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총 균 쇠’는 서울대생이 학교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려보는 책 가운데 하나다.
물론 생물지리학 분야에서 중요한 책이기는 하지만 도대체 왜 그리 많이들 읽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선배들이 많이 봤다고 하니까 후배들도 덩달아 너도 나도 따라서 읽은 것일 테다.
‘총 균 쇠’는 752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지만 단 한 가지 질문에 집중한다.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같은 조상에서 나온 호모 사피엔스다. 그런데 왜 문명 발달 속도가 저마다 다를까?”
여기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유전자의 차이라는 것이다. 흑인, 황인, 백인의 유전자가 다르며 그에 따라 지능도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계에서는 이미 ‘인종’이란 단어는 퇴출되었다. 대륙마다 유전자가 다르다는 증거가 없다.
두 번째 해석은 필요의 차이, 기후에 따른 천성 같은 게 원인이라는 것이다. 창의성은 기후가 추운 곳에서 발휘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문명 발달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바퀴, 문자, 농업, 야금술은 모두 더운 지방에서 발명된 후 추운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는 1532년 스페인의 피사로 장군과 잉카제국의 알타우알파 왕의 전투를 예로 든다. 피사로의 군대는 기병 62명과 보명 106명이 전부였다. 알타우알파 뒤에는 자그마치 8만 명의 대군이 서 있었다. 19대 1로 싸워서 이겼다는 허풍은 많이 들어봤어도 400 대 1로 싸워서 이겼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결과는 스페인의 압승이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무기다. 둘째는 유럽인이 가져온 전염병이고 셋째는 대양을 건너는 해양기술과 문자였으며 강력한 통솔력을 발휘하는 정치조직이다. 그런데 왜 유럽인에게 가능했던 일이 잉카인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을까?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농업의 발전이 대륙의 모든 차이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왜 어느 지역은 농업의 발전이 빨랐고, 어느 지역은 발전이 더디거나 아예 농업을 시작하지도 못했을까?”라고 물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대해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기후, 고도와 지형의 변화 정도, 가축화할 수 있는 포유류와 곡물화할 수 있는 야생식물의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환경적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족과 대륙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까닭은 민족의 생물학적인 차이가 아니라 환경적인 차이 때문인 것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논리는 명확하다. 문명 발달의 기초는 농업이며, 잉여생산물이 생기면 기술을 발달시킬 전문가들이 생기고 결국에는 문자와 정치조직이 발달했다. 그런데 농업의 발달 정도를 결정한 것은 바로 환경이라는 것이다. ‘총 균 쇠’는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는 인류사의 중요한 요소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분명히 전 세계 사람들에게 새로운 통찰을 제공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원래 생리학자로 과학계에 발을 내딛었다. 그를 생물지리학자로 변신시킨 질문은 뉴기니에서 나왔다. 1972년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조류학자와 진화생물학자로서 뉴기니 해변에서 새의 진화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뉴기니의 정치가 얄리와 함께 길을 걸었다. 얄리가 물었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여기서 화물이란 쇠도끼, 성냥, 의약품, 옷, 청량음료, 우산에 이르는 온갖 물건을 말한다. 뉴기니 사람들에게 화물은 하나의 신앙이었다. 카고 컬트(cargo cult), 즉 화물숭배가 바로 그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남태평양의 섬에는 미군 비행장이 건설되었다. 미군 비행기가 착륙할 때마다 신기하고 쓸모 있는 화물들도 함께 왔다. 미군들은 물건을 조금씩 원주민들에게 넘겨주었다. 하얀 알을 먹으니 설사가 멎었다. 기적이었다. 원주민에게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었다. 물건을 넘겨주는 미군들은 아무런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물은 비행기에서 저절로 생겨났다. 화물은 신이 내려준 선물 같았다.
전쟁이 끝났다. 미군 비행장은 폐쇄되었다. 원주민들은 더 이상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원주민은 대나무로 비행기와 관제탑 모형을 만들어 놓고는 제사를 지냈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줄 것처럼 제사를 지냈다. 후에 미국인들이 와서 그들의 오해를 풀어주려고 해도 그들의 깊은 신앙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뉴기니에는 아직도 화물숭배 신앙이 남아 있다. 심지어 매년 2월 15일 되면 USA라는 그림을 그리고, 성조기를 펼쳐 들고 대나무 막대기로 만든 총을 어깨에 걸치고 사열하는 부족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깊은 신앙심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화물은 내려오지 않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이게 남의 일이 아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화물숭배 신앙은 활개치고 있다. 지난 3월 1일 서울 시청 앞에는 성조기와 태극기, 심지어 뜬금없이 이스라엘 국기를 든 사람들이 500만(!) 명이나 모였다. (500만 명이 한군데에 모여도 서울시 교통은 전혀 마비되지 않았으며 생수를 비롯한 생필품 공급과 화장실 사용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단 1만 6천 명의 경찰로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정도 대처라면 웬만한 전쟁이 나도 서울시민은 무사할 것 같다. 서울시 만세! 경찰청 만세!)
이것은 한국전쟁의 기억 속에서 북한을 블레셋으로 미사일과 핵을 골리앗으로 섬기며 저주하는 또 다른 화물숭배 신앙이다. 화물숭배 신앙인에게는 답이 없다. 시간이 흘러 자연적으로 소멸하기를 바라야 한다. 다만 뉴기니보다 대한민국의 화물숭배 신앙이 더 먼저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총 균 쇠’를 읽을 이유가 분명한 것 같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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