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이 야기되지 않고 물리적 충돌과 부상이 없는 대응, 국내외 분쟁 현장과 아프간까지 다녀온 백전노장, 그러나 노조원들에게 더없이 인자하며, 노조원들을 때리지 않는 마음씨 좋은 분쟁 현장의 신사-컨택터스!”
경호·경비 전문업체인 컨택터스의 인터넷 누리집(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자사 홍보 문구다. 정예인력, 첨단장비, 임무 수행전략을 보유한 자신들에게 ‘일’을 맡겨 달라고 기업들에 선전한다. 문구만 보면 노사분쟁 현장의 해결사로서 흠잡을 데 없는 회사다.
그런 컨택터스가 지난 27일 새벽 자동차부품업체인 에스제이엠(SJM)의 노조 농성 현장을 덮쳤다. 얼마나 ‘인자하게’ 노조원들을 대했는지 모르겠지만 노조원 30여명이 머리가 터지고, 입술이 찢기고, 얼굴에 피가 낭자하게 두들겨 맞았다. 컨택터스의 이번 폭력은 외견상 그동안 재개발 현장이나 노조 농성장 등에서 숱하게 봐왔던 ‘용역 깡패’의 행태를 그대로 빼닮았다. 하지만 컨택터스의 폭력은 그 성격상 기존의 용역 폭력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선 폭력이 기업화되고 첨단화됐다는 점이다. 컨택터스의 보유 장비를 보면 경찰 뺨칠 정도다. 최신 헬멧이나 진압봉 등 개인장비는 물론 수력방어 특수차량(물대포차)과 시위대 항공채증을 위한 무인헬기까지 갖추고 있다. 노사분쟁 현장 등에 최대 3000명까지 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사실상 사설 경찰력이다.
이는 국가의 독점물이었던 합법적 폭력(공권력)을 민간이 보유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기업들이 자신의 이익 수호를 위한 사적 폭력조직의 동원을 일상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른바 ‘폭력의 민영화’ 현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은 공권력이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보다 자본의 이익 수호에 지나치게 경도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공권력이 사실상 자기편임을 확인한 기업들이 공권력의 묵인 아래 좀더 효율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해줄 ‘민영화된 폭력’을 찾게 된 것이다. 결국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할 국가가 자본에 경도됨으로써 ‘폭력의 민영화’가 싹틀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준 셈이다. 친기업 반노조 성향의 이명박 정부에서 이런 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폭력의 민영화는 국가의 역할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들게 한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제1의 목표로 한다. 국민은 이를 전제로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국가에 위임했다. 그런데 국가가 합법적 폭력을 국민을 위해 쓰지 않고 자본 이익 수호를 위해 사용할 뿐 아니라 자본을 위한 사적 폭력이 횡행하도록 방조한다면 그런 국가는 국민과 적대적 관계가 불가피해진다.
불행히도 이런 폭력의 민영화 현상은 점점 심해질 것이다. 국가에 대한 자본의 우위 현상이 강화되는데다 자본의 대변자로 전락한 국가 또한 사적 폭력을 통제할 의지가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폭력사태에 대해서도 컨택터스는 “정상적인 업무 수행 중에 일어난 우발적인 사건”이었다며 폭력을 정당화하고 나섰고, 경찰도 “건물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전혀 몰랐다”고 발뺌하고 있다. 컨택터스는 심지어 “(컨택터스가) ‘허가 취소’ 등으로 사라지게 된다면 앞으로 사업장에서 어떠한 불법행위가 일어나도 사업주는 속수무책이 될 것이며, 외국계 기업은 한국을 떠나고, 국내 기업들 또한 기업경영 의욕을 잃어 기업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국민을 겁박했다. 자신이 마치 국가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공권력이나 되는 것처럼.
이처럼 괴물이 돼 가고 있는 ‘민영화된 폭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 이대로 방치할 경우, 국민은 이미 자본 편이 돼 버린 공권력의 횡포와 공권력의 비호를 받는 사적 폭력이란 이중의 폭력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이 사안은 또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경제민주화의 성패와도 직결돼 있다. 경제민주화의 본질이 자본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 회복인데, 자본의 사병 역할을 하는 사적 폭력을 방치한 채 자본을 통제하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경제민주화 경쟁을 벌이고 있는 정치권이 이번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지 유난히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452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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