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23. 01:05

삼성 애플 소송의 결과가 나왔다. 삼성이 애플의 아이폰 디자인을 베꼈다는 것이 미국 법원 배심원들의 평결이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이 전문가가 아닌 배심원들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런 평결이 애국심의 산물일 것이라는 평을 내놓았다. 문제가 된 것은 디자인이니, 향후 삼성은 디자인 전문가를 보강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이번 소송에서 핵심 이슈는 분명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디자인이 아니라 소비자가 느끼고 체험하는 제품의 이미지나 정체성과 관련된 디자인이다. 우리는 '각이 둥근 네모 모양의 휴대전화가 어떻게 특허가 되느냐'고 따지지만, 이것은 논란이 되는 디자인 특허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지적이다. 분명 미국 법원은 A와 B가 각각은 달라도 전체적으로 흉내를 냈다면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법적 용어로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라고 한다. 제품 전체의 포장·용기·형태·색깔 등을 종합해서 그 제품만의 독특한 디자인 특성을 그 제품의 정체성이자 핵심 디자인 특허로 보는 것이다. 만일 다른 제품이 이런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유사하게 느껴지게 했다면 특허 보호 대상을 훔쳤다고 간주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디자인 전문가의 생각이 아니라 소비자, 즉 일반인이 그 제품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이다. 기술적으로 완전히 다르다고 하더라도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나 느껴지는 감성에서 비슷하다면 그것은 베낀 것이다. 이는 소비자 심리의 문제이다. 물리적인 디자인이 소비자 개인의 심리와 감성적 체험으로 연결되는 부분이다.

제품의 정체성과 이것을 디자인적 이미지로 전환하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국내 기업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디지털 제품의 핵심은 숨어 있는 기술이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느끼고 보는가의 문제이다. 이제 기업이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은 제품의 기술적 구성도 중요하지만 소비자가 제품을 통해 느끼는 이미지와 정체성이다. 특정 제품의 디자인이 소비자에게 어떤 이미지로 다가오는지,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선진국 기업들은 제품 디자인에서 창의력을 강조한다. 남들과 다른 제품은 단순히 특이한 디자인이나 앞선 기술을 적용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뚜렷한 정체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제품이다. 이에 비해 국내 기업들이 쏟아내는 수없이 많은 제품이 비슷비슷하게 느껴지고 그것이 그것처럼 보인다면, 이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아무런 정체성도 없는 제품을 베껴낸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애플의 디자인이나 기술은 특별히 뛰어나지 않다. 단지 남들과 분명히 차별되는 제품의 정체성을 디자인과 일반적 기능으로 구현한 것이다. 그를 통해 소비자들이 제품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느끼게 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기업들이 전자·자동차 등의 제품에서 쉽게 구현하지 못하는 특성이다. 정체성이 뚜렷이 부각되지 못하는 제품이라면 아무리 앞선 기술이 적용되고 멋진 디자인으로 꾸며진들 어디선가 본 듯한, 어떤 것을 따라 한 듯한 '카피캣(복제품)' 수준의 제품이 되고 만다. 중국의 '산자이(복제 짝퉁)'와 그리 다르지 않은 제품을 우리의 일류 기업이 여전히 만들고 있는 것일 뿐이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29/2012082901010.html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