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복(위)과 메르세데스벤츠 자동차. [메르세데스벤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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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자동차 명품인 메르세데스벤츠는 거북복을 본떠 설계한 미래형 자동차를 선보였다. 일본·필리핀·남아프리카 등지에 사는 열대어인 거북복은 머리가 작고, 주둥이가 돌출되어 있으며, 외피는 딱딱한 갑판으로 덮여 있다. 몸 빛깔은 황금색이며 눈동자 크기의 작은 점이 흩어져 있다. 거북복의 몸체는 각이 지고 매끈한 유선형은 아니지만 물속에서 날렵하여 수압을 최소한으로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거북복은 몸 전체로 만들어내는 소용돌이 덕분에 수류의 저항을 받지 않고 최소한의 힘으로 파도를 헤쳐 나가며 자유자재로 헤엄칠 수 있다. 이러한 거북복의 특성을 자동차에 적용하면 차체 구조와 공기역학적 특성이 우수한 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메르세데스벤츠 기술진은 거북복의 외형을 본떠 만든 자동차를 연료 절약과 환경 친화적인 측면에서 가장 이상적인 미래 자동차의 설계 개념으로 소개한 것이다.
나노기술 발달로 생명 본뜬 물질 만들어
전 세계의 늪에 서식하는 무척추동물인 완보동물(緩步動物)은 길이가 1㎜ 정도인 작은 생물이지만 생김새가 곰을 닮아 물곰이라 불리기도 한다. 물방울 속에 사는 물곰은 물이 마를 경우 움츠러들면서 생명 활동이 일시적으로 멈추는 가사 상태에 빠진다. 이 상태에서 물곰은 물이 끓는 100˚C 이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결빙 온도보다 훨씬 낮은 영하 200˚C에서도 얼어 죽지 않는다. 완보동물이 극한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은 특수한 물질이 몸 안에서 생성되기 때문이다. 이 특수물질을 모방할 수 있다면 식량이나 의약품을 효과적으로 보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우주 공간으로 여행할 때 이 물질을 활용하면 극한 환경에서 건강을 유지하는 데 크게 보탬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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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위대한 발명가다. 지구상의 생물은 박테리아가 처음 나타난 이후 38억 년에 걸친 자연의 연구개발 과정에서 갖가지 시행착오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살아남은 존재들이다. 이러한 생물 전체가 자연중심기술의 연구 대상이 되므로 그 범위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넓다. 이를테면 생태학·생명공학·나노기술·재료공학·로봇공학·인공지능·인공생명·신경공학·집단지능·건축학·에너지 등 첨단 과학기술의 핵심 분야가 거의 망라되어 있다.
21세기 들어 생물영감 또는 생물모방이 각광을 받게 된 까닭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나노기술의 발달이다. 생물의 구조와 기능을 나노미터, 곧 10억분의 1m 수준에서 파악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생물을 본뜬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도마뱀붙이(게코) 발바닥과 연잎 표면을 모방하여 만들어낸 신소재다.
야행성 동물인 게코는 몸길이가 꼬리를 포함해 30~50㎝, 몸무게는 4~5㎏ 정도인 작지 않은 동물이지만 파리 따위의 곤충처럼 벽을 따라 기어 올라가는가 하면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걷기도 한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게코의 능력은 발가락 바닥의 특수한 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졌다. 게코 발가락 바닥에는 사람의 손금처럼 작은 주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 작은 주름들은 뻣뻣한 털(강모)로 덮여 있다. 작은 빗자루처럼 생긴 강모의 끝에는 잔가지가 나와 있다. 잔가지의 끝부분은 오징어나 거머리의 빨판처럼 뭉툭하게 생겼으며 지름은 200나노미터 정도다. 도마뱀붙이는 이런 나노 빨판을 10억 개 갖고 있다. 요컨대 발바닥의 나노 빨판 덕분에 게코는 벽이나 천장에서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기어다닐 수 있는 것이다. 2004년 게코의 나노 빨판을 모방한 접착제가 개발되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김상배 연구원은 게코처럼 미끄러운 벽면을 기어오를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여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2006년 최고의 발명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로봇 발바닥에는 게코 발바닥을 모방해 만든 나노 크기의 털이 붙어 있음은 물론이다.
생태시대 여는 혁신적 접근방법
연은 흙탕물에서 살지만 잎사귀는 항상 깨끗하다. 비가 내리면 물방울이 잎을 적시지 않고 주르르 흘러내리면서 잎에 묻은 먼지나 오염물질을 쓸어내기 때문이다. 연의 잎사귀가 물에 젖지 않고 언제나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자기정화 현상을 연잎효과(lotus effect)라고 한다. 연잎의 표면이 작은 돌기로 덮여 있고 이 돌기의 표면은 티끌처럼 작은 솜털로 덮여 있기 때문에 연잎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작은 솜털은 크기가 수백 나노미터 정도이므로 나노 돌기라 할 수 있다. 1999년 연잎 표면을 뒤덮은 나노 돌기의 자기정화 기능을 활용한 첫 번째 제품이 상용화되었다. 건물 외벽에 바르는 자기정화 페인트다. 때가 끼는 것을 막아주는 자기정화 표면은 자주 청소를 해야 하는 생활용품에 쓰임새가 많다. 연잎효과를 응용한 옷은 가령 음식 국물을 흘리더라도 손으로 툭툭 털어버리면 깨끗해진다.
자연중심기술이 각광을 받게 된 또 다른 이유는 파란 행성 지구의 환경위기를 해결하는 참신한 접근 방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1997년 미국의 생물학 저술가인 재닌 베니어스가 펴낸 『생물모방(Biomimicry)』에서 명쾌하게 일갈한 대목에 그 이유가 함축되어 있다.
“생물들은 화석연료를 고갈시키지 않고 지구를 오염시키지도 않으며 미래를 저당 잡지 않고도 지금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전부 해왔다. 이보다 더 좋은 모델이 어디에 있겠는가?”
자연을 스승으로 삼고 인류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의 해법을 모색하는 자연중심기술은 녹색기술의 한계를 보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녹색기술은 환경오염이 발생한 뒤의 사후 처리적 대응의 측면이 강한 반면에 자연중심기술은 환경오염 물질의 발생을 사전에 원천적으로 억제하려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자연중심기술이 발전하면 녹색경제의 대안으로 청색경제(blue economy) 시대가 개막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2008년 10월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회의에서 ‘자연의 100대 혁신기술(Nature`s 100 Best)’이라 불리는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IUCN과 유엔환경계획(UNEP)의 후원을 받아 마련된 이 보고서는 생물로부터 영감을 받거나 생물을 모방한 2100개의 기술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100가지 혁신기술을 선정하여 수록한 것이다.
이 보고서를 만든 사람은 재닌 베니어스와 군터 파울리다. 파울리는 벨기에 출신의 저술가, 기업가, 환경운동가다. 그는 1994년 일본 정부의 후원을 받아 생물영감 연구조직인 제리(ZERI·Zero Emissions Research and Initiatives)재단을 설립했다.
2009년 5월 베니어스와 파울리는 이 보고서를 같은 제목의 책으로 발간했다. 2010년 6월 파울리는 자연의 100대 혁신기술을 경제적 측면에서 조명한 저서인 『청색경제』를 펴냈다. 이 책의 부제는
청색기술이 발전하면 기존 과학기술의 틀에 갇힌 녹색성장의 한계를 뛰어넘는 청색성장으로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창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국내 산업정책 전문가들이 주목할 만도 하다.
자연의 지혜를 배우면 지구를 환경위기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은 생물영감 또는 생물모방을 단순히 과학기술의 하나로 여기지 않고 이른바
이인식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 KAIST 겸직교수를 지냈다. 신문에 470편, 잡지에 160편 이상의 칼럼을 연재했다. 『지식의 대융합』『이인식의 멋진 과학』『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등을 펴냈다.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역설하는 강연 활동으로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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