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처럼 맛이 달고 삼복(三伏) 무더위에 먹는다고 삼복꿀수박이 아니다. 이 품종을 만든 흥농종묘는 수박 재배 농민과 판매상, 소비자에게 모두 복이 온다는 뜻으로 ‘삼복(三福)’이라고 이름 붙였다. 하지만 삼복꿀수박의 운명은 복스럽지 못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흥농종묘 서울종묘 중앙종묘 청원종묘 등 국내 1∼4위 종자업체가 모두 해외 다국적기업에 매각됐다. 삼복꿀수박 불암배추 청양고추 관동무 같은 우리 종자를 우리 땅에 심으면서 로열티를 내야 했다. ‘종자 식민지’ 시대가 됐다.
▷세계 종자시장에서 몬산토를 비롯한 10대 다국적기업의 점유율은 70%를 차지한다. 곡물 종자는 유전자 변형 기술을 앞세운 미국, 시설원예 종자는 선택과 집중이 뛰어난 네덜란드가 선두주자다. 갖가지 토질과 혹독한 자연조건을 견뎌 낼 수 있는 신품종 개발과 공격적인 인수합병으로 연간 90조 원대의 종자시장에서 지배력을 키워 간다. 올해부터 국제식물신품종보호연맹(UPOV)의 의무를 수행하는 한국은 앞으로 10년간 8000억 원의 로열티를 지불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산 정약용이 펴낸 속담집 ‘이담속찬(耳談續纂)’에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는 말이 있다. 당장 배를 곯더라도 수확한 열매 가운데 가장 잘 여문 것을 종자로 남긴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강수량이 많고 화강암 토질이 많은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식물이 분포한다. 종자 자원의 보고(寶庫)가 될 잠재력을 지녔으나 국가 차원의 보호 노력이 소홀했다. 근대 이후 외국인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밀 벼 콩 수목 화훼 할 것 없이 수많은 종자가 유출됐다. 콩의 원산지라는 한국의 콩 자급률이 5%에 불과한 것은 아이러니다.
▷동부그룹이 흥농종묘와 중앙종묘를 사들였던 몬산토코리아를 인수했다. 배추 무 양파 수박 등의 종자 사업권을 넘겨받았다. 고추 토마토 파프리카 등은 못 가져왔다. 맵싸한 청양고추를 적진(敵陣)에 두고 온 건 속 쓰리지만 14년 만에 부분적이나마 ‘종자 주권’을 회복했다. 정부가 종자산업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하려고 추진 중인 프로젝트의 이름이 ‘골든 시드(Golden Seed)’다. 정확한 표현이다. 우량 토마토나 파프리카 종자의 국제 가격은 같은 무게 금값의 2배 수준이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씨앗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
http://news.donga.com/Series/List_70040100000002/3/70040100000002/20120915/49427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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