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4. 13:10

이 광란 속에서 제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을 붙잡기로 했어요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너무나 많은 가치들이 죽어가고 있는 지금…

 
편지 첫 줄은 이렇게 시작될 때도 있었다. "제 엽서가 잘 전해질지 알지도 못한 채 무턱대고 씁니다."

최근 번역 출간된 '카뮈-그르니에 서한집(1932~ 1960)'을 읽는다면, 우리는 '쯧쯧, 저런 안타까운 시절도 있었구나' 할 것이다. 소설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와 산문집 '섬'으로 국내에 알려진 장 그르니에가 주고받았던 편지 모음이다. 카뮈는 마흔넷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3년 뒤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르니에는 카뮈의 고교 시절 스승이었다.

당시 이들이 서로에게 소식을 전하려면 일주일 이상이 필요했다. 전란 통에 이리저리 옮겨다닐 때는 한 달 넘게 걸리기도 했다. 그러니 '이제 막 선생님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제 손에 닿기까지 멀리 돌아온 편지였습니다'라고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우리는 손가락만으로 실시간 대화를 나눈다. 논쟁을 벌이고, 연애를 하고, 점심 먹을 식당 정보도 찾아낸다. 세상 소식에는 모르는 것이 없어졌다. "제 편지를 받으셨는지요? 선생님의 소식이 궁금합니다"라고 애타게 묻던 카뮈 시절과 비교하면 우리는 정말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정보 독점으로 밥벌이하던 시대는 벌써 무너졌다. 사건 배후에 감춰진 '모종의 음모'도 금방 알아내고 전파된다. 어떤 자리에서 내가 처음 듣는다는 반응을 보였다가, "정말 언론인 맞으세요?" 소릴 들은 적도 있다. 옛날에는 세상 소식이 며칠 끊겨도 별 탈 없었는데, 요즘 살아가려면 이렇게 많이 아는 것이 필요해졌다. 시시콜콜한 연예인 가십을 놓쳐도 삶의 한쪽 기둥이 허물어지는 것처럼 됐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소식과 근거 없는 낭설, 타인의 신상정보, 막말과 독설의 수집에 유독 집착하는 부류도 생겨났다.

이런 정보의 풍요(豊饒)라면 카뮈의 시대보다 우리가 지식과 이성에서 전진해야 옳다. 27세의 카뮈는 이런 편지를 썼다. '적어도 나날이 심해지고 있는 이 광란 속에서 제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을 붙잡고 있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너무나 많은 가치들이 죽어가고 있는 지금, 최소한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가치들만이라도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지하철로 출근하니, 삶의 가치에 고민하던 카뮈 또래의 나이들은 모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직장인은 고스톱에, 여대생은 단조로운 벽돌깨기 게임에, 또 술이 덜 깬 직장인은 어젯밤 놓친 예능 프로에 열중했다. 마치 전염처럼 한 명 예외도 없었다. 어떤 삶을 살다 가야 하는지를 요즘에는 아무도 자신에게 묻지 않는다.

인기 있는 학자나 작가들도 대부분 트윗을 날리며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만 바쁘다. 거기에 쏟는 시간과 열정으로 세상을 좀 더 깊이 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잡담만 오갈 뿐 사상과 철학을 말하는 이들은 사라졌다. 본질과 근원적인 것에 대한 탐색은 부질없는 일처럼 됐다.

패스트푸드가 편리한 것은 분명하지만 몸에 꼭 이로운 것은 아니다. 정신의 양식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손쉽게 주울 수 있는 정보와 유희(遊戱)만으로는 결코 인간을 균형 있게 성숙시키지 못한다. 편한 맛에 중독되면, 매스컴에서 퍼뜨려놓은 대로 우르르 쫓아가고 반응할 뿐이다. 허위의 말일수록 더 화사하다. 내용이 없는 언어일수록 더 선동적이다. 금세 우리 눈을 현혹하고 입속에 침이 고이도록 한다.

카뮈는 22세 때 공산당 입당(入黨)을 제안받고 편지를 썼다. '제게는 인간을 괴롭히는 불행과 고통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강한 열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명철한 의식을 유지할 것이며 절대 맹목적이 돼 넘어가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카뮈 때보다 지금이 더 '명철한 의식'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젊은 친구들은 맹목적이거나 속기 쉬운 대상이 된다. 가령 대선 후보마다 자신을 뽑아야 '세상이 바뀐다'고 하지만, 이는 후보나 그 주변에 들러붙은 '파리 떼'의 위세만 바뀔 뿐이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뀐 적도 없고 바뀌지도 않는다. 아마 다음 정권에서는 세금은 늘고 수입은 줄고 빚은 늘어나는 것만 예정돼 있을 것이다.

진정 세상이 바뀌는 것은 그 속에 있는 우리 개인들의 의식 수준에 달려 있다. 자신의 휩쓸리는 모습을 냉정하게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젊어서 가끔은 어려운 책도 읽고,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도 참아내면서 말이다. 21세의 애송이 카뮈도 '제 자존심은 대부분의 경우 속 빈 허영이라는 것임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저 자신을 명철하게 판단해보는 것입니다'라고 썼다.

한낱 매스컴 스타를 '메시아'인 양 맹목적인 추종을 반복하면, 조작된 이미지에서 제대로 본질을 보지 못하면, 허위와 진실을 구분해내는 힘이 부족하면, 우리에게는 늘 그런 수준의 세상만 주어질 것이다.

 

 

 

최보식 선임기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29/20121129008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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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4. 12:09

아홉 평 집터에는 타다 남은 나무기둥들이 을씨년스럽게 꽂혀 있었다. 찬바람이 과자봉지와 천 조각 등을 날려보내며 죽음의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전남 고흥의 한 조손(祖孫)가정에서 화재참사가 일어난 것은 불과 며칠 전이었다. 촛불을 켜고 잠자다 여섯 살 소년과 예순의 할머니가 숨지고 할아버지도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소년·할머니의 유골은 인근 야산에 매장된 상태였다.

지역 경찰관에게 화재 당시의 기막힌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촛불은 새벽녘 일어나 요강을 찾는 소년을 위해 할머니가 켜 놓은 것이었다. 그 작은 불꽃이 낡은 벽지를 타고 방안 전체로 번져나갔다. 불똥이 얼굴에 떨어지면서 화상을 입고 뛰쳐나온 할아버지는 곧바로 구조신고를 할 수 없었다. 궁핍한 여건 때문에 휴대전화는 없고 집 전화 역시 수신 전용선이었다. 할아버지는 뺑소니 사고로 두 다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다. 이런 다리를 끌고 몸통으로 기어가며 인근 5촌집에 가 구조를 요청했지만 운명은 이미 정해진 시점이었다. 구호 사각지대에 놓인 극빈층의 ‘참혹 동화’였다.

가난-가정 해체-심신박약-자활의지 상실…. 소년의 가정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 어머니가 재혼하자 할아버지는 소년을 외손자가 아닌, 아들로 호적에 올려 양육해왔다. 교통사고로 근로능력을 잃은 할아버지는 일찌감치 안방에 자리를 깔았다. 공장에서 일하던 할머니 역시 정신이 혼미해져 일자리를 잃었다. 집안에서 술에 의존해 사는 두 노인 사이에서 어린 소년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고흥 참사는 숱한 ‘복지 퍼즐’을 던져준다. 긴급 에너지공급 서비스만도 그렇다. 한전은 2005년 이후 요금이 밀렸더라도 극빈층 가정의 전기를 함부로 끊지는 않는다. 전력공급제한기를 달아 최소한의 전기는 공급한다. 소년의 집도 그랬다. 그런데도 할아버지·할머니는 왜 공짜인 제한전력을 마다하고 개당 500원 하는 촛불을 사서 쓰다가 변을 당했을까. 할아버지는 “한전이 전기 사용이 가능하다는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전은 “매뉴얼대로 설명해줬다”고 했다. 둘 중 하나는 거짓일까. 취재 결과는 ‘둘 다 참일 수 있다’였다. 소년의 집을 방문한 한전 검침원은 전력제한기의 사용법을 알려주고 그 방식대로 직접 TV까지 켜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후 전기밥솥을 연결했을 때 전기가 나가고 말았다. 이에 할아버지·할머니는 전기를 못 쓰게 됐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에러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전기밥솥에 전기는 왜 나간 걸까. 전력제한기의 순간 한도는 220W다. 형광등 2개, 25인치 TV 1대, 미니냉장고 1대를 동시에 쓰는 수준이다. 전력소모량이 큰 전기밥솥이나 전기장판은 감당하기 어렵다. 전자제품의 전력소모량이 커지는 추세지만 2005년에 정한 한도는 한 번도 올라가지 않았다. 220W라면 신형 냉장고 한 대를 감당할 수준에 불과하다. 한전 광주·전남지역본부 김상언 차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도가 낮다는 생각이 들어 관련 문제점을 본사에 보고했다”고 했다.

지방정부가 전기제한 조치를 당한 극빈층에게 50만원 한도에서 체납전기료를 지원해 주는 제도도 있지만 소년의 가정은 혜택을 받지 못했다. 반년 동안 고작 15만원을 체납했을 뿐인데도 말이다. 이는 지방정부와 한전 간의 정보 불통 때문이었다. 한전에서 전기료가 밀린 사람들에게 전력제한조치를 해도 이 명단이 자동 통보되지 않는다. 그러니 지방정부에서는 곧바로 긴급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 실제로 고흥군 이은영 복지지원팀장은 “지난달 도에서 내려온 전력제한 가정명단에 소년의 가정은 빠져 있었다”고 했다.

고흥 사건은 복지의 우선순위와 기본원칙을 돌아보게 한다. “죽고 나면 복지는 필요가 없는 만큼 복지의 근본은 생명존중”(박준영 전남도지사의 지시내용)이라는 언급처럼 인명구호·구휼이 역시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계층적으로 극빈층, 연령대로는 아동 등을 우선 지원순위에 두어야 한다. 복지 신설에 앞서 기존 제도를 돌아봐야 한다. 우리의 복지는 알코올의존증 노인도 알아들을 수 있게 좀 더 친절해져야 한다. 시대에 맞게 기준을 조정하는 유연함도 지녀야 한다. 여러 기관이 정보를 나누며 촘촘한 복지망을 짜야 한다.

불과 사흘이지만 촛불 참사를 탐사하는 과정에서 숱한 복지 구멍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이 심층 연구한다면 복지현장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고흥발 베버리지 보고서’가 만들어질 만도 하다.

 

 

 

이규연 논설위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008722&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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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4. 12:07

중국 내 외국인 유학생 29만명, 한국인 유학생 6만여 명… 1위
100년 전 유학 숱하게 보냈던 일본은 활력 잃고 유학생 급감
韓流와 한국 기업의 기세처럼 우리의 역동성을 반영하는 것

 

이달 중순 중국 난징(南京)을 방문했다. 거리를 걸으니 공해로 얼굴이 푸석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동차엔 양보란 없었고, 사람은 불친절이 몸에 밴 듯했다. 상점에서 물건을 고르는데 종업원이 다가와 "문 닫을 시간이니 빨리 나가라"고 소리친다. 그래도 북부 도시보다는 공기가 덜 매캐하고 인심이 덜 팍팍하다는 게 오래 산 사람들 이야기였다.

이런 곳에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한국 학생 180명을 만났다. 한국인 안평모 교장이 2003년부터 운영하는 남경에코국제학교 학생들이다. 이들 중 주재원 자녀를 제외하고 "중국 대학에 진학해 중국을 배우겠다"는 뜻으로 홀로 유학 온 학생은 60명에 달했다. 물론 학생 의지보다 부모님 의욕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자식의 미래를 중국에 건 것이다.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이런 불편한 도시에 아이를 홀로 보낼 수 있을까?" 한국에 돌아와 통계를 뒤져봤을 때 한국인에겐 이런 걱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올 초 중국 교육부 발표를 보면 중국 내 외국인 유학생 29만명 중 6만2442명이 한국 학생이었다. 2위인 미국인 유학생의 2배에 달한다.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하기에 "앞으로 너희가 시대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뻔한 덕담으로 들렸겠지만 진심이었다. 일본·미국에서 돌아온 유학생들이 그랬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 이후 한국만큼 남의 장점을 쏙쏙 빼먹으면서 발전한 나라도 드물다. 안에선 서로 싸우면서 매몰되는 듯하지만 밖에서 보면 우리는 여전히 역동적이고 도전적이다.

100년 전 일본이 지금의 한국 같았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일본이 내보낸 유학생은 2만4700여명에 달했다. 유학생 최다 배출국이었다. 이와쿠라(岩倉) 사절단이 서구 열강에 뿌린 유학생 43명 가운데에 6세 소녀가 끼어 있었다는 사실에서 당시 유학 열풍을 짐작할 수 있다. 근대 일본의 눈부신 발전은 유학생들이 '원숭이'라는 놀림을 받으면서 문물을 이식하고 강대국의 가교 역할을 한 결과였다. 일본이 차고 있던 쇄국(鎖國)의 족쇄를 풀어준 것도 유학생이었다.

지금 중국 내 일본인 유학생은 한국인 유학생의 절반도 안 된다. 미국 내 일본인 유학생은 한국인 유학생의 28%에 불과하다. 남에게 배울 것이 없는 나라가 됐기 때문은 아니다. 일본은 선진국에 진입한 이후에도 1980년대까지 많은 유학생을 내보냈다. 유학생 숫자가 급감한 것은 경제가 성장을 멈추고 사회가 활력을 잃기 시작한 이후였다.

해외 유학생은 국가의 희망과 국민의 역동성을 거의 정확하게 반영한다. 일본의 우경화를 '폭주(暴走) 노인의 몸부림' 정도로 관망할 수 있는 것도 100년 전 일본의 역동성을 지금 우리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를 춤추게 하는 한류(韓流)는 100년 전 유럽과 미국이 열광하던 자포니즘(Japonism)만큼 화려하고, 한국 기업의 시장 장악력은 전후(戰後) 일본 기업의 기세를 느끼게 한다. 시대가 달라진 것이다.

난징에서 만난 한국 학생들에게 '애국(愛國)'이란 구닥다리 같은 말도 꺼냈다. 일본 유학 시절이던 1997년 외환위기 때 겪은 기억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은 경제적으로 망한 나라였고, 원화가치는 절반으로 떨어졌다. 무심히 찾아가던 단골 카레 집 앞에서 500엔짜리를 만지작거리다가 발길을 돌렸을 때, 학비 송금을 못 받아 일본을 떠나는 한국인 유학생들을 보았을 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라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유학은 작은 경험에서도 큰 것을 느끼게 한다.

'거대한 낭비'라고 해도 괜찮다. 젊은이들이 나라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유학은 엄청나게 남는 장사다.

 

 

 

선우정 사회부 차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27/20121127026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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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4. 12:04

날이 추워지고 있다. 소녀상은 발이 시리다. 단발머리에 치마저고리. 열세 살에 끌려왔을 때의 맨발 모습 그대로다. 그들은 소녀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신발까지 빼앗아 버렸다. 추운 날씨에 떨고 있던 소녀상에게 어느 날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담요로 차가운 종아리를 감싸 주었고, 얼어붙은 맨발에 보송보송한 수면양말을 신겨 주었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 앞에 소녀상이 세워진 지 곧 1년이 된다. 지난해 12월 14일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시위 1000회 기념으로 세워진 평화비 소녀상이다. 높이 130cm의 소녀상은 울지도, 웃지도 않고 일본대사관을 응시하고 있다. 두 손은 치마를 꼭 쥐고, 발뒤꿈치는 여전히 땅에 붙이지 못한 채 앉아 있다.

일본대사관 앞길은 ‘평화로’라고 이름 붙여졌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 때만 북적이던 이곳에 평일에도 소녀상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소녀상은 언젠가부터 일본군 위안부가 70, 80대 노(老)할머니들의 문제라고 치부해 왔던 인식에 경종을 울렸다. 일제가 성노예로 끌고 가 잔혹하게 짓밟았던 것은 눈부신 10대 소녀들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올해 수요집회에는 소녀상 또래의 여중고생들이 수백 명이나 함께했다.



그러나 올해 6월 말 소녀상의 가슴은 또한 번 무너져 내렸다. 일본 극우단체 회원인 스즈키 노부유키(47)가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 영토’라고 쓰인 흰색 말뚝을 소녀상의 다리에 묶었던 것이다. 그는 “일본 대사관 코앞에 매춘부 동상, 매춘부 기념비가 서 있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장마가 한창이던 7월 초. 한 경찰관이 커다란 우산을 들고 소녀상에 다가왔다. 서울지방경찰청 13기동대 소속 김영래 경위(49)였다. 소녀상의 움푹 파인 눈에 들어간 빗물은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는 소녀상이 ‘말뚝 테러’에서 지켜 주지 못한 자신을 야단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죄송스러운 마음에 그는 소녀상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그리고 한 시간 넘게 소녀상에 우산을 받쳐 주면서 근무를 섰다. 이 사진은 SNS를 통해 퍼져 나갔다.

올해 8월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소속 에니 팔레오마바에가 의원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사는 경기 광주 나눔의집을 방문해 “소녀상이 너무 작아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치욕적”이라며 더 큰 추모상 건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녀상을 조각한 김운성, 김서경 부부는 “소녀상이 거대해져 미화되고, 숭배의 대상이 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 있는 유명한 ‘오줌싸개 동상’도 실제로 보면 너무 작아 관광객들이 실망할 정도다. 그러나 각국의 국빈이 벨기에를 방문할 때마다 벌거벗은 꼬마동상을 위해 옷을 선물할 정도로 사랑받고 있다. 일본대사관 앞 작은 소녀상도 설날에는 한복으로, 크리스마스에는 빨간 망토로 갈아입는다. 곰돌이 인형, 꽃, 신발을 놓고 간 사람도 있다. 때로는 작아서 더욱 슬프고, 친근해지는 대상도 있다.

소녀상은 예술작품의 힘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일본의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는 “위안부 강제 동원 증거가 없다”고 망언을 해 대지만, 일본 정부는 소녀상에 쏟아지는 관심이 곤혹스럽기만 하다. 위안부 할머니를 기리는 소녀상은 미국 디트로이트에도 세워질 예정이라고 한다.

소녀상의 뒤편 그림자에는 나비 한 마리가 새겨져 있다. 나비는 환생(還生)을 상징한다. 일본 정부는 얼마 남지 않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면 위안부 문제가 잊혀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나비는 할머니들의 ‘소녀시대’의 기억을 다시 불러왔다. 이제 소녀상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전승훈 문화부 차장

 

 

http://news.donga.com/3/all/20121127/511225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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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4. 12:02

"아들을 위해, 고명하신 교수님께 감히 이렇게 호소할 수 밖에 없는 아비의 심정을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이 문제를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계신 모든 분들은 제 아들이 학문을 대단히 좋아하며 근면할뿐더러 과학에 큰 애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귀하께 확실히 보증할 수 있습니다. 제 아들은 보잘것없는 저희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 아들이 생활과 일에서 기쁨을 되찾을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셨으면 합니다. 만약 제 아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만 있다면 더없이 고맙겠습니다."

아들을 걱정하고 부탁하는 이 편지에 대한 답장은 오지 않았다. 이 아들은 그 전해에 명문 대학을 졸업했으나 거의 1년간 일자리도 없이 지내고 난 뒤였다. 사실 대학 생활이 불성실했고 교수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아서 졸업 시험 성적은 꼴찌였다. 조교직을 얻으려고 보낸 모든 편지는 거절당했고, 원하는 직업을 얻을 길이 완전히 막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절망적인 날을 보내고 있었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 아들은 대학동창과 사랑에 빠져 있었는데, 집안에서 반대하고 자신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바람에 같이 살지 못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두 연인에게는 아이까지 생겨서, 임신의 와중에 졸업시험을 치러야 했던 여자친구는 결국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학위를 받지 못했다. 태어난 아이는 딸이었는데, 아주 어릴 때 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과외 교사를 전전하던 그는 대학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를 포기하고 중등교사가 되려 했지만 역시 여의치 않아 단기 계약직 자리를 얻는데 그쳤다. 보험회사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그는 친구들에게 여기 저기 일자리를 부탁하고, 지원했다 떨어지는 일을 반복하는 고단한 나날을 몇 년 동안 보내야 했다. 한 마디로 참으로 한심한 지경의 젊은이였다.

이 젊은이는 1999년 12월 31일 미국의 타임지 표지에 등장한다. 그의 사진 위에 적힌 타이틀은 "세기의 인물"이었다. 눈치를 챈 사람도 있겠지만 이 젊은이는 바로 20대 초반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아인슈타인은 힘든 시기를 지낸 후 친구의 연줄로 스위스 연방 특허청에 취직해서 결혼을 하고 인생에 안정을 찾게 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는 맹렬하고도 진지하게 과학 연구를 하기 시작했고, 별다른 경험이나 배경이 없음에도 학술지에 전문적인 논문을 싣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의 삶은 현기증 나는 궤적을 그린다. 불과 3년 후, 그는 역사에 길이 남을 논문 세 편을 한 해에 잇달아 발표하면서 일약 물리학계의 총아가 된다. 실업자 시절에서 11년이 지난 후 그는 당시 세계 과학의 중심 도시에 전례가 없는 파격적인 대우로 초빙된다. 그는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의 최연소 회원이며, 뭐든지 강의할 권리는 있으되 강의의 의무는 전혀 없는 꿈같은 조건의 베를린 대학의 교수고, 현재 독일 과학의 중심 역할을 하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전신인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 산하에 설립된 그 자신의 개인 물리학 연구소 소장으로서, 프로이센의 교수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 봉급을 받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6년 후에는 영국의 원정대가 일식을 이용해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증명하면서 아인슈타인은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 된다.

아인슈타인의 연구 활동이나 업적, 그리고 그의 삶의 진행은 너무나 예외적이어서, 힘든 시절을 보내는 청춘들에게 아인슈타인을 보고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또한 아인슈타인의 예에서 분명한 것은, 누군가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보내더라도, 아무리 찌질한 모습으로 한심한 지경에 처하더라도, 아무리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의 가치를 정해버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경상대 물리교육과 교수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1/h20121125202233121780.htm

 

Posted by 겟업
2013. 1. 4. 12:00

어른이건 아이건 한번 맛보면 본능적으로 사랑에 빠져드는 이것. 이것을 장악하기 위해 500여 년 전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등 유럽 열강은 각축을 벌였다. 생산량을 늘리려고 대양을 건너 식민지를 개척했다. 먼 대륙 사람들을 ‘사냥’해 데려다 생산인력으로 썼다. 그 결과 남미 각국에 아프리카 흑인들이 정착해 지구상의 인종 분포까지 달라졌다.

‘이것’은 바로 설탕이다. 일본 오사카대 문학부 가와기타 미노루(川北稔) 교수는 ‘설탕의 세계사’란 책에서 설탕을 대표적인 ‘세계상품(世界商品)’으로 규정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세계상품에는 역사를 바꾸는 힘이 있다. 면직물 담배 향료 커피 차 등이 이런 상품이었다. 가와기타 교수는 “16세기 이후 세계역사는 세계상품의 패권을 어느 나라가 쥘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경쟁 속에서 전개됐다”며 “요즘으로 따지면 TV, 자동차, 석유 등이 세계상품”이라고 설명했다.



공교롭게 그가 지목한 현대의 세계상품은 모두 한국의 주력 수출품이다. 올해 1∼9월 한국산 TV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34.8%로 일본(25.3%) 중국(24.2%)을 크게 앞선다. TV시장 세계 1위인 삼성은 설탕 생산시스템의 가장 말단인 설탕정제업체 제일제당으로 1953년 제조업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회사다.

한국 자동차도 시장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올해 세계에서 팔린 차 100대 중 9대(8.6%)는 현대·기아차다. 석유 한 방울 안 나지만 1∼10월 휘발유 경유 윤활유 나프타 등 석유제품 수출액은 총 수출의 9.7%로 올해 한국의 최대 수출품목이 될 것이 확실시된다.

각광받는 세계상품, 스마트폰에서도 한국은 최강자다. 삼성전자의 3분기 스마트폰 세계시장 점유율은 32.5%로 14%인 애플의 두 배가 넘는다. 애플이 삼성전자에 특허공세를 펼치는 것도 세계상품의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기(氣)싸움 성격이 짙다.

최근에는 ‘강남스타일’이 한국산 세계상품에 합류했다. 싸이의 뮤직비디오는 24일 조회수 8억 건을 돌파하며 유튜브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한국의 세계상품이 보고(TV), 듣고(스마트폰), 타는(자동차) 데서 나아가 문화 영역까지 확대된 것이다.

역사상 한민족이 이렇게 많은 세계상품을 만든 적은 없다. 1960, 70년대 가발 정도가 세계시장을 장악해 본 한국 상품이다. 바로 옆 두 나라, 중국과 일본은 차이나(China), 저팬(Japan)이란 서구식 국명이 각각 도자기, 칠기(漆器)에서 비롯됐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세계상품을 만들었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세계상품 시장에서 어제의 승자는 오늘의 패자가 되기도 한다. 1980년대 대표 세계상품 ‘워크맨’을 만들고 컬러TV 시장을 수십 년간 지배해온 일본 소니는 삼성전자 등과의 경쟁에서 뒤처져 최근 ‘정크(투자위험) 등급’ 회사로 전락했다.

세계상품을 지배하는 나라는 세계의 강자가 된다. 역대 강국들이 국가전략 차원에서 세계상품 개발과 시장 확대를 지원해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의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국가별 제조업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최근 3년 연속 하락하며 6위로 떨어졌다.

대통령 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 돼서야 대선구도가 겨우 가려진 ‘3류 정치’는 불안감을 더 키운다. 글로벌 시장에서 생사를 걸고 경쟁하는 대기업들 깎아내리는 데 열을 올리는 한국 정치권이다. 사상 처음 이룩한 ‘세계상품의 나라’를 앞으로 5년간 뒷걸음질치게 하는 일만은 없으면 좋으련만 요즘 분위기라면 낙관보다 걱정이 앞선다.

 


박중현 경제부 차장

 

 

http://news.donga.com/3/all/20121125/510972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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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4. 11:56

[네 남자의 만화방] ‘모든 것을 생쥐 한 마리로 시작’한 디즈

“이 모든 것이 생쥐 한 마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겁니다.”

 

무척이나 겸손한 말이었지만, 그 생쥐 한 마리가 거둬들인 것은 전혀 겸손한 수준이 아니었다. 지금부터 정확히 84년 전 바로 요맘때인 11월18일, 최초의 동시녹음 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에 등장한 ‘미키마우스’ 말이다.

이 깜찍한 생쥐는 주인 월트 디즈니(1901~66)를 카네기가 부럽지 않을 부자로 만들어줬다. 월트 디즈니 스스로도 자신의 피조물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다줄지는 몰랐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디즈니는 1950년대 미키마우스 덕분에 회사가 커져 처음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되었을 때 저 인사말을 남겼다.

 

미키마우스는 디즈니가 천장 위를 오가는 쥐 소리를 듣고 구상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미키는 원래 토끼였다. 디즈니는 ‘오스왈드’란 토끼 캐릭터를 만들어 히트시켰다가 사업 분쟁이 일어나 이 캐릭터를 남에게 넘겨줘야 했다. 절치부심하던 디즈니는 오스왈드의 긴 귀를 동그랗게 바꿔 미키마우스를 만들어 재기에 나섰다.

겨우 귀 모양이 바뀌었을 뿐인데, 그 결과는 어마어마했다. 이 ‘황금알을 낳는 쥐’는 여러 영화에서 주연배우로 맹활약하며 1932년엔 아카데미상을 받았고, 그다음에는 텔레비전으로 넘어가 1950년대 미국 아이들을 사로잡은 뒤 1955년 디즈니랜드의 마스코트가 되며 ‘디즈니 왕국’을 만들어냈다.

 

이제 미키마우스는 디즈니의 아이콘을 넘어 미국의 상징이 되어 전세계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 1944년 2차 대전 중 미국이 연합군 암호로 쓴 단어가 미키마우스였던 것은 애교에 가깝다. 이 생쥐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힘이 점점 더 세지고 있고, 심지어 자신을 위해 법까지 바꿔버렸다.

 

저작권은 원래 창작자의 사후 50년까지 보호받는다. 미키마우스의 저작권 종료 시점이 다가오자 미국은 이를 70년으로 연장했다. 미국 내에서 ‘미키마우스법’이란 조롱이 나오며 논란이 일었는데, 이게 남의 나라에서 벌어진 웃긴 이야기로 그치지 않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FTA)을 앞두고 한국 정부도 70년으로 법을 고친 것이다. 한국인 모두가 미키의 손바닥에서 놀아난 셈이다.

 

덕분에 미키의 주인 디즈니사는 더욱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고, 그 돈으로 캐릭터들을 수집 중이다. 21세기 들어 디즈니는 8조원을 주고 픽사를 사들였고, 수많은 슈퍼영웅을 거느린 만화 전문 기업 마블코믹스를 4조6천억원에 사들였다.


최근 또 하나의 소식이 전해졌다. 디즈니사가 조지 루커스에게 4조4천억원을 주고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와 루커스필름을 통째로 인수한 것이다. 지구를 지키는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도, 우주를 정복한 다스베이더도 미키마우스가 지갑을 열자 쇼핑 대상이 돼버렸다.

 

이 모든 게 생쥐 한 마리에서 비롯된 것은 확실하다. 미키마우스는 분명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쥐다. 그러나 미키, 광선검을 들고 우주로 나가지만은 말아줘, 제발.

 

 

한겨레 문화부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33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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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4. 11:43

저승으로 향하는 열차 ‘바리데기호’는 어디서 출발할까. 답은 경기도 일산 대화역이다. 저승에 도착한 이들이 재판을 받는 동안 머무르는 곳은? 편리한 시설을 갖춘 ‘호텔 헬리포니아(Hotel Hellifornia)’다.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어떡하지? 걱정 마시길. 저승전용 커피전문점 ‘헬벅스(hellbucks)’가 있으니까. 만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미 눈치챘을 이 유머.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에 묘사된 현대화된 저승의 모습이다.

지난 2009년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연재가 시작돼 ‘저승편-이승편-신화편’ 3부작으로 마무리된 『신과 함께』가 최근 단행본으로 완간됐다. 최근 몇 년 새 나온 한국 만화 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다. 시작부터 독자들의 큰 호응을 받은 이 만화는 지난해 대한민국 콘텐트 어워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일본에서도 리메이크돼 만화잡지 ‘영간간’에 연재 중이다. 내년에는 김태용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진다.

1부 저승편은 39세의 노총각 회사원 김자홍씨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저승차사(저승사자)를 따라 길을 나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저승에 간 그는 7명의 판관에게 재판을 받으며 기름이 펄펄 끓는 솥에 빠지는 화탕지옥, 얼음감옥에 갇히는 한빙지옥 등을 ‘염라국 최고의 국선 변호사’와 함께 헤쳐 나간다. 2부 이승편은 집터를 지키는 성주신, 부엌을 가꾸는 조왕신, 화장실을 관장하는 측신 등 잊혀졌던 한국 설화 속 신들을 주인공으로 재개발과 철거민 문제와 같은 사회적 이슈를 다룬다. 3부 신화편은 앞서 등장했던 신들이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보여주는 일종의 프리퀄(prequel·전편보다 시간상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이다.

자칫 고리타분할 수 있는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것은 작가의 능력이다.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은 이 만화가 그동안 창작자들이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한국 전통 신화와 설화·민담이라는 새 이야기보따리의 문을 열었다는 점이다. 콘텐트 대국 일본에는 이미 전통 신과 요괴, 괴담 등이 대중문화의 주요 소재로 쓰이고 있다. 작가들을 위해 국립연구기관인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가 일본 내 각종 설화와 요괴담 3만5700여 건을 모아놓은 ‘괴이(怪異)·요괴전승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관리까지 하고 있을 정도다.

주호민 작가가 주목한 것은 경기도와 제주도 등에 전해 내려오는 신화지만, 찾아보면 우리 조상들의 삶 속엔 신비로운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숨겨져 있을 터. 『신과 함께』는 이런 전통 소재가 새로운 문화 콘텐트로 주목받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기분 좋은 신호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968075&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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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4. 11:39

세상에 이런 나라가 없다고 한다. 대통령 선거가 한 달도 안 남았는데 후보조차 확정이 안 된 이런 ‘바나나 공화국’ 같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거품을 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게 뭐 그리 대수인가. 이왕 참은 것, 며칠만 더 기다리면 대진표가 확정될 것이고, 그때부터 “준비~땅” 하고 정책과 공약, 인물 검증을 몰아치기로 하면 된다. 뭐든지 단시간에 후다닥 해치우는 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전통이고 장기 아닌가.

나이 들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하지만 나는 요즘 정말로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다. 젊은 시절,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란 사실이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소위 선진국이란 델 갔다가 돌아오는 비행기가 한반도 상공에 들어서면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잿빛 산하와 그 안에서 부대끼며 사는 우리의 일상이 그렇게 초라하고 암울해 보일 수 없었다. 옛날 얘기다.

며칠 전 국제회의 때문에 캄보디아에 잠깐 다녀왔다. 이른 아침 인천공항에 내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인천공항과 자유분방하게 그곳을 드나드는 수많은 코리안들, 시원하게 뻗은 공항고속도로와 깔끔하게 정돈된 주변 풍경을 바라보면서 대한민국 여권을 가졌다는 사실이 너무나 뿌듯했다. 솔직히 요즘에는 미국이나 유럽 어디를 가도 별 감동이 없다.

전화(戰禍)와 분단의 상처를 안고 다시 시작한 나라. 부존자원 하나 없는 가난한 나라. 미군이 던져주는 초콜릿을 놓고 다투고, 미군 부대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로 끼니를 때우던 나라.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느니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게 낫다는 저주 속에 출발한 나라. 그런 코리아가 불과 반세기 만에 많은 나라의 부러움을 사는 나라가 됐다.

자신은 헐벗고 굶주려도 자식들을 가르치고, 그 힘든 노동과 굴욕을 참아내며 가족을 부양하느라 고생한 우리 부모들이 그래서 나는 눈물겹게 고맙다. 개척자 정신으로 사업을 일구고 키워온 기업가들과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 나라의 기틀을 세운 엘리트 관료들이 고맙다. 모진 고통을 감수하며 민주화를 위해 애쓴 사람들이 고맙고, 구로공단에서 피땀 흘린 누이들이 고맙다.

이승만과 박정희에서 노무현과 이명박까지 역대 대통령들도 고맙다. 다들 나름의 시대적 소임을 다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공(功)이 있으면 과(過)도 있기 마련이다. 과는 과대로 기억하되 공은 공대로 인정해야 한다. 이미 잊혀진 존재가 되다시피 한 이명박 대통령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국가의 대외적 위상을 끌어올린 공로만큼은 인정해줘야 한다.

지금 ‘빅3’가 대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조만간 ‘빅2’로 좁혀질 것이다. 누가 되더라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새로운 정치를 열망하는 국민적 기대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양극화 해소란 시대적 과제에서 이미 빅3는 큰 기여를 했다. 누가 돼도 정치 개혁은 미룰 수 없을 것이고, 복지정책의 강화와 일정 수준의 경제민주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와 저출산율 세계 1위가 대변하는 우리의 팍팍한 현실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체제의 존립이 위협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다.

얼마 전 중국에서 열린 ‘2012 베이징 포럼’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이 시대가 당면한 다양한 주제를 놓고 전 세계에서 모인 석학과 전문가들이 토론을 벌이는 일종의 지식 박람회였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저명한 경제학자 에밀리오 오캄포 교수의 발표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한때 1인당 국내총생산(GDP)으로 따져 세계 6~7위를 다투던 아르헨티나가 지금은 60위권의 중진국으로 추락한 결정적 이유를 경제적 양극화 해소에 실패한 정치권의 무능과 나태에서 찾았다. 단순한 부(富)의 이전에 의존하는 포퓰리즘적 접근법으로 계층 간 갈등을 조장하고, 제도적 기반을 약화시킴으로써 아르헨티나의 성장 기반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란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는 소득 불균형과 경제력 집중의 완화가 필요하지만 자본주의의 버팀목인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뿔을 고친다고 소를 죽이는 우는 범하지 말란 얘기다.

 시대적 요구에 맞춰 합리적으로 룰을 조정하고, 일단 정해진 룰은 누구도 예외 없이 지키도록 감시하는 것이 차기 대통령의 역사적 소임이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누가 다음 대통령이 돼도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더 자랑스러운 나라가 될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955860&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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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2:34

요즘 모임이나 회식 자리에서 흔히 받게 되는 질문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 누가 되는 거야? 언론계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어?" 대답은 "그걸 알면 여기 이러고 있겠니?"다. 이어 "언론계라고 생각이 다 같은 줄 알아? 내가 무슨 언론계 대표도 아니고…"라고 덧붙인다.

대선이 50일도 남지 않았는데 대진표가 불투명한 터에 여론조사 결과까지 정반대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 국민들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승부가 뻔해 보였던 5년 전과는 딴판이다. 진영논리가 강고한 사람들은 이미 지지후보를 결정하고 요지부동 상태로 들어갔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주변 사람들의 견해를 듣고 싶어 한다. 지지 후보를 결정했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떠보고 싶은 심리는 같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누가 당선돼도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무책임한 말 같지만 누가 되든 역사적 정치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유력 후보 3명은 지금 연일 새로운 정책과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데, 큰 차이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는 만능인간인 것처럼 약속을 하고 다니는 게 불안하다.

이채필 고용노동부장관이 최근 세 후보의 노동공약에 대해 "새로운 내용이 없고 대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비판한 바 있지만, 그의 말대로 세 후보의 공약은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라고만 할 뿐 젖이든 죽이든 미음이든 주게 하는 대안이 없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정직하게 말하며 국민들의 동참과 노력을 호소하는 사람은 이번에도 없다.

그런데도 세 후보 중 누가 당선되든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나라가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 명운이 결정적으로 달라질 정도의 나라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의 주요 국가로 커버렸고, 어느 한 개인이 농단과 전횡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 허약하지도 않다. 원조를 받아가며 근근이 살아온 나라가 이제는 원조를 줄 뿐 아니라 정치외교와 경제 분야는 물론 문화적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강국이 됐다.

이 시점에 검토해야 할 것은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대통령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덜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4년 중임제와 지방분권 강화를 골자로 한 개헌논의가 다시 활발해진 것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초대 이승만부터 현재의 이명박 대통령까지 역사의 고비마다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의식했든 못했든 그 시대의 의미에 맞는 위상에 충실했다. 우리는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등을 어느 나라보다 더 빨리 압축적으로 이루어냈다.

이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문화라고 본다. 문화화라는 말이 있을 수 있다면 나라의 고급화, 국민의 성숙을 목표로 문화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성장을 말하지 않고 분배만 추구하느냐고 후보들을 윽박지르는 분위기가 있지만, 우리에게 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숙이다. 성장을 추구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성장도 그냥 성장이 아니라 성숙한 성장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대통령은 개발경제시대의 리더로서 앞장 서거나 십자가를 진 구국의 영웅이 되려고 애써서는 안 된다. 역사적 세계적 업적을 남기려 하는 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협치의 우두머리로서 각 부문의 갈등을 관리하고 조화를 꾀하는 마지막 조정자로서의 역할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문화적 활동이나 유머와 여유로 국민을 안심시키고 행복감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나와 있는 후보들 중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아쉽지만 동의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문화적이기는커녕 이번에도 대선은 과거를 들춰내 흠집내기와 공직 먹이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밀한 상대적 비교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임철순 논설고문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1/h201211012102348194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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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2:31

루브르 박물관에서 노(老)정치인의 은퇴 기념 연회가 열렸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앞에서다. 권력욕을 대변하는 이 화려한 그림을 둘러싼 잔치가 민망했던 정치가는 슬쩍 빠져나와 맨발로 박물관 곳곳을 순례한다. 종착지는 장 앙투안 와토의 로코코 회화 ‘키테라 섬의 순례’. 호리호리한 젊은이들이 사랑의 섬으로 여행 간다는 그림이다. 사랑의 설렘과 함께 그 사랑이 곧 식을 것이며 젊은이들은 언젠간 늙고 죽을 거라는 덧없음도 담겼다. 현실 정치에 찌든 노인은 잊었던 환상과 설렘의 순간을 떠올리며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최근 출간된 만화책 『매혹의 박물관』(크리스티앙 뒤리외, 열화당)의 내용이다. 루브르 만화총서 제7권으로 프랑스의 만화전문 출판사 퓌튀로폴리스와 루브르 공동기획이다. 루브르는 만화가들에게 이 박물관을 주제로 만화를 그려줄 것을 의뢰했고, 선정된 만화가들은 전시장뿐 아니라 방대한 수장고, 후미진 지하실 등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박물관 구석구석을 마음껏 돌아보는 특권을 누렸다. 먼 미래의 탐사대가 빙하에 파묻힌 루브르의 명작을 발굴한다는 기상천외한 내용의 『빙하시대』(2005)를 시작으로 일곱 권의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이 세상에 나왔다.

 

만화 『매혹의 박물관』의 한 장면.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610x931㎝)을 배경으로 했다. [사진 열화당]

 


12년째 루브르를 이끌고 있는 앙리 루아레트 관장은 “이야기를 창조하는 작가와 예술작품 간에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그야말로 그들의 창조력과 상상력에 백지수표가 주어진 것”이라고 기획 취지를 밝혔다. 박물관은 천재들의 유산을 시공을 초월해 차곡차곡 쌓아둔 곳.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경이의 집합체이며, 필멸(必滅)의 인간이 불멸의 시간과 싸우는 곳이다. 과거엔 막 썼을 사금파리·요강단지 따위를 유리 진열장에 모셔두고 숭배하는 무균질의 공간이며, 오늘날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박제화된 장소이기도 하다. 총서는 그런 박물관이 첨단의 대중문화인 만화와 만나 젊어지고자 한 시도다. 루아레트 관장은 철학자 자크 데리다, 영화감독 피터 그리너웨이 등 다른 분야 대가들을 초빙해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루브르가 죽은 유물들의 시체 안치소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화제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우리 만화가들이 그릴 박물관은 어떨까 혼자 상상해 본다. ‘이끼’의 윤태호라면 박물관을 진짜와 가짜, 돈과 권력의 암투가 벌어지는 공간으로 그릴 것 같다. ‘순정만화’의 강풀이라면 박물관을 박물관답게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이들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보낼 듯하다. 우리 박물관엔 어디 이런 참신한 기획 없을까.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758372&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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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2:09

일본은 미식 여행 상품이 아주 인기다. 그렇다고 고급 식당 순례는 아니다. 제대로 된 향토 음식을 알차게 먹어보는 내용이다. 나가사키 라면 개항의 산물인 짬뽕과 카스텔라, 싯포쿠 요리(중국에서 전래한 원탁 요리)를 즐기는 식이다. 이런 여행은 먹는 이도 기쁘고, 지역도 살찌운다. 사라질 운명에 처한 지역 재료와 음식을 부활시킬 수도 있다. 사투리가 언어생활을 풍요롭게 하듯, 지역 음식은 한식이라는 거대한 나무를 지탱하는 뿌리가 된다. 제주도가 올레 여행을 통해 고기국수와 몸국 같은 향토 음식에 힘을 얻은 것은 좋은 예다.

얼마 전 대전을 다녀왔다. 역사가 오랜 이 광역시에는 3대를 이어 운영하는 식당도 많다. 갈수록 세련되기만 하는 서울의 식당가에 피곤해진 입맛을 푸근하게 적셔준다. 한 두부 두루치기집에서는 감동스러운 일도 있었다. 진짜 동치미를 내주는 것이었다. 동치미 흉내만 내는 '식초물에 담근 가짜'만 먹어오던 입의 호사였다. 묻어 놓은 독에서 꺼낸 그 톡 쏘는 듯한 발효향이라니. 인심도 넉넉해서 식당 안에는 훈기가 돌았다. 연세 지긋한 멋쟁이 노인들이 파안대소하는 노포(老鋪)는 멋이 넘쳤다. 그 덕에 나도 모르게 막걸리 사발을 연신 비웠다. 생긴 지 오십 년이 넘었다는 칼국수집은 개업 초부터 쓰던 그릇을 진열하고 있었다. 먹을 게 없어서 양으로 해결하던 그때 그 시절의 국수 양푼은 왜 그리 크던지….

돌아오는 대전 역사 앞에는 추억의 가락국수를 팔고 있었고, 시간에 쫓겨 입천장을 홀랑 벗겨가며 먹던 추억에 잠시 눈물겨웠다. 대전까지 고속열차로 불과 사십여 분. 올해가 가기 전에 다시 나만의 미식 기차를 탈 참이다. 기다려라, 진짜 동치미여.

박찬일·요리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30/20121030031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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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2:08

많은 이가 “뜨거운 열정이 있으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살이”라고도 한다. 이 두 가지를 놓고 보면 당연히 모순적이다. “성공하기 위해선 열정을 가져야 한다”와 “열정을 가져도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는 논리적 대립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하나 빠진 게 있다. 열정은 함께 가야 하는 ‘그 무엇’이 있어야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송나라 때 한 어리석은 농부가 있었다. 그는 모내기를 끝내 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냈지만, 며칠이 지나자 모가 어느 정도 자랐는지 궁금해졌다. 다음 날 아침 서둘러 논에 가 보니 자신의 벼만 다른 사람이 심은 것보다 조금 덜 자란 듯 보였다. 그래서 벼를 조금 잡아당겼더니, 금세 벼의 키가 다른 벼와 비슷해졌다. 이를 본 농부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다음 날에도 논에 가서 벼를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저녁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무척 피곤하구려. 하루 종일 벼를 빼느라 힘이 하나도 없어!” 기겁을 한 식구들이 다음 날 논에 나가 보니 이미 벼는 하얗게 말라 죽어 있었다.

농부는 자신의 의지만을 앞세워 시기를 앞당기려 했다. 하지만 그 같은 시도가 성공할 리는 만무하다. 열정만으로 시간을 앞당기려 하거나, 혹은 아직 성숙하지 않은 조건을 순식간에 뒤바꾸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부작용만 불러일으키며 기반마저 뒤흔든다. 열정은 시기를 조절할 수 있는 인내와 함께 가야 한다. 열정으로 자신과 주변의 조건을 성숙시키고 인내를 통해 시기가 올 때까지 견뎌내야 한다. 30대 미국 대통령이었던 캘빈 쿨리지(재임 기간 1923∼1929년)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세상의 어떤 것도 굴하지 않는 인내의 힘을 이길 수 없다. 재능도 대신할 수 없다. 재능을 가진 자가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는 너무나 흔하기 때문이다. 천재도 마찬가지다. 인정받지 못하는 천재는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인내와 강한 결심만이 전능하다.”

쿨리지는 ‘인내와 강한 결심(열정)’을 ‘전능하다’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곧 무적(無敵)이라는 뜻이다. 열정을 가지고 인내를 품을 수 있다면 당신도 ‘무적의 전사’가 될 수 있다.

이남훈 경제 경영 전문작가

 

http://news.donga.com/3/all/20121030/504828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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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2:04

한동안 평창 동계올림픽유치에 참여하면서 유럽과 북미의 여러 도시들, 예컨대 뮌헨이나 밴쿠버 등 지구상에서 살기 좋다는 도시들을 돌아본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서울올림픽에 앞서 아테네, 파리, 로마, 몬트리올 등 올림픽도시들을 두루 돌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숙제까지 살펴보았었다. 그 평가결과에 관계없이 우리는 정말 겁 없이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 문화도시들과 경쟁해 당당한 승리를 따내곤 했다. 이러한 정신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유전자라고 할 만한 '겁 모르는 무한도전'의 표징이라고 할 만하다.

이처럼 '라인강의 기적'을 무색하게 한 '한강의 기적' 그 연장선에서 이번에는 인천 송도국제도시가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유치에 성공했다는 희소식이 날아왔다. 이는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단발성 이벤트보다 더 뜻있는 일일수도 있다. 더구나 유엔지원아래 한 해에 1,000억 달러가 넘는 사업을 벌인다고 하니 세계은행이상의 수퍼급 국제기구임에 틀림없다.그 동안 2014년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아 혼선을 빚고 있는 데다 송도 경제자유구역의 썰렁한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던 터에 GCF유치가 그 활로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이러한 유치경쟁에서의 승리 이전에 대한민국의 국격(國格)은 우리가 미처 모르는 사이에 놀랄 만큼 높아졌다. 지난 해 G20 정상회의를 지켜본 세계 언론들이 감탄했듯이 우리의 치밀한 외교와 조직능력은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를 넘어섰으며 지난 8월 런던 하계올림픽 성과가 말해주듯 완전한 톱 레벨의 G5에까지 올랐으니 세계열강과 겨루어 주눅들 이유가 전혀 없다.

이번 GCF비밀투표에서 송도가 독일 본과 스위스 제네바를 따돌렸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국력신장이 큰 작용을 했다고 보아야 한다. 이처럼 기후와 에너지라는 지구촌 미래과제를 풀어 가는데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된다. 또 하나 기분 좋은 일은 그동안 외교무대에서 곧잘 우리의 발목을 잡곤 했던 중국과 일본이 모처럼 힘을 모아 지원했다는 점이다. 이를 계기로 평화로운 동북아시대를 열어갈 '베세토 협력라인'을 구축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만하다.

세계는 지금 놀란 토끼처럼 휘둥그레 진 눈으로 우리를 바라볼 것이다. 세계 제일이라는 평가를 받은 지 오랜 인천국제공항에 처음 들어서는 외국인들의 반응도 그러하려니와 K팝 열풍에 이은 강남스타일 돌풍의 진원을 살피며 한국인의 놀라운 문화적 저력에 다시 한 번 감탄할 것이다. 아프리카 난민을 돕는 구원의 손길, 동남아시아 오지에 학교를 지어주는 자선행렬을 보면서 6ㆍ25참전국 용사들은 남다른 보람을 느낄 것이다. 빈곤의 바닥을 딛고 일어선 이 모든 현상이 반세기 안에 이루어진 기적임을 그들이 인지하고 있을 터다.

어떤 주역학자나 점성술사들의 말을 빌리면 어떤 알 수 없는 우주의 기운이 한반도에 모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를 국운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것이 땅의 기(氣)든 또는 사람의 맥(脈)이든, 때는 늘 오지 않는다는 진리를 새겨야 한다.

천시지리인화(天時地利人和)라는 맹자의 왕도론은 아무리 천지의 이익이 있다 해도 인화 곧 '사람의 통합'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정신적 결속과 협력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화합의 걸림돌인 선거열병과 사회분열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이 생전에 남긴 말씀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 "문화의 힘으로 세계를 감동시키는 나라를 만들자" 최근엔 어느 외국 언론이 평하기를 "한국은 스포츠의 혼이 국민들의 가슴에 새겨진 나라"라고 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새로운 미래를 펼쳐가는 이 시대의 키워드는 오늘의 선거판에서 보는 대립과 반목을 극복하는 통합정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는 저마다의 정파적 이해를 초월하여 선진국민의 지혜를 모아야 할 시대과제이기도 하다.

 

 

이태영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1210/h201210262106089156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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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2:01

머리가 비었다, 안 비었다를 정의하는 기준이 지식의 양이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삶의 지혜가 있는 사람도 영어를 못하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고, 마이너스 인격에도 주워들은 지식만 가지고 있으면 똑똑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지식과 분별력의 혼합이 ‘지성’인 것으로 생각되면서 많은 사람이 ‘지성인’의 범주에 속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했다. 많은 것을 알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이 물론 중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평가절하하는 오만이 될 때 지성은 질병이 된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주유소에서 잠시 일을 했다. 서울 강남 양재대로변 주유소였는데 하루 종일 외제차들이 심심찮게 드나드는 곳이었다. 외고를 졸업하고 과외가 아닌 막일을 택했던 이유는 내가 살던 곳과 다른 세상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서 타인을 얕보는 지성의 간교함을 봤고, 지성을 이유로 무시당하는 동료들의 먹먹함을 봤다. 입 떡 벌어지게 비싼 차를 몰고 온 사장님은 대뜸 나에게 ‘배운 것도 없는 게’라고 말했다. 주유원이라는 이유로 매일같이 무시당했으나 그 세계를 조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에 위선자들의 거짓 지성 앞에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직까지도 가끔 그 사장님 생각이 난다. 만일 나를 주유원이 아닌 자제분의 과외선생이나 동료로 만났더라도 그렇게 대했을까.

거짓 지성과 가시적인 품위에 그렇게 학을 떼고, 지성이 꽃을 피울 거라고 생각한 대학에 왔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분수에 넘치는 대학에 와서 좋은 점이라고는 지성이 질병이 돼 버린 자들에게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것과 밖에서 부모님의 어깨가 움츠러들지 않는다는 것 정도다. 엘리트라는 허울을 쓴 이들은 남들에게 ‘세상물정 모르는 책벌레’로 여겨지는지 모르고, 각자의 이상에 적합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 이상의 힘을 쏟는다.

영리하고 열정 넘치는 동기들에게 파묻혀 지성이 풍기는 악취에 나의 후각이 마비된 지 4년째.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포부를 품고 무섭게 돌진하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땅으로 꺼지고 싶을 만큼의 공포를 느낀다. 더불어 살고 싶다는 사람은 없고, 본인이 생각하기에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고 싶다는 사람만 있으니 어찌하면 좋을지 답도 없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가 지성의 피해자로, 혹은 지성을 빌미로 한 가해자로 살아가고 있다. 오늘도 학원가에는 이른 아침부터 온갖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전철역 계단을 줄 서서 올라가야 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무엇을 위한 분주함이며 누구를 위한 지성인가. 변화를 갈망하는 자기중심의 지성보다 타인을 세워 주며 함께 사는 지성이 넘쳐나는 사회, 그래서 웃음이 마르지 않을 사회를 감히 꿈꿔 본다.

 


박유진 미국 웰슬리대 미디어학부 4학년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713741&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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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1:50

요즘 대기업 취업은 고시 합격에 비유되곤 한다. 지방대학에서는 재학생이 대기업에 취직하면 현수막이 걸릴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경쟁도 세다.

젊은이들이 대기업 취업에 목매는 이유는 중소기업과 임금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가 올 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5~299인 고용) 상용자의 월평균임금은 263만 8,000원으로 대기업 평균임금 417만5,000원의 63.2%였다. 2000년에만 해도 대기업의 71.3%였으나 차이가 커졌다. 그나마 300명을 고비로 기업을 구분해서 나온 격차가 이 정도이고 1,000명 이상 고용기업과 그 이하 기업, 또는 50대 기업과 나머지 기업을 비교하면 차이는 더 클 것이다. 올 대졸공채의 초임 자체가 월 417만원을 넘어서는 대기업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임금격차도 크다. 통계청이 어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 6~8월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139만3,000원으로 정규직 246만원의 56.6%였다. 이 격차도 작년보다 커졌다. 심지어 '알바'로 불리는 시간제근로자는 정규직의 24.6%인 60만7,000원을 받았다. 상여금 퇴직금 수당 휴일 같은 혜택까지 감안하면 그야말로 사는 공기가 다르다고 하겠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비정규직이 30%나 된다.

그러니 대기업 정규직의 급행열차를 타려고 청년들은 몸부림칠 수밖에 없다. 어렵사리 들어간 기업체에서는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하니 과노동에 시달려도 말을 못하고 사회 전체가 짐승 같은 시간을 산다.

고임금을 고수하는 대기업은 고수익을 내야 하고 고수익을 내려면 하청단가와 비정규직 임금 후려치기가 가장 만만하다. 쥐어짜인 하청기업은 재하청기업을 쥐어 짜고 더 임금을 줄인다.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명문대 입학에 목을 매고 명문대 입학에 목을 매면서 사교육 시장이 커지고 사교육 시장의 격차는 소득에 따라 나뉘니 부익부 빈익빈의 차이는 대를 물려간다. 계층간의 이동 사다리마저 사라져버리면 사회는 불만에 가득한 빈곤계층과 지위에서 밀려날까 불안에 떠는 기득권층으로 양분될 수도 있다. 이런 사회에서 묻지마 범죄가 일어난다. 모두 잘 살기 위해 정말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실 해법은 간단하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이걸 어기는 기업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면 된다. 비슷한 땀을 흘리는 이들은 비슷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온 사회가 동의하고 철두철미 지키면 된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데에는 기업 뿐 아니라 노동자들 안에도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만일 정규직들이 비정규직의 문제를 제 일로 알고 같이 싸워줬다면 이 문제는 진작에 풀렸을 수도 있다.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므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고서도 현대자동차가 10개월이 지나도록 지키지 않는 것도 이런 구석을 믿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요 후보들은 듣기 좋은 정책을 앞다퉈 던지고 있지만 실상 그 내용은 크게 차이가 없다. 정작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근본에 대한 통찰력과 구체적인 실행력이다. 이윤을 내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이 함께 사는 방안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업 뿐 아니라 온 사회구성원들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온 사회도 기업이나 개인이 과도한 수익을 내는 것을 대단한 업적으로 찬양할 것이 아니라 이익을 독점한 결과는 아닌지 물을 수 있을만큼 성숙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대통령이 필요하다. 기업가들과 어깨동무만 하는 후보는 아예 자격이 없다. 비정규직과 같은 약자들의 현장을 찾는다면 보기는 좋지만 부족하다. 기득권을 가진 이들을 찾아서 불이익을 감수하도록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길게 보고 멀리 보면서 가진 것을 두루 나누게 할 수 있는 대통령을 기다린다.

 

 

 

서화숙선임기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252028476780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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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1:44

우리는 건국 64년 만에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됐다
최근 한국의 달라진 국제 위상을 실감케 하는 뉴스가 이어져…
그러나 다음 5년의 리더를 뽑는 대선에서 이 이슈는 실종됐다

우리나라의 국제적 지위가 지금처럼 높았던 적은 없었던 것같다. 지난 한 주 동안 일어난 일만 봐도 그렇다. 한국은 유엔 안보리(安保理) 비상임이사국이 됐다. 안보리 진출 다음날 우리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기구인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인천 송도에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1991년 유엔의 정식 회원국이 됐다. 건국 43년 만이다. 독립국 지위만 가지면 들어갈 수 있는 유엔에 가입하는 데 우리는 무려 43년이나 걸렸다. 냉전(冷戰)과 남북 분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유엔 가입 21년 만에 유엔을 대표하는 사무총장 재선(再選)에 성공했고,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두 번 선출됐다. GCF는 전 세계 190여개국이 참여하는 국제기구다. 일단 500여명으로 시작되는 사무국 규모로 볼 때 인천 송도가 미국 워싱턴 DC(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뉴욕(유엔), 스위스 제네바(세계무역기구), 프랑스 파리(경제협력개발기구)와 같은 반열에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뉴욕에서 열린 한 행사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나란히 단상에 오르자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 사람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조크를 했다고 한다. 유엔과 세계은행의 수장(首長)을 한국인이 동시에 맡고 있다고 해서 한 말이란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이 조크라 할지라도 '한국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할 만큼 우리의 국제적 지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올가을 세계 3대 신용 평가사인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가 차례로 한국의 신용 등급을 올렸다. 피치는 우리의 신용 등급을 일본보다 높게 매기기도 했다. 1997년 가을 외환 위기가 터졌을 때 3개 평가사는 모두 한국을 '투기 등급'으로 분류했고, 일부 평가사는 우리의 신용 등급을 10단계나 하향 조정했었다. 당시 일본의 신용 등급은 최상위인 트리플 A였다. 우리는 15년 만에 그랬던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일본을 앞서게 된 것이다.

외환 위기 당시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했던 기자는 돈을 빌리기 위해 워싱턴의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뉴욕의 월스트리트를 전전하던 우리 정부 및 재계 대표단의 모습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할 수 있다. 그때만 해도 미국에서 TV 등 가전제품을 사려고 매장을 찾으면 소니와 파나소닉 등 일본 제품에 가려 삼성과 LG는 찾기도 어려웠다. 현대차는 '싼 차(車)'의 대명사였고, 일본 도요타의 렉서스는 '꿈의 차(車)'라는 극찬 속에 고급차 시장을 휩쓸고 있었다. 그러나 3년 전쯤 들른 워싱턴 DC 인근의 전자 매장에서 소니 TV 앞을 기웃거리자 매장 직원이 "요즘은 삼성·LG 제품이 대세"라는 말을 건네며 다가왔다. 현대자동차는 미국에서 더 이상 싸구려 취급을 받지 않는다.

지난 몇년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한국을 보는 세계의 눈은 이렇게 달라졌다. 한국은 이제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됐다. 어느 국제회의를 가도 '한국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세계 어느 나라도 한국을 가볍게 대하지 않는다.

요즘 대선 지면(紙面)을 만들면서 자주 드는 생각이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가 과연 달라진 한국의 지위에 걸맞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들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 뉴스는 대부분 후보들의 '과거'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박 후보는 부친의 집권 시절에 관련된 일들, 문 후보는 자신의 보스였던 노무현 정부 시절의 문제, 안 후보는 개인사(史)가 뉴스의 초점이 됐다. 이 자체를 뭐라 하긴 어렵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검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과거 논란에 묻혀 세계의 중심에 선 한국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 하는 문제가 실종돼 버렸다. 여기에는 세 후보의 책임이 가장 크다. 이들 누구도 이 문제를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이들이 내놓는 각종 정책은 서로 베끼기 경쟁 끝에 변별 불가능한 닮은꼴이 됐고, 이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이 나눠주겠다는 말만 하고 있다.

박·문·안 세 후보도 다음 대통령의 임기 5년이 '어려운 시절'이 될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대선의 쟁점이 돼야 하지만 누구도 정면으로 이 문제를 다루려 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건국 64년 만에 지금과 같은 국제적 지위를 갖게 됐다. 요즘 세 후보의 모습을 보면 다음 5년이 이런 성취를 까먹는 시간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어렵다.

 

 

박두식 정치부장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23/20121023010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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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3. 11:42

▲ 지난 6월 5일 엘리자베스 1세가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식‘다이아몬드 주빌리’의 마지막날 마차 행차를 하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DB

세기의 결혼식을 기억하시나요? 지난해 4월 29일 영국 윌리엄 왕세손과 신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 이 결혼식은 세 가지 이미지를 세계인에 각인시켰다. 오래된 교회, 마차 행진, 버킹엄궁 발코니 키스.
   
   로이터통신은 발코니 키스 사진을 올리며 다음과 같은 사진 설명을 전송했다. ‘29일 결혼식을 마친 윌리엄 왕자와 신부 케이트 미들턴이 버킹엄궁 발코니에서 키스하고 있다. 이날 결혼식은 전 세계에서 20억명 이상이 TV,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시청했다. 이 행사를 통해 왕실은 전통·품격·애국이라는 영국의 소프트파워를 과시했다. 대내적으로 국민을 통합하고, 대외적으로 국가브랜드 가치를 드높이기도 했다. 신랑·신부는 케임브리지 공작 부부라는 호칭을 부여받았다.’
   
   로이터가 영국의 소프트파워로 표현한 전통·품격·애국을 좀더 상세하게 살펴보자. 결혼식이 치러진 웨스트민스터사원은 1000년이 넘은 교회. 왕의 즉위식이 열리는 공간이다. 지하 카타콤에는 영국 왕실의 묘지가 마련되어 있고, ‘시인의 코너’에는 바이런·찰스 디킨스의 묘역이 있다. 결혼식을 올린 부부는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버킹엄궁전까지 마차를 타고 국가상징거리(화이트 몰)를 이동하며 시민들과 만났다. 이 황금마차는 110년이 넘은 왕실 마차다.
   
   이번에는 왕세손 윌리엄이 입은 예복을 보자. 윌리엄 왕세손은 영국 육군 보병연대인 ‘아이리스 가드(Irish guard)’ 대위 계급장이 달린 장교복을 예복으로 입었다. 영국 왕실은 군복을 가장 명예로운 복장으로 여긴다. 장교 복장은 품격과 애국을 상징한다.
   
   영국 왕실은 지난 2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즉위 6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열었다. 영국 왕실의 결혼식, 즉위식 등과 같은 행사는 대표적인 소프트파워 콘텐츠로 꼽힌다.
   
   소프트파워는 군사력으로 상징되는 하드파워(hard power)와 달리 문화·예술·교육·스포츠를 통해 자발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일컫는다. 소프트파워는 1990년 미국 하버드대 조지프 나이 교수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특정 국가의 매력을 상징한다.
   
   영국의 유명 트렌드 잡지 모노클은 2010년부터 소프트파워 국가별 순위를 발표해왔다. 지난 11월 19일 발표된 2012 소프트파워 국가별 순위는 1위 영국, 2위 미국, 3위 독일, 4위 프랑스, 5위 스웨덴, 6위 일본, 7위 덴마크, 8위 스위스, 9위 호주, 10위 캐나다, 11위 한국 순이었다.
   
   2012년 조사에서 영국은 미국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모노클은 영국이 1위를 차지한 이유를 “해외에서 1위를 기록한 22개의 음반, 지난 올림픽에서 획득한 65개의 메달, 여왕 즉위 60주년 행사 등이 영국의 소프트파워를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영국이 해외에서 1위를 기록한 음반 22개란? 이 질문에 답하기 앞서 지난 7월 말 열린 런던올림픽의 개막식 장면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올림픽 개막식은 개최국이 갖고 있는 소프트파워의 결정체라는 말이 있다. ‘런던올림픽 개막식의 테이프는 누가 끊을까’ 하는 것은 세계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막상 커튼이 열렸을 때 세계인은 비명을 질렀다.
   
   폴 매카트니가 나와 피아노를 연주하며 ‘헤이 주드’를 부르는 게 아닌가! 폴 매카트니. 007과 함께 영국의 최고 문화상품으로 평가받는 비틀스의 옛 멤버. 2012년은 비틀스 탄생 50주년이 되는 해다. 개막식 총연출자 대니 보일 감독은 영국의 최고 문화상품인 비틀스를 개막식 첫 무대에 등장시킨 것이다.
   
   폐막식은 또 어땠나. 영국은 비틀스 외에도 수많은 대중음악의 전설을 배출했다. 영국은 폐막식에 영국이 배출한 대중음악의 스타들을 전부 올려 세웠다. 퀸, 핑크 플로이드, 오아시스 등 록밴드와 조지 마이클, 애니 레녹스, 팻보이슬림, 스파이스 걸스, 뮤즈 등. ‘해외에서 1위를 기록한 음반 22개’를 설명하는 대표적 아티스트가 아델, 뮤즈,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이다. 아델이 2011년 말 발표한 앨범 ‘21’의 타이틀곡은 ‘롤링 인 더 딥’. 이 앨범은 유럽 차트 1위를 휩쓸었고,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도 오랜 기간 1위를 기록했다.
   
   영국의 소프트파워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개막식 총연출자 대니 보일 감독은 셰익스피어 최후의 희곡 ‘템페스트’의 3막 2장에 나오는 캘리번 대사를 연기하게 했다.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던, 17세기 영국의 대문호 작품을 연기한 사람은 배우 케네스 브래너였다.
   
   비틀스, 퀸, 핑크 플로이드 등은 세계의 10~20대들에게 오래된 느낌을 준다. 대니 보일 감독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을 무대에 세웠다. 그런데 청소년의 우상인 조앤 롤링이 읽은 것은 뜻밖에도 소설 ‘피터 팬’의 시작 부분이었다. ‘피터 팬’은 J M 배리의 작품. 지난 100년간 세계인은 ‘피터 팬’을 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새로운 세대 역시 ‘피터 팬’에 열광하며 꿈을 키운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런던올림픽 개폐회식은 대중음악과 같은 소프트파워의 위세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영국임을 다시금 증거한 사례”라고 말했다.
   
   
   미국 기후변화 연구비 5000억 넘어
   

▲ 얼음이 녹은 북극에서 카누를 즐기는 관광객. photo 캐나다관광청

소프트파워 2위를 기록한 미국을 보자. 모노클은 미국의 소프트파워 콘텐츠로 리더십과 기후변화 대응을 들었다. 여기서 국제사회에서 보여준 미국의 리더십을 재론하는 것은 사족에 불과하다. 다만 한 가지 수치만 기억할 필요가 있다. 버락 오바마 정부의 2011년 대외 원조액은 307억달러였다. 우리 돈으로 33조7700억원이다. 2011년 연방정부 예산은 3조6000억달러(3906조원)였다. 리더십은 어려운 나라를 도와주는 데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은 기후변화 관련 연구개발비로만 4억8000만달러(5280억원)를 썼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이 누구보다 강하다. 자서전 ‘담대한 희망’에 따르면 공화당과 민주당의 기후변화에 대한 정책 차이로 인해 자신이 민주당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한 뒤 연설에서 “우리의 자녀들이 국가재정부채, 사회적 불균형,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해로부터 부담을 지거나 위협받지 않는 미국으로 재건하겠다”고 선언했다. 오바마 정부는 환경보전 정책과 녹색성장이라는 양대 축을 중심으로 친환경적인 입장을 유지한다. 재선에 성공하면서 오바마는 환경·에너지 관련 규제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미국인의 기후변화 인식이 높아진 것을 바탕으로 보다 강력한 정책을 밀어붙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스웨덴 이케아의 힘
   

▲ 중국 상하이에 있는 이케아 매장. photo 조선일보 DB

독일은 ‘학문과 축구’로 소프트파워 3위, 프랑스는 ‘미술관과 음식’으로 소프트파워 4위, 스웨덴은 ‘실용성과 기능성’으로 소프트파워 5위를 기록했다. 3위와 4위를 차지한 독일과 프랑스의 콘텐츠를 새삼 설명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5위를 기록한 스웨덴이다. 모노클은 스웨덴의 소프트파워를 이끄는 대표적 기업으로 이케아(IKEA)를 꼽았다. 이케아는 스웨덴의 다국적 가구기업으로 저가형 가구, 액세서리, 주방용품을 생산 판매한다. 이케아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좋은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에 직접 조립할 수 있는 가구라는 점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느 나라든 이케아는 도심 한가운데 매장을 갖고 있지 않다. 대부분 도시 외곽에 자리 잡아 임대비용을 줄이고 가구를 조립형으로 설계해 저장공간과 물류비용을 절약했다. 조립형 설계는 판매자와 소비자 양쪽에 이득이 된다. 이케아의 조립형 가구는 ‘레디 메이드’ 가구보다 상대적으로 생산 원가가 저렴할 뿐 아니라 부피가 작아 매장공간을 덜 차지한다. 당연히 가구 가격이 레디 메이드 가구보다 저렴해진다. 생산자는 좋은 디자인의 가구를 낮은 가격에 공급하고 소비자는 합리적 가격에 좋은 제품을 살 수 있는 윈윈(win win) 효과를 낳는다. 더욱이 이케아 가구는 DIY(Do It Yourself) 흐름과도 맞물려 소비자층을 확대하고 있다. 이케아는 현재 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체코·벨기에·러시아·아랍에미리트·터키·중국·일본·한국 등 35개국에 253개의 매장을 갖고 있다. 이케아는 매년 40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스웨덴은 디자인 강국이다. 2차대전 후 스웨덴 디자인을 이끈 이는 스티그 린드베리. 그는 세라믹 유리, 텍스타일 등에서 탁월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린드베리의 디자인을 제품에 사용해 생활용품을 생산한 업체는 구스타브스베리. 스티그 린드베리의 영향으로 스웨덴 디자인은 꾸미지 않은 듯 꾸민다는 철학이 스며 있다. 실용성과 기능성을 극대화한 디자인이 바로 스웨덴 디자인이다.
   
   일본은 ‘장인정신·패션’으로 소프트파워 6위를 기록했다. 일본은 15위→7위→6위로 꾸준히 소프트파워 순위를 끌어올렸다. 일본의 장인정신은 요식업에서 두드러진다. 일본에서는 3대(代)가 넘는 식당이 수두룩하다. 명문대를 나온 전도유망한 자식이 아버지가 하는 가업을 물려받는 것은 일상화되어 있다.
   
   
   일본 유니클로를 주목하라
   
   교토는 특히 가업을 잇는 오래된 음식점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교토의 소바집‘혼케 오와리야(本家尾張屋)’는 1465년 문을 열었다. 혼케 오와리야는 550년 이상 똑같은 맛을 유지하면서 교토의 최고 명물로 자리 잡았다. 교토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반드시 한번은 찾아가는 필수 코스. 혼케 오와리야 같은 곳은 사실 유럽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인 특유의 장인정신이 아니면 불가능한 식당이다.
   
   소프트파워 6위를 기록한 일본에서 눈여겨볼 것은 ‘패션’ 콘텐츠. 지금 세계는 일본 중저가 패션브랜드 ‘유니클로’에 열광하고 있다. 명품이 아닌데도 명품처럼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다. 명품의 본고장인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도 유니클로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디자인 좋고 옷 튼튼하고 값이 저렴하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유니클로로 몰려든다. 유니클로는 세계 유명도시의 핵심 상권에 매장을 여러 개 두고 있다. 서울의 경우, 명동에만 유니클로 매장이 두 개나 된다. 뉴욕 맨해튼의 중심가인 34번가에서도 유니클로는 뉴요커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덴마크는 ‘건축·디자인·방송’으로 7위에 랭크됐다. 건축가들 사이에 덴마크 건축은 일찍부터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자유로운 디자인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끝난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김형수 CDS건축사사무소 대표는 “덴마크 건축은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자유로운 정신이 그대로 디자인에 구현되었다”면서 “머릿속의 자유로움이 어떤 속박이나 구속을 받지 않고 그대로 디자인에 표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덴마크가 네덜란드와 함께 일상 생활에서 마약, 동성애 같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적 풍토를 반영한 결과로 건축가들은 해석한다. 현재 덴마크에서 떠오르는 건축가는 비아케 잉겔스. 코펜하겐에 가면 잉겔스의 건축물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시계왕국 스위스의 장인들
   

▲ 덴마크 코펜하겐의 VM하우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발코니’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photo 조선일보 DB

스위스는 ‘안정감·전문성’으로 8위, 호주는 ‘친근감’으로 9위를 각각 차지했다. 강소국 스위스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스위스는 냉전시대에도 오랜 세월 자산을 가장 안전하게 비밀리에 맡길 수 있는 곳이라는 명성을 얻어왔다. 스위스의 안정성은 금융자산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정치적 안정성, 낮은 법인세율, 영어·독일어·프랑스어 국제어 통용, 쾌적한 생활환경 등은 다국적기업을 끌어들이는 매력으로 작용했다. 1998년부터 야후, 구글, 크래프트푸즈 등 180개 이상의 다국적기업이 스위스에 유럽 본부를 설립했다.
   
   ‘전문성’은 생각할 것도 없이 스위스의 기계식 시계다. 세계의 명품 시계들은 대부분 스위스에서 만들어진다고 봐도 틀리지 않다. 태그호이어, 피아제, 트루비옹, 위블로 등이 대표적 명품 시계다. 스위스는 기계식 시계를 비롯해 여러 가지 정밀공업이 발달한 나라다. 우리나라엔 덜 알려졌지만 필라투스사와 루악사는 소형 항공기를 생산하는 업체로 유명하다. 스위스의 4년제 대학진학률은 15% 수준. 스위스에서는 누구나 기술을 익혀 전문성을 갖기만 하면 중산층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 시계왕국이라는 명성은 한 분야에서 30~50년을 일한 장인의 땀방울이 모여 만들어졌다.
   
   캐나다는 ‘북극 개발’로 10위를 기록했다. 강대국들은 왜 북극 개발에 관심을 갖나? 바로 지하자원 때문이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아직 개발되지 않은 세계 자원의 22%가 북극지역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원유의 13%(900억배럴), 세계 천연가스의 30%(47조㎥)가 북극해 아래에 매장돼 있다고 한다.
   
   북극권에 영토를 갖고 있는 나라는 캐나다, 미국, 러시아,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북극점은 남극대륙과 달리 바다다. 1년 12개월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 1996년 미국·캐나다·러시아·덴마크 등 북극권 인접국은 천연자원 독식을 위한 배타적 협의체 북극 평의회(Arctic Council)를 창설했다.
   
   
   한국 10위권 진입하나
   
   이들 나라 중에서 지리적으로 북극권과 가장 근접한 나라는 캐나다. 캐나다는 10개의 주(province)와 3개의 준주(準州·territory)로 이뤄졌다. 캐나다 국토의 40%가 북극권에 포함된다. 유콘·노스웨스트·누나부트 3개 준주는 면적 대부분이 북극권에 속한다.
   
   캐나다는 북극 인접국 중에서 북극 개발에 가장 적극적이다. 캐나다는 북미대륙과 북극해의 대륙붕이 연결됐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해저 탐사에 한창이다. 해양법에 관한 유엔협약 예외조항에 따르면 육지가 바닷속 대륙붕까지 연결된 경우 200해리 이상에서도 해저개발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캐나다는 군사적으로 2013년까지 레졸루트만과 배핀섬에 군사기지를 설치한다는 계획으로 현재 건설 중이다.
   
   북극의 얼음이 녹는 면적이 확장되면서 북서항로(Northwest Passage) 관광도 활기를 띠고 있다. 북서항로는 파나마운하가 건설되기 전 유럽인이 인도로 가는 가장 빠른 뱃길을 개척하려고 통과를 시도했던 루트. 아문센을 제외한 모든 탐험가가 얼음에 갇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1990년대 들어 여름철 2~3개월 동안 북서항로를 오가는 크루즈선이 운항되어 매년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 2010년 첫 조사에서 19위를 기록했다. 2011년에는 14위로 올라섰고, 이번에 다시 3단계나 도약했다. 콘텐츠로 언급된 것은 ‘기술력·K팝’. 기술력은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스마트폰을 의미하고, K팝은 누구나 아는 대로 ‘강남스타일’로 대표되는 K팝 한류이다. 한국은 소프트파워 면에서도 선진국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234100007&ctcd=C06

Posted by 겟업
2013. 1. 1. 13:36

1946년 9월28일 가로명제정위원회가 구성되어 서울 지명에서 '왜색'(倭色)을 지우는 작업이 시작됐다. 위원회는 일본식 지명인 마치(町)를 모두 동(洞)으로 바꾸고 일본인의 이름을 땄거나 식민통치와 관련해 특별한 상징성을 지녔던 지명에는 우리 역사상의 위인들 이름과 시호를 붙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서울 일본인 거주민의 중심지였던 혼마치는 이순신 장군의 시호를 따서 충무로가 되었고, 중국인들이 많이 살았던 고카네초오는 살수대첩을 이끈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의 이름을 따서 을지로가 되었다. 경복궁 남쪽 거리에는 세종 같은 좋은 지도자가 거듭 나오라는 기원을 담아 세종로라는 이름을 붙였다.

20여년이 지난 1967년엔 정권 제2인자였던 김종필을 회장으로 하여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이 위원회는 장소의 역사성을 고려하여 세종대왕 동상은 세종로에, 충무공 동상은 충무로에, 을지문덕 동상은 을지로에 각각 세우기로 계획했다. 그런데 동상 제막을 앞두고 갑작스레 계획이 변경되었다. 서울의 중심이자 나라의 중심인 세종로에는 무인의 동상을 세우는 것이 군 출신 통치자에게 더 어울린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 탓에 세종대왕 동상은 아무 연고도 없는 덕수궁으로 밀려났고, 지명과 동상의 연계를 고집할 이유도 없어졌다. 당시 세종로에 충무공 동상을 세우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낀 사람들은 많았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은 이 이상한 상징의 중첩에 익숙해졌다.

그로부터 다시 40여 년이 흐른 뒤, 세종로에 광장을 조성하기로 한 서울시는 충무공 동상 이전을 검토했다. 그런데 압도적 다수의 시민들이 이에 반대했다. 이미 세종로가 충무공으로 표상되는 '이상한' 현상에 익숙해졌기에, 변화를 용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세종대왕 동상을 충무공 뒤에 세운 것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궁여지책이었다. 그런데 이것도 아주 '이상'하다. 청계광장 쯤에서 경복궁 쪽을 바라보면 궐 밖 어정쩡한 곳에 앉아 있는 세종대왕을 충무공이 호위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은 이 이상한 모양새에도 익숙해 질 것이다.

1967년 서울시는 한강 변에 새 제방을 쌓고 그 위에 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새 제방과 이전 제방 사이에 생긴 땅을 택지로 조성해 팔면 막대한 건설 경비를 조달할 수 있다고 판단한 서울시와 정부는 68년 '한강개발 3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본격적인 한강변 개발에 나섰다. 이와 함께 공유수면 매립 사업도 벌어졌다. 한강 변 얕은 곳을 매립하여 택지를 조성한 이 사업에 따라 강변에 아파트만 빼곡히 들어서고 육지와 강이 완전히 분리되었다. 서울에 처음 온 외국인들은 아파트밖에 안 보이는 이상한 강변 경관에 놀라움을 표하지만, 요즘 서울 사람들은 강변 제방 바로 옆에 아파트가 있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88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후 경기장 건설과 불량주택 밀집 지역의 합동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건설자재가 부족에 직면하자, 전두환 대통령은 서울시장에게 한강의 골재와 고수부지 활용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한강 전역에서 모래와 자갈이 사라졌고, 잠실과 신곡에 각각 수중보가 건설되어 물의 자연스런 흐름을 방해했다. 강변 모래톱도 다 없어지고 그 대신 둔치에 잔디광장과 체육시설이 만들어졌다. 지금 한강은 강바닥도 물도 강변 환경도 '정상적'인 강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한강을 '정상 상태'로 되돌리자고 하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 받기 십상이다.

권위주의 통치와 압축성장은 이 사회 곳곳에 이상한 경관, 현상, 관행, 시설들을 남겨 놓았고, 대다수 국민들은 그 이상한 것들에 이미 익숙해있다.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 진영에서 이런 저런 약속들을 하고 있는데 모두가 일반 국민들 듣기 좋은 이야기들뿐이다. 정치 지도자가 국민의 쓴 소리를 듣지 않는 것도 문제이나, 국민이 쓴 소리 하는 정치인을 배척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국민들 스스로 특이한 역사 진행 경로에서 형성된 이상한 자기 모습을 성찰하지 못한다면, 후손에게 정상적인 나라를 물려줄 수 없다.



전우용 역사학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2221023581920.htm

Posted by 겟업
2013. 1. 1. 13:25

최근 중국에선 '노는 문제'가 뜨거운 감자다. 5월 1일 노동절 연휴를 일주일로 늘릴 것인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다. 중국은 설(음력 1월 1일)과 국경절(양력 10월 1일)뿐 아니라 노동절에도 일주일 연휴를 즐겼다. 하지만 2007년말 법정공휴일을 조정하며 노동절을 하루만 쉬기로 한 뒤 노동절 연휴가 사라졌다. 그런데 이를 다시 부활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 투표에선 이미 90%에 가까운 이들이 찬성표를 던졌다. 주요 언론들도 이 문제를 취급하기 시작했다. 

5년 만에 노동절 일주일 연휴의 부활이 논의되고 있는 것은 최근 8일간의 추석ㆍ국경절 연휴가 낳은 긍정적 효과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9월 30일부터 10월 7일까지 사상 최장 연휴기간에 13억명이 넘는 중국인은 내수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가장 상징적인 것이 낙타들의 과로사다. 낙타 등에 올라 사막을 건너는 체험을 해 볼 수 있는 간쑤(甘肅)성 둔황(敦惶)의 밍사산(鳴沙山) 웨야취안(月牙泉)에선 낙타들이 연휴 기간 매일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시달린 탓에 그만 이틀 연속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평소에는 낙타가 관광객을 기다렸는데 연휴 때에는 사람들이 낙타를 타려고 대기해야 했다. 오악(五岳) 중 하나인 산시(陝西)성의 화산(華山)에선 등산객 수만명이 정상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인파가 너무 많이 몰려 케이블카가 고장 났고 등산로도 깎아지를 듯이 험해 오도가도 못하게 된 것이다. 

이번 연휴 기간 중국의 관광 관련 총수입은 무려 1,800억위안(약 31조8,000억원)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상시화로 수출이 꺾이며 내수 활성화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중국은 연휴의 경제학에 크게 고무돼있다. 이번 연휴기간 고속도로에서 통행료를 받지 않은 것도 이를 염두에 둔 조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 변화는 그 동안 휴식보단 일을 하는데 더 비중을 두었던 중국인들이 이젠 놀고 싶어하기 시작했다는데 있다. 이번 연휴 기간 중국 주요 관광지가 아수라장이 된 것은 현실이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탓이 크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원을 초과한 인파가 몰리며 황금연휴는 사실상 고생연휴가 돼버렸다. 주요 관광지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2~4시간 줄을 서는 것이 예사였다. 주목할 것은 이런 살인적인 불편도 13억여명의 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누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번 연휴에 나타난 중국 내수의 잠재력과 이젠 놀고자 하는 중국인의 욕망은 한국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국내 관광에서 생고생을 한 중국인이 점차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연휴 기간 중국인이 전세계를 돌며 명품을 사들이는데 쓴 돈이 무려 480억위안(약 8조5,300억원)에 이른다는 게 세계명품협회의 설명이다. 

한국을 찾은 중국인도 10만명, 이들이 쓴 돈은 2억달러(약 2,2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우리가 준비만 더 잘한다면 이 숫자는 5배 아니 10배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중국과 일본의 댜오위다오(釣魚島ㆍ일본명 센카쿠) 분쟁으로 한국은 가만히 있어도 중국 관광객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 현장에서 느끼는 중국인의 반일 감정은 상상 이상이다. 중국의 한 저가 항공사가 반일 감정으로 일본행 비행기표가 안 팔리자 1엔(약 14원)짜리 표를 내놨다가 '나라를 팔아먹는 상술'이란 비판에 결국 사과까지 했을 정도이다. 한 중국인 친구는 만날 때마다 "반일 감정으로 이제 한국이 돈방석에 앉을 것"이라고 부러워한다. 

시장과 기회가 한꺼번에 우리에게 왔다. 수요는 큰데 공급은 없다. 논란중인 노동절 연휴까지 부활하면 중국인은 매년 세 차례나 대거 한국으로 몰려들 것이다. 과로사한 낙타의 운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10/h2012102121024584900.htm

Posted by 겟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