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6일 서울 태릉선수촌.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출전을 앞두고 “최선을 다해 우승하겠다”며 기자회견을 한 박태환에게 나는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수영 남자 자유형 400m에서 한국 수영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박태환이 훈련을 등한시했다고 생각하고 “이런 상태로 어떻게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하느냐”는 질책성 질문을 한 것이다.
그때 노민상 당시 대표팀 감독이 답을 대신했다. “박태환은 이제 스무 살이다. 국민적인 관심에 얼마나 심적 부담이 크겠느냐. 성장할 시간이 필요하니 질책보다는 격려를 해줬으면 좋겠다.” 어릴 때부터 박태환을 발굴해 키운 스승의 말 한마디에 더는 질문을 이어갈 수 없었다. 노 감독은 말은 안 했지만 ‘선수도 사람이다. 어떻게 훈련만 하고 사느냐. 박태환은 훈련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다’라고 항변하는 듯했다.
당시 박태환은 로마에서 전 종목 결선 진출 좌절이란 부진한 성적을 내고 돌아왔다. 일부 언론은 ‘로마 참사’라고 대서특필했고 국민들도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박태환에게 로마 악몽은 실패가 아니었다. 인간 박태환이 성장하기 위해 겪어야 할 성장통이었다.
박태환은 1년 뒤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3관왕에 올랐다. 지난해 상하이 세계선수권에서는 자유형 400m를 제패해 2007년 멜버른 대회 이후 4년 만에 챔피언에 복귀하며 2년 전 로마 악몽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부정 출발로 헤엄을 쳐보지도 못하고 고개 숙인 채 걸어 나왔던 실패를 4년 뒤 베이징에서 금메달이란 결실로 만들었듯 박태환은 보란 듯이 다시 일어섰다.
스포츠심리학에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을 분석한 결과 올림픽 이듬해에 성적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간절히 원한 것을 얻은 선수들이 ‘꼭 이렇게 힘들게 해야 하나’란 회의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새로운 목표를 정하거나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즐겨야 한다. 그러지 못하는 경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잊혀지게 된다.
이번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박태환은 수영 자체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박태환은 자유형 400m 예선에서 조 1위를 하고도 어이없는 실격 판정을 받았다. 올림픽 2연패를 위해 4년을 준비했고 ‘세계신기록도 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던 박태환에게 실격 판정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실격 판정 번복이란 변수가 없었다면 금메달도 가능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하지만 박태환은 결선에서 최선을 다해 레이스를 펼쳤고 라이벌인 중국의 쑨양에 이어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태환은 자유형 200m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했다. 목표로 한 금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박태환은 “영광스러운 올림픽 메달을 걸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날아간 금메달은 벌써 잊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박태환은 “수영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말을 하곤 했다. 이번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일찌감치 4년 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도 출전할 뜻을 비쳤다. 그리고 공부를 많이 해 한국 수영 발전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목표를 찾지 못하고 방황했던 ‘마린 보이’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3년 전 “왜 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았느냐”고 몰아붙였던 기자는 박태환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당부한다. “태환아. 이젠 쉬엄쉬엄 하렴.”
양종구 스포츠레저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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