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25. 15:38

한중일 3국의 영토 분쟁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침략의 과거사를 둘러싼 국가 간 감정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분쟁의 주범은 일본이다. 일본인 중에서도 우익 정치인들이 그 분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우익이 아닌 정치인들도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우경화 일색의 발언을 한다. 주변국과의 영토문제에 대해 대다수 일본인들이 우익 정치인들의 입장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침략과 학살과 종군위안부 등의 과거사를 부정하는 역사인식도 일본 국민 사이에 점점 널리 퍼지고 있다. 

그와 함께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너희의 모든 문화는 우리 것'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봤다. 이 동영상에서 한국인은 유교, 한자, 가부키 등 주변국의 문화유산을 표절해서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 동영상을 올린 이용자는 "표절의 주된 희생자는 일본이지만, 최근에는 그 마수가 중국에까지 미치고 있다"며 "세계인들에게 이를 경고하기 위해 동영상을 만들었다"고 썼다. 이런 동영상들 옆에 나타나는 '관련 동영상' 목록에도 터무니없이 한국인을 비하하거나,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동영상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 왜 일본에게 질 수밖에 없는가'라는 동영상은 "한국인들의 할머니는 일본군의 위안부였기 때문에 지금 한국인은 일본 혈통을 가진 것"이라며 "할머니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외에도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알리는 단체 '반크'를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사이버 테러단체'로 묘사하거나, "낙후되고 가난했던 한국이 1910년 한일합방을 통해 겨우 발전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동영상들도 있다.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지 한 달쯤 뒤인 지난해 4월 일본의 서점가에서는 <일본인의 긍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우익 에세이작가인 후지와라 마사히코가 쓴 이 책은 '난징대학살' 등 일본의 과거 전쟁범죄에 관한 내용이 자학사관에 의해 과장됐다거나, 동아시아 침략이 제국주의 시대인 당시 상황에선 침략이 아니었다는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의 일본사회에는 일본국기인 히노마루,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 욱일승천기 등 일본 '군국주의 아이콘'이 요란하게 부활하고 있다. 얼마 전 런던올림픽에서는 욱일승천기 문양이 국가대표 체조팀의 유니폼에 버젓이 사용됐고,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 여자 월드컵에서 일부 관중들이 욱일승천기를 들고 응원 했다. 욱일승천기는 침략을 상징하는 나치 문양에 견줄 '군국주의 아이콘'이지만 지금은 거리낌없이 사용되고 있다. '아름다운 일본', '강한 일본'을 그리워하고 찬양하는 위험한 애국주의 열풍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현상에 대해 우려하는 양심적인 일본인도 있다. 아사노 겐이치 도시샤대 교수는 "공영방송이 일본의 과거 침략·강제점령을 긍정하는 소설을 버젓이 드라마로 만들고 있을 정도로 일본의 최근 사회 분위기는 위험 수위에 달하고 있다"며 "일본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지 못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공존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영화 '러브레터'의 이와이 ??지 감독은 최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일본은 일찍이 침략전쟁을 일으켰다가 패전했다는 사실을 너무 잊은 채 살고 있다. 그러면서 상대국 잘못만 따지고 있으니 상대국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글을 남겼다. 이에 한 일본 누리꾼이 한국이나 중국에서 이뤄지는 반일 교육에 대한 입장을 묻자 그는 "일본은 이웃나라를 침략하다가 끝내 미국과 전쟁을 벌여 패했고 그 책임을 지지 않았다"며 "침략당한 나라가 아직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며 잊어버리고 있는 일본이 미친 것"이라는 소신 발언을 했다.

영토분쟁이 점점 첨예해지고 있는 시기에 나온 한 영화감독의 용기 있는 발언은 한국인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일본인 대다수에게는 깊은 분노를 안겨준 모양이다. 많은 일본인들이 발언이후 그를 매국노로 몰아부쳤다고 하니 말이다. 위험한 영토분쟁의 끝은 전쟁밖에는 없다. 일본은 과연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는 것인가.



김명곤 동양대 석좌교수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09/h2012092521012212175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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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3. 03:10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주한 일본대사 후임으로 선임된 벳쇼 고로(別所浩郞) 외무심의관(차관보급)의 이력서는 그가 ‘엘리트 외교관’으로 성장해왔음을 보여준다.

그의 경력에서 일본 외무성의 핵심 부서인 총합외교정책국에 두 차례 근무한 것이 눈에 띈다. 2000년에 총무과장을, 2008년에 국장을 지냈다. 주미대사관 근무에 이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비서관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외무성 차관 물망에도 올랐었다. 외무성 부국장을 역임한 후 한국에 부임한 무토 대사보다 훨씬 더 격(格)이 올라간 것이다.

주한 일본대사관의 미치가미 히사시(道上尙史) 공보문화원장의 직전 근무지는 베이징이었다. 일본의 고위급 외교관이 중국 근무를 마친 후 한국에 부임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일본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이와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도쿄의 주일(駐日) 한국대사관엔 세 명의 외교관이 부임했다. 이 중에서 일본어 연수를 하고, 일본에 근무했던 '일본통(通)' 외교관은 K참사관뿐이다. 다른 한 명은 외교부에 들어온 지 약 2년밖에 되지 않은 신참 외교관이다. 또 다른 한 명은 일본어 능력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

지난 2월 정기 인사 때도 주일 대사관은 적임자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당시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일본에 세 명을 새로 보내야 하는데 지원자가 없어서 고생했다"고 말했다. 올해 주중(駐中) 한국대사관에 가려는 지원자가 몰려서 인사위원회에서 표결까지 했던 것과는 대비된다.
 
물론 외교관들의 일본 지원율이 떨어진 데는 지난해 발생한 3·11 대지진이 적잖게 작용했다. 일부 외교관들은 방사능 공포 때문에 일본 근무를 꺼린다. 하지만 한 고위급 외교관은 이렇게 평가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에 가지 않으려는 현상이 전면에 드러났을 뿐이다. 해가 갈수록 외교관들이 일본 관련 업무를 하지 않으려 한다."
 
일본을 경시(輕視)하고, 중국으로 쏠리는 현상은 외교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역회사나 은행 등 민간 분야에서도 이미 뚜렷해지고 있다. 독도 문제로 한일 갈등이 커지자 대통령부터 일반 시민까지 "일본은 경쟁력이 없다" "일본이 추락하고 있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가 중국에 '올인'하면서 무시할 나라는 아니다. 한국·일본·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을 간략한 수치로 비교하면 100:500:550이다. 일본의 경제력이 한국의 5배이고, 일본과 중국의 격차는 아직 그렇게 크지 않다는 의미다. 경제 전문지 '포천(Fortune)'이 선정하는 세계 500대 기업에는 한국과 중국이 각각 10개, 46개 포함돼 있는데 일본은 도요타·히타치 등 71개가 들어 있다.
 
대한민국이 다른 대륙으로 이전하지 않는 한 일본과 영원히 마주 보며 살아야 한다.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민간 경쟁력을 가진 일본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줄어든다면 결코 일본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이하원 정치부 차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12/20120912030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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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3. 03:05

몇 해 전 우리나라 민간 단체에서 중국의 한 관리를 초청했다. 전도 유망한 정치인이라기에 친분을 쌓자는 취지였다. 이 단체는 그를 한식집으로 초대했다. 문제는 의자가 아닌 방바닥에 앉아야 하는 집을 고른 점이었다. 식사는 두 시간 가까이 지속됐다. 그와 함께 온 중국인들은 쩔쩔맸다. 바닥에 앉는 게 익숙지 않아, 앉은 자세를 계속 이리저리 바꿔가며 진땀을 흘렸다. 한데 그만은 꼿꼿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태연한 모습이었다. 우리 측 초청자가 미안하면서도 또 의아한 생각이 들어 물었다. 불편하지 않으냐고. 그러자 그가 씩 웃으며 답했다. “이것도 훈련입니다.” 힘들지라도 참고 견디며 남의 풍속에 따라 예를 갖추고 있는 것 또한 자기 수양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는 현재 후난(湖南)성 1인자인 저우창(周强) 당서기다. 1960년생으로 60년대 태어난 중국 지도자 그룹인 ‘60후(60後)’의 선두 주자 중 하나다. “앞으로 중국을 이끌 인물이 다르긴 다르구나.” 우리 측 참석자들의 소회였다.

정치의 계절이다. 우리도 연말에 대선이 있지만 중국은 다음 달 10년 만의 지도부 교체가 예정돼 있다. 제18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집단 지도부가 물갈이된다. 현재는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누가 오를지 설만 무성하다. 중국의 지도부 선출은 흔히 밀실 협상의 결과란 지적을 받는다. 지도자 선발이 공개적이지 않고, 경쟁하는 세력 간의 타협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놀라운 건 중국 지도부 인사들의 능력이 한결같이 출중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는 점이다.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누구에게 1인자인 총서기 자리를 맡겨도 모두 잘해낼 것이란 이야기를 듣는다.

중국의 지도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당성(黨性)과 능력, 태도의 3박자를 갖춰야 한다는 게 조영남 서울대 교수의 설명이다. 당성은 기본이다. 당 이념에 충실하고, 당 중앙과 입장을 일치시켜야 한다.

문제는 능력과 태도다. 이 가운데 중국 관리들이 가장 목을 매는 게 능력 입증이다. 능력을 보이려면 업적을 제시해야 한다. 중국 최고 지도부에 입성하기 위해선 지방의 성(省)정부 수장을 포함해 장관급 자리를 최소 두 번 이상은 맡아야 한다. 바로 이때 자신의 실적을 과시하고 또 인정받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다음 달 13억의 1인자가 될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시진핑은 저장(浙江)성 당서기로 있던 2005년 거액을 들여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국정연구조사팀을 초청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저장의 경험’을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프로젝트에 중국사회과학원 원장 등 무려 60여 명의 학자가 참여했다. 1년 반 뒤 나온 140여만 자에 달하는 보고서는 저장의 발전 경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시진핑 이름 석 자가 전국적으로 홍보된 건 당연지사다.

그다음은 태도다. 업무 태도, 청렴도, 이미지 등 한마디로 사람 됨됨이에 대한 평가다. 야심가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는 여기서 발목이 잡혔다. 그는 혁명가요 부르기인 창홍(唱紅)으로 당성을, 조폭 퇴치인 타흑(打黑)으로 능력을 강조했다. 하지만 됨됨이가 문제였다. 가족의 부패와 살벌한 공안 정치로 원성을 사며 낙마했다.

이런 3박자 갖추기에 중요한 게 있다. 바로 ‘검증’이다. 초급 간부 때부터 공장과 지방, 중앙 부처 등 이런저런 자리를 돌게 하며 지속적인 검증을 실시한다. 이때 세 가지 사항을 눈여겨본다.

첫 번째는 전문성이다. 자기 일을 얼마나 꿰고 있느냐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좋은 예다. 지질 기술자로서 11년 동안 간쑤(甘肅)성 오지를 누비고 다니던 그가 중앙으로 발탁된 계기는 업무 브리핑이었다. 해박한 그의 설명에 쑨다광(孫大光) 지질광산부 부장은 원을 ‘간쑤의 살아있는 지도(甘肅活地圖)’라 극찬했다.

두 번째는 창조성이다. 창의적 아이디어와 행동이 중요하다. 현재 공산주의청년단의 1인자인 루하오(陸昊)는 대학 졸업 후 매년 적자를 내는 직원 5000명의 면방직 공장에 배치돼 이 공장을 회생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3년 만에 회사를 흑자로 돌려놓으며 검증을 통과했다.

세 번째는 국제성이다. 부상하는 중국의 리더가 되기 위해선 국제적 안목을 갖춰야 한다. 외국인과의 교류, 언론과의 소통 능력을 본다. 이 같은 세 가지 사항을 염두에 두고 당성과 능력, 태도에 대한 검증을 반복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중국이 민주적이지는 않지만 능력 있는 지도자를 뽑을 수 있는 배경이다. 우리도 참고할 게 있다. 제대로 된 검증이 그것이다. 적어도 대통령의 꿈을 가진 이에겐 그의 모든 것을 발가벗기는 것과 같은 세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확고한 국가관을 가졌는지, 능력이 거품은 아닌지, 콩고물을 좋아하는지, 부하를 머슴 다루듯 하지는 않는지, 국제적 감각은 있는지, 지자체 수장 출신이라면 재임 시 지자체 살림을 말아먹지는 않았는지 등 철저한 검증을 실시해야 한다. 그래야 뽑고 나서 ‘또 속았다’는 후회를 하지 않을 게 아닌가.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301701&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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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3. 03:02

베이징서 만난 중국 전문가들 '미국과 거리 두는 한국' 원해
美선 '對中 연합 한국 제외'論, 몸값 높이거나 왕따 될 상황…
거대 중국 옆에서 살 전략 없인 중국인 발마사지 하게 될 수도

 강인선 국제부장

최근 한중 전문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에 다녀왔다. 도착 첫날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마치고 발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순박한 얼굴의 종업원이 무릎을 꿇은 자세로 마사지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한국과 비교하면 가격이 훨씬 싸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다음 날 하루 종일 진행된 회의에선 참석자들이 양국 현안과 지역 정세에 대해 비교적 솔직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중국 측 참석자들이 툭툭 내던지는 발언에 때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용이야 익히 알던 것이지만 중국인의 목소리를 통해 들으니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다들 정부 연구소나 군(軍)과 관련 있는 전문가들이었다.

중국인의 미국에 대한 반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특히 최근 미국의 아시아 복귀 정책에 엄청난 위협을 느끼는 듯했다. 중국 측 전문가들은 미국이 한일 등 기존 동맹 관계를 강화하고 미얀마·베트남 등 새로운 우방과 연대해 중국을 압박하는 현실에 대한 불안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들은 "미국이 중국의 위협을 과장, 아시아에서 군사력을 증강해 중국을 봉쇄하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으론 "중국의 이웃 국가들은 중국과 그렇게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데도 왜 심리적·정치적으로 중국에 반감을 갖고 있을까"라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토론은 돌고 돌아 늘 제자리로 돌아왔다. 한미동맹과 북한 때문이었다. 중국은 미국과 동맹인 한국을 믿지 못하고, 한국은 북한을 싸고도는 중국을 신뢰하기 어렵다. 중국은 '미국과 거리를 두는 한국'을 원했다. 한반도 통일이 미국의 개입 없이 이뤄진다면 기꺼이 지지할 수 있다고 했고, 미국은 파트너십을 중시한다지만 실제로는 한국을 파트너로 대하지 않는다며 은근히 이간질도 했다.

중국이야 그렇다 치고, 요즘 미국에선 아시아에서 대(對)중국 연합 세력을 규합할 때 한국은 포기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한다. 어차피 한국은 중국과 더 친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아예 한국은 빼놓고 호주·일본·필리핀·베트남·미얀마·인도 등과 뭉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미·중의 대립 상황에서 한국의 전략적·지정학적 몸값이 높은 것도 같고, 또 어찌 보면 양쪽에서 다 불신당해 왕따 되기 딱 좋은 미묘한 상황에 처한 것 같기도 하다.

베이징에서 비행기를 타고 두 시간 만에 서울에 도착하고 나니 멕시코 사람들이 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멕시코는 신(神)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미국과는 너무 가깝다. 이게 문제다." 거대한 마약 소비 시장이 있고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미국이 바로 옆에 있는 까닭에 마약 범죄의 소굴이 되는 등 멕시코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가 미국과 이웃이라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원래는 19세기 미국·멕시코 전쟁과 관련해 쓰이던 표현이라는 데 요즘은 덩치 큰 나라와 가까이 사는 작은 나라의 처지를 빗대 쓰이기도 한다.

그뿐인가. 독일 통일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속마음도 들어보자. 원래 프랑스인들은 "독일을 너무나 사랑해서 독일이 두 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통일독일 말고 동독 하나, 서독 하나 이렇게 말이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속마음도 사실은 이럴 것이다. "한국이 두 개인 게 더 좋다"고.

한 정치인이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중국에 가서 싸다며 발마사지 받고 쇼핑하며 좋아하는데,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우리가 싼값에 중국인들 발마사지 해주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거대 중국과 이웃해 살아갈 스마트한 전략이 없다면 "한국은 중국과 너무 가깝다. 그게 문제다"라고 한탄할 날이 곧 올수도 있다는 것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11/2012091101014.html

Posted by 겟업
2012. 9. 23. 02:50

중국 칭다오(靑島)의 한국 도금업체들이 최근 촌민 정부로부터 떠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요즘 중국 정부의 관심사인 환경 문제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다. 이 지역의 한국 보석·장신구 기업 14개도 최근 한국으로 U턴을 결정했다. 더 이상 값싼 인건비와 세제 혜택을 중국에서 기대할 수 없게 된 탓이다.

한·중 수교 20년의 산증인인 이들이 중국에서 느끼는 격세지감은 크다. 개혁개방 초기, 중국에 상륙한 한국 기업들은 50년 저가 부지 임대, 무담보 대출, 세제 특혜를 받았다. 그 대신 이들은 현지 경제를 일으키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혜택들은 세월이 지나며 하나씩 사라졌다. 2007년 현지 기업과 외자 기업의 법인세율 동일화(25%)로 차별적 우대는 사실상 끝났다. 이제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중국이 필요로 하지 않는 업종은 나가라고 한다.

이 때문에 ‘언제는 칙사 대접을 해주더니 먹고살 만하니까 쫓아낸다’는 볼멘소리가 한국 기업들에서 터져나온다. 저가에 기술경쟁력을 바탕으로 물건을 ‘찍어내기만 하면 팔리던’ 현지 기업들은 사업을 접거나 공장을 옮겨야 하는 기로에 섰다.

중국 산업은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에 들어섰다. 중국이 지난해부터 진행 중인 12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규획(계획)에 따르면 신에너지와 환경, 신소재, 문화산업 등을 중점 육성하고 평균 임금은 5년간 2배 오른다. 태양전지 원료로 새롭게 부각된 폴리실리콘 등 신소재나 상당수 첨단장비 제조는 한국을 저만치 따돌리고 있다. 임금 인상을 통한 소비확대 정책으로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급속히 변모하고 있다.


바뀐 중국 시장은 새로운 도전이다. 해답은 이미 현지에서 성공한 한국 기업들에서 찾을 수 있다. ‘대장금’ 탤런트를 TV 광고에 출연시켜 ‘남은 음식은 싸서 보관한다’는 개념을 중국인에게 주입시킨 락앤락, 중국인이 좋아하는 빨간색으로 초코파이 상자 색을 바꾼 오리온, 현지 자동차 기업과 합자회사를 설립해 자동차 부품의 안정적 판로를 개척한 만도기계, 한국에서 발달한 스튜디오 촬영을 중국 복식에 접목시킨 웨딩 촬영 업체들, 이들은 모두 중국 시장과 소비자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맞춤형 판매 방식을 개척한 기업들이다.


베이징 삼성경제연구소의 권성용 수석연구원은 “중국은 워낙 넓어 하나의 시장으로 보면 안 된다. 물이 안 좋은 곳에선 광천수나 정수기, 건조 지역에선 가습기 관련 사업을 찾는 식으로 세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3억 명에게 연필 한 자루씩만 팔아도 얼마냐’라는 중국 시장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키운 말이 있었다. 하지만 13억을 다 같은 ‘중국인’으로만 본다면 100개도 팔기 힘들 것이다.


이충형 정치국제부문 기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237096&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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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3. 02:46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미래를 읽기 위해서다. 과거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최근 무인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긴장고조를 보면서 떠오르는 역사의 한 장면이 있다.

기원전 416년, 그리스의 강대국 스파르타와 아테네 사이에 펠로폰네소스전쟁이 한창인 무렵의 일이다. 아테네가 이끄는 전함이 ‘중립’을 선언한 작은 섬 멜로스에 도착했다. 아테네 사절단이 멜로스 대표단을 만났다. 대략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고 갔다.

 “무조건 항복하라. 그것이 쌍방에 이익을 가져오는 일이다.”(아테네)

 “당신들의 지배에 굴복하는 것이 어찌 우리에게 좋은 일인가.”(멜로스)

 “여러분은 무서운 피해를 입기 전에 투항해서 좋고, 우리는 여러분을 해치지 않고 이익을 얻으니까 좋다.”(아테네)

 “우리는 중립을 선언했다. 적이기보다 우호국으로서 어느 진영에도 가담하지 않는 상태를 인정할 수 없나.”(멜로스)

 “당신들은 그럴 권한이 없다. 자국의 입장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강대국에만 있다.”(아테네)

멜로스 사람들은 ‘신탁’과 ‘스파르타’의 지원을 믿고 항복을 거부한다. 아테네 사절단의 주장이 맞았다. ‘약육강식’이란 자연의 법칙이 곧 신(神)의 뜻이었고, 육상 강국 스파르타는 멜로스를 위해 아테네와 바다에서 싸우는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었다. 결국 아테네는 멜로스를 포위한 다음 성인 남성을 모두 죽이고 여자와 어린이는 노예로 팔아버렸다.

흔히 국제정치의 냉혹함을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멜로스의 비극이다. 2500년 전 사례가 지금까지 자주 인용되는 것은 이후 인류의 역사 속에서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비극을 초래한 전쟁의 원인이다.


전쟁에 참여했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전쟁이 불가피했던 원인을 ‘신흥 강대국의 부상에 대한 기존 강대국의 공포’라고 설명했다. 전통적 강자 스파르타가 무섭게 성장하는 아테네를 경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 국제정치의 패권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터진다는 설명이다. 전쟁은 늘 세계사의 변곡점이 되어 왔다.


2500년 전 역사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중국 때문이다. 세계의 중심은 서진(西進)해왔다. 그리스-로마를 거쳐 서유럽을 지나 영국을 징검다리 삼아 미국으로 옮겨 왔다. 그리고 지금은 아시아의 시대, 태평양의 시대라 불리고 있다. 중국이 새로운 패권 국가로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2500년 전 아테네를 연상하게 만든다. 아테네가 강국으로 떠오른 것은 에게해를 중심으로 한 해상무역에서 부(富)를 축적한 덕분이다. 최근 30년간 중국의 경제적 급성장은 경이로울 정도다.

중국은 당연히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동북아의 영토분쟁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독도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못한 것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승리 후 일본 영토를 재정리하는 과정에서 분명한 선을 긋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1972년 오키나와를 일본에 돌려줄 때도 부속 무인도인 센카쿠에 대해 명확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중국은 일본과 갈등이 생길 경우 늘 미국을 배후로 의심한다.

국제사회는 독도보다 센카쿠 문제에 더 주목하고 있다. 센카쿠는 중국과 일본, 나아가 중국과 미국의 패권다툼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센카쿠는 확전일로다. 중국의 한 장군은 센카쿠 둘레에 기뢰를 심고, 섬을 목표물로 삼아 폭격훈련을 하자고 주장했다. 중국은 실제로 필리핀과 분쟁 중인 스카버러 암초 주변에 최근 3척의 함선을 배치해 봉쇄했다. 필리핀은 난감할 뿐이다.

중국 관영언론은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 ‘센카쿠가 미·일 방위조약에 포함된다’는 미 국무부 논평에 대해 인민일보는 ‘포함된 적 없다. 고대부터 중국 땅이기에 협상의 여지도 없다’고 반박했다. 신화통신은 지난 주말 사설에서 ‘미국은 영토 문제에 끼어들어 이익을 챙기려 하지 말라. 영토 문제에 외세가 개입하면 비극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솔직히 말해 미국은 쇠퇴일로다. 세계를 지배한다는 초현실주의적 야망을 포기하라’고 덧붙였다.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패권이 이동 중이며 마찰열이 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멜로스의 비극이 재연되진 않겠지만, 패권국 사이에 위치한 작은 나라가 자국의 의지대로 살아가기 힘들 것이란 예측은 가능하다.

넓은 안목과 냉철한 인식이 필요하다. 신탁은 없으며, 스파르타는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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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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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3. 01:25

韓 中 日 인터넷서점 5년치 베스트셀러 분석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한국인, 갈수록 기가 사는 중국인, 쿨한 건지 속없는 건지 알 수 없는 일본인.

최근 5년간 한·중·일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에 나타난 세 나라 국민들의 집단 심리다. 북스팀이 예스24(한국)·당당닷컴(중국)·아마존재팬(일본) 등 한·중·일 각국의 대표적인 인터넷 서점이 발표한 2007~2011년 베스트셀러 목록을 분석해봤다. 어떤 책을 집는지 보면 그 사람 속내가 엿보이는 법.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어 유럽발 금융위기가 걱정스럽긴 세 나라가 마찬가지지만, 다가오는 나날에 대해 각자가 갖고 있는 자신감은 서로 달랐다. 북스팀이 베스트셀러 내용을 ①분노 ②성공 ③위로 ④기타 등 크게 네 가지 코드로 분류해보니, 화가 제일 많이 난 건 역시 한국인들이었다.

글로벌금융위기(2007년) 전까지 한국인은 "악착같이 살자"고 독려하는 책을 즐겨 읽었다. 예스24 종합베스트셀러 30위 안에 든 책 가운데 11권이 "하면 된다"고 설파하는 자기계발서와 경제경영서였다. '시크릿'(살림비즈), '이기는 습관'(쌤앤파커스),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명진출판사)가 대표적이다. 그다음으로 많이 팔린 게 위로하는 책이었다. 30위 중 여섯 권이 '배려'(위즈덤하우스), '파페포포 안단테'(홍익출판사)처럼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다독거리는 책이었다. 그런데 2008~2009년 분위기가 달라졌다. 성공을 파는 책이 주춤했다. 그 대신 '나쁜 사마리아인들'(부키)과 '도가니'(창비)처럼 체제와 사회의 모순을 분석하고 폭로한 책이 대중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2010~2011년에는 이런 풍조가 한층 확연해졌다. 삼성그룹 비자금 파동과 관련한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와 노무현 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돌베개)가 돌풍을 일으키고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가 100만부를 찍었다. 작년 10월부터는 격한 말로 꽉 찬 책 '닥치고 정치'(푸른숲)가 찍기 무섭게 동나고 있다.

이젠 성공이 안 팔린다―한국

한편 성공을 파는 책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스티브 잡스'(민음사), '리딩으로 리드하라'(문학동네), '혼창통'(쌤앤파커스)이 명맥을 잇는 정도다.

반면 조용히, 그러나 점점 더 많이 팔리고 있는 게 위로·성찰·공감의 메시지를 전하는 책들이다. 작년 8월 '아프니까 청춘이다'(쌤앤파커스)가 출간 8개월 만에 100만부를 찍었을 때만 해도, 출판계에는 "그 책은 이제 팔릴 만큼 팔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수능을 마친 고3과 재수생이 대거 '아픈 청춘' 대열에 합류하면서 새해 들어 150만부도 가뿐히 넘어섰다. 요컨대 한국에선 성공에 대한 열망과 자신감이 쪼그라들고 ①정의·자본주의에 대한 회의(懷疑) ②위로·공감에 대한 갈증이 몸집을 불렸다. 그 사이 중국과 일본은 저마다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수퍼파워로 간다―중국

중국 당당닷컴이 집계한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정의를 부르짖는 책이 상위 20위 안에 5년간 한권도 없다. 오히려 수퍼파워 중국의 부활을 내세운 책 '불쾌한 중국'이 인기를 모았다(2009년). 전반적으로 건강·육아·역사를 다룬 책이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시크릿'이나 '불평없이 살아보자'처럼 성공을 파는 책들이 갈수록 많이 팔리고 있다.

여전히 개혁개방이 진행 중인 사회주의 국가라 그런지, 이따금 예상을 깨는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2008년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미국 심리학자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먼 길'이 20위에 들고, 작년엔 마르케스의 소설 '100년 동안의 고독'이 돌풍을 일으켰다.

안정인가 무기력인가―일본

일본은 한국보다 더 오래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지만, 체제와 사회에 성내는 책이 20위에 든 것은 최근 5년 새 '정의란 무엇인가' 한권밖에 없었다(2010년·종합 5위). 그렇다고 성공을 파는 책이 잘 나가느냐 하면 그것도 들쭉날쭉했다. 글로벌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의 경우, 상위 20위 중 11권이 '꿈을 이루어주는 코끼리'나 '초보 과장의 교과서'같은 자기계발서와 경제경영서였다. 글로벌금융위기가 지나간 2010년에는 오히려 자기계발서·경제경영서 비중이 8권으로 줄었고, 작년에는 5권에 그쳤다.

일본은 출판대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한중일 가운데 자국 작가가 쓴 '국산'(國産) 베스트셀러 비중이 가장 높았지만, 알맹이를 들여다보면 만화·미용·다이어트 책이 해마다 종합 베스트셀러 20위를 절반 이상 채웠다. 건강 책이 잘 팔리긴 중국과 마찬가지지만, 같은 건강 책이라도 중국에선 양생법을 폭넓게 다룬 책이 인기인 반면 일본에서는 '여의사가 가르치는 정말 기분좋은 섹스' '누워있기만 해도 살이 빠지는 골반 베개 다이어트'처럼 좁은 영역을 가볍게 다룬 책이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분노로 끓는 한국과는 온도가 다르다고나 할까. 최근 5년간 한중일 세 나라 독자들이 동시에 만장일치로 사랑한 책은 딱 한 권,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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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3. 01:20

1980년대 중반 유학시절, 동아시아 관련 강의는 인기 절정이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신흥산업국으로 치솟아 오르는 것도 그랬거니와, 태평양시대의 편대장 격인 일본 때문이었다. 강의조교였던 필자는 담당 학생들과의 한 시간 토론을 위해 밤을 새워야 했다. 30분 정도의 요약 강의에서 허점을 보였다간 오만한 저 미국의 수재들에게 망신당하기 일쑤였다. 긴장된 대본 암송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옮겨갈 즈음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한국은 어디에 있나요?” 오잉? 천연덕스러운 뜻밖의 질문에 대본은 흐트러졌다. 요즘 말로 ‘멍 때리는’ 한국인 조교를 미국 수재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들에게 제국 일본은 있었으나 식민지 한국은 없었다.

2년 전 여름, 외국 대학생들과 같은 주제로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사뭇 바뀐 동아시아 판도를 차분히 설명하는데 유럽에서 온 듯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한국이 일본보다 큰 나라죠?” 오잉? 그거 정말 듣고 싶은 얘기였다. 사실대로 답은 했지만 그 학생이 무한히 사랑스러워 보였다. 어쨌든 30여 년 만에 세계인의 인식이 그렇게 바뀌고 있다는 증거였다. 세계 주요 공항과 도시마다 삼성·LG 광고가 번쩍이고, 김연아의 빙무가 세계를 열광시킨 덕분이었다. 유엔 사무총장, 세계은행 총재가 모두 한국인이고, 미국 일류대학에 한국 학생이 매년 이삼백 명씩 입학하고, 세계 구석구석을 한국인들이 누비고 있으니 그런 인식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닐 터다.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뇌리에는 ‘일본은 대국(大國)’이란 불변의 명제가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영토 분쟁에 나선 최근 일본의 정치권과 언론의 행보에는 대국다운 면모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일본 명문대학과 십여 년을 교류한 경험은 조금 알쏭달쏭하다. 우리 학생들은 득의만만하게 이렇게 푸념한다. “말이 안 통해요.” 연구 주제가 너무 잘기 때문이란다. ‘편의점 알바 근로환경’ ‘자원봉사자의 구성’ ‘청년 취미생활의 실태’ 등에 집착하는 일본 학생들에게 국가, 민주주의, 사회운동, 변혁, 성평등같이 한국 학생들이 열 올리는 거대담론이 통할 리 없다. 교수들과의 회식자리에서 처음 온 신임교수에게 인사 겸 전공을 물어봤다. 그 친구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이렇게 답했다. “섹스 라이프.” 오잉, 성생활이라고? 하기야 사적 비밀과 내면세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사소설(私小說)의 전통을 가진 나라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고?’라는 질문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술 한잔으로 꼴깍 넘겼다.

일본은 선진국임에 틀림없다. 저 단편적 일화가 일본의 학문수준을 폄하한다면 어불성설이다. 작고 튼실한 소립자가 서로 엮여 촘촘히 짜인 사회가 일본이다. 일본의 힘은 거기서 나왔다. 자기헌신적, 자기완성적 소인(小人)들이 뭉치면 대인(大人)이 된다는 것을 터득한 일본인들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최상의 상징체계를 창안했다. 천황제가 그것이다. 천황제는 소립자들의 규합을 일사불란한 우주로 만드는 신화이자 종교다. 그래서 덴노헤이까를 위해 대동아전쟁을 일으켰고, 덴노헤이까를 외치며 산화했다. 종전 후 전범을 면한 덴노헤이까 상징체계는 일본의 경제 기적으로 부활했다. 그러나 경제적 성공은 위기의식을 갉아먹었고, 위기의식의 실종은 그 상징체계를 부식시켰다.


1989년 1월 히로히토 천황이 서거할 당시 미국 사회학자 노마 필드는 ‘절망의 통곡’과 ‘희망의 서곡’이 교차하는 일본의 이중적 집단심을 목격했다(박이엽 역,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 전자는 소인(小人)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후자는 원래의 자리, 진정한 소인에서 시작하자는 외침이었다. 양자 모두 대국환상(大國幻想)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원래 소국(小國)이었다! 천황이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정점에 서자 대국환상에 사로잡힌 일본인들이 바다를 넘어 한반도와 중국 대륙으로 질주했던 것이다. 그래서 영토점령과 징병, 징용, 군위안부 강제동원은 환상 속에서 일어난 일이 된다. 우리에게 뼈아픈 역사는 그들에겐 환상이었다.


그래서 5000만 한국인의 염장을 지르는 적반하장 격 질문이 가능하다. ‘증거를 대봐라?’ 증거를 대라는 것은 소인배의 어법이다. 대인(大人)이라면 스스로 한 짓을 부끄러워한다.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 36년간 강토를 유린했다면, 엎드려 있는 게 대국(大國)의 정도(正道)다. 8월 29일, 102년 전 한국을 불법 합병한 그날, 일본 의회는 바위섬 독도를 떼 가려고 일장기 앞에서 전원 기립했다. 시들어가는 대국환상 속에서 감행한 소국(小國)의 편벽한 단결이었다. 모든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역사를 냉혹하게 바라볼 집단 지성이 날개라면, 대국에서 소국으로 추락하는 일본은 날개가 없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한국은 대국적(大國的)인가?


송호근 서울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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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3. 01:16

일본은 오랜 기간 한국 경제의 ‘페이스메이커’였다. 페이스메이커는 마라톤에서 동료의 기록 단축을 위해 함께 뛰는 조력자다. 한국은 “잘살아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웃 나라 일본을 맹추격해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반도체, TV, 스마트폰 분야에서는 이미 전자왕국 일본을 따라잡았다. 최근 국가 신용등급도 사상 처음 일본과 같은 반열인 ‘Aa3’로 올랐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올림픽 성적에서 일본을 앞질렀다. 

일본과 거리가 좁혀질수록 고민도 깊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을 따라가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앞장서 길을 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에서는 “이제는 글로벌 기업이나 선진국을 따라잡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재빠른 추격자)’ 전략이 아니라 우리만의 콘텐츠로 승부를 거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발자)’가 돼야 한다는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왔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경영컨설턴트 피터 언더우드는 그의 책 ‘퍼스트 무버’에서 “퍼스트 무버의 핵심은 창의성인데 창의성은 도전정신에서 출발한다. 이 점에서 일본은 빵점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중국의 한자를 가져다가 문자로 만들고, 인도 카레를 카레라이스로 바꿨지만 스스로 한자와 카레를 개발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모방과 개선’의 천재 일본이 더는 한국의 페이스메이커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한국처럼 자원이 부족한 나라가 ‘맨땅에 헤딩’하듯 새로운 분야만 기웃거린다고 해서 성공한 선발자가 될 수는 없다. 경영학에서는 ‘선발자의 이익’으로 기술 자원 고객의 선점을 꼽지만 시장 개척에 따르는 실패 위험과 후발자 무임승차와 같은 ‘선발자의 불이익’도 함께 언급하고 있다.

한국형 퍼스트 무버의 제1조건은 우리 속에 내재된 창조혁신 DNA의 발현이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자(製字)원리를 갖고 있는 한글을 창조한 민족이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을 어여삐 여겨” 세계 각국 문자를 연구하고 우리만의 혁신적 상품인 한글을 창제해 사람들의 행동까지 성공적으로 바꿨다. 

제2조건은 시장 판도를 바꾸는 미국식 시스템적 사고다. 에디슨이 위대한 혁신가인 이유는 전구가 아니라 전구의 상업적 사용이 가능한 전력 인프라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애플의 히트작 중 원조는 거의 없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까지 창의적으로 활용해 게임의 룰을 바꿨을 뿐이다. 한국이 처음 개발한 MP3를 음악듣기 서비스(아이튠스)를 결합한 아이팟으로 내놓아 판을 바꿨다. 복사기회사 제록스의 그래픽모드에 착안해 매킨토시 컴퓨터 운영체제를 디자인했고, 미국의 팜과 림이 개념을 잡은 스마트폰을 아이폰으로 만들어 성공시켰다. 

제3조건은 개방과 협력이다. 1990년대 “왜색문화로 도배될 것”이라는 반발에도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빗장을 과감히 열었다. 지금은 일본이 한국 드라마, 케이팝(K-pop)의 최대 시장이 됐다. 자유무역협정(FTA)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가 한국이다.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며 활력을 잃었으나 부품소재 산업은 여전히 세계 최고다. 대일 무역적자의 80%가 여기서 나온다. 이기동 한일경상학회장(계명대 교수)은 “일본 기업의 투자 유치와 같은 경제 협력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한강의 기적’에서 보여준 기업가 정신이다. 폐선(廢船)을 바다에 가라앉혀 방조제 공기(工期)를 앞당긴 ‘정주영식 물막이 공법’이나 리비아의 국토를 바꾼 대수로 사업과 같은 극한상황 속의 도전이 혁신과 창조를 만들어낸다. 한국형 퍼스트 무버를 굳이 정의하자면 ‘패스트 무버(패스트 팔로어+퍼스트 무버)’쯤 될 것이다.

박용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20831/490045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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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3. 00:52

20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혁명광장에서 북한 노동자 15명과 마주쳤다. 그들은 비를 맞으며 화단 정비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이국땅에서 남루한 옷차림의 북녘 동포들이 허드렛일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기분이 착잡했다.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지만 돌아온 것은 경계심 가득한 눈길뿐. 허연 피부의 러시아 행인들 때문인지 햇볕에 그을린 북한 노동자들의 얼굴이 유독 시커멓게 보였다.

푸틴과 APEC이 제공하는 기회


북한 노동자의 모습에 혁명광장의 역사가 겹쳐 흘렀다. 러시아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광장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의 아픔이 배어 있는 곳이다. 스탈린은 러시아 극동지역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을 느닷없이 혁명광장에 집결시켜 6000km 떨어진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으로 쫓아냈다. 수많은 고려인이 짐짝처럼 열차로 수송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러시아 기록에 따르면 17만여 명의 고려인이 사막이나 다름없는 허허벌판에 버려졌다. 강제이주 이듬해 7000여 명, 그 다음 해 4800여 명이 숨졌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과 러시아의 극동은 다른 모습으로 만나고 있다.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는 광장 앞 대로를 지나는 버스는 대부분 현대차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 가장 흔한 외국 광고 또한 LG를 비롯한 한국기업 홍보용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다음 달 8, 9일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블라디보스토크에 230억 달러를 퍼부었다. 그의 극동 개발 및 주변국들과의 경제협력에 대한 열망은 5월 취임과 함께 출범시킨 극동개발부에서도 잘 드러난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는 새로 건설된 교량 도로 건물로 활기가 넘쳤다. 정상회의장인 루스키 섬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하는 3.2km의 연륙교는 장관이다. 루스키 섬에는 30개국 정상들이 사용할 회의장과 숙소가 들어섰다.

러시아가 APEC을 계기로 획기적인 경제협력 확대를 바라는 첫 번째 후보가 한국이다.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과 러시아 극동연방대가 공동 주최한 국제포럼에 참석한 러시아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한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했다. 루킨 아르툠 극동연방대 교수는 “러시아의 극동지역이야말로 한국과 가장 효과적인 경제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지역”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바라는 한-러 협력은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 남-북-러 천연가스관 사업에 머물지 않는다. 미하일 홀로샤 극동기술연구소 소장은 러시아가 추진 중인 거미줄 형태의 교통망 건설 계획을 공개하면서 북극항로와 블라디보스토크∼하바롭스크 고속철 건설사업에도 한국의 참여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서울에서 불과 744km 떨어져 있다. 그 너머에는 극동지역만 따져도 한반도보다 15배나 넓은, 자원이 풍부하고 비옥한 땅이 펼쳐진다. 이런 곳에서 한국을 향해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中日 제치고 달려갈 수 있다


러시아의 극동은 지정학적 이유로도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다. 이양구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는 “러시아와 중국은 절대로 손을 잡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면서 “러시아는 2차례 전쟁을 치른 데다 영토분쟁까지 겪고 있는 일본도 신뢰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각축전을 벌여야 하는 한국에 러시아 극동은 ‘단독 찬스’나 마찬가지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동방을 점령하라’는 뜻이다. 1863년 처음으로 러시아로 이주한 조상들처럼 러시아의 동방으로 뻗어나가야 진취적인 후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시간이 별로 없지만 내년에 들어설 새 정부는 러시아의 극동을 한국 경제의 도약대로 활용하는 혜안이 있었으면 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20825/48864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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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2. 20:34

폴 베이로츠(1930~99)는 세계 경제사의 심각한 오류를 많이 바로잡은 경제사가다. 그는 서양의 동양 지배가 근대부터 시작됐다는 종래의 신화를 깨고 19세기까지도 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중심이었음을 증명해 냈다. 그에 따르면 1750년 전 세계 총생산(GNP)은 1550억 달러(1960년 달러 가치 기준)였고, 그 77%인 1200억 달러가 아시아의 몫이었다. 1860년에도 전 세계 총생산 2800억 달러의 거의 60%인 1650억 달러를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가 차지했다. 1800년의 1인당 총생산은 중국 228달러, 영국과 프랑스가 150~200달러였다. 서양의 팽창 기간으로 알려진 1400~1800년대에 세계 경제는 여전히 아시아의 지배 아래 있었다(안드레 프랑크, 『ReOrient』).

 21세기는 아시아 시대다. 그러나 역사학자들 연구 결과를 보면 21세기에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니라 19세기 서양에 빼앗겼던 패권을 다시 찾은 것이다.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용들이 그 추진 세력이다. 미국 오바마 정부와 19세기 이래 서양 행세를 한 일본이 서둘러 아시아 회귀를 선언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 아시아 시대에 노란불이 켜졌다. 아시아 시대를 주도할 한·중·일이 영토와 과거사로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여 어렵사리 맞은 아시아 시대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한·중·일이 아시아 시대를 주도할 능력이 있는가에 심각한 회의가 든다. 한·중·일 갈등의 원흉이 일본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 지배와 중국 침략의 욕된 과거를 정리하기를 거부하는 데서 모든 문제가 생긴다. 독도 영유권 주장은 한반도 통치의 끝자락을 놓지 않겠다는 파렴치다. 일본의 양식 있는 생각 하나로 해결될 수 있는 위안부 문제도 방치돼 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일본에 필요한 각성제의 성격을 가진다. 한국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부산·대구 방문과 다를 것이 없다. 그래도 역대 대통령들이 독도를 방문하지 않은 것은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현실을 생각해서였다. 문제는 거기에 국내 정치가 끼어든 것이다. 친형과 측근들이 줄줄이 비리에 연루돼 심각한 레임덕 현상을 만난 이 대통령에게는 일본 배려보다는 국내 정치의 국면전환이 더 급했다. 그래도 일본이 그의 독도 방문을 시비하는 것은 심각한 내정간섭이다.

 이 대통령이 여론의 갈채를 업고 내친김에 일본에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일본이 과잉대응하며 한·일 갈등이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여론의 장으로 넘어갔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둥, 일왕이 한국에 오려면 일왕이 일제 지배의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라는 둥의 말은 틀린 데는 없어도 독도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한국에 어떤 실익(實益)도 가져오지 않는 발언이다.


일본에서 국왕은 정치에 초연하다. 그는 한국에 오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일본에서도 한국에 가장 우호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일본인들에게 그는 ‘지존’이요 ‘성역’이다. 그에게 한국 대통령이 뜬금없이 종주먹을 휘둘렀다. 일본 여론이 훌렁 뒤집히고, 인기가 바닥을 헤매던 약체의 노다 내각이 그 분위기에 재빨리 편승했다. 연내에 총선을 치러야 할지 모르는 노다에게 이 대통령의 언행은 하늘이 내린 굵은 동아줄 같은 것임에 틀림없다.


 중국과 일본의 댜오위다오(센카쿠) 분규도 위험 수준이다. 두 나라 시민과 정치인들이 댜오위다오 상륙 경쟁을 벌이고, 중국 정부의 묵인 아래 반일 과격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 지도부도 예전같이 여론의 민족주의적 요구를 무시할 수만은 없다. 한·중·일 갈등은 아시아·태평양의 질서 개편 과정에 겪는 진통이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일극체제를 최소한 미·중 양극체제로 바꾸려 하고, 일본은 중국에 아시아의 ‘주요국’ 지위를 양보하지 않겠다고 저항한다. 그 틈에서 한국은 균형자로 존재감을 높여 주역의 하나가 되려고 한다. 그러나 한·중·일에 얽힌 과거사가 협력은 고사하고 합리적 외교를 통한 질서개편을 어렵게 만든다.

 한·중·일 충돌에 미국은 희비가 교차한다. 일본 안보의 탈미국이 멀어지고 중국 견제의 호재를 만나 즐겁지만 한·일 분규가 중국을 시야에 둔 미국의 한·미·일 삼각안보협력체제 구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 문제다. 한·중·일 지도자들이 민족주의적 포퓰리즘 행보를 계속하면 아시아 시대에 켜진 노란불이 빨간불로 바뀔 수도 있다. 지금의 지도자들은 통제력을 잃었다. 시민사회가 이성을 회복해 역사의 역주행을 막고 아시아 시대가 허상으로 끝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131635&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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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2. 19:59

왜 일본은 독일처럼 못할까. 군국주의 시절 우리에게 저지른 만행을 절대로,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는 일본을 볼 때마다 의아했다. 세계가 다 아는 ‘군 성노예’ 배상을 외면하는 일이 얼마나 일본 남자들을 징그럽게 만드는지, 잊을 만하면 독도를 들먹이는 게 얼마나 식민지배 근성을 드러내는지 그들은 모르는 건가, 모르는 척하는 건가.

일왕 언급에 경악…神政국가인가

“아키히토(明仁) 일왕도 한국을 방문하고 싶으면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하면 좋겠다”는 우리 대통령의 발언에 일본 열도가 뒤집힌 모양이다. 

일본에선 교통사고가 늘어나도 총리가 ‘통석의 염’ 운운하며 국민에게 사과한다는데, 1989년 일왕이 그 말을 했을 때는 그것도 모르고 해석에 골몰했다. 그렇게 어려운 말이나 하려면 안 오는 게 낫다는 언급에 아사히신문까지 “국가 원수로서의 품격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마호메트를 불경스럽게 그렸다고 이슬람권이 발칵 했을 때를 연상케 한다. 일본이 왕정(王政) 아닌 신정(神政)국가라도 되는 것 같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곧바로 독일제국의 이름으로 이뤄진 모든 죄과를 국가적 차원에서 사죄했고, 물질적 정신적 보상을 해 왔다. 1970년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해 유대인 희생자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사진은 다시 봐도 뭉클하다. 

개인이라면 죄의식이 없을 수도 있다. 유대인 대량학살의 책임자인 카를 아돌프 아이히만도 법정에서 “상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라고 뻔뻔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독일은 책임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상국가’가 될 수 있었다. 유로존 위기가 닥치자 과거 전쟁으로 못 꺾었던 나라들을 경제로 무릎 꿇게 만든 힘도 여기서 나왔다.

일본이 독일처럼 못 된 이유를 “독일은 1945년을 ‘0시’로 삼아 과거와 완전히 단절했지만 일본은 못 했기 때문”이라고 이언 부루마는 ‘죄의 값’에서 지적했다. 천황제를 통해 자신들이 신의 민족이라고 믿어 온 일본인은 패전 후에도 천황제를 유지함으로써 민족적 우월성을 고수한다. 때론 노골적으로 이웃나라를 멸시하는 것도 이들에겐 당연하다. 명령과 복종을 끔찍이 여기고, 전체주의와 집단의식에 젖어 민주주의와 잘 맞지 않는 기질도 이와 무관치 않다.

10년 전까지 일본처럼 환상 속에 살던 나라가 또 있었다. 합스부르크 황실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오스트리아다. 나치 독일에 기꺼이 합병된 오스트리아는 독일 뺨치게 유대인 학살에 열을 올리고도 패전 뒤에는 ‘나치의 피해자’를 자처했다. 그러고는 영세중립국을 표방하고 경제에 매진해 선진국으로 변신했다. ‘원폭 희생자’라면서, 우리나라보다 더 불쌍하고도 평화를 사랑하는 모습으로 미국과 경제에 매달린 일본과 참으로 비슷하다.

‘많이 아픈 나라’ 증거 같은 행태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나라답게 오스트리아는 불쾌한 기억을 무의식 속에 묻어 두는 ‘억압’ 기제에 능했다. 나치에 협력한 정치인과 관료들이 전후에도 고위직을 차지했고, 학교 역사시간엔 2차대전 전까지만 가르칠 정도였다. 굴욕을 참느니 차라리 할복하는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는 억압 기제의 극단적 발현이다. 만행을 저지른 세대는 의도적으로 과거를 버렸고, 젊은 세대에게는 아예 알리지 않았다. 따라서 진심으로 사과를 할 것도 없는 기형적 상황이 된 셈이다.

사람이 사람을 중히 여기는 인류 보편의 가치와 너무나 먼 이런 나라는 정상국가라고 하기 어렵다. 오스트리아도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쿠르트 발트하임이 나치에 복무했다는 것을 알면서 1986년 대통령으로 뽑는 ‘공범의 시절’이 있었다. 1999년엔 나치 고위직 출신이 낀 극우정당을 제1당으로 만들 만큼 이 나라 사람들은 죄의식 제로 속에 살았다.

이런 나라를 정상국가로 돌려놓은 것이 2000년 유럽연합(EU) 14개 국가의 압력과 미디어였다. 유대인의 집단배상소송까지 쏟아져 엄청난 배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는 고립될 수 없었던 오스트리아는 2002년 총선에서 극우당을 몰락시킴으로써 비로소 독일처럼 됐다는 평가를 얻을 수 있었다.

일본이라고 이런 압력을 안 받는 게 아니다. 미국 캐나다 유럽의회 등 전 세계가 일본의 ‘군 성노예’ 강제행위를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가적 잘못을 인정하고 인류 보편의 가치로 돌아서기는커녕 일왕을 언급한 것만으로도 온 나라가 뒤집어진다는 건, 일본이 많이 아프다는 증거다.

그래서야 우리와 같이 자유민주주의라는 공통의 가치를 추구한다고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더구나 올해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발효로 일본이 국제사회에 복귀한 지 60년이 되는 해다. 아무리 평화헌법을 고친다 해도 과거의 잘못을 직시하고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는 한, 일본은 문명사회를 선도하는 국가라 할 수 없다.


김순덕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20820/487332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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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2. 19:51

요즘 국제 뉴스를 검색하다 보면 중국 신화통신의 영문 뉴스가 부쩍 늘었다는 걸 실감한다. 미국발 뉴스를 신화통신 영문 뉴스를 통해 먼저 알게 될 때도 있다. 신화통신은 2010년 24시간 영어 뉴스 채널도 시작했다. 신화통신 사장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관점에서 국제적인 비전을 보여주려는 정부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국영방송인 CCTV도 24시간 영어 뉴스 채널을 운영한다. CCTV는 2010년 수십명 수준이던 해외 인력을 올해 말까지 280명, 2016년까지는 80개 지국 5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CCTV는 미국 워싱턴에 기자 80명을 두고 있다. 이는 워싱턴에 있는 한국 특파원단 전부를 합한 숫자의 2~3배에 달한다.

CCTV의 해외 진출은 미국을 비롯, 유럽, 중남미, 아프리카, 아시아·태평양 지역 등의 6개 지국을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한다. 이 프로젝트의 명분은 ‘중국 시각으로 국제 뉴스를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서구 미디어들이 중국에 대한 편파적인 시각으로 중국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그리는 걸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위성TV 방송 ‘알자지라’의 성공을 눈여겨봤다고 한다. 알자지라는 중동과 아랍인 시각에서 국제 뉴스를 보도해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중국의 꿈은 알자지라보다 더 커서 ‘세계적인 미디어 제국’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중국의 ‘국가적 사업’이라는 데 있다. 지난해 신화통신은 미국 뉴욕의 타임스스퀘어 근처에 사무실을 열었고, 타임스스퀘어의 전광판을 임차, 광고도 시작했다. 주요 언론사가 모여 있는 지역에 진출함으로써 국제적인 면모를 한층 강화한 듯했다. 하지만 뉴욕에서 영어로 보도한다 해도 신화통신이 결국 중국 공산당의 선전기구라는 점 때문에 경계의 눈길은 사라지지 않는다.

중국 보도기관들이 권력 감시와 공익 수호라는 언론의 기본 사명을 공유하는지도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보도기관들이 중국 당국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의 스캔들이나 티베트 독립운동 등을 속 시원하게 보도하지 않는다고 본다. 리비아 사태 때도 장기 집권 독재자 카다피 처지에서 보도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래서 중국 보도기관들의 세계 진출 확대에 대한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국영 보도기관들의 해외 진출 프로젝트에 약 8조원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광고 시장 사정이 악화돼 세계 유수 언론사들마저 적자에 시달리다 규모를 축소하고 문을 닫는 마당에 이들은 국가 지원을 받으며 거침없이 활동 무대를 넓히고 있다. 사정이 어려운 개도국 언론사에 신화통신 영문 뉴스를 공짜로 제공하고, 언론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에 통신위성을 지원한다. 중국산 뉴스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이런 추세로 가다 보면 기존 언론사들의 활동이 위축된 상황에서 중국 당국의 통제를 받는 보도기관이 만들어낸 중국산 영문 뉴스가 미디어 시장에서 판치는 날이 곧 올 수도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최근 “정보 전쟁에서 미국이 밀리고 있다”고 한 것도 중국의 이 같은 공세를 의식한 것이다.

중국 보도기관들의 해외 진출 확대 계획은 규모가 너무 커서 중국이 ‘미디어 항공모함’을 띄울 기세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진짜 경계해야 할 것은 중국이 러시아에서 사들인 ‘바랴그’호를 개조해 만든 항공모함이 아니라 바로 이 미디어 항공모함이란 것이다. 세계가 가격 때문에 값싼 중국산 상품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국가 지원 덕에 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대량생산할 수 있는 중국산 영문 뉴스를 볼 수밖에 없는 날이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중국산 뉴스엔 중국 당국의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다.



강인선 국제부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19/20120819012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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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22. 13:11

후지 코닥 아그파 코니카. 한때 세계 카메라필름 시장을 과점하던 4개사다.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으로 필름 수요가 없어지자 미국의 코닥과 벨기에의 아그파는 거의 파산했다. 반면 일본의 후지와 코니카는 생존에 성공했다. 트리아세틸셀룰로스(TAC)필름 쪽으로 눈을 돌린 덕분이다. TAC필름은 TV PC 휴대전화의 모니터에 쓰이는 액정표시장치(LCD)편광판을 보호하는 첨단소재. 국내에서는 효성이 2009년부터 생산하고 있지만 자급률 1∼2%이며, 나머지는 세계시장의 99%를 장악한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日 부품소재산업 여전히 세계 최강


폴리이미드(PI)필름은 섭씨 400도의 고온과 영하 269도의 극저온을 견딘다. 내화학성 내마모성도 뛰어나다. 인공위성, 발광다이오드(LED), 태양광, e북 등은 이게 있어야 만들 수 있다. SK가 2000년대 후반 독자개발한 덕에 국산화율 15%이며 나머지 85%는 일본 가네카사로부터 수입한다. 대규모집적회로(LSI) 등 미세하고 복잡한 회로 패턴의 생산에 없어서는 안 되는 포토레지스트는 93%를 일본에 의존한다. 한국이 무역수지 흑자 기조를 굳힌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작년 286억 달러 적자다. 대일(對日) 적자의 70%가 이 같은 첨단 부품소재산업에서 나온다.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과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며 활력을 잃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신용평가회사 피치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AA―로 올려 일본(A+)을 앞질렀다. 일본으로서는 처음 겪는 굴욕이다. 동아일보가 경제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에서는 7명이 “한국의 1인당 소득이 20년 안에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우쭐한 기분이 들지만 그렇다고 한국 경제가 곧 일본을 추월할 것처럼 착각해선 안 된다. 국가신용등급이나 구매력기준(PPP) 소득 같은 걸로 ‘일본 추월’을 거론한다면 코미디다. 두 나라 경제를 비교하려면 경제의 ‘규모’(국내총생산·GDP)와 ‘질’(핵심산업지배력)을 봐야 한다. 중국이 ‘G2’라 불리는 것도 GDP에서 일본과 독일을 멀찍이 제쳤고, 기초과학기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GDP는 한국의 5배, 인구는 2.4배다.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며 외환보유액도 1조2700억 달러로 세계 2위다. 제조업 경쟁력, 특히 핵심기술부품 및 소재에서는 세계 최강이다. 일본은 ‘몸살 앓는 거인’이다.

일본의 신용등급이 떨어진 것에는 이유가 많지만 핵심은 정부 부채, 즉 국채다. 하지만 일본 국채 문제는 매우 독특하다. 국채의 대부분이 국내에서 엔화로 발행돼 ‘일본인이 일본인에게 진’ 빚이다. 국가 부도 위험이 전혀 없다는 뜻. 빚과 함께 원리금 청구권도 다음 세대로 승계된다. 따라서 미래의 어떤 시점에 납세자(대부분 중산층이다)가 국채 투자자(같은 계층이다)에게 갚으면 그만인 구조다. 

신용등급 올랐지만 곳곳에 지뢰밭


일본을 가벼이 볼 게 아니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국가부채 해결을 위해서는 세수 증대가 필요하고 소비세 인상이 유일한 대안이지만, 여야가 권력 다툼에만 매몰돼 유권자들이 싫어할 세금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일본 문제의 근본 원인은 정치의 마비, 국가 리더십의 실종에 있다. 구조조정을 통한 산업구조 선진화가 지연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등급은 올라갔지만 한국 경제에 대한 도전이 만만찮다. 가계부채와 부동산 침체는 최대의 복병이다. 일자리, 양극화, 고령화, 노사, 기초기술 부족 등 난제가 산적하다. 국가부채는 GDP 대비 34%로 아직 건전하지만 빚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포퓰리즘 경쟁은 이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일본 경제상황을 지켜보면서 우리의 현주소를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http://news.donga.com/Series/List_70040100000105/3/70040100000105/20120920/495378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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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15. 23:20

최근 한일 관계가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이 연기되는 등 급랭한 데 대해 일부 일본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가 친중(親中)적으로 변화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독도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는 주기적으로 냉·온탕을 거듭해왔지만 이번 GSOMIA 연기는 과거와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GSOMIA 반대론에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발전, 중국 포위망을 형성할 수 있다는 우려가 포함된 점에 주목하고 있다. GSOMIA 반대의 명분은 '반일(反日)'이지만, 본질은 '친중(親中)·탈미(脫美)'라는 것이다. 한국 국방부가 중국과 GSOMIA와 유사한 군사협정 추진계획을 밝힌 것과 관련, 한 전문가는 "한국 정부까지 중국 눈치를 노골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한국의 중국관은 실용주의적인 측면이 강하다. 경제적으로 최대 교역국이며 북한에 영향력을 직접 행사할 수 있는 국가는 중국밖에 없다. 중국을 자극해서 경제적으로도, 남북한 관계에도 도움이 될 게 없다는 논리이다. 일부에서는 몰락하는 명(明)나라에 편중된 외교를 펴다가 청(淸)나라의 침략을 자초했던 조선시대의 '삼전도의 굴욕'까지 들먹이며 친중외교를 강조한다. 제주해군기지 반대론자들도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에 동참, 중국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편다. '떠오르는 태양' 중국과 '지는 태양' 미국 사이에서 무엇이 국익(國益)인가 하는 질문도 던진다. '연미화중(聯美和中)'이니 '연미연중(聯美聯中)'이니 하는 논쟁이 벌어지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중국이 결코 떠오르는 태양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중국이 아무리 경제가 발전해도 공산당 독재라는 본질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심지어 방위백서에서 중국이 빈부격차·소수민족·인권문제 등으로 사회불안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를 외부에서 해소하기 위해 극단적 민족주의와 군사적 모험주의를 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군사대국화, 동·남중국해 진출 강화가 그 전조(前兆)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일 등이 군사·경제 협력을 강화, 중국을 국제사회의 규범을 지키는 국가로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한국의 동맹국인 미국의 아시아 전략이기도 하다. 물론 "10년째 중국 붕괴론이 나오지만, 이제는 중국 붕괴론이 붕괴할 때가 됐다"는 주장을 펴는 전문가도 있다.

한국은 중국의 장래에 대해 일본과 달리 낙관적이다. 단기간에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달성한 우리의 성공 체험처럼 중국도 정상적인 국가로 발전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낙관론의 배경에는 중국이 극단적인 경제 침체나 사회 혼란에 빠질 경우 초래될 한국 경제의 타격이나 한반도 정세 격변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또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하고 좋은 것만 상상하고 싶어하는 심리도 작용한다.

하지만 한국도 동북공정 등 역사 왜곡, 이어도 분쟁, 탈북자 강제송환, 대북활동가 고문(拷問) 등 중국과의 갈등 요소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도 '중국 리스크'를 관리해야 할 선택의 순간이 임박하고 있다. 적당한 눈치 보기와 현실 외면은 올바른 생존전략도, 국익(國益)도 아니다.



차학방 도쿄특파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10/20120810026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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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15. 20:39

전체 수출서 중국 비중 24%… 中 성장세 꺾인다면 큰 위협
인도·브라질 등 수출 늘리고 중국 내수시장 전략이 필요
자본재의 국산화 비율 높여 무역 흑자 對中 의존 낮춰야


2분기 중국 경제성장률이 8% 밑으로 떨어졌다. 금융 위기와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닌 시기에 중국의 분기 성장률이 8%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03년 이래 9년 만의 일이다. 중국도 이제 10%를 넘나드는 고성장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 하겠다.

중국 경제가 한국 경제에 갖는 의미를 생각할 때 이는 결코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다. 중국 경제는 1990년대 이후 고성장을 지속해 왔고 그에 힘입어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 역시 급팽창해 왔다. 1990년대 말 100억달러 수준이던 대중국 수출은 1300억달러를 넘어섰고, 전체 수출에서 대중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24%까지 높아졌다. 홍콩·대만 등 범(汎)중국권을 포함하면 그 비중은 더욱 높아진다. 중국 수출을 발판으로 한국은 세계 7위의 수출대국으로 발돋움했다.

중국과의 교역은 규모뿐 아니라 수지 면에서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1998년 이후 지금까지 중국과의 교역에서 얻은 무역수지 누적 흑자액은 2800억달러에 달한다. 같은 기간 한국의 전체 무역수지 흑자는 3000억달러 수준이다. 중국과의 교역이 한국 경제의 성장에 기여했음은 물론이고 1990년대 말 외환 위기와 이번 금융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중국의 경제성장세가 꺾인다면 한국 경제에 커다란 위협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혹여 중국경제가 성장이 둔화되는 과정에서 위기라도 겪게 된다면 우리 경제에 주는 충격은 지금의 유럽발(發) 위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클 것이다. 중국경제가 고성장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3%대에 머물고 있는데 중국이 어려워지면 어떻게 될까? 향후 10년간 한국 경제에 가장 큰 리스크 요인을 들라면 그것은 중국 경제의 안위(安危) 여부다.

중국 경제가 여전히 한국 경제에 과실을 안겨주고 있지만 중국경제 의존도가 크게 높아진 상황이라 이제 그 달콤함에 취해 있기만 할 때는 지났다. 그동안 얻은 과실이 컸던 만큼 중국 경제가 어려움에 처할 때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고통 역시 상당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그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선 근본적으로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를 낮춰가야 한다. 중국은 여전히 매력적인 교역 상대국이니 중국과의 교역 확대는 지속되어야 하는 일이고, 결국 중국 이외 국가들에 대한 수출을 더욱 확대하는 것이 답이다. 특히 인도·브라질 등 신흥국들에 대한 수출 확대 여지가 많다. 인도와 브라질의 경제 규모를 합치면 중국경제의 60%에 달하지만 이 나라들에 대한 수출은 대중국 수출의 20%도 되지 않는다. 또 이 외에도 중산층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성장성 높은 신흥시장들이 많아 이들에 대한 집중공략이 필요하다.

대중국 수출구조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 대중국 수출의 70% 이상이 중간재 수출이고 이 중 상당부분이 중국에서 가공되어 전 세계로 수출된다. 따라서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중국의 수출 환경에 크게 좌우된다. 문제는 중국의 한 해 수출규모가 2조달러에 달할 정도로 커져 공룡화된 반면 세계 경제는 저성장이 장기화되고 있어 앞으로 수출 둔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도 수출을 통한 성장이 한계에 부딪힐 것을 예상하고 지난해 이미 '12차 5개년 규획'을 통해 내수 확대 성장 전략을 선언한 바 있다. 중국은 앞으로 소비수요 확대를 위한 환경 조성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총생산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35%밖에 안 될 정도로 중국의 소비시장은 발달이 지체되어 있다. 이는 그만큼 소비시장의 성장 여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공무역의 전진기지로서만이 아니라 유망한 소비시장으로서 중국 내수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수출 전략이 필요하다.

중국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 의존도도 낮춰가야 한다. 한국의 무역구조를 단순화해 보면 자원생산국에서 원유 등 원자재를 들여와 일본 등에서 구입한 자본재를 활용해 상품을 만들어 전 세계에 수출하는 구조다. 따라서 무역수지는 산유국과 일본에 대해 대규모 적자가 발생하고 중국 등 상품 수출국에서 흑자를 내는 구조다. 결국 무역수지 흑자 구조를 근본적으로 강화하기 위해서는 에너지효율 제고 등을 통해 원자재 활용 효율을 높이고 자본재의 국산화율을 높이는 정책적 노력이 배가되어야 한다.

유로 체제도 처음 출범했을 때 역내(域內) 교역이 활성화되고 금융 접근성이 높아지는 등 회원국들에 과실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달콤한 과실 안에는 재정위기라는 치명적인 독(毒)이 숨어 있었고 결국 과실의 향유는 10년을 가지 못했다. 중국경제가 우리에게 그렇게 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18/20120718017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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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14. 18:24

북한 배제 동아시아 평화나 공동번영 논의는 불가능 김정은을 파트너로 인정해야

동아시아 연구의 개척자인 백영서 교수는 꽤 오래전에 ‘동아시아의 귀환’이라는 말을 썼다. 중국의 재등장을 염두에 둔 표현인데, 냉전시대 지리적 개념으로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동아시아가 냉전 해체를 계기로 평화와 번영의 생활협력체로 다시 태어나고 있음을 상징화한 말이다.


과거 명·청 등이 중국 대륙을 지배하던 봉건시대에도 동아시아는 비록 ‘조공질서’라는 불평등 질서에 놓여 있었지만 서로 오가며 교역하는 하나의 느슨한 유기적 공간이었다. 그러나 냉전시대 중국과 소련은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인접국이었지만, 오갈 수 없는 곳이었다. 총칼과 적개심으로 무장한 진영 대결이 단 한명의 인적 교류도 한 뭉치의 상품 교류도 허용하지 않았다. 우리가 휴전선을 뚫고 대륙으로 진출한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한낱 ‘꿈’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 말부터 본격화한 냉전의 해체가 동아시아를 경제적 유통과 인적교류가 넘치는 생활협력체로 돌려놓았다. 동아시아가 돌아온 것이다. 동아시아의 귀환은 한국에 축복과 기회였다. 한-중, 한-소 수교로 열린 북방은 한국 경제의 발전 동력이 되었으며 ‘한류’의 확산이 보여주듯이 한국의 문화역량을 확산시키는 발판이 되었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1990년 전체 수출의 0.9%에서 2010년에는 25%에 이르렀다. 이 간단한 수치로도 동아시아의 귀환이 우리에게 준 기회와 삶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귀환했지만 정작 그 안에서 수천년 동안 하나의 민족을 이루며 생활공동체를 꾸려왔던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시대의 포로로 억류된 채 귀환하지 못하고 있다. 남북 분단과 대결은 온전한 동아시아의 귀환마저 방해하고 있다. 이제 휴전선의 철책을 걷어내 남북협력을 실현하고 유라시아 대륙으로 진출하는 것이 ‘꿈’이 아닌 필수적인 국가전략이 되었음에도 집권세력은 이를 외면한 채 그 길을 막고 있다.


우리는 부산이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한반도 동남단에 위치한 세계적인 항구도시라고 자랑하지만 기실 분단에 가로막혀 10만㎢의 면적을 가진 대한민국의 항구도시로 묶여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부산에서 시작하는 철도와 도로가 휴전선을 넘어 중국·러시아와 연결되어야만 부산항은 면적 5500만㎢, 인구 40억명이 사는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잇는 최대의 물류기지로서 제구실을 할 수 있다. 부산에 몇십개의 공장을 유치한들 이보다 더 이 도시를 번영하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대로 서해 북방한계선(NLL) 수역이 평화구역으로 바뀌고 남북협력이 이루어지면 황해경제권이라는 거대한 생활권이 형성된다. 엔엘엘만 분쟁에서 평화의 선으로 바꾸어 내면 남·북·중 협력을 통해 중국 고속성장의 핵심지대인 동부해안과 한반도 서해안을 연계발전시키는 역동적인 황해경제권을 구축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한반도의 귀환은 바로 이러한 비전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한반도의 귀환은커녕 거꾸로 한반도를 이미 역사박물관에나 가 있어야 할 냉전구조 속으로 떠미는 형국이다. 남북대결 때문이다.


북한을 빼고 동아시아의 평화나 공동번영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핵 문제로 항상 뒷전에 밀리는 주장이 되었지만, 북한과 협력하지 않고는 온전한 동아시아의 귀환도, 한반도의 귀환도, 대륙을 향한 남한의 기회 실현도 어렵다. 다행히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은 앞선 지도자들보다 실용적인 통치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이미 북-중 국경에서는 양국 공동의 경제특구가 건설중이며 북한이 중국식 개방을 선택했다는 것은 새로운 소식도 아니다. 아직 젊은 김정은이 고정된 남한 인식, 서방 인식을 가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검증되지 않은 그의 호전성만 지나치게 강조하지 말고 그를 정당한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평화와 협력의 장으로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바로 이 일이 2013년에 들어설 새 정부가 대북정책에서 취해야 할 첫 조처이다. 그래서 냉전세계로부터 한반도를 귀환시켜 온전한 동북아의 귀환을 실현하고 우리의 삶의 질도 한 단계 높여야 한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35106.html

Posted by 겟업
2012. 8. 14. 17:45

드디어 출발 신호가 울렸다. 13억 이상의 인구와 세계 두 번째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개시한 것이다. 세계 최대 경제단위인 유럽연합(EU)과 단일 경제로는 최대국가인 미국에 이어 중국과의 시장 통합을 추진하는 10대 교역국은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사실 중국과 자유무역을 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국가는 많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을 막아내기에 급급한 게 대부분 국가들의 실정이다. 그러나 원유나 원자재, 광물자원 교역을 제외하고 중국과의 교역에서 지속적으로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드문 나라가 우리나라다. 2003년 하반기부터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으로 부상했다. 작년에는 480억 달러의 대(對)중국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냉전체제하에서 총부리를 겨누던 양국 관계는 이미 불가분의 단계에 들어섰다. 양국을 오가는 비행기는 52개 노선에 주당 840편에 이르고, 세계 중국어자격시험 응시자의 60% 이상은 한국인이다. 

중국과의 FTA 협상은 쉽지 않을 것이다. 농수산물 분야는 물론이고 현재 수입이 많은 대부분의 산업부문은 민감품목 보호를 요청해 우리 정부는 2단계 협상이라는 고육지계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미국, EU와 FTA를 타결한 우리의 협상 역량과 중국 지도부의 통 큰 리더십을 감안하면 협상 타결은 시간문제다. 



한중 FTA 협상이 개시된 현 시점에서 향후 일본의 전략적 대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아세안 국가들과 FTA에 주력하던 일본은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협력협정 참여를 지렛대로 삼아 EU와의 FTA까지 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일본은 농산물시장 개방에 발목이 걸려 옴짝달싹 못하는 형국이다. 잊을 만하면 광우병 문제로 난리가 나는 쇠고기 수입만이 아니라 수차례 세계무역기구(WTO) 소송까지 불사하는 사과, 김 수입문제 등을 감안하면 전면적인 농수산물 수입문제를 미국 및 EU와 해결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따라서 일본은 보다 현실성 있는 대안으로 한중일 FTA에 집중할 공산이 크다. 특히 한중 FTA 타결이 현실화하는 시점에서는 이를 견제하는 차원에서라도 한중일 FTA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되기에 동아시아 경제통합이 한층 구체화될 수 있다. 

다음 단계로는 대만의 한중일 FTA 참여가 예상된다. 한중일 FTA가 체결되는 시점에는 중국과 대만 간 FTA도 본격화돼 한국과 일본의 대만에 대한 FTA 요구가 높아지게 된다. 더욱이 한중 또는 한중일 FTA 이후에는 중국이 대만의 FTA를 용인할 수 있는 정치적 여지가 커지게 된다. 

마지막 단계로 북한과의 FTA가 대두된다. 북한 개혁·개방의 선결요건이자 산업화의 디딤돌로 남북한 FTA는 통합된 동아시아시장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이를 토대로 하는 북한의 경제체제 안정이야말로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과 통일의 초석이 된다. 

그러나 동아시아 경제통합을 향한 역사의 물줄기에 놓여 있는 걸림돌도 만만치 않다. 날로 고조되는 동아시아 삼국 간의 역사와 영토를 둘러싼 분쟁과 이에 편승한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은 지난 역사의 쓰라린 경험을 교훈보다는 굴레로 만들고 있다. 게다가 동아시아 삼국 모두 겪고 있는 정치적 지도력 약화문제는 역사의 전환기에서 절실하게 요구되는 비전 제시와 국민적 지지 확보를 어렵게 하고 있다. 동아시아 경제통합의 단초를 풀어갈 우리의 차기 지도자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도 이런 연유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우리나라가 중국과 최초로 체결한 통상조약은 조선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종주권을 합법화하면서 청일전쟁의 불씨가 됐다. 한중 FTA는 한반도와 나아가 동아시아의 미래를 새로이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기원한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http://news.donga.com/3/all/20120522/46417783/1

Posted by 겟업
2012. 8. 14. 17:06

우리는 남북 간에 수시로 발생하는 갈등과 군사적 분쟁에 지쳐 있다. 최근 몇 해 동안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핵실험, 로켓 발사 등을 겪으면서 화도 많이 나 있다. 그래서 남북이 남남처럼 아예 신경 쓰지 않고 사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차라리 상대방을 통일이나 화해의 대상으로 생각지 말고 따로 살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보다는 덜 극단적이지만 북한이 남한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이 될 때까지 북한을 점잖게 무시하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꽤 있다. 실제로 국제정치학에는 어떤 일이 해결될 여건이 조성될 때까지 점잖게 상대방을 무시하는 방법으로 선의의 무시(benign neglect)라는 말이 있다. 이는 상대방의 실수와 몰락을 기다리며 무시작전을 펴는 악의의 무시와는 다르다.


그렇다면 남북관계에서 선의의 무시 정책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북한이 남한에 대해 마찬가지로 선의의 무시 정책을 쓰지 않는 한 성공할 수 없다. 북한 사람들은 남한보다 훨씬 더 통일 지향적인 문화와 규범 속에서 살아왔다. 그들의 머릿속에 남한은 ‘남’이 아니다. 그들은 비록 남한보다 훨씬 못살지만 남쪽의 모든 것에 대해 경쟁 심리에서 혹은 통일의 상대로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통일을 주도할 능력을 상실한 뒤에는 남한의 흡수통일 의도를 끊임없이 의심한다. 이러한 북한의 대남 관심과 우려는 남북관계에서 도발, 대화, 지원요청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가 북한을 무시하고 상관없이 살겠다고 작정을 해도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북한에 대한 선의의 무시 정책은 남한 입장에서도 실현이 어렵다. 그러려면 북한과 대화·협력을 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정당한 명분이 있더라도 북한을 자극하여 도발을 유발할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 예컨대, 북한의 공격에 대비해 실시하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도 중단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북한이 남한에 대해 호전적으로 반응할 것이며 이는 곧 선의의 무시 정책이 실패했다는 뜻이 된다.


외국인의 눈에도 남과 북은 뗄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2011년 11월에 ‘한류 및 국가 브랜드’에 대한 유럽 젊은이들의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한국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가 무엇이냐’고 묻는 여론조사를 했다. 북한이란 답이 전체의 9.1%로 가장 많았으며 전쟁이 5.4%나 됐다. 2위 케이팝(K-POP)이 6.9%였다. 냉전을 경험하지 않은 유럽 신세대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 속에도 북한이 이처럼 깊이 녹아들어 있다. 이로 미루어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한국을 떠올릴 때, 대체로 몇 번째 안으로 북한을 연상한다고 보아야 한다.


2004년에 샌프란시스코 주재 한국 총영사관이 캘리포니아 주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다.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묻는 항목에 대해 27%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는데 그 이유를 물으니 1위가 ‘핵무기 개발 및 독재체제’(20%)였으며 2위가 ‘한국의 주변정세 불안정’(14%)이었다. 많은 미국인이 남한과 북한을 혼동하고 있으며, 적대적인 남북관계가 빚어내는 정세의 불안정 때문에 한국을 싫어한다는 얘기다.


이처럼 우리는 남북한이 다르다고 강조하지만 제3자의 눈에 남북한은 구별하기 어려운 하나의 실체 혹은 연결체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도 북한이 우리를 ‘남’으로 보지 않지만 우리도 북한을 무시하고 살 처지가 못 된다. 강경책으로 북한의 버릇을 고칠 수도 없다. 이는 남북관계를 최악으로 빠뜨리고 한반도 정세를 불안하게 만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통해 입증됐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가지다. 적극적으로 북한과 관계를 맺어 가는 것이다. 더욱이 이제는 북한과 협력하여 한반도 경제시대를 여는 것이 국운 개척의 길이 되었다. 지하자원 협력 하나로도 남북은 수백억달러의 부를 창출할 수 있다. 남한이 이를 거부하면 중국이 대신하게 되어 있다. 그렇기에 북한과 대화와 협력을 추구하여 남북 대결상태를 종식하고 공동번영의 시대로 나가야 한다. 남북이 따로 살 수 없다면 어렵더라도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318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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