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8. 01:02

작년 7월, 파리 특파원으로 부임한 지 일주일 만에 프랑스 남부 도시 니스에서 테러가 터졌다. 사망자만 86명에 이르는 대형 사고였다. 니스로 향하면서 프랑스 한국대사관에 전화했다. 워낙 유명한 관광지여서 한국인 피해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사관 영사와 직원도 파리에서 급하게 현지로 내려가고 있었다. 파리에서 니스까지는 900km가 넘는 먼 거리. 남부에는 영사관이 없어 태권도를 가르치는 교민을 영사 협력원으로 두고 있다고 했다. 

반면 일본은 니스와 가까운 남부 마르세유에 있는 영사관 직원이 급파됐다. 일본은 파리 외에도 세 곳에 영사관이 더 있다. 외교 역량에서 차이가 있구나, 프랑스에서 일본과의 격차를 실감한 건 그때부터였다. 

파리의 상징 에펠탑 좌우 1km 사이로 한국문화원과 일본문화원이 있다. 그러나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다. 에펠탑 바로 옆 센강변에 위치한 일본문화원은 지나가다가 눈길이 갈 정도로 세련된 유리 건물로 지어져 있다. 에펠탑 건너편 두 블록 떨어진 골목에 위치한 한국문화원은 쉽게 찾기가 힘들다. 

일본문화원의 면적은 7500m², 한국문화원(750m²)의 10배다. 더 놀라운 건 프랑스가 파리에서 손꼽히는 이 노른자 땅을 1982년 무상으로 제공했다는 거다. 

두 개의 거대한 공연장에서 일본 전통 공연이 계속되는 일본문화원과 달리 1979년에 지어진 한국문화원에는 공연장이나 전시장이 없어 복도에서 전시회를 열어왔다. 10년 숙원 사업으로 내년에 문화원을 옮긴다. 부지를 매입하는 데 650억 원의 예산이 들었다. 


프랑스가 무상으로 문화원 부지를 제공할 정도로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아진 건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1800년대 중후반부터다.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일본의 채색목판화 우키요에를 비롯해 도자기, 차, 부채 등 자포니즘이 파리와 유럽을 강타했다.  


파리에서 40분 거리 지베르니에 위치한 프랑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집에는 온통 일본 그림이 걸려 있다. 파리 외곽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낸 빈센트 반 고흐도 일본 마니아였다. 

우리가 일본에 전통문화를 전수했다는 자부심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 사는 건 고달프다. 프랑스어가 서툰 유학생이나 주재원들은 프랑스 은행을 이용하기가 힘들어 유일한 한국 은행 지점인 KEB하나은행 파리 지점을 이용해왔다. 그런데 수지가 안 맞아 하나은행이 내년에 소매업 철수를 검토하면서 이들의 고민이 크다. 

반면 거의 모든 일본 주재원은 프랑스 현지 은행을 이용한다. 주요 프랑스 은행에 일본어가 가능한 직원이나 통역원이 있어 프랑스어를 몰라도 별 불편함이 없다. 지하철에 일본어 안내 방송이 나오고 일본어 통역원이 있는 종합병원도 있다.

파리에 파견된 많은 일본 외교관이나 주재원들은 자녀들을 본국과 같은 교육과정을 진행하는 일본 학교에 보낸다. 꼭 많은 돈을 들여 국제학교로 보내야 할 만큼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작다. 반면 파리에 한국어로 교육하는 한국 학교는 한 곳도 없다. 있다고 한들 그리로 보낼지도 의문이다.


프랑스인들에게 150년 전부터 일본은 동양에서 가장 앞선 1등 국가다. 문화, 경제,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그렇다. 인정하기 싫지만 일본 조상들이 이뤄낸 거다. 

이제 프랑스인들도 한국 하면 삼성과 싸이, 그리고 김치 정도는 떠올린다. 산업화와 한류, 아버지 세대와 우리 세대가 함께 이뤄낸 노력의 결과다. 그래도 우리 후손들이 조국을 자랑스러워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 150년 후 세계에서 한국은 어떤 나라로 기억될 것인가.

동정민 파리 특파원


http://news.donga.com/3/all/20170817/85856903/1#csidx977c7296f0de711ab691ddf36f0bc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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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8. 00:39

[미이케 다카시 '할복']

250년 평화 누린 에도 시대
사무라이, 칼 대신 책 읽으며 난학 등 세계 최신 학문 접해… 메이지 유신은 '독서광' 덕분
日근대화는 험난한 과정 거쳐… 우리는 '한 사람'이 이끌었다



공감 능력이 과다하게 발달한 사람은 이 영화를 보지 않는 게 좋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할복'이란 영화다. 에도 시대(도쿠가와 막부), 한 다이묘(지방 영주)의 집에 젊은 사무라이가 찾아온다. 용건은 할복하고 싶으니 댁 마당을 좀 빌려 달라는 것이었는데, 당시 유행하던 이른바 광언할복[狂言切腹]으로 자해 예고 공갈이다. 피도 닦아야 하고 뒷일이 많다. 해서 이런 요청 받으면 귀찮아서 몇 푼 쥐여 돌려보내는 게 통례다. 그런데 "알았소, 하시오" 대답이 나와 버린 것이다. 젊은 사무라이, 당황하더니 어쩔 수 없이 칼을 꺼내는데 보니까 진짜 칼이 아니라 대나무 칼이다. 인간의 살은 두부가 아니다. 칼도 잘 안 들어가는 게 사람 몸인데 그걸 대나무로 찔러 난도(亂刀)질 효과를 내려니 오죽하겠는가. 그 고통의 시간을 영화는 줄임 없이 보여준다. 영화 후반부는 그 대나무 칼의 이유와 복수극이다. 일본인들이 배를 가른 것은 인간의 영혼이 복부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무슨 어이없는 발상이냐고? 우리도 이런 말 종종 하지 않는가. "거참, 속을 보여 줄 수도 없고." 그들은 보여줬을 뿐이다.

젊은 사무라이가 그런 소동을 벌인 건 가난했기 때문이다. 도쿠가와의 일본 통일 후 에도 시대 250년의 평화는 사무라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일본은 과거 제도가 없는 나라다. 유일하게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전쟁에서 무공을 세우는 건데 아, 평화라니요.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칼이 필요 없어진 다이묘들은 사무라이들을 해고했고 이들은 낭인이 되어 빈곤을 벗 삼아 떠돌았다. 그러나 이런 사정은 일본 역사에는 행운이었다. 그 250년 동안 사무라이들은 물건을 만들어 팔았으며 심지어 예술가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이들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같은 농업 사회에다 순서도 똑같이 '사농공상'의 신분 질서가 있는 조선과 일본의 운명이 확연하게 갈린 것은 이 때문이다(일본 사농공상의 사는 사무라이). 당시 에도 인구는 100만명으로 같은 시기 100만명짜리 도시는 베이징과 콘스탄티노플까지 달랑 셋이다. 에도 시대 사무라이는 전체 인구의 7%에 달했는데(무려 250만명) 이들은 두 가지 공부를 했다. 하나는 중국 고전이고 하나는 네덜란드발(發) 최신 학문이다. 에도에서 독서는 유행이었고 이는 오사카 등 다른 도시로 급속히 퍼져갔다. 18세기 일본은 전 국민이 준(準)독서광이었다. 당시 어지간한 집에는 세계지도가 하나씩 붙어 있었는데 우리의 정조, 순조 때다. 비교, 많이 된다. 이렇게 책 읽은 사무라이들이 성사시킨 게 메이지 유신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메이지 유신을 높게 평가 안 한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에도 시대에는 번(藩·일종의 지방 정부)이 세 종류 있었다. 도쿠가와의 친·인척이 다스리는 번, 도쿠가와의 가신들이 다스리는 번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도요토미 편에 서서 도쿠가와에게 맞섰다가 항복했던 '도자마번'이다. 도쿠가와는 이들을 살려주는 대신 경제 기반을 빼앗았다. 도자마번의 대표 주자가 사쓰마와 조슈였고 이들이 동맹을 맺어 250년 만에 옛 주군의 원수를 갚고 경제 침탈자인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린 게 메이지 유신이다(로미오와 줄리엣 뺨치게 앙숙이었던 두 번을 연결한 게 사카모토 료마). 이런 단순 복수극이 근대화의 물꼬로 이어진 것은 마침 서양 오랑캐가 밀려와 있었고 일왕이라는 존재가 있었으며 책 읽어 눈 밝아진 사무라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개항(開港)이라는 조건이 없었더라면 이들은 당파를 만들어 조선처럼 사색당쟁 시대를 신나게 열어젖혔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처럼 안에서 지지고 볶다가 서양 열강에 꼴깍. 그래서 운이 좋다는 얘기다(이 운은 2차 대전까지 이어진다. 전쟁에서 진 건 그쪽인데 대체 왜 우리가 쪼개지냐고!). 책 읽은 마지막 사무라이 세대가 이토 히로부미와 그 일당이다. '시경'과 '서경'을 열심히 읽은 조슈 출신 이토 히로부미는 젊은 시절 테러리스트로 출발하여(실제로 사람을 죽인 적이 있는 메이지 시대 유일한 총리) 학연과 지연의 중요성을 보여주며 역시 인생은 운이고 인맥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뒤 만주에서 사망한다.

제반 여건이 좋았다고 메이지 유신이 순탄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일왕에게 정권을 반환했지만 에도 막부는 까만 속셈이 있었고 수백 년 만에 존재감을 회복한 일왕은 손안에 들어온 권력이 진짜인지 근질근질했으며, 사쓰마와 조슈의 대표 선수들은 근대화 청사진을 놓고 난투극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수만 명이 죽어 나갔다. 책 읽은 사무라이가 죄다 나서고 이렇게 험난한 과정 끝에 겨우 이룩한 근대화를 우리는 한 사람이 거의 다 끌고 갔고 올해는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누구일까~요?



남정욱 작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09/2017080903522.html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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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8. 00:31

이효리의 컴백으로 가장 긴장한 사람들은 동료 가수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예능업계의 라이벌들도 아니었다. TV 앞에서 제일 기가 죽은 건 아마도 요가 강사들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효리가 오랜만에 예능에 나와 선보인 요가를 보며 ‘어랏, 우리 선생님도 저만큼 못 하던데…’라는 의구심을 품은 게 나뿐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이효리는 인도 마이솔의 요가 지도자가 탄생시켰다는 ‘아쉬탕가 요가’를 일반인들에게까지 회자되게 한 장본인이다. 이효리가 하면 뭐든 유행이 되지만, 역으로 이효리는 늘 유행이 될 만한 걸 한다. 다이어트 요가에 질린 사람들이 슬슬 본토 요가로 관심을 돌리던 무렵, 그녀는 그런 수련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복귀해서도 “집착의 결집인 방송으로 얻은 괴로움을 요가로 내려놨다”며 프로 뺨치는 실력으로 전국의 요가 강사들에게 ‘의문의 일패’를 안겼고 말이다. 

다 가진 이효리가, 요가까지 잘하다니. 그런데 이젠 대중이 그런 걸 원한다. 본업이 멋진 건 기본, 취미도 제대로 해야 한다. 사람들이 이시영이란 배우를 다시 봤던 것도, 복싱이란 취미 때문이었다. 프로 선수로까지 뛰었으니 본업이 뭔지 헷갈릴 정도로 잘했다.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 다부지게 링 위에 선 여배우라니. 마치 인생은 원래 이렇게 뜨겁고 치열하게 사는 거 아니냐고 묻는 것만 같았다. 덕분에 그 배우의 아우라가 달라졌다. 

제대로 해내는 취미엔 열정, 몰입, 끈기가 다 있기 마련이다.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며 자기만족적인 소비를 아끼지 않는 ‘욜로(YOLO)’나 일과 삶의 조화가 최우선이라는 ‘워라밸’이 대세가 되면서, 취미에 과감히 투자하는 사람들은 주변에서도 늘고 있다. 얼마 전 함께 촬영 나갔던 카메라 기자는 전문 다이버였다. 중형차 한 대 값을 들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전문가 간지’를 위해 장비는 곧 죽어도 수중업계 최고 브랜드만 쓴다고 했다. 어쩐지 그 고집조차 소신으로 느껴질 만큼, 그는 행복해 보였다. 

가디언 전 편집국장이 쓴 ‘다시, 피아노’란 책이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어렵기로 유명한 ‘쇼팽 발라드 1번 G단조’를 완주하기까지의 기록이다. 하루 24시간도 모자랄 편집국장이 쇼팽이라니, 과연 일은 제대로 했을까 싶지만 그는 위키리크스 외교문건 폭로 같은 특종을 지휘하고 가디언의 디지털화를 이끈 누구보다 유능한 리더였다. 그런 그가 매일 출근 전 20분, 하루를 견딜 힘을 얻기 위해 건반 위에 손을 올리는 장면은 굉장한 울림을 준다. 탁월한 일과 완벽한 취미,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는 그 사회의 저력과 품격까지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쇼팽의 난곡(難曲)을 때려눕혀 버리는 편집국장이 가능한 ‘사회적 토양’이야말로 우리가 진짜 동경해 왔던 것들이다. 입시와 상관없는 취미는 뒷전인 교육, 오랫동안 일중독이 훈장이던 문화 속에선 불가능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도 달라지고 있다. 고난도 요가를 선보이는 가수나 링 위의 여배우처럼 삶의 균형추 역할을 하는 취미의 진가에 눈뜬 이들이 늘어나는 걸 보면 그렇다. 본업만큼 취미를, 물질만큼이나 여가의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아직 무르익어야 할 제도적 여건이 많지만 피아노 치는 편집국장도 더는 먼 꿈만은 아닌 시대. 오랜만에 요가 매트를 다시 펼쳐본다. 


박선희 채널A 산업부 기자 


http://news.donga.com/3/all/20170725/85507393/1#csidx6542dfcd6519d0892adef8334c44e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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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7. 23:45

단 2시간. 100년이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은 그뿐이었다.


지난달 30일 오전 페이스북의 한 타임라인에서는 건물의 철거 현장이 중계됐다. 인천 중구 송월동에 위치한 붉은 벽돌 건물 세채가 포클레인 한대로 간단하게 ‘정리’됐다. 건물 이름은 애경사. 애경그룹이 창업한 해인 1954년 인수해 1962년 매각한 비누공장으로 이 공장의 역사는 191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대의 양조장, 정미소, 전기회사 등과 함께 개항 초기 산업사의 중요한 한 풍경으로 한 세기를 버텨온 근대산업유산이 두시간 만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철거를 앞두고 나온 시민들의 반대 목소리를 문화유산의 가치가 없다고 무시했던 중구청은 철거 소식이 중앙 언론에까지 타전되자 그제야 그 가치를 몰랐다며 궁색한 변명을 내놨다.


그나마 보도가 되면서 ‘부음’ 기사라도 나온 애경사는 나은 형편인지 모르겠다. 인천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아래 있던 동구 송림동 한옥여관은 지난해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1938년에 지어져 1989년까지 여관으로 쓰였다는 이 한옥은 건축이나 역사의 문외한이 겉에서만 봐도 방방마다 올라간 벽돌 굴뚝이 신기해 안을 기웃거리게 되는 독특한 건물이었다. 2011년 인하대박물관 조사팀이 이 건물의 건축적 역사적 가치에 대한 분석과 보존을 위한 제언을 보고서로 남겼지만 헛수고가 됐다. 만석동에 위치했던 조선기계공작소(현 두산인프라코어) 노동자 숙소(추정)는 어떤가. 겉모습은 일반 창고 모양으로 거의 훼손됐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다닥다닥 붙어 있는 2층의 목재 발코니 구조가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드는 이 건물도 사망신고조차 확인할 겨를 없이 없어졌다.


백년 가까운 시간을 지나며 전쟁통에도 살아남은 이 강인한 건물들을 부순 힘은 뭘까. 주차장이다. 애경사는 송월동 동화마을 관광객 편의를 위한 공영주차장 증축을 위해 허물었고, 송림동 한옥여관은 근처 교회에서 건물을 사 밀어버리고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이밖에도 조일양조장, 동방극장 같은 30~40년대 인천의 근대건축물들이 최근 2~3년 새 주차장에 자리를 내주며 헐려나갔다. 공공자산의 가치가 있는 역사적 건축물을 단순히 ‘땅값’으로만 평가하는 지자체의 몰역사적 태도야 어제오늘 이야기도 아니지만 관광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문화유산들을 가뿐하게 밀어버리는 판단에는 우려라는 표현도 아까운 지경이다.


최근 몇년 새 원도심 여행은 국내 여행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서울 북촌과 서촌을 시작으로 인천, 부산, 군산 같은 도시들의 오래된 골목길로 그 세월을 살지 않았던 젊은 여행자들이 찾아간다. 인천의 배다리 헌책방 거리도 그런 골목 여행지 가운데 하나다. 오래된 양조장을 대안적 문화공간으로 활용한 스페이스빔과 아벨서점 등이 주축이 되어 한때 쇠락을 거듭하기만 했던 골목에 문화적 온기를 불어넣으며 찬찬히 ‘동네’가 되살아났다. 요즘은 문화유산까지 쓸어버리며 주차장을 지원할 만큼 중구청이 그렇게나 아끼는 알록달록 송월동 동화마을보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도 주목받고 있다.


애경사의 허탈한 철거 현장을 페이스북으로 중계하며 알린 이는 스페이스빔의 민운기 대표였다. 그에게 애경사의 비극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10년간 인천 지역문화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한 이 유서깊은 건물과 재계약에 실패했기 때문이다.(<한겨레> 4월17일치 ‘10년 공든 탑 스페이스빔 인천 문화버팀목 무너지나’) 한가지 다행은 지역 주민들과 예술인들이 이 공간의 시민자산화를 위해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손쉽게 애경사의 전철을 밟기에는 이제 너무 많은 눈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인천시와 동구청은 알아야 할 것이다.


김은형 문화스포츠 에디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9723.html#csidxe1413e18e20ce808c8c7b6b886e7fd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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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7. 17:01
자동차 회사들은 강한 인상을 풍기기 위해 경쟁적으로 전면부에 커다란 인테이크 그릴을 넣는다. 그러나 BMW는 가로 배치 ‘키드니 그릴’ 때문에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아우디 ‘A8’,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렉서스 ‘LS’, BMW ‘7시리즈’. 각 회사 제공



최근 미국의 싱크탱크인 리싱크X는 “13년 뒤인 2030년에 미국 내 자동차 등록대수가 82% 감소할 것”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공유형 자율주행 전기차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현재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인 소유의 내연기관(엔진) 자동차가 도로 위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예언입니다.


이 보고서는 미국 내 자동차 등록대수가 2020년 2억4700만 대로 정점을 찍은 뒤 2030년 4400만 대로 감소하면서 130년의 역사를 가진 자동차·운송산업과 개인의 내연기관 자동차 소유 문화가 종말을 맞고, 그 과정에서 세계 에너지 경제가 재편된다고 내다봤습니다. 이로 인해 제조-판매-유지·보수-보험-정유회사 등으로 이어지는 자동차 산업 가치사슬이 재난적 수준으로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도 지난달 25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글로벌 자동차 공유 서비스가 2030년까지 현재의 8배(약 320조 원)로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공유 자동차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용이 아무리 낮아진다고 해도 사람의 기본적인 소유욕과 유아시트 같은 개인 사물을 보관해두는 편의성 측면에서 자동차 산업이 입는 타격이 예상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10년 뒤 자동차 산업과 관련 서비스 생태계가 ‘전동화, 자율주행, 공유’라는 3대 변혁의 요인으로 크게 달라질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의 폭풍을 코앞에 두고 있는 현재 상황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두 자동차회사가 있습니다. 현대·기아자동차와 BMW입니다. 기아자동차가 최근에 내놓은 스포츠세단 ‘스팅어’는 깜짝 놀랄 정도로 잘 만들어졌습니다. 운전 재미와 안락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도록 동력 성능과 차체, 서스펜션 세팅이 역대 국산차 중 최고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됐습니다. 또 현대차는 지난달 28일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열린 24시간 내구레이스에 곧 출시될 ‘i30N’ 모델 2대를 출전시켜 완주했습니다. 특히 개발 엔지니어들이 레이서로 참여해 의미를 더했습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의 노력들이 조금 안쓰럽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바로 이런 식의 자동차 만들기는 끝물이기 때문입니다. 기존 자동차 산업의 가치체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데 10년 전 일본이 졸업한 자동차 제조와 마케팅을 이제야 구현했습니다. 

차라리 이런 단계를 건너뛰고 지금은 미래 비전을 보여줄 고출력 전기차나 사람보다 운전을 잘하는 자율주행차를 실험적으로 내놓아야 할 타이밍이 아닐까요. 곧 스마트폰 세상이 열리는데 열심히 성능 좋은 ‘삐삐’를 개발하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현대·기아차의 시가총액은 이미 미국의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에 따라잡혔습니다.


BMW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례로 보입니다. BMW의 상징은 흰색과 파란색이 4등분돼 있는 동그란 엠블럼과 ‘키드니 그릴’로 불리는 자동차 전면의 공기흡입구 두 가지입니다. 특히 키드니 그릴은 멀리서 봐도 BMW임을 각인시키는 효과가 뛰어나서 그동안 회사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키드니 그릴이 이제는 BMW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2004년 아우디의 ‘싱글 프레임’을 시작으로 경쟁사들은 앞다퉈 커다란 인테이크 그릴(사진 참조)을 도입해 강한 인상과 럭셔리함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BMW는 긴 타원형 그릴 2개를 가로로 배치해야 하는 디자인의 한계 때문에 전면부를 납작한 스타일로 만들 수밖에 없었고 상대적으로 경쟁 그룹 내에서 디자인 존재감도 약화됐습니다. 첨단 기술로 무장시켜 야심작으로 내놓은 신형 7시리즈의 판매 부진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특히 전기차 시대로 넘어가면 엔진의 열을 식히는 기능적 역할을 했던 인테이크 그릴의 존재 의미는 퇴색됩니다. BMW 내에서 성공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키드니 그릴을 바꾸자는 주장은 ‘역적모의’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오래전부터 충분히 검토하고 조금씩 변화의 시도를 해왔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과거에 성공했던 경험이나 위기관리 방식이 적용되지 않는 시대입니다. 만일 기존 성과와 경험이 생존을 보장해준다면 세계 1위 기업이 몰락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죠. 그러나 우리는 코닥, 모토로라, 노키아 등이 단숨에 곤두박질치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엔진과 변속기 전문가나 키드니 그릴 신봉자를 옆에 두고선 미래를 준비하기 힘들어 보이는 이유입니다.



이제 지켜야 할 것은 파괴적인 자기 혁신과 유연한 사고를 가진 조직과 인재밖에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석동빈 기자


http://news.donga.com/East/MainNews/3/all/20170601/84664646/1#csidx3a6f6904aab9edeb9df5aa398d4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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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7. 16:58

거리 풍경 바뀌지 않는 서울… TV로 치면 정지 화면 상태 걷고 싶은 도시 만들려면 들어가 구경할 가게 늘려야

서울시는 최근 '서울로 7017'을 조성했고, 향후 광화문 12개 차로를 지하화해서 세종로 전체를 광장으로 만드는 계획안을 발표하는 등 서울을 보행자 중심 도시로 만드는 노력을 진행 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도시를 자동차 중심에서 보행자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변화의 물결은 이미 시작됐다. 하지만 단순히 자동차 도로를 없애면 걷기 좋은 도시가 되는 걸까? 보행 친화적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인도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경험으로 어떤 길은 더 걷고 싶고 어떤 길은 덜 걷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을 안다. 연애 초기에 데이트 코스를 정할 때 홍대 앞, 명동, 신사동 가로수길 같은 곳을 선호하지 테헤란로를 걷자고 하는 사람은 없다. 이유는 가로에 접한 가게 입구의 숫자와 상관이 있다. 100m를 걷는 동안 보행자가 선택 가능한 가게 입구의 숫자는 홍대 34개, 명동 36개, 가로수길은 36개, 강남대로 14개, 테헤란로는 8개이다. 대체로 가게 입구의 숫자가 30개는 넘어야 걷고 싶은 거리가 된다.


가게 입구는 보행자에게 선택권을 준다. TV 채널과 비슷하다. 가게 입구가 많은 거리를 선호하는 것은 채널이 5개였던 시절의 TV보다 채널 100개 이상의 케이블TV를 선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뿐 아니다. 시속 4㎞ 속도로 걸어갈 때 마주치는 다양한 가게 입구는 다채로운 체험을 제공한다. 채널이 100개여도 볼 것이 없지만, 채널이 많으면 그나마 '채널 돌리는' 재미라도 느끼게 해준다. 가게 입구가 많으면 실제로 내가 들어가는 가게는 몇 개 없더라도 걸으면서 변화하는 풍경이 주는 엔터테인먼트가 있다. 계산해보면 명동이나 가로수길은 2.5초당 한 번씩 채널이 바뀌는 TV와 같고, 테헤란로는 11초당 한 번씩 채널이 바뀌는 TV와 같다. 밀도가 높은 가게 입구의 배치는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드는 데 중요한 물리적 조건이 된다.


서울 홍대앞 '걷고 싶은 거리'에서 시민들이 주말을 즐기고 있다. /조선일보 DB

필자는 뉴욕에서 일할 때 20분 정도의 거리는 걸어서 다녔다. 하지만 서울 강남에서 그 정도 거리는 택시를 탄다. 왜 그럴까? 지인 중에 금요일 저녁마다 마포에서 압구정동까지 걸어서 퇴근하는 이가 있다. 그는 3시간 반의 퇴근길 중 가장 걷기 힘든 구간은 '마포대교 위'라고 했다. 마포대교 위를 15분쯤 걸어야 하는데 그동안 장면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TV로 치자면 정지 화면 상태다. 이 이야기로 우리는 걸으면서 풍경이 바뀌는 것은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뉴욕은 블록의 세로 길이가 평균 60m밖에 되지 않는다. 뉴욕에서 남북 방향의 애비뉴를 따라 걸으면 1분마다 동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새로운 스트리트의 풍경을 접한다. 반면 서울 강남은 한 블록의 크기가 800m다. 한 변을 걸을 때 12분쯤 걸린다. 역삼역에서 강남역을 향해 걸어가면서 바라보는 풍경이 12분 동안 큰 변화가 없다. 당연히 지루하다. 반면 강북의 북촌이나 경리단길 같은 곳은 촘촘하고 복잡한 골목길로 되어 있어서 조금만 걸어도 새로운 골목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걷고 싶은 거리는 블록의 크기와 도로에 접한 가게 입구의 수가 결정한다.

위의 연구처럼 상업 시설의 분포는 보행자 중심 도시를 만드는 데 중요하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얼마 안 되는 상업 시설들이 한곳에 집중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반포의 아파트 재개발을 살펴보면 가로(街路)형 상가들이 사라지고 수천 가구 단지의 모든 상업 시설이 코너 역세권의 5층짜리 상가에 집중돼 있다. 보행자 도시를 만들려면 상업 시설이 1·2층에 선형으로 늘어서야 하는데 반대로 고층·집중화되고 있다. 이런 상가가 만들어지고 나면 나머지 거리는 수백m 길이의 아파트 단지 담장만 늘어서게 된다. 편리한 원스톱 상가가 거리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상업 시설이 점차 대형화되고 실내 공간에서 놀이·휴식·쇼핑 등을 모두 해결하려 한다. 그로 인해 우리의 거리와 외부 공간은 황폐화되고 있다. 고층·집중화된 상가와 대형 쇼핑몰을 계속 지어대면서 보행자를 위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우리가 이대로 거리를 자동차에 양보하고, 에어컨은 나오지만 하늘을 볼 수 없는 실내 공간에서만 살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방향을 돌릴지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21/20170621036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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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6. 17:51

지난겨울은 '도깨비'가 있어서 행복했다. '가슴에 검(劍)을 꽂고 900년을 살아온 도깨비의 고통을 거두어 줄 사람은 그의 신부뿐'이라는 지극히 낭만적인 '저주'는 서사 전개에 필요한 장치라기보다는 메타포에 가까웠다. 드라마 '도깨비'는 시적인 대사와 미시 콘텐츠의 활성화를 통해 즐길 거리를 제공했다. 그 매력은 당신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품에 참여한 데 있다. 주인공의 대사를 따라 하거나, 롱코트를 입어보거나, 빨간 목도리를 둘러 본 사람들. 시크한 말투를 흉내 낸 시청자. 모두가 작품과 함께했다.

우리는 거부할 수 없는 '향유의 시대'를 살고 있다. 향유란 문화를 주체적으로 즐기는 활동이다. 주체적으로 즐긴다는 말은 스스로 참여하여 가능한 모든 방법을 찾아가는 체험의 과정을 의미한다. 문화는 향유를 통해 생산자 중심의 교조적 일방성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창조적 활력을 지니게 된다. 국민 누구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콘텐츠를 향유하고 소비하며, 체험의 과정을 통해 창작자로 성장한다. 콘텐츠를 중심으로 역동적인 창업과 창작이 연결되는 것이다.

이렇듯 콘텐츠 관점에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향유다. 이제 우리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가치 있는 체험을 하고 공유하며 확산시킬 힘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다. 게임, 영화, 음악, 애니메이션, 웹툰, 캐릭터 등으로 대표되는 콘텐츠 모두가 보편적 향유 대상이다. 우리는 이 향유 대상들로부터 감성과 감동의 울림을 얻는다. 기술 진보에 따라 향유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지만 결국 사람을 이해하고 감성을 자극하고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문화적 감수성이 중요하다.


지금 온 사회가 4차 산업혁명과 새 정부의 새로운 정책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문제는 경제'라고 하지만 사회의 어젠다가 경제에만 묶여 있으면 불행한 일이다. 경제가 삶의 중요한 토대라면 콘텐츠 향유 역시 그러하다. 콘텐츠 향유가 중요한 것은 그 부가가치만큼이나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 자신을 주인공으로 세우기 때문이다. 스스로 참여해 가치를 발굴하고 즐거움을 창출하는 향유의 시대인 것이다. 문화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콘텐츠는 공허하고, 참여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향유는 불가능하다. 새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그 중요한 답의 하나는 '콘텐츠 향유'에 있다.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16/20170516034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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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8. 00:32

(한글을 깨친 미취학 자녀가 있는 분은 이 글을 읽는 즉시 가위로 오려내 폐기 처분하시길 권합니다.)

산타의 정체를 알게 된 건 대여섯 살 때쯤이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퇴근한 아빠가 마루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당황하며 무언가를 허겁지겁 장독대에 숨겼다. 지금도 그 장면이 생생한 걸 보면 충격이 상당했던 모양이다. 아, 어쩐지 이상했어. 산타는 아빠였구나…. 물론 지혜로운 어린이답게 아빠에겐 모른 척했다.

지난주 인터넷에서 귀여운 가정통신문을 발견하고 이 기억을 떠올렸다. 한 유치원에서 학부모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Santa 訪問에 관한 안내문’이란 제목이 적혀 있고 다음과 같은 설명이 이어진다. “이 안내문을 英語와 漢字를 섞어서 쓰고 봉해 보내는 이유는 우리 어린이들이 Santa에 대한 神秘感을 지니게 하여 동심의 즐거운 追憶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영어·한자·산타·신비감·추억 등의 단어를 일부러 영어와 한자로 적어 아이들이 혹시 이 안내문을 발견해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배려다. 내용인즉슨, 아이들이 산타 앞으로 쓴 카드를 부모님들께 보내 드리니 카드에 적힌 아이의 희망 선물을 체크해 미리 준비하시라는 거다.

뭐 이렇게까지 하면서 산타의 존재를 믿게 해야 하나, 쿨한 마인드의 부모님이 있을까 봐 덧붙인다. 미국의 뇌과학자 켈리 램버트 박사는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산타의 존재는 아이에게 마음의 예방접종과 같다”며 산타의 선물이라는 픽션을 가능한 한 오래도록 아이의 마음속에 남겨 두라고 조언했다. 사람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허구와 사실을 구분하게 되지만 뇌 속에는 시간여행(mental time travel)을 위한 시스템이 내장돼 있어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행복했던 과거의 감정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되새김할 수 있는 좋은 기억은 많을수록 좋다. 

램버트 박사의 경험을 참고하자. 3세, 7세의 두 딸이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시점 다락에 숨겨 놓은 선물을 발견했다. 엄마는 아이의 믿음을 지키려 필사적으로 둘러댄다. “산타가 등이 아파서 크리스마스이브에 배달할 선물을 미리 소포로 부쳐 줬어. 크리스마스 전에 열어 보면 도로 가져간다고 계약서에 서명도 했단다.” 그러니 올해 크리스마스도 산타 지키기에 전력을 다할 일이다. 조금 더 크면 만나게 될 험한 세상을 견딜 힘을 비축해 주는 것. 그것이 웃을 일 별로 없는 세밑을 사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인 것 같아서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6772204&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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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6. 17:12

평일 오전 9시가 가까워져 오면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 역 1번 출구 근처에는 수백명의 청춘이 줄을 선다. 배화여대와 연세대의 1교시 수업에 늦지 않으려는 학생들이 학교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다. 각각 정연했던 두 줄이 요즘 위태롭다. 서촌(西村) 등을 찾는 중국인 관광버스가 하나둘 밀려 내려와 정류장을 침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발 늦은 학교 셔틀버스가 클랙슨을 누르지만 결국 중앙선 쪽으로 차선을 옮겨 멈추고, 한국 대학생들은 위태롭게 차선을 가로지른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 마트가 서울역사에 있다. 주말에 중국 관광객으로 인한 쇼핑 체증을 경험한 뒤 평일, 그것도 자정 가까운 심야에 들렀다. 그런데도 중국 마트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계산대에서는 중국인 쇼핑객이 쪽지를 내밀며 중국말로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나중에 캐셔에게 물어보니 유효 기간 지난 할인 쿠폰이었다. 포장대는 한술 더 떴다. 한참을 기다려 종이 박스를 집으려는 순간에 중국인이 뒤에서 밀치고 들어왔다. 항의는 통하지 않았다.

관광공사 추산으로 올해 한국을 찾을 요우커(중국인 관광객)는 589만명이다. 작년보다 157만명 늘었다. 중국 국경절 연휴인 지난 일주일(1~7일) 동안만 16만명이 찾았다.

나라 살림과 내수(內需) 진작에 보탬이 된다는 이유 때문에 몇몇 사소한 불편은 참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최근 주변에서 경험하고 목격한 풍경은 이 문제를 좀 더 입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이는 단지 시끄럽고 뱃살을 드러낸 채 공공장소를 활보하며 새치기에 익숙한 중국 관광객을 인내해야 한다는 평면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산업적 차원과 문화적 차원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도전인 것이다.

서울 홍대 주변의 한 원룸텔은 최근 부티크 호텔로 변신했다. 몰려드는 중국 관광객 덕분에 그쪽이 훨씬 더 이문이 많이 남기 때문이다. 건물주는 행복하겠지만 그 원룸텔에서 미래를 꿈꾸던 한국의 가난한 젊은이들은 당연히 방을 비워줘야 했다. 이화여대 주변의 한 의류상가 점장(店長)은 중국 관광객이 반갑지만은 않다고 했다. 월세를 대폭 올리겠다는 건물주의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빈부 격차와 삶의 질 변수에 이제는 중국 관광객까지 가세한 것이다.

'아파트 게임'의 저자인 박해천 동양대 교수는 좀 더 과감한 가설을 내놓은 적이 있다. 서울의 주요 상권(商圈)들이 호주머니가 얇아진 기존 소비자를 밀어내고 중국 관광객들로 그 빈자리를 채우려 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을 한 번 더 확장하면 서울의 문화적 지형과 특성을 변화시키는 주체 역시 중국 관광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 관광객들의 입맛에 맞춘 맛집과 카페, 쇼핑몰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풍성해진다면 다행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목격하는 모습은 획일화와 평준화에 가깝다. 요우커를 위한 관광 인프라 확대 못지않게 그 이면도 적극적으로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어수웅 문화부 차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0/07/20141007046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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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6. 16:45

오세훈 시장의 노들섬 계획, 전면 재검토 이후 시간만 끌어온 ‘상상력 빈곤’ 
파리는 문화 인프라 확충해 세계 제1의 도시로 등극 
이념과 ‘책임 미루기’로는 서울 위상 못 올릴 것



박원순 서울시장은 요즘 차기 대권주자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에 올라 있다. 박 시장 본인은 “지지율은 공중에 나는 새털 같은 것”이라며 “시장 직무에 충실하겠다”고 말하지만 그의 행보를 보면 ‘서울시장 이후’를 겨냥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야권도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국가 지도자로서 그의 자질과 역량에 대해서는 회의가 생길 때가 많다. 서울 한강대교 중간에 사실상 버려진 땅인 노들섬 문제만 해도 그렇다.

노들섬 개발은 오세훈 전임 서울시장의 정책이었다. 그는 노들섬에 복합 문화시설을 세우기로 하고 오페라하우스 등의 건축 설계까지 마쳤다. 하지만 2011년 10월 박 시장 취임 이후 계획은 중단됐다. 오 전 시장은 얼마 전 “밤잠 안 자며 추진해온 자식 같은 정책들이 줄줄이 제동이 걸리는 것을 보고 생병을 앓았다”고 토로했다. 노들섬 계획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잘못된 정책은 늦었더라도 바로잡고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전임자의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부정한다면 지도자로서 자격 미달이다. ‘승계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가리는 안목과 처리 방식에서 지도자의 능력과 포용력, 리더십이 오롯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노들섬은 서울시 지도에서 한복판에 위치한다. 노들은 ‘백로가 노닐던 징검돌’이라는 정겨운 의미를 갖고 있다. 옛 선비들은 한강에서 노을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이곳을 꼽았다. 세계 10대 도시로 선정된 바 있는 서울시가 도약을 꿈꾼다면 활용 여하에 따라 서울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의미 있는 곳이다. 노들섬은 ‘노들나루’, 한문 이름으로는 노량진이 있던 곳으로 서울 남쪽으로 통하는 길목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은 노량진에 대해 많은 기록을 남겼다. 정조실록에는 ‘강의 흐름이 평온하고 강폭도 뚝섬과 서빙고의 3분의 1이어서 나룻길 중 으뜸’이라고 적었다. 영조실록에는 ‘임금이 노량진에서 군사들을 사열했다’고 기록했다. 노들섬은 서울을 대표하는 교통과 군사 요충지였다. 수많은 사연이 깃들어 있는 이곳을 방치하지 말고 문화적 용도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는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현재 노들섬은 박 시장의 지시에 따라 ‘텃밭’으로 쓰이고 있다. 한동안 전문가 포럼을 만들어 활용 방안을 논의한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요즘은 시민 아이디어를 공모 중이라고 한다. ‘회의 중’이라는 간판을 3년 가까이 걸어놓았으나 진전된 것은 없다. 최종 결정권자인 시장이 판단을 미루고 ‘전문가 포럼’이나 ‘시민’을 내세워 마냥 시간을 끄는 것이 ‘박원순 식 행정’으로 굳어진다면 심각한 일이다.

최근 서울시 내부에서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 대신 작은 공연장을 만드는 방안이 제시됐다. 특정 계층을 위한 시설은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대로 해석하면 전임 시장이 추진한 문화시설은 부유계층을 위한 것이어서 백지화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대안으로 고작 생각해낸 것이 ‘텃밭’이고 ‘작은 공연장’이라면 박 시장에겐 나라는 물론이고 서울시를 이끌 리더십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프랑스의 첫 좌파 대통령인 프랑수아 미테랑은 1981년 취임 직후 파리 시내에 ‘그랑 프로제(큰 계획)’라는 문화시설 확충 계획을 세웠다. 오늘날 관광 명소가 된 오르세 미술관,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 등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미테랑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반발했다. 사치스러운 극장이나 박물관 대신에 서민주택이나 빨리 지으라고 요구했다. 미테랑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헬리콥터를 동원해 유유히 파리 상공에 올라가 어느 곳에 문화시설을 세워야 할지 골몰했다.


지난해 파리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550만 명이다. 작년 한국 전체의 외국인 관광객 1217만 명보다도 훨씬 많다. 관광객들은 문화와 역사를 보기 위해 파리로 향한다. 파리가 세계 1위의 인기 도시가 된 것은 미테랑의 혜안과 결단력도 큰 힘이 됐다.


최근 중국의 ‘빅뱅’과 더불어 서울이 문화와 관광의 중심지로 위상을 확고히 하는 일이 향후 우리의 활로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박 시장이 보여준 상상력과 추진력으로는 서울의 획기적 변신을 기대하기 힘들다. 지도자가 지닌 ‘그릇의 크기’로 미테랑과 박 시장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 모른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41002/668863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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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3. 01:18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요즘 푹 빠져있는 애니메이션 중 ‘요카이(요괴)워치’라는 것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이 요괴를 현실의 세계로 불러낼 수 있는 손목시계(요카이워치)를 손에 넣은 것을 계기로 이런저런 요괴들과의 만남을 통해 성장해간다는 줄거리로, 우스꽝스러운 요괴 캐릭터들과 초등학생 일상을 반영한 내용으로 어린이의 마음을 끌고 있다.


요카이워치는 지난 해 7월 게임회사 닌텐도가 3DS 게임용 소프트로 선보인 것이 최초이다. 게임 인기에 힘입어 테레비도쿄는 올해 초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방송을 내보냈는데, 방송 2회만에 이 방송국의 간판 애니메이션인 포켓몬스터의 시청률을 뛰어넘으며 요카이워치 신드롬을 이끌어냈다.


최근 여름방학을 맞아 아들과 극장판 포켓몬스터를 보기 위해 찾은 영화관에서 겨울방학에 방영될 요카이워치 예고편을 보여줬는데, 영화관에 온 모든 어린이들이 요카이워치의 주제가를 합창하는 것을 보면서 인기를 실감하기도 했다. 지난 달 발매된 닌텐도 3DS 게임용 소프트 두번째 시리즈는 발매 사흘만에 매진, 재판에 들어가는 기염을 토했다.


요카이워치는 게임, 애니메이션에 국한되지 않고 장난감, 문구 시장에도 수많은 파생상품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나오는 상품마다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언론도 요카이워치 신드롬을 다루는 특집기사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교도통신은 2일 가와사키시의 가전양판점 비쿠카메라에 장난감 제조업체 반다이가 출시한 요카이워치를 본 뜬 손목시계를 구입하기 위해 1,200여명이 줄을 섰다고 소개했다. 한화로 3만5,000원을 호가하는 고가 제품이지만 올 1월 발매된 첫번째 시리즈 제품이 이미 품절된 상태여서 이번에도 금세 매진될 것으로 업체에서는 기대하고 있다.


시중의 게임기에서 요괴를 불러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메달은 현재 300종류에 3,000만여개가 생산됐다. 판매와 동시에 매진이 이어지는 탓에 특히 구입하기 어려운 메달은 인터넷에서 원래 가격의 10배에 거래되기도 한다.


요카이워치 신드롬이 주목받는 것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게임소프트를 만든 레벨 파이브는 어린이들의 고민거리를 철저히 조사, 스토리와 캐릭터를 끄집어 냈다. 게임, TV, 상품 등을 연관시켜 구매 의욕을 자극하는 크로스미디어는 물론,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판매,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이른바 원소스멀티유즈를 십분 활용했다. 게임소프트(레벨파이브), 장난감(반다이), 광고(덴쓰) 등 관련 회사 관계자들은 2주에 한번씩 모여 판매전략에 대한 회의를 가진다고 한다.


어린이 소비자의 호기심을 최대한 자극하는 극단적인 마케팅기법도 도입했다. 반다이는 연말까지 메달 1억개를 생산할 예정이지만, 수요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반다이측은 추가생산도 가능하지만 어린이 소비자의 구매심리를 더욱 자극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생산량 조절에 나서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도 세우고 있다.


욘사마 열풍으로 시작된 일본내 한류가 올해 진출 10주년을 맞아 휘청대고 있다. 한국의 드라마와 가수가 일본 지상파 TV화면에서 많이 사라졌고, 도쿄의 한인타운이 밀집한 신오쿠보의 상권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고 있다.


한류를 담당하는 업체들은 한일 양국관계가 급속히 나빠지면서 일본에서 한류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줄어들고 있고, 매스컴에 노출이 적게 되면서 한류관련 상품의 판매부진으로 이어졌다는 논리를 펼친다.


얼핏 이해가 가는 대목도 있지만 전적으로 수긍하기는 어렵다. 한류는 운에 기댄 측면이 많지만, 사후관리에 소홀히 한 것이 쇠락의 길을 걷게 된 탓이 크기 때문이다. 한류를 팔기 위해 우리 업체는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앞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 지를 일본 업체들이 요카이워치 신드롬을 만들어내는 노하우에서 한 수 배우는 것은 어떨까.


한창만 도쿄 특파원


http://www.hankookilbo.com/v/6c8bb8eca57347df9e43ada9bf70af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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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3. 00:58

최근 국제대회에서 멋진 플레이를 보이는 한국 여성 프로골퍼들, 국제 정치무대에서 눈부시게 활동하는 유엔의 반기문 사무총장, 그리고 세계은행의 김용 총재 등으로 인해 한국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의 약진(躍進)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나처럼 한국에 오래 거주해 온 사람으로선 이렇게 좋은 교육과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 중에 아직도 여기저기 빈자리가 남아 있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중국학을 연구하는 나로선 한국, 특히 서울에 살며 혜택이 많다. 거의 모든 분야(역사·문학·경제·인류학 등)의 전문가들을 서울에서 수시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여러분이 서울에서 중국·일본 또는 한국의 시문학(詩文學) 세미나를 열고자 한다면 각 분야에 상당히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전문가 30~40명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한데 모을 수도 있다. 도쿄·베이징·상하이 또는 보스턴에서는 그런 분야의 전문가들을 한꺼번에 모으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오직 한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중국학 연구에 있어서 리더가 될 수 있는 조건들을 충족시키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되고 있는 것은 중국학 연구와 뚜렷이 구별되는 한국식 이론이다. 한국의 학자들은 중국학에 대한 많은 전문 지식을 갖췄음에도 중국학 분야를 연구하는 세계의 다른 학자들에게 본보기나 영감이 될 수 있는 일련의 한국식 원칙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중국학의 경우 세계 각국은 독자적 학풍이 있다. 일본에서는 서지학(書誌學) 위주의 치밀한 해석 전통이 있고, 프랑스의 경우는 19세기 에두아르 샤반(<00C9>douard Chavannes)에서 시작된 현지 조사와 텍스트 분석을 결합한 복합적 연구 방법론이 뚜렷한 학풍을 형성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유럽식 중국학의 강점과 새로운 미국식 실용주의를 결합한 하버드대의 존 페어뱅크(John Fairbanks)류의 학문적 전통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의 중국학 연구자들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유학생들이 몰릴 만큼 매력적인 독자적 접근법을 구축하고 있는가.

이것은 비단 중국학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서울은 이제 예술가·화랑·예술비평가들이 활발하게 창의적 활동을 하고 있는 역동적 예술의 중심지다. 그런 에너지와 재능을 갖춘 서울에 세계의 예술가와 비평가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사조(思潮), 즉 ‘Seoul School(서울파)’이 없다는 것은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서울에는 파리·베를린·바르셀로나·도쿄와 같은 국제 도시들처럼 예술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는 예술인들의 모임도 보기 힘들고, 예술계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거대한 움직임으로 결속시키는 비평가들의 학파나 담론도 형성되어 있지 않다.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워낙 급속도로 부상했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새로 형성된 국가의 위상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적 접근법 내지 한국적 방법론을 찾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더 뿌리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제품을 생산해 내는 경제 대국이다. 그럼에도 세계적 수준의 이론적·개념적 담론 형성에 확신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배경에는 분단국가라는 사실도 놓여 있다.

한국인들의 대화나 일상생활에서는 북한의 존재감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평행선을 그으며 한국 문화에 통합되지 못하고 있는 또 하나의 한국이 주는 압박은 대단하다.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에 엄청난 누수 현상을 초래하고 있으며, 결국 한국 스스로 자신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형성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남북한의 분단을 지리적으로만 보는 것은 매우 피상적인 접근이라 할 수 있다.

통일된 한국의 가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단순히 계산기로 두들겨보는 통일 비용만으로는 평가할 수가 없다. 한반도의 지리적 분단은 전반적인 한국 문화를 관통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은 세계적인 석학을 배출하고 있으면서도 분단·통일에 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는 불확실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제 한국도 경제적인 측면의 통일 비용만 계산하기보다 돈으로 도저히 환산해 낼 수 없는 문화적·정서적 문제에 대한 고려도 해야 될 시기가 되었다.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이만열)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3796509&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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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4. 01:00

대구는 실속 없는 도시다. 대구시는 스스로 문화예술도시, 섬유도시, 육상도시, 첨단의료도시 등으로 부르지만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늘 건물만 그럴싸하게 짓고, 이렇게 이름을 붙인다. 남이 인정해주지 않으니 미소친절도시, 컬러풀대구 등과 같은 추상적인 단어도 등장했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문구들 뒤에 숨겨진 대구의 본모습은 1인당 지역총생산(GRDP) 전국 꼴찌, 전국 평균을 밑도는 1인당 개인소득과 민간소비, 전국 최고 수준의 청년실업률이다.


그런 대구시가 또다시 문화예술도시를 내세우며 두류공원 안에 세금 297억원을 들여 미술관을 짓겠다고 한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 미술관’이다. 2011년 대구미술관(662억원)과 문화창조발전소(160억원)를 짓고도 미술관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대구시는 미술관을 유치하기 위해 2009년부터 이우환 작가에게 ‘삼고초려’를 해왔다. 대구시 간부 공무원이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이우환 작가를 만났다. 2009년 9월 김범일 전 대구시장은 이우환 작가에게 편지를 썼다. ‘대구에 선생님의 미술관이 건립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면 우리 대구는 더 이상 영광이 없겠습니다.’ 마치 이우환 작가가 사비를 털어 대구에 미술관을 지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구시는 지난해 2월 이 작가와 미술관 유치 약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작품을 얼마에 어떤 방식으로 구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들어있지 않았다. 4년 가까이 이우환 작가와 접촉했지만, 그 ‘이우환의 친구들’이 정확히 누군지도 아직 모른다. 미술관은 곧 설계를 마치고 내년 초 공사가 시작된다.


대구시의 이런 행정을 두고 비판이 쏟아졌다. 대구시가 유명 작가 이름을 빌려 미술관을 짓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급기야 지난 17일 이우환 작가가 대구를 찾아 진화에 나섰다. 그런데 그는 이 자리에서 “참여 작가는 나를 포함해 11~12명, 한점에 500만~600만달러(50억~60억원)를 호가하는 작가가 몇 명 있다”며 “세계적으로 잘나가는 작가들이라 기증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15개 전시실 규모를 얼추 계산해보면, 작품 구입비로 최소 300억원, 많게는 1000억이 든다는 이야기였다.


이우환 작가를 포함한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특별가격으로 구입하거나 기증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작품 구입비를 100억원으로 잡아놨던 대구시가 받았을 충격은 짐작이 간다. 이후 대구시는 작품 구입비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미술관 건립과 관련한 방송 토론회에 참석해 달라는 요청도 거절했다. 소통이 없다. 대구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대구시가 2011년 4월에 만든 ‘대구의 문화위상 정립을 위한 이우환과 그 친구들 미술관 조성 기본계획’을 보면, 건립 목적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문화예술도시로의 발전을 위한 핵심 문화 인프라 조성’과 ‘지역을 대표하고 세계적 문화예술의 흐름을 선도하는 랜드마크 보유’라고 돼 있다. 그런데 이런 설명에 동의할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유명 작가 이름으로 미술관 하나 짓는다고 대구 문화예술계의 토대가 마련될 것 같지는 않다. 정작 대구시는 지금까지 지역에서 어떤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는지 체계적인 조사 한번 한 적이 없다. 지역 예술가들과 시민들을 어떻게 문화예술로 연결해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별로 없었다. 토목으로 문화예술도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김일우 사회2부 기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565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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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4. 00:12

일본의 본토 북단인 아오모리(靑森)현의 겨울은 매섭다. 적설량은 전국 1위. 특히 동해와 접한 쓰가루(津輕)해협 주변의 겨울 칼바람은 눈이 하늘에서 내리는 게 아니라 땅 밑에서 솟아오르게 한다. 강한 눈보라에 시야는 기껏해야 1m. 현지 주민들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런데 20여 년 전 쓰가루의 청년들이 역발상을 했다. 이름하여 ‘눈보라 체험투어’. 먼저 인근 고쇼가와라(五所川原)시에서 운치 있는 석탄난로 열차편으로 관광객을 쓰가루 가나기(金木) 마을로 안내한다. 여기서 관광객들은 쓰가루 특유의 방한복인 몸뻬(작업용 바지), 가쿠마키(담요로 만든 어깨걸이), 간지키(눈 위를 걷기 위한 신발)를 착용한다. 준비가 완료되면 눈보라 입장! 이 ‘사서 하는 고생’에 하와이·대만 등 눈 구경 해 본 적 없는 외국 관광객들은 열광한다. 지금까지 투어에 참가한 외국인만 1만 명 이상. 별것 아닌 눈보라도 생각을 바꾸니 세계적 관광상품이 된 것이다.

오사카의 놀이시설 ‘유니버설스튜디오재팬(USJ)’. 2001년 개업 초기 연간 1100만 명이 몰려왔지만 점차 고객이 격감했다. 새로운 히트 놀이기구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USJ를 구한 건 외부 영입된 마케팅 전문가 모리오카 다케시의 역발상. “왜 롤러코스터는 앞으로만 가야 하느냐.” 그의 역주행 코스터 도입 주장에 기술자들은 “전례가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결국 그의 아이디어로 ‘할리우드 드림 더 라이드~백 드롭’이란 역주행 코스터가 탄생했다. 방향 하나 바꾼 역발상에 고객은 환호하고 USJ는 부활했다. 지난해 3월 21일 이 놀이기구는 ‘줄 서는 시간 9시간40분’이란 신기록까지 세웠다.

이렇듯 감탄스러운 일본의 역발상을 나열한 건 다름 아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역발상을 기대하는 마음에서다.

말로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면서 ‘검증’이란 이름으로 흠집 내기에 나서고, 유엔의 인권 수장이 전례 없이 강한 톤으로 질타해도 “우린 최대한 노력해 왔다”며 꿈쩍 않는 아베 정권. 우익 꼴통 신문·주간지가 행동대장이 돼 “위안부는 아사히신문에 의해 날조된 것”이라고 기세를 올려주니 아베로선 두려울 게 없다. 국내만 보면 그렇다.

하지만 아베가 진짜로 영리한 정치인이라면 보다 통 큰 역발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가령 다음 달 유엔총회장에서 “침략전쟁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할 것 하고,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겠다”고 선언한다면…. “기존 입장, 본인의 신념과 차이가 나긴 하지만 인류 평화, 동아시아 화해를 위해 내가 통 크게 물러서겠다”고 한다면….

그리도 존경하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도 엄두 내지 못했던 노벨 평화상을 못 타란 법도 없다. 어려운 역발상도 아니다. 눈높이를 ‘밖의 세상’에 맞추기만 하면 된다. 음, 아무래도 일장하몽(一場夏夢)일까.


김현기 도쿄 총국장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5486905&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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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3. 16:39

요즘 일본 오사카(大阪)에 있는 테마파크 유니버설스튜디오에는 일본인뿐 아니라 한국, 중국에서 온 해외 관광객들로 붐빈다. 주변 호텔은 투숙객이 전년 대비 4배 증가했다.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 학교를 재현한 '해리포터관'을 지난달 연 덕분이다. 외국인이 적어도 100만명 이상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4500억원을 투자한 해리포터관이 앞으로 10년간 오사카 등 인근 지역에 경제 효과 3조엔(약 30조원)을 창출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유니버설스튜디오 덕분에 오사카는 일본을 대표하는 관광 도시로 급부상했지만, 테마파크 유치와 운영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오사카시는 1990년대 공장 해외 이전이 잇따르면서 유휴 토지를 활용하는 방안으로 테마파크 유치를 추진했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오사카를 관광 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지역 간 유치 경쟁이 붙으면서 오사카시는 시유지와 민간 용지를 저렴하게 장기 임대해주고 25% 지분 출자 등 파격적 지원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2001년 개장 이후 매년 관람객이 줄었고, 2004년부터 경영난으로 사실상 부도 상태에 빠졌다. 자금난으로 새로운 시설 투자가 어려워 관람객이 더 감소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테마파크에 대한 기대가 높았던 만큼 실망도 컸다. 비난이 쏟아지고 유치 책임론도 나왔다. 당시 나가사키(長崎)의 하우스텐보스 등 테마파크가 잇따라 부도를 내자, 저출산으로 어린이가 감소하는 일본에서 테마파크는 '몰락 산업'이라는 비관론도 나왔다.

유니버설스튜디오의 부활 비결은 경영진 교체였다. 오사카시는 자본 투자를 했다는 이유로 사장 등 주요 경영진을 오사카 시청 퇴직 관료들로 채웠다. 경영 위기 타개를 위해 미국인 사장을 영입하고 골드만삭스가 사실상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테마파크다운 경영이 시작됐다. 미국인 사장은 최근 한 잡지 인터뷰에서 "취임 당시에는 정말 회사가 도산하는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요즘 일본에서는 디즈니랜드, 하우스텐보스 등에서도 관람객이 급증하고 버블기를 방불케 하는 신규 시설 투자 경쟁이 불붙고 있다. 몰락론을 극복한 것은 새로운 고객 서비스를 통해 고객을 중장년층과 외국인으로 확대한 결과다. 디즈니랜드는 1983년 어린이 입장객 비율이 30%를 넘었지만, 최근 17%까지 떨어졌다. 반면 40대 이상 비율은 10% 안팎에서 19.9%까지 치솟았다.

일본의 테마파크 붐과는 달리 한국은 유치론만 무성할 뿐이다. 한국도 10여년 전부터 자치단체, 기업들이 치열한 테마파크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디즈니랜드, 유니버설스튜디오, 파라마운트 등 유명 테마파크가 당장 착공할 것이라는 식의 발표도 있었다. 해외 유명 테마파크는 브랜드 사용료를 받고 운영 노하우를 전수하지만, 투자비 상당 부분을 현지에서 조달한다. 한국은 높은 토지 비용 탓에 자금 조달 단계에서 대부분 좌초했다.

그러나 설령 완공한다고 해도 테마파크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다. 일본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경영 노하우와 뼈를 깎는 혁신 노력이 없으면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다른 산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끝나자 '장밋빛 테마파크 대망론'이 무성해지고 있다.



차학봉 도쿄특파원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17/20140817022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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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3. 16:22

지난 3월 문을 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간송미술관 소장품을 전시한다고 했을 때 많은 이가 "이건 아닌데"라고들 했다. 세계적 건축가가 설계한 초현대식 건물과 간송 고서화·골동품의 거리가 너무 멀어 보였다. DDP는 "창의적 인재들의 디자인에 관한 생각과 표현을 세계에 발신하겠다"는 목표를 걸고 4800억원이나 들여 지었다.

이달 초 DDP에 새로 걸린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美人圖)'를 보고 "그나마 간송이라도 있길래…"라는 생각을 했다. 동대문 일대는 37개 대형 패션 상가가 있는 우리 패션·디자인 산업의 1번지다. DDP 간송 전시장을 찾아가는 길엔 상점마다 손님을 유혹하는 문구가 가득했다. "당신은 예뻐요. 헤어만 바꾸면" "선명한 컬러, 반짝임, 단 한 방울로 기적의 피부 관리"…. 그 한가운데 혜원의 '미인'이 걸려있었다.

여인은 가벼운 여름 단장이다. 실타래 같은 머리를 탐스럽게 말아 올리고 나긋나긋 두 손으로 앞가슴 삼작노리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몸에 착 달라붙는 흰 저고리 밑으로 쪽빛 열두 폭 모시 치마가 시원스럽다. 겨드랑이에서 흘러내린 두 가닥 주홍색 허리띠와 자줏빛 옷고름엔 200년 전 패션 리더의 자신감이 넘친다. 뜯어보면 하나하나가 패션의 코드이다.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 작품이 뉴욕에 전시됐을 때 그 고장 여인들이 '금년 뉴욕의 헤어스타일은 바로 이것이 될지 몰라요' 해서 같이 웃었다"고 쓴 적이 있다.

패션·디자인 산업과 예술의 공생(共生)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런던 디자인박물관은 작년 일본 화가 야요이 구사마의 '점(點) 그림'을 가방과 옷·장신구에 접목한 루이비통 여름 컬렉션을 '올해의 디자인'으로 뽑았다. 세계에 널리 퍼져 우리에게도 익숙한 윌리엄 모리스의 과일 무늬 벽지는 서양 중세 태피스트리에 나오는 꽃과 열매를 되살려낸 것이다. '산업 디자인의 천재'로 불리는 필립 스탁의 짐승 뿔 모양 조명 기구는 바이킹족의 뿔 달린 투구에서 힌트를 얻었다.

디자인 메카로서 DDP의 성패(成敗)는 '미인도'같이 이 시대 패션·디자인 산업에 영감을 줄 수 있는 것을 얼마나 많이 보여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문제는 "그나마 간송이라도 있길래…"라는 생각이 들 만큼 DDP의 디자인 관련 기획 전시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DDP는 며칠 전 개관 100일을 맞았다. 그동안 찾은 발길이 250만명이다. 하루 평균 1만5000명으로 잡았던 목표를 훨씬 뛰어넘는 대성공이다. 그러나 DDP가 애초 약속대로 온갖 창조적 아이디어의 발신 기지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에 대해선 의문이 많다. DDP 전시 중 더 크게 눈에 띄는 것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세트·사진전, '트랜스포머' 30주년 기념전, 판타지 영화 특수 효과 관련 자료전 같은 것이다.

문 연 지 얼마 안 된 영국 테이트 모던 갤러리가 해마다 400만명을 불러 모으며 런던의 관광산업을 이끄는 것은 관광객을 겨냥한 오락적 전시를 많이 해서가 아니다. 거꾸로 순수·고품격 전시로 미술관의 본령에 충실해 사람들로 하여금 가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DDP가 창조의 서식지가 될 것인가, 테마파크가 될 것인가는 앞으로 DDP가 보여줄 전시의 질(質)에 달렸다.


김태익 논설위원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7/14/20140714038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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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3. 15:59

유네스코 자연과학분야 ‘3관왕’(세계자연유산·세계지질공원·생물권보전지역)과 ‘세계7대자연경관’이라는 글로벌 브랜드를 품은 제주. 제주는 이제 세계인이 사랑하는 아시아의 보물섬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제주는 우리 국민을 비롯해 세계인에게 관광의 ‘러브마크’로 매력을 발하고 있다.

1000만 메가투어리즘 시대 개막


최근 제주관광은 다양한 이슈와 함께 한다. 중국인 관광객 주도와 함께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 외래 관광객이 줄을 잇고, 서구 중심의 크루즈 시장도 아시아로 무게중심이 이동 중이다. 힐링과 웰빙, 체험, 개성을 중시하는 관광 트렌드의 변화는 대세며, 소셜네트워크(SNS) 중심의 온라인․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채널의 확산 등 정보통신기술(ICT)의 고도화는 관광산업의 급속성장을 떠받치고 있다. 여기에다 마이스(MICE), 의료관광을 비롯한 관광산업의 융·복합도 진행형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 제주관광은 올 들어 봄 관광 시즌에 이어 여름 휴가철까지 사상 최초로 월(月) 단위 관광객 100만명을 네 번이나 돌파하는 등 월 100만명 시대를 열었다.

또한 이러한 성장가도 속에서 제주관광은 올해 70여년의 역사 이래, 내·외국인 관광객이 1000만명에 이르는 ‘메가투어리즘 시대’를 맞이할 전망이다.
지난 2005년 제주를 찾은 관광객이 500만명을 넘어선 이후, 2010년에 700만명을 돌파함으로써 세계 유명 관광지 발리나 하와이와 같은 글로벌 관광지와 어깨를 나란히 한 이후, 몇 년 사이 제주관광의 외연은 우리의 전망 이상으로 확대됐다.

외연의 확대와 성장통

제주관광 외연 확대 속에서 그 성장통으로 과제도 대두되고 있다. 중국 저가단체여행에 대한 개선이 화두로 급부상했다. 노투어피에 따른 저가 상품, 무등록 여행사 및 가이드 문제, 관광시장 교란, 중국관광객 소비의 역외유출 등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통에 대한 생산적 해법을 행정과 업계, 학계가 슬기롭게 찾아냄으로써 시대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 또한 글로벌 관광도시 도약을 위한 생산적인 여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이 한국의 관광진흥법에 해당하는 '여유법(旅遊法)'을 제정, 오는 10월부터 시행함으로써, 자국의 해외관광객 보호대책을 추진하고 한·중 부정기 항공편의 제한 등이 이뤄지면서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국내 인바운드 시장이 크게 변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새로운 꿈, 새로운 도전

제주관광 1000만 메가투어리즘 시대는 새로운 제주관광 생태계의 진화를 요구한다. 제주는 새로운 꿈과 도전으로 총성없는 글로벌 관광시장 경쟁에 나서야 한다. 그 새로운 도전 전략의 핵심은 융·복합을 통한 창조관광 마인드 기반 위에서 고부가가치 고품격 관광과 지역밀착형 관광이 동반성장의 꽃을 피우는 것으로 귀결된다.

우선, 창조관광은 개인적 측면과 산업적 측면에서 의미 부여할 수 있다. 개인적 측면에서 창조관광은 자신만의 만족을 향유할 수 있는 관광, 나만의 독특한 관광, 나만의 개성이 묻어하는 관광상품을 갈구하는 관광이다. 산업적 측면에서는 융합적 사고와 창조적 혁신가치 아래에서 기술과 지식이 집약된 고부가가치 상품을 창출하는 관광을 의미한다. 관광을 중심으로 1차, 2차 산업간 융·복합으로 6차 산업을 잉태·육성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제주관광공사는 이러한 대내외적 환경 변화 속에서 제주관광 진흥공기업으로서의 경영이념을 다하기 위해 융·복합을 통한 지역밀착형 창조관광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제주의 거문오름과 염색, 슬로푸드를 융·복합한 페스티벌, 세계지질공원 핵심마을을 연계한 ‘지질-농업-관광’이 함께하는 지역밀착형 상품, 제주말(馬)을 기반으로 한 승마상품, 제주의 바람과 오름을 활용한 패러글라이딩 상품 등 기존의 묘미를 배가시키는 융·복합 상품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다. 또한, 천혜의 자연과 사시사철 새로운 색을 갈아입는 제주의 경관을 기반으로, ‘바링허우’(80년대 이후 출생자), ‘주링허우’(’90년대 이후 출생자) 세대가 주도함으로써, 연간 산업규모가 약 6,000억 위안(한화 100조원)에 이른다는 중국의 웨딩관광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제주관광공사는 또한 관광을 중심으로 한 융·복합 산업생태계에 기여하기 위해 융·복합사업단 및 부설연구소 개소 등으로 창립 5주년이라는 짧은 연륜에도 불구, 제주형 융복합 창조관광의 기반을 다졌다.

변화무쌍한 세계관광시장의 흐름 속에서 제주관광의 질적 성장과 함께 관광산업 생태계의 균형 있는 진화라는, 포스트(Post) 제주관광 1000만 메가투어리즘 시대는 이제 시작됐다. 그리고, 그 새로운 관광시대를 주도할 전략의 탄생은 세계관광의 10년, 그리고 20년 후를 내다보는 혜안에서 출발한다.




양영근 제주관광공사 사장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2/02/20131202023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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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0. 09:51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는 올 한 해 가장 주목받는 건축물이 될 듯하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영국인 자하 하디드가 설계해 최근 완공한 DDP는 “수작은 아니지만 이름값은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초 예산(2274억 원)의 배 이상(4840억 원)을 투자한 곡선의 DDP가 네모난 건축물로 상징되는 효율 만능의 시대에서 잉여의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서울시는 “DDP 운영으로 20년간 13조 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낼 것”이라며 “빌바오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건축개념사전에 따르면 빌바오 효과란 수명이 다한 스페인의 산업도시 빌바오가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해 관광도시로 거듭나면서 얻은 경제적 효과를 뜻한다. 빌바오 시는 1997년 개관한 미술관 덕분에 매년 관광객 100만 명이 몰려들어 3000억 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빌바오 시는 랜드마크가 될 만한 건축물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도시들엔 교과서 같은 존재다.

그러나 빌바오 효과를 분석한 책과 논문을 살펴보면 ‘튀는 건물 하나로 죽어가던 도시가 벌떡 일어섰다’는 식의 일반적인 이해와는 거리가 있다. 빌바오의 오늘은 구겐하임이 들어서기 전부터 오랫동안 진행된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배형민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할 때 빌바오는 쇠퇴한 산업도시가 아니었다. 1980년대 산업위기를 거친 뒤 서비스 중심의 도시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고 있었고, 수백 년간 쌓아올린 경제와 문화 기반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빌바오 효과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미술관 건립에 공공예산을 몽땅 끌어다 쓰는 바람에 다른 문화활동은 홀대받았고, 미술관의 경제적 효과엔 테러 조직의 휴전 효과가 포함돼 있으며, 고용률도 임시직이 많아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콧대 높은 유럽의 문화강국에 명함도 못 내밀던 구겐하임에 도시의 랜드마크 자리를 내준 것은 바스크 민족문화의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이은해 논문 ‘유럽의 전통산업도시에서 문화·예술도시로의 변모’).

빌바오 효과를 연구한 전문가들은 미술관만 보지 말고 수많은 사회기반시설을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보행자 전용 다리, 주변 산책로, 공원, 놀이터, 편리한 교통시설 등은 빌바오가 관광객뿐만 아니라 시민들을 위한 도시임을 말해준다.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미술관 옆 어린이 놀이터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빌바오 효과의 교훈은 헛된 것이다. 도시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의 공간이 아니고 차분하게 오늘을 사는 시민의 삶의 터전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DDP는 여러모로 구겐하임 미술관을 닮았다. 구겐하임을 설계한 미국의 프랭크 게리와 자하 하디드 모두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스타 건축가다. 티타늄 조각 수만 개를 이어 붙인 비정형의 구겐하임만큼 알루미늄 패널 4만5000장을 붙여 만든 DDP의 외관도 화끈하다. 하지만 건축물이 관광객을 자석처럼 끌어들여 떼돈을 벌어다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전에 자문해야 한다. DDP는 동대문을 생활 터전으로 하는 주민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DDP는, 그리고 서울은 우리가 좋아하는 공간이고 도시인가. ‘그렇다’는 답을 할 수 없다면 서울은 세계적인 브랜드 건축을 들여와도 빌바오가 되려다 실패한 또 하나의 사례가 될 뿐이다.

이진영 문화부 차장


http://news.donga.com/List/Column/3/04/20140128/60445056/1



Posted by 겟업
2014. 9. 17. 16:28

얼마 전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에 들렀다가 ‘xx 整形外科’라는 병원 간판을 보고 원장에게 물었다. 整形外科(정형외과)는 뼈를 다친 사람들이 오는 곳인데 혹시 成形外科(성형외과)를 잘못 쓴 것 아니냐”고. 원장은 “중국에서는 성형외과를 整形外科라고 쓴다”면서 “중국인 고객이 많아 대부분 강남의 성형외과가 이렇게 표기한다”고 했다. 하긴 성형수술이 코뼈 광대뼈 턱뼈를 깎아내는 수준이니 정형이라고 해도 틀린 건 아니겠다. 병원 내부 안내 간판에도 手術中心(수술중심ㆍ수술센터) 등의 병원용어를 한글과 중국식 한자로 병기해 놓았다. 중국어 통역을 고용하는 경우도 있고, 필요할 때마다 수시 호출할 수도 있다고 했다.


요즘 서울 명동거리나 롯데백화점 근처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을 흔히 본다.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는 중국인들이 내국인보다 훨씬 많은 듯하다. 중국인을 실은 관광버스가 줄지어 있고 경찰이 교통정리를 할 정도다. 대형 중국어 백화점 현수막들이 관광객의 눈길을 잡는다. 지하철을 타도 중국어 안내방송이 나온다. 중국어 도로표지판이나 대중교통 안내판도 확충될 모양이다. 한때 명동거리는 일본인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전후로 위안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중국인 차지가 됐다.

한국에 중국 바람이 거세다. 각종 통계도 이를 보여준다.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수는 2005년 71만명에서 지난해 433만명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600만명에 이를 전망이고 머지않아 1,000만명을 훌쩍 넘을 것이다. 중국관광연구원은 올해 중국인 해외관광객이 1억1,6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일본 전체 인구 정도가 해외로 관광을 다니는 셈이다. 이들이 해외에 뿌리는 돈만도 162조원이란다. 홍콩과 마카오를 제외하면 지난해 중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은 곳이 한국이다.

롯데백화점 본점에는 내국인보다 중국인 매출 비중이 더 높은 매장까지 등장했다. 2014년 상반기 중국 은련카드 매출을 분석한 결과, 중국인 매출비중이 50%가 넘는 매장이 ‘MCM’, ‘라인프렌즈스토어’, ‘모조에스핀’, ‘지고트’ 등 4개였다. 또 올해 상반기 중국인 매출 비중은 15%로 2010년 1%에서 15배나 증가했다. 중국어 구사하는 직원이 300여명이고, 외국인 전용 ‘Global Lounge’도 개설했다.

사실 정부가 그제 발표한 6개 유망서비스산업 투자활성화 대책 중 그나마 실효성이 있을 법한 분야는 관광 쪽이다. 영종도와 제주도 4개 복합리조트사업의 성패도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달렸고, 외국 영리법인 설립을 통해 2017년까지 50만명의 해외 환자를 유치하겠다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싫든 좋든 중국은 우리에게 차세대 성장동력을 제공할 나라다. 제조업과 수출을 통한 경쟁력은 한계에 봉착했다. 대신 서비스업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성장을 유지하려면 중국을 지목할 수 밖에 없다. 우리 교역규모에서 중국은 이미 미국을 앞질러 1위에 올라있다. 한국 방문 관광객 수에서 보듯, 중국은 우리의 생산기지를 뛰어넘어 이제 소비기지로 떠오르고 있다. 웨이하이(威海)에서 닭이 울면 인천에서 들린다고, 중국과는 담벼락을 넘나드는 거리다. 인구 14억명의 중국의 도시 인구는 8억5,000만명으로 미국과 유럽 인구를 합한 숫자다. 인터넷가입자 6억명, 모바일가입자가 12억3,000만명이다. 6억명이 넘는 인구가 빈곤에서 벗어났고, 중산층의 수가 미국 인구보다 많다. 이보다 좋은 황금어장은 없다. 용(龍)이 될 수 없으면 용의 등에라도 올라타라고 했다. 그래야 승천(昇天)할 수 있다. 그나마 중국이 용트림을 하기 전이라야 가능할 것이다.

중국전문가 전병서 중국금융경제연구소장은 저서 한국의 신국부론에서 “중국의 상위 5%의 부자 6,500만명의 식탁과 옷장을 장악하면 한국의 4,500만명이 행복하게 살 수 있고, 2억명의 중국 노인들의 건강을 책임질 수 있으면 4,500만명이 30년은 편하게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일본을 배우던 1980년대, 미국을 따라 하던 2000년대는 갔고 이제는 미국과 일본에서 배운 노하우를 중국에 팔 때가 왔다”며 “100만명 이상의 중국 전문가를 양성하자”고 제안한다.

조재우 논설위원


http://www.hankookilbo.com/v/296e4f471a524d9f994fe7a21076da77



Posted by 겟업
2014. 9. 17. 16:24

독일 자동차의 TV 광고는 유사한 패턴을 보여준다. 날렵한 차 한 대가 울창한 숲길을 순식간에 가로질러 고풍스러운 저택 앞에 사뿐히 멈춰 선다. 바로 그때 다른 익숙한 자동차 브랜드에선 볼 수 없는 독일 차 특유의 정교함을 자랑하는 독일의 독보적인 엔지니어링 기술에 대한 설명이 뒤따른다. 

 이런 광고는 독일이 구텐베르크에 의한 세계 최초의 대량 성경 인쇄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과학과 엔지니어링의 놀라운 전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기에 먹힌다. 어디 그뿐인가. 막스 플랑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그리고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최초의 컴퓨터를 발명한 콘라트 추제 등 걸출한 과학자를 배출한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독일의 엔지니어링 기술 수준은 그런 광고를 보는 사람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익히 알려져 있다. 간단히 말하면 독일 엔지니어링은 따로 주석을 달지 않아도 될 만큼 신뢰가 구축돼 있다는 말이다. 

 한국산 자동차는 지난 10년간 세계 시장에서 놀라운 성장을 기록한 덕분에 유럽에서도 한국 차 애호가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자동차업계가 독일처럼 제품 광고를 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서구인은 한국 문화가 중국이나 일본과 어떻게 다른지 모른다. 더군다나 1990년대 이전만 해도 한국의 과학·기술과 선진국 사이에는 괴리가 컸다. 

 그러나 한국이 가진 기술적 우수성의 뿌리는 깊다. 문제는 그처럼 훌륭하고 오랜 전통에도 불구하고 서구에는 그런 전통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한국의 그런 전통을 아는 사람은 미국 대학에서 일하는 소수의 사람뿐이며, 이들이 영어로 쓴 글도 대개는 학자들을 대상으로 학회지에 실린 것이다. 

 우리는 한국의 기술적 우월성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문화의 일부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인은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해야 한다. 한국인이 자신들의 우수한 문화가 서구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점을 개탄할 때마다 나는 솔직히 이렇게 말해준다. 요즘 시대에는 한국의 문화가 원래 탁월했으므로 외국인들이 자동적으로 한국을 이해해 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말이다. 한국은 외국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자신들의 문화를 체계적으로 알려야 한다. 

 이 작업과 관련해 두 가지 가능한 해법을 제시하려 한다. 

 첫째, 15세기 조선의 위대한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장영실의 삶을 장편영화로 만들어 전 세계 관객에게 보여주는 일이다. 미천한 노비 출신의 장영실이 어떻게 당시의 끔찍한 차별을 극복하고 진귀한 해시계·물시계·혼천의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의 측우기까지 만들게 됐는지 그 과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면 세계에 한국 기술의 뿌리를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런 영화가 제작된다면 세계인들에게 기존의 한국 제품 광고보다 훨씬 더 크고 지속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둘째는 세종대왕이 고리타분한 관료들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개혁을 통해 민초의 점증하는 욕구에 부응하는 교육기관을 세우는 과정도 세계 유력 작가의 손을 거친다면 훌륭한 영어소설로 재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만일 조선 과학기술의 황금기에 초점이 맞춰진 그 소설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국제사회에 한국에 대한 인식을 영원히 바꾸게 될지 모른다. 그 책이 일단 미국 작가의 손을 거쳐 미국 독자를 겨냥해 쓰인다면 세종대왕과 그의 위대한 정신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과학 분야에서 한국의 놀라운 성취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다면 현재 한국의 기술적 성취가 단지 지난 몇십 년간 갑자기 이뤄진 게 아니라 유구한 전통의 결과임을 웅변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한국의 우수성은 허구가 아님에도 실제로 많은 한국인은 그런 사실 자체를 잘 모르는 듯하다. 한국이 지난 60년간 거둔 눈부신 발전을 널리 알리는 과정에서 한국의 기술적·과학적 뿌리가 어떻게 근대화의 중추적인 근간이 됐는가 하는 점은 거의 무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까지는 한국이 꾸준한 노력을 통해 선진국 반열에 오른 점만 부각시키면 됐지만 이제부터는 한국의 기술적 전통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편이 더 낫다. 다시 말해 느닷없이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연속성이 오늘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음을 부각시킨다면 국제사회에 더 많은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그렇게만 된다면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한국의 우수성을 이야기해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세계인은 아마도 확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지금처럼 새로운 기술을 개발만 해서는 국제사회에서 그 같은 지위를 확보하기 어렵다. 지난 10년간 한국 과학자들은 놀라운 기술적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한국을 아시아 다른 나라들과 차별화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만일 한국이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설득력 있게 또 효과적으로 세계인들에게 소개할 수만 있다면 한국은 분명 우뚝 설 것이다. 

엠마뉴엘 페스트라이히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5236316&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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