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23. 00:54

디자인이란 삶의 방식
'빈자·부자 모두 품위있는 생활'… 핀란드 디자인정신 보여주려 북유럽디자인체험관 짓는 중

한국과 다른 핀란드의 일상
마을마다 주민참여 문화프로그램… 아파트 모든 평수 있어야 건축허가… 3주씩 휴가… 여가엔 문화체험

핀란드 디자인의 특징
자연 중시하고 재활용… 단순하게 만들어 오래 안 질리게… 동네 구석구석 개성적 공예품

핀란드서 한국문화 소개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때 저 모습이 한국으로 비칠까 걱정… 5년 준비끝 '한국 가정' 특별전


<핀란드 디자인 산책> <북유럽 디자인>이라는 책을 낸 안애경(46 소노안 대표)씨는 핀란드와 한국에서 절반씩 살면서 핀란드에는 한국문화를, 한국에는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문화를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2007년에 핀란드국립박물관이 전관을 통틀어 한해 내내 열었던 '한국의 가정-삶의 방식 특별전'(Korealainen Koti)이 그의 기획이고 한국에서는 올 3월 중순부터 한달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핀란드 디자인전'을 열었다. 

그는 요즘 서울 성북구 성북동 공원녹지에 있는 무허가 폐가를 살려 북유럽디자인체험관을 짓는 일을 하고 있다. 성북구가 건설은 지원하지만 그가 무보수로 설계를 지휘하고 내용물까지 채워 북구의 디자인 정신을 널리 알리고 체험하는 학습장으로 쓰게 된다. 크리스마스 무렵 완공할 예정이다. 2008공공디자인엑스포 아트디렉터를 맡아 직접 설계한 북유럽주제관으로 보여준 감동을 한국의 일상에 녹여내는 작업인 셈이다. 그는 "모든 디자인은 공공디자인이다. 공공디자인이 따로, 행사로 존재하는 한국은 문제있다"고 지적한다. 

_왜 이런 곳을 짓게 됐어요?

"북유럽 디자인, 노르딕 디자인하면 사람들이 어떤 외형을 생각해요. 그런데 디자인이란 삶의 방식이고 철학이고 교육이거든요. 일상에 다 녹아 있어야 해요. 그걸 보여주려면 체험이 중요하니까요."

_구체적으로 뭐를 체험하게 한다는 말이에요?

"북유럽의 품위있는 일상생활 그 자체요. 핀란드에서는 어떤 공공시설에서도 식판에 밥을 먹지 않아요. 접시, 그것도 플라스틱이 아니라 자기로 된 접시가 나와요. 학교에서 급식할 때도 유치원에서도 아주 어린 아이들도 그걸 써요. 깨지면 어떡하냐, 그러니까 조심조심 다루는 걸 익히는 거지요. 집에서도 그래요.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누구나 품위있는 생활을 누리게 하자는 게 핀란드 디자인 정신이에요. 공공 영역에서는 더욱더. 또 하나는 시민 누구나 공예품을 구상하고 만드는 걸 가르치려고요. 핀란드에는 지역마다 디자인예술센터가 있어서 언제든 공예를 배울 수 있거든요."

_한국에서는 뭐가 다른가요?

"너무 차이가 많이 나서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한국에는 지역마다 대형 문화시설은 많아도 정작 주민들이 참여하는 문화프로그램은 별로 없어요. 핀란드의 디자인예술센터에 가면 노인들이 옛날 방식으로 러그를 짜는 걸 어린이들이 와서 보면서 배우거든요. 전통은 전통대로 살아나고 어려서부터 직접 만들어봤기 때문에 기능적으로도 아주 훌륭한 걸 만들게 되지요. 핀란드에서는 디자이너가 모양만 그리고 예술가라고 거드름 피우는 일은 없어요. 정말 막노동자처럼 직접 만드는 작업도 해요. 그러니까 자기가 써봐서 진짜 편한 물건을 아름답게 만드는 게 가능한 거지요. 핀란드는 아파트도 모든 평수의 형태가 들어가야 건축허가가 나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게 만들어요. 그런데도 대문은 똑같은 모양이라서 겉으로 봐서는 크기가 다른지 몰라요. 저는 정말 작은 집에 사는데 사우나까지 있어요. 좁은 집에는 빨래를 널리 힘드니까 지하의 공용공간에 빨래를 널게 설계가 되어 있어요. 돈이 많거나 적거나 쾌적한 삶을 보장하는 거지요. 그런데 한국은 큰 평수의 아파트, 호화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가 완전히 구분되게 지어지고 그 때문에 엄청난 차별을 하게 만들잖아요. 20세기 초 핀란드에 전기나 수도가 보급될 때 가정 먼저 전기 수도가 설치된 게 노동자 아파트였어요."

_약자 우선인건가요?

"아니요. 누가 우선이다 그런 게 없어요. 모두가 평등해요. 노동자들이 일을 잘하려면 쾌적하게 지내야 하니까 거기부터 대접을 해주는 거지요. 한국에서 이해하기 쉽게 노동자라고 말을 하는 거지 핀란드에서는 이런 말도 안 해요. 그냥 이웃이에요. 우리는 뭐든 따로 취급, 따로 대접하잖아요. 핀란드의 이딸라라는 유리공장은 여름철이면 3주간 공장을 닫아요. 전 직원이 다 휴가를 가는 거예요. 미술관도 콘서트홀도 문을 닫고 예술가도 일하는 사람도 휴가를 즐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나라 사람들은 여유시간이 있고 여유시간에는 동네 디자인예술센터에 가서 뭘 배우고 배도 깎고 그림도 그리고 그게 발전해서 축제도 자발적으로 열리고요. 한국은 축제라 하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억지로 행사를 한다고 돈을 써서 만들어주는 거잖아요."

_그래도 디자인이라는 말을 쓸 때는 외형적인 어떤 특징도 있겠지요.

"자연을 중시하고 재활용을 한다는 점? 우리는 어디를 완전히 깎아내고 뭘 새로 짓는데 핀란드는 길을 만들 때 나무 한 그루가 있으면 그걸 베지 않고 피해서 가요. (서울) 광화문광장이 완성된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어, 나무는 어디로 간 거지? 철마다 꽃을 갈아줘야 하는 잔디밭? 그늘이 없는 광장? 분수에서 아이들이 물장난을 하고 뛰어 놀던데 엄마들이 다 옆에서 지키고 있어요. 왜 그러겠어요? 놀이터는 안전한 곳에 있어야 하잖아요. 길 한복판에 놀이터를 만들면 그걸 만든 사람은 거기서 놀고 싶겠어요? 자기가 놀고 싶지 않은 공간을 왜 만드는 거에요? 보도는 전부 시멘트로 덮여 있고 산에는 데크까지 깔려 있어요. 물건을 만들 때는 매우 단순하게 만들어서 오래 써도 질리지 않게 해요. 물건 하나하나를 귀하게 만드니까 가격이 싼 건 아니에요. 하지만 새 걸 자꾸 사고 바꾸는 게 아니라 대를 물려 쓰니까 비싼 게 아닌 게 되는 거지요. 사람이든 물건이든 귀하게 만들고 귀하게 써요. 핀란드에서는 아직도 딸기가 우리 옛날 시골딸기처럼 작고 시큼해요. 그런데 이게 여름 한철만 나오는데 비싼데도 금방 팔려요. 그 자연의 맛을 1년 내내 기억하면서 귀하게 여기는 거지요. 한국에 와서 놀란 게 마트에서 덤을 준다고 사람들이 필요가 없는데도 그 물건을 사요. 핀란드에서는 그런 건 사기라고 금지돼 있어요. 인기 있다고 다른 물건을 베끼는 것? 부끄럽게 여겨요. 유럽 어디나 똑같은 공산품이 지배하지만 핀란드는 동네 구석구석마다 마을 사람들이 만든 개성적인 공예품이 있어요."

_무엇이 핀란드를 이렇게 남다르게 만든 걸까요?

"결국에는 교육 같아요. 우리나라 교육관계자 분들이 핀란드에 와서 수업참관을 했어요. 핀란드 선생님들은 교재나 시험지를 나눠줄 때 애들한테 일일이 한장씩 나눠줘요. 그랬더니 우리나라 분들이 물어요. 왜 저런 걸로 시간낭비를 하냐, 그 시간에 한 자라도 더 가르치지. 교사가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나눠주면서 아이들과 눈을 맞추는 거잖아요.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관심을 쏟는 게 교육이잖아요. 그런 학교에 왕따가 있겠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건 안하고 왕따 문제를 해결한다고 또 따로 뭘해요. 핀란드의 판화가인 오우띠 헤이스까넨이 한국에는 미술교과서가 있다니까 그거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같이 하러 가자고 해요. 그 나라 관념으로는 미술을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교과서가 있다는 게 믿을 수가 없는 거지.(웃음) 우리는 남의 그림 베끼는 데생이 미술을 평가하는 척도니까 미술을 잘한다, 못한다가 있잖아요. 미술은 창의성이고 개성인데 못한다는 게 있을 수 없잖아요."

_체육과목에 필기시험까지 있는 거 알면 기절하겠어요.(웃음)

"햇볕 좋은 날 숲 걸어다니는 것, 그런 게 체육수업이에요. 선생님 재량인 거지요. 그렇게 학교에서 지지고 볶고 놀고 집에 와서 또 놀고. 그게 세계 교육 1위인 핀란드 교육이에요." 

_한국도 바꾸려면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까요?

" 디자인은 다 공공디자인이에요. 도시 전체를 쾌적하게 기획하는 것이자 우리가 쓰는 일상용품을 멋지고 편리하게 쓰는 게 디자인이에요. 북유럽 생활용품으로 전시회를 하자니까 어떤 미술관장이 그래요. 백화점에서 파는 데 무슨 디자인이냐고. 디자인이 쓰임새를 중시해서 발전해온 것이 다르니까 상업성 기능성이 있지만 아름다움에서는 아트와 다를 바 없다는 걸 모르는 거지요. 그리고 디자이너라면 양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핀란드가 저렇게 된 것이 디자인은 민주주의다, 모두에게 가장 좋은 삶을 제공한다는 철학을 건축가 알바 알토를 비롯해 모든 디자이너들이 상식으로 믿고 지켰기 때문이거든요. 한국에서는 너무 많은 디자인 프로젝트들이 있어서 돈이 흘러다니지만 정작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쓰이는지는 모르겠어요. 2008공공디자인엑스포 아트디렉터 제안을 받았을 때도 의아했어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의 공공디자인을 모아서 실내에 전시하는 데 그 돈을 쓸 게 아니라 실제로 거리에 대중을 위한 시설물을 만드는 게 낫잖아요. 우리나라는 큰 건물 짓고 간판 바꾸는 게 디자인인 줄 알아요."

_핀란드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어요?

"원래 전공은 회화였는데 이것 저것 다 하니까 한 우물만 파라고 하고 한국에서는 사회적응이 잘 안됐어요. 94년 여름에 젊은 예술가 교환프로그램을 신청해서 핀란드에 갔어요. 이바스퀼라라는 작은 도시의 디자인예술센터에서 새로운 재료를 실험하는 역할을 했는데 모든 예술적 시도를 다 반겨주더라고요. 1년만에 돌아오니까 거기가 더 고향 같아서 장기체류를 신청하게 됐어요. 장기체류 면접을 경찰관이 하는데 취조하듯이 하지 않고 요즘 어떻게 지내니, 뭘 좋아하니, 이런 걸 친구처럼 묻는 게 참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가던 해에 성수대교가 무너지고(94년 10월) 이듬해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95년 6월) 저 모습이 한국으로 비치는가, 내가 한국인으로 한국을 알리는 일에 나서야겠다고 해서 2002년부터 5년간 준비한 끝에 핀란드국립박물관에서 '한국 가정'특별전을 열게 됐어요. 처음에는 인도전 할 때 한 귀퉁이, 중국전 할 때 한 귀퉁이를 내준다고 했는데 제가 자존심 상해서 안 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한국에 와서 온갖 자료를 다 모았고 핀란드국립박물관장을 2006년에는 핀란드 기금으로 한국에 오게 했지요. 한국이 돈 내서 그런 분들 모셔오는 건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말하면 우리(한국) 쪽에서는 돈 걱정부터 해요. 이상한 사람들 초청하는 데 쓸데없이 돈을 많이 써왔으니까. 우리 스스로 자부심이 없는 거지요. 우리 문화에는 그들에게 없는 게 있잖아요. 그 분들 전국을 다니면서 동네 김치찌개 된장찌개 먹게 했는데 너무 좋아했어요. 어디 가서 이런 경험을 하겠어요? 한국문화를 알고 나니까 한국으로 전관 전시를 받아들였어요."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08/h20120826211721123700.htm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