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9. 16:34

19세기는 서양의 기술이 동양을 점령했던 시기였다. 중국, 동남아시아, 일본이, 서양의 기술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유럽의 식민지가 되었고, 한반도는 아시아의 유럽을 표방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말은 인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말과 좀 다른 층위를 갖는다. 일본은 철저하게 조선의 전통을 계획적으로 말살해 나갔다. 조선의 전통을 말살했다는 것은 그것들을 하루아침에 깡그리 없애버렸다는 얘기가 아니다. 수 천 년을 이어 온 한 민족의 전통은 물리적 강제에 의해서 사탕 빼앗듯 쉽게 없앨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부끄럽게 만들 수는 있다. 일본은 그들이 배운 서양의 기술과 그 가치를 가지고 우리의 말과, 의복을 비롯한 우리의 생활과 역사를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그 가치 또한, 1876년 김기수의 조선수신사 일행의 행색을 보고 비웃는 일본인을 유럽인들이 비웃었듯이 어차피 남의 옷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19세기 조선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사실 굉장히 역동적인 시대였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중인계급들이 부를 축적하던 시기였고, 문화적으로도 추사와 북학파의 후인들이 발흥했던 시기였으며, 정치적으로도 노론 내부에서 자기반성이 일어나던 때였다. 이 시기에 백과전서파들이 등장했고,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수집벽이 유행했으며, 건축적으로도 재사건축이 새롭게 실험되고 있었고, 살림집에서도 새로운 모색이 막 시작되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리고 이 시도가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의해 중단되면서 조선의 문화는 이어지지 못하고 한 시대의 문을 닫는다. 혹자는 한국과 일본을 두고 전통과 완전히 단절한 한국이 일본보다 더 빠르게 근대화를 이룰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지만, 사실은 한국이 전통과 단절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 의해서 조선의 전통이 한국으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 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확한 얘기다. 


그랬기 때문에 결국 한국은 빠른 속도로 근대화 되었다. 그리고 21세기,디자인의 시대라는 이 새로운 세기에 서양은 다시 동양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런데 전시대와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기술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고, 지금 아시아로 들어오는 서양의 디자인은 자신들의 시장을 개척하러 들어 온다기 보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아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19세기에는 무자비한 자원수탈이 행해졌지만, 문화와 생활은 광물처럼 함부로 캐 갈 수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그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서양은 지금 아시아의 디자인을 주목하고 있다. 철근콘크리트라는 서양의 발명품으로 안도 다다오는 막다른 길에 접어든 모더니즘 건축의 돌파구를 제시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건축가 왕슈는 모더니즘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중국을 현대화했다. 패션에서도 중국은 이미 중국의 스타일을 완성해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일본은 일찌감치 전세계적으로 젠(Zen)스타일을 유행시켰다. 

일본의 젠스타일이 서양 모더니즘의 돌파구를 제시하는 동시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면, 태국의 중요한 디자인 개념인 '휴'(休)는 보다 생활에 깊이 들어 와 세계인들의 마음에 공감을 불어넣고 있다. 거기에는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편안히 한다는 불교적 방법이 스며있다. 태국은 불교라는 종교가 가진 몸과 마음의 철학을 디자인에 심어서 성공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무엇이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격(格)이다. 격은 사람이 겪는 '곳'에 맞는 것이고, 사람이 겪은 '때'에 맞는다는 것이다. 곳은 장소고, 자연이고, 환경이다. 때는 시간이고, 느낌이며, 상태다. 따라서 격을 갖는다는 것은 나의 바깥과 안이 조화롭다는 것이다. 조화는 계속해서 변하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조화는 없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그것이 환경과 사회에 맞는 것이 될 때 격은 이루어진다. 나는 이 '격'이 지금 한국사회가 추구해야 할 아름다운 무늬라고 말하고 싶다.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조선이 못 다한 실험을 이어 지금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함성호 시인ㆍ건축가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6/h20130610210142121760.htm



Posted by 겟업
2013. 9. 19. 16:22

이제 너무나 유명해진 세계적 공연기업 ‘태양의 서커스’는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시의 생미셸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 지역에 이 서커스단이 오게 된 사연이 흥미롭다.


1980년대 후반 생미셸 지역은 환경적·사회적 문제로 가득한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수십년 동안 쓰레기를 매립해 북미 최대의 쓰레기매립장이 되어 있었다. 공기는 매립장에서 나오는 가스로 오염되어 있었다. 일자리는 사라지고 주민들은 하나둘 떠나고 있었다. 지역주민의 40%가 저소득층으로 분류됐다.


그런데 당시 몬트리올시와 지역주민들은 대담한 사회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이 지역을 친환경 공원과 문화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쓰레기매립지를 친환경 공원과 문화도시로 변화시키겠다니, 어쩌면 황당한 상상이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상상력이 이 지역을 밀고 가는 힘이 됐다. 이 상상력 앞에 민간기업인 ‘태양의 서커스’와 캐나다 중앙정부 및 퀘벡·몬트리올 지방정부가 모두 힘을 합쳤다. 경계를 무너뜨리고 각자 가진 것을 꺼내 기여하며 협업했다.


지금 태양의 서커스가 입주한 단지 ‘라 토후’도 이들이 함께 기여해 만들었다. 바로 쓰레기매립장 위에 세워진 곳이다. 이 단지에는 국립서커스학교, 서커스 공연장, 예술가 숙소, 태양의 서커스 본사뿐 아니라 매립 쓰레기를 에너지 등으로 전환하는 재활용센터 등이 함께 입주해 있다.


성과도 눈부시다. 1997년 이곳에 입주한 태양의 서커스는 날개를 달아 세계로 발돋움하며 성장했다. 몬트리올은 세계 서커스의 중심지로 이름을 떨치게 됐고, 이 지역에 관광객과 예술가가 몰려들었다. 쓰레기매립장이던 이곳에 쓰레기로부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환경기술이 접목됐다. 매립장은 차차 거대한 공원으로 변신하고 있다.


현실적 제약조건을 넘어선 사회적 상상은 ‘비현실적’이거나 ‘모호하다’는 비판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변화는 늘 상상에서 시작된다.


공상과학소설(사이언스픽션)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알베르 로비다가 1800년대 말에 낸 20세기 예측서들을 보자. 다수 채널을 가진 대형 텔레비전, 24시간 실시간 뉴스 채널, 홈쇼핑, 영상 전화기, 대륙간 항공, 인공 강우, 시험관 아기, 패스트푸드, 국립공원 시스템 등이 그의 책에 등장한다. 물론 이들은 당시에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 먼저 상상력을 발휘한 뒤, 과학기술이 뒤따라가서 현실로 만들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창립자는 지난 4월 스콜월드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상과학소설이 결국 과학을 움직였다. 먼저 상상해야 변화가 일어난다. 그렇다면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소셜픽션(social fiction)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한국 사회는 엄청나게 많고 풀기 어려운 문제들 앞에 서 있다. 동시에 각각의 문제에 대한 구체적 해결 방법을 논의하자는 목소리도 많다. 지역 풀뿌리 단체도 많아졌고, 지자체도 고민이 깊어졌고,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도 커졌다. 많은 이들이 사회문제 해결 노력에 적극적이다.


그런데 이런 논의가 문제 해결 방법론에만 천착하다 공전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미시적 논쟁에 얽매이면 각자 속한 작은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복잡해지며 논의가 멈추기 쉽다. 궁극적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 상상을 공유하지 않으면, 부딪쳤을 때 쉬이 주저앉게 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함마드 유누스의 말처럼 소셜픽션을 쓰는 것이다. 함께 쓰면 더 좋겠다. 그 픽션이 현실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자신이 속한 집단의 벽을 허물고 토론하는 데까지 가면 더 좋겠다. 몬트리올에서처럼 말이다.


이원재 경제평론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92297.html

Posted by 겟업
2013. 9. 19. 13:59
영국의 작은 마을 헤이(왼쪽)와 에덴은 ‘괴짜’라는 소리를 듣는 사회혁신가와 이들에게 협력한 주민들이 만들어낸 성공 모델이다. 허영 오픈이노베이션 대표

괴짜 혁신가가 바꾼 작은 마을 ‘헤이’ 그리고 ‘에덴’


런던에서 버스로 4~5시간
‘헤이’는 세계최대 책마을
‘에덴’은 세계최대 온실마을
매년 50만~125만 관광객

수십년전엔 그냥 보통마을
아이디어와 주민의 협력이
세상과 삶을 바꾸었다


모든 혁신은 꿈을 꾸고 이를 행동에 옮기는 결심에서 시작된다. 혁신의 모델이 된 영국의 작은 마을 헤이와 에덴은 ‘괴짜’라는 소리를 듣는 사회혁신가와 이들에게 협력한 주민들이 만들어냈다. 2013 스콜포럼이 열린 즈음에 런던에서 버스나 기차로 4~5시간 걸리는 두 마을을 다녀왔다.


헤이온와이(Hay-on-Wye)는 잉글랜드-웨일스 접경지역 와이강가에 있는 인구 1300명의 마을이다. 방문 당시는 5월 말에 열리는 헤이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괴짜 리처드 부스가 1961년 낡은 성을 사서 헌책방을 만들면서 지금은 100만권 넘는 장서를 가진 세계 최대의 ‘책마을’이 되었다. 파주 헤이리 마을의 모델이다.


2012년 책마을 시작 50주년을 맞은 헤이는 40여개의 책방과 30여개의 골동품가게들이 매년 5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맞고 있다. 한해에 팔리는 책만 해도 100만권이 넘는다. 007의 작가 이언 플레밍이 이곳에서 다윈의 <종의 기원> 초판본을 찾아낸 일화도 있다.


혁신가 리처드 부스는 “헌책은 대형마트에서 팔지 않기에 작은 마을의 희망이다”고 말한다. 그가 열네살 때 단골 서점 주인이 “너는 헌책방 주인이 될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 말이 현실이 되었다. 리처드 부스의 사회혁신은 모든 것을 주민들과 함께하고, 주민생활과 연계하며, 기존에 있는 것들과의 자연스러운 어울림을 통해 창조적인 문화도시를 만들어낸 것이다.


본차이나 그릇에 쓰이는 고령토 광산이었던 잉글랜드 남서부 콘월지역의 에덴은 세계 최대의 온실로 탈바꿈했다. 5000여종 100만 식물이 재배되는데 2001년 3월 개장 이래 연간 125만명이 찾고 있다. 20번째 007 영화 <어나더데이>의 촬영지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서천 국립생태원의 모델이다.


유명 음반 제작자였던 팀 스미트는 19세기풍 정원을 복원하다 에덴을 구상했다. 아이디어 단계부터 주민들과 협력했다. 공사기간 중에 이미 50만명의 유료 관광객이 찾았다. 에덴의 비전은 ‘환경, 주민소통, 모든 수익은 지역에게’이다. 지역 생산물로 상점을 채우고 1700여 명의 지역민들이 일을 한다. 바다로 떠밀려온 나뭇조각 하나 버리지 않고 교육 및 건축 자재로 재활용했다. 식물에게 줄 4300만갤런의 물은 대부분 빗물을 이용했다. 지금도 전체 물 사용량의 43%가 빗물이다.


에덴의 교육총괄 존 엘리슨은 “궁극적인 목표가 뭐냐?”라는 질문에 “미래는 우리가 발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창조하자”라는 말로 대신했다. 교육을 중시하며 지구상의 모든 식물의 씨앗과 열매를 보존하겠다는 것이 에덴의 미래 비전이다.


보통의 도시가 창의적인 도시로 바뀌기 위해서는 지역의 정체성을 찾고 문제를 꿰뚫어보는 혁신가의 자질과 꿈, 이를 평생 실천할 의지, 그리고 주민들의 동의와 재능을 모으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창의적 아이디어로 삶의 양식을 바꾸고, 사업성을 갖춰 문제를 해결하면서, 근본적 시스템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기업가 정신인 것이다.


허영/오픈이노베이션 대표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86305.html


Posted by 겟업
2013. 9. 19. 13:12

세계 어디를 가나 아이들의 미소는 해맑다. 생명의 기운을 갈구하는 폐허의 땅,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났던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연필과 공책을 쥐여주면 뛸 듯이 기뻐한다. 이곳에서 알게 된 사실 또 하나. 아이들이 있는 곳은 절대 안전지대라는 점. 시도 때도 없이 로켓탄과 급조폭발물(IED) 공격, 자살테러 등을 감행하는 탈레반이지만 아이들은 절대 죽이지 않는다는 믿음이 퍼져 있었다. 아프간 주둔 미군들 입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미군은 늘 쫓기듯 움직였다. 바그람 기지 밖에 있는 비무장의 아프간 주민을 만나러 갈 때도 완전군장에 10kg이 넘는 방탄조끼를 두른 뒤 IED가 터져도 끄떡없는 특수장갑차를 타고서야 겨우 한두 걸음이다. 2001년 10월 개전한 뒤 10년 넘게 압도적 군사력을 갖고도 탈레반을 제압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공공외교의 실패다.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미국 편이라 해도 3000만 아프간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공외교는 이미 주요국 외교정책을 좌우하는 대세(大勢)가 된 지 오래다. 정치와 경제, 군사 중심의 흘러간 외교 방식을 버리고 대상국 국민에게 직접 다가가서 설명하는 적극적 소통(疏通) 방식이 공공외교다. 그 중요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우리 정부도 세계 178개 공관을 통해 활발한 대민 공공외교를 독려하고 있다.

외교부 첫 공모로 선발된 최고 수준의 비보이단(團)과 퓨전국악그룹을 스리랑카와 방글라데시 문화사절단으로 파견한 것도 한류(韓流) 열풍의 ‘끊어진 고리’로 평가받는 서남아시아 지역에 새로운 고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방글라데시와의 수교 40주년, 스리랑카의 독립 65주년을 계기로 삼았다.

공연단은 우리의 멋과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면서도 현지 국립무용단과의 협연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주재국 문화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기획한 것이다. 4월 말 발생한 의류공장 붕괴사고로 10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방글라데시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 공연 앞부분을 애도와 묵념의 시간으로 할애한 것도 그 때문이다.

두 나라의 반응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지난해 ‘대장금’의 히트로 한국 드라마 열풍이 불기 시작한 스리랑카 공연에는 대통령 부인과 주요 각료가 대거 참석했다. 이틀간 초만원이었고, 주요 방송국을 통해 지금도 재방송이 나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한류 확산도 눈에 띈다. 현지 미디어의 파급력을 공공외교의 최종 병기로 활용하겠다는 최종문 스리랑카 대사의 전략이 주효했다.

방글라데시의 이윤영 대사는 한국 문화를 최상류층이 향유토록 노력하고 있었다. 여론 주도층이나 영향력이 큰 인사들을 상대로 공공외교를 펼쳐 한국의 가치가 일반 대중에까지 확산되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 두 번의 공식 공연 외에 방글라데시 상위 5%들의 모임인 ‘굴샨클럽’ 특별공연도 호평을 받았다.

‘착한 영향력’을 확대하려면 ‘착한 방법’을 써야 한다. 외교부는 현지 관습과 문화적 특성, 외교 관계 등을 고려해 현지 재외공관이 구상한 맞춤형 공공외교를 권장하고 있다. 본국에서는 ‘원칙’만 얻고 방법은 현지 공관이 찾아낸 ‘코리안 루트’를 적극 활용하라는 것이다. 현지에서 한 땀 한 땀 떠놓은 인적 네트워크에 한국의 매력을 실어 주재국 국민들의 가슴속으로 스며들도록 하는 방법이다. 꽃을 팔려고 서두르지 말고 먼저 향기를 맡게 하라는 것이다. 마음이 오면 몸이 오고, 몸이 오면 생각도 따라 오게 마련이다. 

한국은 침략의 원죄(原罪)가 없고 속이 들여다보이는 원조도 하지 않는다. 기적적인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드문 나라이기도 하다. 스토리가 있는 나라인 것이다. 스토리는 공공외교 선진국의 좋은 자산이다. 한류 불모지로 여겨지는 서남아에서 공공외교 강국의 꿈이 이제 막 영글어 가고 있다. ―다카(방글라데시)에서


하태원 논설위원



http://news.donga.com/3/all/20130514/55129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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