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세대나 나름의 목표와 기대가 있다. 소위 개발 세대에는 '한번 잘살아 보는 것'이 그것이었다. 5·16이 나던 해 추경예산의 52%가 미국의 원조로 채워졌다. 본예산도 원조로 반을 채우곤 하던 시절, 매년 예산안을 작성하면 미국 경제협조처(USOM)에 가서 설명해야 했다. 1963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국가의 기본 살림인 예산의 절반 이상을 미국에 의존하니, 겉으로는 독립국가이지만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발언권이 52%인 셈이라고 개탄했다. 나라와 개인 모두 가난에 찌들었고 가난 때문에 비굴해야 했으니 가난을 벗어나는 것 말고는 달리 열망할 것이 없었다.
열심히 일하는 것과 자식을 가르치는 것이 그들 인생의 전부였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며 분신한 청년도, 밤새 미싱을 돌리는 청계천의 소녀들도, 피폐해가는 농촌도 모두 마음에 묻은 채 달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는 눈부셨다. 인구 3000만명이 안 되는 작은 나라를 제외하면 우리는 지난 50년간 연 5% 수준의 경제 성장을 지속한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전트 교수는 몇 달 전 한 인터뷰에서 한국을 '기적의 나라'라고 불렀다. 개발 세대는 너무나 훌륭히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면 우리 세대의 과제는 무엇일까. 우리는 경제 발전의 첫 수혜자이다. 자신들이 가져보지 못한 기회를 자식이 가질 수 있도록 무지하게 애쓴 부모와 성장의 그늘에 가린 수많은 희생을 기억하는 유일한 세대다. 그렇기 때문에 고속 성장이 낳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우리 세대의 몫일 수밖에 없다.
초고속 성장은 탄탄한 선(善)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고효율의 집중 투자로 단시간에 빈곤을 탈피했지만, 경제의 일부분에서 발생한 부(富)가 다른 부분으로 확산되면서 구매력의 저변을 넓히고, 국민의 취향과 소비 패턴이 고급화되면서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키는 구조가 없어 충격에 취약하다. 1990년대 초반 중국 등 저임금 국가와의 경쟁에서 밀린 경공업이 붕괴하면서 제조업에서 떨려난 노동력은 서비스업으로 대거 유입됐다. 그러나 초고속 성장 속에 낙후 상태에 머물러온 서비스 부문에 밀려든 인력은 막다른 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해야 했고, 여기서 희망을 보지 못한 많은 사람은 아예 경제활동을 접었다.
지난 15년간 상위 10%는 별 변동이 없는 데 비해 하위 10%의 시장소득 점유율은 반도 넘게 잘려나갔다. 저소득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 최대 수준의 낙폭으로 감소했고, 빈곤은 만성화되고 있다. 경제 개발이 시작된 이후 들어보지 못했던 '빈곤 계급의 형성'이다. 경제적 계층은 뛰어넘으면 그만이었던 사회에서 한 번 격차가 벌어지면 장기간,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사회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이를 극복하도록 돕는 시스템은 아직 갖추지 못했다. 이 또한 초고속 성장의 유산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에서는 부지런하면 잘 살 수 있었고 대부분이 승자여서 패자를 따로 돌볼 필요가 크지 않았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요즘 정치가들이 외치듯 '이제는 복지'라는 단순한 접근으로 이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앞 세대의 성취를 말아먹지 않으면서 닥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닥치고 복지'가 아니라 '어떤 복지'인지가 중요하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누군가를 도와 일으키려면 그가 변화에 잘 대처하고 적응하도록 도와야 한다. 물살이 거셀수록 튼튼한 뗏목을 마련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개인이 성공적으로 물살을 탈 때 경제도 성장한다. 그러니 복지의 요체는 시장에서 뒤처진 패자를 신속히 부활시켜 시장에 재진입시키는 것이며 복지와 경제는 더 이상 별개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복지정책은 굳이 배우거나 일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도록 돕는 데 방향이 맞춰져 있다.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지만 계속 빈곤 속에서 살도록 눌러 앉히는 방식이다. 새로운 기술과 더 나은 일자리로 이들을 연결시키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턱없이 빈약한 데다 비효율적이다. 당장 붙잡을 말뚝을 국가가 나눠주는 것만 중요하다는 인식이 관료와 전문가들 사이에 팽배할 뿐 아니라 부처 간, 전문 영역 간 기득권 다툼과도 얽혀 있어 바꾸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뗏목 탈 줄 아는 이와 말뚝에만 의지하는 이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니 복지정책이 오히려 계층 간 격차를 키우고 고착시키는 셈이다.
당신 세대는 제 몫을 다하고 있느냐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지금으로서는 당당하기 어렵다. 앞 세대보다 결코 만만하지 않은 과제 앞에서 굳어버린 관념과 관행, 온정주의로 포장된 집단이기주의를 떨쳐내는 것이 우선 급하다.
윤희숙 KDI 연구위원·보건복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29/20120829029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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