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26. 11:27

전세계에서 수많은 정치인이 명멸해 갔다. 한 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정치인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히거나 실패한 정치인으로 폄하되곤 한다. 지금은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며 세상을 풍미하는 것 같지만 1∼2년만 지나도 그 사람이 어떤 정당 소속이었는지, 어느 지역구 출신이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들도 실패한 정치인으로 낙인찍히기 일쑤다. 국민의 망각과 실패한 정치인으로 낙인찍히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그들이 자기 자신만의 정치적 욕구 충족과 권력 행사에만 관심이 있어 국민을 감동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정치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을 믿는 유치원생 수준의 국민은 적어도 이제는 없는 듯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역대 선거에서 일관성 있게 추구하는 가치와 이상, 그리고 이들을 실현하기 위한 책임 있는 정책대결은 없었다. 국민이 좋아할 만한 정책들을 급조해 승리하고 나면 비현실적인 것은 슬그머니 바꾸든지,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부담을 무릅쓰고라도 진행을 해 결국 엄청남 재정적 부담만 남기고 떠났다. 그다음 대통령들도 똑같은 전철을 밟았다. 이것이 제도적 민주화를 이룬 1987년 이후 반복되어온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다들 시작은 거창했지만 끝은 초라했다.

 

타게 엘란데르 스웨덴 총리는 성공한 정치인으로 국민의 뇌리에 남아 있는 사람 중 하나다. 23년간 총리직을 수행했지만 4년마다 선거에서 항상 국민의 냉정한 심판을 받아야 했다. 집권기간 동안 복지를 통해 경쟁력 있는 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금인상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4주 휴가제, 실질임금 증가, 출산휴가 및 출산보조금 도입, 임금 연계 노령연금 개혁, 무상교육, 그리고 의료개혁을 통한 국민건강의 형평성을 이루기 위해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야당들은 소련식 계획경제가 된다고 공격했지만 시장경제와 대기업 중심의 성장을 이끌어 고용과 복지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가 추구하는 목표는 ‘강한 사회’ 구축에 있었다. 모든 국민이 행복하고, 완전고용을 통해 경제와 복지에 기여하는 소외된 사람이 없는 사회, 사회적 갈등이 적어 효율적이고 경쟁력이 높은 사회가 강한 사회라고 역설하면서 한 표를 달라고 호소했다. 국민들은 엘란데르의 증세정책에 손을 들어주었다. 성장과 고용, 분배가 꾸준히 이루어지면서 50∼60년대의 경제발전과 함께 소외된 국민 없이 대다수의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과 낮은 의료비, 행복을 통한 사회적 통합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다.

 

1946년 집권 당시 유럽에서 세금부담률이 가장 낮은 나라에 속했지만 엘란데르가 정계를 떠나는 1969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금을 내는 나라가 되었다. 그가 하야하고 나서 노부부는 임대주택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한 국가의 총리로 23년간 봉사한 노정객을 임대주택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결국 사민당이 자신들이 모시고 있었던 선배정치인에게 사택을 지어주기로 했다. 단 한푼의 국세도 축내지 않았다. 신뢰와 감동은 엘란데르 총리를 성공한 정치인으로 국민의 뇌리에 오래 남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

 

5년을 바라보고 하는 정치로는 위험하다. 임기 안에 끝내려 하지 말고 초석을 놓는다는 생각으로 꿈과 비전, 정치적 목표를 담은 청사진의 제시가 필요하다. 다음 대통령은 20년 이후 대한민국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로 충분하다. 두고두고 국민의 뇌리에 남을 수 있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일지 늦기 전에 심각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최연혁 쇠데르퇴른대학 정치학 교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46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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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1:26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세계은행 본부에 들어서면 ‘가난 없는 세상이 우리의 꿈이다’라는 슬로건이 눈에 들어온다. 세계은행이 개발도상국에 제공하는 대부금은 빈곤 퇴치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세계은행 책임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복잡한 금융지식이 아니라 이 사명에 대한 충실함이었다. 의사 출신 인류학자인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이 세계은행의 총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빈곤퇴치의 사명감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여성은 세계 성장 위한 마지막 자원

김 총재의 최근 행보는 세계은행의 수장이라기보다는 양성(兩性)평등 전도사 같다. 그는 어디에서나 “세계가 성장을 위한 부가자원을 찾는다면 그것은 여성”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 양성평등 관련 사업에 대한 지원 증대는 최근 세계은행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다. 양성평등 지원 규모는 2010회계연도(2009년 7월∼2010년 6월)의 대출 활동 중 53%를 차지한다. 2006회계연도의 34%에서 꾸준히 상승했다. 2006∼2010회계연도에 증가한 금액이 190억 달러에 이른다. 양성평등 관련 지원은 피임 보건교육, 유아 및 어머니에 대한 영양지원, 소녀를 위한 학교, 여성에 대한 기술지원 등이다.



세계은행이 양성평등에 눈뜬 것은 대출 시스템에 대한 뼈아픈 반성에서 출발했다. 오랫동안 길을 놓으라고, 학교를 세우고 우물을 파라고, 엄청난 금액을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개도국에 지원했지만 막상 현장에 가보면 도로도 학교도 없었다. 돈은 정치인의 배를 채웠고 관료들의 호주머니로 사라졌다. 무엇보다도 대부분 문맹인 주민은 이러한 지원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일부 프로그램에서 성과가 나기 시작했다. 브라질에서는 가계소득 관리를 어머니가 맡을 경우 자녀의 생존 확률이 20배가 더 높았고 가나는 여성이 경작했을 때 소출이 17% 늘었다. 우간다가 농업 프로젝트에 처음으로 여성을 포함시키자 생산성이 급증했다. 글자를 깨친 여성들이 “우리에게 와야 할 지원금을 내놓으라”고 데모하기 시작하자 공무원은 뇌물을 챙기기 힘들어졌다. 엄마들은 자식들을 학교에 보냈고 돈 벌어 오라며 남편의 등을 떠밀었다.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앤드루 메이슨은 “양성평등은 그 자체로 옳은 가치이지만 무엇보다도 경제개발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세계은행이 최근 발간한 동아시아·태평양 지역 보고서에 따르면 남녀 간 고용 장벽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노동생산성을 7∼18% 높일 수 있다. 생산성이 높아지면 소득이 늘고 이는 빈곤퇴치로 이어진다. 양성평등이야말로 세계은행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빈곤퇴치의 황금열쇠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여성 지위를 아시아의 다른 개도국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편견이었다. 한국은 유아 사망률 같은 지표는 세계 최고였지만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2005년 기준)은 세계 평균에 겨우 근접했고 남녀 간 임금격차는 지역 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한국, 아직 개도국형 남녀 불평등국


한국은 선진국형 문제와 개도국형 문제가 공존하는 이중 딜레마에 빠져 있다. 여성 의원 비율은 14% 수준으로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에 못 미친다. 여성이 최고위직에 오르지 못하는 유리천장(glass ceilings)이 여전하지만 저임금 직종에서 남녀 간 임금격차가 벌어지는 ‘끈끈한 바닥(sticky floors)’도 존재한다. 끈끈한 바닥이란 여성이 저임금 직종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2009년 여대생 수가 남자 대학생을 추월했다. 그런데도 우수한 여성 자원이 유리천장에 막히고 끈끈한 바닥에 달라붙어 역량 발휘를 못하고 있다. 이것만 터주어도 우리 경제가 더 도약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워싱턴에서


정성희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21006/49892216/1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1:02

[논쟁] ‘제한적 공창제’ 도입 필요한가 -2

아동 대상 성폭행 등 성범죄 관련 강력범죄가 잇따르는 가운데 제한적 공창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종암경찰서장 재직 시 성매매 단속에 앞장섰던 김강자 한남대 겸임교수가 “제한된 지역에서 성매매를 인정해주는 공창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히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여성계를 중심으로 “성매매 금지의 근간을 뒤흔드는 발상”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 교수와 조배숙 전 의원에게서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성욕 해소에 여성 인권이 희생돼선 안 된다

연일 보도되는 끔찍한 성폭력 사건으로 온 사회가 불안해하고 있다. 이러한 범죄를 사전에 예방할 대책 마련에 정부는 물론 사회 전체가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성매매를 금지했기 때문에 성범죄가 증가했다”며 성매매특별법을 흔들려는 주장과 논설이 인터넷과 토론공간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주장은 두 가지 심각한 오류를 전제로 하고 있다.

 하나는 범죄 현상에 대한 잘못된 분석이다. 성폭력 증가 원인을 분석하면 성매매 금지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첫째, 과거에도 수많은 성폭행 사건이 있었지만 피해 여성들이 쉬쉬하고 신고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인식이 달라져 신고율이 높아졌고 언론도 가감 없이 즉각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둘째, 가족 및 지역공동체 해체 현상으로 과거에 범죄 억제 기능을 하던 무형의 기제, 즉 가족·이웃 등 인간관계의 끈이 단절돼 버렸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진공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사람들이 늘었다.

 셋째는 음란물의 범람이다. 과거와 다르게 TV·인터넷 등의 발달과 성 개방 풍조 속에 음란동영상, 아동포르노물 등의 만연으로 사람들이 쉽게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장면을 접하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이를 내면화하면서 실행할 기회가 왔을 때 범죄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성폭력 범죄의 증가는 이러한 사회병리 현상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또하나의 오류는 남성들의 원초적인 성본능은 이성으로 제어할 수 없으니 이를 해소시켜 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성들의 성적 본능은 당연한 권리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남성들의 원초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여성들을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또 다른 일부 여성들의 인권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논리일 뿐이다. 피해를 보는 여성들의 인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다. 일부를 위해 다른 일부를 희생시켜도 된다는 잔인한 논리는 따지고 보면 종군위안부를 제도화한 일본제국주의 사고방식과 다를 게 무엇인가. 그야말로 남성 우위의 권위주의적 사고이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부정하는 발상이다.

 제한적 공창제 역시 이러한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제한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지만 내용은 마찬가지다. 제한적으로라도 허용하는 것은 성매매특별법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그나마 어렵게 이루어온 나름의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든다. 어느 지역에 가면 실정법에도 불구하고 성매매를 할 수 있다면 그 지역으로 성매매업소가 몰려가 우후죽순처럼 번창할 것이고 법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인신매매 등 다른 관련 범죄도 기승을 부릴 것이다.

 물론 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신종 성매매가 성업하고 있는 현실을 보고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살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해서 살인죄 규정을 폐지하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은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할 때다. 탈(脫)성매매 여성들의 사회복귀 프로그램에 충분한 예산을 지원하고 성매매 산업으로의 유입을 막을 수 있도록 여성들에게 좋은 일자리와 취업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성매매 범죄에 대해 엄정한 단속 의지를 보이고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에 대한 근본적 치유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조배숙 변호사 전 국회의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509014&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1:01

한 나라 경제력은 '돈'에 응축돼… 외국에선 안 통하는 한국 '원'
엔화는 어디서나 바꿀 수 있어… 韓日 통화 스와프는 우리가 '乙'
MB 정부 원화 가치 17% 하락…金처럼 튼튼한 화폐 되게 해야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은행 의장이 작년 언젠가 뉴욕 투자자들 모임에서 강연을 끝냈다. 주최 측은 물었다. "강연료를 달러로 드릴까요, 아니면 유로화나 엔화로 드릴까요?" 그린스펀의 대답은 "포 나인으로"였다. 숫자 9가 넷인 '포 나인(four nines)'이란 순도(純度) 99.99%짜리 금괴를 말한다. 요즘 같은 위기엔 어느 나라 통화도 믿을 수 없다는 농담이었다.

국가신용등급은 빚을 갚을 능력을 측정하는 도구이고, 국내총생산(GDP)은 국가 경제의 덩치를 재는 지표다. 어떤 나라의 경제력이 가장 옹골지게 응축(凝縮)된 곳은 그 나라의 돈이다. 경제가 건강하면 통화에 힘이 실리고, 경제가 무너지면 통화도 함께 사라진다.

40여년 전 캄보디아의 돈은 하루아침에 휴지가 됐다. 경제가 처참한 지경에 몰리자 새 정권이 들어선 후 기존의 국가 화폐를 무효화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옛 지폐를 이어 붙여 쇼핑백이나 지갑으로 재활용했다.

에콰도르는 2000년 1월 재무부 건물 앞 광장에서 자기 나라 화폐를 불태우는 세러모니를 가졌다. 미국 달러를 에콰도르의 공식 화폐로 선포한 직후였다. 햄버거도 달러로 팔기 시작했고 은행 예금도 달러로 받았다. 하지만 '미국의 식민지가 될 수 없다'고 울부짖는 데모는 없었다. 국회에서 몸싸움도 없었다. 반복되는 인플레, 금융 위기, 외환 위기에 진저리 쳤던 에콰도르 국민은 자기네 지폐가 연기 속으로 사라지는 화형식에 박수를 쳤다.

우리 원화(貨)가 캄보디아·에콰도르의 화폐처럼 몰락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국은 G20 멤버이고 국가신용등급도 A급이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휩쓸고 세계 최강의 조선 회사도 거느리고 있다. 이런 나라의 멀쩡한 통화가 어느 날 돌연사(突然死)한다는 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인가.

원화가 한두 번의 조작 실수로 컴퓨터 속의 비밀 파일이 사라지듯 급사(急死)할 리는 없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다른 의문을 던져봐야 한다. 무역 규모 세계 9위, 경제 규모 세계 15위 국가의 화폐가 왜 외국에서는 도통 통하지 않는 것일까. 왜 '10억원'이라고 인쇄된 원화 채권이 도쿄나 런던에서는 팔리지 않고 서울에서만 팔리는 것일까. 왜 뉴욕의 주요 은행에선 5만원권 현찰 뭉치를 들고 가도 달러로 바꿔주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연변 조선족 마을의 식당과 방콕의 한국인 단골 골프장에서 우리 지폐를 받는 것에 감격할 때는 지났다. 어쩌다 해외여행 중 한국 돈으로 계산이 끝나는 걸로 '조국(祖國)의 힘'을 느끼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기도 쑥스럽다. 국제금융 시장에서 아무런 존재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는 게 원화이기 때문이다.

사담 후세인은 미국과 싸우며 원유 수출 대금을 유로화로 받으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숨어들어 간 지하 굴에서 체포됐을 때는 75만달러의 현찰 뭉치가 함께 나왔다. 미국을 그토록 증오했던 후세인마저 생사(生死)가 갈리는 궁지에서는 달러만을 비상금으로 쓸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독도를 둘러싼 분쟁 여파가 통화 마찰로 번졌다. 일본은 한국이 통화 스와프 협정을 연장해달라고 무릎을 꿇어야 통화동맹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한국의 급소 어느 곳을 찔러야 피눈물을 흘릴지 '눈물샘'을 잘 알고 있다. 엔화는 세계 어디서든 달러나 유로화로 바꿀 수 있는 돈이지만, 원화 채권이나 한국산 금융 상품은 후세인의 달러 뭉치 같은 비상용이 되기는커녕 위기 조짐만 보이면 가장 먼저 내던져야 할 돌이라는 것을 꿰뚫고 있다.

일본은 4년 전에도 우리가 20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을 갖고서도 쩔쩔매는 꼴을 바로 옆에서 보았다. 지금 우리가 3200억달러가 넘는 보유 외환을 자랑하지만, 그중엔 미국 주택금융공사에 볼모로 잡혀 있는 게 얼마라는 것, 급할 때 현금으로 동원할 수 있는 금액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중국에 "양국 간 통화 스와프를 상설화하자"고 제안했다. 통화동맹을 영구화하자며 머리를 조아린 것이다. 일본에도 이제 자존심을 접고 허리를 굽혀야 할지, 아니면 덤터기를 다음 정권에 떠넘기고 튀어야 할지 결정해야 할 순간을 맞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던 날 환율은 1달러에 949원이었으나 5일 시세는 1111원으로 17%가량 상승했다. 원화가 그만큼 가치를 잃은 것이다. 원화가 갈수록 천덕꾸러기 통화로 신분이 강등되는 줄도 모르고 자동차·반도체 수출만이 최고라고 여겨왔던 결과다. 나라 경제가 이만큼 컸으면 원화를 금 덩어리처럼 튼튼한 화폐로 만들어 보겠다는 지도자가 나올 때도 됐다.

 

 

송희영 논설주간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05/2012100501108.html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1:00

내가 재직하고 있는 부개동성당의 교적부에 올라 있는 신도 수는 정확히 5796명이다. 주일에는 이들이 모두 반드시 미사에 참례해야 한다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오래된 규율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언제부턴가 미사 참례자 수가 점점 줄어 요즘엔 전체 신도의 4분의 1이 될까 말까 한다. 교회는 정당한 사유 없이 주일 미사에 나오지 않으면 죄가 된다고 가르친다. 미사에 참례하는 수로만 본다면 아기들과 환자,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제외하더라도 전체 신도의 반 이상이 죄인인 셈이다. 이들 가운데는 아예 교회를 떠났거나 오랜 기간 쉬는 분들도 있지만 어쩌다 보니 더러 빠지게 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아무리 가톨릭교리서가 교회를 ‘죄인들의 집단’이라 정의한다 하더라도, 주일 미사 몇 번 빠졌다고 다수의 선량한 신도들에게 고해성사를 종용하는 것은 융통성 없는 율법주의의 소산이라고, 속히 시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부개동성당의 관할구역은 성당 건물을 중심으로 사방에 오래된 연립주택과 빌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그 가장자리에 고층아파트들이 병풍처럼 서 있는 네모난 지형이다. 대도시 변두리가 대부분 그렇듯 우리 동네도 인구는 많지만 면적은 넓지 않아 가장 먼 아파트에서 성당까지 걸어서 20분이면 족하다. 지난 1월 내가 이 성당에 부임하자마자 구석구석 걸어다니며 직접 확인한 바다. 이런 인구밀집지역에 주일 미사 시간이면 성당 앞 300평쯤 되는 주차장(신도들뿐 아니라 이웃 주민들도 자유롭게 이용하는)은 자동차들이 빽빽하고 골목길은 차 한 대 비켜갈 만큼의 공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주차문제로 시비가 붙어 신도들과 주민들이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는 것을 몇 번 보았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추위가 가시자 나는 신도들을 상대로 적어도 성당에만은 튼튼한 두 다리로 걸어다니자는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그러나 잠시 반짝했을 뿐, 기대와 달리 지속적인 효과는 거의 없었다. 하기야 몸에 밴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겠나.

 

성당에 올 때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자동차를 버리라는 건 억지다. 가까운 거리라도 불가피하게 차를 이용해야 할 경우가 어디 한두번인가? 나는 자동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도 승용차를 가지고 있고 가끔은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신체 건강하고 사지가 멀쩡한 우리 신도들이 고급 승용차를 타고 미사에 오는 것을 보면 밉살스럽기 그지없다. 엎드리면 코 닿는데 꼭 차를 타야 하는 그들의 심리를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저들은 오늘 아침에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성당에 가서 무엇을 기도하자고 했을까? 이런 나를 보고 도대체 자동차와 신앙이 무슨 관계냐고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거나 고리타분한 사고를 버리지 않으면 신도들 다 잃는다고 충고하고픈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 예수의 사람이라면 일상에서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불편이나 불이익 또는 희생을 못견뎌하면서 그분을 따를 수는 결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종교적 통찰은 관념적인 사색이 아니라 영성수련과 헌신적인 삶의 방식으로부터 나온다. 그러한 실천 없이 종교적 교리의 진리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녀 출신 신학자 캐런 암스트롱의 말이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굳이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를 들먹이지 않아도 10분만 걸으면 충분히 올 수 있는 거리를 차를 타고 오는 신앙은 엉터리요 거짓이다. 정치·경제·사회의 민주화를 바라면서 독재자의 자식으로, 독재자 곁에서, 독재를 체득하며 잔뼈가 굵은 사람을 선택하는 이상야릇한 행위와 무엇이 다른가.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4480.html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0:59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어느 교육평론가의 답변. “잘 먹는 것, 잘 자는 것, 잘 읽는 것.” 앞의 둘은 많이 하는 이야기다. “잘 읽는 것”은 조금 뜻밖이다. 곰곰이 따져보니 말뜻을 얼추 짐작하겠다. 잘 먹고 잘 자는 것은 건강에 긴요하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만으로는 ‘인간다움’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인류의 정신적 유산들을 “잘 읽는” 수련의 과정을 거칠 때 양식 있는 시민이 탄생하고, 활력 있는 시민사회가 형성된다. 글 읽기의 힘이다. 미국 어느 대학에서는 4년 교과과정 전부를 고전읽기로 채운다는데, 나는 그런 대학이 부럽다. 한국에서는 고전읽기조차 입시를 위한 요점정리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잘 읽기 위해서는 읽을 만한 좋은 글이 많아야 한다. 케케묵은 말처럼 들리지만 (인)문학의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그런 고전들이 긴 시간의 테스트를 통과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근대문학의 총아인 (장편)소설을 비롯해 서정시, 희곡을 살펴봐도 그 나름대로 합의된 고전의 윤곽을 그릴 수 있다. 그들은 ‘한국문학공화국’의 ‘적자’들이다. 그러나 에세이는 합당한 대우를 못 받는 ‘서자’이다. 잡다한 신변잡기를 풀어놓은 가벼운 수필(미셀러니)은 많지만, 삶에 대한 통찰을 그만의 문체로 표현하는 ‘에세이’는 매우 적다. 고독하지만 독립적인 정신의 표현을 가능케 하는 건강한 개인주의의 뿌리가 깊지 못한 한국 문화의 척박한 토양도 한 이유이리라.

 

고종석이 우리 시대의 탁월한 에세이스트라고 평소 생각해왔다. 고종석이 펼쳐온 다양한 글쓰기의 알짜는 에세이이다. 그가 앞으로 ‘직업적 글쓰기’는 하지 않겠다고 절필 선언을 했다. “소수의 독자들이 내 글에 호의적이긴 했지만, 내 책이 독자들에게 큰 메아리를 불러일으켜 많이 팔려나간 적은 없다. 설령 내 책이 꽤 팔려나가고 운 좋게 거기 권위가 곁들여졌다 해서, 그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중략) 미심쩍었다. 글은, 예외적 경우가 있긴 하겠으나, 세상을 바꾸는 데 무력해 보였다.”(<한겨레> 9월24일치)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는 글쓰기의 영향력에 큰 회의를 갖게 된 듯하다. 안타깝다. 내 생각에 글은 세상을 크게 바꿀 수 없다. 글쓰기는 힘이 없다. 글쟁이 자신, 혹은 글을 읽어주는 “소수의 독자들”의 마음을 아주 조금 바꿀 수 있을 뿐이다. 그게 ‘문학의 정치’ 혹은 ‘글쓰기의 정치’의 한계이지만, 그런 미약한 글쓰기들이 모여 아주 가끔은 의미있는 세상의 변화를 이끌 수도 있다고 나는 믿는다.

 

아니, 어쩌면 이런 기대 자체가 잘못 설정된 게 아닐까? 글쓰기는 결국 그 누구도 아닌 글쟁이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이 그렇듯이. 평화운동가 에이브러햄 머스트(1885~1967)의 일화. 그는 베트남전쟁 당시 백악관 앞에서 밤마다 촛불을 들었다. 어느 비 오는 날 저녁, 한 방송 기자가 물었다. ‘혼자서 이런다고 세상이 변하고 나라 정책이 바뀌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난 이 나라의 정책을 변화시키겠다고 여기 있는 게 아닙니다. 이 나라가 나를 변질시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글쓰기의 소임도 그렇지 않을까. 거창하게 남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국가와 비틀어진 현실이 “나를 변질시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가냘프지만 의미있는 행위.

 

에세이스트 고종석이 조만간 ‘한국문학공화국’의 시민으로 귀환하기를 한 애독자로서 희망한다.

 

 

오길영 충남대 교수·영문학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4481.html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0:59

얼마 전 아침 운전 부주의로 추돌 사고를 냈다. 내가 뒤에서 들이받은 차는 택시였다. 택시 뒷자리에는 손님이 타고 있었다. 그동안 간헐적으로 접촉 사고는 있어왔지만 대부분 예의 바른 사과를 주고받고 넘어갈 정도로 경미한 것들이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불행 중 다행으로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손님은 목을 부여잡고 고통과 원망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당황하고 있는 내게 택시 기사 아저씨는 빨리 보험사에 전화를 하라고 재촉을 했다. 결국 운전 경력 3년 만에 처음으로 보험사에 사고 신고를 해야 했다.

오후가 되어 나는 손님과 기사 아저씨에게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다. 손님은 병원에서 검진한 결과 큰 이상은 없지만 며칠간 물리치료를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책감이 밀려왔다. 한 순간의 실수로 내가 사람을 다치게 했구나. 기사 아저씨는 아무래도 입원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입원이라니. 또 다시 자책감이 밀려왔다. 괴롭고 또 괴로웠다.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다들 대답은 한결 같았다. 보험사가 알아서 처리할 거라고. 내가 두 사람이 얼마나 아픈지 걱정이 된다고 하니까, 누구는 말했다. 자꾸 전화해서 괜찮은지 묻지 말라고. 그럼 만만하게 보일 수 있다고. 또 다른 누구는 말했다. 한번쯤은 전화하는 게 좋다고. 안 그러면 괘씸하게 생각한다고. 모두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한 말들이었다.

그날 밤 나는 택시를 탔다. 조심스레 기사 아저씨에게 내가 겪은 일을 말했다. 그러자 그 분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큰 사고가 아니라 다행이네요. 택시 기사들은 부상 정도와 상관없이 대부분 입원을 해요. 기사들이 무슨 대단한 생각으로 그런 게 아니에요. 보험금이 나오니까요. 보험이라는 제도가 만들어낸 관행이에요. 입원을 안 하면 동료들한테 면박을 받기도 해요. 손님도 나중에 사고를 당해 봐요. 입원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어요. 이번에는 줬으니 나중에는 받는 겁니다. 보험 때문에 사회가 그렇게 돌아가는 거죠."

나는 집에 돌아와 생각했다. 나 때문에 다친 손님은 지금 편히 잠을 잘 수 있을까? 목이 아파서 잠을 못 이루는 건 아닐까? 기사 아저씨는 입원을 했을까? 잠자리가 불편한 곳에서 고생하는 건 아닐까? 내일 안부 문자나 전화를 해볼까? 그렇게 하면 너무 지나치게 착한 척 하는 사람이 되는 걸까?

그날 밤 나는 온갖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런데 나에겐 마음을 달래주는 천사가 있었다. 그 천사가 내 귀에 대고 부드럽게 속삭였다. "염려 마요. 내가 있잖아요. 당신의 문제를 내가 다 해결해줄게요. 그러니 안심하고 어서 자요." 물론 그 천사의 이름은 바로 보험이었다.

보험으로 사고 처리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보험은 사람들을 안심시킨다. 그런데 보험은 사람과 사람을 분리시킴으로써 안심시킨다. 보험이 손해를 배상하고 피해를 보상해준다. 만약 보험이 사람들을 연결시킨다면 그것은 보험금을 주고받는 화폐관계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보험의 화폐관계는 무엇보다 '마음'을 배제한다. 아니 마음까지 계산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모든 것을 계산 가능성이라는 기준에서 바라보게 하는 보험 때문에 사람들은 인간적인 사죄를 주고받고 상처를 보듬어주어야 하는 사태에서조차 자신의 손실을 최대한 줄이고 이익을 최대한 늘이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보험은 천사가 아니라 메피스토펠레스이다! 내가 보험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자 나의 친구는 자기가 겪은, 나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보험과 관련된 시련을 이야기해주었다. 보험을 충분히 완전하게 들지 않아 어마어마한 경제적 손실과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경우였다. 결론은 보험은 무조건 종합적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조건 보험을 들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를 만든 주범은 바로 보험이다. 보험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다. 보험은 신이다. 이 세상은 보험의 뜻대로, 보험이 보시기에 참 좋게 만들어진 세상이다.

 

심보선 시인 ·경희사이버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032102518192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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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55

“예쁘게 화장만 하면 뭐해. 안 보이는 데서 머문 자리를 깨끗하게 해야지.”

학교 도서관의 미화원 휴게실에서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을 만났다. 명색이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교인데 학내 화장실이 너무 더럽다고 느끼던 터였다. 역시나 아주머니들과의 대화 내내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분리수거는 바라지도 않아요, 식수대에 가래침 좀 안 뱉었으면 좋겠어. 초등학생도 알 만한 걸 대학생들이 안 지켜.”



“남학생들은 소변 보면서 아무데나 침 탁탁 뱉고, 여학생들은 생리대를 아무렇게나 버리고. 민망하지.”

아주머니들은 한목소리로 학교가 고된 일터라고 했다. 작년 봄 전국 대학에서 시작된 청소노동자 파업 이후 몇몇 학교는 청소노동자 시급을 1년 전보다 500원 올렸다. 하지만 실질적인 노동환경이 개선된 건 아니다. 학교 시설을 이용하면서 기본을 지키지 않는 학생들 탓이 크다.

당장 도서관을 둘러봐도 아주머니들의 고충을 알 만했다. 먼저 화장실. 세면대와 거울 앞 선반은 널브러진 휴지, 치약덩어리, 화장품이 묻어 있는 솜뭉치들로 지저분했다. 좌변기 옆에는 골인에 실패한 휴지들이 습기를 머금고 바닥에 버려져 있다. ‘휴지는 변기에, 패드는 휴지통에 버려 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무색했다.

남자 선배에게 부탁해 찍은 사진 속 남자화장실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쓰고 난 휴지 뭉치들로 세면대와 바닥 곳곳이 어지럽혀져 있었다.

도서관 열람실 앞 쓰레기통도 난장판이었다. ‘일반 쓰레기, 페트병, 캔/병, 종이’로 분리수거를 하게 돼 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일반 쓰레기통’에 캔이 수북했고, ‘종이 통’에는 과자 봉지와 먹다 남은 샌드위치가 버려진 채였다. 음료가 반 이상 담긴 종이컵은 ‘페트병 통’ 위에 위태롭게 놓여 있었다.

서울 소재 다른 대학들도 찾아가 봤다. 용변 후 물을 내리지 않거나, 쓰고 난 여성용품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등 기본적인 화장실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다 보니 무엇이 진짜 중요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각 대학의 열람실마다 학생들이 빼곡하게 들어앉아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화장실 바닥에 가래침을 뱉던 학생, 휴게실에 음식물 쓰레기를 방치한 학생들이 미래의 법관, 연구원, 지도자를 꿈꾸며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작년 봄, 나는 핏대 높여 청소노동자의 인권을 토론했다. 하지만 먹고 남은 음식을 도서관 화장실에 버린 부끄러운 기억도 있다.

대학생들이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행동으로 나서는 것, 미래 지도층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 모두 좋다. 문제는 기본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쉽게 탓하기 전에, 혹은 사회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지레 회의하기 전에, 대학생이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생각해 보면 정답은 의외로 쉬운 곳에 있다.

대학생이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는 것이다. 격한 몸싸움보다, 탁상공론에 그치고 마는 토론회보다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데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한 아주머니가 전한 어떤 남학생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퇴근하려고 나서는데, 웬 남학생이 도서관 복도에 엎드려 무언가를 닦고 있더란다. “학생 뭐해요? 내가 할게” 했더니 “아니요, 제가 커피를 엎질렀거든요” 하면서 열심히 치웠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덧붙였다. “그런 경우는 정말 드물지. 보통은 그렇게 남은 청소를 하다가 퇴근이 늦어지거든. 그런데 사실 그게 기본 아닌가, 자기가 남긴 쓰레기는 자기가 처리하는 것.”

끝까지 부끄러운 담소였다.

신진 연세대 경제학과 4학년

http://news.donga.com/3/all/20121005/49864769/1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0:54

중동·북아프리카(MENA) 지역은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다. 민주화 열풍뿐 아니라 사회 변화의 폭풍도 거세다. 지난해 민주화 도미노에 화들짝 놀란 각국 정부가 국민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친서민 정책을 강화하고 있어서다. 주택 공급을 늘리고 쇼핑센터와 도로·철도 등 생활 인프라 확충과 함께 복지정책 강화가 한창이다. 복지라는 당근을 입에 물려줌으로써 흉흉한 민심을 달래려 한다. 한국이 복지확대 문제로 내부 토론이 한창인 동안 중동에선 복지가 새로운 시장을 만들면서 제2 중동특수 시대를 열고 있다.

이 지역 복지정책의 핵심은 보건의료 서비스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있는 MENA 투자 전문 알마사 캐피털의 보고서가 이 분야 인프라 확충이 ‘정권 안보의 핵심 요소’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아픈 사람 치료라도 제대로 해줘야 왕정이나 독재에 따른 국민 불만을 줄여 체제를 지킬 수 있다는 충고다.

사실 오래전부터 보건의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공급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2억1400만 명인 이 지역 인구는 2025년에는 2억7200만 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평균수명은 지난 30년 동안 59세에서 71세로 늘었다. 1000명당 90명에 이르렀던 유아 사망률은 26명으로 줄었다. 지난 10년 동안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727달러에서 8187달러가 됐다. 생활이 나아지면서 당뇨·심혈관질환·암 등 서구형 질환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인구와 수입이 동시에 증가하면서 보건의료 수요가 크게 늘었지만 인프라와 인력 모두 턱없이 부족하다. 인구 1만 명당 병상 수는 21.6으로 미국(31.0)의 70% 정도다. 인구당 치과의사는 79%, 간호사는 71% 수준이다. 기존 체제로는 도저히 필요한 의료인력을 충당할 수 없다. 외국 의사를 모셔오는 것도 한계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UAE의 아부다비 등 부자 산유국들도 지난해 수요 억제를 위해 무상의료를 줄이고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도입했다.

그동안 이 지역 국가들은 중증 환자를 외국에 송출하는 데 주력했지만 사정이 이렇자 자국에 의대·병원을 결합한 ‘메디컬 플랜트’를 유치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테러 우려로, 유럽은 의료 사회화 때문에 해외진출 여력이 별로 없다. 한국은 의과대학이 40개나 되고 대부분 해방 이후 들어선 학교다. 그만큼 의대·병원 신설 노하우가 풍부하다. 보건의료 인프라가 절실한 MENA 지역 국가들엔 매력적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한 산유국이 한국 유수의 의대에 의대·간호대와 종합병원을 패키지로 현지에 지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한국 입장에선 보건의료 관련 대학과 종합병원이라는 지식기반 ‘고부가 플랜트’를 수출할 수 있는 거대 시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개발도상국 의사를 국내에 데려와 연수시켜주는 이종욱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고 아프리카 지역에 의대·병원을 짓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도 활발히 하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민간사업도 진행 중이다. 이처럼 보건의료가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것을 넘어서서 한국의 주요 수출산업으로 발전해 경제적 효과까지 거둘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병원·의대 수출은 외국인 환자의 국내 의료관광 유치와 달리 국내 보건의료 인프라·시스템이 영향받지 않아 사회적 논란의 가능성도 별로 없다.

한국에선 지난 수십 년 동안 보건의료산업이 인재를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그래서 의료기술·서비스 등에서 경쟁력이 대단하다. 하지만 산업 특성상 내수만 충당했지 수출은 생각도 못했다. 이제 보건의료산업도 수출·외화획득 산업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의료는 서비스산업으로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해 고용 유발 효과도 크다. 청년실업 문제를 완화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대선 후보들도 여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의대·병원도 수출할 수 있다는 이 작은 발상의 전환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496874&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0:51

대선에 나선 세 후보들의 캠프에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북적거린다. 그들은 집권만 하면 북한과 한·중, 한·일 영토갈등과 과거사를 포함한 난제들을 단숨에 해결할 기세다. 그러나 한국과 세계의 외교사를 돌아보면 한 나라의 국왕과 대통령과 총리에게 문화적 소양(cultural literacy)으로 무장된 전략적인 사고능력이 없으면 그 나라는 한정된 파이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는 국제사회에서 소극적으로는 제 몫을 지키고, 적극적으로는 대외적으로 나라의 위상을 높일 수가 없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역사학자인 폴 케네디 예일대학 석좌교수가 지난달 21일 중앙일보에 와서 홍석현 회장과 가진 긴 대담에서 지적한 비스마르크의 전략적인 외교의 사례가 이명박 대통령과 세 대선후보들에게 천금 같은 교훈이 될 것 같다.

1862년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프러시아의 재상에 취임했을 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독일이라는 나라는 프랑스 보호국 라인연방, 호헨촐레른 왕가의 프러시아 그리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로 분할되고 그 각각의 나라 안에 수많은 왕국과 공국과 자유시가 난립하고 있었다. 그리고 독일 전체를 포함한 유럽의 질서는 1814년 오스트리아, 러시아, 영국이 주축이 되어 나폴레옹 전쟁의 승전국들이 출범시킨 빈 체제(Wien system)로 유지되고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독일의 안보에 빈 체제가 필수적이라는 신화를 깨고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프러시아 중심으로 독일을 통일해야 하는 벅찬 도전 앞에 섰다.

비스마르크는 1864년 오스트리아와 함께 덴마크와 전쟁을 하여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을 분할 점령했다.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패권을 다투는 전쟁을 준비했다. 그는 1865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와 담판하여 프러시아·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중립을 지키겠다는 밀약을 받아냈다. 나폴레옹 3세는 프러시아가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반드시 패배할 것을 확신하고 전쟁을 부추겼다. 1866년 프러시아는 오스트리아를 공격했다. 3주 만에 홀슈타인을 점령하고 쾨니히그레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에 최후의 일격을 안겼다. 철도로 병력을 신속하게 이동한 참모총장 헬무트 폰 몰트케의 획기적인 전략에 오스트리아군은 속수무책이었다. 몰트케와 휘하 장군들은 빈을 점령하자고 주장했다. 비스마르크가 반대했다. 그는 후일을 위해서 오스트리아에 더 이상의 모욕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비스마르크는 이미 프랑스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프러시아의 패전을 바라고 중립을 지킨 나폴레옹 3세는 중립의 대가로 라인강 좌안의 영토를 요구했다. 비스마르크는 당연히 거절했다. 빈 체제는 영웅 나폴레옹이 유럽 대륙에 전파한 프랑스 혁명의 효과를 차단·무력화하는 보수체제였다. 그래서 영웅 나폴레옹의 조카 나폴레옹 3세에게 빈 체제는 눈엣가시였다. 비스마르크가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으로 빈 체제에 최종적인 사망선고를 내린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통일된 독일이 등장하여 빈 체제를 대신하고 대륙의 강자가 되는 것은 막아야 했다.

 

비스마르크는 남부독일 국가들과 비밀동맹을 맺고,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로부터는 중립의 약속을 받아냈다. 몰트케의 주장대로 1866년 전쟁 때 프러시아가 빈을 점령했더라면 비스마르크는 프랑스와 전쟁을 하면서 배후를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는 온다. 1868년 공위(空位)가 된 스페인 국왕 자리를 놓고 다툼이 생긴 것이 도화선이 되어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이 일어났다. 승리는 준비한 자의 몫으로 돌아갔다.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간섭과 영향력을 차례로 제거하고 1871년 4개 왕국, 18개 공국, 3개 자유시, 2개 제국령을 가진 역사적인 통일국가를 실현했다.

비스마르크의 모든 대외정책은 전략적·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는 항상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장기짝을 옮겼다. 키신저는 저서 『외교(Diplomacy)』에서 “순간의 무드에 맞추고 전체 전략과 무관한” 지도자의 행동을 경계했다. 나폴레옹 3세는 외교적인 업적으로 국내 문제를 해결하려다 실패했다는 키신저의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지금 한·중·일 관계가 최악인 것도 세 나라 지도자들의 언행이 순간의 무드와 신문 제목과 저녁뉴스에만 맞춰지기 때문이다. 한·일 두 나라 정상들의 상대에 대한 언행이 특히 그렇다. 1890년 비스마르크가 현실주의외교(Realpolitik)라는 불멸의 모델을 남기고 퇴임할 때 유럽 언론들이 일제히 “수로 안내원이 배를 떠난다”면서 앞으로의 유럽 평화를 깊이 걱정한 것은 얼마나 교훈적인가.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497233&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0:51

그린란드 일룰리사트 앞바다는 온통 빙산으로 뒤덮여 있다. 작은 얼음 덩어리부터 산처럼 거대한 빙산까지 크기와 모양도 천차만별이다.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만들어진 흔치 않은 장관이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마음 편치 않은 현장이기도 하다.

지금 이곳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빙하가 녹으면서 자원 개발이 가능해졌다. 그린란드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5분의 1에 가까운 원유와 중국보다 많은 희토류가 묻혀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최근 미국지질조사국은 그린란드를 포함한 북극지역에 전 세계 석유 미발견량의 13%, 천연가스는 30%가 묻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일본 등은 이곳 자원탐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주요국의 7개 메이저 에너지회사들은 1990년대 초·중반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린란드 북부의 자원 매장 가능성을 조사했고, 그 결과 그린란드 정부로부터 자원개발에 대한 우선 참여권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도 그린란드 자원개발에 발 빠르게 뛰어들고 있다. 세계의 각축장이 되고 있는 그린란드 자원개발에서 한국 기업들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 그린란드를 정상 방문한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 외교’다. 그린란드 총리도 조속한 시일 내에 한국 방문을 희망한다고 밝혀 양국 간 협력 진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자원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데 있어 이 같은 정부 간 공조체제를 지렛대 삼아 적극 활용하는 지혜와 전략이 시급하다.

이번 방문국에는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도 포함됐다. 카자흐는 자원이 풍부해 발전가능성이 매우 높은 나라다. 이번 정상 방문 시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 유전 탐사 등의 조속한 추진을 협의했고, 지난 번 정상외교 시 수주한 40억달러 규모의 발하쉬 화력발전소 기공식을 열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카자흐가 배워야 할 최우선 국가는 한국이며, 20년 안에 한국을 추월하는 것이 목표”라는 구체적 비전을 갖고 있다고 한다. 양국 정상 간의 허심탄회하고 진정성 있는 관계가 ‘세일즈 성과’로 나타나고 있음을 느꼈다.

이번 순방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시작했다. 다자간 정상회의에서는 참가국의 경제력과 국격, 그리고 정상 개인의 리더십이 한데 어우러져 세계질서를 만들어 간다. 중간 중간 양자 간의 문제도 협의한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일본 수상과의 만남이 APEC 기간 중에 이루어졌고, 인도네시아와는 친환경 자동차산업의 공동 추진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그야말로 ‘종합외교’의 현장이었다.

노르웨이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노르웨이는 석유 수출 세계 7위, 천연가스 수출 2위의 자원강국으로 1인당 국민소득도 10만 달러에 육박한다. 우리 선박의 최대 고객이자 해양플랜트 분야에선 최정상급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전형적인 복지국가로 국민총소득(GNI)의 1%를 해외원조에 쓰고 있다.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노벨평화상을 주관하는 국가로 인권에 대한 관심도 높다.

이런 노르웨이의 오슬로대 강당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전쟁 당시 노르웨이가 도와주었던 극동의 작은 나라가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개도국에 원조를 제공하며, 자원봉사자 숫자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나라로 성장했다고 소개했다. 진지하게 듣고 있던 청중들의 표정에서 ‘국격 외교’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족 하나. 해외출장을 다니다 보면 식사는 대부분 호텔 아니면 행사장에서 서양식이나 현지 음식으로 하기 마련이다. 이번에도 카자흐스탄 출장 마지막 날 저녁이 돼서야 시간이 생겨 한국음식점을 찾아 나섰다. 수도인 아스타나에 하나밖에 없다는, 고려인이 운영하는 한국음식점에서 갈비탕을 시켰는데 영 ‘그 맛’이 아니었다. 확신이 없을 때는 비빔밥을 시키라는 조언을 들었다며 돌솥비빔밥을 맛있게 먹던 직원이 마냥 부러웠다. 외국과의 협력활동에서뿐만 아니라 음식 고르기에서도 쌍방향 소통이 필요한 모양이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http://www.korea.kr/celebrity/contributePolicyView.do?newsId=14874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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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50
1일 미국 뉴욕증시에서 구글이 시가총액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를 처음으로 뛰어넘어 4위에 올랐다. 모바일과 웹 기반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구글이 PC 기반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MS를 추월한 것은 PC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미국과 영국 언론은 “포스트 PC(PC 이후)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증거” “정보기술(IT)의 중심이 PC에서 모바일로 넘어가는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했다.

30년간 IT 업계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지키던 MS는 2010년 애플에 추월당한 지 2년 만에 구글에도 밀렸다. MS는 PC 운영체제인 윈도를 기반으로 PC 시대를 이끈 선도자였지만 모바일 체제로의 전환이 더뎌 역전을 허용했다. 구글은 웹 기반의 검색과 광고 사업을 기반으로 모바일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 모바일 광고 같은 신사업에 진출해 시장 판도를 바꿨다. 구글의 힘은 숙련된 소프트웨어 인재를 전 세계에서 확보해 모바일로 가는 시장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소프트 파워’에서 나온다.

휴대전화, TV, 자동차와 같은 하드웨어 제품도 소프트웨어의 차이에 따라 경쟁력이 달라지는 시대다. 모바일과 웹을 중심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가 사라지는 기술융합도 본격화하고 있다. 세계 시가총액 100대 기업 중 소프트웨어 기업 비중은 최근 20년간 갑절로 늘었다. 한국은 제조업 강국이지만 소프트웨어는 후진국이다.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현대모비스 기아자동차 같은 제조회사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IT 강국의 명성은 ‘속빈 강정’이나 다름없다. 소프트웨어 산업 경쟁에서 밀려나면 차세대 성장엔진 확보나 청년 일자리 창출도 요원해질 것이다.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영세한 내수 중심의 시장과 낮은 노동생산성을 극복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대다. 2010년 글로벌 500대 IT 소프트웨어 기업 중 한국 회사는 한 곳도 없다. 각 산업에서 소프트웨어를 미국 영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 수준으로 활용하면 GDP가 1.43%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 해외에서는 일하기 좋은 기업 상위권에 소프트웨어 회사가 올라가지만 한국은 거꾸로다. 고급 소프트웨어 개발인력은 모자라고, ‘낮은 처우-우수 학생 기피-교육 부실-산업경쟁력 약화’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 산학협력 같은 실용교육을 통해 창의적인 소프트웨어 인재를 길러내야 한국의 미래가 열릴 것이다.

http://news.donga.com/3/all/20121004/498323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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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36

미국 인터넷 서점 아마존이 다음 달로 다가온 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인이 읽는 정치 관련 책들의 이념 스펙트럼을 분석해 그 결과를 자사 사이트에 소개하고 있다. '2012 아마존 선거 열기 지도(Amazon Election Heat Map 2012)'라는 제목의 이 서비스는 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정치 분야 책 100권을 뽑은 뒤 저자의 정치적 성향이나 책 내용 등을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분류하고 주(州)별로 국민이 어느 정당 성향의 책을 많이 읽는가를 조사해 그 결과를 서적 판매에 활용하고 있다.

이 조사 결과를 보면서 '정치와 출판이 이렇게도 만날 수 있구나!' 하고 감탄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서점이 단순히 책만 파는 데서 그치지 않고 출판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미국 지식계의 흐름과 미국민의 독서 성향까지 보여주는 고급스러운 마케팅 기법을 선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마존은 미국민의 정치 서적 독서 지도를 제작하면서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각 주의 선거인단을 독식(獨食)하는 미 대선 시스템을 적용해 독자의 흥미를 유발했다. 공화당 성향의 책을 '붉은 책(red book)', 민주당 성향의 책을 '파란 책(blue book)'으로 명명한 뒤 미국 지도를 붉은색과 파란색으로 칠해 양당 성향 출판물의 과반 비율을 선거 결과처럼 보여줬다. 결과는 공화당의 압승이었다. 10월 3일 현재 미국 전체 51개 주(워싱턴 DC 포함)에서 아마존을 통해 팔린 책 가운데 공화당 성향 책이 절반 넘게 팔린 주는 43곳이었고, 민주당 성향 책이 더 많이 팔린 곳은 워싱턴 DC와 뉴욕·매사추세츠 등 8곳이었다. 실제 대선 판도에서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약간 앞서는 가운데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와 접전을 펼치는 것으로 분석되지만, 아마존 독서 지도에서는 온통 붉은색이었다.

미 공화와 민주 양당 성향 책의 구매 비율을 분석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지도는 '승자 독식' 방식에 따라 붉은색이 압도하고 있지만 구매 총량은 '공화 57% 대(對) 민주 43%'로 양쪽 진영의 책이 비교적 균형 있게 팔리고 있었다.

보수와 진보 진영 지식인들이 막말과 몸싸움 대신 책을 매개 삼아 지적(知的) 전쟁을 벌이는 현상은 부럽기까지 했다. '붉은 책' 가운데 '그림자 보스들'이라는 책은 노동조합이 어떻게 미국 정부에 침투해 국민의 세금을 빨아먹고 자기들의 혜택만 극대화하는가를 분석하고 있다. 과도한 세금을 물리는 거대 정부에 대항하는 지식인들의 투쟁을 다룬 작가 아인 랜드의 1957년작 소설 '아틀라스 슈러그드'도 부자 증세 논란을 둘러싸고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반면 '파란 책' 중에는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마련한 8000억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책이 교육·건강·친(親)환경 등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중시해온 가치들을 지켜냈다고 주장하는 '뉴 뉴딜' 등이 주목받고 있다.

우리도 대선을 앞두고 있지만 이처럼 세련된 출판 이벤트와 정치 세력 간 저서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가 편식(偏食)이라 할 만큼 지나치게 좌파적 가치에 쏠려 있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태훈 국제부 차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03/20121003018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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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34

8월13일치 오피니언면 ‘안철수 태교와 좋은 부모’를 읽고

‘한겨레 프리즘’의 ‘안철수 태교와 좋은 부모’를 읽었습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여성들의 임신·육아 걱정에 편승한 상업주의를 우려하고 진정한 태교는 성공을 잣대로 하는 욕망이 아니라 소중한 생명과의 즐거운 교감이라는 요지의 글이었습니다.

 

논지에 공감하지만 비단 안철수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에 대해 읽어보고 그것을 뱃속의 아이와 교감해보려는 것은, 그것이 비록 성공에 관한 이기적 동기에서 비롯됐더라도 ‘문제적 욕망’이 ‘긍정적 희망’으로 승화될 기대를 접지 않았으면 합니다. 특히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은 영어 태교, 바느질 태교, 국외여행 태교, 그림책 태교, 음식 태교, 숲 태교를 모두 상업주의로 지나치게 경계한 대목입니다. 극히 일부는 혹시 과장을 했거나 그럴 가능성도 있겠습니다만 태교는 그 가능성을 상쇄하고도 남을 ‘콘텐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숲 태교’는 아직 상업주의를 우려할 만한 어떤 문제점도 없는 ‘스페셜 콘텐츠’입니다. 숲 태교는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초기 단계의 사업이고, 산림청과 국립수목원,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산림복지 차원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숲 태교는 전통적인 태교 프로그램을 산림휴양과 복지 차원에서 미래지향적인 통합적 문화콘텐츠로 재창조하고자 하는 신개념 프로그램입니다. 때문에 새로운 콘텐츠에 기대감이 큰 임신부들에게 폭발적인 인기가 있고, 특히 1박2일간의 숲 태교 프로그램은 당첨되기도 어렵습니다.

 

전통 태교의 내용은 아름다운 말을 듣고, 성현의 문구를 외고, 시를 읽거나 품위 있는 음악을 감상하고, 소나무에 드는 바람소리를 듣고, 매화와 난초의 은근한 향을 맡으며 스트레스 없는 평상심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행여나 못 볼 걸 볼까봐 ‘못생긴 과일도 먹지 마라’고 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태교의 방법과 내용을 일상생활에서 통합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숲 태교입니다. 숲은 배움과 가르침의 공간입니다. 이름 모를 풀꽃과 나무와 새에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상생과 공존, 다양성의 조화를 체득하는 충분한 태교이고, 솔 향기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가볍게 걷기만 해도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행복하고 훌륭한 태교가 됩니다. 숲의 초록 빛깔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많은 건강상의 이로움이 있고, 아파트에 홀로 남겨진 임신부들이 마을 숲이나 공원에 나가 고독감과 우울감, 불안감을 서로 해소하는, 이처럼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태교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나아가 숲 태교는 임신부와 태아의 녹색의식을 제고하는 중요한 기능이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미래에 임신부와 태교의 중요성은, 올해 리우+20 정상회의의 많은 의제 중 하나로 세계태교협회에서 주관한 ‘세상을 구하는 9개월’이라는 의미심장한 테마에서도 드러납니다.

 

생명의 숲에서 태아가 보고 듣고 느끼도록 하는 숲 태교야말로 세계보건기구(WHO)가 주창한 영적 복지의 시초가 될 것이며, 산림복지의 튼튼한 첫 단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영초 풀빛문화연대 대표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5541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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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26

대통령 선거가 과거의 이슈와 네거티브 공방으로 흐르면서 한국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 실종되고 있는 것 같아 우려된다. 선거는 현실이고 치열한 공격과 방어가 관심을 끌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하며 맞이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성찰과 고민이다.

우리나라는 후발 선진국가로서 국가 비전을 설정하고 그것을 추진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그 시작은 1962년부터 1986년까지 5차례에 걸친 경제개발계획을 통해서였다. 이 계획들을 통해 중화학공업 중심의 압축적인 성장의 길을 걸었고, 그 결과 철강·조선·자동차·반도체 산업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제조업 중심의 경제개발계획은 중단되고 그 자리를 정보화 계획이 대신하였다. 1996년의 사이버 코리아 21을 시작으로 2000년 e-Korea를 거쳐, 2004년 u-Korea 등으로 이어진 결과, 한국은 IT 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역시 좋아서 세계 최고 수준의 네트워크와 인터넷·모바일 환경을 통해 세계가 주목하는 국가로 발돋움했다.

그런데 이러한 미래 비전 설정이 2008년 이후 중단되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이 나오고, 민간 영역의 창발성이 주도하면서 더 이상 국가 비전이 필요하지 않다고 여긴 탓일까? 물론 민간 영역이 확대되어 부(富)와 가치 창출이 민간 영역에서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국가의 역할은 다른 데 있다. 어떠한 조직도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미래 비전이 필수적이며, 선택과 집중을 통한 자원의 배분과 특화(特化)가 관건이다. 우리나라 같은 규모의 국가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제 우리는 다시 새로운 미래 비전을 설정해야 할 때가 됐다. 1단계의 산업화, 2단계의 정보화를 거쳐 우리나라의 3단계 도약의 길은 ICT(디지털 정보통신)에 기반을 둔 소프트·콘텐츠 파워가 중심이 된 지식창조사회의 비전에서 찾아야 한다. 지식창조사회의 미래를 담고 이끌어갈 'C-코리아'와 같은 국가 비전이 필요하다. 여기서 C는 하나의 의미만 갖고 있지 않다. Creative(창조적)이고 Content(콘텐츠)이며 Communication(소통)이기도 하다. 기존에 이룩한 전통산업과 하드웨어에 창조성·감성·소프트를 입히는 새로운 비전이다. 콘텐츠와 소프트웨어에 집중하고 소통이 원활하게 흐르게 하는 진정한 디지털 사회로 만드는 전략이다.

우리나라는 디지털 인프라와 기기(器機)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각종 경제·문화·사회 활동이 디지털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세계 어디에도 이러한 지식창조적인 특화된 장점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없다. 세계는 한국의 이러한 경쟁력의 다음 단계가 어떻게 될지 주목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C-코리아를 통해서 ICT에 기반을 둔 콘텐츠와 창조적 감성 산업 등 고용과 성장 창출 효과가 높은 분야를 집중 육성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시대적 요구가 되고 있는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서는 젊은이들의 창조성과 감성에 기반을 둔 디지털 기반의 고부가가치형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해답이다. 청년들을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 디자이너로 육성하고 이들의 콘텐츠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전파되어 문화적·경제적 보상으로 돌아오는 선(善)순환 고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김대호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02/201210020194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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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24

며느리 휘어잡는 비책? 道 닦듯이, 政治 하듯이
하나 주고 둘 얻으려면 속을 다 보여줘선 안 돼
욕심과 집착 버리면 돈·학식 없어도 백전백승

 

그리 순순히 손목을 내어주는 게 아니었다. 핏빛 단풍에 홀려 정읍 가는 기차에 냉큼 올라탈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앞길 창창한 스무 살에 덜컥 새 생명을 잉태하였으니, 정숙씨 고생은 그때가 시작이었다. 공룡이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취업바라지 3수(修) 끝에 외아들을 백수 탈출시켜 놓고 이제 좀 팔자가 펴나 했더니, 나이 오십둘에 며느리를 보게 될 줄 누가 알았느냐 말이지. '지 애비 아들 아니랄까 봐' 하고 혀를 찬들 이미 엎질러진 물이어서, 기왕 이리된 거 세상 제일의 시어미가 되어보자 하고, 팔순 연치(年齒)에 새삼 한문공부에 재미를 붙인 호호백발 시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한 수 가르쳐주시지요.

"이빨 빠진 호랑이한테 한 수는 무슨."

―퉁기지 말고 한 말씀 주시지요.

"화이부동(和而不同).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나 무턱대고 어울리진 말아야지."

―기왕이면 친딸처럼 아끼고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무당 송편 뜯어 먹는 소리. 병법(兵法)을 연구해도 모자랄 판에."

―며느리와 싸우란 말입니까.

"자네와 내가 전쟁한 지 어언 40년이네."

―어찌 싸워야 합니까.

"맨입으로 어찌…."

―백화점에 찜해두셨다는 닭스 투피스 한 벌 뽑아드리지요.

"싸우지 않고 이겨야지. 백전백승(百戰百勝)보다 부전이승(不戰而勝)이 아름답다 하였으니."

―학벌이 달려도 너무 달리니 전장에 나서기도 전에 주눅이….

"중졸이라고 국졸인 시어미를 우습게 여기더니 쌤통이로고."

―무식하다고 구박한 쪽은 어머니였지요.

"속성(速成)으로 유식해지는 법이 있긴 하네만."

―바바리코트는 어림없습니다.

"낼모레 저승 갈 내가 뒷방에 앉아서도 천리 밖을 내다보는 비법, 신문에 있나니."

―문자 몇자로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매귀추마(買鬼推磨·귀신을 사서 맷돌을 갈게 하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리나니."

―재산이라곤 달랑 이 집 한 채뿐이외다.

"돈 없고 학식 없으면 며느리보다 월등히 잘하는 한 가지가 있어야지."

―쩜당 백 고스톱은 자신 있습니다만.

"자네가 동치미 하난 맛깔 나게 담그지. 그것이 박사학위보다 위력적임을 알게 되리니."

―초반에 기선을 제압하라 하더이다.

"속을 다 보여줘선 안 되지. 아무리 기뻐도 박장대소 말고, 슬퍼도 대성통곡 말며, 화가 나도 불을 뿜어선 안 되느니."

―도(道)를 닦으라!

"아들 생일은 잊어도 며느리 생일은 잊지 마시게. 둘이 다투면 고까워도 며느리 편들고, 며느리 티끌만 한 장점도 대들보인 양 칭찬하시게."

―정치를 하라십니까.

"자네의 패도 꺼내야지. 아침밥은 거르지 말 것, 삼일에 한 번 문안전화 드릴 것, 부모의 생신과 기일을 엄수할 것."

―그거야 기본이지요.

"기본이 전부이고, 그래서 어려운 법. 또 하나, 집안 대사(大事)는 반드시 며느리와 상의하시게."

―아예 곳간 열쇠를 내어주라 하시지요.

"여기가 내 집이란 주인의식을 며느리가 느끼는 순간 자네의 승리!"

―손자를 봐달라 하면 어찌합니까.

"월급통장을 내놓으라 하시게."

―며느리 하는 짓이 눈꼴 사나우면 어찌합니까.

"모기를 보고 칼을 빼어들 수야 없지."

―그래도 아들이 아까워 죽겠습니다.

"나는 얼마나 아까웠겠는가."

―며늘아기 관상에 후덕한 데라고는 없으니.

"구부러진 쑥도 삼밭에 나면 꼿꼿이 자라는 법. 어진 이와 함께 있으면 어질어지고 악한 이와 있으면 악해지나니."

―차라리 성인군자가 되라 하소서.

"결혼과 동시에 아들은 며느리의 것. 아들에 대한 눈곱만 한 연민까지도 칼같이 거둬들이면 이 땅에 더 이상 고부갈등이 없으리니."

―모자지간의 숭고한 사랑을 끊으라니요.

"사랑이 아니라 집착. 자네 아들한테 쏟아부은 정성의 10분의 1만 내 아들에게 나눠줬으면 우리 아들 몰골이 저리되었겠나."

―그래도 싫습니다. 꼴리는 대로 살랍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기는 법. 천 번을 흔들리면 뭐하노. 바로잡는 결단이 있어야지."

―근데 말입니다. 저는 이토록 위대한 시어머니를 모신 기억이 없으니 어찌 된 일입니까.

"1루·2루·3루를 밟아야 홈에 들어가는 법. 이생과 작별할 날 닥치니 깨달음이 폭죽처럼 터지는 것을. 근데 말이야. 미운 정 옴팡지게 들어야 진짜 정이라더니, 그토록 밉상이던 자네가 요즘 예뻐 보이는 것은 나의 망령인가, 도통(道通)인가."

 

 

김윤덕 기획취재부 차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01/20121001007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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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20
1966년 9월 초 불교 미술 연구의 권위인 황수영·정영호 박사는 서둘러 경주로 달려갔다. 국보 21호 불국사 석가탑이 훼손됐다고 하니 조사해달라는 문화재관리국 요청을 받고서였다. 가서 보니 석가탑 주변에는 화강암 조각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1층과 3층 덮개(옥개석·屋蓋石)도 어긋나 있었다. 사찰 측과 경찰은 며칠 전 있었던 지진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지진 여파라면 석가탑보다 훨씬 섬세한 다보탑은 무너져 내렸어야 했다. 각층 탑신(塔身)이 다 움직였는데 2층만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했다. 황·정 박사는 인위적인 힘이 가해진 게 틀림없다고 보고했다.

▶며칠 후 도굴범들이 잡혔다. 범인 중에는 국립 경주박물관의 경비원도 끼어있었다. 그들은 사다리와 지렛대를 이용해 야밤에 석가탑을 들쑤시다 불국사 새벽 종소리에 놀라 달아났다고 했다. 석가탑을 원상회복하기 위해 탑을 해체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범인들이 미처 손을 대지 못한 2층 탑신 내부에서 무구정광다라니경, 은으로 만든 사리함같은 국보급 문화재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무구정광다라니경은 일본이 세계 최고(最古) 목판 인쇄본이라고 주장하던 백만탑다라니경보다 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토함산의 새벽을 여는 불국사 종소리가 조금만 늦게 울렸더라면, 다른 탑처럼 석가탑도 사리함을 맨 아래 1층 탑신에 모셨더라면…. 돈에 눈이 어두운 도굴범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벌인 석가탑 해체 작업이 하루아침에 석가탑의 가치를 더 높여주었다.

▶석가탑은 무영탑(無影塔)이라고 불린다. '그림자 없는 탑'이란 뜻이다. 백제의 아사녀는 석가탑 다보탑을 세우기 위해 신라에 불려간 남편 아사달이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자 직접 경주를 찾아온다. 날마다 불국사 주변을 서성거리지만 탑이 완성되기 전에는 여자는 들어갈 수가 없단다. 가까운 연못에서 탑이 빨리 다 올라가 모습을 비치기를 지극 정성 빌지만 탑은 끝내 비치지 않는다. 아사녀는 상심 끝에 연못에 몸을 던진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아사달은 연못 옆 바위에 아내의 얼굴을 새기고 자신도 몸을 던진다. 석가탑이 무수한 전란과 일제의 문화재 약탈, 도굴에도 그 안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은 이런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품에 안고 있어서일까.

▶석가탑이 대대적인 해체·보수 작업에 들어갔다. 1000년 만의 본격적 해체인 만큼 이번에는 탑의 밑바닥도 파보게 된다. 다른 신라 석탑처럼 불상이나 귀걸이 팔찌같은 보물이 나올 수 있을까? 팔순의 정영호 박사는 "가능성은 반반"이라면서도 뭔가 나올 것 같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김태익 논설위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28/20120928019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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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19

지난 9월 27일은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이 출간된 지 50년이 되는 날이었다. '침묵의 봄'은 환경주의 이념을 고취하며 세계 곳곳에 환경보호 운동을 불러일으켜 이른바 생태학의 시대(Age of Ecology)를 열어젖힌 책이다. 역사학자들은 이 책의 사회적 영향을 1852년에 출간되어 남북전쟁과 노예제도 폐지를 불러온 해리엇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에 비견한다. 1970년 미국 정부에 환경보호국(EPA)이 만들어진 것과 1992년에 도출된 '리우 선언'도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이 책 덕택이다.

활활 타는 불에는 어김없이 날파리들이 꾀는 법. 50년이 지난 오늘도 이 책에 대한 구시렁거림은 끊이지 않는다. 비판자들은 이 책이 DDT 사용을 금지시키는 바람에 수많은 사람이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한다. 나는 끝없이 반복되는 이 주장을 들을 때마다 그들이 과연 카슨의 책을 읽은 것인지 의심스럽다.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화학 살충제의 사용을 무조건 중지하라고 쓰지 않았다. 다만 화학 살충제의 남용이 훨씬 더 큰 생태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생태학적 원리를 설명했을 뿐이다.

샌프란시스코 북쪽의 관광도시 클리어 레이크(Clear Lake)의 주민은 1949년 실제로 물지는 않지만 매우 성가시게 구는 날파리를 없애달라는 관광객들의 요구에 못 이겨 DDT보다 독성이 약한 DDD를 소량(0.02ppm) 호수에 살포한다. 그러나 잠시 반짝 효과가 있었을 뿐 2년 뒤 날파리가 더 극성을 부리자 주민은 매년 농도를 조금씩 올려가며 DDD를 뿌려댔다. 그러자 1954년 수많은 논병아리가 죽어나갔고 그들의 조직에 DDD가 무려 1600ppm이나 농축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이런 현상을 생태학에서는 먹이사슬을 따라 독성이 축적되어 인간을 비롯한 최종소비자들이 가장 심한 타격을 입게 되는 '생물농축'이라고 부른다.

지구의 생명이 사라지고 있다. 그 사라지는 생명 속에 인간이 있다. 카슨의 가르침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절절하다. 이제 막 대학의 문을 나서려는 젊음에게 묻는다. 지구의 생명을 되살리는 일보다 더 값진 삶이 어디 있겠는가? 생태학과 에코과학이 꿈 많고 능력 있는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행동생태학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01/2012100100889.html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0:06

크리틱

대략 천년 전 그해 한 소녀가 종소리가 되어 죽었다. 오래도록 소녀가 녹아들어가 종소리가 더 거룩하고 멀리 들린다고들 믿었다. 어떤 고고학자들은 그 종소리를 해부하고자 했다. 긴 고민 끝에 그들은 쇠에 인 성분이 없는 것으로 봐 에밀레종 이야기는 사실은 아닐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굳이 소리의 성분을 알아야만 했던 것일까. 새의 노래가 궁금하다고 가슴을 열어볼 필요는 없다. 새가 죽을 따름이다. 설화와 예술을 화학적으로 이해하고 확인코자 한 합리적 무지다. 달에 가서 계수나무를 찾는 건 과학이 아니라 작가의 몫이다. 암스트롱 등 간 사람은 볼 수 없고 가지 않은 자는 한가위 달밤에 마당에 선 채로 옥토끼를 얻을 수 있다.

 

이 설화의 핵심 구조는 종을 만드는 과정의 지난함과 당대 지배종교의 민중갈취에 대해 입을 통해 형상화된 기록이 재불교화한 전승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소녀의 집안은 바칠 게 없었다. 가난한 자는 종교적 압박과 그에 부가되는 죄의식에 상응하는 어떤 것을 내놓아야 할까. 인신공희, 윤회관, 여성차별, 어린아이가 제물로 순결하다고 여기는 태도 등 일반적 이해가 이를 뒷받침한다. 청동으로 빚은 시칠리아황소 뱃속에서 한 사람이 불에 타면서 소리를 질렀다면 에밀레종에는 그 시대 민중이 겪어야 했던 집단고통이 반영되어 있다고 봐도 좋다. 설화에서 소녀는 종 속으로 사라졌다. 따라서 에밀레종 소리는 민중의 울음이자 비명이다.

 

에밀레야. 소리 내어 읽어보라. 가슴이 여전히 울린다면 그대는 감성적 공범이다. 공범의식이 높을수록 소리는 애잔하고 멀리 울려 퍼지리라. 이는 귀신이 집단죄의식의 산물인 것과 일치한다. 귀신이 죽어버린 사회는 죄의식조차 사망해버린 사회다. 자본주의는 귀신을 살해하고 스스로 괴물이 되었다. 죽음에 울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사회는 이미 죽은 사회다. 그런 점에서 에밀레종 소리는 그치지 않고 오늘 일어나는 죽음을 고발한다. 과연 큰 종이다.

 

신라 때는 소녀를 섞어야 종이 울렸다. 에밀레야. 21세기 한국에서는 소녀를 섞어야 반도체가 작동한다. 그날 이후 모든 반도체는 죽음을 반사시킨다. 소녀들의 죽음을 첨가하지 않으면 전도율이 배가되지 않는 죽음의 집적회로, 순정성분 목숨들이 녹아들어야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 무균공장의 창백한 자본주의 설화가 이 순간 에밀레 설화를 대체하고 있다. 목숨을 바치는 가난한 윤회는 고대와 문명사회 간극을 일시에 메우고 있다. 에밀레종처럼 반도체에도 인 성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비극을 더 투명하게 조립시켜내고 있는 대목이 바로 여기다.

 

한국 사회는 지금 죽음을 외면하는 죽음으로 죽어가고 있다. 자본의 대리로 권력이 청부 집행한 용산은 중산층이 철저히 얼굴을 돌린 죽음이다. 한국인 생존지문이었던 사글세와 사당동을 지우고자 뿌리친 자리에 노트르담 드 용산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노동과 자본이 나란히 가는 듯한 쌍차는 이름이 좋았달 뿐 스물둘 죽음에 눈감은 일상에는 대중자살이 똬리를 틀고 있다. 10대~30대 사망 원인 첫째는 모조리 자살이다. 성장기의 집단자살을 포함한 이 거대한 대중자살은 탐욕과 침묵의 공모에 의한 타살이다.

 

이 가을 서대문 옥마당 사형장 가는 길 미루나무가 높은 건 하루아침에 여덟 청춘이 목 매달린 터다. 선거철이 되자 이 죽음을 놓고 사과라는 말이 유통되고 있다. 인혁당의 목숨은 여덟으로써 하나다. 두번째 판결도 재심도 법률적 신원회복일 따름 무엇도 되돌리지는 못한다. 억지로 토해내는 사과는 모욕을 두껍게 할 뿐 이미 거짓이다. 에밀레야, 추석날을 울리고 가는 종소리에 귀가 아프구나. 이 사회가 숱한 죽음을 버리고 능멸한 죄 깊은 까닭이다. 오늘밤 그 미루나무는 더 높겠다.

 

 

서해성 소설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3856.html

 

 

Posted by 겟업
2012. 12. 25. 21:08

어렸을 적, 어른들은 우리가 텔레비전 앞에서 시간을 낭비한다고 나무랐던 것 같다. 이제 과거의 우리는 어른이 됐고, 어른이 된 우리는 지금 젊은 세대가 휴대전화에 시간을 낭비한다고 야단을 치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뿐 아니라 도처에 널려 있는 스크린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다. 혹자는 끔찍한 일이라고까지 한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요즘 젊은이들은 운이 좋은 세대이고, 게다가 매우 현명하다. 어린 시절의 텔레비전은 서로를 소외시켰다. 온 국민이 동시에 한 프로그램에 열광하던 시절을 상기하면서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텔레비전을 시청한다는 것은 참으로 외로운 경험이었다.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것은 마치 터널을 바라보는 것과 같아서 같은 방에 있는 사람조차도 철저하게 소외시켰기 때문이다. 반면에 오늘날의 스크린은 매우 매력적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항상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과 연결성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개념이지만 오늘날에는 새로운 ‘네트워크 시대(Networked Age)’를 정의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물론 손 안의 휴대전화로 방대한 양의 지식에 접근이 가능하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래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들이 등장하게 됐다. 비록 나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끼치는 악영향은 어떤 기술로도 해결할 수 없지만 인터넷은 훌륭한 선생님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 주는 역할은 할 수 있다. 

구글 직원이기도 한 피터 노르빅 박사와 제바스티안 트룬 교수는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교수로서의 능력을 발휘했다. 그들의 학교 수업을 온라인에서 공유한 것이다. 그러자 세계에서 10만 명이 넘는 학생이 수강 신청을 했다. 학기가 끝났을 때 이 가운데 248명이 만점을 받았다. 이들 중 스탠퍼드대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즉 이 248명의 학생은 엘리트 교육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이런 기회가 없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사례는 단지 한 대학교의 한 강의에 불과하다. 여기에 모든 학교와 선생님들의 수가 곱해진다면 파급력은 어마어마해질 것이다.

학습에 방해가 된다고 하는 스마트폰은 사실 학생들이 있어야 할 장소에 있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일례로 한국의 한동대에는 책상마다 반영구 근거리무선통신(NFC) 스티커를 붙여 놓아 학생들이 스마트폰으로 출석 체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지속적으로 네트워크에 연결된 환경이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효과가 있음을 보여 주는 예다.

인터넷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매우 적절한 시기에 등장했다. 서구 사회와 한국은 모두 고령화 및 핵가족화에 직면하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생산성을 극적으로 개선해 모든 세대의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인터넷은 다양한 방법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인터넷은 전례 없는 규모로 연구 활동을 조율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DNA와 건강, 영혼과 같은 내용에 관한 지식이 글로벌하게 확대되고 공유된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더 깊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지구상의 수많은 과학자가 협업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이는 핵심 과학의 발전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세계 차원에서 보편적인 이슈를 함께 고민할 수 있게 됐다.

건강에 주는 영향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이미 엄청난 양의 건강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어떤 약은 특정 약물에 대한 환자의 반응을 모니터링하고, 그 정보를 의사에게 전달해준다. 건강에 이상 신호가 생기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의 의사를 찾아주고,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의사는 해당 환자의 건강 정보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인터넷의 발전은 더 새롭고 튼튼한 정부 체제 구축을 뜻한다. 정부는 방대한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 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정부를 더욱 정확하게 판단하고 다른 나라 정부와도 비교할 수 있다. 이는 국가 단위뿐 아니라 지방 단위로도 일어날 수 있으며 그 결과 저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지역 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우연치 않게 그런 활동이 글로벌한 차원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발견하게 된다. 일례로 휴대전화와 문자를 통해 개도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작은 프로젝트는 국경을 초월해 전파됐으며 이제는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글로벌 금융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이런 성과는 세계 곳곳에서 기대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디지털 데이터는 모든 차원에서 사회를 변화시킨다. 정부는 프로그램의 성과를 바로 측정할 수 있고, 언론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바로 확인할 수 있으며, 시장은 더 나은 방식으로 경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또한 시민들이 다양한 정보나 대안적 사회 비전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도 확대된다. 우리 시스템을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있고 여기에서 요구사항이 발생한다. 현존하는 체제는 이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게 되고, 결국 전통과 특정 이해관계가 복합된 기존 시스템은 새로운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기술 용어로는 이를 ‘강제된 업그레이드(forced upgrade)’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의 성장은 혁신도 배가(倍加)하고 있다. 한국은 이 원칙을 확인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곳이다. 개방적이고 글로벌한 국가와 기업은 폐쇄적이고 일국 차원에 머무르는 국가와 기업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스마트폰 열풍을 통해 한국인 엔지니어들은 글로벌 기술 스탠더드를 겸비하게 됐다.

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와 함께 구글은 한국 스타트업 회사들이 글로벌한 잠재력을 실현하도록 도움을 주고자 ‘글로벌 K-스타트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30개 팀 가운데 13개 팀은 이미 회사를 차렸다. 그중 6개 팀은 상용화된 서비스를 시작하였고 나머지 6개 팀은 150만 달러(약 16억8000만 원)에 달하는 투자를 받았다. ‘아이클리닉(iClinic)’이라는 유료앱(499달러)은 의료산업에 종사하는 사용자 200여 명이 구매했다. 이 앱은 올해 5월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10만 달러에 이르는 수익을 내고 있다. 학생 대상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클래스팅(Classting)’은 약 2개월 만에 5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이런 몇 가지 사례에서 보듯 한국은 자국의 혁신을 글로벌한 단계로 이끌 준비가 돼 있다. 스크린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미래의 아이들이 지식, 경이로움 그리고 문화가 공존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세대이길 바란다.

모든 것이 네트워크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미래는 그렇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은 더욱 효율적으로 진보할 것이다. 알람시계가 사라지고 시끄러운 소리 대신 목소리로 된 힌트나 음악소리가 우리를 깨운다. 집은 수면 사이클에 맞춰 최적의 시간에 자동으로 커튼을 걷고 잠을 깨운다. 무인자동차는 사고를 줄여 주고 우리에겐 통근 및 통학 때 더 많은 개인 시간이 생긴다. 직장에 가면서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상상을 해보라. 오늘날 네트워크와 데이터의 능력을 보면 이런 미래는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기술 분야에서 앞서가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많은 젊은 친구들이 궁금해하는 것 같다.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듯 답은 간단하다. 현재 하고 있는 일들을 계속 열심히 하면 된다. 더 많이 공유하고, 더 많이 배우고, 세상을 향해 자신을 더 활짝 여는 것이다. 어떤 연세대 학생은 버스 운행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앱을 만들어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을 단축시켰다. 이것이 바로 삶의 모든 측면을 연결하고 향상시키는 인터넷을 활용한 다음 세대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출발점이다.

내 세대는 이러한 미래 세대를 위해 플랫폼을 최대한 넓고 개방적으로 구축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것은 교육, 과학, 기술의 전 영역에서 큰 파급 효과를 낳는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제 저주가 아닌 축복이며 이를 통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얻은 혜택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기도 하다.


:: 에릭 슈밋 회장은 누구 ::


2001년 막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신생 벤처기업 구글은 최고경영자(CEO)를 물색하고 있었다. 투자자들이 30대의 젊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대신 회사를 맡아줄 경험 있는 전문경영인을 원했기 때문이다.

페이지와 브린은 처음에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만이 구글 CEO를 맡을 수 있다고 우겼지만 잡스가 애플을 떠날 리가 없었다. 그때 에릭 슈밋과 만났다. 소프트웨어 업체 노벨과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등을 거친 슈밋은 창업자들보다 나이가 열여덟 살 많았지만 페이지와 브린 못지않게 컴퓨터에 정통해 환영을 받았다.

이후 슈밋이 이끄는 구글은 작은 벤처기업에서 직원 5만 명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기간 슈밋은 ‘삼두정치’, 즉 운영은 자신이 맡고 페이지와 브린은 제품 개발과 미래 전략에 몰두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창업자 브린은 이때를 회상하며 “‘어른’의 감시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슈밋은 2011년 1월 10년 만에 CEO 자리를 페이지에게 내주고 대외활동을 전담하는 회장직을 맡았다. 그는 퇴임사에서 “구글은 더이상 어른의 감독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에릭 슈밋 구글 회장



http://news.donga.com/3/all/20120928/497367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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