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22. 14:28

싸이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모습을 보면서 3년 전 만난 국제기구의 교육 담당 박사가 문득 떠올랐다. 북유럽 출신으로 유아 교육을 20년 가까이 연구한 전문가였다.

그는 수십 개 국가를 찾았지만 한국 방문을 앞두고는 유독 마음이 설렜다고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한국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다른 선진국보다 눈에 띄게 높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비결을 찾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동했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몇 곳을 돌아본 결과 이유를 알 것 같다고 했다. 학습 능력에 대한 기대와 요구 수준이 굉장히 높다는 진단이었다. 다른 나라보다 아이들이 읽기와 셈하기를 배우는 진도가 빠르다고 평했다. 그는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열정이 높더라. 교사도 학생에게 가르친 내용을 일일이 테스트하고 엄격하게 순위를 매기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여기까지가 공식적인 인터뷰였다. 외국의 교육 전문가를 만날 때마다 드는, 뭔가 개운치 않은 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정작 한국에서는 교육에 문제가 많다고 하는데….

인터뷰를 마치고 차를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때였다. 그가 목소리를 낮추더니 좀 이상한 점이 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며 넌지시 물었다. “왜 한국에서는 공부가 탤런트가 아니냐?”

처음엔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뜻인지 몇 번이나 확인하고 난 뒤 머리가 멍해졌다. 공부를 잘하는 능력은 타고난 재능이나 소질(talent) 중 하나인데, 한국인은 공부를 기본 능력처럼 여긴다는 말이었다. 모든 사람이 노래를 잘하고 축구를 잘하지 않는데, 왜 유독 공부는 누구나 잘해야 하느냐는 지적. 교육 기자를 5년째 하면서 받은 질문 중 가장 뜻밖의 물음표였다.

그는 다른 나라의 학교를 방문하면 △이 아이는 만들기를 잘한다 △저 아이는 수영을 잘한다 △저 학생은 유머러스하다고 소개한다고 전했다. 반면 한국 학교는 △수학 교과 우수 학교다 △우리는 서울 시내에서 학력이 몇 번째로 높다고 소개를 하더란다. 다른 나라 유치원에서는 골고루 먹는 습관, 친구와 잘 어울리는 능력을 가르치지만 한국 유치원에서는 복잡한 지능개발 교구, 원어민 교사의 수업 시간을 자랑하더라고 했다.

기자도 학창 시절 공부가 타고난 재능 중 하나라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아는 교사, 학부모 중 아이에게 그렇게 말해주는 이는 없다. 학생이라면 공부는 응당 잘해야 마땅했다. 설령 머리가 좋지 않더라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고들 믿었다.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그를 만난 뒤로 내 생각은 꽤 달라졌지만 안타깝게도 교육 현실은 그대로다. 공부 이외의 재능으로는 사회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낮은 ‘학교 이후의 세상’ 탓이 가장 클 게다. 그런 마당에 공부는 으레 잘해야 한다고 여기는 우리의 단선적인 인식을 바꾸긴 쉽지 않다.

음악에 소질이 있는 아이에게는 싸이의 길을, 운동에 자질이 있는 아이에게는 김연아의 길을, 공부에 재능이 있는 아이에게는 학업의 길을 터주자. 학생 개개인의 재능을 키워주는 게 국가 수준의 높은 학업 성취도보다 의미 있지 않을까.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부터 다시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foryou@donga.com


http://news.donga.com/Series/List_70040100000109/3/70040100000109/20120917/494578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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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2. 13:11

후지 코닥 아그파 코니카. 한때 세계 카메라필름 시장을 과점하던 4개사다.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으로 필름 수요가 없어지자 미국의 코닥과 벨기에의 아그파는 거의 파산했다. 반면 일본의 후지와 코니카는 생존에 성공했다. 트리아세틸셀룰로스(TAC)필름 쪽으로 눈을 돌린 덕분이다. TAC필름은 TV PC 휴대전화의 모니터에 쓰이는 액정표시장치(LCD)편광판을 보호하는 첨단소재. 국내에서는 효성이 2009년부터 생산하고 있지만 자급률 1∼2%이며, 나머지는 세계시장의 99%를 장악한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日 부품소재산업 여전히 세계 최강


폴리이미드(PI)필름은 섭씨 400도의 고온과 영하 269도의 극저온을 견딘다. 내화학성 내마모성도 뛰어나다. 인공위성, 발광다이오드(LED), 태양광, e북 등은 이게 있어야 만들 수 있다. SK가 2000년대 후반 독자개발한 덕에 국산화율 15%이며 나머지 85%는 일본 가네카사로부터 수입한다. 대규모집적회로(LSI) 등 미세하고 복잡한 회로 패턴의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되는 포토레지스트는 93%를 일본에 의존한다. 한국이 무역수지 흑자 기조를 굳힌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작년 286억 달러 적자다. 대일(對日) 적자의 70%가 이 같은 첨단 부품소재산업에서 나온다.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과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며 활력을 잃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신용평가회사 피치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AA―로 올려 일본(A+)을 앞질렀다. 일본으로서는 처음 겪는 굴욕이다. 동아일보가 경제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에서는 7명이 “한국의 1인당 소득이 20년 안에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우쭐한 기분이 들지만 그렇다고 한국 경제가 곧 일본을 추월할 것처럼 착각해선 안 된다. 국가신용등급이나 구매력기준(PPP) 소득 같은 걸로 ‘일본 추월’을 거론한다면 코미디다. 두 나라 경제를 비교하려면 경제의 ‘규모’(국내총생산·GDP)와 ‘질’(핵심산업지배력)을 봐야 한다. 중국이 ‘G2’라 불리는 것도 GDP에서 일본과 독일을 멀찍이 제쳤고, 기초과학기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GDP는 한국의 5배, 인구는 2.4배다.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며 외환보유액도 1조2700억 달러로 세계 2위다. 제조업 경쟁력, 특히 핵심기술부품 및 소재에서는 세계 최강이다. 일본은 ‘몸살 앓는 거인’이다.

일본의 신용등급이 떨어진 것에는 이유가 많지만 핵심은 정부 부채, 즉 국채다. 하지만 일본 국채 문제는 매우 독특하다. 국채의 대부분이 국내에서 엔화로 발행돼 ‘일본인이 일본인에게 진’ 빚이다. 국가 부도 위험이 전혀 없다는 뜻. 빚과 함께 원리금 청구권도 다음 세대로 승계된다. 따라서 미래의 어떤 시점에 납세자(대부분 중산층이다)가 국채 투자자(같은 계층이다)에게 갚으면 그만인 구조다. 

신용등급 올랐지만 곳곳에 지뢰밭


일본을 가벼이 볼 게 아니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국가부채 해결을 위해서는 세수 증대가 필요하고 소비세 인상이 유일한 대안이지만, 여야가 권력 다툼에만 매몰돼 유권자들이 싫어할 세금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일본 문제의 근본 원인은 정치의 마비, 국가 리더십의 실종에 있다.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구조 선진화가 지연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등급은 올라갔지만 한국 경제에 대한 도전이 만만찮다. 가계부채와 부동산 침체는 최대의 복병이다. 일자리, 양극화, 고령화, 노사, 기초기술 부족 등 난제가 산적하다. 국가부채는 GDP 대비 34%로 아직 건전하지만 빚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포퓰리즘 경쟁은 이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일본 경제상황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현주소를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http://news.donga.com/Series/List_70040100000105/3/70040100000105/20120920/495378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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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2. 12:40

게임에 빠져 학교에 안 가 유급을 하게 생겼다고, 어머니가 10대 아들을 입원시켰다. 컴퓨터를 못하게 하면 금단증상으로 괴로워하면서 난리를 칠 줄 알았는데 웬걸, 그냥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며칠이 지나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게임이 얼마나 재미있기에 학교도 가기 싫었느냐 물었다. 재미있어서 한 것은 아니었단다. 할 게 없어서 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수업시간이 재미없고, 학원에 가도 무슨 말을 하는지 쫓아가기 어려웠다. 공부를 해봤지만 성적이 생각만큼 오르지 않아 학원도 그만뒀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 오늘 학교 안 가”라고 큰 소리로 선언하고, 집에서 머물게 됐다.

자포자기 청소년들 게임에 몰두


게임의 중독성이 너무 강해 헤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니라, 현실이 재미없고 짜증나는 일만 있기에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게임을 선택한 것이다. 현상적으로는 게임중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속내를 보면 ‘현실 도피’ ‘현실 탈락’이었다. 사실 성실한 생활을 하는 10대들은 게임을 하고 싶어도 할 시간이 많지 않다. 친구들과 어울려 한두 시간을 하면 고작이고, 어쩌다가 주말에 서너 시간을 할 뿐이다. 이에 반해 많은 시간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들은 여러 이유로 생활이 잘 관리되지 않는 상황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제인 맥고니걸은 ‘누구나 게임을 한다’라는 책에서 게임세계는 현실세계와 달리 노력한 만큼 보상이 있는 공평함이 특징이며, 실패를 하더라도 다음 기회를 주기 때문에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한 규칙 안에서 긍정적 피드백을 받고 적당히 어려운 수준의 과제를 수행하면서 결국 해결해내리라는 낙관적 기대를 갖고 몰입하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암울하다. 나름 꽤 오래 노력을 하지만 만족할 만한 성취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일등만 아는 더러운 세상이고, 나머지는 열등이다. 내신 관리가 안되면 아무리 수능을 잘 봐도 소용이 없고, 한 번만 시험을 잘못 봐도 상위권 대학은 포기해야 한다. 무언가에 몰입할 때 사람은 살아 있다는 것을 최고로 느끼고 삶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몰입할 기회를 얻기보다 열등감과 좌절감을 느낄 일이 더 많았다.

아이를 이해하게 되면서 정작 필요한 것은 게임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게 하고 끊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즐길 수 있는 것,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을 찾게 하고 현실세계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새 그동안 몰매를 맞아온 게임에 미안해졌다. 조금 세게 말하면 길거리를 배회하며 술과 담배를 하고, 몰려다니면서 거리의 어두운 세계를 너무 빨리 접하느니 집에서 조용히 게임을 하고 있는 게 낫지 않나, 생각도 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나온 청소년 셧다운 제도는 득보다 실이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세계 복귀 위해 사회가 도와야


현실을 재미있게 느끼도록 만들고, 현실에서 튕겨나가게 만든 문제를 찾아내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게임이란 부풀어 오른 풍선의 튀어나온 한 부분일 뿐이다. 무작정 게임을 못하게 위에서 누르면 풍선의 다른 곳이 튀어나올 뿐이다. 부푼 풍선의 바람을 빼는 일부터 해야 한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그렇게 10대를 보낸 이들이 20, 30대가 되었다. 청년실업과 사회적 좌절에 몰린 일부 청년에게는 현실과 게임 사이의 간극이 훨씬 커진 상태다. 그러니 작은 고시원과 PC방에서 현실과 담을 쌓은 채 게임 안에 머물러 있다. 조용히 침잠해 있는 이들이 언제 돌변해 ‘묻지마 폭력’으로 방향 전환을 할지 모른다. ‘잠시 정지’에 머물러 있는 삶이라는 게임을 현실세계에서 조속히 재개하도록 할 사회적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http://news.donga.com/Series/List_70040100000018/3/70040100000018/20120904/490928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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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2. 12:15

꿀처럼 맛이 달고 삼복(三伏) 무더위에 먹는다고 삼복꿀수박이 아니다. 이 품종을 만든 흥농종묘는 수박 재배 농민과 판매상, 소비자에게 모두 복이 온다는 뜻으로 ‘삼복(三福)’이라고 이름 붙였다. 하지만 삼복꿀수박의 운명은 복스럽지 못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흥농종묘 서울종묘 중앙종묘 청원종묘 등 국내 1∼4위 종자업체가 모두 해외 다국적기업에 매각됐다. 삼복꿀수박 불암배추 청양고추 관동무 같은 우리 종자를 우리 땅에 심으면서 로열티를 내야 했다. ‘종자 식민지’ 시대가 됐다.

▷세계 종자시장에서 몬산토를 비롯한 10대 다국적기업의 점유율은 70%를 차지한다. 곡물 종자는 유전자 변형 기술을 앞세운 미국, 시설원예 종자는 선택과 집중이 뛰어난 네덜란드가 선두주자다. 갖가지 토질과 혹독한 자연조건을 견뎌 낼 수 있는 신품종 개발과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연간 90조 원대의 종자시장에서 지배력을 키워 간다. 올해부터 국제식물신품종보호연맹(UPOV)의 의무를 수행하는 한국은 앞으로 10년간 8000억 원의 로열티를 지불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산 정약용이 펴낸 속담집 ‘이담속찬(耳談續纂)’에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는 말이 있다. 당장 배를 곯더라도 수확한 열매 가운데 가장 잘 여문 것을 종자로 남긴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강수량이 많고 화강암 토질이 많은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식물이 분포한다. 종자 자원의 보고(寶庫)가 될 잠재력을 지녔으나 국가 차원의 보호 노력이 소홀했다. 근대 이후 외국인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밀 벼 콩 수목 화훼 할 것 없이 수많은 종자가 유출됐다. 콩의 원산지라는 한국의 콩 자급률이 5%에 불과한 것은 아이러니다. 

▷동부그룹이 흥농종묘와 중앙종묘를 사들였던 몬산토코리아를 인수했다. 배추 무 양파 수박 등의 종자 사업권을 넘겨받았다. 고추 토마토 파프리카 등은 못 가져왔다. 맵싸한 청양고추를 적진(敵陣)에 두고 온 건 속 쓰리지만 14년 만에 부분적이나마 ‘종자 주권’을 회복했다. 정부가 종자산업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하려고 추진 중인 프로젝트의 이름이 ‘골든 시드(Golden Seed)’다. 정확한 표현이다. 우량 토마토나 파프리카 종자의 국제 가격은 같은 무게 금값의 2배 수준이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씨앗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


http://news.donga.com/Series/List_70040100000002/3/70040100000002/20120915/49427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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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2. 12:12

19세기 자동차가 등장하자 영국의 마차 제조업자들은 정부에 자동차 규제를 요구했다. “도로를 망친다” “말이 놀라 마차 운행이 위험하다”는 주장이 먹혀들어 1865년 적기(赤旗)조례(Red Flag Act)가 탄생했다. 적기조례란 빨간 깃발을 든 사람이 적어도 자동차 55m 전방에서 말을 타거나 걸으면서 통행인에게 경고해야 한다는 법령. 자동차 1대에 3명의 승무원이 있을 것, 마차보다 빠르지 않도록 최고속도를 시속 6.4km로, 시가지에서는 3.2km로 할 것 같은 규제도 덧붙였다. 이런 식의 대응으로 마차는 수명을 좀 연장했지만 결국 다 망했다.

▷2001년 7월 정부는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 등의 셔틀버스 운행을 금지했다. 이 조치 후에도 고객들은 시내버스를 타고 재래시장에 가지 않았다. 대신 승용차를 끌고 대형마트에 갔다. 이제 한꺼번에 많은 상품을 운반할 수 있게 되자 손님당 구입액(객단가·客單價)이 23∼29% 늘어났다. 고객 차량도 1.8∼2배로 늘어나 마트 주변 교통이 크게 혼잡해졌다. 반면 마트 소속 셔틀버스 운전사 3000여 명은 일자리를 잃었다. 

▷지식경제부의 용역조사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들이 대형마트를 상대로 월 2회 휴일을 강제했지만 휴일에 전통시장 매출이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일부 전통시장은 대형마트 휴일에 매출이 오히려 줄었다. ‘대형마트 영업을 제한하면 전통시장을 되살릴 수 있다’는 지자체의 예상이 잘 안 맞는 것 같다. 한편 AC닐슨의 이번 조사와 달리 최근 서울시 조사에선 대형마트 규제 이후 전통시장 상인 36.5%가 매출이 증가했다고 답했다. 혼란스럽다. 용역업체들이 돈을 주는 기관의 의도에 맞추어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대형마트가 전통시장 상인들에게 위협적인 것은 소비자에게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다양한 구색으로 제공하는 까닭이다. 유통혁신을 막으면 손해는 소비자가 본다. 대형마트 휴일 강제를 월 2회에서 4회까지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 개정안이 국회에 14건이나 발의돼 있다. 이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대형마트 규제만으론 전통시장이 살아나기 어렵다.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의 진입을 늦출 수는 있지만 막을 수는 없다. 어떤 업종이든 상황 변화에 적응해 자기 변신을 해야 생존 가능하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http://news.donga.com/Series/List_70040100000002/3/70040100000002/20120913/493646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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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2. 12:09

혹한이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고 유빙이 떠다니는 북극은 1909년 미국의 로버트 피어리가 걸어서 북극점을 밟기 전까지만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경지였다. 쉰셋의 피어리는 북극점을 정복한 감격에 겨워 “정복됨을 슬퍼하지 말라. 북극점이여, 나와 함께 눈물을 흘려다오”라고 외쳤다. 한국 원정대도 1991년 세계에서 11번째로 북극점을 밟았다. 

▷북극은 북극해를 포함한 북위 66.56도 이북 지역을 말한다. 면적은 지구 표면의 약 6%에 해당하는 2100만 km²에 이른다. 북위 90도의 북극점을 중심으로 약 1400만 km²의 얼음바다인 북극해가 펼쳐져 있다. 동토(凍土)와 얼음바다뿐인 북극은 접근이 어려워 과학연구나 탐험 목적 외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가 북극의 운명을 바꿨다. 얼음이 녹으면서 개발비용이 뚝 떨어졌다. 북극은 탐험 시대에서 개발 시대로 접어들었다. 광대한 시베리아를 거느린 러시아, 알래스카의 미국, 캐나다, 그린란드가 북극 해빙(解氷)의 최대 수혜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북극지역에 전 세계 미(未)발견 석유와 가스의 22%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2009년 덴마크에서 분리돼 자치정부를 수립한 그린란드는 국토의 80% 이상이 빙하로 덮여 있지만 최근 남서부 지역에서 농사를 지을 정도로 따뜻해졌다. 이곳에는 석유 외에도 세계 수요의 25%를 충당할 희토류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극해의 얼음이 사라지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새로운 바닷길도 열린다. 북극 항로는 기존 인도양 항로보다 40%나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러시아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극해 인접 5개국은 2008년 그린란드 일룰리사트에서 북극해의 권리를 자신들이 보유한다고 선언했다. 일본 영국 중국도 북극 자원개발에 나섰다.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그린란드를 공식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9일 “그린란드의 ‘그린(녹색)’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경제개발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자원개발의 물꼬를 텄다.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협력대사를 지낸 신재현 변호사는 “지난해 그린란드를 방문했는데 선진국은 물론이고 말레이시아 에너지기업까지 진출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한국 기업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뜻한 북극은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http://news.donga.com/Series/List_70040100000002/3/70040100000002/20120911/492948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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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2. 12:04

‘아이돌걸스’ ‘오케이뱅’ ‘캔디마피아’.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 아이돌 그룹을 벤치마킹한 다른 나라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다. 아이돌걸스는 ‘소녀시대’와 똑같은 옷을 입고 나오는 여성 9명으로 이뤄진 중국의 걸그룹이다. 오케이뱅은 이름부터 ‘빅뱅’을 어설프게 흉내 낸 티를 내는 중국의 보이그룹이다. 캔디마피아는 태국의 걸그룹으로, ‘2NE1’의 헤어스타일과 의상 그대로 무대에 선다. 아시아 각국에서 최근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을 본뜬 ‘짝퉁 아이돌’이 등장해 한류에 영향을 줄까 우려된다고 한다.

▷20여 년 전만 해도 우리가 아이돌걸스나 오케이뱅의 처지였다. 주로 일본 것을 모방했다. 1987년 데뷔한 남성 3인조 댄스그룹 소방차는 역시 남성 3명으로 구성된 일본 댄스그룹 ‘쇼넨타이(少年隊)’를 따라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일본 록그룹 ‘X-저팬’의 노래를 우리 가수나 그룹 서너 명(팀)이 동시에 베껴 불렀다. 자신의 노래가 일본 그룹 ‘튜브’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걸 알게 된 배우 김민종이 가수생활 중단을 선언한 게 불과 16년 전이다.

▷1980년대 중반 현대자동차 엑셀이 미국에서 잘 팔려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미국 CNN의 뉴스 앵커는 ‘Hyundai’를 ‘현다이’라고 발음했다. ‘현대’보다는 ‘혼다’에 가깝게 들렸다. 일본차의 아류 정도로 인식됐다. 소니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인 워크맨과 삼성전자가 만든 마이마이를 비교하면서 ‘어휴, 언제 워크맨 같은 걸 우리가 만드나’ 하고 한숨지었던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물론 이제 미국인들은 현대를 ‘현대’라고 발음하고 삼성전자는 애플의 강력한 견제를 받는다. 

▷지금이야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과거에는 미래에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상상하기 어려웠다. 기존 사고방식으로는 발생할 확률이 아주 낮기 때문에 벌어지고 나면 엄청난 놀라움과 파급효과를 불러오는 사건을 ‘X-이벤트’라고 한다. 9·11테러나 후쿠시마 원전사태 등이 대표적인 예지만 우리 가요를 전 세계인이 부르고, 삼성전자가 소니를 앞서며 현대자동차가 혼다를 제친 일은 우리에게 X-이벤트다. 3대 국제신용평가기관인 피치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일본보다 높게 매긴 일도 마찬가지다. 이런 X-이벤트가 한국 정치에서도 벌어진다면 나쁘지 않겠다.



민동용 주말섹션 O₂팀 기자 mindy@donga.com


http://news.donga.com/Series/List_70040100000002/3/70040100000002/20120910/49261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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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2. 12:02

국내에서 진행되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재판에서 삼성의 소송대리인은 법무법인 광장, 애플의 대리인은 김앤장 법률사무소다. 김앤장은 규모 전문성 등 여러 면에서 국내 변호사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로 꼽힌다. 특허 업무를 담당하는 변리사만 150명 안팎을 거느리고 있다. 올해 4월에는 세계적 법률전문지 ‘글로벌 아비트레이션 리뷰’가 선정한 아시아 지역 1위 로펌으로 뽑혔다.
▷국내 재판에서 애플이 한국인 변호사를 고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외국의 법률회사는 한국 법정에서 소송 대리를 하는 일이 금지돼 있다. 2017년 송무(訟務) 시장이 개방된 후에도 국내법 체계를 잘 모르고 한국어도 서툰 외국인 변호사는 한국인 변호사의 보조 인력이 될 수밖에 없다. 같은 이유로 삼성-애플의 미국 재판에서 삼성은 미국의 최고 법률회사인 퀸 이매뉴얼 어쿼트 앤드 설리번에 소송을 맡겼다.

▷김앤장이 애플의 소송대리인이 된 것에 대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하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론도 곱지 않다. 하지만 한국의 법률회사가 외국 기업에 제대로 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한국이 대외적 신뢰를 얻는 길이다. 국내 로펌들은 이런 경험을 더 쌓아야 한다. 여론 눈치를 보느라 한국 변호사들이 소송 대리를 기피한다면 외국 기업은 ‘한국에서 소송으로 가면 필패(必敗)’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외국 기업들을 내쫓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재판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가재는 게 편’ 식의 판결이 속 시원할지 모르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한국 법원이 객관적으로 판결하는 쪽이 국익에 보탬이 된다. 삼성-애플 소송에서 미국에선 실리콘밸리 주민들이 배심원이었지만 한국 법원의 재판장은 지식재산권 국제 소송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딴 판사였다. 판결 내용도 훨씬 전문적 객관적이었다. 

▷이 같은 논의는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논리와 아주 닮았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클로드 바스티아는 “상대가 보호무역을 하기 때문에 우리도 보호주의로 보복하겠다는 것은 상대국이 암벽 해안이기 때문에 우리도 멀쩡한 항구를 파괴하겠다는 말과 같다”고 설명했다. 사실 경제학도들이 이 말의 이론적 타당성을 증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홍콩 싱가포르는 ‘상대의 태도와 무관하게’ 자유무역을 견지하는 전략으로 성공했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http://news.donga.com/Series/List_70040100000002/3/70040100000002/20120907/491853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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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2. 11:52

사흘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을 들으면서도 내 마음은 줄곧 달 위에 인류의 첫걸음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에 머물렀다. 그의 죽음은 특히 이번 선거와 겹치면서 큰 여운을 남겼다. 암스트롱을 달에 보낸 당시의 미국은 위대하고 감동적인 여정을 시작한 국가였다. 과학 컴퓨터공학 물리학의 돌파구를 마련해 미국을, 나아가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어떤 여정에 있나. 예산 균형을 맞추는 일? 건강보험을 확대하는 길? 이들도 필수적인 도구이지만 어디로 가기 위한 건강이고 무엇을 위한 균형이라는 것인가.

공화당의 답을 듣기 위해 공화당 전당대회를 찾았다. 무엇보다 밋 롬니 대선후보의 새로운 구상을 기대했지만 내가 얻은 것은 허름한 티셔츠 한 장이 전부였다. 롬니 후보와 공화당의 정치적 기반에는 별다른 유기적 연관성이 없다. 롬니 후보는 당의 힘을 빌려 대통령 당선의 꿈을 이루려 하고, 당은 롬니 후보를 활용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제거하려고 한다.

그의 부인 앤은 남편이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 연설했다. 하지만 무엇에 대한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실수가 아니었다. 폴 라이언 부통령 후보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거짓말이라도 할 사람이다. 라이언은 오바마 대통령이 고용과 적자 문제를 책임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런 큰 구멍을 만든 부시 행정부의 책임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롬니 후보는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혹평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외교정책은 언급하지 않았다. 연설자 대부분은 이민자라는 가족 배경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하지만 공화당이야말로 이민법 개혁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정당이다. 부끄러움 없는 위선의 경쟁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거짓을 바탕으로 연설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전하는 진실도 매우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새로운 여정을 얘기하지도 않는다. 이번 선거는 두 후보 모두 “나는 그저 밋 롬니가 아닐 뿐이에요”라는 구호로 경쟁하는 선거인 셈이다.

기업 철학자 겸 LRN의 최고경영자인 도브 사이드먼은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달 탐사 구상을 발표할 때 10년 안에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며 “이 강력하고 거대한 비전은 대통령이 죽은 뒤에도 계속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뒤로 자신의 임기 이후를 내다보는 감동적인 비전을 내놓은 정치인은 없었다. 사이드먼은 이번 선거를 두고 “경합주 유권자를 빼내려는 데 열성적이지만 그 누구도 우리 모두를 하나의 국민으로 고취해 도전적인 여정을 만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런 여정은 단순한 연설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모을 전략을 세우고 이를 수행할 법규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어떤 목표가 그런 여정에 부합할까. 달에는 이미 인간을 보냈다. 10년 안에 모든 미국인이 고등교육, 즉 직업학교 전문대학 4년제 대학 등의 교육을 받도록 하면 어떨까.

또는 세계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발사대’로 미국을 바꾸면 어떨까. 10년 안에 미국에서 창업하는 기업을 현재의 50만 개에서 100만 개로 늘리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이를 위해 이민법을 개정하고 과학연구에 새로 투자하고 인프라를 다시 구축해보면 어떨까.

롬니 후보는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예외론’을 내세우지 않았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위대한 국가를 보통 수준의 국가로 만들 뿐이다. 위대한 여정은 포기하고 예외론만 제창하는 꼴이다. 만약 이번 선거가 두 정당이나 두 후보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닌, 예외적인 비전의 여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http://news.donga.com/Series/List_70040100000051/3/70040100000051/20120904/490928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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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16. 18:07

시련을 이겨낸 100년을 지나… 새 100년을 이끄는 힘"한국인이 자랑스러워요" 88올림픽 전후로 탄생 글로벌 경쟁력으로 무장 맑고 밝고 낙관적인 세대'경술국치' 100년만에 "우린 뭐든지 할 수있다" 긍정의 힘으로 변화 주도자신감 충만한 G세대, '한국사회 신뢰도'를 처음으로 긍정 평가금기·좌절없이 커온 차세대 20대(代) 초반 사회 첫 발걸음 "한국국력 어느 정도냐"엔 20%가 "곧 세계5위권 진입"


하버드대 졸업생 이준석(25)씨는 2003년 서울과학고를 졸업한 뒤 대통령장학금을 받고 미국에 건너가 컴퓨터공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병역특례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에 근무하면서 3년째 자투리 시간을 쪼개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배나사)'이라는 봉사단체를 이끌고 있다. 국내외 명문대 재학생 300여명이 소외계층 중학생 200여명에게 공짜로 수학·과학 과외를 해주는 모임이다.그는 2007년 5월 서울과학고 동창생 10여명과 함께 배나사를 만들었다. 블로그 등을 통해 입소문 나면서 컬럼비아대·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국내외 대학 학생들이 "나도 시간을 내겠다"는 이메일과 인터넷 쪽지를 속속 보내왔다.이씨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골라 우리 또래에 알맞은 방식으로 해왔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자기 또래 젊은이들을 "걱정이 줄어든 세대, 하고 싶은 일이 많고 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춘 세대"라고 정의했다."우리 또래는 의식주 걱정 크게 없이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랐어요. 영어와 컴퓨터에 익숙하고 상상력과 창조력이 뛰어나요. 부모님 세대는 '고생 모르고 자라 시련에 약하다'고 걱정하시지만 안심하셔도 될 거예요. 한국의 미래요? 더 많이 발전하고, 위상도 높아질 겁니다. 우린 경쟁력 있어요.


"새로운 인간형이 출현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전후에 태어나 한국이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로 항진한 2000년대에 성장한 젊은이들이다. 이들이 한 해 63만~70만명씩 속속 성년에 접어들면서 지난 100년간 고단하게 전진해온 한국사회에 새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1910년 경술국치 후 한국은 망국의 폐허에 부강한 국가를 건설했다.그 결과 '경제대국 대한민국'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성장해 'G20 의장국 대한민국'에서 20대가 된 이들이 바로 'G세대 한국인'이다. 


지나간 100년(1910~2009년)이 망국을 극복하는 세월이었다면, 다가올 100년은 당당한 선진국으로 세계를 앞서나갈 세월이다. G세대는 집단적 가난을 체험하지 않은 첫 세대다. 압축성장 시대, 민주화 운동 시대를 몸으로 겪는 대신 교과서로 배웠다. 절반 이상이 20대 초반까지 최소한 한 번 이상 해외에 나갔고 수만명이 조기유학·단기연수 등을 통해 밀도 있게 글로벌 사회를 경험했다.  윗세대와 확연히 다른 G세대의 특징으로 전문가들은 '자신감'을 꼽았다. 연세대 생명공학과 정형일 교수는 "강대국에 대한 열등의식이 없고 어떤 분야에서든 앞서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했다.G세대의 또 다른 특징은 '한국사회에 대한 신뢰'다. 본지 특별취재팀은 한국리서치를 통해 전국의 만20~24세 남녀 505명에게 "우리 사회가 매우 믿을 수 없다면 1점, 매우 믿을 수 있다면 10점을 줄 경우 당신은 몇 점을 주겠는가"라고 물었다.고려대 이명진 교수가 2004년 386세대(1960~69년생), 탈냉전세대(1970~78년생), 월드컵세대(1979~85년생) 1000명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응답자들은 각각 4.1점(386세대), 4.4점(탈냉전세대), 4.7점(월드컵세대)을 매겼다. 어린 세대로 갈수록 한국사회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지만 전반적으로는 모든 세대가 부정적 평가에 머물렀다.이와 달리 G세대 응답자들은 한국사회에 5점을 줬다. 한국사회가 자기부정의 에너지를 동력 삼아 전진하는 사회에서 자기긍정의 에너지가 충만한 사회로 이행하고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준다.이 교수는 "집단적 빈곤과 독재를 경험한 베이비붐 세대·386세대와 달리 G세대는 전반적으로 룰(rule)이 확립된 사회에서 성장했다"며 "이들은 더이상 한국사회를 '부정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G세대의 긍정적인 국가관은 "지난 100년간의 역사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응답에서도 잘 나타났다. 응답자 다섯 명 중 세 명(60%·489명 중 303명)이 발전·성장·민주화·기적·불굴·전진·격동 등 한국 현대사의 성취와 변화에 주목하는 낱말을 골랐다. '빛 좋은 개살구' '절망' 등 부정적인 낱말을 택한 응답자(18.2%·92명)는 적었다."'한국인이라서 자랑스럽다'는 말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G세대 응답자 과반수(53.3%)가 '동의한다'고 했다. '그저 그렇다'는 사람은 36%,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람은 10.7%에 그쳤다. 한국이 자랑스러운 이유로는 ▲2002년 월드컵(78명) ▲스포츠 강국(39명) ▲국민의 단합(37명) ▲정감있는 국민(33명) ▲외국이 한국을 인정할 때(26명) ▲경제발전(25명) ▲IT강국(25명) 등을 꼽았다."한국을 부끄럽게 느낀 적이 있다면 언제 왜 그랬느냐"고 묻자 "한국인이 외국에서 예절과 공중도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봤을 때"(94명)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강대국에 불리하게 당할 때"라는 응답, 다시 말해 실제로 우리 국력이 약해 서러웠다는 응답은 32명에 그쳤다. 오히려 "한국이 약소국을 차별할 때"라는 응답, 요컨대 한국이 '강자의 도덕'을 지켜야 한다는 응답이 18명이나 됐다.


G세대의 자기긍정은 앞날에 대한 낙관으로 이어졌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했을 때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어느 정도에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G세대 응답자들은 20위권(40.4%), 30위권(19.8%), 10위권(18.6%) 순으로 대답했다. "같은 기준으로 따졌을 때 미래의 대한민국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있을 것으로 보느냐"고 묻자 10위권(36.3%), 5위권(19.8%), 20위권(17.6%) 순으로 대답했다.베이비붐 세대인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한경구(54) 교수는 "윗세대와 G세대 사이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며 "윗세대는 '지구는 넓고 외국은 멀다'고 느끼며 살아왔지만 G세대는 '지구는 좁고 외국은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과 윤정로(56) 교수는 "금기와 좌절이 많던 윗세대와 달리 G세대는 '뭘 못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어디서든 어떻게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했다.일본 NHK방송의 기무라 요이치로 특파원은 "G세대 한국인들은 어느 정도 부유한 나라가 된 한국만 경험했다"며 "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내가 한국인과 대화하는 것이 맞나' 싶을 때가 있다"고 했다. 그는 G세대를 보면서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태어난 일본의 '신인류'를 떠올린다고 했다. 그들도 패전의 기억 없이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만 알고 자랐다. G세대 한국인은 대한민국이 100년 걸려 키워낸 구김살 없는 차세대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다. 혹 그들도 일본의 신인류처럼 '개인'의 행복에만 침잠하는 건 아닐까.


G세대 한국인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태어나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된 2000년대에 글로벌마인드(global mind)를 갖추고 자랐다. 'G20 의장국 대한민국'에서 어른이 된다. 88~91년생(10학번 새내기)으로 좁혀 잡으면 263만명, 86~91년생으로 넓혀 잡으면 389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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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15. 23:20

최근 한일 관계가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이 연기되는 등 급랭한 데 대해 일부 일본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가 친중(親中)적으로 변화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독도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는 주기적으로 냉·온탕을 거듭해왔지만 이번 GSOMIA 연기는 과거와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GSOMIA 반대론에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발전, 중국 포위망을 형성할 수 있다는 우려가 포함된 점에 주목하고 있다. GSOMIA 반대의 명분은 '반일(反日)'이지만, 본질은 '친중(親中)·탈미(脫美)'라는 것이다. 한국 국방부가 중국과 GSOMIA와 유사한 군사협정 추진계획을 밝힌 것과 관련, 한 전문가는 "한국 정부까지 중국 눈치를 노골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한국의 중국관은 실용주의적인 측면이 강하다. 경제적으로 최대 교역국이며 북한에 영향력을 직접 행사할 수 있는 국가는 중국밖에 없다. 중국을 자극해서 경제적으로도, 남북한 관계에도 도움이 될 게 없다는 논리이다. 일부에서는 몰락하는 명(明)나라에 편중된 외교를 펴다가 청(淸)나라의 침략을 자초했던 조선시대의 '삼전도의 굴욕'까지 들먹이며 친중외교를 강조한다. 제주해군기지 반대론자들도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에 동참, 중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편다. '떠오르는 태양' 중국과 '지는 태양' 미국 사이에서 무엇이 국익(國益)인가 하는 질문도 던진다. '연미화중(聯美和中)'이니 '연미연중(聯美聯中)'이니 하는 논쟁이 벌어지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중국이 결코 떠오르는 태양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중국이 아무리 경제가 발전해도 공산당 독재라는 본질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심지어 방위백서에서 중국이 빈부격차·소수민족·인권문제 등으로 사회불안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를 외부에서 해소하기 위해 극단적 민족주의와 군사적 모험주의를 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군사대국화, 동·남중국해 진출 강화가 그 전조(前兆)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일 등이 군사·경제 협력을 강화, 중국을 국제사회의 규범을 지키는 국가로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한국의 동맹국인 미국의 아시아 전략이기도 하다. 물론 "10년째 중국 붕괴론이 나오지만, 이제는 중국 붕괴론이 붕괴할 때가 됐다"는 주장을 펴는 전문가도 있다.

한국은 중국의 장래에 대해 일본과 달리 낙관적이다. 단기간에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달성한 우리의 성공 체험처럼 중국도 정상적인 국가로 발전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낙관론의 배경에는 중국이 극단적인 경제 침체나 사회 혼란에 빠질 경우 초래될 한국 경제의 타격이나 한반도 정세 격변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또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하고 좋은 것만 상상하고 싶어하는 심리도 작용한다.

하지만 한국도 동북공정 등 역사 왜곡, 이어도 분쟁, 탈북자 강제송환, 대북활동가 고문(拷問) 등 중국과의 갈등 요소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도 '중국 리스크'를 관리해야 할 선택의 순간이 임박하고 있다. 적당한 눈치 보기와 현실 외면은 올바른 생존전략도, 국익(國益)도 아니다.



차학방 도쿄특파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10/20120810026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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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15. 23:19

프랑스의 유명 파티시에(제빵제과사) 피에르 에르메씨는 서양과자 마카롱의 맛과 멋을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려 부와 명예를 얻은 인물이다. 런던·도쿄·두바이에 분점이 있어 출장이 잦지만 주말만큼은 철저히 가족과 함께 지낸다. 며칠 전 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가 그의 주말 일과를 소개했다. 토요일 오전엔 중학생 딸, 아내와 함께 거리 장터에 가서 유기농 채소와 생선을 직접 사고,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는다. 토요일 오후의 주된 일정은 미술관 나들이다. 일요일 오전엔 집 근처 수영장에서 딸은 수영을, 부부는 사우나를 즐긴다. 일요일 저녁엔 집에 부부동반으로 손님을 초대해 자신이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하며 수다를 떤다….

서울 사람들의 주말 풍경은 어떤가. 강남에 사는 대기업 임원 A씨는 몇 달째 토요일에도 출근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매출이 떨어지면서 회사가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여가가 없기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피서철인 요즘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인 대치동의 교통체증은 평소보다 더 심하다. 중·고등학생 학원 수강생을 실은 차량 행렬이 수도권 각지에서 몰려와 꼬리를 물기 때문이다.

재정 위기 탓에 유럽 경제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는 있지만, 개인의 삶의 질로 보면 유럽은 여전히 지구촌 최고의 생활 선진국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미국인들에 비해 '덜 일하고 많이 노는' 유럽식 사회경제 모델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정작 유럽인들은 해고가 자유롭고 끊임없이 경쟁에 내몰리는 미국인들보다는 자기네 삶의 질이 더 낫다고 본다. 유럽인들이 유럽식 사회경제 모델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근거 중 하나는 경제학자들이 약점으로 꼽는 바로 그 근로시간이다. 미국인의 연간 근로시간은 1681시간(2011년 기준)인 반면 프랑스·독일 근로자의 근로시간은 1400시간대에 그친다.

유럽인들은 일에서 자유로운 시간에 집에서 요리를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이것저것 직접 가르친다. 그런데 이런 가사노동과 보육활동이 생산하는 부가가치는 GDP(국내총생산)엔 반영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유럽인들은 GDP라는 지표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컬럼비아대 스티글리츠 교수에게 의뢰해 '행복 GDP' 개념을 새로 만들어냈을까.

유럽인들이 주말을 맘껏 즐길 수 있는 요인은 뭘까.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적게 일하고도 많은 수익을 뽑아내는 고(高)부가가치형 노동에 그 비결이 있는 것 같다. 앞서 예로 든 피에르 에르메씨는 1개당 3000원을 웃도는 최고급 과자로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유럽산 패션 명품은 원가(原價) 대비 수천 배의 가격표가 붙지만 불티나게 팔리고, 독일산 최고급 승용차는 전 세계 부유층의 필수품이 됐다. 이런 고부가가치 제품 덕에 독일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37달러로 미국 근로자(24달러)의 1.5배에 달한다.

민주당 손학규 대선 후보가 내세운 '저녁이 있는 삶'은 정치 구호로는 매력적이지만, 경제적으로 이를 구현하자면 사회경제 모델을 바꾸는 수준의 고강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홍수 경제부 차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09/20120809031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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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15. 23:18

11일 오전 내내 올림픽 축구 한일전의 짜릿한 여운이 가시지 않아 도쿄(東京) 특파원 시절 앨범을 꺼내 봤다.

2008년 봄, 필자는 도쿄한국학교(한국 기업의 도쿄 주재원 자녀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 3학년생이던 아들을 따라 도쿄 국립축구경기장에 갔다. 홍명보 감독이 일본의 축구 스타와 함께 도쿄한국학교와 일본 초등학교의 축구부원들에게 기본기를 가르쳐주고 이야기도 나누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선수 풀’의 차이가 크다고는 하지만 양국 초등학생들의 실력차는 민망할 정도였다. 유치원 시절부터 철저하게 기본기를 다지는 일본식 교육과, 기초는 대충 건너뛰고 다짜고짜 실전연습과 선행(先行)에 들어가는 한국식 교육이 빚어낸 차이가 여실히 보였다. 나중 일이지만 일본의 한 초등학교를 상대로 한 축구경기에서 도쿄한국학교가 0 대 13으로 지는 것을 보면서도 필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들이 수영을 배울 때도 비슷했다. 일본에서는 6개월 내내 물에 뜨는 연습만 시키는 바람에 팔 한 번 저어보지 못했는데, 한국에서는 6개월 만에 평영 자유형 배영은 물론이고 접영까지 배워왔다. 일본에서 2년 반 동안 피아노를 배우면서 체르니는 근처에도 못 가고 바이엘만 쳤다는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한국 부모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양국 교육문화의 차이는 기업 경쟁력과도 관계가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산업구조의 변화는 완만했다. 기업의 경쟁력은 결함을 줄인 제품을 얼마나 균일하게 생산해내느냐에 따라 결정됐다. 개인 간 편차를 최소화하면서 평균치를 끌어올리는 데 강점이 있는 일본식 교육의 힘은 생산관리를 산업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도요타 방식’이 그것이다. 이런 패러다임 아래서 한국이 경제로 일본을 앞서나가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천재 1명이 1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되면서 사정은 변했다. 일본에 비해 영재·엘리트 교육에 상대적 강점이 있는 한국의 교육시스템과 거기에서 길러진 인재들의 경쟁력이 나름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김연아 박태환이 나온 것도 그렇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교육을 거듭 칭찬하는 것이 단적인 예일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도 일본 기업을 압도하는 한국 기업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창의성과 속도가 중요한 전자나 문화산업 분야에서는 ‘한국의 일본 추월론’이 본격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은 6월 말 한류 관련 포럼에서 “(한국이) 일본 경제를 앞지르는 일도 최소 5년 안에 일어날 것”이라고 확언했다. 또 일본 경단련(한국의 전경련에 해당) 산하 21세기정책연구소는 2030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 한국이 일본을 앞지를 것이라고 4월 전망했다.

한류 이야기가 나온 김에 양국 드라마산업을 한번 비교해 보자. 제작사들의 자금력이나 원작의 질과 양 등에서 한국은 일본에 크게 뒤처진다. 일본은 완전한 사전 제작을 통해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를 만들지만 한국은 ‘쪽 대본과 초치기 촬영’이 체질화돼 있어 ‘완성도’라는 용어를 꺼내기조차 무색하다. 그런데도 국제무대에서 일본 드라마가 한국 드라마 앞에 명함도 못 내미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빙산 아래 감춰진 일본의 실체를 어느 정도 아는 필자는 솔직히 말해 일본이 두렵다. 하지만 필자가 만약 일본인이었다면 한국에 대해 느끼는 무섬증은 더 컸을 것 같다. ‘겨울연가’, ‘대장금’, 김연아, 박태환, 쏘나타, 갤럭시S, 소녀시대 그리고 일본 선수 4명 사이를 무인지경으로 헤집고 다니는 박주영을 보면서….




천광암 경제부장



http://news.donga.com/3/all/20120812/48585231/1

Posted by 겟업
2012. 8. 15. 23:17

전 세계 203개국이 참여한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인 런던 올림픽이 12일(현지시간) 막을 내렸다. 한국팀이 금메달 13개, 종합순위 5위로 선전하면서 올림픽 기간 내내 신문·방송·인터넷 등에서 열기가 뜨거웠다. 런던 올림픽과 연계한 전 세계 기업들의 활동 역시 두드러졌다. 음료·패스트푸드·신용카드 등 많은 기업이 스폰서로 참여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IT·통신·방송 관련 기업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이제는 방송과 통신 미디어가 융합돼 지구촌 사람들이 올림픽을 즐기는 방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올림픽 중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최초로 라디오 중계가 도입됐고 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첫 TV 중계가 이뤄졌다. 64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통신위성을 이용한 국제 중계방송이 시도됐다. 한국 입장에서는 부러운 역사가 아닐 수 없다. 한국민은 70년대까지는 라디오 앞에 옹기종기 모여 중계방송을 듣다가 80년대 이후에야 온 가족이 TV 앞에 함께 모여 올림픽을 즐기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스마트폰 시대가 다가오면서 올림픽에 참여하고 즐기는 문화가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과거 집에 함께 모여 시청하던 문화가 내 손안의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경기를 관람하고 사이버 공간에서 함께 응원하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전 세계 수십억 사람들과 경기의 감동과 의견을 나눌 수 있게 됐다. 스마트폰과 SNS, 그리고 올림픽이 결합한 ‘스마트 소셜림릭’이 본격화한 것이다.

하지만 런던 올림픽은 서막에 불과하다. 6년 뒤 평창 겨울올림픽에선 지금보다 월등히 발전된 스마트 세계를 보여주게 될 것이고 보여줘야만 한다. 바야흐로 다른 나라가 부러워할, 진화한 스마트 소셜림픽의 역사를 한국의 손으로 써야 하는 것이다. 현재의 4G 이동통신 서비스는 5G로 진화해 전 세계 최초로 위용을 드러낼 것이다. 유선망 속도는 10Gbps급으로 고도화돼 유·무선 인프라 모두 지금보다 10~100배 빠른 스마트폰 네트워크로 상용화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첨단 인프라를 기반으로 UD·3D 중계방송, 자동 통·번역기, 자원봉사 로봇, 증강현실 면세점 등 경기·교통·관광·생활 등 모든 분야에서 스마트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특히 2018년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데이터가 다양한 단말에서 생성되어 축적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장에 설치된 센서를 통한 선수 개개인의 세밀한 경기 기록, 평창 곳곳에 설치된 첨단 기상 센서,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올리는 멀티미디어 SNS 등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활용한 대용량 데이터의 분석과 스마트폰 단말을 통해 경기예측, 기상예측 등 각종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스마트 올림픽 무대의 진정한 주인공이 될 것이다.


평창올림픽은 한국 주도로 ‘미래형 스마트 사회’의 모델을 만들고 세계로 확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한국을 전 세계 스마트 사회의 모델로 각인시킬 수 있도록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 올림픽을 치러야 한다. 88올림픽과 2002월드컵을 점프의 기회로 삼았던 것처럼 한국이 또 다른 도약을 하기 위해선 ‘스마트 평창 겨울올림픽’을 차기 정부의 핵심 어젠다로 삼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스마트 사회를 완벽히 구현하려면 시간이 적지 않게 필요하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얼마 남지 않은 준비기간을 잘 계획하고 집약적으로 실천함으로써 평창 올림픽까지의 시간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2018년 평창 올림픽을 미래형 스마트 올림픽으로 만드는 데 역량을 모으는 것은 차기 정부의 핵심 과제가 돼야 한다. 예비후보로 나선 정치인들은 이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한국의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김성태 한국정보화진흥원장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2/08/14/8664887.html?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2. 8. 15. 23:15

2012 런던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은 12개 종목에서 메달 28개를 따내며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성적을 거뒀다. 우리 앞에 있는 나라는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등이다. 고된 훈련과 가난, 부상, 좌절 등을 이겨내고 값진 성과를 일궈낸 선수와 지도자 모두 5000만 국민의 뜨거운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광복 후 처음 태극기를 앞세우고 참가한 1948년 14회 런던올림픽에서 우리는 동메달 2개를 따내 59개 참가국 중 32위였다. 당시 선수단의 공식 명칭은 '조선 올림픽 대표단'이었다. 일제 식민 통치에서 해방됐다고는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런던서 돌아오는 길에 대한민국의 탄생 소식을 들어야 했다. 그때 우리는 1인당 소득 75달러로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그로부터 64년 만에 런던서 다시 열린 올림픽에서 우리 젊은이들은 205개 참가국 중 정상급에 당당히 자리 잡았다. 온갖 어려움을 딛고 오늘의 성취를 이룩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쾌거이기에 더욱 대견하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은 메달 수뿐 아니라 경기 내용 면에서도 대한민국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펜싱·사격 등 한국 스포츠의 불모지 같던 종목에서 각각 6개, 5개씩 메달을 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체조에서 양학선은 자신만이 구사할 수 있는 '양학선'이란 신기술로 사상 첫 금메달을 차지했다. 리듬체조의 요정 손연재는 사상 처음으로 결선에 진출, 5위를 기록했다. 우리 젊은이들이 실패할까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빛나는 결실을 이뤄낸 것이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 기뻐서 울고 메달을 놓치면 아쉬워서 울고 하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경기 한 경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승패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젊은 세대가 실패해도 낙망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대한민국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런던올림픽의 기억은 대한민국이 전 세계와 어깨를 겨루며 앞으로 나아가는 데 더없는 힘이 될 것이다. 64년 전 젊은이 67명이 신생(新生) 국가 대한민국에 조그만 희망의 불빛을 선물했던 것처럼 이번 우리 젊은 선수 245명도 대한민국의 앞날에 더 밝은 희망을 쏘았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12/2012081201587.html

Posted by 겟업
2012. 8. 15. 23:13

이번 올림픽에서 모두가 한국의 선전에 환호하고 오심 퍼레이드에 분노하고 있을 때 나는 우리가 가볍게 지나칠 만한 사건 하나를 유심히 관찰했다. 레이스 막판 무서운 스피드로 수영 금메달을 거머쥔 한 소녀 선수 얘기다. 16세인 중국의 예스원은 개인혼영 400m 결승에서 마지막 50m를 남자선수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질주하며 우승해 결국 세계기록마저 갈아 치웠다.

하지만 막상 그에게 쏟아진 건 박수갈채가 아닌 의심의 눈초리였다. 작고 어린, 무명에 가까운 선수가 도저히 낼 수 없는 기록이란 것이다. 의혹 제기에 앞장선 건 서방 언론이었다. 이들은 중국 선수들이 각종 대회에서 약물 파동으로 대거 실격된 역사를 다시 끄집어 내며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넘겨짚었다. 미국의 한 코치는 “수영에선 누가 ‘슈퍼우먼’으로 떠올랐다 싶으면 어김없이 약물 복용으로 밝혀졌다”며 의혹을 부채질했다.

중국인들은 흥분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는 “중국의 성공에 대한 질투심의 극치”, “‘여우와 신 포도’의 전형적 사례”라는 글이 쏟아졌다. 나무 높이 달린 포도를 포기하면서 분명히 포도 맛이 나쁠 것이라 자기합리화를 한 여우(이솝우화)에 서방을 비유한 것이다. 급기야 논란은 중국의 국가주의 체육과 인권문제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번졌다. 한 서방 기자는 예스원에게 “중국 선수들은 메달을 따기 위한 로봇이라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예스원 공방’이 흥미로운 건 지금 글로벌 경제의 본모습과 헤게모니 다툼 양상이 그대로 투영돼 있기 때문이다. 4년 전 개최국으로 세계의 이목을 모은 중국은 이번에도 가공할 경기력과 수많은 얘깃거리로 사실상 대회의 주인공 행세를 하고 있다. 어느새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신흥 슈퍼파워와 이를 불편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서방 간의 신경전이 스포츠라는 형식을 빌려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서방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중국은 30년 전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 기적을 이뤄 냈지만 여전히 그 틀은 권위주의적인 국가 자본주의에 머물러 있다. 반면 민주주의를 기초로 한 정통 자본주의 국가들은 경제 버블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채 매년 8% 성장을 이어 가는 중국인들의 지갑에만 의존하는 꼴이 됐다. 중국이 예스원에 대한 문제 제기를 신 포도로 비꼰 것은 사실 중국 경제를 바라보는 서방의 부러운 (그리고 두려운) 시선을 정확히 지칭하고 있다. 약물 의혹은 환율 조작이나 인권 탄압 등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중국의 모든 면을 상징한다.

중국을 바라보는 서구의 마음은 복잡하다. 국민소득이 5000달러 정도 됐으면 자신들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받아들일 만한데도 전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체제가 우월함을 증명하려는 듯 더 완고하게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이런 자신감의 원천은 물론 자국 경제다. 중국이 올림픽을 국가 파워를 과시하는 경연장으로 여기고 밀어붙이는 것 역시 경제적 자신감에 토대를 두고 있다. 서구는 이 거대한 폭주 기관차가 언젠가 한계에 부닥치진 않을까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북한 경제 몰락의 이유는 분명하지만 중국의 성공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중국은 북한보다도 더 신기한 나라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의 위상과 이웃나라 국민을 전기 고문하는 후진성도 상식적으로 도저히 양립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그런 나라가 이 세상에, 그것도 한반도 바로 옆에 보란 듯 자리 잡고 있다. 우리로선 벌써 반만 년째 이어지는 고약한 숙명이다.

유재동 경제부 기자



http://news.donga.com/3/all/20120807/48411772/1

Posted by 겟업
2012. 8. 15. 23:09

일본의 자매대학에서 여름방학 집중강의를 하고 돌아왔다. 찜통인 도쿄 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지하철에서도 손바닥만한 책을 들고 삼매경에 빠진 시민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독서천국 같았다. 일본서적출판협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약 7만6,000종의 새 책이 출간됐고, 모든 서적의 판매부수가 11억7,600만권에 달했다. 대략 3,800여개의 출판사들이 매년 1조8,000억엔(약27조원) 규모의 거대산업을 형성하고 있다.

전국 1만5,000여개의 크고 작은 서점들이 출판 시장의 모세혈관 역할을 수행한다. 서적출판협회를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전철역이든 쇼핑몰이든 일본에서 서점을 찾기 어려운 곳은 없다." 요즘 들어 주춤해졌다곤 하나 여전히 출판대국인 나라의 깊이를 여러 곳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한류니 K팝이니 하면서 하루아침에 문화국가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 있는 동안 무엇을 잊고 무엇을 잃었는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텔레비전, 인터넷, 모바일이 커뮤니케이션의 성격을 신속하고 수평적으로 만들었지만 아직도 인간 이성의 정수를 포착하는 데 있어 책 만한 도구가 없다. 부피와 무게에서 휴대용 전자기기에 약간 밀릴 뿐, 사용의 편의성이나 영구적인 보관성을 감안하면 아직까지도 책에 대적할 수단이 없다. 구형 플로피 디스크에 저장해 놓은 원고는 이제 그것을 읽을 수 있는 기계조차 없지만, 그 원고로 만들어진 책은 여전히 필자의 책장에 꽂혀 있다. 어느 쪽이 우월한 매체인가. 또 책 읽기는 단순히 개인의 문화적 취향 또는 여가활동만을 뜻하지 않는다. 근대 이후의 독서행위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행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수록 개개인의 내면의 공간이 늘어난다. 그러므로 책 읽는 시민들로 이루어진 나라는 국토면적과 상관없이 엄청난 지성의 영토를 보유한 대국이 된다. 지성의 영토가 광대한 나라일수록 독재가 불가능하고 궤변이 설 자리가 없으며 프로파간다의 맨얼굴이 쉽게 폭로된다. 이런 점에서 책 읽는 행위는 인간의 권리문제로 접근해야 마땅하다. '우매한 대중이 되지 않을 권리'는 인간 자력화의 가장 강력한 요구에 속하는 권리다. 인권의 원칙으로 보아 책 읽을 권리에는 세 차원이 있다.

첫째, 가용성의 원칙. 일단 책의 종류가 다양해야 하고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 저렴하되 출판사의 출혈을 방지할 정책이 필요하다. 도서정가 문제, 우수출판 지원제 등을 인권의 차원에서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문고판 도서의 활성화도 고려해 봄직하다. 문고판은 공간활용, 가격, 제작 등에 있어 장점이 많지만 출판사의 수익성이 떨어지는 분야다. 정책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서울역의 노숙인들도 문고판으로 성석제의 소설을 쉽게 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둘째, 적합성의 원칙. 다양한 책이 나오되 일정한 수준의 도서를 지향해야 한다. 도서시장은 악화가 양화를 쫓아낼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이와 더불어 금서니 불온서적이니 하는 사상검열을 원천적으로 없애야 한다. 책을 읽는 목적 자체가 인간사유를 넓히고 바꾸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불온'하지 않은 책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셋째, 접근성의 원칙. 동네의 작은 책방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하고, 전국 방방곡곡에 공립 도서관이 촘촘히 들어서야 한다. 이미 도서관 운동들이 있지만 이런 분야에 대폭적인 정부 지원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세금이 아깝지 않은 일이다. 또한 장애인들을 위한 도서제작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시각장애인용 도서 콘텐츠 생산은 시급한 인권문제이며 국가인권위에서 오늘이라도 당장 조사와 연구를 시작해야 할 사안이다.

올해는 '독서의 해'이다. 많은 아이디어들이 제시되어 있지만 책 읽기를 인권문제로 이해하는 관점은 아직 자리잡지 못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책이야말로 인간자유를 위한 강력한 무기"라 했다. 인권운동으로서의 독서운동이 일어날 때가 됐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08/h2012080721035924370.htm

Posted by 겟업
2012. 8. 15. 23:08



거북복(위)과 메르세데스벤츠 자동차. [메르세데스벤츠]
미국 북서부 사막지대에서 번식하는 잡초인 회전초(回轉草)는 행성 탐사 로봇을 개발하는 기술자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가을바람에 의해 둥글게 뭉쳐서 날아가는 회전초를 본떠 로봇을 만들면 어떤 지형에서도 돌아다닐 수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2003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회전초처럼 바람이 불면 굴러다니는 행성 탐사 로봇을 만들어 그린란드에서 시운전에 성공했다. 이 로봇은 이틀 동안 128㎞를 이동하면서 30분마다 수집한 자료를 관제소로 보냈다. NASA는 바퀴 달린 로봇이 접근하기 어려운 구릉과 계곡이 많은 화성 탐사에 회전초 로봇을 활용할 예정이다.

연잎 표면의 나노 돌기 때문에 물은 방울 상태로 있다가 굴러떨어진다. [위키피디아]
일본의 의료기기 회사에서는 아프지 않은 주사, 곧 무통주사를 개발하기 위해 모기에 관심을 가졌다. 모기는 사람에게 아무런 고통도 주지 않고 피를 빨아먹는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모기의 주둥이는 주삿바늘보다 끝이 훨씬 가늘고 길게 생겼다. 모기의 바늘처럼 생긴 주삿바늘을 만들면 사람이 통증을 느끼지 않게 될 것임에 틀림없었다. 일본의 의료기기 전문가는 모기 주둥이를 흉내 내서 끝이 점점 가늘어지는 주삿바늘을 만들어 2004년 특허 승인을 받았으며 대박을 터뜨렸다. 특히 날마다 주사를 맞아야 하는 당뇨병 환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자동차 명품인 메르세데스벤츠는 거북복을 본떠 설계한 미래형 자동차를 선보였다. 일본·필리핀·남아프리카 등지에 사는 열대어인 거북복은 머리가 작고, 주둥이가 돌출되어 있으며, 외피는 딱딱한 갑판으로 덮여 있다. 몸 빛깔은 황금색이며 눈동자 크기의 작은 점이 흩어져 있다. 거북복의 몸체는 각이 지고 매끈한 유선형은 아니지만 물속에서 날렵하여 수압을 최소한으로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거북복은 몸 전체로 만들어내는 소용돌이 덕분에 수류의 저항을 받지 않고 최소한의 힘으로 파도를 헤쳐 나가며 자유자재로 헤엄칠 수 있다. 이러한 거북복의 특성을 자동차에 적용하면 차체 구조와 공기역학적 특성이 우수한 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메르세데스벤츠 기술진은 거북복의 외형을 본떠 만든 자동차를 연료 절약과 환경 친화적인 측면에서 가장 이상적인 미래 자동차의 설계 개념으로 소개한 것이다. 

나노기술 발달로 생명 본뜬 물질 만들어
전 세계의 늪에 서식하는 무척추동물인 완보동물(緩步動物)은 길이가 1㎜ 정도인 작은 생물이지만 생김새가 곰을 닮아 물곰이라 불리기도 한다. 물방울 속에 사는 물곰은 물이 마를 경우 움츠러들면서 생명 활동이 일시적으로 멈추는 가사 상태에 빠진다. 이 상태에서 물곰은 물이 끓는 100˚C 이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결빙 온도보다 훨씬 낮은 영하 200˚C에서도 얼어 죽지 않는다. 완보동물이 극한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은 특수한 물질이 몸 안에서 생성되기 때문이다. 이 특수물질을 모방할 수 있다면 식량이나 의약품을 효과적으로 보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우주 공간으로 여행할 때 이 물질을 활용하면 극한 환경에서 건강을 유지하는 데 크게 보탬이 될 전망이다.

게코를 본뜬 로봇. [김상배 연구원]
21세기 초반부터 생물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여 경제적 효율성이 뛰어난 물질을 창조하려는 과학기술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신생분야는 생물체로부터 영감을 얻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물영감(bioinspiration)과 생물을 본뜨는 기술인 생물모방(biomimicry)이다. 생물영감과 생물모방을 아우르는 용어가 해외에서도 아직 나타나지 않아 필자는 지난 5월 하순 펴낸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에서 ‘자연중심기술’이라는 낱말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자연은 위대한 발명가다. 지구상의 생물은 박테리아가 처음 나타난 이후 38억 년에 걸친 자연의 연구개발 과정에서 갖가지 시행착오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살아남은 존재들이다. 이러한 생물 전체가 자연중심기술의 연구 대상이 되므로 그 범위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넓다. 이를테면 생태학·생명공학·나노기술·재료공학·로봇공학·인공지능·인공생명·신경공학·집단지능·건축학·에너지 등 첨단 과학기술의 핵심 분야가 거의 망라되어 있다.

21세기 들어 생물영감 또는 생물모방이 각광을 받게 된 까닭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나노기술의 발달이다. 생물의 구조와 기능을 나노미터, 곧 10억분의 1m 수준에서 파악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생물을 본뜬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도마뱀붙이(게코) 발바닥과 연잎 표면을 모방하여 만들어낸 신소재다.

야행성 동물인 게코는 몸길이가 꼬리를 포함해 30~50㎝, 몸무게는 4~5㎏ 정도인 작지 않은 동물이지만 파리 따위의 곤충처럼 벽을 따라 기어 올라가는가 하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걷기도 한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게코의 능력은 발가락 바닥의 특수한 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졌다. 게코 발가락 바닥에는 사람의 손금처럼 작은 주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 작은 주름들은 뻣뻣한 털(강모)로 덮여 있다. 작은 빗자루처럼 생긴 강모의 끝에는 잔가지가 나와 있다. 잔가지의 끝부분은 오징어나 거머리의 빨판처럼 뭉툭하게 생겼으며 지름은 200나노미터 정도다. 도마뱀붙이는 이런 나노 빨판을 10억 개 갖고 있다. 요컨대 발바닥의 나노 빨판 덕분에 게코는 벽이나 천장에서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기어다닐 수 있는 것이다. 2004년 게코의 나노 빨판을 모방한 접착제가 개발되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김상배 연구원은 게코처럼 미끄러운 벽면을 기어오를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여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2006년 최고의 발명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로봇 발바닥에는 게코 발바닥을 모방해 만든 나노 크기의 털이 붙어 있음은 물론이다.

생태시대 여는 혁신적 접근방법
연은 흙탕물에서 살지만 잎사귀는 항상 깨끗하다. 비가 내리면 물방울이 잎을 적시지 않고 주르르 흘러내리면서 잎에 묻은 먼지나 오염물질을 쓸어내기 때문이다. 연의 잎사귀가 물에 젖지 않고 언제나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자기정화 현상을 연잎효과(lotus effect)라고 한다. 연잎의 표면이 작은 돌기로 덮여 있고 이 돌기의 표면은 티끌처럼 작은 솜털로 덮여 있기 때문에 연잎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작은 솜털은 크기가 수백 나노미터 정도이므로 나노 돌기라 할 수 있다. 1999년 연잎 표면을 뒤덮은 나노 돌기의 자기정화 기능을 활용한 첫 번째 제품이 상용화되었다. 건물 외벽에 바르는 자기정화 페인트다. 때가 끼는 것을 막아주는 자기정화 표면은 자주 청소를 해야 하는 생활용품에 쓰임새가 많다. 연잎효과를 응용한 옷은 가령 음식 국물을 흘리더라도 손으로 툭툭 털어버리면 깨끗해진다.

자연중심기술이 각광을 받게 된 또 다른 이유는 파란 행성 지구의 환경위기를 해결하는 참신한 접근 방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1997년 미국의 생물학 저술가인 재닌 베니어스가 펴낸 『생물모방(Biomimicry)』에서 명쾌하게 일갈한 대목에 그 이유가 함축되어 있다.

“생물들은 화석연료를 고갈시키지 않고 지구를 오염시키지도 않으며 미래를 저당 잡지 않고도 지금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전부 해왔다. 이보다 더 좋은 모델이 어디에 있겠는가?”

자연을 스승으로 삼고 인류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의 해법을 모색하는 자연중심기술은 녹색기술의 한계를 보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녹색기술은 환경오염이 발생한 뒤의 사후 처리적 대응의 측면이 강한 반면에 자연중심기술은 환경오염 물질의 발생을 사전에 원천적으로 억제하려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자연중심기술이 발전하면 녹색경제의 대안으로 청색경제(blue economy) 시대가 개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2008년 10월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회의에서 ‘자연의 100대 혁신기술(Nature`s 100 Best)’이라 불리는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IUCN과 유엔환경계획(UNEP)의 후원을 받아 마련된 이 보고서는 생물로부터 영감을 받거나 생물을 모방한 2100개의 기술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100가지 혁신기술을 선정하여 수록한 것이다.

이 보고서를 만든 사람은 재닌 베니어스와 군터 파울리다. 파울리는 벨기에 출신의 저술가, 기업가, 환경운동가다. 그는 1994년 일본 정부의 후원을 받아 생물영감 연구조직인 제리(ZERI·Zero Emissions Research and Initiatives)재단을 설립했다.

2009년 5월 베니어스와 파울리는 이 보고서를 같은 제목의 책으로 발간했다. 2010년 6월 파울리는 자연의 100대 혁신기술을 경제적 측면에서 조명한 저서인 『청색경제』를 펴냈다. 이 책의 부제는 10년 안에, 100가지의 혁신기술로 1억 개 일자리가 생긴다(10 years, 100 innovations, 100 million jobs)이다. 파울리는 이 책에서 100가지 자연중심기술로 2020년까지 10년 동안 1억 개의 청색 일자리가 창출되는 사례의 밑그림을 제시하면서 자연의 창조성과 적응력을 활용하는 청색경제가 높은 수익과 부가가치를 보장할 뿐만 아니라 고용 창출 측면에서도 매우 인상적인 규모의 잠재력을 갖고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이런 맥락에서 자연중심기술을 ‘청색기술(blue technology)’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을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에서 제안한 바 있다.

청색기술이 발전하면 기존 과학기술의 틀에 갇힌 녹색성장의 한계를 뛰어넘는 청색성장으로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창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국내 산업정책 전문가들이 주목할 만도 하다.

자연의 지혜를 배우면 지구를 환경위기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은 생물영감 또는 생물모방을 단순히 과학기술의 하나로 여기지 않고 이른바 생태시대(Ecological Age)를 여는 혁신적인 접근 방법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인식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 KAIST 겸직교수를 지냈다. 신문에 470편, 잡지에 160편 이상의 칼럼을 연재했다. 『지식의 대융합』『이인식의 멋진 과학』『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등을 펴냈다.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역설하는 강연 활동으로 분주하다.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7119

Posted by 겟업
2012. 8. 15. 23:07

“런던서 온 금빛 희망바이러스… 다음은 우리 차례” 펜싱 키즈가 자란다

방학인데도 맹훈련을 하는 서울체육고 펜싱부 학생들. 도복 마스크 등 무거운 장비를 착용하고 칼을 쓰지만 여풍이 거셌다. 총 26명의 학생 중 여학생은 7, 8명가량 된다. “처음엔 칼이 좀 무거웠지만 곧 적응됐다”고 말하는 이들은 “부모님이 여자도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며 팍팍 밀어준다”면서 주눅 든 모습이 없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서울체육고등학교가 있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으로 들어서니 아스팔트를 녹일 듯한 폭염과 함께 올림픽 열기도 뜨거웠다. 거리 곳곳에 메달을 딴 선수들의 명단이 적힌 플래카드가 펄럭였다. 

9일 오전 10시 학교 4층 펜싱부 체육관에 들어서는 순간, 방학 중인 데다 이른 오전 시간인데도 비지땀을 흘리는 학생들의 땀 냄새가 코로 훅 들어왔다. 200여 평 되는 체육관은 에어컨이 돌고 있었지만 남녀 학생 20여 명의 날카로운 기합 소리가 뿜어내는 열기로 후끈했다. 양팔에 검(劍)을 쥔 모습으로 좌우로 빠르게 발 연습을 하는 모습이 TV 중계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다. 서울체고는 펜싱 6개 종목 중 3개 종목에서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꿈나무들의 산실이다. 

홍순영 코치(44·중고펜싱연맹 경기이사)의 얼굴은 밝았다. “어떻게 하면 펜싱을 배울 수 있냐는 전화가 많이 걸려옵니다. 아이들에게 동기부여가 된 게 큰 수확입니다. 그중에는 대충 하다 대학이나 가자던 아이들도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 ‘열심히 해서 메달을 따겠다’고 합니다.” 

한국 펜싱은 이번 올림픽에서 6개 전 종목 메달(금 2개, 은 1개, 동 3개)을 따는 기염을 토했다. 

훈련하는 학생들 중 김도희(18·2학년·사브르) 양희원 양(19·3학년·사브르)과 황부영(19·3학년·플뢰레) 조성혁(19·3학년·플뢰레) 홍성운(19·3학년·사브르) 정병찬 군(19·3학년·에페) 등 6명을 만나봤다. 아직은 생소한 이 스포츠를 무슨 동기로 시작하게 됐는지가 가장 먼저 궁금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체육 선생님이 펜싱부 코치였는데 체격조건이 좋다고 권유해서”(희원) “초등학교 때 태권도를 했는데 발이 빠르다고 관장님이 추천해서”(부영) “초등학교 수영 선생님이 제 운동신경이 펜싱에 맞겠다고 해서”(성혁) “달리기를 잘한다고 아빠 친구(펜싱 코치)가 권해서”(도희) 등등 대부분 비슷했다. 

기자는 이들을 만나기 전 펜싱이 소수 엘리트 체육의 산물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시 홍 코치의 말이다.

“제가 뛸 때만 해도 선수로 선발되면 무조건 태릉으로 가 집단훈련을 받았지만 10년 전부터 중고교에 펜싱부가 생기면서 달라졌습니다. 현재 중고교 130여 곳에서 870여 명의 꿈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계기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자 단식 플뢰레에서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김영호)과 동메달(이상기)이 나온 것이었다. ‘펜싱 키즈’를 키우자는 국가적 목표가 세워졌고 국고와 대한펜싱협회의 지원으로 중고교에 펜싱부가 생긴 것. 물론 1차적으로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밀어주겠다는 부모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펜싱은 검, 마스크, 도복 상하의, 보호대, 메탈재킷, 와이어, 펜싱양말, 신발, 장갑, 장비가방 등 풀 세트를 구입하려면 초기 비용이 수백만 원은 된다. 학생들은 “도복 등은 한 번 사면 5∼10년은 쓰지만 한 자루에 10만 원을 훌쩍 넘는 검은 그동안 수십 자루를 갈아 치웠다”고 했다. 게다가 100% 수입품이다. 풍족하진 않더라도 자식들에게 이 정도 지원은 해줄 수 있는 부모들이 있었기에 이들의 오늘이 가능했으리라. 결국 한국 펜싱의 성장은 한국 경제성장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학생들에게 펜싱의 매력을 물었다. “멋있어서” 혹은 “짜릿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조명만 반짝이는 검은 무대, 은빛 칼, 표정을 감추는 마스크…세련되고 멋있잖아요.”(부영)

“‘진짜 칼을 들었다’는 생각으로 경기를 해요. 이 칼로 상대를 죽일 수도 있고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요. 찌르고 찔리는 순간 생과 사를 맛보는 운동이랄까(웃음), 머리회전도 빨라야 해요. 0.5초라는 짧은 순간에 공격과 수비 전략을 짜야 하는데 전략이 읽히면 당할 수밖에 없죠. 속이는 기술이 성공했을 때의 ‘스릴’은 정말 대단하죠.”(성혁)

“좁은 피스트(piste·펜싱 경기장) 위에 오로지 상대방과 나 둘만 있어요. 그 긴장감, 집중력, 한 포인트 한 포인트 찌를 때마다 경험하는 짜릿함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어요.”(성운)

지금 경기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는지, 이들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비인기 종목 선수로서 설움을 느낀 적은 없었느냐”고 물었더니 이들은 무심할 만큼 가볍게 받아 넘겼다. 승부에 매달리기보다는 운동 자체를 즐긴다는 사고가 역시 강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운동인데 남들한테 인기가 있나, 없나 하는 게 뭐가 중요하죠?”(성혁)

“TV에서도 중계를 잘 안 해 주니까 아쉽긴 하지만 서운하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열심히 해서 인기 종목으로 만들어야지 하는걸요. 피겨 종목을 유명하게 만든 김연아 선수처럼 말이죠(웃음).”(희원)

“펜싱 한다고 하면 다들 멋있다고 해요. 주눅 든 적은 없어요.”(병찬)

옆에 있던 홍 코치가 “우리만 해도 어쩔 수 없이 혹은 어른들이 무서워서(웃음) 열심히 했는데 요즘 애들은 절대 억지로 안 합니다. 그렇다 보니 중도 탈락하는 아이가 오히려 줄었어요”라고 덧붙였다. 

올림픽 기간에 펜싱 경기가 있는 날, 밤새워 TV 앞에 앉아 있었다는 이들은 오심(誤審)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를 높였다. 자기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작년 요르단에서 열린 유소년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제가 먼저 찔렀는데 상대 선수에게 유리한 판정이 났어요. 비디오 판독까지 했지만 정정을 해주지 않더라고요. 원래 아시아권 선수들에게 심판들이 점수를 잘 안 준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인가 싶어 속상했죠.”(희원)

“저도 요르단 대회에서 유럽 선수들과 경기할 때 두세 개의 오심 판정을 받았어요. 일본인 심판이었는데 같은 아시아인인데도 유럽 선수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속상했어요. 한국에서 잘 썼던 기술이 오심 판정이 나버려 자신감이 없어졌어요.”(부영)

그럴 때마다 펜싱에 회의감을 느낀 적은 없느냐고 묻자 역시 낙관적인 답들이 돌아왔다.

“올해 4월 모스크바 유소년대회에서 단체전 3위를 했는데 미국 선수와의 경기에서 심판이 끝났다는 신호를 하지 않아 잠시 멈칫하다 찔려 버렸어요. 너무 허탈했지만 이미 악수까지 하고 끝낸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죠. 하지만 저도 제게 유리한 판정을 받은 적이 있어요. 억울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오히려 더 열심히 뛰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죠.”(병찬) 

“국내 경기에서도 오심 판정으로 억울한 적이 있었어요.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아 아쉬웠지만 좀 더 정확한 포인트를 찍기 위해 연습을 더 열심히 하게 됐어요.”(성운)

펜싱은 상대방의 몸에 칼날이 닿으면 불이 들어오는 전자 판정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워낙 ‘찰나의 스포츠’이다 보니 양 선수의 마스크에 동시에 불이 들어올 경우 심판의 판정도 쉽지 않다. 

“사람의 일이니 누구라도 실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번에 신아람 선수의 경기를 맡았던 심판도 순간적으로 판단착오를 한 것 같아요. 공격이나 수비 지시를 내릴 때는 이상이 없다가 마지막 1초가 문제가 됐는데 사실 (경기를) 끝냈어도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설마 1초라는 시간 안에 누군가를 찌를 수 있겠냐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물론 타임키퍼의 실수도 있었고요…. 어쨌든 그 일 이후 심판들이 ‘코리아’를 보면 더 바짝 긴장해서 경기를 본 건 사실이에요.”(홍 코치)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펜싱의 장기로 유명해진 ‘발 펜싱’ 이야기로 넘어갔다. 실제로 기자가 이날 지켜본 학생들의 운동시간 절반은 ‘풋 워크(다리운동)’에 집중됐다.

홍 코치에게 “우리의 발 펜싱 노하우를 세계가 알게 됐으니 금방 따라잡히지 않을까요”라고 물었더니 “기본적으로 너무 힘든 트레이닝이라 견디지 못할 겁니다. 신체 조건이 동양인보다 좋기 때문에 그런 훈련 자체가 필요 없다고 느낄 수도 있고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결핍’이 때로는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지혜가 한국 펜싱에서도 적용되는 셈이다. 

3세트(1세트에 3분) 경기를 치르는 동안 약 500번의 공격을 하는 펜싱은 체력 소모가 심한 운동이다. 이날 만난 학생들의 연습량은 혹독하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요즘 같은 방학에는 오전 10시∼낮 12시, 오후 2∼5시 운동이 이어지고 월·수·금요일에는 오후 7시∼8시 반에 야간운동까지 한다. 학기 중에는 오전 4교시 수업을 마치고 오후 2시 반∼5시 반, 역시 월·수·금요일 야간운동이 이어진다. 이들을 보며 케이팝(K-pop·한국대중음악) 한류를 만들고 있는 10대 연습생들의 집중력이 겹쳐졌다. 

이날 만난 학생들은 대부분 올림픽 메달을 꿈꿨지만 그렇다고 집착하는 모습은 없었다. “좋아하는 펜싱을 할 수 있다면 코치나 심판이 되는 길도 열려 있다”고 말하는 펜싱 키즈에게선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부러웠다.

● 펜싱, 아직은 먼 길

고대 로마에서 시작한 펜싱은 18세기 무렵 마스크를 쓰고 칼의 위험성을 없애고부터 스포츠가 됐다. 긴 칼만을 사용하는 현재 검법으로 틀을 갖춘 것은 프랑스에서다. 펜싱국제표준 용어가 ‘아탕시옹’(attention·차렷) ‘살뤼’(salut·인사) ‘앙가르드’(en garde·기본자세) ‘마르슈’(marche·앞으로 이동) ‘롱페’(rompez·뒤로 이동) ‘팡트’(fente·공격)처럼 프랑스어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1896년부터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됐지만 아시아권에서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플뢰레 여자부에서 루안줄리(중국)가 금메달을 딴 게 처음이다. 우리의 경우 1964년 도쿄 올림픽에 남자 3명, 여자 1명이라는 미니 선수단이 출전한 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이르러서야 사상 처음 금메달과 동메달을 땄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메달이 없었다. 

유럽엔 우리식 태권도장처럼 펜싱도장이 흔할 정도인 생활스포츠이지만 우리는 저변이 얇다. 국내 펜싱 동호인은 1000여 명에 불과하다. 독일에는 400여 개 클럽에 등록선수만도 40만 명에 이르지만 우리나라의 등록선수는 1500명 정도다. 

경기 종목은 찌르는 부위에 따라 플뢰레(fleuret·얼굴, 팔, 다리를 제외한 몸통만 공격) 에페(´ep´ee·마스크와 장갑을 포함한 상체 모두) 사브르(sabre·찌르기와 베기가 모두 가능하며 허리 위를 공격) 3종. 기본동작을 익힌 후 응용 동작까지 배워 경기를 하려면 6개월은 걸린다고 한다.

허문명 기자



http://news.donga.com/3/all/20120813/48587747/1

Posted by 겟업
2012. 8. 15. 22:54

펜싱, 팔 짧은 한국인 특성 맞게 빠른 발 동작에 몰두해 큰 성공
후발 주자는 새 룰 만들어 내야… 양궁처럼 끊임없는 변화도 필요
의외의 선수들이 메달 따듯 사무실 구석 인재들 끌어내야


많은 이들이 밤잠을 설치면서 런던올림픽을 지켜보는 건 거기에 날것 그대로의 경쟁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어떤 보호막도, 기득권도 없이 오직 실력으로만 세계 최고를 가리는 현장이다. 우리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살지만, 사실 많은 사람에게 경쟁은 추상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올림픽은 생생한 경쟁의 모습을 3D 입체 영상으로 보여준다.

올림픽은 기업인들에게 승부의 비결을 전해주는 교과서이기도 하다. 기업인들이 이번 올림픽에서 배워야 할 게 있다면 그 첫째는 차별화의 중요성이다. 이번에 한국 선수단이 이룬 최대 이변 중 하나는 펜싱의 기대를 뛰어넘는 선전(善戰)이었다. 그것은 차별화 전략의 성공 사례이기도 했다.

한국 펜싱 선수들은 유럽 선수들에 비해 키가 작고 팔 길이가 짧은데도, 과거엔 손 기술 위주의 유럽 스타일을 모방만 해왔다. 그러다 10년 전 한국형 펜싱을 개발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면서 한국인의 신체적 특성에 맞는 기술 연구에 돌입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발동작을 빨리하는 데 주안점을 둔 것이다. 펜싱 선수들이 느닷없이 등산과 달리기, 웨이트 트레이닝 등 하체 강화 훈련에 몰두한 이유다. 이렇게 단련된 우리 선수들은 이번 올림픽에서 빠른 잔발로 치고 빠지면서 유럽 선수들의 얼을 빼놓았다. 우리 선수들의 1분당 스텝 수는 최대 80회로 유럽 선수들의 2배 수준이고, 빠른 스텝을 이용해 1초 동안 5m를 이동하기도 했다.

기업의 경우에도 후발 주자는 결코 선발 주자가 만들어 놓은 게임의 룰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선발 주자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전장(戰場), 그들이 행하지 않은 룰을 만들어내야 한다. 진정한 차별화란 약점을 수비적으로 보완하기보다 강점을 더욱 강화해 불균형의 상황을 더욱 불균형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얻어진다.

한국 최초의 체조 금메달을 딴 양학선은 차별화의 정수(精髓)를 보여준다. 그는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최고난도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차별화의 세 가지 방안, 즉 최초(the first), 유일함(the only), 최고(the best)를 모두 이뤘다.

둘째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정신을 배워야 한다. 한국 양궁이 30년 이상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스포츠에 접목시켜 창의적인 훈련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했기 때문이다. 극도의 긴장 상황에서도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65m 높이에서 번지점프를 하고, 군인 700명이 북과 꽹과리를 치며 야유하는 가운데 연습 시합을 치렀으며, 쉬는 시간에는 몇 달 후 올림픽이 열릴 경기장 영상이 담긴 특수 안경을 끼고 시뮬레이션 훈련을 했다. 대한양궁협회 서거원 전무는 "새 훈련 방법을 개발하면 외국 지도자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알아내 5개월 후엔 더 발전된 방법으로 훈련한다"면서 "그 5개월간 우리는 전보다 새로운 것을 개발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셋째는 진흙 속 진주가 빛을 발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재 관리의 철학을 배워야 한다. 늘 그랬지만 이번 올림픽도 전혀 의외의 선수들이 등장해 메달을 따냈다. 펜싱의 김지연이나 사격의 김장미가 대표적이다. 기업에도 장차 큰일을 벌일 인재들이 사무실 어느 구석에 숨어있을지 모른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기업문화가 필요한 이유다. 조직 내에 구성원의 행동을 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 '동질화 필터(homogenizing filter)'가 작용하는 것을 경계하고, 단기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긴 승부를 볼 수 있도록 보상시스템이 설계돼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이번 런던올림픽을 보면서 장기화하는 세계 경제 침체의 파도에 맞설 지혜를 얻었으면 좋겠다.


이지훈 경제부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07/20120807031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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