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있는삶/Asia'에 해당되는 글 99건

  1. 2013.01.03 [중앙시평] 중국은 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까?
  2. 2013.01.03 [태평로]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일본 따라가는 우리
  3. 2013.01.03 [발언대] '아시아 世紀'에는 온 국민이 홍보대사
  4. 2013.01.03 [세상읽기] 외교무대에서 경제력 휘두르는 중국
  5. 2013.01.03 [시론/이양구]러시아와 더 가까워지자
  6. 2013.01.03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동양평화론과 그랜드코리아
  7. 2013.01.03 [세계의 창] 끝나지 않은 유럽 통합의 꿈 / 존 페퍼
  8. 2013.01.03 [광화문에서/하종대]대선후보들, 외교 ‘나 몰라라’
  9. 2013.01.03 [사공일의 글로벌 인사이트] 통일준비 해둬야
  10. 2013.01.01 [노트북을 열며] 침체 속 중국 그림자
  11. 2013.01.01 [글로벌 아이] 노벨상 전야, 일본의 풍경은
  12. 2013.01.01 [태평로] 교과서에 안 나오는 100년 전 역사 이야기
  13. 2012.12.26 [와카미야의 東京小考]천황이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
  14. 2012.12.26 [글로벌 포커스] 美·中 새 지도자들의 경쟁 무대 동아시아
  15. 2012.12.26 [취재일기] 제 발등 찍는 일본의 통화스와프 셈법
  16. 2012.12.26 [시론/서지문]무라카미 하루키 선생께
  17. 2012.12.26 [조선데스크] '중국 1등'과 싸워 이기려면
  18. 2012.12.26 [글로벌 아이] 한국의 류화칭을 기다리며
  19. 2012.12.26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80] '좋은 놈, 나쁜 놈, 추한 놈'
  20. 2012.12.26 [특파원 칼럼] 중국이 진정 大國 되는 길
2013. 1. 3. 16:15

제18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개막되었다. 이번 대회에서 후진타오 10년 이후 중국을 이끌어갈 지도부가 결정된다. 새 지도부에는 경제사회 개혁이라는 거대한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중국 경제의 성장률은 과거 두 자리에서 올해 7%대로 주저앉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당장의 위축은 유럽 경제위기에서 오는 해외수요 감소에 주로 기인하지만 거대 중국이 오늘날 안고 있는 경제사회적 문제는 나라의 크기만큼 만만치 않다.

지난 30년간 눈부신 성공을 거둔 중국 성장모델의 핵심은 국가가 막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제조업투자와 수출증대를 자극하고 직접 자원배분을 주도해 빠른 성장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금리규제를 통한 싼 대출, 노동운동 억제를 통한 저임금, 외환시장 개입을 통한 저환율 등으로 이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부패가 조장되고 예금자로부터 차입자로, 근로자로부터 기업으로, 소비자로부터 수출기업으로 엄청난 부와 소득의 이전이 일어났다. 지금 중국의 소득분배는 남미국가들보다 더 악화되어 있다. 인민들의 복지제도는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며, 기업과 급속히 늘어나는 신흥부자들에 대한 조세부담률은 매우 낮다. 부동산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졸부들이 양산되어도 재산세·양도소득세는 부과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중국은 사회주의국가이면서 세계에서 가장 우파적 경제정책을 추진해 온 나라다.

지금 중국이 당면한 큰 과제는 이러한 성장모델을 전환시켜 나가는 것이다. 중국 경제는 국가주도의 양적 성장을 거듭해 오면서 심각한 불균형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연금·의료 등 복지제도의 미비에 따른 높은 가계저축률, 저금리, 저임금, 저환율 등에 힘입은 막대한 기업이윤과 기업저축으로 국내총저축률이 50%를 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는 커다란 경상수지흑자와 세계경제 불균형의 요인을 제공해 왔다. 중국은 이제 수출로부터 내수확대를 통해 성장동력을 찾아나가야 하나 이러한 성장모델의 전환은 근본적으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재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자원배분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줄이고, 금리·임금·환율의 결정에 있어 시장의 역할을 더 넓혀주어야 한다. 금융과 산업이 보다 상업적 원리에 의해 작동될 수 있도록 국유은행·국유기업의 소유지배구조에 대폭적 개편을 시도해야만 이런 변화가 이뤄질 수 있다. 현재 중국의 국유은행은 전체 대출의 약 85%를 차지하고 주요 기간산업은 모두 국유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이들이 결국 중국경제의 자원배분을 주도하고 있으며 이들은 다시 공산당과 정부관료의 장악하에 놓여 있다.

중국은 지난 30년간 매우 실용적이며 점진적인 경제개혁을 해 왔다. 그러나 그동안 쉽게 딸 수 있는 과일은 대충 다 따먹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기 위한 중국의 경제개혁은 바로 ‘사회주의체제’의 핵심을 건드리는 것이 될 수밖에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과거 어떤 사회주의체제 국가도 중진국의 함정을 뛰어넘지 못했다. 주민들이 공동소유하고 있는 향리기업들에 대한 재산권의 정립, 호구제도의 개편 등을 통해 그동안 이뤄 온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하며, 국유기업들에 대한 정부 지분을 줄이거나 민영화를 시행해 나가야 한다. 국유기업은 도산의 위험이 없어 도덕적 해이에 빠지기 쉬우며 이들에 대한 개혁 없이 경제를 자율화해 나갈 경우 자원배분 왜곡이 오히려 더 심해지고 이들의 부실화가 초래되기 쉽다. 그러나 이들의 민영화는 바로 사회주의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다.

성공한 모델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도, 일본도 이에 실패했다. 결국 위기를 맞고서야 변화가 일어났다. 30년간의 고속성장을 이루면서 중국에는 이미 폭넓은 기득권세력이 형성됐다. 과거 개혁의 주체세력이었던 당과 정부의 엘리트들은 이제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국유기업의 막대한 자산을 관리하는 권한을 향유하는 기득권세력이 되었다. 이들과 유착관계를 형성한 민간부문의 신흥부자들이나 국유기업 간부들도 마찬가지다. 개혁의 필요성은 높아지나 개혁의 저항세력은 점점 강해져 온 것이다.

1979년 대처에게 패한 캘러헌 전 영국총리는 “약 30년을 주기로 정치지형에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처와 레이건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물결이 세계경제를 주도한 지 대략 30년이 되었고, 세계 곳곳에서는 다시 경제체제의 변화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다. 중국 경제발전 30년도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는 이 전환이 서구와 달리 오히려 더 작은 정부, 더 큰 시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기득권의 저항을 넘어서야 하는 것은 공통적 과제다. 중국의 새 지도부는 과연 이런 개혁을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인가?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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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3. 1. 3. 16:03

고령화의 저주, 이지메, 원조 교제 활력 잃은 사회…
日 추격해 온 한국 이제 성장 멈추고 악순환 함정 빠진
'일본病' 옮는데 포퓰리즘도 닮나

 

치매 아내를 살해한 서울 문래동 78세 노인 사건을 보며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막막했다. 일본이 먼저 경험한 고령화의 절망적 국면이 결국 우리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 케어’는 일본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돼왔다. 병시중에 지친 나머지 배우자나 노(老)부모를 살해하는 ‘간병(看病) 살인’ 역시 끊이질 않고 있다. 문래동 사건은 그렇게도 피하고 싶었던 일본형 ‘고령화의 저주’가 우리에게 옮아왔음을 경고하고 있다.

과거 수십년간 우리는 ‘일본을 배우자’고 외쳤다. 일본이 하는 것을 베끼고 본떠 일본을 넘어서자는 극일(克日) 담론이었다. 2000년대 들어 일본이 장기 침체에 빠지고 시스템의 결함을 드러내자 구호는 ‘반면교사(反面敎師)론’으로 바뀌었다. 지금 우리는 저성장과 침체, 정치 포퓰리즘과 재정 파탄이라는 일본형 실패의 길을 어떻게 피할 것이냐를 놓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지난 시절 일본 따라잡기에서 우리는 성공을 거두었다. 짧은 시간 안에 일본과 경제·소득 격차를 줄였고, 어떤 분야에선 일본을 앞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극일 다음에 우리가 맞이한 ‘일본병(病) 피하기’의 국가 과제에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어쩌면 그렇게 똑같이 일본의 실패를 뒤따라가는지 신기할 정도다.

일본병이란 사회 각 분야의 구조적 모순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면서 쇠퇴해 가는 증상이다. 이를테면 저출산은 경제 침체에 따른 청년 실업이 연쇄적으로 파급돼 벌어지는 구조적 문제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저성장이 취업난을 일으키고, 경제적 곤궁이 혼인 기피, 만혼(晩婚)으로 이어져 결국 출산율 저하를 불러오는 증세를 앓아왔다. 지금 우리가 빠져 있는 악순환의 함정이 바로 그렇다.

과거 우리는 외향적·확장지향적이고 역동적 헝그리 정신에 넘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강점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지난 4~6월 성장률은 경제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는 일본형 ‘제로(0) 성장’에 근접해가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기업들은 혁신 본능을 잃어가고, 새로운 기업가는 출현하지 못하며, 청년들은 진취적 도전 정신을 빼앗기고 있다. 활력이 사라지고 성장이 멈추는 순간 그동안 눌렸던 사회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경제만 일본화(化)하는 게 아니다. 지금 우리가 앓고 있는 대부분의 사회 병리(病理)는 일본의 경험을 그대로 따라간 것이다. 이지메(집단 괴롭힘)가 학교 왕따로 넘어오고, 원조(援助)교제는 스폰서 사이트로 한국화했다. 고독사(孤獨死)와 무연사(無緣死),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같은 병리 현상의 원조가 일본이다. 젊은 남성들이 유약해지는 현상까지 일본의 이른바 ‘초식남(草食男)’증후군을 빼닮았다.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이 모든 문제를 주도적으로 돌파해야 할 정치 리더십이 포퓰리즘에 빠진 점이다.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침체 속에서 일본 정치는 대중에 영합하며 환부(患部)를 덮어왔다. 구조 개혁 대신 돈 풀고 공약을 남발하는 포퓰리즘으로 국가 재정을 엉망으로 만든 것이 정치인들이었다. 지금 우리 정치가 비용 개념 없이 경쟁하는 포퓰리즘 향연의 종착점도 재정 파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 일본은 ‘국가의 자살(自殺)’까지 거론되는 단계가 됐다. 고대 로마는 내부적 모순과 중우(衆愚)정치 때문에 스스로 무너졌다. 로마처럼 국가 시스템이 기능 불능에 빠지는 자살의 메커니즘이 일본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장 활력을 잃은 나라가 자체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하는 것이 일본형 국가 자살의 시나리오다. 이것마저 우리는 일본을 닮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박정훈 부국장 겸 사회부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08/2012110803064.html

 

 

Posted by 겟업
2013. 1. 3. 16:00

줄리아 길러드 호주 총리가 '아시아 세기의 호주'라는 새 정책문서를 공개했다. 아시아의 부상(浮上)을 인정하고 적극 협력하려는 의지가 담겼다. 케빈 러드 호주 전 총리도 비슷한 맥락에서 '팍스 퍼시피카(Pax Pacifica·태평양 주도의 평화)'를 언급하고, 아시아 국가들이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해 주기를 주문했다. 그런데 현재 아시아는 영토 논쟁으로 다소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영토 분쟁으로 영혼이 오가는 길이 막혀서는 안 된다"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국경 안에 일국을 가두면 아시아에 주어진 이 기회를 살릴 수 없다. 국경을 넘어 문화가 흘러야 한다.

해외문화홍보 전략 역시 한류(韓流)가 어디로든 흐르도록 돕는 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무엇보다 문화교류를 통해 동질성을 찾고 공감대를 넓혀가는 일이 중요해졌다. 현재 해외문화홍보원이 31개국에 파견한 문화원장과 홍보관들은 외국 대중들과 문화적 접촉점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으나, 이러한 사업이 효과적으로 추진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공유와 협력의 시스템이다. 국가 브랜드 관리나 민감한 외교 업무에 있어서도, 관계 기관들이 임무를 분담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여야 한다.

언론을 예로 들어 보자. 연간 400여명의 해외 언론인들이 방한하고 있고, 상주 외신들도 250여명에 이른다. 해외문화홍보원이 내년부터 신설하려는 '외신지원센터'는 한국 보도 관련 원스톱 서비스 제공을 염두에 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사 브리핑을 넘어 다방면의 정보 콘텐츠를 제공해야만 한국의 위상과 가치가 왜곡되지 않고 전달된다는 것이다. 언론 분석, 전문가 설명회, 외신 취재지원 등 다양한 대응 노력은 다방면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아시아 세기의 한국'은 더 많은 책임과 나눔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앞으로도 국제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부국과 빈국의 가교' '평화와 안보의 중심' '미래 녹색환경 협력의 주역' 국가로서 역할을 해 나가야만 한다. 한국에 대한 세계의 평가와 우리의 위상은 놀라울 정도로 달라져 있다. 그 원동력은 문화의 힘이다. 우리는 이 힘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고, 온 국민이 '대한민국 홍보대사'란 마음가짐으로 교류와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우진영 해외문화 홍보원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07/2012110703439.html

 

 

Posted by 겟업
2013. 1. 3. 12:11

국제관계학 수업에선 통상 “학생들에게 국가 간 협력을 증진하는 최선의 방법은 경제적 상호의존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자유주의적 시각의 국제관계학자들은 “두 나라 간 교역과 투자가 높은 수준일 때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작다”고 설명한다. 교역과 경제적인 결합은 각국을 이성적인 결정으로 이끌며, 전쟁 가능성을 줄이고 평화와 협력에 따른 상호이익을 증가시킨다.

국제관계학자 중에선 중국의 부상과 관련해 이러한 자유주의적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국제 경제 질서에 더욱 많이 빠져들수록, 즉 외부와의 교역이 늘어날수록 중국은 외부와 협력을 강화하고 같은 지역 내 이웃 국가와의 분쟁을 피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언뜻 우아한 해결책으로 보인다. 이는 이론적으로는 맞아 보이지만 불행히도 현실에선 전혀 통하지 않는다. 외려 그 반대다. 최근 중국이 한 행동을 살펴보면 자유주의적 경제 원칙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로 북한 문제를 보자. 중국과 한국 간의 교역과 상호 투자는 북한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중 상호 교역량은 2446억 달러에 이른다. 같은 기간 북·중 교역량은 56억2000만 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한·중 경제 교류 규모가 북·중 간의 50배나 된다는 걸 의미한다. 이러한 경제적 현실에도 중국은 평양과의 외교 관계를 한반도 외교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왜? 베이징은 한반도에서 경제보다 전략 문제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국제 관계에서 상식이 된 경제 상호의존 이론이 유독 중국에선 통하지 않는 것이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동료인 보니 글레이저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경제력을 오히려 일본·동남아시아·유럽과의 분쟁에서 압력 도구로 이용해 왔다. 2010년 9월 일본 해상보안청은 중·일 간 영토분쟁 중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근처에서 일본 순시선과 충돌한 중국 어선 선장을 체포해 2주 이상 억류했다. 베이징은 이런 조치에 항의하고 자국민 석방을 요구한 것은 물론 희토류의 대일 선적을 중지하기까지 했다. 중국 관리들은 공식적으로는 이런 일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중국 희토류 수출 물량의 60%를 가져가는 세계 최대의 희토류 수입 국가인 일본은 곧바로 위기를 인식하고 손을 들었다. 올해 센카쿠(댜오위다오) 분쟁이 재연될 무렵 중국은 희토류 수출 규제를 시작했다. 물론 표면상의 이유로 가격 안정을 내세웠으나 월스트리트저널은 올해 중국의 희토류 수출이 전례 없이 적은 1만t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은 동남아에 대해서도 경제력을 지렛대로 사용하고 있다. 지난봄 남중국해 스카버러섬(황옌다오) 주변 해역의 중국 어선 불법 조업 문제로 필리핀 군함과 중국 순시선이 해상 대치를 벌였다. 중국은 그 다음 주에 열린 미국·필리핀 군사 훈련에 불만을 표시했다. 2012년 5월 중국은 필리핀산 과일 수입을 봉쇄했다. 표면상의 이유는 필리핀에서 수입한 바나나와 파인애플에서 해충이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사실 바나나는 필리핀에서 교역 규모가 둘째로 큰 농산물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밀검사를 받는 필리핀산 과일이 망고·파파야·코코넛으로 갈수록 늘어나 급기야 거의 모든 필리핀산 농산물로 확대됐다. 이는 베이징이 보내는 보복의 메시지가 분명했으며 이런 조치는 필리핀 경제계가 정부에 중국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요청할 때까지 계속됐다.

2010년 12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중국의 반체제 활동가 류샤오보(劉曉波)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뽑았다. 이에 경악하고 분노한 중국 정부는 노벨위원회에 재고를 요청했다. 하지만 노벨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수상식을 앞당겨 개최했으며 그 유명한 ‘빈 의자’를 류샤오보를 위해 남겨 뒀다. 중국도 반응했다. 조용히 노르웨이산 연어의 수입을 중지하고 진행 중이던 자유무역 교섭의 중단을 통보했다. 노르웨이는 이전 몇 년간 어류 수출로 재미를 봤으며 특히 어류 수요가 50%나 늘었던 중국에서 상당한 이득을 거두고 있었다. 중국의 수입 중단 조치로 노르웨이산 연어 판매는 62%나 감소했으며 중국은 심지어 전직 노르웨이 총리의 방문 비자 발급도 거부했다.

 이는 경제적인 상호의존 이론이 중국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레이저는 보고서에서 “중국은 목표로 하는 국가를 굴복시켜 그들의 정책을 바꾸게 하기 위해 경제 관계를 직접적으로 이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어 우려를 자아낸다”고 썼다. 중국은 경제적 상호의존 이론이 역으로 적용되는 나라다. 경제적 상호의존을 무기로 삼아 다른 나라에 자국의 뜻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밀접한 교역 관계를 맺고 있는 파트너 국가에 검역 등에서 필요 이상의 엄격한 잣대를 갖다 댐으로써 원하는 정치적 목적을 이루는 방식으로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중국이 아시아에서 패권을 잡으려면 우선 덕(德)과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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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겟업
2013. 1. 3. 12:09
요즘 러시아에서 만나는 정치인 학자를 비롯해 일반 시민들은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다. 급속한 경제성장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고 드라마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에 대한 높은 관심은 러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에 대한 이들의 높은 관심은 ‘경제협력’이란 실질적 목표와 닿아 있기 때문에 더욱 현실감이 있다. 그 거점이 되는 지역이 블라디보스토크를 축으로 한 극동 지역이다.

100여 년 전 제정 러시아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건설해서 동방 진출을 시작했다.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러시아의 아태지역 진출을 위한 신(新)동방정책의 신호탄으로 해석할 만하다. 러시아 극동지역의 중요성을 재인식해 우리의 시야를 넓혀 준 것이다.

한반도 28배 극동지역 자원 풍부



극동지역은 한반도의 28배에 달하는 방대한 면적에 풍부한 천연자원과 인적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발전 잠재력이 무한하다. 이곳은 또한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4700km에 이르는 동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 가스관이 건설되고 있고 석유, 가스개발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도 이루어지고 있다. 우주항공과 유전공학, 해양 등 과학기술 분야도 협력할 것이 많다.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도 빼놓을 수 없는 변화다. 당장 서비스·물류 분야가 100% 개방된다. 기후온난화로 자원 개발과 북극 항로의 이용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우리의 극동 러시아 진출 역사는 올해로 20년째다. 그동안 한국과 러시아 극동지역 간에는 많은 협력과 성과가 있었다. 나는 올 6월 마가단과 추콧카 출장을 계기로 극동 8개 주를 모두 방문하게 됐다. 9시간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면서 극동 러시아야말로 우리의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국가 발전과 직결되는 곳임을 실감했다.

서울과 블라디보스토크를 고속철도로 연결하면 불과 3시간 거리다. 한국과 러시아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날도 올 것이다. 한국과 극동 러시아는 일일생활권이자 단일경제권이 된다는 얘기다. 최근 만난 러시아의 한 인사는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꿈도 꿀 수 없는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고 얘기했다. 앞으로 한반도종단철도(TKR)와 TSR를 고속철도로 연결하고 가스관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비전도, 통일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 엄청난 역사적 변혁기에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우선 한-러 간 상호 이해와 신뢰 구축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러시아가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중국 일본에 대해서는 국민감정이 좋지 않지만 한국인에게는 우호적이었다.

최근 방문한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있는 우리 영농 기업은 10여 년간 모진 고난을 겪으며 러시아 법을 지키고 현지인을 고용하고 지역 발전에 기여해 왔다. 기업 측 인사들은 “투명하게 기업 운영을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던 현지 사람들이 이제 ‘당신들이 옳았다’고 말한다. 나아가 한국 기업이 잘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전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세계 유일의 한국학 대학이 있어 좋은 인적자원을 양산하고 있으며 현대호텔도 있고, 한국이 운영하는 문화센터와 국제학교도 있다. 무엇보다 극동지역에 거주하는 10만여 명의 고려인이 큰 자산이다.

5∼10년 내다보는 마스터플랜 필요

극동의 중요성에 상응한 그랜드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 한-러 간 공동의 비전과 전략을 토대로 최소한 5∼10년간의 협력 내용과 액션플랜, 로드맵이 담겨야 할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은 극동 러시아와 중국 동북 3성을 대상으로 200여 개의 프로젝트가 망라된 10개년 협력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한-러 양국은 더 나은 협력 모델을 추진할 수 있는 경험과 역량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이제는 마스터플랜을 토대로 행동할 때다.

러시아는 우리 편이 될 수 있다. 러시아를 더 가까이 하자.

 


이양구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http://news.donga.com/3/all/20121030/50482829/1

 

Posted by 겟업
2013. 1. 3. 11:51

# 103년 전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쐈다. 그 후 그는 뤼순 감옥에 수감돼 일제의 일방적이고 형식적인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국권회복과 동양평화를 위한 의로운 전쟁을 수행한 전쟁포로이기에 만국공법이 아닌 일본제국법정에서 재판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천명한 후 목숨을 구걸하지 않겠다며 항소마저 포기한 채 『동양평화론』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이 1910년 3월 15일께다. 안 장군은 당초 서(序), 전감(前鑑), 현상(現狀), 복선(伏線), 문답(問答)의 5편을 저술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제가 서둘러 그해 3월 26일 사형을 집행하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았다.

 # 비록 ‘서’와 ‘전감’의 일부만을 쓰는 것에 그친 미완이지만 『동양평화론』과 공판기록 등을 통해 안중근 장군이 생각했던 동양평화의 구상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 안에는 놀라운 혜안이 담겼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동양평화회의 개최, 한·중·일 동북아 3국 공동은행의 설립과 공용화폐 발행, 뤼순 등 지역 개방과 공동관리 및 동양 3국의 공동군단 편성 등이다. 오늘의 유럽연합(EU)과 같은 동아시아공동체를 100년 전에 그려낸 그의 혜안이 놀랍지 않은가!

 # 작금의 한·중·일은 크고 작은 긴장과 다툼 속에 있다. 하지만 역사의 큰 눈으로 보면 결국 평화와 공존의 흐름을 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서로에게 이익임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래에 나타날 동북아연합 내지 블록에서 한국이 분명하게 살아남고 주도적 위치에 서려면 향후 50년, 아니 100년을 내다보며 무엇보다도 한글을 읽고 쓰는 1억 공동체를 창출해야만 한다. ‘1억 한글공동체’야말로 미래의 동북아 블록화에 대비하는 가장 현실적인 생존과 대처방안이다. 현재 남한 인구는 5000만 명을 넘어섰지만 북한 인구는 아직 2500만 명을 넘지 못했다. 여기에 해외에 거주하는 한민족을 모두 포함해도 8000만 명 안팎이다. 하지만 이것을 1억 명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미래의 우리가 존립할 근거다. 1억 명 규모의 공동체적 내수시장을 확보해 놓고 있어야 블록화된 세계에서도 미래의 생존이 가능하다. EU 내에서 아무리 뒤섞여도 각자의 언어와 문화가 살아있기에 여전히 프랑스요, 독일이요, 이탈리아 아닌가. 마찬가지로 미래의 동북아연합 내지 블록에서 우리가 당당히 우리로 존재하려면 ‘1억 한글공동체’가 핵심이다. 그것이 다름아닌 ‘그랜드 코리아’의 실존이고 요체다.

 # 한국 천주교회의 대표적 지성으로 꼽히는 올해 여든일곱 살의 정의채 몬시뇰 신부가 『인류공통문화 지각변동 속의 한국』이란 책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세 번째 밀레니엄, 즉 2000년대에는 동양, 그중에서도 한국이 선도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듯 썼다. 가장 빈곤했던 식민지에서, 그리고 전쟁으로 초토화된 나라에서 당당한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 한국의 역할이 주목받을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 감당해야 할 과제를 ‘따뜻한 자본주의’와 ‘행복한 발전’이란 용어로 압축했다. 깊이 공감한다.

 # 바야흐로 시세(時勢)가 동양(東洋)이다. 한·중·일 3국의 위력과 위세는 경제는 물론 정치·군사·문화 면에서도 EU에 비할 바가 아니고 미국과 러시아마저 넘어선다. 중국은 미국과 자웅을 겨룰 듯한 기세로 나서고 있고 일본 역시 침체됐다고는 하나 그 저력을 무시 못한다. 한국은 지난 60여 년간 바닥치고 일어서 괄목할 만큼 커졌다. 다만 이 변화하는 지형 위에서 어디로, 어떻게 향할지가 문제다. 그 해답의 단초가 놀랍게도 안중근 장군의 100여 년 전 ‘동양평화론’ 안에 있음을 감히 말하고 싶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3인은 짬을 내 『동양평화론』과 공판기록 등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비록 5년 임기지만 향후 50년, 아니 100년을 내다보는 그랜드비전을 마음에 심고 그려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진짜 리더다.

 

 

정진홍 논설위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713712&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3. 1. 3. 11:41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인 1990년 동유럽 국가들은 공동의 비전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유럽공동체(EC) 가입을 원했다. 반세기 동안 소련의 속박을 받던 이 지역 사람들은 유럽 공동의 집에 가입하는 것을 민주주의적 통치와 경제적 번영, 사회적 안정의 보증으로 여겼다.

 

20년이 지난 뒤 유럽연합(EU) 가입이 그걸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대륙을 뒤흔든 경제위기는 잦아들 기미가 없다. 동유럽 지역은 부패 및 새로운 권위주의와 싸우고 있고, 극단주의적인 편협성이 전 유럽을 괴롭히고 있다.

 

위기에 처한 것은 유럽의 경제만이 아니다. 유럽이라는 아이디어가 빛을 잃고 있다. 한때 ‘유럽’은 미국을 지배하는 자유시장주의보다 더 평등하고 관용적인 모델로 통했다. 그러나 지금의 유럽은 점점 다른 곳이 되어가고 있다. 동유럽 나라들은 더 어려운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그들은 마침내 배타적 클럽에 가입했으나, 그 혜택은 더 이상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유럽에 대한 회의주의가 동유럽 심장부에서 생겨나고 있다. 유럽연합을 만든 초기 핵심국가 국민들까지도 재고를 하는 지경이 됐다.

 

물론 유럽은 여전히 무언가를 의미한다. 긍정적 측면을 보면, 유럽연합의 새 회원국들은 사회기반시설을 현대화할 자금을 얻을 수 있게 됐다. 회원국 가입 조건은 정치적 기준을 유럽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비자 면제부터 무역장벽 완화 등 다른 혜택들도 있다.

 

그러나 상당히 불리한 점도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과 잠재적 후보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도전은 거의 모든 정부가 이행하도록 돼 있는 긴축정책이다. 슬로베니아 같은 새 회원국들은 유럽연합의 재정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지출을 삭감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크로아티아 같은 후보국도 동일한 의무가 부여된다. 물론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 정부도 모두 인기 없는 긴축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다. 말하자면 유럽연합이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모델과 별로 다르지 않게 됐다.

 

20년 전 동유럽 국가는 새로운 민주주의적 통치방식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유럽연합 가입은 이 과정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전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대상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헝가리 극우정당 피데스는 언론을 검열하고 권력을 중앙집중화했으며, 다른 민족을 배제한 채 헝가리 민족의 권리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에 항의했으나 헝가리는 여전히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남아 있다.

 

전 유럽에 걸쳐 편협성의 부활 현상도 목격되고 있다. 인종차별주의적이고 이슬람을 혐오하는 정당들이 거의 모든 유럽 국가에서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이런 추세는 피할 수 없는 게 아니다. 유럽은 지금의 경제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고, 그들의 사회적 시장경제로 복귀할 수 있다. 새로운 시민 행동주의는 권위주의 정당에 대한 지지를 극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

 

많은 부분은 유럽의 새 회원국과 회원국 가입의 길목에 있는 크로아티아 같은 나라들에 달려 있다. 1989년부터 시작해 이들 국가의 국민들은 독재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켰다. 그들은 유럽연합의 일원이 되는 초기의 꿈을 지금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건 마지막 단계가 아니다. 그들은 유럽이라는 아이디어를 긴축·편협성과 다른 무언가를 의미하도록 만드는 걸 도울 수 있다. 그들은 ‘유럽’을 다시 한번 정의·평등·번영을 의미하는 곳으로 바꿀 수 있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71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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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1:39

참으로 답답했다. 2009년 4월 베이징 특파원을 마치고 막 서울로 돌아왔을 때였다. 3년 임기 동안 베이징은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변했다. 1970년대 서울을 연상케 했던 베이징은 뉴욕을 능가하는 현대도시로 탈바꿈했다. 베이징의 유명한 한인타운 왕징(望京) 역시 10년 전엔 허허벌판이었다.

반면 서울은 특파원으로 가기 전이나 돌아온 뒤나 달라진 게 별로 없었다. 특히 광화문을 중심으로 한 서울 도심은 예전 그대로였다. 특파원 시절, 5년 전 서울에 갔을 땐 베이징보다 나은 첨단도시로 보였는데 최근에 가 보니 중국의 지방도시와 별로 다를 게 없더라고 말한 한 중국인의 ‘농담 섞인 조소(嘲笑)’가 귓전을 때렸다.

올해 또다시 그걸 느낀다. 한국을 둘러싼 국제환경이 올해만큼 바뀌는 때도 없다. 다음 달 6일은 미국 대통령 선거일이고 8일엔 중국의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가 열린다. 일주일쯤 열리는 당 대회가 끝나면 곧바로 앞으로 10년을 이끌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선출된다. 일본 역시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엔 새 총리가 선출될 것 같다. 세계 1, 2, 3위 경제대국 최고지도자가 줄줄이 바뀌는 것이다.



이에 앞서 러시아는 올해 3월 4일 블라디미르 푸틴을 제6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러시아 역시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9위(약 2조 달러)지만 종합 국력으로 따지면 사실상 4대 강국이다.

한국이 4대 강국에게서 받는 영향은 세계 196개국(실질 독립국 기준) 가운데 어느 나라보다도 크다. 중국 러시아 일본은 한국과 국토가 연접(連接)하거나 인접해 있다. 동맹국인 미국은 지리적으론 멀지만 정치 외교에서는 영향력이 가장 큰 나라다.

문제는 최근 들어 이 4국 간 파워시프트(권력 이동)가 가시화되면서 기존 세력질서의 균형과 안정이 크게 흔들린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의 급부상은 동북아의 질서와 안정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미국 GDP의 7분의 1에 불과했던 중국의 GDP는 올해 미국의 절반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習近平)이 중국을 이끄는 앞으로의 10년 동안 중국의 GDP는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의 최고 패권국은 여전히 미국이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그렇겠지만 미국은 이미 중국의 협력 없이 세계질서를 이끌어 가기 어려운 상태다. 특히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과 미국은 ‘동등한 힘과 영향력’을 지닌 명실상부한 주요 2개국(G2) 국가로 성장했다. 이제 동북아에서 미국은 적어도 중국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맘대로 내릴 수는 없다.

이런 상황인데도 한국 대선주자들의 공약 가운데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는 외교기조나 정책은 찾기 힘들다. 중국의 급부상과 이에 따른 미국의 새 국방전략, 독도 및 이어도 문제, 한반도 급변사태 시 주변국 협력 문제 등은 우리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좌우할 것들이지만 대선후보들은 ‘나 몰라라’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을 중국이 사실상 묵인하고 미국은 핵 기술 유출 방지에만 힘쓰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북핵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이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대선후보들은 표 얻기에만 급급해하지 말고 국가의 장래를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중요 문제의 대책부터 내놔야 한다.

하종대 국제부장

 

http://news.donga.com/3/all/20121028/504544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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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1:28

“내 생전에 동·서독의 통일은 이룩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슈미트 전 서독 총리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꼭 2주 전에 어느 사석에서 한 말이다. 그 몇 달 전 서울을 방문했던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남북한 통일이 동·서독 통일보다 먼저 올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바 있다. 그런데 베를린 장벽은 곧 무너졌고 서독과 동독의 통일 기회가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 기회가 곧장 통독으로 연결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바 있는 독일이 통일되어 더욱 강대해지는 것을 이웃인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구(舊)소련이 원했을 리가 없다. “우리는 독일을 사랑하기에 두 개의 독일은 더욱 좋다”는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동·서독 통일에 대한 반농조의 코멘트는 당시 주변국들의 생각을 잘 말해준다고 하겠다. 또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공개석상에서도 독일의 통일을 반대해왔을 뿐 아니라, 통독 이후에 쓴 글에서 통독을 반대한 자신의 주장은 “확실한 실패였다”고까지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리한 주변 여건 속에서 통독에 앞장섰던 헬무트 콜 전 서독 총리는 먼저 통독에 호의적이었던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도움을 얻어 구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온갖 외교적 노력으로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미테랑 대통령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서독의 자랑이었던 마르크화를 포기하고 유럽 단일통화 도입을 약속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과연 우리는 남북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준비와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가. 유사시 우리가 당장 감당해야 할 통일비용은 남북한 간 인구비율이나 1인당 소득격차 등을 고려할 때 동·서독의 통일비용보다 월등히 높을 것이 자명하다. 통독 당시 서독과 동독 간의 인구비율은 거의 4대1, 그리고 소득격차는 3대1 정도였다. 현재 남북한의 인구비율은 거의 2대1, 그리고 소득격차는 거의 20대1에 이른다. 따라서 통일 충격을 흡수할 수 있을 정도의 재정건전성 유지와 금융안정, 그리고 여유 있는 외환관리 등 우리 스스로가 사전에 해두어야 할 일은 아주 많다. 특히 독일의 경험을 거울삼아 새로운 통화체제에 대한 장단기 구상, 급격한 북한주민의 이주에 대한 대비책, 장기투자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북한의 명확한 토지소유권 제도 확립, 북한 주요 국영기업의 존폐에 관한 기준, 그리고 임시 행정체제와 기초적 사회안전망 구축 등 제도적·정책적 기반을 마련하는 철저한 사전준비가 있어야 한다.

지난주에는 통독 당시의 서독 재무차관을 비롯한 독일의 전문가와 전 정책담당자, 그리고 국내외 북한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한 ‘통일과 한국경제’란 주제의 국제회의가 있었다. 동 회의에 참여했던 거의 모든 독일 전문가들은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유사시 북한주민 이주문제에 각별한 대비가 있어야 함을 특별히 강조했다. 통독 당시 동독은 전 사회주의 진영에서 가장 높은 국민생활수준을 누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약 1년 동안에만 동독 인구의 거의 4%에 해당하는 60여만 명이 서독으로 이주했다. 지금까지 통틀어 170만 명, 즉 동독 인구의 10% 이상이 서독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절대빈곤 인구가 대부분인 북한의 현재 사정을 고려할 때 남한으로 이주하고자 하는 북한주민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특별한 사전 대비책이 마련되어야 하며, 북한 국영기업의 존폐 기준과 근로자 임금수준 설정 등도 이와 관련해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독일의 성공한 경험과 실패한 경험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준비와 함께 또 다른 차원의 중요한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외교역량을 확충하고 평소에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신뢰기반을 구축해 두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독일의 경우와 달리 주변국과 국제사회에 위협적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주요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의 지지와 지원을 확보하는 일은 단순한 지정학적 측면에서도 남북한 통일을 위한 대전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된 한국이 분단된 한반도보다 동북아지역뿐 아니라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더욱 크게 기여하게 될 것임을 설득해내야 한다. 이와 아울러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기구에 적극 기여하고 참여함으로써 많은 호의(good will)를 평소에 쌓아두어야 한다. 유사시 이들 기구와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해 단기적 통일충격 완화와 북한경제 재건을 위한 중장기적 노력을 함께 펼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 여건과 북한 내부의 변화를 고려할 때, 통일에 대비한 이러한 사전준비는 무엇보다 시급한 국정과제다. 모든 기회는 항상 준비된 자의 몫임을 잊지 말자.

 


사공일 중앙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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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 14:09

1.6%. 3분기 성장률이다. 위기랄 수밖에 없다. 2차 오일쇼크(1980년), 외환위기(1998년), 세계 금융위기(2008) 등에 이어 또다시 분기 성장률이 2% 아래로 추락했으니 말이다. 설비투자가 준 게 침체의 큰 요인이다. 성장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바로 이 대목에서 침체 속 중국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대(對)중국 수출 중 1, 2위를 차지하는 품목은 LCD(액정디스플레이)와 반도체다. 대략 20% 정도를 차지한다. 관련 부품까지 포함하면 더 늘어난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해당 기업이 중국에 현지 생산체제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LG와 삼성이 각각 중국에 LCD공장 건설에 나섰고, 반도체의 경우 SK하이닉스에 이어 삼성전자도 시안(西安)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있다. 시안 공장에는 모두 70억 달러가 투자된다. 공장이 가면 일자리도 넘어가게 마련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앞으로 2년 전문대졸 이상의 고급 일자리 수만 개를 중국에 빼앗길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완구·섬유·신발 등 임가공 공장의 초기 중국 진출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당시 임가공 업체들은 공장을 옮기는 대신 국내에서 고부가 부품·소재 등을 만들어 중국에 수출했다. 투자가 수출을 /유발한 것이다. 우리나라 대중국 수출의 약 70%가 부품·반제품으로 짜인 이유다. 그 과정에서 산업이 고도화됐다. 그러나 반도체와 LCD의 중국 투자는 국내 유발효과가 적다. 관련 부품 공장도 함께 가겠노라 따라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 공동화를 넘어 첨단산업 공동화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정보기술(IT) 분야뿐이 아니다. 자동차·기계·철강 등 대부분의 산업에서 우리 기업은 중국이라는 블랙홀에 빨려들고 있다. 그렇다고 시장을 찾아 떠나겠다는 기업을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들에게 좋은 기업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우리 스스로를 탓할 뿐이다.

지난 20년 중국은 우리 경제에 ‘축복’과 같은 존재였다. 중국 덕택에 큰 충격 없이 산업 고도화를 이룰 수 있었고, 세계공장 중국은 우리에게 수출 시장을 제공했다. 우리 수출의 약 25%가 중국으로 간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에는 중국에서 위기 극복의 돌파구를 찾기도 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적절한 대응이 없다면 중국은 오히려 우리 경제에 ‘재앙’이 될 수 있다. LCD·반도체의 공장 이전에서 위기감을 갖게 되는 이유다.

문제의식이 없는 게 문제다. 앞으로 5년 이 나라를 이끌겠다고 나선 대선 후보들은 경제 민주화만 합창할 뿐 중국으로 떠나고 있는 핵심 기업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어떻게 블랙홀 중국에 맞설지에 대한 정부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20년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온 한 축은 그렇게 무너지고 있다. 성장률 1.6%가 던지는 또 다른 경고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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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 13:32

노벨상 주간이 지나갔다. 8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15일 경제학상까지 6개 분야 시상자가 발표됐다.

도쿄 특파원으로 바라보는 노벨상 주간은 한국에서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한국에선 그저 딴 세상 얘기처럼 지나쳐 버렸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은 “오늘은 후보가 누구야” “오늘도 탈 수 있을까”라며 매일매일 기대감에 부푼다. 그들에겐 하루하루가 드라마이자 올림픽 결승전이다.

노벨상 주간 일본 한 민영 방송사의 취재 계획서를 우연히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오후 6시30분 생리의학상 발표가 예정됐던 8일, 이 방송사 사회부 기자들의 취재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뇌연구 분야 최고 권위자인 이화학연구소의 이토 마사오 교수가 수상할 경우에는 연구실에서 회견이 예정돼 있고, fMRI(기능성 자기공명장치)를 개발한 오가와 세이지 박사가 수상하면 가마쿠라시 자택의 현관 앞에서 취재가 가능하니 집 부근에서 대기해야 한다. 콜레스테롤 억제제를 개발한 엔도 아키라 교수가 수상하면 도쿄 농공대 본부 건물에서 오후 7시15분부터 기자회견이 있고,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의 수상 가능성도 있으니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생리의학상에만 네 명에 달하는 후보자들에게 취재기자와 카메라 기자가 모두 따라붙었다. 결국 축포는 교토에서 터졌고, iPS(유도만능줄기)세포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낸 업적으로 야마나카 교수가 영예의 주인공이 됐다. 일본엔 19번째 노벨상 수상이자 과학상에서만 16번째였다. 일본 전체가 떠나갈 듯 환호했다.

물리학상이 발표된 9일도, 화학상이 발표된 10일도 마찬가지였다. 물리학상엔 중성미자 관측에 성공한 스즈키 아쓰토 교수 등 세 명의 일본인이 유력 후보에 포함됐다. 10일엔 산화 티타늄의 광촉매 반응을 연구한 후지시마 아키라 교수의 수상 가능성에 일본 열도가 숨을 죽였다.

11일 문학상이 기대됐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상이 무산되면서 올해 일본인 수상자는 야마나카 교수 한 명으로 마무리됐다. 1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일본의 노벨상 축제도 그렇게 끝났다. “오늘은 일본인 수상자가 없었다”며 아쉬움을 전하는 언론의 보도를 보면 “오늘은 아쉽게 금메달이 나오지 않았다”는 한국의 올림픽 보도가 떠올랐다.

도쿄 특파원에게 “일본의 노벨상 비결을 취재하라”는 지시만큼 부담스러운 것도 별로 없다. 과거 수상자나 문부과학성 관료들을 취재해도 “정부의 꾸준한 지원이 중요하다” “선배 수상자가 자극하고 후배들이 정진하는 연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과학자를 우대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모범답안들만 돌아온다. 하긴 기본에 충실한 것 외에 노벨상으로 가는 지름길이 따로 있겠는가.

축구 한·일전 패배보다 더 배가 아파야 하는데 요즘엔 그런 분함을 느끼는 사람들조차 줄어드는 것 같아 더욱 걱정스럽다.




서승욱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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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 13:27

섬 두고 대립하는 中·日 패권싸움 청일전쟁과 비슷… 自衛 능력 없이
'중립'만 믿은 조선 험난한 국제정세 지금 대선 주자들 어떻게 헤쳐갈까


일본의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직후 중국과 일본이 충돌 직전까지 갔을 때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우리 영토에서 반보(半步)도 물러설 수 없다"고 했다. 차기 일본 총리로 유력한 아베 자민당 총재는 "1㎜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맞받았다. 120년 전 한반도 운명을 결정짓고 동아시아를 뒤흔든 청일전쟁 전야(前夜)도 이랬을 것이다. 청일전쟁은 동학농민혁명 발발을 빌미로 한반도에 군대를 파견했던 중국과 일본이 서로 상대방에게 한발씩 물러나라고 티격태격하다가 불붙은 전쟁이었다.

베이징대의 한 동아시아 전문가는 댜오위다오 분쟁을 "장기판의 졸(卒)과 같다"고 했다. 겉보기에는 작은 섬을 둘러싼 싸움 같지만 그 뒤에는 동아시아 정치라는 큰 판이 있다는 것이다. 청일전쟁도 바탕에는 한반도 지배를 둘러싼 중·일 간 패권싸움이 있었다. 그래서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는 것인가. 그때는 신흥(新興) 일본이 먼저 도발하고 중국이 몰리는 입장이더니 지금은 대국(大國)으로 떠오른 중국이 일본을 닦아세우는 모양새다.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뒤이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해 한국을 속국(屬國)으로 만들었다. 당시 '조선'이란 나라는 열강들이 한반도 운명을 놓고 벌인 장기판의 판세를 얼마나 읽고 있었던가.

독도 문제로 한·일 관계가 한창 험악했던 달포 전 '세계 속 한국근대사'라는 책이 서점에 나왔다. 여기에 러일전쟁 무렵 방한한 영국 기자 맥켄지와 조선 조정의 실력자인 탁지부 대신 이용익이 나누는 대화가 나온다. 맥켄지가 "조선이 멸망하지 않으려면 개혁을 해야 한다"고 하자 이용익이 대꾸한다. "미국·유럽 등과 조약을 맺고 있고 그들이 독립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합니다." 맥켄지가 다시 말한다. "아니 모르시오? 힘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조약은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걸. 당신들이 그 조약들을 지키도록 하려면 그만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오." 그런데도 이용익은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중립이라는 걸 천명했고, 우리의 중립을 존중하라고 당부했소."

러일전쟁 때 일본 전쟁 비용의 60%는 영국의 로스차일드, 미국의 JP모간 같은 국제 금융자본이 일본이 발행한 전쟁 국채를 매입해서 댄 것이었다. 이 나라들이 전쟁에서 누구 편을 들지는 뻔한 일이었다. 열강은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판을 짜고 있는데 조선의 위정자들만 이를 모르고 '조약' '중립' 운운했던 것이다.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 전사자는 8400명, 청군(淸軍) 전사자는 3만5000명이었다. 그런데 조선군 병력은 모두 합해 4000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왕비가 궁 안에서 외국군에 시해당하자 임금이 살기 위해 이곳저곳 외국 공사관을 기웃거렸던 게 당시 조선이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굳어갈 무렵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무장관에게 이렇게 말한다. "조선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적(敵)을 단 한 대라도 때릴 능력이 없는 나라다. 자신을 위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라를 아무런 이익 없이 도울 나라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경제력이나 국가적 위상이 120년 전 조선과 비교할 수 없이 커졌다. 동아시아 판세도 당시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래도 교과서에 안 나오는 100여년 전 역사 이야기가 자꾸 떠오르는 요즈음이다. 대선 주자들에게서 중국의 굴기로 출렁대는 동아시아의 험난한 파도 속에서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고 갈지에 대해 우선 듣고 싶다.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우리의 과거와 오늘을 세계사의 큰 틀에서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김태익 논설위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22/20121022027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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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1:59

오래된 이야기지만 1984년 9월 전두환 대통령 방일 때 쇼와(昭和) 천황과의 만남을 떠올려 본다.

한국 대통령의 첫 공식방문, 더구나 국빈으로서의 방일이었다. 쇼와 천황은 과거 식민지 지배의 정점에 있었던 만큼 어떤 말로 대통령을 맞을지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사죄가 필요하다는 한국의 희망은 잘 알지만, 전후 일본국 헌법에서 천황은 정치적인 발언을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사이의 접점을 찾느라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내각은 머리를 쥐어짰다.

당시 외교 취재를 담당하고 있던 나는 어떤 발언이 나올지 동료들과 그 내용을 추적하고 있었고 ‘유감’이라는 단어가 포함된다는 확실한 정보를 손에 넣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말도 아니지만 당시 상황에서, 더구나 천황의 발언이라면 무게감이 달랐다. 아사히신문은 대통령 방일 전날, 과감히 ‘천황이 유감 표명하기로’라고 보도했다.



조마조마하고 있는 가운데 드디어 당일 만찬회 환영사에서 천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금세기의 한 시기에 있어서 양국 간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이며, 두 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으로 특종이 확인됐다.

한국 대통령 맞을때마다 ‘과거’ 언급

당시 일본으로서는 최대한의 발언이었지만 한국으로서는 어딘지 부족했던 것임에 틀림없다. 전 대통령은 답례사에서 “우리 국민과 함께 엄숙한 마음으로 경청했습니다”라고 답했지만 한국 언론에는 ‘부족하다’ ‘애매모호하다’ 등의 불만스러운 평가가 많았다.

그로부터 6년 후 지금 아키히토 천황은 노태우 대통령을 만찬회에서 맞았다. ‘쇼와 천황의 발언보다 일보 진전된 표현을’이라는 한국 측의 강한 요망도 있어 일본 측은 숙고 끝에 발언을 준비했다.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한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당한 괴로움을 생각하며 저는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습니다.”

잘 보면 알 수 있듯이 쇼와 천황이 말한 유감의 뜻보다 마음이 상당히 담겨 있고, 키워드는 ‘통석의 염’이었다.

사실 초안에는 ‘불행한 과거에 가슴 아픈 생각’이라는 조금 다른 표현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 방일 조금 전에 이 내용이 일본에서 보도되자 한국의 한 신문이 천황이 ‘가슴 아프게’라는 가요를 연습하고 있는 시사만평을 게재했다. 일본 가라오케에서도 자주 불리던 유명한 노래였지만 이건 곤란하다며 당황한 일본 정부가 재검토에 나서 최종적으로 ‘통석의 염’으로 귀착됐던 것이다.

올해 여름 이명박 대통령이 불만스러운 사례로 거론한 천황의 발언은 이 ‘통석의 염’이었다. 하지만 그전 천황이 맞았던 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질문 받고 “나도 국민도 한일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이것으로 일단 결말을 봤다고 생각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답했다. 그랬던 만큼 이 대통령의 발언에는 나도 매우 놀랐다.

천황은 그 후로도 한국 대통령을 맞을 때마다 과거를 언급해왔다. 1994년에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깊은 슬픔의 마음’을 나타냈고, 1998년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깊은 슬픔은 늘 제 기억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인에게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천황의 발언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명확한 사죄의 말은 총리가 그 책임하에 하고 있다.

원래 천황에게는 자유가 없다. 국회 소집과 총리대신 임명이라는 큰 직무가 있지만 이런 것들은 형식상의 권한이다. 일반 국민에게 주어진 직업선택의 자유도 없고, 거주 이전의 자유도, 종교의 자유도 없다. 평화를 강력히 바라는 마음에서 때때로 일본의 과오를 입에 담지만 안보 정책은 말할 수 없다.

지금 천황은 자신의 근본이 한반도에 있다고 스스로 명확히 밝히기도 했고, 한국을 생각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죄의 자유가 없고, 스스로의 발언을 비판받아도 반론할 자유가 없다. 일본에서 천황 비판이 금기시되고 있는 것은 천황이 신성한 존재여서라기보다 비판에 대해 반론을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좋다.

‘반론의 자유’ 없어 표현에 한계

그래도 많은 일본인은 천황과 황후를 경애하고 있다. 많은 부자유와 중압감을 감수하면서도, 예컨대 재해 피해지를 방문해 무릎을 꿇고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외국과의 우호를 바라면서 빈객을 진심으로 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천황이 한국 땅을 밟으면, 말로 전달하는 이상의 마음을 한국 여러분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곧 79세가 되는 노구에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 것인가.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http://news.donga.com/3/all/20121018/501929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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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1:35

美 차기 대통령과 中 시진핑, 본격 패권 경쟁 초석 놓을 것
'美 밀어내기'와 '中 묶어두기'… 동아시아서 치열한 싸움 예상
역사 얽힌 영토 분쟁도 연결돼… 한국, 수평적 네트워크 지향을

 

이제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미국 대선과 중국 공산당 대회에서 2010년대 중반을 장식할 세계사의 새 라이벌이 결정될 것이다. 세계 1위 미국과 2위 중국의 격차가 점차 좁혀져 가는 가운데 최종 승부까지 10년 남짓 남았다는 것이 관측의 대세이다. 부상하는 중국의 오르막 그래프와 약화되는 미국의 하강 궤적이 교차하는 접점은 지금 추세라면 2020년대 중반쯤일 것이다. 구매력평가지수 기준 양국의 GDP, 그리고 동아시아에 사용되는 양국의 군사비는 2020년대 중반쯤 비슷해질 것이다. 경제 위기 이후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2%를 밑돌고, 중국은 여전히 9%대를 유지하고 있다. 막중한 재정 적자로 미국의 군사비는 줄어드는 반면, 중국은 매년 15%를 넘는 군사비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자신이 가진 힘만큼 원하게 되는 국제정치에서 중국은 '핵심 이익(core interest)'을 더욱 확장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더 이상 양보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늘어난 것이다. 미국은 재활기에 접어들면서 기존에 핵심 이익이던 것들을 이제는 주변 이익으로 놓아버려야 하는 처지이다. 중동의 경우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역내 지정학적 변화에 속수무책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새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차기 주석은 역사 속 화려한 주인공으로 기억되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의 패권(覇權)이 부활한다면 오바마는 그 밑거름이 된 인물로, 중국이 새로운 패권국으로 성장한다면 시진핑은 그 초석을 놓은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양국 모두 국제경쟁력 저하, 국내 불안정 등 치명적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지도자가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소용돌이의 눈, 미·중 경쟁의 핵심 무대는 동아시아다. 가난해져가는 유럽, 혼란한 중동과 달리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동아시아는 미국에 새로운 '팍스 아메리카나'의 매력적인 디딤돌이다. 부시 전 대통령의 역사적 소명이 제2의 테러로부터 미국을 보호하는 것이었다면 오바마와 차기 대통령의 소명은 동아시아에 집중하여 중국의 도전에 대처하고 패권 부흥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동아시아 회귀(回歸) 전략'은 설사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변함없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미·중의 경쟁은 복합적이다. 군사 부문에서 양보란 없다. 중국은 소위 '반(反)접근·지역 거부 전략'으로 미국 밀어내기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새로운 거점을 연결하여 중국이라는 큰 고기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새로운 어망(漁網)을 치고 있다. 앞으로도 중국의 신무기 개발 소식은 속속 들어올 것이다. 여전히 군사적 우위를 지키고 있는 미국이 동아시아에 새로운 네트워크를 짠다는 소식도 계속 들릴 것이다. '미국 밀어내기'와 '중국 묶어두기' 간의 치열한 싸움이다.

경제 부문에서 미·중 간 협력은 구조적 필연이다. 미국에 중국은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수출시장이고, 중국에 미국은 무역 흑자 창출의 보고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시장이 평화를 온전히 보장할지는 미지수다. 환율, 지적재산권, FTA 네트워크 등을 둘러싼 양국 간 갈등은 시장이 정치적 대결과 완전히 독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미·중 경쟁은 동아시아 특유의 분쟁과 연결되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띤다. 일례로 동아시아 영토 분쟁은 근대적 주권 영역 확보의 싸움이지만 동시에 상처받은 과거의 아픔을 건드리는 마음의 분쟁이기도 하다. 동아시아 민족 간 자존심 싸움에서 섬 하나에 걸린 이익은 핵심 이익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지도자는 국력에 걸맞은 지위를 요구하는 국민의 강력한 요구 속에 더욱 공격적 자세를 취하게 될 것이다. 센카쿠 분쟁에서 보이듯이 미국의 개입도 용납하기 어렵다. 현재까지 미국은 일본의 기대와는 달리 도서 분쟁을 주권 문제로 규정하고 불개입을 천명하고 있다. 독도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새 지도자는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특수성을 더욱 절감해야만 중동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한일 갈등과 같은 동맹국 간 분쟁은 미국에 특히 치명적이다. 동아시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고는 군사·경제에 이은 마음의 경쟁에서 패권 발판의 토대를 마련하기 어렵다. 그러한 점에서 불개입과 수수방관만이 능사는 아니다.

동아시아인들은 일방주의(一方主義)를 행사하는 미국이나 패권적인 중국 모두를 원하지 않는다. 21세기 동아시아인들은 수평적 네트워크가 강화된 다차원적이고 민주적인 동아시아를 원한다. 한국의 중견국 외교가 지향해야 할 목적이기도 하다. 한국이 강대국 외교를 지향하지 않는다 해서 덜 야심적인 것은 아니다. 대다수 동아시아인이 원하는 새로운 지역을 꿈꾼다는 점에서 오히려 미·중보다 더욱 야심적일 수 있다. 한국의 새 대통령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이를 위한 전략적 외교 문화에 젖어갈 때 미·중 간의 경쟁 속에서 새로운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11/20121011009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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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53

“일본과 한국 두 나라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선 금융시장의 안정이 매우 중요하다. 두 나라는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 정신에 입각해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고 있으며, 이번에 유럽 재정위기에 공동 대응해 이를 확충하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일본 재무성이 한국과 통화스와프 규모를 130억 달러에서 700억 달러로 늘리는 협정을 맺으면서 내놓은 담화의 일부다. 재무성 홈페이지(www.mof.go.jp)에는 아직도 당시 보도자료가 생생히 올라 있다. 통화스와프는 일본이 한국을 일방적으로 돕는 조치가 아니라 아시아 금융시장의 안정과 한·일 양국의 공동 번영을 위한 호혜의 정신에서 비롯됐다는 내용이다.

최근 한·일 통화스와프를 둘러싼 일본의 행보를 보면 이런 정신을 까맣게 잊은 듯하다. 일본 재무성은 3일 NHK를 통해 ‘한국의 요청이 없으면 통화스와프 확대는 더 이상 없다’는 방침을 흘렸다. 독도 문제라는 정치 이슈에 통화스와프 카드를 끝까지 써먹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시계를 15년 전인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로 돌린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장면이다. 당시에도 일본은 통화협력 문제를 한국 압박의 카드로 활용했다. 한 푼의 달러가 아쉬웠던 한국은 이웃 일본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일본은 냉담하게 뿌리쳤다. 남들보다 앞서 150억 달러를 회수해가기도 했다.

당시 일본에선 한국을 도와줄 필요가 있느냐는 정서가 강했다. 돈을 떼일지도 모른다는 논리가 동원됐다. 평소엔 소원하다가 아쉬울 때만 친한 척하느냐는 견해도 나왔다. 기저에는 일본 기업을 맹추격하던 한국 기업들이 회생하는 데 도와줄 이유가 있느냐는 셈법도 있었다.

그 결과 일본은 혹독한 역풍을 맞았다. 동남아시아 등 주변국들은 일본을 ‘비 올 때 우산을 빼앗는 나라’로 인식하게 됐다. 동아시아 금융시장에서 일본은 왕따 취급을 받기도 했다. 도쿄를 국제금융 허브로 만들겠다는 야심도 물 건너갔다.

일본 안에선 그 뒤 자성론이 활발히 일었다. 국제 금융무대에서의 신뢰 회복과 협력 증진이 발등의 불이 됐다. 일본이 2000년 CMI 출범에 적극적 역할을 한 이유다. CMI는 아시아의 외환위기 재발을 막고 역내 금융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 한·중·일이 참여해 만든 금융협약이다. 그 정신에 입각해 한·일 통화스와프가 2000년 시작됐고, 꾸준히 금액을 늘려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일본은 정치 논리에 휘둘려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일본의 은행과 증권 등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내심 걱정이 크다. 유럽이나 미국 금융회사들에 비해 금고가 넉넉해 해외 진출에 호기를 맞았지만 과거처럼 역풍을 맞지 않을까 해서다.

 

김동호 정치국제부문 기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496849&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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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32

아사히신문에 기고하신 ‘영혼의 통로를 막지 마라’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선동에 휘둘리는 자국민들에게 긴 안목과 침착한 사려를 촉구하신 선생과 독도와 센카쿠(尖閣) 열도에 관한 역사적, 인간적 진실에 일본 국민의 눈과 마음을 열어주신 오에 겐자부로 선생 등 지식인들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힘으로 비교우위를 만회하려는 日

선생이 말씀하신 대로 2차대전 종전 후 한중일 3국은 고차원적인 ‘동아시아 문화권’을 이루었습니다. 이 성취는 일본이 먼저, 이어 한국과 중국이 경제성장을 이루어 바야흐로 문화의 ‘등가 교환’이 가능해지면서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달리 말하면 선두주자인 일본이 지난 수십 년간 누렸던 비교우위를 잃으면서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고요. 따라서 지금 일본이 보여주고 있는 공격적 태도의 바탕에는 이 비교우위 감퇴를 힘으로 또 위세로 만회하려는 심정이 깔려 있다고 사료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되기 쉬운 것 같습니다.



선생께서도 아시겠지만 독도는 일본이 1905년 을사늑약으로 우리의 주권을 마비시킨 후 합법의 형식을 빌려 불법으로 편입해 버린 우리 영토입니다. 을사늑약이 명백한 불법이고 무효인데 독도 편입은 합법이고 유효하다는 것이 인류사의 정의일 수 있을까요? 일본이 독도 편입의 합법성을 주장하는 것은 일본인이 사랑하는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의 하이쿠, “벼룩을 눌러 죽이며 입으로는 말하네, ‘나무아미타불’” 바로 그 상황입니다.

고대 한반도 3국과 일본은 더할 수 없이 다정한 이웃이었던 것 같습니다. 백제의 왕족, 고구려 고승들이 풍랑을 헤치고 일본까지 달려가 학문을 전하고 불도(佛道)를 펼치고 뼈를 묻었습니다. 백제가 멸망한 후 백제 유민들은 일본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일본에 가서 백제인 촌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엔 일본을 이웃으로 가진 것이 한국에 무서운 재앙이었습니다.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는 용서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두려운 마음으로 경계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요?

한국인들은 예의 바르고 성실한 일본인을 보고 일본에 대한 인식을 바꿔 가다가도 일본의 침략근성 부활의 징후가 감지될 때마다 화들짝 놀라며 임진왜란, 간토대지진 후 조선인 학살, 일제강점기의 수탈과 잔혹성, 강제징용, 일본군위안부… 그 모든 피해와 굴욕을 상기하고 분노합니다. 일본이 이웃 나라들을 그토록 괴롭히고 유린해서 얻은 것이 결국 무엇이었을까요?

몇 해 전 규슈의 남단, 가미카제특공대 기지였던 지란(知覽)에서 저는 형언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을 느꼈습니다. 거기서 구입한 특공대원들의 마지막 서한집에는 무카이시마 고이치(向島幸一)라는 청년이 부모에게 쓴 ‘황국의 성업(聖業)을 위해 기꺼이 몸을 바친다’는 서한이 있었습니다. 서한에는 자기가 죽은 후 정부에서 주는 보상금은 ‘염원했던 집의 개축에 일부나마 보태시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이 효성스러운 청년은 영웅일까요, 살인마일까요, 희생양일까요? 그의 부모가 ‘조국’의 끊임없는 영토야욕의 제물이 된 착한 아들의 죽음을 애도할 때 그의 자살폭격으로 희생된 수백 명, 수천 명의 이국 젊은이의 부모들도 피를 토했습니다. 이 착한 청년이 어떻게 인류사의 죄인이 되었는지 일본의 젊은 세대가 똑바로 알지 못한다면 가미카제특공대의 비극은 반복될 수 있습니다.

고립을 부르는 영토에 대한 욕심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그 전성기 때 영토를 자기네 영토라 고집한다면 우리가 사는 지구의 바다를 모두 매립해서 육지를 만들어도 모자랄 것입니다. 다른 나라의 역사성과 민족감정을 침해하는 영토에 대한 욕심은 결국 살상과 원한을 낳고 민족적 고립과 배척을 초래합니다. 선생께서 말씀한 대로 국경은 영혼이 오가는 통로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이나 국가나 모두 지구의 일시적인 세입자가 아닙니까? 온순한 일본 국민이 정치가들이 뿌리는 값싼 술에 취해 공격적 구호를 복창하다가 뒤따라 올 가미카제에의 호출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태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빕니다.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http://news.donga.com/3/all/20121002/49811499/1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0:25

올 상반기 스웨덴 에릭슨을 제치고 세계 1위 통신장비 기업이 된 중국 화웨이(華爲)의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은 지난해 미국 '포천'지(誌)가 선정한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인 1위'에 오른 인물이다. 그가 이끄는 화웨이의 주된 성공 요인은 128만㎡ 규모의 '화웨이 유니버시티'라는 사내(社內) 교육훈련센터를 운영하는 강도 높은 직원 교육과 전체 직원의 약 46%를 R&D 인력으로 두고 매년 순이익의 10%를 연구개발(R&D)비로 쓰는 '기술중심 경영'이다. 하지만 정작 런 회장이 꼽는 비결은 경쟁자의 의표를 찌르는 '전략'이다.

"1988년 2만위안(약 330만원)을 갖고 창업한 제가 지금도 가장 애독하는 책은 '마오쩌둥 선집(毛澤東選集)'입니다." 실제로 그는 글로벌 기업들이 독점하던 통신장비 시장을 빼앗기 위해 농촌 장악 후 도시로 공격하는 마오쩌둥 전법을 그대로 구사했다. 홍콩을 시작으로 러시아·남미 등 신흥시장(2단계), 화교가 많은 싱가포르·태국·말레이시아 시장(3단계)을 거쳐 유럽·미국으로 진격한 것이다. 그 결과 총매출의 75%를 해외에서 올리는 화웨이는 지금 세계 50대 통신기업 중 45개사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화웨이에서 '자아비판' '와신상담' 같은 용어가 일상화된 것은 런 회장의 마오쩌둥식 사고방식의 영향이 크다.

중국 1위 음료회사인 와하하(娃哈哈)의 쭝칭허우(宗慶後) 회장은 1998년 '페이창콜라(非常可樂)'를 내놓으며 '측익진공(側翼進攻) 전략'으로 재미를 봤다. 코카콜라·펩시콜라 같은 다국적 기업과 정면승부를 피하고 중소도시와 농촌 시장을 먼저 확보하는 방식으로 페이창콜라의 점유율을 3년 만에 12%로 높이며 중국 대륙에 '콜라 삼국지 시대'를 연 것이다.

냉장고·세탁기 분야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하이얼(海爾)의 장루이민(張瑞敏) 회장은 자나깨나 '손자(孫子)병법'을 곁에 두고 응용방략을 숙고한다. 신입사원 면접장에서도 '손자병법' 구절로 질문할 정도이다. 하이얼이 소형 냉장고로 미국 시장에서 대히트를 친 것은 '출기불의(出其不意·적이 생각하지 않는 곳을 친다)'라는 손자병법 원리를 마케팅 현장에 적용한 산물이다.

내로라하는 중국 CEO들은 이처럼 하나같이 '전략 고수(高手)'들인데, 우리는 어떤가?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공략하겠다고 선언하는 대기업 오너와 CEO들은 많지만, 차별화된 '전략'조차 없이 "선진국에서도 통했으니 중국에선 더 잘 될 것"이라는 오만한 발상으로 접근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 진출 10년이 넘어도 반짝 성공 후 실적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퇴보하는 기업들이 훨씬 많다.

공산당 주도의 국가자본주의 체제인 중국은 광대한 시장과 �r시(關係), 독특한 유통망·상거래 관행 등으로 세계에서 보기 드문 '비즈니스 정글' 같은 곳이다. 이런 땅에서 한국 기업인들은 너무 순진하게 대응하는 게 아닐까. 중국 CEO들과 당당하게 겨루며 때로는 그들을 뛰어넘는 고단수의 치밀한 전략과 지모(智謀)가 없는 상태에서 벌이는 차이나 비즈니스는 자칫 백전백패(百戰百敗)라는 참화를 낳게 될 것이다.

 

 

송의달 산업부 부장대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02/20121002019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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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26. 10:22

중국 인민해방군에는 ‘아버지’ 칭호를 받는 두 명의 영웅이 있다. ‘로켓의 아버지(火箭之父)’로 불리는 첸쉐썬(錢學森·1912~2009)과 ‘항공모함의 아버지(航母之父)’로 회자되는 류화칭(劉華淸·1916~2011)이다. 당대 최고의 로켓 전문가였던 첸은 미국에서 유학하고 연구하다 귀국해 오늘날 중국 로켓과 우주과학 기초를 다졌다. 반면 류는 평생 전장을 누비며 대양해군의 꿈을 놓지 않았던 야전 제독이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엊그제 취역한 중국의 첫 항모 랴오닝(遼寧)함 갑판 위에서 눈물과 함께 춤을 췄을 것이다.

지난해 1월, 류의 임종이 가까워지자 중국 해군 지휘관 몇 명이 그의 집을 찾았다. 유언은 그들의 가슴을 후볐다. “항모를 보지 못하면 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겠다.” 지휘관들이 “내년에 꼭 항모를 취역시키겠다”고 약속하자 그는 눈을 감았다고 한다.

1970년 일이다. 해군 부참모장이었던 그는 어느 날 지휘관 회의에서 “항모 보유 타당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운을 뗐다. 참모들은 “미친 거 아냐”는 표정이었다. 문화혁명의 광풍과 사회 혼란, 변변한 구축함 한 척 없었던 해군, 그리고 하루 연명하기도 힘들던 인민들 앞에서 항모라니. 그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중국의 영해가 국토의 3분의 1인 300만㎢다. 이걸 어떻게 지킬 건가. 청 말 서구열강에 국토가 어떻게 찢겨나갔는지 잊었나.” 중국 해군 전략의 기초가 된 ‘해양 국토론’은 이렇게 시작됐다.

회의를 마치고 그는 해군 내에 ‘항모 논증팀’을 만들어 항모 전사와 작전개요, 관련기술, 인력양성 계획 등을 집중 연구토록 했다. 75년, 중국의 항모를 가져야 하는 논리를 완성한 그는 마오쩌둥(毛澤東)을 찾아 일주일 넘게 설득했다. 80년, 류는 해군 사령관으로 미국을 방문해 항모 ‘키티호크함’ 갑판에 올랐다. 중국 군 장성으로는 처음이었다. 당시 각오를 그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다. “눈물이 났다. 그리고 조국과 약속을 했다. 죽기 전 반드시 항모를 갖겠다”고.

 

이후 그는 국방대학 내 항모 함장교육 과정 개설(87년)과 우크라이나 항모 바랴크함(랴오닝함) 매입(98년) 등을 주도했다. 그래서 랴오닝함은 류에게 평생의 한(恨)과 꿈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물론 중국 항모가 미국에 버금가는 전투력을 갖추려면 앞으로 몇 십 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대양 해군’ 전략은 이미 절반의 성공이다. 그리고 한국 안보에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다. 아쉽고 답답한 것은 중국의 류화칭을 넘을 ‘한국의 류화칭’이 있다는 말을 아직 듣지 못했다는 거다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463727&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0:11

엔니오 모리코네의 주제음악이 환상적이었던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추한 놈(The Good, the Bad, and the Ugly·국내 출시명 '석양의 무법자')'은 세 총잡이의 맞대결로 끝이 난다. 무려 3분간이나 이어진 피 말리는 신경전 끝에 '좋은 놈'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나쁜 놈'에게 총을 쏜다. '추한 놈'도 '나쁜 놈'에게 총을 겨누지만 전날 밤 이스트우드가 그의 총에서 미리 총알을 제거해둔 바람에 불발로 그친다.

흔히 '멕시컨 대결(Mexican standoff)'이라고 불리는 삼자(truel) 게임은 양자(duel) 게임에 비해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띤다. 양자 게임의 경우에는 대체로 먼저 공격 기회를 잡는 게 유리하지만, 셋이서 대결하는 상황에서 선제공격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만일 갑이 먼저 을을 쏜다면 병이 곧바로 갑을 쏘아 손쉽게 승리를 거머쥘 수 있기 때문이다. 댜오위다오 혹은 센카쿠 열도를 놓고 중국일본의 무력시위가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일본은 또한 우리나라와 독도를 두고 분쟁을 일으키려 한다. 중국 역시 우리 이어도를 호시탐탐 넘보고 있다. 해양영유권을 둘러싼 세 나라의 갈등은 각각 다른 섬을 두고 벌어지고 있지만 자칫 까다로운 삼자 게임으로 번질지 모른다.

삼자 게임에서는 공격력의 확실한 우위가 없는 한 일부러 상대를 맞히지 않는 게 일단 최선의 전략이다. 그러면 다음 공격자는 여전히 실탄을 장전하고 있는 나머지 상대를 쏘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센카쿠 열도를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홀연 국유화를 선언한 일본은 쓸데없이 선제공격을 하는 우를 범했다. 국내 정치용 전략이 국제정치를 망친 전형적인 예이다. 독도에 대한 우리의 전략도 이런 관점에서 신중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나는 이 게임에서 우리나라가 '좋은 놈' 클린트 이스트우드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추한 놈'을 일찌감치 무장해제시키고 게임을 단순하게 만드는 지혜를 발휘했으면 한다. 두 나라 중 누가 '나쁜 놈'이고 '추한 놈'인지는 차차 드러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대선도 지난 세 번의 대선과 마찬가지로 삼자 게임이 되고 말았다. 늘 양자 게임을 벌이는 미국과 달리 우리는 은근히 삼자 대결을 즐기는 건 아닌가 싶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행동생태학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24/2012092402423.html

Posted by 겟업
2012. 12. 26. 10:09

중국 취재를 다니면서 좌절할 때가 많다. 지난해 12월 화력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 시위가 벌어진 광둥(廣東)성 산터우(汕頭)에 갔을 때는 사전에 현지 취재원을 구하지 못해 '맨땅에 헤딩'을 했다. 길거리 주민과 공원의 노인 10여명을 붙들고 이틀 전 시위 상황을 물었더니 "모른다"거나 침묵 일색이었다. 시위가 벌어진 여러 곳 중 하나를 골라 갔다. 큰 도로가 교차하는 고속도로 진입로인 데다 높은 건물이 없어 인근 주민이라면 6000여명이 벌인 과격 시위를 모를 수 없는 곳이었다.

도로 옆 해산물식당에 들어가 요리와 담배를 주문하며 주인의 환심을 샀다. 식사를 마친 뒤 주인에게 담배를 권하며 말을 붙였으나 그는 시위에 대해서는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담배 한 대를 다 피울 때까지 얻어낸 대답은 "시위는 벌어졌지만 진압됐다"는 하나마나 한 소리였다.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고개만 가로젓고 입을 닫았다.

지난 5월 북한 인권 운동가 김영환씨가 중국 당국에 구금돼 있다는 얘길 듣고 출장을 갔으나 거기서도 아무런 얘기를 들을 수 없었다. 공안 관계자를 어렵사리 만났지만 극비(極秘) 사안인 데다 안전부에서 관장하는 일이라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이달 초에는 동북지방의 한 도시에 취재를 갔다가 밤늦게 호텔 방으로 찾아온 보안요원들한테서 "초청받지 않고 취재온 것은 규정 위반"이라는 경고를 받고 서둘러 도시를 떠났다.

중국 전역엔 거대한 정보 차단막이 있다. 중국인들은 생래적으로 낯선 사람에게 자기네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외국 기자가 소위 '관시(關係)'를 통해 취재원을 소개받지 않으면 낯선 곳의 취재는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공직사회는 이런 보이지 않는 차단막 외에 법규정이라는 유형의 차단막까지 결합돼 있어 견고하기 이를 데 없다.

그 압권이 최근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의 잠적 사태다. 그가 자취를 감춘 14일 동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쏟아지는 외국기자들의 질문에 "그 방면의 소식을 알지 못한다"며 완벽한 답변 거부로 일관했다. 이 때문에 시 부주석의 신상(身上)과 관련해 운동 중 부상, 심장병, 암, 자동차 테러, 총칼 피격,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의 갈등 등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설(說)이 나돌았다. 시 부주석의 측근이나 주변에서도 거의 얘기가 흘러나오지 않았고, 그나마 떠도는 얘기도 진위를 알 수가 없었다. 이 거대한 땅에서 이 많은 사람이 만나고 떠들고 부대끼며 사는데, 차기 국가 최고지도자라는 사람이 도대체 왜 사라졌는지 확인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이 덩샤오핑(鄧小平)의 호각소리를 시작으로 개혁개방의 길을 달려온 지가 30년이 지났는데도 정보 차단막은 개방되지 않았다. 시 부주석이 잠적을 끝내고 미 국방장관 등 외국 귀빈들을 다시 만나기 시작했지만, 중국 매체들은 그의 잠적 사연에 대해 여전히 일언반구 보도하지 않는다. 중국은 '대국굴기(大國崛起)'를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21세기 대국은 덩치만 크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대국의 요체는 당당함이고, 정직함 없는 당당함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여시동 상하이 특파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28/201209280191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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