변동기에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외정의 방향을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초당적 대국가전략은 다음과 같다. 

해외의존도 높은 한국엔 ‘外政’ 중요


첫째, 대한민국은 지중해시대 대서양시대 태평양시대를 거쳐 도달한 21세기 ‘동아시아 지중해시대’를 여는 주역이 되어야 한다. 유럽의 지중해시대를 이끈 나라가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반도국가였듯이 ‘동아시아 지중해시대’도 반도국가인 한국이 열어야 한다. 동해 남해 서해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면서 태평양과 중국대륙을 연결할 수 있는 반도가 지닌 지정학적 가치를 활용하면 한국은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그랬듯이 동아시아 지중해의 중추국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동북아의 강대국인 중국 일본과 삼각균형체제를 이루지 않고서는 한국은 중추국가가 될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의 국력은 삼각균형을 이야기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하기 때문에 국력을 키워 삼각균형을 구축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 ‘자강을 통한 내적균형(internal balancing)’ 전략을 생각해볼 수 있으나 단시일에 이룰 수 없는 비현실적 전략이다. 따라서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전략은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통한 ‘외적균형(external balancing)’ 전략이다. 현재 예측 가능한 시간 내에 세계 유일의 패권국으로 남을 미국의 힘을 한미동맹 강화를 통해 더함으로써(호가호위·狐假虎威), 우리는 중국 일본과 거의 대등한 균형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북한과 화해와 협력을 통해 7000만 한반도 경제권을 형성한다면 일본과는 인구수와 시장에 있어서 실질적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자주론자들은 한미동맹 강화를 친미, 숭미로 배격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가 일본 중국과 자주적으로 떳떳하게 상대하려면 미국을 등에 업어야 한다. 한미동맹이 강고했을 때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 강변하지 않았고 중국이 동북공정을 벌이지 않았다. 

우리 홀로 자주하겠다면서 한미동맹을 이완시켰을 때 일본과 중국은 우리를 가볍게 대하고 무례한 짓을 하였다. 동아시아의 전통적 외교전략은 원교근공(遠交近攻)이다. 미국은 태평양 너머 있는 먼 나라이고 영토적 야심이 없는 유일한 제국이다. 중국과 일본이 아직도 19세기 제국주의시대의 영토 확장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미국의 힘을 빌려 자주를 확보하는 외적 균형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우리의 자주적 능력을 키우기 위한 ‘자주를 위한 한미동맹’을 지향해야 한다. 

둘째, 모든 후보가 복지를 이야기하고 있으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증세같이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전하는 방식은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복지재원은 해외에서 마련해야 한다. 

美 등에 업고 ‘한중일 삼각균형’이뤄야


우리는 지중해시대의 베네치아와 제노아 같은 도시공화국들이 해외에 투자해서 벌어들인 돈을 국내로 들여와 시민들에게 복지 번영 자유를 제공한 데서 배워야 한다. 이제 통상국가를 넘어서 해외투자를 통해 밖에서 돈을 벌어와 세금을 올리지 않고 복지기금을 마련하는 투자국가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구축하기 위해 중국을 둘러싼 동남아 서남아 중앙아시아 투자를 통해 틈새시장(niche market)을 개척해야 하고 한미동맹이라는 하드파워, 대한민국의 매력을 전파하는 소프트파워, 그리고 공적개발원조(ODA) 같은 경제원조를 통해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끈끈한 관계를 만드는 ‘점성권력(sticky power)’을 결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7000만 한반도 경제권 형성과 궁극적인 통일은 중국을 견제하고 한중일 삼각균형체제를 확립하는 데 필수적이다. 통일은 영토 인구 자원이라는 국력의 3대 요소를 더해줄 것이기 때문에 통일한국이 되어야 한중일 삼각균형체제가 완성될 수 있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http://news.donga.com/3/all/20120828/48920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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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3. 00:56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강타해 루이뷔통 같은 명품업체가 초비상이 걸린 적이 있다. 세계 악어가죽 공급의 85%를 차지하는 루이지애나주 양식 악어 150만 마리가 거의 죽어 악어가죽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2만1000 달러(약 2400만원)짜리 루이뷔통 악어가죽 재킷은 생산이 중단됐고 살바토레 페라가모 악어구두 가격도 두 배가량 치솟아 큰 피해를 봤다. 이때 수익을 거둔 이도 있었으니 바로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다. 카트리나에 놀란 플로리다 주정부는 워런 버핏과 ‘허리케인 피해가 발생하면 (버핏이) 40억 달러의 주정부 채권을 매입한다’는 헤지(위험 대비) 계약을 맺었다. 피해 복구 자금줄을 마련해 놓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허리케인은 잠잠했고 버핏은 헤지 계약의 대가로 2억2000만 달러(약 2500억원)를 고스란히 챙겼다.

 『워런 버핏이 날씨시장으로 간 까닭은』이란 책에 소개된 일화다. 최근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로 경제기상도가 급변하고 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104년 만의 가뭄과 연일 35도를 훌쩍 넘는 무더위가 지속되는가 하면 난데없이 국지성 폭우가 쏟아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국내 산업계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폭염이 이어지던 얼마 전으로 돌아가 보자. 불황 속에서도 반짝특수를 누린 제품이 꽤 많았다. 한 대형마트의 여름장부를 들여다보면 에어컨은 진열상품까지 동나는 품귀현상을 빚으며 40% 매출 증가를 기록했고 대형 선풍기는 57%, 쿨매트는 100배 이상 판매가 늘었다. 열대야 속 ‘치맥(치킨과 맥주)’을 즐기려는 사람도 늘어 수입맥주가 59%, 치킨은 30% 껑충 뛰었다고 한다. 반면 지구촌 폭염과 가뭄의 여파로 밀·옥수수·대두 가격이 오르면서 이르면 올해 말 밥상물가가 들썩이는 애그플레이션을 경험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기업에 날씨는 이제 필수 체크포인트다. 상품마다 잘 팔리는 온도부터 따로 있다. 반소매셔츠는 섭씨 영상 18도부터 많이 팔리고 에어컨은 19도, 아이스크림은 22도부터라고 한다. 온도가 더 오르면 수박(26도), 방충제·물티슈(29도)가 제철을 만난다. 반대로 온도가 내려갈 때는 13도부터 뜨끈한 어묵이 잘 팔리고 스웨터(영하 4도), 오리털 파카(영하 8~10도) 순으로 판매가 늘어난다.


이제 ‘비 오면 짚신장수 아들 걱정, 안 오면 우산장수 아들 걱정’ 식으로 앉아서 날씨만 걱정할 게 아니다. 날씨를 유가나 환율·금리처럼 중요한 경영변수로 인식해야 한다. 나아가 기상이변을 새로운 사업 기회로 활용해야 할 필요성도 엿보인다.


 기상선진국 미국은 기상시장 규모만 9조원이다. 1500억원에 불과한 국내 시장에 견줘 보면 어마어마하다. 1980년대부터 매년 평균 5%씩 꾸준히 성장하다가 카트리나로 수천 명의 피해가 발생한 이후에는 4.5배 수준까지 급팽창했다.

 기상산업은 일자리의 보고이기도 하다. 미국은 기상정보를 다루는 방송·신문 등을 비롯해 기상관측기기, 기상 컨설팅, 기상시스템 개발 등의 분야 4만여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 폭우나 폭염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해 주는 ‘날씨보험’이나 ‘날씨 파생상품’도 선보이고 있다. 기상이변 피해를 감정하는 ‘기상감정사’, 기상재해를 대비해 주는 ‘재해 컨설턴트’ 등 이색 직업도 생겨나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도 다양한 기상산업 육성정책을 내놓고 있다. 올해부터 기상정보를 활용해 피해에 대비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에는 ‘날씨경영 인증’을 해 주고 있다. 9월부터는 날씨(weather)와 내비게이션(navigation)을 합친 ‘웨비게이션’도 출시한다. 차량이 있는 지역의 기온과 습도, 안개, 도로 결빙 같은 세세한 기상정보를 제공해 교통사고를 방지한다는 것이다.

 ‘날씨가 세계경제의 80%를 좌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날씨가 기업활동과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이 그랬던 것처럼 꿇어앉아 기도만 하다간 기상이변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뿐이다. 무쌍한 기상환경 변화 속에 기업경영에 미치는 치명적 위협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161001&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2. 9. 23. 00:54

디자인이란 삶의 방식
'빈자·부자 모두 품위있는 생활'… 핀란드 디자인정신 보여주려 북유럽디자인체험관 짓는 중

한국과 다른 핀란드의 일상
마을마다 주민참여 문화프로그램… 아파트 모든 평수 있어야 건축허가… 3주씩 휴가… 여가엔 문화체험

핀란드 디자인의 특징
자연 중시하고 재활용… 단순하게 만들어 오래 안 질리게… 동네 구석구석 개성적 공예품

핀란드서 한국문화 소개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때 저 모습이 한국으로 비칠까 걱정… 5년 준비끝 '한국 가정' 특별전


<핀란드 디자인 산책> <북유럽 디자인>이라는 책을 낸 안애경(46 소노안 대표)씨는 핀란드와 한국에서 절반씩 살면서 핀란드에는 한국문화를, 한국에는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문화를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2007년에 핀란드국립박물관이 전관을 통틀어 한해 내내 열었던 '한국의 가정-삶의 방식 특별전'(Korealainen Koti)이 그의 기획이고 한국에서는 올 3월 중순부터 한달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핀란드 디자인전'을 열었다. 

그는 요즘 서울 성북구 성북동 공원녹지에 있는 무허가 폐가를 살려 북유럽디자인체험관을 짓는 일을 하고 있다. 성북구가 건설은 지원하지만 그가 무보수로 설계를 지휘하고 내용물까지 채워 북구의 디자인 정신을 널리 알리고 체험하는 학습장으로 쓰게 된다. 크리스마스 무렵 완공할 예정이다. 2008공공디자인엑스포 아트디렉터를 맡아 직접 설계한 북유럽주제관으로 보여준 감동을 한국의 일상에 녹여내는 작업인 셈이다. 그는 "모든 디자인은 공공디자인이다. 공공디자인이 따로, 행사로 존재하는 한국은 문제있다"고 지적한다. 

_왜 이런 곳을 짓게 됐어요?

"북유럽 디자인, 노르딕 디자인하면 사람들이 어떤 외형을 생각해요. 그런데 디자인이란 삶의 방식이고 철학이고 교육이거든요. 일상에 다 녹아 있어야 해요. 그걸 보여주려면 체험이 중요하니까요."

_구체적으로 뭐를 체험하게 한다는 말이에요?

"북유럽의 품위있는 일상생활 그 자체요. 핀란드에서는 어떤 공공시설에서도 식판에 밥을 먹지 않아요. 접시, 그것도 플라스틱이 아니라 자기로 된 접시가 나와요. 학교에서 급식할 때도 유치원에서도 아주 어린 아이들도 그걸 써요. 깨지면 어떡하냐, 그러니까 조심조심 다루는 걸 익히는 거지요. 집에서도 그래요.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누구나 품위있는 생활을 누리게 하자는 게 핀란드 디자인 정신이에요. 공공 영역에서는 더욱더. 또 하나는 시민 누구나 공예품을 구상하고 만드는 걸 가르치려고요. 핀란드에는 지역마다 디자인예술센터가 있어서 언제든 공예를 배울 수 있거든요."

_한국에서는 뭐가 다른가요?

"너무 차이가 많이 나서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한국에는 지역마다 대형 문화시설은 많아도 정작 주민들이 참여하는 문화프로그램은 별로 없어요. 핀란드의 디자인예술센터에 가면 노인들이 옛날 방식으로 러그를 짜는 걸 어린이들이 와서 보면서 배우거든요. 전통은 전통대로 살아나고 어려서부터 직접 만들어봤기 때문에 기능적으로도 아주 훌륭한 걸 만들게 되지요. 핀란드에서는 디자이너가 모양만 그리고 예술가라고 거드름 피우는 일은 없어요. 정말 막노동자처럼 직접 만드는 작업도 해요. 그러니까 자기가 써봐서 진짜 편한 물건을 아름답게 만드는 게 가능한 거지요. 핀란드는 아파트도 모든 평수의 형태가 들어가야 건축허가가 나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게 만들어요. 그런데도 대문은 똑같은 모양이라서 겉으로 봐서는 크기가 다른지 몰라요. 저는 정말 작은 집에 사는데 사우나까지 있어요. 좁은 집에는 빨래를 널리 힘드니까 지하의 공용공간에 빨래를 널게 설계가 되어 있어요. 돈이 많거나 적거나 쾌적한 삶을 보장하는 거지요. 그런데 한국은 큰 평수의 아파트, 호화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가 완전히 구분되게 지어지고 그 때문에 엄청난 차별을 하게 만들잖아요. 20세기 초 핀란드에 전기나 수도가 보급될 때 가정 먼저 전기 수도가 설치된 게 노동자 아파트였어요."

_약자 우선인건가요?

"아니요. 누가 우선이다 그런 게 없어요. 모두가 평등해요. 노동자들이 일을 잘하려면 쾌적하게 지내야 하니까 거기부터 대접을 해주는 거지요. 한국에서 이해하기 쉽게 노동자라고 말을 하는 거지 핀란드에서는 이런 말도 안 해요. 그냥 이웃이에요. 우리는 뭐든 따로 취급, 따로 대접하잖아요. 핀란드의 이딸라라는 유리공장은 여름철이면 3주간 공장을 닫아요. 전 직원이 다 휴가를 가는 거예요. 미술관도 콘서트홀도 문을 닫고 예술가도 일하는 사람도 휴가를 즐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나라 사람들은 여유시간이 있고 여유시간에는 동네 디자인예술센터에 가서 뭘 배우고 배도 깎고 그림도 그리고 그게 발전해서 축제도 자발적으로 열리고요. 한국은 축제라 하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억지로 행사를 한다고 돈을 써서 만들어주는 거잖아요."

_그래도 디자인이라는 말을 쓸 때는 외형적인 어떤 특징도 있겠지요.

"자연을 중시하고 재활용을 한다는 점? 우리는 어디를 완전히 깎아내고 뭘 새로 짓는데 핀란드는 길을 만들 때 나무 한 그루가 있으면 그걸 베지 않고 피해서 가요. (서울) 광화문광장이 완성된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어, 나무는 어디로 간 거지? 철마다 꽃을 갈아줘야 하는 잔디밭? 그늘이 없는 광장? 분수에서 아이들이 물장난을 하고 뛰어 놀던데 엄마들이 다 옆에서 지키고 있어요. 왜 그러겠어요? 놀이터는 안전한 곳에 있어야 하잖아요. 길 한복판에 놀이터를 만들면 그걸 만든 사람은 거기서 놀고 싶겠어요? 자기가 놀고 싶지 않은 공간을 왜 만드는 거에요? 보도는 전부 시멘트로 덮여 있고 산에는 데크까지 깔려 있어요. 물건을 만들 때는 매우 단순하게 만들어서 오래 써도 질리지 않게 해요. 물건 하나하나를 귀하게 만드니까 가격이 싼 건 아니에요. 하지만 새 걸 자꾸 사고 바꾸는 게 아니라 대를 물려 쓰니까 비싼 게 아닌 게 되는 거지요. 사람이든 물건이든 귀하게 만들고 귀하게 써요. 핀란드에서는 아직도 딸기가 우리 옛날 시골딸기처럼 작고 시큼해요. 그런데 이게 여름 한철만 나오는데 비싼데도 금방 팔려요. 그 자연의 맛을 1년 내내 기억하면서 귀하게 여기는 거지요. 한국에 와서 놀란 게 마트에서 덤을 준다고 사람들이 필요가 없는데도 그 물건을 사요. 핀란드에서는 그런 건 사기라고 금지돼 있어요. 인기 있다고 다른 물건을 베끼는 것? 부끄럽게 여겨요. 유럽 어디나 똑같은 공산품이 지배하지만 핀란드는 동네 구석구석마다 마을 사람들이 만든 개성적인 공예품이 있어요."

_무엇이 핀란드를 이렇게 남다르게 만든 걸까요?

"결국에는 교육 같아요. 우리나라 교육관계자 분들이 핀란드에 와서 수업참관을 했어요. 핀란드 선생님들은 교재나 시험지를 나눠줄 때 애들한테 일일이 한장씩 나눠줘요. 그랬더니 우리나라 분들이 물어요. 왜 저런 걸로 시간낭비를 하냐, 그 시간에 한 자라도 더 가르치지. 교사가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나눠주면서 아이들과 눈을 맞추는 거잖아요.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관심을 쏟는 게 교육이잖아요. 그런 학교에 왕따가 있겠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건 안하고 왕따 문제를 해결한다고 또 따로 뭘해요. 핀란드의 판화가인 오우띠 헤이스까넨이 한국에는 미술교과서가 있다니까 그거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같이 하러 가자고 해요. 그 나라 관념으로는 미술을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교과서가 있다는 게 믿을 수가 없는 거지.(웃음) 우리는 남의 그림 베끼는 데생이 미술을 평가하는 척도니까 미술을 잘한다, 못한다가 있잖아요. 미술은 창의성이고 개성인데 못한다는 게 있을 수 없잖아요."

_체육과목에 필기시험까지 있는 거 알면 기절하겠어요.(웃음)

"햇볕 좋은 날 숲 걸어다니는 것, 그런 게 체육수업이에요. 선생님 재량인 거지요. 그렇게 학교에서 지지고 볶고 놀고 집에 와서 또 놀고. 그게 세계 교육 1위인 핀란드 교육이에요." 

_한국도 바꾸려면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까요?

" 디자인은 다 공공디자인이에요. 도시 전체를 쾌적하게 기획하는 것이자 우리가 쓰는 일상용품을 멋지고 편리하게 쓰는 게 디자인이에요. 북유럽 생활용품으로 전시회를 하자니까 어떤 미술관장이 그래요. 백화점에서 파는 데 무슨 디자인이냐고. 디자인이 쓰임새를 중시해서 발전해온 것이 다르니까 상업성 기능성이 있지만 아름다움에서는 아트와 다를 바 없다는 걸 모르는 거지요. 그리고 디자이너라면 양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핀란드가 저렇게 된 것이 디자인은 민주주의다, 모두에게 가장 좋은 삶을 제공한다는 철학을 건축가 알바 알토를 비롯해 모든 디자이너들이 상식으로 믿고 지켰기 때문이거든요. 한국에서는 너무 많은 디자인 프로젝트들이 있어서 돈이 흘러다니지만 정작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쓰이는지는 모르겠어요. 2008공공디자인엑스포 아트디렉터 제안을 받았을 때도 의아했어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의 공공디자인을 모아서 실내에 전시하는 데 그 돈을 쓸 게 아니라 실제로 거리에 대중을 위한 시설물을 만드는 게 낫잖아요. 우리나라는 큰 건물 짓고 간판 바꾸는 게 디자인인 줄 알아요."

_핀란드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어요?

"원래 전공은 회화였는데 이것 저것 다 하니까 한 우물만 파라고 하고 한국에서는 사회적응이 잘 안됐어요. 94년 여름에 젊은 예술가 교환프로그램을 신청해서 핀란드에 갔어요. 이바스퀼라라는 작은 도시의 디자인예술센터에서 새로운 재료를 실험하는 역할을 했는데 모든 예술적 시도를 다 반겨주더라고요. 1년만에 돌아오니까 거기가 더 고향 같아서 장기체류를 신청하게 됐어요. 장기체류 면접을 경찰관이 하는데 취조하듯이 하지 않고 요즘 어떻게 지내니, 뭘 좋아하니, 이런 걸 친구처럼 묻는 게 참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가던 해에 성수대교가 무너지고(94년 10월) 이듬해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95년 6월) 저 모습이 한국으로 비치는가, 내가 한국인으로 한국을 알리는 일에 나서야겠다고 해서 2002년부터 5년간 준비한 끝에 핀란드국립박물관에서 '한국 가정'특별전을 열게 됐어요. 처음에는 인도전 할 때 한 귀퉁이, 중국전 할 때 한 귀퉁이를 내준다고 했는데 제가 자존심 상해서 안 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한국에 와서 온갖 자료를 다 모았고 핀란드국립박물관장을 2006년에는 핀란드 기금으로 한국에 오게 했지요. 한국이 돈 내서 그런 분들 모셔오는 건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말하면 우리(한국) 쪽에서는 돈 걱정부터 해요. 이상한 사람들 초청하는 데 쓸데없이 돈을 많이 써왔으니까. 우리 스스로 자부심이 없는 거지요. 우리 문화에는 그들에게 없는 게 있잖아요. 그 분들 전국을 다니면서 동네 김치찌개 된장찌개 먹게 했는데 너무 좋아했어요. 어디 가서 이런 경험을 하겠어요? 한국문화를 알고 나니까 한국으로 전관 전시를 받아들였어요."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08/h20120826211721123700.htm

Posted by 겟업
2012. 9. 23. 00:50

 조광수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

최근 정보통신부를 부활시키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IT(정보기술) 산업을 스마트 시대의 핵심 산업으로 키울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통부를 재건해야 한다는 당위론적인 처방에 앞서 할 일이 있다. 우리나라 IT 산업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는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산업 패권이 무너지는 줄로만 알았다. 포스코에 카운터 펀치를 맞고 무너진 미국의 US스틸에서부터 미국 산업의 상징인 포드·GM·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빅3의 파산은 이런 예측을 당연시하게 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원천기술 개발, 선택과 집중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IT 산업을 발전시켜왔다. 한국 IT 산업은 미국을 위협했고, 일본을 몰락시켰다. 그것이 자랑스러운 한국의 IT였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서막이 열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는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은 사용자 경험(UX) 기술을 정점으로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하드웨어, 인프라 등 4개 기술을 융합한 쿼드로버전스로 세계 산업 패권을 되찾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구글·애플·페이스북 등 세계적인 IT 기업은 모두 미국 기업이다. 애플은 인문학을 도입하고, 검색왕 구글은 무인 자동차를 만드는 등 미국 IT 기업들이 세계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 기업이 선도했던 MP3 플레이어 시장은 후발 업체인 애플의 아이팟이 석권했다. 싸이월드는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의 시조(始祖) 격이었지만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사이에, 뒤에 나온 페이스북이 전 세계를 지배했다. 이는 애플의 시리(Siri)처럼 감정을 담은 인공지능 기술에는 혀를 내두르지만 막상 이런 IT 분야를 연구하는 인문사회과학은 존중하지 않는 우리나라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는 미국 IT 산업이 커가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2002년 미국의 국립과학재단(NSF)은 미 상무부의 프로젝트 일환으로 '인간의 수행을 개선하기 위한 나노·생물·정보·인지과학(NBIC) 융합' 정책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는 IT와 인문사회과학을 접목한 애플의 전략과 일맥상통한다. 요즘 삼성이 갤럭시 S3의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인간 중심의 기술'과 같은 것인데, 미국 정부는 이미 10년 전에 이런 전략을 천명한 셈이다. 이처럼 미국이 IT를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미래 융합 기술의 본질이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이란 점을 제대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NBIC는 NBI로 변질됐다. 즉 인지과학을 제외한 나노·생물·정보만의 융합 기술 정책으로 바뀌었다. 미래 융합 기술의 본질인 인문사회과학이 부재한 정책이 펼쳐진 것이다. 과학계와 산업계, 관계, 매스컴, 일반인들이 모두 물질적인 과학기술만을 과학기술로 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마트시대의 핵심은 소프트웨어 공학과 운영체제, 프로그래밍 언어 등 IT와 인공지능, 인문사회과학이 접목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현재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 인도 등 경쟁국들도 비약적인 IT 발전을 이뤄내고 있다. 한국이 IT 산업에서 빠르게 뒤처지고 있는 까닭은 어떤 부처가 있고 없는 문제보다는 인문학적 이해와 깨달음 없이 IT 산업을 추진했기 때문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24/201208240215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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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3. 00:48


내 나이 올해 서른.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반째 방황을 이어 가고 있다. 나는 진작부터 PD를 꿈꿨다. 하지만 좁은 언론고시의 문이 내게 열릴까 싶어 일반 기업 채용시장도 기웃거린 지 벌써 2년째다. 요즘 들어선 더 혼란스럽다.

‘난 진짜 PD가 되고 싶은 걸까?’ ‘다른 친구들처럼 일반 회사에 들어가면 좋잖아.’ ‘아니야, 그러면 난 분명히 후회할거야.’ ‘막상 다녀 보면 적응할 수도 있어.’ ‘아, 그래도 내 꿈은 PD인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상과 현실을 저울질하는 나. 용기와 결단력이 부족한 탓이지만, 직장 생활 2∼3년 차에도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친구들을 보면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대학 시절, 스포츠 전문 기자가 되겠다며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유럽 축구여행까지 다녀온 친구가 있었다. 의지가 얼마나 대단했느냐 하면, 프랑스까지 가서 그 유명한 에펠탑과 개선문은 보지도 않고 내내 축구 경기만 봤다고 했다. 복학 뒤에도 유명 축구단의 서포터스로 활동하고, 블로그에 스포츠 관련 칼럼을 연재하며 차근차근 스포츠 기자로서의 꿈을 밟아 갔다. 그러던 친구는 아버지의 퇴직과 여자친구와의 결혼 문제로 꿈을 접었다. 주변 사람들과 연락마저 끊고 토론 면접, 협상 면접, 프레젠테이션 스킬을 속성으로 익히더니 지난해 가을, 모 화장품 회사에 입사했다.

“하루 종일 앉아서 전국 매장들 영업수치 모아 엑셀만 돌려. 이게 현실이야. 대학 때 배운 전공? 영업지원 부서에서 뭐가 쓸모가 있겠어. 이럴 거였으면 엑셀이나 실컷 배워 둘걸.”

친구는 좋아하는 스포츠를 제때 즐기지도 못하는 일개미가 되어 하루 14시간 이상의 업무를 감내하고 있다. 그 친구는 “막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과정”이라며 마음의 위안을 찾고자 하지만, 아직도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듯했다. 얼마 전 만남에서 스포츠 협회의 채용공고 조건을 이야기하며 말했다. “딱 서른까지만 해볼까?”

남자 나이 서른. 

저마다의 꿈은 있었겠지만, 시간에 쫓겨 주위 등쌀에 밀려 자의 반 타의 반 들어간 회사에서 2, 3년 차를 맞이하는 나이다. 겨우 안정을 찾을 만한 시기지만 미련은 버리지 못한다. 이상을 좇을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국내 유명 대기업에 8개월 정도 재직했던 한 선배는 서른 살이 되던 해 직장을 과감히 그만뒀다. 본인의 꿈을 찾아 파티를 열어 주는 이벤트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도전이 성공적이지는 못하다. 청년창업 강좌란 강좌는 다 듣고도 2년간 상호를 네 차례나 바꿨다. 

“형 나이가 올해 서른둘이야. 지금도 오락가락하는 매출 때문에 확신이 서지 않아. 좀 더 안정적인 사업을 찾아야 할 텐데…. 회사를 괜히 나왔다는 생각도 들고.”

선배들에게 상담을 청하면 “꿈을 향해 살라”고 말한다. 신문 방송에서도 ‘회사를 관두고 창업에 도전한 젊은 CEO’나 ‘고액 연봉을 포기하고 꿈을 찾은 회사원’의 성공 사례를 띄운다. 하지만 그런 성공이 극히 드물다는 걸 안다. 꿈을 향한 도전이 현실이라는 장벽에 부닥칠 때, 동료들보다 뒤처졌다는 사실에 절망하게 될까 두렵다.

이제 9월, 기업들의 대규모 공채 시즌이 다가온다. 여전히 길을 찾지 못한 못난 나에게도 대학 후배들이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들에게 조언이랍시고 얼마 전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여기저기 묻지 마 식으로 지원하면 후회한다. 나이 서른 돼서 퇴직하고 백수 된 애들 진짜 많아. 첫 직장이 중요하니까 역량과 적성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입사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조차도 현실을 직시하자니 한 번뿐인 삶이 너무 아깝고, 이상을 추구하자니 낙오자가 될까 봐 머뭇거려진다. 다시 돌아온 취업 시즌, 9월이 두렵다.


김태영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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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3. 00:47

“애플의 미래 밝지 않아… 특허 소송, 혁신의 계기 삼는다면 우리에게 약”

한국 정보통신 분야 기술의 산실인 국책연구기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을 이끌고 있는 김흥남 원장. 김 원장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사무소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이번 삼성-애플 간 특허 소송을 지적재산권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혁신의 계기로 삼는다면 한국 정보통신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정보통신 분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정보기술(IT) 강국 코리아를 이끌어온 IT의 산실이다. 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특허소송으로 세계 IT업계가 시끌벅적한 요즘, 전자통신연구원을 이끌고 있는 김흥남 원장(56)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김 원장은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미국 법원의 애플 특허 승소 판결과 관련해 “한마디로 이제는 기계를 만들어내는 시대가 아니라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먼저 양국 법원이 각각 내린 피해배상 액수에 주목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잇따라 판결이 내려졌는데 특허침해에 따른 배상판결 액수가 한국법원은 애플이 침해한 2건에 4000만 원이고, 미국 법원은 삼성이 침해한 6건에 1조2000억 원이다. 이 말은 결국 두 나라가 지적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지적재산권 침해에 미국보다 관대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일을 단지 누가 이기고 졌느냐 하는 법정싸움의 관점이 아니라 지적재산권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그러면서 “이번 미국 소송에서 삼성이 패한 특허들이 대부분 디자인에 집중됐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애플은 바운스 백(화면을 맨 아래까지 내리면 튕겨 화면의 끝을 알려주는 것), 멀티 터치(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기능), 멀티 택(글자를 터치하면 커졌다 작아지는 기능) 등의 기능을 삼성이 침해했다고 주장한 반면 삼성이 침해당했다고 한 특허는 3세대 이동통신 특허, e메일 전송 기술 같은 기술 분야다. 우리는 흔히 특허라고 하면 기술적인 것만 생각하는데 미국에선 디자인, 유저 인터페이스(컴퓨터를 더 쉽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명령어 또는 기법), 트레이드 드레스(상품 외관 혹은 느낌까지 포괄하는 지적재산권)처럼 분야가 다양하다. 특허를 적용하는 범위가 넓은 데다 이에 대한 가치를 확실히 인정해주니 판결 액수도 천문학적인 단위가 나온 것이다.” 

―미국 배심원단의 전문성, 공평성도 논란이 됐다.

“우리 쪽은 기술적인 것을 이해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더 어려웠다고 본다. 디자인 분야는 모양만 보고도 쉽게 비교하고 판단할 수 있잖은가.” 

―이번 판결에서 ‘트레이드 드레스’ 특허가 화제가 됐다. 

“디자인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느껴지는 전체적인 모습이나 제품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모습이다. 그 디자인만 생각하면 그 제품이 떠오르는, 디자인 정체성이라고나 할까. 예를 들어 코카콜라병 가운데에 잘록하게 들어간 선은 코카콜라에만 쓸 수 있다. 이걸 베끼면 미국에선 표절로 본다.”

―우리나라도 그런 특허가 있나.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 우리나라 특허 정의를 보면 ‘자연 과학을 이용해서 고도화된 새로운 아이디어’라고 되어 있다. ‘고도화된’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은 그만큼 엄격하게 특허 인정을 한다는 거다. 애플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모서리가 둥근 디자인’ 같은 것은 우리 문화에서는 (침해로) 인정받기 어렵다.” 

김 원장은 이 대목에서 “기술에는 패스트(Fast) 테크놀로지와 슬로(Slow) 테크놀로지가 있는데 우리도 이제 슬로 쪽에 노력을 더 기울여 양쪽 기술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패스트 기술은 하드웨어, 메모리, 반도체처럼 발전 속도가 빠른 것들이다. 앞서 나가기도 쉽지만 추월당하기도 쉽다. 소프트웨어 분야는 슬로 기술이다. 개발도 더디지만 쉽게 추월당하지 않는다. 명품 가방, 신발 시장도 슬로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디자인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애플의 경우 스마트폰 기기 제작 같은 패스트 분야는 외주(아웃소싱)를 주었지만 소프트웨어나 디자인 개발 같은 슬로 분야는 절대 남에게 맡기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는 어떻게 그런 전략을 쓸 생각을 했을까.

“그는 개발자인 동시에 디자이너 쪽에 가깝다. 젊었을 때 동양의 서예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아닌가. 또 잡스는 인류가 글자보다 그림을 먼저 썼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래서 ‘파일을 내려받는 중입니다’라는 글자를 보여주기보다 모래시계를 화면에 띄운 거다. 사람들이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걸 좋아한다는 것을 확신했던 그는 자신의 인문학적 철학에 디자인 기술을 섞어 컴퓨터에 구현했다. 돈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우리 IT산업의 미래로 화제를 돌려보자. (김 원장은 평소) 글로벌 IT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모바일 플랫폼 개발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해온 걸로 알고 있다. 우선 ‘플랫폼’이란 개념부터 설명해 달라.

“컴퓨터를 쓸 수 있게 해주는 운영체제(OS·operating system) 프로그램이다. 자동차로 말하면 ‘엔진’ 기능을 하는 핵심 기술이다. 소프트웨어 형태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엔진’이라고 할까.”

그의 말이 이어졌다.

“IT 생태계에는 네 가지 구성 요소가 있다. 맨 밑이 통신망(네트워크 인프라)이고, 그 위가 컴퓨터 휴대전화 TV 자동차 같은 기기(하드웨어 디바이스), 그 위가 소프트웨어, 마지막이 게임 같은 콘텐츠 서비스다. 이 4개가 균형 있게 돌아가야 건강한 IT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우리는 통신망, 기기 제조 분야에서는 세계 1등이고 콘텐츠 분야도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는데 소프트웨어 OS 개발, 즉 플랫폼 경쟁력이 거의 제로다. 플랫폼은 기기와 콘텐츠를 연결하는 접착제 같은 건데 이게 없다보니 4개 분야가 다 떨어져 각개약진하고 있다.” 

그는 애플의 예를 들었다.

“애플은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TV, 아이카(car)까지 i시리즈 전략을 세우고 있다. 기기는 모두 다르더라도 같은 플랫폼으로 소비자들이 편하게 사용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휴대전화, TV라는 기계 자체를 잘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는 선두가 되기 어렵다. 그 안에 어떤 소프트웨어를 넣어 얼마나 더 소비자들이 쉽고 재미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즉 유저 인터페이스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결국 미래 IT는 플랫폼 싸움이다.” 

―애플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의견들이 다양하지만 나는 애플의 OS가 클로즈드(closed·폐쇄)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회의적으로 본다. 최근 첨단 기술의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을 폐쇄적으로 운영할 것이냐, 개방할 것이냐의 싸움에서 승리는 ‘개방’ 쪽이었다. 대표적인 게 비디오 테이프 시장에서 소니의 베타 방식과 VHS의 싸움이었다. 베타 방식은 한때 시장점유율이 98%까지 간 적이 있었다. 다른 회사들이 소니에 로열티를 줄 테니 기술을 함께 쓰자고 했지만, 소니는 거절했다. 화가 난 가전 회사들이 연합해 VHS 방식을 만들었고 결국 소니가 백기를 들었다.”

김 원장은 “두 번째가 애플의 매킨토시와 IBM 간 PC 싸움이었는데 애플이 최초로 PC를 내놓은 상황에서 후발 주자인 IBM은 설계도를 공개하는 전략을 써 시장 판도를 뒤집었다”며 ”결국 (기술)개방전략을 택한 IBM이 이겼다”고 했다. 

―어떻든 이번 미국 판결로 삼성은 큰 타격을 입었다. 한국 IT산업의 앞날도 어두운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우리의 경쟁력은 우리나라만큼 IT 환경이 좋은 나라가 없다는 점이다. 한국처럼 기기 보급 속도가 빠르고 인터넷이 잘 터지는 나라가 없다. 미국은 지하에만 내려가도 스마트폰을 쓸 수가 없다. 한국은 무려 3000만 명이 스마트폰을 쓰는 상황에서 최고 통신 품질을 바탕으로 정보 검색, 정보 공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다양한 기술이 나올 수 있는 토대가 탄탄하다. 오죽했으면 구글의 슈미트 회장이 안드로이드 보급의 일등공신이 한국 소비자라며 감사의 말까지 했겠나.” 

그의 낙관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벤처 열풍이 예전같지 못한 상황이 떠올랐다. 식어버린 벤처 열풍에 대한 견해를 묻자 김 원장은 “무엇보다 실패를 보는 눈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에서는 실패 경험이 있는 벤처라면 오히려 노하우가 쌓였을 것이라고 여겨 금융 지원 등 정책적으로 더 밀어준다. 실패자들이라 해도 계속 실리콘밸리 주변을 돌아다니며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문화가 있지만 우리는 ‘벤처 하다 실패하면 인생 낙오자가 된다’는 두려움이 강하다.”

그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자는 ‘오늘의 애플을 만든 것은 스티브 잡스 혼자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원장이 말한 실패와 도전을 인정해주는 문화를 바탕으로 한 벤처 캐피털과 정부의 지원, 여기에 실리콘밸리 인재의 산실인 스탠퍼드대 등 산학연(産學硏) 협력체제, 이 모든 것이 합쳐져 결국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김 원장은 “이번 삼성과 애플의 특허 소송 사건을 삼성이나 한국 IT의 위기로 볼 것이 아니라 한국 첨단산업의 갈 길을 연구하는 연구원의 수장으로서 발전을 위한 도약의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삼성도 이미 “뼈아픈 자기 혁신의 계기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번 일은 IT 강국 코리아에 독(毒)이 아니라 약(藥)이 될 것이다.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Electronics and Telecommunications Research Institute) ::

1976년 설립된 국내 최대 전자정보통신 연구기관. 전자교환기(TDX) 초고집적 반도체(DRAM) 디지털이동통신시스템(CDMA) ATM교환기, 지상파 DMB, 와이브로(WiBro·고속 휴대인터넷), 3.6Gbps 4세대 무선전송시스템(NoLA) 등을 개발했다. 최근에는 세계 최고수준의 4세대 이동통신시스템 ‘LTE-Advanced’, ‘휴대형 한-영 자동통역기술’, 낮에도 선명한 화질을 보여주는 ‘투과도 조절 투명 디스플레이 기술’, 세계 최초 ‘스마트 선박 기술’을 개발하는 등 IT 강국 코리아의 ‘기술 젖줄’ 역할을 해왔다.

2011년 발간한 연구개발 성과 보고서에 따르면 35년간 총 169조8095억 원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했으며 연구원 1인당 논문 건수, 1인당 등록 특허 건수에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김흥남 원장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전산학 박사학위를 받고 1998년 전자통신연구원에 합류해 혁신위원장,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연구단장, 기획본부장을 지냈으며 2009년부터 원장을 맡고 있다.


허문명 기자


http://news.donga.com/3/all/20120902/49064609/1

Posted by 겟업
2012. 9. 22. 20:33

어느 토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TV를 틀었다. 우연히 맞춰져 있던 채널 EBS에서 방영 중인 어린이용 3D 애니메이션을 멍하니 보다 ‘오오, 재밌잖아?’ 빠져들고 말았다. 작은 섬마을 브룸스타운에서 사건이 발생하고 누군가 위기에 처한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리더 역할의 경찰차 ‘폴리’, 힘센 소방차 ‘로이’, 지혜로운 구급차 ‘엠버’. 재빠른 헬리콥터 ‘헬리’가 팀을 이뤄 나선다. 매회 10분짜리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로보카 폴리’다.

 뒤늦게 발견한 이 작품, 요즘 아동 애니메이션 시장의 ‘대세’란다. 떼쓰는 아이를 달래려 “자 뽀로로 봐야지” 하던 ‘뽀통령(뽀로로+대통령)’의 시대는 저물고, ‘폴총리(폴리+총리)’가 정권을 잡은 지 꽤 됐다. ‘로보카 폴리’는 지난해 2월 EBS에서 방송을 시작해 평균 시청률 2%대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는 히트작이다. 아이 키우는 친구들을 만나 물었더니 “폴리 캐릭터 상품 사느라 가계 거덜 날 지경”이라는 한탄이 이어진다. 주인공이 넷이나 되니 세트로 갖추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거다. 그럼에도 ‘로보카 폴리’ 완구는 나오자마자 불티나게 팔려나가 한때 “폴리를 구하는 아빠가 진짜 아빠”라는 우스개까지 돌았다.

EBS 어린이 애니메이션 ‘로보카 폴리’.
 단순명료한 구성과 교훈적인 스토리를 내세운 그동안의 어린이 애니메이션에 비한다면 로보카 폴리는 조금 과장해 ‘아이들용 블록버스터’라 할 만하다. 평소에는 그냥 자동차인 폴리·로이·엠버·헬리는 위기가 닥치면 철컥철컥 몸을 바꿔 로봇으로 변신한다. 할리우드 영화 ‘트랜스포머’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이다. 이런 박진감 있는 구성 탓에 아이들뿐 아니라 엄마까지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게 이 작품의 강점이다. 아이랑 보고 또 보다 어느덧 팬이 됐다는 30대 초반 엄마의 증언. “운전하다 옆 차로에 앰뷸런스가 지나가는데 나도 모르게 ‘어, 엠버 어디 가니?’ 하고 있더라니까.”


국내업체 로이 비쥬얼이 제작하고 현대자동차가 제작지원한 ‘로보카 폴리’는 후발주자로서 뽀로로가 꽃피운 창작 어린이 애니메이션 시장을 착실히 다져가고 있다. 심지어 요즘 EBS의 ‘아동용 애니메이션 4대 천왕’으로 불리는 ‘뽀롱뽀롱 뽀로로’ ‘로보카 폴리’ ‘꼬마버스 타요’ ‘부릉부릉 부르미즈’가 모두 ‘한국산(産)’이라는 사실은 뿌듯하기까지 하다. 과거 일본·미국 애니메이션의 하청 제작이 주를 이뤘던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산업 구조가 독자적인 스토리텔링을 갖춘 창작 제작 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기분 좋은 신호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기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131667&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2. 9. 22. 20:32

전남 순천만의 갈대밭에 갔다가 순천만의 상징새인 흑두루미에 관해 참으로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본디 흑두루미는 시베리아에서 겨울에 한반도로 남하해서 비무장지대에서 잠시 머무른 뒤 낙동강 하구인 을숙도에서 수천 마리가 겨울을 났다고 한다. 그런데 낙동강 하구댐이 만들어지고 갈대밭이 없어지자 두루미들은 일본 규슈에 있는 이즈미시로 날아갔다. 이즈미시는 흑두루미의 먹이를 위한 논농사를 지을 만큼 새들의 환경보호에 정성을 들인 결과, 지금은 전 세계에 약 1만여 마리 남아 있는 흑두루미의 90%가 날아오는 유명한 생태 관광지가 됐다.

그러니 순천만에는 흑두루미가 거의 날아오지 않았고, 어쩌다가 들르는 두루미들을 다 합쳐봐야 몇 십 마리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날아오는 흑두루미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점점 순천만을 찾아오는 흑두루미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던 1991년의 어느 날, 순천만에 인접한 농촌 마을에 살던 한 소년이 추수가 끝난 가을 논에서 놀다가 다리를 다친 흑두루미 한 마리를 발견했다. 몸집이 1m쯤 되어 보이는 흑두루미는 날지 못하고 논바닥에서 퍼덕거리고 있었다.


소년은 아버지와 함께 흑두루미를 집으로 안고 가서 보살펴 줬다. 하지만 집에서 계속 키우기가 힘들자, 오갈 데가 없는 흑두루미를 위해 학교에서는 자연관찰용으로 새들을 기르고 있던 조류사육장에서 살게 해주었다. 소년은 '두리'라고 이름을 붙인 흑두루미에게 여름에는 미꾸라지를 잡아주고 가을에는 메뚜기를 잡아주며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세월이 흘러 소년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순천을 떠나자 아무도 두리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2001년의 어느 날, 그 흑두루미가 우연히 학교에 들른 순천지역 환경보호 단체 회원의 눈에 띄었다. 그로 인해 순천만에도 흑두루미가 날아온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세계적인 희귀조인 흑두루미가 순천만에 날아온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어서 환경단체와 여수 MBC는 즉시 흑두루미를 자연으로 귀환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뜻있는 독지가들과 조류 전문가들, 그리고 순천시의 협조로 그 프로젝트는 조용히 진행되었다.

그런데 '두리'는 10년 동안 인간이 주는 모이를 먹고 새장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야성을 완전히 상실한 채 물고기를 잡지도 못하고 날지도 못했다. 처음에는 두리가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 그물망을 치고 바닥에 흙을 깐 대형 조류장을 만들었다. 조류장 주변에 갈대를 심고 연못도 만들어 최대한 자연적인 환경을 만들어 물가의 피라미나 미꾸라지를 잡도록 했으나 곡류만을 먹어 온 흑두루미는 물고기를 외면했다.

그러나 한 달 정도 물고기 사냥 훈련을 통해 먹잇감을 잡을 수 있게 되자, 이번에는 더 넓게 날 수 있는 대형 골프 연습장을 빌려 손님이 없는 시간에 날기 훈련을 시켰다. 그렇게 5, 6 개월의 훈련을 한 뒤, 겨울에 찾아 온 몇몇 야생 흑두루미 무리에 끼어 넣어 함께 어울리게 했다. 처음에는 무리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던 두리는 차츰 그들과 친해져 마침내 봄이 되자 힘찬 날개짓으로 시베리아를 향해 날아갔다.

'두리 귀환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노력을 통해 순천만의 뛰어난 갯벌과 갈대의 생태가 알려지게 되었고, 순천시에서 적극적으로 생태 보전을 위해 노력한 결과 지금은 수백 마리의 흑두루미가 찾아오는 아름다운 철새 도래지가 됐다. 순천시는 10여 년 전부터 갈대와 흑두루미로 상징되는 생태 환경 보호가 지역을 먹여 살릴 것이라는 방향을 선택했다.

그러한 방향을 세우게 한 것은 바로 흑두루미 '두리'였다. 야성을 잃은 흑두루미 한 마리를 살려 준 소년의 사랑과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수개월의 공을 들인 시행정가들과 시민들의 자연 사랑이 순천만을 순수 자연 생태를 유지한 아름다운 갯벌로 재탄생시켰다. 그 순천만이 지금은 연간 3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연간 1,000억원의 경제 효과를 낳는 기적의 보물창고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김명곤 동양대 석좌교수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08/h20120821210520121750.htm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