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9. 22:54

6월 27일 열릴 한·중 정상회담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한반도 그레이트 게임'의 일환이다. 박근혜·시진핑 회담은 김정은의 방중을 교섭했을 북한 특사 최룡해의 중국 방문과 갑작스레 결렬된 남북당국회담에 이어 한국·북한·중국 사이에 전개되어 온 국가 대(大)전략 게임의 중요한 한 수(手)다. 이 시점에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역사를 긴 호흡으로 차분하게 보는 태도다. 남북당국회담 개최 여부에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는 것은 개성공단 입주 업체와 이산가족들을 포함해 그 누구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대북 행보의 첫 단추를 냉철하게 끼우는 중이다.

한반도 그레이트 게임은 남북 외에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일본·러시아·EU·UN까지 포함하지만 핵심 중 핵심은 한반도와 중국의 관계다. 극단적 가정이긴 해도 미국이 한반도에서 손을 떼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시나리오인 데 비해 지정학적 이유에서라도 중국과 한반도의 관계를 단절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화제국의 존재는 한반도 주민에게 운명과도 같다. 중국적 세계 질서인 조공(朝貢) 체제의 구성원이었던 2000년 한반도 역사가 그걸 웅변한다.

20세기에서 21세기에 걸쳐 70년 가까이 진행되어 온 현대 한반도 그레이트 게임의 본질은 남북 '이국(二國) 통일의 정치학'이다. 우리 역사에서 이는 결코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장장 700여년이란 세월이 걸려 7세기 후반에 신라가 이룬 '삼국 통일의 정치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삼국 통일 과정에서 신라의 노력과 함께 중화제국이 결정적 역할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史實)이다.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 자는 역사에 보복당한다.

당 태종 이세민(599~649)이 돌궐의 위협을 제거한 640년대 이후 한반도 삼국 정립 상황에 본격적으로 개입한 중화제국은 삼국의 조공 사절들에게 '서로 평화롭게 지낼 것'을 주문한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피격 같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 '유관국들의 자제'를 촉구한 현대 중국과 판박이처럼 닮았다. 그러나 중원의 통일 왕조인 수와 당은 고구려가 중국과 전투를 거듭하는 와중에 조공을 계속했음에도 중화제국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보았고, 결국 고구려를 멸망시킨다. 북핵이 중화제국의 국익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중국이 판단할 때에만 남북통일의 정치 동학(動學)이 시작될 수 있으며 자신의 안보에 위협이 될 통일 한반도를 중국은 절대 용인치 않을 것이다.

대륙의 정세를 정확히 읽고 군사력과 외교력을 결합해 고구려의 전성기를 연 장수왕에 비해 중원의 세력 판도를 오독한 연개소문은 선군 정책으로 국력을 소모해 멸망의 길을 간다. 한강 유역과 비옥한 호남을 차지해 삼국 경쟁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던 백제는 중국의 힘을 빌려 고구려와 신라를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그 노력에는 삼국사기가 기록한 대로 고구려와 백제의 연이은 침공에 맞서 '북쪽을 치고 서쪽을 막느라' 영일이 없던 신라의 절박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결국 신라의 삼국 통일을 가능케 한 것은 생사를 건 신라의 부국강병책과 중화제국의 의도를 꿰뚫은 나당 동맹의 외교력이었다. 이처럼 21세기에도 한반도 그레이트 게임 골격에는 변화가 없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반도 그레이트 게임에 미국이 부가되었지만 중국의 사활적 중요성은 줄지 않는다. G2 미국과 중국이 북핵을 미·중 제국의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고 판정한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은 남북통일의 정치학이 개시되었음을 뜻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그 흐름을 본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 경제 교류와 외교 동맹에 기초한 한·중 우호 관계가 한·중 군사 동맹의 가능성까지 타진할 때 한반도 판세가 일변할 것이다. 북한의 '핵 보검'은 아무것도 벨 수 없는 녹슨 칼이 된다. 그때에만 북한의 진정한 변화가 가능할 터이다.

중국이란 존재는 한반도의 운명이다. 하지만 중국의 대국굴기에도 팍스 아메리카나를 대체할 팍스 시니카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일취월장하면서 강력한 국가를 자랑하는 중국이지만 진정한 의미의 '법치주의와 책임 정부'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은 강한 국가와 법치주의, 책임 정부를 시민의 힘으로 결합해 선진국으로 약진하는 중이다. 소프트 파워를 갖춘 매력(魅力) 국가로서 중강국(中强國)의 길을 힘차게 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통일신라와 당처럼 한국과 중국도 한반도 그레이트 게임의 공동 승자가 될 수 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13/20130613042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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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2:44

한 달 전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EU) 본부를 방문했다. EU 이사회 사무총장 등은 2011년 출범한 한·중·일 협력사무국(TCS)에 관심을 보이며 "동북아 지역공동체 구축 노력을 지켜보고 있다"면서 EU의 경험을 들려주고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귀국길엔 파리 근교의 장 모네 생가(生家)도 찾았다. 유럽통합의 아버지로 불리는 장 모네는 1·2차 세계대전 같은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전쟁 물자인 석탄과 철강을 유럽 국가들이 공동 관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랜 적대국이었던 프랑스와 독일, 베네룩스 국가들이 이에 공감하여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출범시켰다. EU의 출발점이었다. 그 후 유럽은 놀랄 만한 통합을 이루었고, 27개 회원국 5억여명의 '유럽합중국'은 전쟁 위협이 사라진 평화의 대륙이 됐다.

'동북아의 EU'는 불가능할까? 동북아에도 협력과 통합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한·중·일 3국은 2008년부터 연례 정상회의를 시작했고, 환경 등 18개 분야에서 장관급회의도 정례화했다. 3국 투자보장협정이 체결됐고 FTA 협상도 시작됐다. 2년 전 출범한 3국 협력사무국은 안중근 의사가 100여 년 전 '동양평화론'에서 주장했던 한·중·일 간 상설기구다. 시작은 늦었지만 발 빠른 움직임이다.

동북아는 세계에서 원전이 가장 밀집된 지역이다. 반세기 전 유럽의 '석탄철강공동체'가 '경제공동체(EEC)'를 거쳐 EU로 발전했듯이, 한·중·일도 '동북아원자력안전공동체(NNSC)'로 시작해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북한도 포함돼야 한다. 최근 베이징에서 만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한·중·일 3국 협력은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6월 말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시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에 관해서도 중국과 협의가 있을 것이다.

평화와 번영은 지역 협력과 통합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 EU가 주는 교훈이다. 이 과정에서 유럽이 '역사 화해'의 절차를 거쳤듯이, 동북아도 과거사를 털어내야 한다. 미래를 위해 과거 반성과 사죄가 선결 조건이란 점을 일본도 자각해야 한다. 유럽의 전쟁터였던 브뤼셀이 통합 유럽의 수도로 재탄생했듯이, 한 세기 전 강대국의 각축장이었던 서울이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허브로 우뚝 서길 기대한다. 그 역할을 한국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때이다.



 신봉길 한·중·일협력사무국(TCS) 사무총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12/20130612037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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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2:11

베이징의 한인 밀집 지역인 왕징(望京)에 ‘대성산관’이란 북한 음식점이 있다. 미모의 북한 여성들이 가무 공연을 펼쳐 인기다. 지난주 베이징 방문 길에 지인 몇 명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베이징에 주재하는 한 친구가 맥주를 시켰다. 북한 맥주 중에선 대동강 맥주, 그중에서도 2번 표시가 붙은 맥주가 가장 맛이 있다는 설명과 함께다.

한데 종업원이 갖고 들어온 게 달랑 두 병이다. 사람은 여럿인데 더 갖다 달라 하니 난색을 표한다. 나중에 사정을 알아보고 놀랐다. 중국의 북한 압박 조치가 여기에서도 작용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중국이 최근 대북 강경 정책을 펴는 건 주지하는 바다. 중국이 북한 금융기관에 제재를 가한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손님에게 맥주를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북한 식당의 현실을 보니 그 강도가 피부로 느껴졌다.

베이징에서 만난 한국인 중국 전문가는 “중국이 이젠 북핵에 반대한다는 걸 공개적으로 말한다”며 “과거와는 분명 다른 행태”라고 말했다. 중국인 학자는 “예전엔 마음에 담고만 있던 걸 지금은 밖으로 표출하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대북 정책에 근본적 변화가 있는 것인가. 중국인들은 이런 질문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왜 그럴까. 일부 변화가 있지만 한국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한·미·중 공조 차원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시진핑(習近平)의 중국이 현재 추구하는 건 중국꿈(中國夢)이다. 중국꿈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한 대외 정책 중 미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가 가장 중요하다. 지난달 미 캘리포니아의 랜초미라지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열심히 설명했지만 동의는 얻지 못한 정책이다.

신형대국관계란 간단히 말해 미·중 양국이 상호의 핵심이익을 존중하는 가운데 협력하자는 것이다. 글로벌 리더로서의 미국의 지위는 인정하겠지만 적어도 아시아 역내에선 중국의 위치를 이젠 미국이 존중해 줬으면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중국은 신형대국관계 구축이라는 큰 틀에서 주변국가와의 관계도 조정 중이다. 북한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과거엔 진영 논리, 또는 전통적 우호관계라는 측면에서 북한 편을 든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신형대국관계에 따라 중국이 아시아의 리더로 자리 잡으려면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 북한의 잘못에 대해서도 준열하게 따질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중국의 옌쉐퉁(閻學通) 칭화대학 교수가 말하는 중국 외교의 세 가지 변화가 눈길을 끈다.

첫째, 중국 외교가 과거 경제이익을 주로 따졌다면 이젠 정치이익을 더 생각한다. 둘째, 국제사회에서 보다 책임을 지려 한다. 셋째, 안보 문제에 더 적극적이다.

 

중국이 현재 북한에 대해 취하고 있는 단호한 정책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 중국이 추구하는 국가발전 전략,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외교정책의 변화에 따라 북한에 대한 정책 또한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이 한·미의 북한 압박에 동참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건 무리다. 이는 앞으로 평생 중국과 이웃해 살 수밖에 없는 운명체의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 하나를 던져주고 있다.

중국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의 필요성이다. 중국은 크다. 넓고 또 깊다. 광대한 영토를 무대로 수천 년의 역사가 종횡으로 펼쳐진 까닭에 평생 읽어도 다 읽을 수 없는 두꺼운 책이라고 이야기된다.

그런 중국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이젠 국가적 차원에서 국내 정권의 변화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중국을 연구·분석할 ‘중국전담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전략적 높이에서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중국을 다룰 기구가 요구된다.

신설 기구는 두 가지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는 ‘중국 컨트롤 타워’ 기능이다. 어떤 한 기구가 방대한 중국 전체를 상대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국내에 산재한 여러 중국연구기관이나 중국교류단체를 활용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신설 중국전담기구는 이들 단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이들이 얻는 각종 정보를 취합·축적하는 한편 이들의 중국 연구를 국내 수요에 맞게 유도해야 한다. 또 이들이 각각 확보하고 있는 거대한 인적 네트워킹을 국가의 필요에 따라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중국 서비스 센터’ 기능이다. 축적한 중국 정보를 기밀사항 외엔 일반에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똑같은 중국 정보를 얻기 위해 중복 투자하는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이는 하찮은 중국 정보 하나 얻기 힘든 현실을 감안할 때 매우 중요하다.이럴 때 우리의 대중 연구는 불필요한 힘의 낭비를 막고 효과적으로 그 깊이를 더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한정된 중국 관련 인적·물적 자원을 갖고 앞으로 열리게 될 ‘중국의 시대’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이 될 것이다.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은 대성공이었다. 그렇다고 앞으로의 중국 관련 일이 술술 풀릴 것이라 기대하는 건 너무 순진하다. 새로운 한·중 20년을 열기 위해선 새로운 대중 대비가 이뤄져야 한다. 준비하는 자만이 미래를 얻을 수 있다.


유상철 중국전문기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1966542&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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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21:06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6월 8일자 표지모델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함께한 모습이었다. 6월 7일과 8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 맞춰 게재된 것이었다. 동성애를 그린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패러디한, 한가로운 목장에서 카우보이모자를 쓴 채 밝게 웃는 두 사람의 패러디 사진은 미중 양국이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1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무실에서 만난 황병태 전 주중국 대사(78)는 이코노미스트의 표지를 보여주면서 “중국이 경제대국의 지위뿐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으로도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를 만나고 싶었던 것은 최근 열린 미중 정상회담과 27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그가 말하는 ‘중국’을 듣고 싶어서였다. 그는 대사로 지낼 때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에게 ‘영원한 주중대사’로 불릴 정도로 중국 지도부와 각별했다. 이번에 방한한 탕자쉬안(唐家璇) 전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도 특별히 따로 만남을 청할 정도로 늘 연락하고 있다. 황 전 대사는 최근에 중국식 국가자본주의에 주목한 ‘침몰하는 자본주의’(IBL)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인터뷰는 책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서구자본주의 대안은 중국국가자본주의

―책을 보면 중국식 국가자본주의가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할 대안이라고 보는 것 같다. 

“세계 경제가 성장이 멈춰 있고 소득 불균형으로 빈부격차가 심하다. 자본주의가 끝나는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201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앨빈 로스조차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세계 경제니 하는 것에 대해 묻지 말아 달라’고 말했을 정도다. 2008년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이 가진 모임은 또 어땠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금융위기 쓰나미로 전 세계 경제가 대혼란에 빠졌는데 경제학자들은 왜 말을 하지 않느냐’고 화두를 던졌지만 현장은 침묵이 지배했다. 작금의 경제학은 경제학이 아니라 ‘금융공학’이다. 이익에만 탐닉하다 보면 결국 1% 대 99%의 대립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현재 서구 자본주의는 자본 수익이 전부다. 자본 수익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사유화하는 것, 그것이 최고 가치다. 그런데 실제 처한 모습은 어떤가. 미국 자본주의는 재정은 악화일로에 있고 많은 사람이 건강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의 도전을 받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내부의 도전을 받고 있다고 본다. 신자유주의 경제에는 ‘사람’이 빠져 있다. 나는 이런 문제에 빠진 현재 서구 자본주의의 대안이 중국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주목하는가.

“중국은 공산당 일당독재 정치체제이지만 경제 제도와 경제 운용은 영구 임대 소유 토지제도와 주택 소유제도만 빼고 나머지 부문은 자본주의적 개인 소유 체제가 돼 있다. 시장경제 위에 공산 정치를 얹어 놓은 것이다.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용어로 표현하기도 한다. 사회주의 정치와 시장경제 자본주의 경제가 공존하는 특수한 구조물이지만 실제 경제 운용은 자본주의 질서의 틀 안에서 진행된다. 서구 자본주의도 소득 격차의 궁지에 빠져 있는데, 이 격차 해소가 시장의 자율질서 속에서 이뤄지지 못할 때 정부가 개입한다. 중국의 국가자본주의는 경제 자본주의와 정치 사회주의의 결합물인 만큼 이것이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이 온다는 것인가.

“서로 다른 정치 질서를 가진 두 개의 자본주의가 도래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역사의 판결을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서구 자본주의와 여러모로 구별되는 싱가포르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 식의 자본주의로 중국 시스템을 발전시켜 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당 지배의 정치와 자유주의 경제를 혼합한 리콴유의 정치·경제 체제는 전 세계적으로 아무런 저항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고 싱가포르는 모범적 선진국으로 꼽히지 않는가.”

황 전 대사는 중국의 정치 시스템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면서 국내 정치 시스템과도 비교했다. 

“중국 공산당은 그냥 공산당이 아니라 아주 특이한 공산당이다. 10년 단위로 지도자를 바꾸고, 통치권을 지도자 한 사람에게만 주지 않고 집단지도 체제를 유지한다. 일당 독재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공개적인 권력 구조를 통해 국민적 동의를 끌어내고 있다. 지금 중국 공산당 당원이 무려 8000만 명이다. 이들도 우수한 인재들인데 여기서 뽑고 뽑아 지도부가 만들어진다. 이들은 17, 18세 때 당원이 되어 업적을 쌓아가면서 올라간다. 시진핑도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 밑바닥부터 올라온 사람 아닌가. 이러니 중국 국민들은 공산당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중국을 이만한 나라로 만든 게 공산당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어떤가. 선거 때만 재래시장 돌아다니면서 서민들과 악수한다. 그런 걸로 국민들이 공감하겠나. 정치가로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국민이 납득하고 동의할 만해야 한다.”

화제를 최근 미중 정상회담으로 돌렸다.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는 무엇인가. 

“중국이 변하고 있다. 중국은 10여 년 전만 해도 담을 쌓고 ‘개구멍’으로 바깥세상을 봤다. 자기가 필요한 것만 본 거다. 그만큼 폐쇄적이었다. 그런데 이제 개구멍을 뚫고 밖으로 나왔다. 오바마와 만난 시진핑은 개구멍을 뚫고 대문을 열고 나온 중국의 상징이다. 시진핑이라는 사람 자체가 개방적 도시인 상하이와 항저우를 중심으로 활동해서 개방적 성향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6월 8일자 이코노미스트 표지.

북한, 하루아침에 허허벌판 내몰려

―차이메리카(차이나+아메리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중국 파워가 막강해졌다.

“지난 세기가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팍스 차이메리카나’의 시대가 될 것이다. 중국이 하루아침에 강국이 된 게 아니다. 그간 축적된 경제적 부가 바탕이 된 거다. 경제 대국이 됐고 이제는 세계적인 정치 파워를 가지려 하고 있다. 내가 주중 대사(1993∼95년)로 일할 때 자랑스러우면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한국과 중국이 전자, 통신, 비행기, 원자력 등 4개 분야 산업을 공동으로 연구하고 개발, 생산해서 판매하는 한중산업협력을 하자고 제안해 양국의 경제부처와 장관들을 설득하고 노력한 끝에 마침내 체결이 됐다. 그런데 내가 임기가 끝나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사업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결과를 내지 못해 아쉽다.”

―중국이 ‘담을 허물고 바깥세상으로 나오면서’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미묘해졌다.

“불과 몇 달 새에 북한과 중국의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북한은 중국과 함께 개구멍으로 바깥세상을 보고 있었는데, 지금은 (중국이라는) 지붕이 무너진 격이다. 시진핑 시대를 ‘뉴 차이나’라고 하지 않는가. 새로운 중국이 선포되면서 수십 년 동안 공고했던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달라지게 됐다. 북한은 하루아침에 허허벌판에 내몰린 것이다. 더욱이 북한의 최근 도발에 우리 정부가 꿈쩍 않고 있다. 북한은 지난 60년간 선군정치를 기본으로 한반도에서 미군을 핵무기로 몰아내고 남한을 접수하자는 기본 패턴이 무너진 상황이다.”

―중국의 변화가 남북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북한은 고립될 위기에 처했다. 상황이 악화되다 보면 이판사판으로 극단적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 의지가 단호한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비핵화 논의는 접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향을 전환해 북한을 ‘제2의 미얀마’로 이끌어야 한다. 새로운 살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개혁·개방을 가속화하고 있는 미얀마처럼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도 북한에 ‘미얀마의 길을 따르라’는 메시지를 거듭 보내고 있지 않나.”

―이번에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나.

“(남북관계를 풀) 절호의 찬스이다. 북한을 제2의 미얀마로 이끄는 열쇠는 시 주석이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전까지 북한에 대해 우리가 취했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정책은 과거 패러다임의 연장이다. 북한을 견제할 게 아니라 중국과 함께 북한에 출구를 만들어주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김정은 체제의 개혁·개방 움직임을 중국이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 대중(對中) 외교의 중심이 돼야 한다.”


현실적인 ‘제2의 미얀마’ 길 제안해야

그는 “시 주석이 박 대통령에게 호의를 갖고 있는 것도 중요한 요소”라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이 북한 카드를 버릴 수도 없고, 미국이 북한 때문에 한반도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것도 중국 입장에서는 껄끄럽다. 박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북한이 걸을 수 있는 ‘제2 미얀마’의 길을 제안하고 이에 대해 서로 교감하면 북한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큰 프로젝트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중국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크게 호감을 갖고 있다. 중국의 국가 주도 경제개발 전략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발정책이 모델이 됐다. 그런 만큼 박근혜 대통령과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용이할 것으로 생각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국 경제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썼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외교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해야 한다.”

―최근 중국의 태도 변화와 맞물려 남북 회담에서 의미 있는 논의가 오갈 것으로 기대됐는데 무산됐다. 

“북한은 중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동생이 형을 따르듯 의존했지만 이제는 거리가 생겨버렸다. 이런 한편으로 북한에게 남한은 ‘공작’의 대상이지, 외교의 대상이 아니다. 남북회담이 무산된 것도 그런 ‘공작’의 연장선으로 본다. 그러나 북한의 이런 ‘공작’의 방식이 더이상 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 행정학 석사, 버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제기획원 공공차관과장, 경제협력국장, 차관보를 역임하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는 데 일조한 대표적 경제 관료다. 13, 15대 국회의원, 주중대사, 한국외국어대 총장, 대구한의대 총장을 역임하면서 정계와 관계 학계 경험도 두루 많은 그는 여든을 바라보는 지금도 중국어 일본어 영어에 능통하며 오전 6시에 일어나 중국 일본 잡지와 신문 등을 꼼꼼히 읽는다고 한다.


인터뷰 김지영 기자



http://news.donga.com/3/all/20130617/55906485/1

Posted by 겟업
2013. 9. 19. 20:45

“예전에는 내가 다니는 회사가 잘되는 것이 나라의 희망이요 나의 행복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지금은 그게 사라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미나시타 기리유·여·1970년생·사회학자)

“비정규직 젊은이들이 점점 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 시스템을 밑바닥부터 개혁해야 한다.”(우노쓰 네히로·남·1978년생·평론가)

“우리 세대의 가난은 자식 세대에까지 그대로 유전될 것만 같아 불안하다.”(고마자키 히로키·남·1979년생·회사원)

2012년 1월 1일 NHK에서 방송된 ‘젊은이가 해결한다! 일본의 딜레마’란 TV 프로그램에 나온 일본인 2030세대들의 하소연이다. 10명의 출연자는 1970∼1985년에 태어난 사람들로 교수, 연구원, 기업가, 평론가, 회사원 등 직업도 다양했다. 방청객과 프로그램 진행자도 모두 20, 30대만으로 채웠다. 이날 출연한 시부야 도모미 도쿄경제대 교수(여·1972년생)는 “남자들에게 묻고 싶다. 자식을 낳아 키울 만한 경제적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출연자들은 대부분 “지난 10년간 ‘격차’(양극화)가 심해진 것은 기성세대 탓”이라고 몰아붙였다. 기성세대가 자신들은 절대 손해보지 않기 위해 젊은이들을 비정규직으로 내몰아 구조조정 충격을 완화하려 한다는 주장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기성세대가 정해 놓은 운명에 우리를 맡길 수 없다” “20대가 단결하면 나라가 바뀔 수 있다”며 동조하는 여론이 줄을 이었다. 일본 내 평론가들은 “TV 속에서 ‘세대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NHK는 당초 신년 특집으로 1회만 내보낼 예정이었던 이 프로그램을 아예 한 달에 한 번씩 정규방송으로 편성했다. 지금까지 총 9회가 나갔는데 선거, 교육, 경제금융, 연금 시스템 등 사회적 현안들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불안과 답답함, 분노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애초에 세대전쟁은 기성세대에서 먼저 시작했다고도 할 수 있다. “긴 불황의 원인은 우리가 아니라 너희”라고 주장한 것이다. 포문을 연 것은 2009년 11월 출간된 ‘혐(嫌)소비 세대에 대한 연구’라는 책. 각종 수치와 근거들을 내세우며 “버블 시대 붕괴를 경험한 젊은 세대들이 소비를 잘 하지 않아 경제 불황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각종 경제 잡지에서도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젊은 세대들이 뭔가 좋은 것이 있으면 ‘사고 보자’는 소비 붐이 있었는데 요즘은 이게 없어졌다”며 “소비하지 않는 젊은이들 때문에 사회에 활력이 없어졌다”고 했다.

실제로 일본 젊은이들은 돈을 안 쓴다. 아니 쓰고 싶어도 쓸 여력이 없다.

가구소득과 소비실태를 보여주는 일본 국세청의 ‘민간급여실태 통계조사’에 따르면, 30∼34세 평균 연봉이 1997년 449만 엔(약 4500만 원)에서 2010년 384만 엔(약 3900만 원)으로 떨어졌으며, 20대도 비슷한 추이를 보인다. 여기에 비정규직 비중은 꾸준히 상승해 현재 일본 내 25∼34세 직장인의 약 4분의 1이 비정규직이다. 아버지 세대가 평생 고용으로 정년을 보장받았다면, 아들 세대는 계약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앞으로 소득이 오를 것이란 희망조차 이들에게는 없다. 

‘소비하지 않는 젊은이들’ 때문에 가장 타격을 받은 곳이 기업이다. 대표적인 곳이 도요타자동차. ‘굳이 차를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 때문에 내수 확보가 안돼 고전하고 있다.

이 회사가 시리즈로 내보내고 있는 TV 광고는 눈물겹기까지 하다. 인기만화 ‘도라에몽’의 주인공 노비타를 등장시키는데 스토리는 이렇다. 만화 속 소년 노비타는 30세가 됐지만 면허도 없고 차도 없다. 좋아하는 여자와 어렵사리 데이트에 성공하지만 기차를 타고 근교에 나갔다가 숲에서 길을 잃는다. ‘멋진 차’를 타고 우연히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어린 시절부터 천적이었던 쓰네오. 여자친구는 결국 쓰네오의 멋진 차를 타고 노비타를 떠난다. 광고의 마지막 자막은 ‘면허를 따자. 펀 투 드라이브, 어게인(FUN TO DRIVE, AGAIN)’이다. 

실제로 일본자동차공업회가 발표한 2011년도 시장동향조사에 따르면, 운전 빈도가 가장 높은 주 운전자 중 20대 비중이 1999년 16%에서 2011년에는 8%까지 떨어졌다. 같은 시기 60대 비중은 15%에서 35%로 늘었다. 

최근 일본 업계는 젊은이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3대 품목으로 자동차, 해외여행, 맥주를 꼽는다. 그 외에도 TV 등 가전제품, 담배 등의 기호품도 다른 세대에 비해 일본의 20대들이 소비를 줄이는 대표적인 제품이다. 예를 들어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스마트폰 하나면 만족’이라는 인식도 늘어 굳이 다른 가전제품에 눈을 돌리지 않는 식이다. 

일본 젊은이들이 이처럼 소비를 줄이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돈이 없다’는 것 말고도 다른 사회학적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우선 지금 일본의 2030세대는 호황과 불황이 극단적으로 오가는 롤러코스터 경제를 목격한 세대이기 때문에 소비행위 자체에 별 관심이 없다는 분석이다. 어린 시절 풍요로움을 느끼며 자라다 어느 날, 아버지 회사가 도산을 하고, 은행이 파산하는 것을 보면서 ‘빚이라도 내 물건을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생각하기 시작한 첫 세대라는 것이다.

또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 보니 아예 욕심 자체를 내지 않는 ‘신(新)무소유’ 세대가 등장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삶의 철학은 “(물질적으로 완벽하지 않더라도) 현 상태에 만족하자”는 것이다. 최근 일본 내각부가 조사한 국민생활 여론조사는 이를 잘 반영한다. 20대의 생활만족도가 경기가 좋았던 1971년엔 48%였는데 경기가 불황인 2011년에는 오히려 65%까지 오른 것이다. 이는 생활수준이 높아졌다기보다 ‘없이 살아도 만족하는 젊은이’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이들을 지칭해 ‘사토리 세대’라 부른다.

최근 일본에서는 한 누리꾼이 올린 ‘1980년생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를 가르는 기준’이란 글이 화제가 됐다. 우선 1980년생 이전 세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차를 갖고 있으면 멋지지, 그녀와 데이트 할 때는 차로 데리러 가야 해, 남자라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차를 사고, 내 집을 마련해야 해, 2차로 가라오케는 가야 술자리가 마무리, 상사의 말에는 거스르지 않아야지, 잔업은 미덕.’

그렇다면 1980년생 이후 세대는 어떨까.

‘차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문제없지. 오히려 유지비가 더 들어 별로, 그녀와의 데이트는 중간 지점 지하철역에서 만나, 집은 빌려도 되지, 차라리 이사다니며 여러 곳에 살아봐서 더 좋아, 2차는 안 해도 돼, 모두가 어깨동무하고 노래 부르는 가라오케는 오 NO! 상사도 틀릴 수가 있어, 의견이 다른 건 당연하지, 의미 없는 잔업 따위 할 필요가 없어.’

언뜻 한국에서도 최근 종영한 드라마 ‘직장의 신’이 겹쳐진다. 잔업 노, 회식 노를 외치며 비정규직 인생을 자처하고 나선 주인공의 모습에 한국 젊은이들도 공감했다. ‘직장의 신’의 원작인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이 일본에서 붐을 일으켰던 때가 5년 전인 2007년. 한국 젊은이들의 5년 뒤 모습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한석주 노무라종합연구소 서울 컨설턴트



http://news.donga.com/3/all/20130524/55373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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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7:09

한국 증시에 위기의 그림자가 짙다. 지난 1년 주가(코스피지수)는 약 3.5% 떨어졌다. 이 와중에도 주가가 150% 이상 오른 종목이 있어 눈길을 끈다. 한미약품이 주인공. 시장 전문가들은 ‘중국 요인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중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베이징의 서우두(首都)공항 근처에 자리 잡은 베이징한미약품을 찾은 이유다.

회의실에 들어서니 벽에 걸린 큰 중국 지도가 눈에 들어온다. 지도 곳곳에 붉은 점이 빼곡히 찍혀 있다. ‘영업 활동 지역을 표시한 것’이라는 게 임해룡 법인장의 설명이다. 중국 전역에 약 900명의 영업맨이 뛰고 있단다. 그는 “어린이 설사 변비약 ‘마미아이’와 기침 감기약 ‘이탄징’은 아동 시장의 약 70%를 점유하고 있다”며 “이제는 성인용 시장 공략에 본격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실적과 미래 전망이 주가를 끌어올린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중국 소비자의 힘이다.

중국 소비자가 주가를 끌어올린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빙그레는 바나나맛 우유가 중국에서 ‘대박’이 나면서 지난해 주가가 약 100% 올랐다. 카지노 업체인 파라다이스 주가는 밀려드는 중국 관광객에 힘입어 지난 1년 사이 역시 두 배 올랐다. 화장품·패션 등 중국 소비자에게 노출된 기업 주가 역시 중국 판매 상황에 따라 등락을 거듭한다. 그렇게 우리는 ‘중국 소비자들이 우리나라 기업의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중국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에 적극 대응했기에 가능했던 얘기다.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중국 비즈니스는 ‘얼마나 싸게 만드느냐’가 핵심이었다. 가급적 낮은 원가에 제품을 만들어 미국·유럽 등에 수출하는 게 관건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성장 동력을 투자·수출이 아닌 소비에서 찾겠다고 나서면서 상황은 바뀌고 있다. ‘제조 시대’에서 ‘소비 시대’로 트렌드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 시대에는 가급적 비싸게 파는 기업이 이긴다. 그러기에 브랜드가 중요하고, 품질 관리가 필요하고, 또 마케팅이 요구된다. 중국에서도 이제는 이 같은 조건을 만족할 수 있는 기업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이 제조업에 치중했던 시기, 우리 기업은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해 큰 이익을 얻었다. 이는 1997년, 2008년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기도 했다. 미국이 돈을 거둬들이면서 또다시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중국에서 위기 극복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면, 이번에는 소비시장이 답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베이징한미약품의 R&D센터에 있는 50여 마리의 원숭이가 힌트다. 이들은 중국 당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허가받은 실험용 동물이다. 사람 키우는 것보다 돈이 더 많이 든단다. 그럼에도 이들을 기르는 것은 현지 실정에 맞는 최적의 약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그 옹골진 현지화 노력이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 연구실 원숭이는 소비 시대 중국에 어떻게 적응할지를 시사하고 있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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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6:40

‘중국’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그의 말이 거칠어졌다. 흥분한 듯했다. ‘한마디로 남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중국인들은 돈 버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 현지 경제 사정이야 어찌 되든 상관하지 않는다” “자기들 사정이 바뀌었으니 계약을 변경해야 한다고 생트집을 잡는다”는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지난달 초 미얀마 양곤에서 만난 흘라잉 스마트그룹 회장과의 인터뷰는 그렇게 중국인에 대한 성토로 끝났다.

미얀마는 중국이 지난 20여 년 동안 공들여 오던 곳이다. 국가 차원에서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협력 프로젝트를 곳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에 대한 미얀마인들의 시각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미얀마뿐이 아니다. 기자가 최근 2~3년 취재 차 방문했던 울란바토르(몽골), 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 하노이(베트남) 등에서 만난 기업인·관리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필리핀이나 일본 등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하나의 나라(一國)’라고 말하는 대만·홍콩 사람들에게도 중국은 경계의 대상이었다.

이웃에 거대한 국가가 출현하면 주변 나라들은 본능적으로 위협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힘의 균형이 깨질 때 전쟁은 그 균열의 틈을 비집고 싹을 틔우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역시 그런 역사를 여러 번 겪어야 했기에 대국 중국을 보는 주변의 시각은 불안하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경계감도 높아지는 꼴이다.

어찌하면 ‘존경받는 대국’의 이미지를 심을 수 있을까? 팜 시 판 하노이대 교수는 “중국이 후왕박래(厚往薄來)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공자가 제시한 ‘대국이 되기 위한 아홉 가지 요건(大國九經)’ 중 마지막 사항. ‘(주변 제후에게) 갈 때는 후하게 주고, 올 때는 적게 받으라’는 뜻이다. 팜 교수는 “주고받는 물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주변국의 마음을 사라는 게 이 글귀의 참뜻”이라며 “이웃 국가로부터 존경받지 못한다면 중국은 절대 대국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요즘 중국 외교의 화두는 ‘대국(大國)’이다. 미국과는 ‘신형(新型) 대국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하고, 지도부의 잇따른 해외 방문을 두고는 ‘대국외교’의 면모를 보였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주변국의 불안을 어떻게 해소시킬지에 대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신형 대국관계를 두고 ‘원교근공(遠交近功)’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된다. 아시아의 패권 장악을 위해 먼 곳에 있는 강대국을 상대로 정지작업에 나섰다는 의혹이다.

흘라잉 스마트그룹 회장은 ‘미얀마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중국은 이제 미국과 경쟁해야 할 처지’라고 말한다. 미얀마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을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란다. 덕택에 ‘아시아로의 회귀’를 선언한 미국은 성큼성큼 발을 들여놓고 있다. 어디 미얀마뿐이겠는가. 동아시아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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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3:07

핵과 미사일로 위협당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놀랄 정도로 덤덤하다. 북한이 바라는 바가 바로 남한 사회의 동요와 불안이기에 이런 태도는 기본적으론 바람직하다. 그러나 가끔은 지나치게 무심한 듯도 하다. 위협에는 의연한 태도를 보이되 현실을 냉정히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도 필요하다.

국제 전략 문제의 권위자인 제러미 수리(Jeremi Suri) 텍사스 대학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북핵 위기의 지속은 동아시아의 안정을 흔들고 핵 확산 중단을 위한 지구촌의 노력을 해치기에 북한이 도발하기 전에 군사시설에 국한된 선제적 정밀(도려내기) 타격을 주문했다. 북한의 위협을 방치하면 한국·일본의 핵무장을 자극할 것이고, 이란과 같은 고립된 국가를 부추길 것이라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그는 북한에 대해 먼저 정밀 타격을 해도 북한의 보복 공격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았다. 이는 보복이 결국 자살행위라는 것을 북한 정권이 잘 알고 있고, 중국도 이를 용인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참고로 수리는 위스콘신대 사학과 교수였던 2005년, 강정구 교수가 북한의 6·25 남침을 찬양하는 등 물의를 일으켰을 때 조선일보 특별 기고(10월 18일자)를 통해 강정구 교수 논리의 허구성을 낱낱이 지적하며 "핵 기술을 보유한 북한이 고립되고 호전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남아있는 세계에서 한국전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며 "진정한 위협은 북한에서 오고 있음을" 직시하라고 조언했다. 그의 우려는 현실화됐다.

북핵 위기는 단지 한반도나 동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문제이며 테러리즘과 밀접히 연결돼있다. 실패한 국가(failed state)와 테러 조직은 서로 친밀성을 갖기 쉽다. 빈 라덴의 알카에다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와 협조해 일으킨 테러는 좋은 예다. 그런데 북한이라는 실패한 체제는 핵이라는 요소를 더 갖고 있다. 국제 안보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 하버드대 교수는 이제 국가들의 핵 확산보다도 더 심각한 위협은 테러리스트들이 대도시를 대상으로 벌일 핵 테러 가능성이며, 국제사회는 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핵 테러는 엄청난 파괴력을 갖고 있기에 가장 효과적인 테러 수단이 된다. 목표가 뉴욕이 될 수도 서울이 될 수도 있는 등 예측 불가능하기에 더 공포스럽다.

핵무기·핵물질이 국제 테러 집단에 넘어갈 가능성은 크게 보아 네 가지다. 구(舊)소련이 해체되면서 흘러나왔을 가능성, 그리고 파키스탄·이란·북한에서 흘러나올 가능성이다. 구소련의 핵무기는 비교적 순조롭게 러시아로 이관됐으며, 파키스탄도 면밀히 감시되고 있다. 이란의 살상용 핵 기술은 아직 초보적 수준이고 만일 상용화 단계에 이른다면 이스라엘이 그것을 확실히 무력화할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다. 독자적으로 국민을 먹여 살릴 수 없는 이 체제는 비싼 값에 핵무기·핵물질을 팔 의향이 있으며 테러 집단은 이것을 구입할 용의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앨리슨 교수를 비롯한 안보 전문가들은 최근 북한이 미사일·핵무기 관련 기술을 아무 데나 파는 '편의점'이 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런 구조 때문에 북핵은 세계가 우려하는 초미의 관심사다. 만약 이 사태가 더 진전된다면 정밀 타격 가능성은 높아진다. 다행히 이런 사태 전개를 막을 요인도 존재한다. 바로 중국의 변화다. 북의 전통적 혈맹인 중국은 5세대로 지도부 세대교체를 끝냈다. 새 지도부는 문화대혁명의 혼란을 청소년 시절 경험했고 문혁 종료 즈음에 대학에 입학한 세대로서 선배 세대가 갖는 북한에 대한 근본적 애정이 적다. 중국 정치협상회의 자칭궈 상무위원은 며칠 전 "북한이 도발을 감행할 경우, 한국은 북한에 보복할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까지 발언했다. 예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발언이다. 김정은도 할아버지·아버지가 중국과 가졌던 끈끈한 유대감이 없고, 오히려 이복형인 김정남이 중국과 관계가 더 깊다. 또한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또래인 박근혜 대통령 등 남한 인사들과 인적·정서적 유대가 있는 편이다.

북핵 문제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함의를 갖고 있다. 북한 정권이 오판을 계속할 경우 정밀 타격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크고, 그들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을 것이다. 북한은 바뀐 국제 환경을 이해하고 국제사회와 소통하는 데 눈을 돌려야 한다. 도발을 무턱대고 옹호할 나라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김정은 체제가 이제라도 마음을 바꿔 무모한 위협과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를 원한다면 대한민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넓은 가슴으로 북한을 품으며 공생과 공영을 추구할 것이다.



강규형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현대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12/20130512006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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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2:32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에서 외국인 연구원 신분으로 2008년 1년간 머물렀던 적이 있다. 어느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한 일본 언론인을 만났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서울 특파원과 홍콩 특파원을 지낸 지한(知韓)·지중(知中) 인사였다. 술이 몇 순배 돌자 그는 "한·중·일 삼국인 중 자기 속에 있는 이야기를 곧바로 말하는 사람은 한국인밖에 없다. 오늘은 (일본인인) 내가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겠다"며 말을 꺼냈다.

이야기는 이랬다. 일본이 가장 우려하는 상황은 한국이 중국과 연대하는 경우다. 중국 위안화는 조만간 아시아 지역 기축통화가 된다. 이때 한국이 중국과 손을 잡으면 일본은 큰 위기를 맞는다. 과거 대륙을 지배했던 몽골은 고려(高麗)와 함께 일본을 공격했다. 몽골은 당시 배 만드는 기술이 없었다. 배를 만든 건 고려였다. 대륙의 힘과 한반도의 기술이 만나는 상황이 가장 두렵다. 이렇게 말했던 그는 2년 후 한국이 중국과 연대해 일본을 상대로 '안보·경제 전쟁'을 벌이는 경우를 상정한 소설책을 냈다.

여몽(麗蒙) 연합군이라는 740년 전 옛일을 사례로 든 건 좀 억지다 싶었는데 나중에 이해가 됐다. 외세 침입을 받은 적이 거의 없는 일본은 당시 일을 엄청난 공포로 기억하고 있었다. 일본 역사 교과서는 몽골·고려군 내습(來襲)을 일본사 10대 사건 중 하나로 적고 있다. 일본어에도 공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우는 아이 울음을 그치게 할 때 예전엔 "무쿠리고쿠리(むくりこくり) 귀신이 온다"고 했다 한다. '무쿠리'는 몽골을, '고쿠리'는 고려를 뜻한다. 일본인들은 규슈(九州) 앞바다에 새까맣게 밀려든 몽골·고려군 전함을 보면서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강렬한 기억이 뇌리에 새겨진 것이다.

일본 언론인이 우려하던 한·중 연대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국수주의 민얼굴을 드러낸 이후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에 이어 조만간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는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지난달 한·일 회담을 취소하고 중국을 찾아 리커창(李克强) 총리, 왕이(王毅) 외교부장을 만났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이 없다. 한국 정부가 일본과 소원한 관계에 빠지는 걸 원한 까닭이 아니다. 이는 아베 내각이 자초한 일이다. 일본이 진정 한·중 연대와 일본 고립을 두려워한다면 사전에 이를 막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이 일본 국익에 부합하는 일이다. 아베 총리는 그러나 "한·중에 신경쓰지 않는다"며 막다른 골목으로 질주하고 있다.

여몽 연합군이 일본 열도에 이르렀을 때 마침 '신풍(神風)'이 불어 일본을 구했다 한다. 일본은 70년 전에도 '신풍'을 기대했으나 '가미카제(神風)' 자살 공격은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다시 '신풍'을 기다린다면 그건 우연에 나라를 내맡기는 무책임한 일이다. '가미카제'는 더 이상 인류의 양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아베 총리가 결자해지(結者解之) 않는다면 일본의 미래는 밝지 않다.


이한수 국제부 기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07/20130507029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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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9. 12:29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지난 8일 밤 늦게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의회 영어 연설을 보면서다. 박 대통령이 영어를 잘한다고 익히 듣긴 했지만 행여 발음이 꼬이지 않을까, 갑자기 말문이 막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은근히 가슴을 태웠다.


연설은 무난히 끝났고, 감동적이란 평가도 따랐다. 어떤 이는 영어 실력만큼은 싸이가 한 수 위라는 엉뚱한 트집을 잡기도 했지만 나는 ‘우리 대통령이 참 고생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편한 우리말 두고 왜 굳이 영어 연설을 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의 마음을 사기 위한 애잔한 노력이 아니고 뭔가. 그 나라 말로 소통하려는 건 그 나라와 국민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표시다. 영어 발음에 ‘빠다(butter)’ 맛이 얼마나 나느냐는 중요치 않다. 정작 감동을 주는 건 또박또박 전하려는 성의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서울에 온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외대에서의 특강을 “같이 갑시다”라는 우리말로 마무리한 게 진한 여운을 남기지 않던가.

여성인 박 대통령의 연설은 1943년 아시아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미 의회에서 영어 연설을 한 쑹메이링(宋美齡) 여사를 떠올리게 했다. 장제스(蔣介石)의 부인인 그는 “여러분의 말로, 여러분과 같은 마음으로 말한다”며 미국의 도움을 호소해 기립 박수를 받았다.

영어를 사용하고 싶은 열정만큼은 장제스의 라이벌 마오쩌둥(毛澤東)도 뒤지지 않았다. 회화 수준엔 이르지 못했지만 영어 단어는 많이 외웠다는 게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전언이다.

마오는 자신의 영어 공부에 세 가지 이유를 댔다. 첫째는 재미있어서, 둘째는 두뇌 전환을 위해, 셋째는 영어로 된 정치와 철학 서적을 원문으로 읽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마오의 비서 린커(林克)는 가방 속에 늘 마오의 영어 교재를 넣고 다녔다. 마오 자신의 중국어 저작물을 영어로 번역한 것 등이 그의 주요 학습 교재였다.

박 대통령은 다음 달 마오의 나라인 중국 방문이 예정돼 있다. 북핵 해결은 물론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은 미국 못지않게 우리에게 중요한 나라다. 그 중국의 마음을 어떻게 살 것인가.

박 대통령이 다시 한 번 고생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국의 심장부 베이징에서 중국어 연설을 하는 것이다. 베이징대학이나 칭화(淸華)대학 등 중국 최고의 명문 캠퍼스를 무대로 한·중 공동 발전의 꿈에 대해 중국어로 연설하는 모습을 그려 본다.

외국 정상 중에서 이제까지 중국어 연설을 한 사람은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그는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뒤 베이징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으며 루커원(陸克文)이란 중국어 이름까지 갖고 있는 중국 전문가다.

이에 비해 박 대통령은 중국 비전공자다. 그리고 그의 중국어는 EBS 교재를 통해 5년간 독학한 결과다. 박 대통령의 중국어 연설이 몇 배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유다.

지난 5년간 MB정부와 편치 않은 관계를 보냈던 중국이 박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는 크다. 겸손하고 편향적이지 않으며 중국어와 중국문화에도 정통해 중국과 보다 소통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 언론도 이제까지 박 대통령에 대한 호의적 보도 일색이다. 어려운 시기에 처했을 때 풍우란(馮友蘭)의 『중국철학사』를 읽고 마음을 다스렸으며, 『삼국지』의 한 영웅인 조자룡(趙子龍)을 좋아한다는 점 등을 미담으로 소개한다.

그런 중국을 상대로 중국어 연설만큼 효과적인 배려는 없어 보인다.

반면교사도 있다. MB정권 때 상하이 총영사로 발령받은 인사가 있었다. 영어 실력이 뛰어난 그는 부임 후 중국인들과의 한 모임에서 영어 연설을 했다. 이게 자존심 강한 상하이인들의 비위를 건드렸다.

중국어를 못하면 그냥 통역을 두고 한국말로 연설하면 될 것을, 중국 땅에서 웬 영어 연설이냐는 것이었다. 이에 우리 총영사가 한동안 냉대를 받아 마음고생이 심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현재 강조하는 게 중국꿈(中國夢)이다. 그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실현이 중국꿈이라 말한다. 배경엔 19세기 중엽 이래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아 치욕스러운 100년(百年恥辱)을 보낸 걸 잊지 말자는 외침이 깔려 있다.

그만큼 중국은 외부의 존중에 목말라 한다. 그런 중국을 상대로 한 외국 정상의 중국어 연설은 중국에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박 대통령이 오랫동안 중국어를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면 중국어 원고를 준비해 또박또박 읽거나 아니면 연설의 핵심 부분만을 중국어로 연설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중요한 건 정성이지 발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중국어 연설은 한국 사회에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계기가 된다. 해방 후 이제까지 우리 사회는 영어 중심의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어는 언제나 입시의 주요 과목이었고 미국에 유학해야 출세하기 쉬운 세상이었다.

박 대통령의 중국어 연설은 이런 시대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21세기를 주도하기 위해선, 또 그런 대한민국의 리더가 되기 위해선 영어권과 중국어권 모두를 아우르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 산 교육이 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중국어 연설을 편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유상철 중국전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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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5. 03:44

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해 강하게 압박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북한의 강한 자존심, 중국에 대한 불신(不信), 그리고 북의 반발을 든다. 북·중 관계에는 분명 이런 측면이 있다. 특히 북한 지도부의 중국 불신은 뿌리가 깊다. 1950년대 김일성은 마오쩌둥의 군사 지원을 받으면서도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려고 정권 내 친중(親中) 인맥을 제거했다. 항일운동가 출신으로 펑더화이 중공군 총사령관의 친구인 무정(武亭) 제2군단장을 비롯해 방호산·박일우 등 연안파 수백 명을 이때 숙청했다.

김정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몇 년 전 한국 기업인을 만났을 때 "중국을 안 믿는다"고 했다. 그는 중국 방문담을 털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중국은 우리와 상의도 없이 이튿날 아침 만리장성 구경 일정을 잡았더군요. 나는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안 가고 아랫사람들만 보냈지요. 왜 안 갔는지 아십니까? 만리장성을 보라는 의도가 뭐겠습니까. '조선은 만리장성 밖의 작은 나라이니 알아서 처신하라'는 뜻 아니겠어요?" 그는 1992년 중국이 한국과 수교하자 배신당했다며 중국 고위층과 7년이나 교류를 중단했다. 그의 아들 김정은은 이번 설날 세계 30개국 정상에게 연하장을 보내면서 중국 지도자들은 쏙 빼놓았다.

중국은 북한의 한 해 식량 부족분의 절반(30만~40만t)과 원유 소비량의 절반(50만t)을 공짜로 대준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원유와 식량 수출을 차단해 북한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지만 이 카드를 잘 꺼내지 않는다. 자존심 강한 북한이 호락호락 중국에 굴복할 것 같지 않은 데다 부작용이 더 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경제 압박 카드를 썼다가 통하지 않으면 더 이상 쓸 카드가 없어진다. 그 때문에 양국 관계가 파탄 나면 미·일(美日) 군사동맹에 대응하는 '전략적 자산' 하나를 잃게 된다. 중국이 그동안 북한 비핵화보다 북한 정권의 안정을 우선하면서 대북 압박을 자제한 데는 이런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러나 북한이 명실상부한 핵 보유국으로 등장할 경우 이런 셈법은 통하기 어렵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통해 소형화된 핵탄두의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면 일본과 한국에 핵무장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미·일 MD(미사일 방어) 체제가 확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또 북한이 핵 비확산 카드를 놓고 국제사회에 대가를 요구하고 미국 등이 이를 거부할 경우 전쟁의 먹구름이 동북아를 뒤덮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왔을 때 북한이 식량과 에너지 때문에 중국 말을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이 핵 강국이 되면 중국이 지키려는 기존 질서는 의미를 잃게 된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최선은 국제사회가 한 단계 강화된 '채찍과 당근'으로 북한 스스로 핵실험을 중단하도록 압박하는 방법밖에 없다. '강화된 압박 카드'는 북에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전방위 압박으로 정권이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북이 핵을 포기하면 정권 안정과 경제 회복의 길이 열린다는 확신도 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의 역할이다. 만약 북이 이 고비를 넘기고 핵무장의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중국이 가진 대북 지렛대의 쓸모가 크게 떨어진다는 점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중국은 지렛대의 '유통기한'이 다하기 전에 한·미(韓美)와 함께 북한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채찍과 당근' 목록을 논의해야 한다.



지해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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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54

지난해 연말의 일이다. 중국 공산당의 군기(軍紀)반장 역할을 맡게 된 왕치산(王岐山) 정치국 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전문가 좌담회를 소집했다. 주제는 반부패(反腐敗).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한데 왕치산이 갑자기 책 한 권씩을 돌리기 시작했다. "지금 많은 이들이 포스트 자본주의 시대 책을 보는데 그 이전 시기의 것도 봐야 한다”는 말과 함께. 책을 받은 전문가들은 다소 놀랐다.

이제까지 중국에서 잘나가는 책은 대부분 중화(中華)의 영광을 다룬 것들로 대당제국(大唐帝國)이나 대청제국(大淸帝國) 등을 소재로 한 게 많았다. 그러나 이번 책은 부상이 아닌 쇠망(衰亡)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도 중국에서 멀리 떨어진 프랑스 이야기인 데다 시기 또한 200여 년 전의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이 1856년에 펴낸 『앙시앵 레짐(舊體制)과 프랑스혁명』이다.

1789년의 프랑스혁명을 분석한 이 책은 토크빌의 역작이다. 하나 중국에선 프랑스 연구자들 사이에서나 읽혀질까, 대중적인 서적은 아니었다. 그런 책을 왕치산이 일독을 권한 이유는 무얼까.

이 책에서 강조된 ‘토크빌의 역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사 교과서는 흔히 독재자의 폭정이나 부패가 극에 달해 민중의 삶이 도탄에 빠질 때 혁명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토크빌은 ‘혁명이 발생하는 건 상황이 가장 나쁠 때가 아니라 상황이 개선될 때이며 특히 물질적 조건이 개선되는 시기’라고 분석했다. 중국 지도부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의 상황이 프랑스혁명 전야와 닮아 있다는 위기의식이다. 지금 중국 인민의 생활 수준은 1949년 건국 이래 가장 높다. 지난해 중국의 1인당 GDP는 6200달러를 기록했다. 광둥(廣東)성 선전(深?)의 경우엔 2만 달러로 한국에 가깝다.

그러나 현재 중국 사회에 대한 인민의 불만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중국에선 50인 이상 모이는 집단 시위가 매일 500건 이상 발생한다. 강제 철거 반발, 부패 관리 척결, 정치 개혁 요구 등 시위의 이유는 참으로 다양하다.

토크빌은 ‘일부 폐단이 시정될 경우 아직 시정되지 않은 문제는 더욱 참기 힘든 것으로 보이게 된다’고 했다. 실제로 중국 인민의 삶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됐지만 요구는 더욱 커지는 추세다. 배가 고플 때는 배고픔에서 벗어나려는 한 가지 고민밖에 없지만 배가 부르고 나면 더 많은 번뇌가 뒤따르는 법이다.

중국 경제학계의 거두 우징롄(吳敬璉) 박사는 중국의 “경제사회 모순이 거의 임계점에 다다랐다”고 말한다. 싱가포르국립대학의 중국정치 전문가 정융녠(鄭永年) 교수도 중국은 “개혁하지 않으면 혁명을 당할 것(不改革就是被革命)”이라고 경고한다.

중국의 지난 20세기는 혁명의 역사였다. 청조(淸朝)를 무너뜨린 신해(辛亥)혁명과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한 공산혁명, 또 건국 이후엔 대약진(大躍進)운동과 문화대혁명 등 혁명과도 같은 사회운동의 연속이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이후엔 혁명의 깃발이 공산당의 수중에서 지식인과 학생의 손으로 넘어갔다. 1989년의 천안문 사태, 노벨상 수상자 류샤오보(劉曉波)가 주도한 ’08 헌장’ 사건, 색깔혁명의 영향을 받았던 재스민(茉莉花)운동 등.

청말(淸末)의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는 중국에서 혁명은 다반사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 백성이 저항하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노동을 거부하는 것, 다른 하나는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타성(他姓)에 의한 왕조 교체를 예사롭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역성(易姓)혁명은 실패하면 도적이 되지만 성공하면 황제가 된다. 이에 따라 오직 강한 자만이 존경을 받고 그 외의 것은 중요치 않다. 결국 중국에는 반란이 그치지 않아 중국의 수천 년 역사는 진한 피로 쓰이게 됐다고 량치차오는 말했다.

바깥에서 볼 때 현재 한창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혁명적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국의 위정자들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중국의 성장(省長)급 이상 고위 관료들에겐 모두 토크빌의 책을 읽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대개 혁명의 도화선은 무거운 세금이다. 세계 4대 혁명 중 러시아혁명을 제외한 영국혁명과 미국혁명, 프랑스혁명 등이 모두 세금 문제에서 비롯됐다. 그래서인지 차기 총리가 확실한 리커창(李克强)의 정책 초점이 감세에 맞춰져 있다고 중국 전문가들은 말한다.

주요 대상은 소미(小微)기업이다. 소미기업은 중국에서 근년 들어 출현한 개념이다. 중소기업보다 작은 개념으로 소형기업, 미형기업, 가내수공업 등을 망라한다.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소미기업의 세 부담을 덜어줘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취지다.

이런 조치는 박근혜 당선인이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손톱 밑 가시’를 뽑는 일을 하겠다는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새로 출범하는 한·중의 정권 모두 중소기업을 키워 민생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럼 5년 후 결과는 어떻게 될까. 문제의식이 비슷하니 결과는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가려질 것이다. 실천은 굳센 의지가 이끈다. 이 점에선 중국이 우리보다 우위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중국의 위정자들이 개혁에 실패하면 혁명을 당할 것이란 절박감으로 무장돼 있기 때문이다. 때론 중국에서 배울 필요가 있겠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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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49

"30년 전엔 인구 5만명의 가난한 시골이었지만 지금은 1500만명 넘게 모여 사는 대도시가 됐습니다. 이제 도심에 아파트를 사려면 한국 돈으로 10억원은 줘야 합니다." 최근 중국 광둥성 선전(深圳)을 방문했다가 현지 여행 가이드로부터 선전 자랑을 들었다. 그는 "10년 뒤엔 선전뿐 아니라 온 중국이 한국처럼 잘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선전은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아버지인 시중쉰이 개혁·개방을 통해 인민을 잘살게 하자며 덩샤오핑에게 특구(特區) 지정을 건의했던 지역이다. 시진핑은 중국 최고 지도자가 된 뒤 지난해 12월 선전을 방문해 개혁과 경제 발전 지속 의지를 과시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중국 소설가 모옌도 장편 '개구리'에서 선전을 가난한 중국인이 부자의 꿈을 이루는 도시로 그렸다. 소설에서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석탄을 씹어먹던 산둥성 출신의 천비(陳鼻)는 선전에서 전자시계를 도매로 사다가 팔아서 부자가 된다.

선전의 여행 가이드가 그리는 부강한 중국의 꿈은 머지않아 실현될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매년 8~9%를 기록 중인 중국의 성장 속도로 볼 때 2030년이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제1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수천년간 세계의 중심 국가였다가 아편전쟁 이후 잠시 움츠러들었던 중화제국(中華帝國)이 적어도 경제 분야에선 부활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는 부강해진 중국이 주변국들에 어떤 이웃이 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원하든 원치 않든 대국의 길에 들어설 것이고 지금까지 미국이 그랬듯 향후 중국이 추구하는 가치를 국제 질서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제시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질서에 대해 세계인의 동의를 얻기가 '잘사는 중국'이란 목표 달성보다 훨씬 어려워 보인다. 이른바 '베이징 컨센서스'라는 이름으로 지금껏 보여온 중국식 가치들에 세계의 동의를 얻기 힘든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연초 홍콩에서 렁춘잉 신임 행정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겉으로는 렁 장관의 비리를 질타하는 모습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그를 지원한 중국에 대한 홍콩인들의 반감이 깔려 있었다. 지난해에는 중국식 공민교육을 홍콩 초등학생들에게 실시하려다 반발을 사기도 했다.

선전과 홍콩을 오가며 왕자웨이 감독의 1994년 영화 '중경삼림'을 떠올렸다. 영화 속 첫번째 스토리의 주인공은 애인에게 버림받자 유효기간이 얼마 안 남은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모으며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고 한탄한다. 영국과 이별하고 중국이라는 새 애인을 맞게 된 홍콩인들의 당혹감과 불안이 이 영화의 배경이다. 렁춘잉 퇴임 요구 시위와 공민교육 반발 사태는 중국이 세계는커녕 1997년 영국에서 반환된 홍콩인의 마음조차 아직 얻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중국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고 평화와 교린을 추구하는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중국이 동아시아 질서를 주도적으로 확립하길 원한다면 대국에 요구되는 면모부터 먼저 갖춰야 한다.



김태훈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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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6:43

지난달 30일 일본 도쿄 빅사이트 전시장에서 막을 올린 ‘나노테크2013’. 이 전시회는 2001년 당시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이 나노기술에 집중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히자 일본이 부품·소재 영역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2002년 발 빠르게 만든 전시회다. 올해로 12회째를 맞는 나노테크 전시회에 올해에도 1300여 개 사가 참여하고 6만여 명이 입장하는 등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그러나 개막일에 맞춰 나노테크2013 현장을 방문한 기자의 눈에 명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 여럿 눈에 띄었다. 23개국에서 266개 사가 참여하는 글로벌 전시회인데도 불구하고 안내문과 자료 등이 일본어 위주로 제공됐다. 간혹 한글과 영어가 일본어 밑에 병기돼 있는 곳도 있었지만, ‘접수’가 ‘점수’로 오기되는 등 성의 없이 만든 흔적이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특히 일본 업체의 부스에서 영어로 된 자료를 찾기는 무척 힘들었다. 또 ‘설명원’이라는 명찰을 단 부스 관계자들의 영어 실력 또한 훌륭하지 않아 나노 강국으로 꼽히는 일본의 기술 수준을 쉽게 짐작하기 힘들었다.

나노는 물론 전자·자동차 등 주력 산업의 기술력은 여전히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기술 공개는 물론 교류조차 꺼리는 일본 산업계의 독특한 배타성을 또다시 절감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서 요즘 떠오르는 화두가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다. 자신에게 모자라거나 혁신이 필요한 영역이 있으면 상대가 대학이건 기업이건, 내국인·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협업하고 아웃소싱하는 게 트렌드로 굳어지고 있는 시대다.

이번 나노테크2013에 참석한 한국 기업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협업할 파트너를 찾기 위해 온종일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오픈 이노베이션’에 훨씬 적극적인 한국이 전시회에서조차 자신들의 첨단기술을 꽁꽁 감추려는 듯한 일본을 머지않아 따라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커졌다.

심재우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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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5:55

중국은 현실적이다. 한국에 어느 대통령이 들어서건 환영한다. 그가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평가도 후한 편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엔 단순한 예의 차원이 아니다.

중국이 박 당선인을 좋아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크게 네 가지다. 우리도 이를 잘 분석해 자신, 또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입장에 맞춰 각색한 뒤 중국과 거래할 때 응용하면 적지 않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내력(來歷)이다. 박 당선인은 중국에서 ‘황제의 딸’로 비쳐진다. 중국은 봉건왕조를 타파한 사회주의 국가다. 그러나 중국인의 의식이 아직도 황제 시대의 전통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편한 저녁 자리에서 중국인과 이야기하다 보면 마오쩌둥(毛澤東)의 큰아들 마오안잉(毛岸英)이 한국전쟁에서 전사만 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마오 주석의 자리를 계승하지 않았겠느냐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중화권 언론도 그렇다. 1998년 주룽지(朱鎔基)가 총리에 오르자 홍콩 언론들은 주룽지의 집안 내력부터 따져 그가 명(明)을 세운 주원장(朱元璋)의 후손일 것이란 기사를 실었다. 중국의 새 지도자 시진핑(習近平)도 마찬가지다. 그의 앞에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그가 부총리까지 지낸 시중쉰(習仲勳)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중국인은 왜 내력을 따질까. 훌륭한 이는 태생부터 뭔가 다르다는 점을 듣고 싶어 한다. 지도자의 천부적 자질에 기대고 싶은 소박한 마음이 있다. 보통사람에 머무르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위로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우리는 이 점을 응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인과 만날 때 나는 왜 남다르며, 우리 회사는 왜 다른 회사보다 뛰어나고, 우리나라는 왜 특별한가 등의 논리를 잘 다듬어야 한다.

두 번째는 중국어다. 박 당선인이 중국어를 한다는 점이 매력 포인트다. 그의 중국어 실력은 ‘중국어를 못하면서도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중국통’이라는 구상찬 전 의원의 경험담이 설명 해 준다.하루는 중국 출장을 갔다가 엘리베이터 안에 박근혜, 구상찬,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대외연락부 부장 등 세 사람만이 남게 됐다. 이때 구 전 의원과 왕 부장 간의 말을 통역해 준 게 박 당선인이었다고 한다. 언어는 문화다. 중국어를 구사한다는 건 중국과 중국문화에 존중을 표시한다는 것과 진배없다. 설령 떠듬거리는 중국어라 할지라도 중국인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드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세 번째는 겸손이다. 중국은 1840년 아편전쟁 이래 100여 년 동안 서구 열강의 침탈에 시달려 왔고, 지금도 서방이 중국의 부상에 딴죽을 걸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피해의식이 강하다. 상대가 중국을 깔본다고 느낄 때 중국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몐쯔(面子·체면)’를 목숨처럼 중시하는 중국의 전통과도 관련이 있다. 박 당선인은 이제까지 중국인들과의 만남에서 몸에 밴 겸손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중국인들은 말한다. 중국인 체면만 잘 살려주면 짭짤한 이득을 보는 에피소드가 있다. 중국에 체류하는 한 한국인 사업가는 여러 번 교통위반을 하고도 단 한 차례도 벌금을 물지 않았다. 비결은 겸손에 있다. 그는 단속에 걸리면 양복 옷깃을 여미고 차에서 내려 두 손으로 공손하게 운전면허증을 제시한다. 물론 중국어는 떠듬거려야 한다. 외국인임을 알려야 하기에.
그러면 구경하던 중국인들이 한마디씩 거든다. “아, 저 외국인은 사람이 됐어.” 사람이 일단 됐다는데 규칙 위반이 무슨 대수인가. 공손한 태도에 어깨가 으쓱해진 교통경찰은 훈방을 한다. “다음부터 조심하라”가 최대의 과태료다.

네 번째는 좋은 인상이다. 중국에 ‘선한 자는 오지 않고 오는 자는 선하지 않다(善者不來 來者不善)’는 말이 있다. 그만큼 낯선 이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이를 풀어줄 수 있는 건 호감을 주는 좋은 인상이다. 중국인들은 박 당선인이 우아하며, 특히 기품이 있어 보인다고 말한다. 좋은 인상과 관련해선 지난해 초 실각한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와 얽힌 이야기가 있다. 1990년대 후반 보시라이가 다롄(大連) 시장으로 있을 때 한·중 간에 한 무역 관련 행사가 열렸다. 한국에선 국회의원이 와 참석했다. 행사가 끝난 뒤 보시라이가 보인 최대 관심은 한국의 의원들은 어떻게 머리 관리를 하느냐는 점이었다. 중국의 많은 여성이 한류(韓流) 드라마를 본다. 내용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드라마 속 우리 여배우들의 헤어스타일과 패션 등에 특히 관심이 많아서다. 중국인과 만날 때는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도록 외모를 단정히 할 필요가 있다.

내력을 잘 다듬고 중국어도 다소 구사하며, 겸손한 태도로 좋은 인상을 준다면 당신의 중국 거래는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절반은 무얼까. 실리(實利)를 둘러싼 줄다리기다.

현실적인 사고를 하는 중국과의 거래에서 실리 주고받기는 필수다. 대중 외교도 마찬가지다. 박 당선인은 이미 절반은 중국의 마음을 사고 있다. 앞으로 박근혜 정부의 대중 외교 성패는 중국과의 실리 주고받기 게임에서 중국의 수를 얼마나 잘 읽고, 이에 맞춰 한·중 양국이 윈윈할 수 있는 손익계산표를 짜느냐에 달려 있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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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3. 4. 4. 15:42

일본 뉴스가 늘어나봤자 좋을 일이 없다더니 요새가 꼭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아베 신조 총리의 등장 이후 한일관계를 좀 아는 사람치고 말하지 않고, 글 쓰지 않은 이가 없다. 그렇다고 똑 부러지게 해결된 것도 없다. 이번 갈등은 왠지 오래갈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일본이 달라져서다.

가장 큰 변화는 한국의 불만이나 항의를 달가워하지 않는 일본 지식인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또 그 얘기냐”고 불평하면서도 듣는 척은 했는데 요즘은 응대에 짜증이 묻어난다. ‘우경화(右傾化)’라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아베의 총선 압승을 한사코 “민주당에 실망해 자민당을 택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극우(極右)라는 말에 특히 거부감이 심하다. G2(주요 2개국)라는 용어에도 불만이 많다. 한국이 중국만 우대하고(속으로는 중국에 아부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홀대한다는 섭섭함을 감추지 않는다. 한국이 경계할 나라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일본이 아니라 공산당 일당독재에다 국방비를 펑펑 써대는 중국 아니냐고 되묻는다.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일본, 키워드는 ‘폐색감(閉塞感)’이란 단어다. ‘고립감’이나 ‘무력감’ 정도의 뜻이다.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 불황에 추락하는 국제적 위상, 엎친 데 덮친 대지진, 초고령화로 활기를 잃어가는 사회, 일본은 몹시 외로움을 타고 있다. 희미하나마 아베에게서 옛 시절의 영화(榮華)를 보고 몰표를 던진 것은 아닌지, 하고 분석해 본다. 20, 30년 전 잘나가던 일본이 아니라 요즘의 프레임으로 일본을 봐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제대로 된 답이 나온다.

아베 총리가 준비한다는 ‘아베 담화’는 파란을 일으킬 것이다. 한일이 얽힌 쟁점은 크게 독도, 교과서, 일본군 위안부, 보통국가론, 우경화 등이다. 아베 담화는 이 모든 사안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다. 일본의 침략을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 일본군 위안부의 국가 관여를 인정한 고노 담화(1993년), 교과서를 편찬할 때 이웃국가를 배려한다는 미야자와 담화(1982년)는 나름대로 완충 역할을 해왔다. 우리는 독도, 교과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제국주의에서 빚어진 일란성 다생아로 보지만 일본은 쪼개서 대응한다. 독도는 국제법으로, 교과서는 문부과학성의 권한으로, 일본군 위안부는 개인의 선택으로 접근한다. 결론은, 그래서 아무것도 해줄 게 없다는 거다. 추정컨대 ‘아베 담화’는 미래와 화해를 얘기하면서도 3대 담화의 취지마저 후퇴시킬 가능성이 크다. 안 해도 될 일을 해서 오는 평지풍파다. 한국으로서는 타협할 수 없는 이들 사안에 대해 하나하나 줄기차게 일본의 부당함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보통국가론은 재단이 복잡하다. 헌법을 고쳐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개편하고, 방어만 한다는 전수(專守)방위개념을 없애며, 동맹국이 공격을 받으면 자국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반격할 수 있는 집단적자위권을 확보하겠다는 게 보통국가론의 요지다. 언뜻 들으면 무섭다. 하지만 어느 나라나 갖고 있는 권리인 데다 하겠다면 마땅히 제어할 방법도 없다. 문제는 일본이 또다시 패권주의로 달려갈 가능성이다. 일본은 절대로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패전 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일본은 주변국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실패했다. 개학이 다가오는데 너무 오래, 너무 많은 숙제를 미뤄왔다. 우경화 논란에 대해 일본은 “일본 전체가 우경화된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한다. 여론조사를 보면 일리가 없지 않다. 문제는 사회지도층이다. 아베 총리는 요즘 자신의 발언들이 “우익은 극소수”라는 기존의 주장을 얼마나 무색하게 만들고 있는지, 알까 모르겠다. 

일본과의 관계를 단칼에 회복시킬 수술방법은 없다. 산업구조는 노동집약적인 중후장대(重厚長大)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경박단소(輕薄短小)로 옮아가는 게 대세다. 그러나 한일관계는 거꾸로 가야 할 듯하다. 두 나라 모두 말과 행동을 신중히 하고(重), 정치가 삐걱대도 사람-물건-돈의 교류는 두텁게 하며(厚), 일본의 가치를 남북통일 때까지 길게 내다보고(長), 중국의 급격한 부상에 공동 대응한다는 대국적인 견지에서(大) 함께 갈 수밖에 없다. 병을 다스리며 함께 사는 한방적 해법이다.

이지메(집단괴롭힘)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라는 일본어는 이미 국제공용어다. 일본은 전쟁을 통해 주변국을 이지메하다 비싼 대가를 치렀다. 그런데 요즘은 뉴욕타임스가 아베의 과거사 부정을 ‘수치스러운 충동’이라고 질타할 정도로 국제사회의 기대를 저버리고 히키코모리가 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이 골방을 박차고 나와 ‘공기를 읽길’(분위기를 파악하길) 희망한다. 현실에 걸맞은 일본을 만들자는 ‘일본의 리얼리즘’이라는 논의도 과거회귀나 현상타파에 머물지 말고 국제사회에서 존중받는 미래상을 상정해야 맞다. 그게 진정한 리얼리즘이다. 일본은 여전히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며 국제사회에 숱한 기여를 해온 선진국이다. 마음만 잘 먹으면 ‘보통국가’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존경받는 ‘보통이상의 국가’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훌륭한 이웃과 더불어 살고 싶다.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http://news.donga.com/3/all/20130107/52094834/1



Posted by 겟업
2013. 4. 4. 15:21

풀을 뜯어 먹다 죽은 어린 소녀의 시신, 길가에 널브러진 시체를 뜯어먹는 개, 쌀 한 줌에 몸을 팔아야 하는 여인의 울부짖음…. 중국 펑사오강(馮小剛) 감독의 영화 ‘一九四二(1942)’의 장면들이다. 1942년 발생한 허난(河南)성 대기근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2012년의 끝자락, 중국 지식인들은 1942년이라는 과거 굴레에 빠져 고민하고 있다.

영화 상영 한 달, 중국 신문과 방송은 대기근의 진실을 쏟아내고 있다. 당시 허난성은 1년 이상 지속된 극심한 가뭄으로 전체 인구 3000만 명 중 300만 명이 굶어 죽었고, 1000만 명은 유랑을 떠나야 했다. 가뭄으로 인한 천재(天災)였다지만, 사건을 키운 것은 인재였다. 국민당 관리들의 사건 축소 및 은폐, 금융권의 정부 지원금 갈취, 언론 탄압, 인민의 피를 빨던 친일파의 행각 등이 연일 언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대기근 논쟁은 이제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공산당 집권기인 1958년부터 시작돼 62까지 이어진 ‘1962년 대기근’이 그것이다. 1942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참사였다. 1600만 명이 굶어 죽었다는 게 정부 공식 발표지만, 전문가들은 전국적으로 3000만 명을 훨씬 초과할 것으로 분석한다. ‘인육을 거래했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로 전해질 정도다.

1942년과는 달리 1962년 대기근은 인재의 요소가 컸다. 일본군의 침략도 없었고 가뭄도 심각하지 않았다. 정부 창고에는 곡식이 쌓여 있었고, 식량을 수출하기까지 했다. 인민일보 등 기관지는 ‘올해도 풍년’이라며 마오쩌둥(毛澤東)이 추진하던 대약진운동의 성과를 늘어놓았다. 그 사이 30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어야 했던 것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50년 전 내 할아버지·할머니가 굶어 죽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냐’고 공산당에 묻고 있다. 그러나 당은 말이 없다. 진실을 폭로한 서적은 여전히 출판 금지 목록에 올라 있고, 그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백서 한 권 없다. 지식인들은 기근의 이유를 안다. 무리한 공업화 추진, 관리들의 농업 생산량 허위보고, 농지를 떠나지 못하도록 한 후커우(戶口)제도….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당의 솔직한 반성인 것이다.

이는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취임 이후 높아지고 있는 정치개혁에 대한 요구와 맥을 같이 한다. 많은 지식인은 ‘2013년을 정치민주화의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장첸판(張千帆) 베이징대 교수 등 지식인 71명이 정치 민주화를 요구하는 서한을 공개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시 총서기 취임 이후 세 번째 공개 서한이다. 내년 시작될 시진핑 시기의 중국 정치가 평탄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영화 ‘1942’는 이 흐름을 보여주는 문화 코드였던 셈이다. 2013년의 문턱에 선 중국 지식인들은 지금 치열하게 ‘아듀! 1942’를 외치고 있다. 새 정치에 대한 갈구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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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4:10

내일(22일)은 한국과 베트남이 외교관계를 수립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20년 전 우리는 북방외교를 통해 공산권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려던 때였고, 베트남은 미국·중국 등의 제재로 경제가 극도로 피폐해지면서 과거의 적대 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추진했던 시기였다. 수교는 두 나라로서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베트남은 경제발전 모델로 한국을, 한국은 역사적·문화적·지정학적 배경이 유사한 베트남을 각각 새로운 파트너로 얻었다.

그동안 두 나라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정상급 교류 20 회, 각료급 교류 200여 회 등 정치외교 면에서 명실상부한 우방이 됐다. 양국 간 무역 규모는 연 200억 달러에 달하고, 한국은 베트남 내 2위 투자국이자 3위의 원조국이 됐다. 60만 명 이상의 양국 국민이 오가고, 양국에는 각각 13만 명이 상호 거주한다. 우리는 3만7000여 명의 베트남 며느리를 맞이한 ‘사돈의 나라’이기도 하다.

프랑스·미국·중국과 전쟁을 치르면서 개발의 기회를 놓친 베트남은 2001년 사실상 시장경제를 선언한 이후 개인의 창의와 경쟁을 존중하면서 매년 평균 7% 이상의 고도성장을 달성해 왔다. 2008, 2009년 경제위기를 겪는 등 시장경제의 경험이 짧아 아직 내부적으로 취약점도 많지만 베트남의 발전 잠재력은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역사와 문화의 뿌리가 깊고 정치·사회가 안정돼 있으며 국민들은 근면하다. 쌀 수출 2위, 커피 생산 2위 등 자원이 풍부해 차세대 신흥시장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새롭게 떠오르는 국가그룹으로 ‘CIVETS(콜롬비아·인도네시아·베트남·이집트·터키·남아공)’를 언급하면서 베트남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프랑스의 정치경제학자인 자크 아탈리는 그의 저서 『미래의 물결』(2007년)에서 베트남이 정치·금융·교육을 개혁하면서 인프라를 구축하고 부패를 척결한다면 2025년에 아시아 3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동남아 진출 미국 기업들도 생산시설 이전 대상지로 베트남을 가장 선호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앞으로 양국 관계를 바람직하게 지속해 나가려면 몇 가지 전략적 고려를 해야 한다. 첫째는 우리는 베트남이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2020년 공업화·현대화 목표를 달성하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의 발전 경험과 지식을 베트남과 공유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베트남을 돕는 것은 우리를 돕는 일이기도 하다. 베트남에는 2500여 개의 우리 기업이 진출해 있을 정도로 두 나라 경제는 이미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로 발전했다. 이런 점에서 지난 8월 협상 개시를 선언한 한·베트남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조기에 체결되기를 기대한다.

둘째는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3만7000명의 베트남 다문화 여성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 이들에게 불행한 일이 있을 때마다 베트남 국민과 지도자들은 많은 걱정을 한다. 딸 시집보낸 부모의 마음이다. 우리를 신뢰하고 좋아하는 베트남 국민들에게 한국민이 자국 여성을 소중히 배려한다는 소식이 자주 전해진다면 두 나라는 더욱 돈독해질 것이다. 아울러 다음 총선에서 베트남 여성이 국회에 진출했다는 낭보도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풍습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한다. 요즘 베트남에서는 한류가 왕성하게 확산되고 있다. 우리의 역사와 언어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베트남 알기 노력은 아직 미흡하다. 한 일본인이 베트남 중부의 콘툼 지역 소수민족을 17년간 연구한다는 기사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우리도 이제 정부와 민간기업이 베트남 연구에 좀 더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해주기를 바란다.


임 홍 재 전 주베트남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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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14:07

필자가 평양에 있을 때 참석했던 1994년 7월의 김일성 영결식과 서울에서 지켜본 작년 12월의 김정일 영결식은 달랐다. 20대의 후계자 김정은이 운구차를 호위한 것과 눈이 많이 내린 추운 겨울이라는 점이다.

평양의 금수산태양궁전을 나와서 시내를 돌아 시민들과 작별하는 김정일 운구차량이 평양역 근처에 지날 때 갑자기 하늘에서 함박눈이 쏟아졌다. 이때 행사에 강제 동원된 군중 가운데 누군가가 “장군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차디찬 눈길로 보낼 수 없다”라며 자기의 파카를 벗어 도로에 깔았다. 이 사람을 북한식 표현으로 지칭하면, 당과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간직한 혁명전사이고 영웅이다. 

그의 감동적(?)인 행동은 삽시간에 수천 수만 명의 군중을 감염시켰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행사용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애도음악 속에서 슬프게 울먹이던 주민들은 군중심리로 인해 너나 할 것 없이 옷을 벗어 눈이 쌓인 도로에 폈다. 심지어 일부 시민은 집으로 가서 담요와 이불을 내어다가 길에 덮어 놓으며 “장군님! 조금 쉬어 가십시오. 길이 차갑습니다”라면서 대성통곡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고 통치자와 작별하는 길에 쌓인 눈을 이불과 담요로 녹여 드린 국민이 동서고금에 있었을까? 영하의 날씨에 자신들은 부들부들 떨면서 옷을 벗어 도로를 덮다니? 자의든 타의든 세상에 그런 바보들이 또 있을까? 보통의 평양 시민들도 평일 한두 끼 따뜻한 밥 먹는 것이 소원이다. 대부분의 북한 주민이 하루 두 끼 멀건 죽으로 끼니를 때우는 실정이다. 악연인지 운명인지 지지리도 최고지도자 복이 없는 그들이다. 

눈이 펑펑 내리는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눈물로 배웅한 고맙고 순진한 인민을 보며 김정은은 과연 무엇을 생각했을까? 권력의 대단함을 체험하면서 그 인민의 가난한 생활을 조금이라도 고민했을까?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김정은의 올해 동정은 군부대 방문과 예술문화 공연 관람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60여 년간 할아버지, 아버지가 너무도 많이 보여 준 것이다. 할아버지 100회 생일에 하도 보여 줄 것이 없어 자신의 육성을 공개했고, 그래도 인민이 식상해하자 미인 부인을 공개했다. 

비록 연출이라도 김정은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으면 좋겠다. 시장을 찾아 음식찌꺼기를 주워 먹는 고아들을 안아 주고 텅 빈 노동자 농민의 밥솥도 열어 보았으면…. 농촌을 찾아 벼를 심어 보고 주택건설장에서 삽질도 해 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12일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강행한 미사일 발사도 결국 김정일 1주기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미사일 개발에 들어간 돈이면 전체 평양시민의 3년 치 식량을 구입할 수 있다. 발사에 쓴 연료의 양은 너무 추워서 집안에서도 옷과 신발을 벗지 못하는 많은 평양시민이 올겨울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양이다. 

“김정일의 유훈대로 자체의 힘과 기술로 제작한 실용위성을 쏘아 올렸다”라고 변명하는 북한 정권에 묻는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어려운 인민의 생활을 개선하는 것은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의 유훈이 아닌가? 장군님의 인민은 당과 국가의 간부들뿐인가? 

굶으면서도 아무런 반항을 못하는 바보 같은 인민이 벌어 주는 귀중한 외화로 미사일을 발사하며 체제를 유지하는 김정은 정권은 역사에 죄를 짓고 있다. 인민이 있어야 수령도 있고 당과 국가도 있다. 허구적인 ‘강성국가 건설’을 외치며 청맹과니 인민의 신경을 딴 곳으로 돌리려는 꼼수도 이제는 그만 쓰라.


림 일 탈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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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4. 02:23

베이징총국 사무실에서 차로 1~2분만 가면 사회주의 시절 베이징의 전형적인 주택가가 나온다. 주셴차오(酒仙橋)라고 서민들 동네다. 2차선 도로 양쪽엔 60년 넘은 밑동 굵은 가로수들이 마을의 연륜을 보여준다. 허름한 5층짜리 아파트들이지만 잘 가꾸고 살아 나름 운치도 있다. JTBC의 한족 카메라맨은 “타임머신을 타고 1980년대로 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신기해한다. 좁아서 차가 다니기 어려운 길이 많아 자전거가 주요 교통수단이고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느린 편이어서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다가오는 박물관 같은 동네다. 이런 곳을 고층의 주상복합아파트들이 에워싸기 시작했다. 재개발 광풍 앞에 삭제되고 있는 사회주의를 보는 느낌이다.

20년 가까이 베이징에서 활동한 798예술특구의 ‘포스 갤러리’ 이동임 대표는 80년대 처음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사람들의 표정이 그렇게 편하고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고 아련한 기억을 더듬는다. 식용유표·쌀표·돼지고기표를 들고 서너 시간씩 줄을 서서 배급을 받았지만 없이 사는 것을 비교당하지 않는 균일한 사회였다. 이 대표는 사람들 표정에 넉넉한 인심이 흐르는 게 좋아 이곳이 낯선 땅 같지 않았다고 한다. 그 말에 무릎을 쳤다. 94년 베이징에서 연수를 할 때만 해도 어쩐지 우리나라 70년대 느낌이 들어 푸근했던 기억이 새록했다. 하지만 개혁·개방 30년간 광속으로 변하는 사회, 부동산 폭등과 고물가에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의 충격으로 그런 표정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 됐다. 소득불평등 수준이 청조 말 태평천국의 난 때와 비슷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민생이 팍팍해졌다.

지난 20년간 초고속 성장으로 중국에 돈벌이의 광풍이 일었다. 남다른 기회 포착 능력을 연줄과 엮어 부자가 된 사람들이 쏟아졌다. 느닷없는 경쟁 시스템에 낯설어하던 사람들은 ‘눈이 빨개지는 병(紅眼病)’에 걸려 질투심을 불태웠다. 국가와 인민공사가 책임지던 의료와 노후복지 등 사회 안전망이 급속히 해체됐다. 이젠 그 부담을 기업이 떠맡고 있다. 요즘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강조하며 팔목 비틀듯이 외자기업들도 돈을 더 풀라고 볶아댄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의 CSR 담당자들은 연말이 다가오면 어떻게 표나는 사회공헌 활동으로 포장할까 머리를 싸맨다고 한다.

민간 기업을 닦달한다고 구멍 난 복지시스템을 메울 수는 없는 일이다. 기업을 통한 복지를 하려면 몸통인 14만5000개 국유기업부터 손대야 한다. 저금리 대출과 세제·정책 지원 등 각종 특혜를 독식하면서 자원배분을 왜곡하는 중국의 국유기업 개혁이 먼저다. 이를 통해 시장이 기업하기 좋은 생태계로 바뀌게 되면 고용을 통한 복지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국유기업 수술은 중국 경제에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도 청신호다. 수술대 앞에선 시진핑(習近平)에게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정용환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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